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현황과 평가1. 들어가며우리나라는 2017년 8월 현재 노인(만65세 이상) 인구 14.0%로서 유엔이 정한 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참고로 유엔은 노인인구가 7%를 초과하면 고령화사회, 14%를 초과하면 고령사회, 그리고 20%를 초과하면 초고령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행된 기간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빨랐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불과 17년 만에 고령 사회로 진입하였으며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 예상되는데 이는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 독일, 이탈리아보다 훨씬 빠른 속도이다.반면에 우리나라는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참여 증가 등으로 말미암아 장기요양이 필요한 노인을 가정에서 돌보는 것이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가족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이러한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안으로 모색된 제도 중 하나가 사회보험의 형태로 노인들의 장기요양을 지원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이다. 이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제도 중 하나로 보이는 노인장기요양 제도의 법률적 근거가 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2. 법 제정 이유 및 배경2000년 우리나라가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간 가정 내 문제로만 인식되었던 노부모 등 노인 봉양이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이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단지 노인 봉양의 문제만 개입된 것이 아니라 노인 봉양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여성인권 문제, 산업인력 부족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이렇듯 노인 봉양이 국가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고령 혹은 노인성 질병으로 신체활동이나 가사활동이 불가능한 노인들과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노인들의 건강 증진 및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2007년 4월 법률 제8403호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제정되고 2008년 7월 시행되기에 이르렀다.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가족이 감당하던 노인 요양을 국가 차원에서 대신하는 제도적 기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료에 요양보험료를 포함시켜 재원을 마련함으로써 사회보험 방식과 공적부조 방식의 조화를 꾀했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또한 장기요양 제도의 시행과 함께 노인 돌봄 인력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국가자격 제도도 만들어졌다. 요양보호사 교육을 통해 요양 서비스의 질을 확보하고 중년 여성 일자리를 확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3. 법의 주요 내용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총 12장 70조와 부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총칙으로 제1조에서는 “이 법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제공하는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노후의 건강증진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으로 법의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제2조에서는 용어를 정의하고 있고 제3조에서는 장기요양급여 제공의 기본원칙을, 제4조에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등을, 제5조에서는 장기요양급여에 관한 국가정책방향을 각각 규정하고 있으며 제6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장기요양기본계획과 그에 따른 세부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고 있다.제2장은 장기요양보험 사업 주관 기관, 보험자, 가입자(7조), 그리고 보험료의 징수(8조), 산정(9조), 감면(10조)에 대해 규정하고 있고 제3장은 장기요양인정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국민건강보험 가입자)과 신청, 조사, 등급 판정, 인정서 발급, 유효기간, 갱신, 등급 변경 등의 절차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제4장은 장기요양급여의 종류를 재가급여, 시설급여, 특별현금급여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제5장은 장기요양급여의 제공과 관련하여 제공시기, 월 한도액, 제한 사유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제6장은 장기요양기관을 지정함에 있어서 지정권자, 시설·인력 등 제반 조건 및 의무, 재무회계 기준, 폐업절차, 규정 위반 시 벌칙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제7장은 재가 및 시설 급여 비용의 청구 및 지급 방식과 절차, 제8장은 장기요양보험료율, 급여지급 기준 등을 심의할 보건복지부 산하 장기요양위원회의 구성과 기능에 관해 규정하고 있고 제9장은 노인장기요양보험공단을 운영관리 기관으로 지정하여 의료급여수급권자 자격 관리, 장기요양보험료의 부과·징수, 신청인에 대한 조사, 등급판정위원회의 운영 및 장기요양등급 판정, 장기요양인정서의 작성 및 표준장기요양이용계획서의 제공, 장기요양급여의 관리 및 평가, 수급자에 대한 정보제공·안내·상담 등 장기요양급여 관련 이용지원에 관한 사항, 재가 및 시설 급여비용의 심사 및 지급과 특별현금급여의 지급, 장기요양급여 제공내용 확인, 장기요양사업에 관한 조사·연구 및 홍보, 노인성질환예방사업 등의 업무를 맡도록 하고 있다. 제10장은 장기요양인정, 장기요양등급, 장기요양급여, 부당이득, 장기요양급여비용 또는 장기요양보험료 등에 관한 이의신청, 심사청구 및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제11장은 국가의 부담, 운영기관의 의무 등을 다룬 보칙이고, 제12장은 장기요양급여의 제공 거부나 부정 수급자에 대한 벌칙 및 양형 규정으로서 최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4. 평가 및 의견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와 여성경제활동 확대 등 사회환경의 변화로 인해 위험해질 수 있는 노인 돌봄의 탈가족화 및 사회화를 그 근본 목적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법의 규정들은 일단 그 목적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노인장기요양의 기본적인 책무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노인부양의 국가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국민건강보험료에 요양보험료를 포함시켜 재원을 마련토록 법제화함으로써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적 성격의 사회복지제도로 정착시켰다는 의의가 있다.노인요양 제도의 시행은 실질적으로 해당 노인 및 가정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신경아가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시행 이전과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면접조사에 근거해 노인과 가족이 경험한 변화에 초점을 두고 이 제도가 노인 돌봄의 탈가족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그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를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노인과 가족의 삶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삶의 핵심 사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 시행 이전 노인과 그를 돌보는 가족구성원들은 모두 스스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이해받지 못하는 소통 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 이후 재가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얻게 되는 시간적 여유(가족)나 신체적?정서적 돌봄 욕구의 충족(노인) 덕분에 노인과 가족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며 내면의 분노를 완화해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요양보호사와의 관계에서 노인은 가족과 유사한 친밀성을 경험하며 자식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대체해 가고 있는데 이는 노인 돌봄에서 탈가족화의 형식이나 내용에 관한 중요한 방향을 시사한다. 요양보호사라는 전문 직종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수많은 일자리들이 생겨난 것도 경제적으로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노인과 가족의 삶에 중요한 변화를 제공하는 긍정적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지만 더불어 미진하거나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다. 첫째는 영리 목적의 요양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이익에 따라서 서비스의 질이 달라질 수 있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불법을 저지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부정수급, 예를 들면 급여제공 시간을 부풀려서 보험금을 과다 청구하는 등의 문제가 실제로 빈번히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둘째는 누구나 쉽게 장기요양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가장기요양기관, 노인의료복지시설, 재가노인복지시설 등의 설립이 모두 신고제이다. 엄격한 심사나 평가 없이 누구나 간단한 신고 절차를 통해 요양기관 등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요양기관들이 난립할 수 있고 요양기관의 난립은 노인 확보 경쟁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본인부담금을 면제해 주거나 요양보호사들로 하여금 돌봄 서비스와는 상관이 없는 가사 업무 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이러한 문제들을 예방하거나 방지하기 위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청소년복지 실천 현장(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인터넷 방문 보고서Ⅰ.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개관1. 설립 및 운영의 제도적 근거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Seoul Support Center for Out of School Teens)는 [서울특별시학교밖청소년지원조례](2013. 10. 4. 시행)에 의거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는 모든 청소년, 특히 소외된 청소년들의 자립과 성장을 위하여 서울특별시가 2001년 설립하고 연세대학교, 한국청소년재단 등 기관에 위탁 운영해 오다가 2013년 재단법인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에 위탁, 운영하고 있다.2. 기관 또는 단체의 비전, 미션, 목적 등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는 “학교 밖 청소년 스스로가 아름다운 사회와 세계화의 주인공으로서 지속적인 배움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을 한다”라는 비전 하에 “첫째, 학교 밖 청소년에게 지속 가능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학교 밖 배움터를 발굴하고 지원한다. 둘째, 학교 밖 청소년 지원을 위하여 지역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자원을 발굴하고 민·관·산·학 네트워크를 강화한다. 셋째, 학교 밖 청소년의 다양한 환경에 맞는 지원체계를 확대한다. 넷째,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안교육 및 성장사례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여 사회적 인식을 개선한다.”는 4대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있다.3. 주요 프로그램주요 운영 프로그램은 학교 밖 배움터 지원 사업, 교육지원 사업, 교육연구 사업, 홍보 및 대외협력 사업이라는 4개의 큰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는 가운데,(1) 학교 밖 배움터 지원 사업은- 대안교육기관의 운영 토대 마련, 대안교육기관 실태점검 및 평가를 통한 공정하고 정직한 교육문화 정착, 개별기관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컨설팅 지원 등을 제공하는 ‘배움터 컨설팅 사업’- 교사 간담회를 통한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사업 협력적 모델을 구축하고 대안교육 운영에 관한 협약서 체결을 통해 학교 밖 배움터의 책무성 강화 등을 제공하는‘배움터 간담회 및 재협약 사업’- 학교 밖 배움터 대상 교사 인건비와 사업비 지원, 학교 밖 청소년의 지속적 배움과 성장을 지원하는 복지모델 창출 등을 제공하는 ‘배움터 재정지원 사업’- 학교 밖 배움터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단계별 급식 지원을 제공하는 ‘배움터 급식비 지원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2) 교육지원 사업은- 학교 밖 청소년에게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대안적 교과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우수사례 발굴 및 연구 활동 지원을 통해 학교 밖 배움터 프로그램의 다양성 확보를 도모하는 ‘대안교육 컨텐츠 개발 및 운영 사업’- 교사 양성 과정을 개설하여 대안적 학습공간의 확산을 위한 길잡이교사들을 양성하여 안정적인 강사 풀을 구축하고 교사 재교육 과정을 개설하여 학교 밖 배움터 교사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 실무 역량 강화, 리더십 개발 등을 도모하는 ‘길잡이교사 교육 사업’-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현장경험을 통한 실무능력 향상과 다양한 직업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여 자신의 특기 적성을 개발하고 및 진로를 설계토록 함으로써 학교 밖 청소년의 자립형 성장을 돕는 ‘청소년 인턴십 사업’- 위기 유형별 상담 및 치유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학교 밖 청소년의 심리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응력을 신장시키거나 통합지원체계와의 유기적 연계를 통해 학교 복귀 또는 진로개발을 도모토록 지원하는 ‘청소년 상담 사업’- 학교 밖 청소년들과 길잡이교사의 공동체 의식 고취하고 지역 내 학교 밖 배움터와 청소년 관련 기관, 단체, 시설과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학교 밖 배움터 활동 프로그램 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청소년 연합행사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3) 교육연구 사업은- 학교 밖 청소년에 관한 사회적 이슈를 발굴하고 동향을 파악하거나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전문기관과 연구 목적의 협력을 추진하는 ‘정책동향 조사 사업’- 학교 밖 청소년의 실태를 조사하고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연구 보고서를 제작하는 ‘지원방안 연구 사업’- 대안교육기관의 가이드라인을 제작 배포하고 대안교육기관 평가지표를 개발하는 ‘배움터 평가 및 가이드라인 연구 사업’- 학교 밖 청소년 지원의 현안 과제와 쟁점에 대해 다양한 계층의 발표와 토론을 주도하고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실천 시스템과의 연계·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청소년 심포지엄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4) 홍보 및 대외협력 사업은- 학교 밖 청소년 관련 프로그램, 모집, 행사, 소식 등을 공유하기 위해 청소년기자단을 운영하여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콘텐츠를 생산 및 확산하고 홈페이지를 운영하거나 정기적 뉴스레터 발송을 통해 학교 밖 청소년의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사회인식을 환기시키는 ‘온라인 컨텐츠 개발 및 홍보 사업’- 학교 밖 청소년에 관심 있는 관계자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월별 정기적 센터 기관 방문으로 센터를 소개하고 학교 밖 배움터의 특성화된 학교 정보를 제공하여 일반 학생 및 학부모에게 선택의 기회를 확대하는 ‘오프라인 홍보 사업’- MOU 체결 및 유관기관 연계를 통한 지원 발굴 및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 참여 및 문화공연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자원 네트워크 사업’등을 수행하고 있다.4) 기관 또는 단체의 자원(조직 체계, 인적·물적 자원 등)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는 센터장 산하에 운영지원팀, 기획사업팀, 교육연구팀 등 3개의 팀과 10여 명의 간사들로 조직되어 있다.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는 물적 자원으로 24개 도시형 대안학교와 7개 징검다리 거점 공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적 자원으로는 수 백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서울시 및 천주교살레지오회의 지원 인력들을 확보하고 있다.Ⅱ. 평가 및 방문 소감1.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의 역할과 기능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는 국가의 사회복지사업 체계 중 대상별로는 청소년을, 특징별로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 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자립과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과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가정이 가난하여 일찍 산업 현장에 뛰어들었거나 제도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여 자발적으로, 또는 비자발적으로 학교를 이탈한 학령기의 청소년들이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이탈한 청소년의 경우 그 원인을 제거 또는 완화시켜 줌으로써 학교로 돌아갈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고 자발적으로 학교를 이탈한 청소년의 경우 그들에게 대안 교육의 여건을 마련해 줌으로써 학령기의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교육, 학습 등 지식 습득을 가능하게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는 바로 이런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는 기관이다.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가 제시하는 비전(“학교 밖 청소년 스스로가 아름다운 사회와 세계화의 주인공으로서 지속적인 배움과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을 한다”)도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4대 기본방향도 자발적 학교 이탈 청소년들에게 지속적인 대안적 교육을 제공할 것을 천명하는 등 학교 이탈 청소년들이 처한 다양한 환경에 맞는 맞춤형 복지를 지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가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방향은 학교 이탈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것인 듯하다. 이는 4대 기본방향의 2개 항목에서 나타나는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을 위하여 지역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자원을 발굴하고 민·관·산·학 네트워크를 강화한다.”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안교육 및 성장사례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여 사회적 인식을 개선한다.”는 것이 그것이다.학교 이탈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사업에 비중을 둔 것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서 사회복지 대상자들에 대한 하드웨어적 지원 못지않게 소프트웨어적 지원이 중요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학교 이탈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오해를 불식시키고 이들이 학교를 이탈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과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분적, 개별적 사회복지를 넘어서 우리 사회 전체의 보편적 복지를 증진시키고 우리 사회 구성원의 보편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복지 제도와 정책의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다.2. 방문 소감 및 총평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8만여 명의 학교 밖 청소년들이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자발적으로 학교를 이탈한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제도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학교를 떠난 청소년이다. 이들 학교 이탈 청소년들은 소위 대안학교에 다니기도 하지만 배움을 멈춘 채 방황하기도 한다. 둘째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일찍 산업현장에 뛰어든 청소년들이다. 이들 취업 청소년들은 경제적 사정이 허락하면 언제든 학교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청소년들이라 할 수 있다.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복지사업은 이들 두 부류의 청소년들을 구분하여 맞춤형으로 수행될 필요가 있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떠난 학교 이탈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학교로부터 쫓아낸 기존 제도권 학교의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그 문제점들을 제거한 대안적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 이탈 청소년들이 제시한 제도권 학교의 문제점은 매우 다양할 것이며 이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없다. 문제점들을 분석하여 세분화하고 이를 다시 유형화하여 각각의 문제 유형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에게 대안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문제를 가진 청소년들을 대안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똑같은 문제점들을 또다시 노출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대안교육조차 거부하는 청소년들의 경우이다. 이들에게는 이른바 비형식의 교육을 제공하는 실질적 대안학교가 필요하다. 교육이 반드시 형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교육이라는 명시적 틀이 아니면서 사실상 교육적 효과를 거두는 비형식 교육의 패러다임을 다양하게 구비할 필요가 있다.
소설 「레미제라블」로 본 사회복지발달사Ⅰ. 들어가며사회복지는 어느 한 시대 또는 장소에서 소수의 정치·사회 지도자들에 의해 전격적으로 생겨난 제도가 아니라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역학 관계에 의해 형성되어 온, 그리고 현재도 형성되고 있는 제도이다. 따라서 사회복지 제도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의 영향을 받았고 그러한 사건들의 원인이 되었던 사회적 갈등과 고민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담고 있기도 하다.사회복지 제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건 중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혁명들이 있다. 프랑스 혁명은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과 더불어 세계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혁명 중 하나이지만 정치적·사회적 제도에 미친 파급효과나 영향력은 두 혁명을 압도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의 사회상이 다른 어떤 사회적 변혁 때보다도 큰 갈등과 모순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에 본 과제에서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에 나타난 19세기 프랑스의 상황과 일련의 혁명들에 대해 분석, 평가해 봄으로써 동 사건이 사회복지 제도 형성에 어떤 효과와 영향을 미쳤는지 그 단초를 찾아보고자 한다.Ⅱ. 19세기 프랑스 혁명과 시대상황1) 프랑스 혁명일반적으로 프랑스대혁명이라 하면 1789년 7월14일부터 1794년 7월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의 시민혁명으로서, 자유인이 된 부르주아들이 국왕 루이 16세를 축출하고 공화국을 선포한 사건을 의미한다. 그러나 프랑스대혁명 이후에도 프랑스 사회는 혼란을 거듭하며 19세기 내내 수없이 많은 유혈봉기와 전쟁을 겪어야 했다.프랑스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권력의 주체를 바꾸는 데는 성공했으나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더 큰 사회적 소용돌이에 빠졌다. 오스트리아 등 이웃 나라들은 혁명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 해 프랑스에 군대를 파견했고 축출된 왕족과 귀족들은 외국 세력과 결탁했다. 혁명 지도부는 외국군뿐 아니라 내부 반혁명 세력과 전쟁을 벌이면서도 내부 권력다툼에 돌입했다.혁명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가 지나친 공포정치로 2년 만에 실각하고 프랑스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가 1799년 군인 출신의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제1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일단락된다. 나폴레옹은 외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국내 반혁명 세력을 소탕하며 사회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통령 직위에 만족하지 않고 1804년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고 외국과의 전쟁을 계속하다가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해 1815년 완전히 몰락하였다.나폴레옹 몰락 이후 외국으로 망명했던 루이 16세의 동생들이 돌아와 차례로 왕위에 오른다. 오랜 전쟁에 지쳐 평화를 갈망하던 프랑스인들은 왕정으로의 복귀를 받아들였으나 왕이 점차 자유를 탄압하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이자 1830년 7월 다시한번 혁명을 일으켜 새 왕을 추대한다.(7월 혁명) 이 때 왕위에 오른 이가 루이 필립으로 그는 부르주아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루이 필립의 정책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노동자들의 폭동을 불러일으켰다. 1831년부터 1835년까지 수차례의 노동자 폭동이 일어났고 1835년부터 잠시 안정을 유지했던 루이 필립 왕정은 1846년 대흉작으로 또다시 물가가 폭등하고 실업자가 급증하자 위기를 맞는다. 1848년 2월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혁명은 마침내 루이 필립 왕정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2월 혁명)2월 혁명 이후 선포된 새로운 공화국에서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그 역시 스스로 황제(나폴레옹 3세)로 즉위했다. 나폴레옹 3세는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개혁안을 마련하는 한편 프랑스 제국의 영광을 되찾는다는 명분 하에 외국과 전쟁을 벌였다.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해 루이 나폴레옹이 물러나자 프랑스 급진 좌파 세력이 봉기해 파리 시청을 점령하고 자치정부 파리코뮌을 결성한다. 하지만 파리코뮌은 정부에 의해 진압돼 약 3만 명이 처형당하는 처참한 결과로 끝났다.파리코뮌을 진압하고 출범한 제3공화정에 가서야 프랑스는 민주공화정으로 정착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거의 100년이 걸렸다.2)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에 나타난 사회상19세기 프랑스는 전쟁과 혁명의 아수라장 속에서 경제와 민중의 삶이 피폐해졌다. 물가가 날로 치솟아 민중들의 고통도 극심해졌다. 혁명 지도부 중 과격파였던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정권을 장악한 뒤 최고가격제를 실시해 일시적으로 물가안정을 이루었으나 2년 만에 실각하면서 최고가격제가 폐지되고 물가는 다시 뛰어 올랐다. 바로 그 이듬해인 1796년 장발장이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 체포된다.1799년 집권한 나폴레옹은 토지분배, 법·제도 정비, 초등교육 확립 등의 정책으로 사회를 안정시켰으나 1815년을 넘기지 못한다. 바로 이 해 장발장이 출소한다.1830년에 집권한 루이 필립은 왕족의 신분이지만 혁명의 이념을 지지하고 시민의 대변자가 되겠다고 공언해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약속대로 자유, 특히 언론·출판과 산업 활동의 자유를 크게 보장하는 정책을 펼쳤다. 나폴레옹 시대에 마련된 법·제도와 안정된 정치질서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진다. 직물·금속 공업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달하고 수출이 늘어났다. 장발장은 1820년대 프랑스 북부 소도시 몽레이유에서 새로운 구슬 공정을 개발, 기업가로 크게 성공했는데 이 지역은 영국의 영향을 받아 다른 프랑스 지역보다 산업화가 먼저 진행된 곳이었다. 공장을 소유한 부르주아들은 산업화로 인한 성장에 힘입어 예전의 귀족과 같은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성장의 열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도시 인구는 갑자기 늘어났지만 주택, 수도 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불량한 위생으로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했고 이 때마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1831년 콜레라의 대유행이 대표적 사례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물가도 함께 오르는데 임금은 턱없이 낮았다. 빈민가의 남성들은 시름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여성들은 살기 위해 매춘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아이들은 부모에게 버려져 부랑아가 되었다. 이 시대는 부르주아의 시대, 거지와 부랑아와 알코올 중독자 그리고 매춘의 시대로 특징 지어졌다. 팡틴, 가브로슈, 테나르디에, 코제트 등은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속 등장인물들이다.3) 사건의 분석과 평가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구체제(ancient regime)의 모순이다. 혁명 당시 프랑스인의 85%가 농촌에 거주했고 70%가 농민이었으며 국가의 경제는 자급자족적인 농촌 경제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토지의 20∼25%를 인구의 1%가 약간 넘는 제1신분, 즉 귀족이 6∼10%를 0.5%에 불과한 제2신분, 즉 성직자들이 차지하여 이들 특권계급이 전 토지의 30%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더욱이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농업에서 산업으로의 생산방식의 변화는 이러한 구체제를 위기에 빠뜨렸다. 세금과 지대 수입에 의존했던 전통적 귀족들이 몰락하거나 막대한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부채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현상은 농민과 신흥 부르주아로 하여금 구체제의 정당성에 대해 의심을 가지게 하였다.두 번째는 제3신분, 즉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이다. 부르주아는 산업혁명 이후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 계급으로서 기업가뿐 아니라 중하급 관료, 은행가, 징세업자, 금융업자, 도매상인, 법률가 같은 자유 전문 직업인까지 아우르는 매우 다양한 사회적 범주였다. 이들 부르주아는 귀족과 달리 사회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받지 못한 데 대한 불만으로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키워 왔으며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다른 형태의 국가 체제, 보다 장기적으로는 다른 형태의 생산관계를 지향하였다.세 번째는 계몽사상의 등장이다. 계몽사상의 대표적 사상가인 루소는 1762년에 발간된 『사회계약론』에서 왕권신수설을 부인하며 모든 법질서의 기본은 사회계약이라 주장하여 부르주아들의 저항의식에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였다.
주입식 교육관과 성장식 교육관1. 서론교육관, 즉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를 기준으로 하는 것과 어떤 방식으로 교육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교육관을 교육의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실용주의 교육관, 학문중심 교육관, 교육중심 교육관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교육 방법에 따라 분류하면 주입식 교육관과 성장식 교육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두 가지 기준은 서로 독립적이라기보다는 상호 영향을 미친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교육의 방법이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주입식 교육관과 성장식 교육관이 각각 근거하고 있는 교육의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안하는 교육방법론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설명하고 그것이 교육 현실 또는 교육 정책에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논의하고자 한다.2. 주입식 교육관주입식 교육관은 학습자의 적성, 흥미, 의욕, 능력, 이해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교육자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의 교육을 말한다. 주입식 교육관을 대표하는 교육철학은 항존주의이지만 현대에 와서도 교육의 과학화와 효율화를 기치로 등장한 행동주의가 주입식 교육관의 맥을 잇고 있다. 항존주의는 고전 철학의 관념론에 바탕으로 두고 있으며 가치의 불변성과 진리의 절대성을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을 절대불변의 진리에 적응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보고 진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계발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주입식 교육은 항존주의 철학을 종교적으로 계승한 중세 카톨릭 교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교리를 주입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널리 시행되었으며 학습자의 개성과 개인차가 무시된 채 철저히 교육자가 중심이 되는 획일적, 형식적 교육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지식을 습득하는 성과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학습자의 능력, 적성, 관심사 등에 따른 다양한 상황에 맞는 교육적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주입식 교육은 이외에도 많은 결함을 안고 있다. 우선, 주입되는 대부분의 지식이 교육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정된 독선적인 것이고 교육과정도 학습자의 심리적?인지적 성장 과정과 무관하게 편성되어 학습자 개개인의 현실 생활과 동떨어진 내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교사의 일방적인 교육 주도가 학습자의 주체적 활동을 억압하여 생동감?흥미?능력?필요를 도외시한 성인 위주의 교육이 되기 쉽다. 셋째, 기성세대가 진리라고 판단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 때문에 학습 내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새로운 사고를 하지 못함으로써 창의력 발달이 저해된다.3. 성장식 교육관(자연주의, 진보주의, 실존주의 교육철학을 중심으로)유럽에서 계몽주의가 태동하고 종교의 절대성이 도전을 받기 시작하면서 주입식 교육관도 거센 도전을 받게 되었다. 주입식 교육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등장한 성장식 교육관은 사람을 도토리에 비유하며 도토리 한 알은 그 안에 참나무 한 그루를 담고 있듯이 모든 사람은 내부에 완전한 하나의 인간이 잠재해 있으며 교육은 그 잠재된 완전한 인간이 자연스럽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현되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교육은 교육자에 의해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전적으로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육자는 다만 학습자의 보조자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보았다.성장식 교육관에 기초한 교육철학은 세 개의 주요한 흐름을 형성한다. 18세기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구호로 유명한 프랑스「장 자크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철학, 20세기 “교육은 경험의 개조를 통한 성장 과정”이라고 주장한 미국「존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철학,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교육의 목적은 자기결정적인 자아의 형성에 있다”고 주장한 독일「마틴 부버」의 실존주의 교육철학 등이 그것이다.자연주의 교육철학은 자연 이외에 일체의 초자연적, 초현실적 존재를 부정하며 자연 그 자체가 인간 존재와 인간성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설명해 주는 전체적 체제이고 자연 속에 내재한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행복한 삶이라고 믿는 자연주의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주의 교육철학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루소」의 교육 원리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표어로 압축된다. 루소는 선하고 자유로운 인간의 본성이 온갖 사회 제도와 체제에 의해 왜곡되어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로 변하였으므로 이를 사회적 틀이 아닌 인간 본성의 법칙에 따르는 자연적 상태를 회복해야 하며 이러한 회복을 도와주는 과정이 곧 교육이라고 주장하였다.「루소」이외에도 많은 자연주의 교육철학자들이 있으나 교육의 목적과 방법이 자연과 인간본성에 의존해야 한다는 인식, 자연은 감각기관을 통해 이해될 수 있으며 감각기관을 통해 이해된 것만이 지식의 근본이 된다는 인식, 자연의 과정은 진화적으로 발전하므로 교육 또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 등을 보편적으로 공유한다.진보주의 교육철학은 20세기 미국에서 유행한 실용주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전인적 인간 육성을 기치로 시작되었다.「듀이」로 대표되는 진보주의 교육철학자들은 교육을 “경험의 개조를 통한 성장의 과정”으로 보고 교육의 목적을 “학습자의 개성을 계발하여 사회생활에 유용하게 적응하는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발달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교육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린 학습자들을 의지적이고 목적적이고 호기심 있고 능동적인 존재로 보고 학습자 자신의 생활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내용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학습자에 대한 교사의 역할은 학습을 도와주는 안내자이며 학습을 함께 계획하고 시행하는 협력자로 보았다. 교사의 직접적인 통제는 학습자를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통제하거나 지시하기보다는 학습자의 실수를 허용하며 스스로 실수와 성공의 결과를 체험해 보도록 하는 학습 방법을 권장하였다. 진보주의 교육철학의 교육관은 학습자의 인격을 존중하는 가운데 자유롭고 개방적인 교육자와 학습자 간의 인간관계를 통해 산업사회에 매몰되기 쉬운 인간의 가치와 개성을 찾도록 해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실존주의 교육철학은 현대철학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은 고독, 불안, 무기력, 절망, 고통, 죄의식, 죽음 등과 같은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관심을 갖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다. 동시에 해결책을 모색함에 있어서 신 같은 인간 외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게서 찾으려 했기 때문에 인간 개인의 무제한적 자유와 책임을 중요시했다. 이러한 철학적 기저에서 출발한 탓에 교육을 통해 어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이상적 인간을 만든다는 사고 자체를 비판한다. 교육은 어떤 인간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본질적인 삶을 살고 자기 존재의 의의와 가치를 찾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실존주의 교육철학자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목적은 자유롭고 창조적인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제를 지니고 이 세상을 고통스럽게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존재,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형성 과정에 있는 존재, 불완전한 존재로서 완전과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존재,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창조해 나가는 존재, 주체적 선택과 행동의 결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는 존재이다. 바로 이러한 “인간”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교육이다.
고전의 가치와 잡지 문장 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 월북 작가 정지용 시인의 활동상을 중심으로 -Ⅰ. 들어가며우리 민족의 생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던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30년대 말, 민족의 나아갈 길을 찾아 시대의 굴곡을 극복하고자 했던 일군의 예술인들은 문예지 을 창간한다. 이들, 이른바 문장파 예술인들은 순수주의를 추구하면서도 그 안에 민족의 정신과 혼을 담아내려고 노력하였으며 2년여 동안 통권 26호를 발간하고 스스로 폐간할 때까지 고전을 발굴하여 소개하고 민족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지속했다.本稿에서는 문장파 예술인들이 지향했던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런 지향성을 위해 그들이 수행했던 활동의 내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도대체 고전에 무슨 가치가 있기에 그들이 고전을 발굴하는 일에 천착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논의는 우선 고전의 가치가 무엇인지 개관하고 이어 정지용을 비롯한 문장파 예술인들이 지향했던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Ⅱ. 고전의 가치고전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과 깨달음을 주는 데 가장 큰 가치가 있다. 고전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경험과 사유, 그리고 상상의 정수가 담겨 있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우리도 고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현재를 판단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고전은 인류의 지적 활동의 축적물로서 인간과 세계의 발전에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서문에서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고전 속의 지식이 단지 과거의 지식으로 머물지 않고 현재와 나아가 미래에도 살아있는 지식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둘째로, 고전의 가치는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는 데 있다. 처음 읽을 때도 이전에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고전이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이미 수많은 후대의 글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용, 인유, 모방되어 왔기 때문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고전에 인간의 지혜와 사유가 고밀도로 농축되어 있어 한두 차례의 읽기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비평담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셋째로, 고전의 가치는 고전 속의 인물, 사건, 문장기술 방식 등이 수많은 새로운 글들의 전형으로 기능하는 데 있다. 호메로스가 지은 는 모험과 고난을 겪으며 한 인간으로서 성숙하는 인간 삶의 전형을 구축했고 소포클레스의 는 낡은 관습법에 저항하는 용기 있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셰익스피어의 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탐하다 파멸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수 년 전 개봉한 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 , 같은 수많은 고전적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을 전형으로 하였다.Ⅲ. 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1. 시대 상황1930년대는 일본이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군국주의의 파도가 한반도를 넘어 중국과 全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던 시기이다. 일본은 1931년 대륙 침략을 시발로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을 연이어 일으키며 전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러한 전쟁의 와중에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던 한반도는 일본의 병참기지로 전락하며 전쟁물자들을 수탈당해야 했다. 일제의 수탈은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에서 점차 인력으로 진행되어 1939년 국민징용제가 시행되기에 이른다.일제는 수탈과 함께 민족말살 정책을 실시하였다. 1940년 동아일보, 조선일보 같은 우리말 신문을 비롯하여 우리말로 발행되던 문예지들을 모두 폐간시켜 민족적 고유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무력화시키고 나아가 일본어 상용 정책을 통해 일상적인 생활에서조차 우리말의 사용을 금지하였고 일본기 게양, 신사참배, 궁성요배, 황국신민서사, 창씨개명 등 민족의 씨를 말리는 일련의 정책들을 쏟아냈다.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 문학계도 위기를 맞았다. 사회주의 이념을 토대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앞장섰던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고 1935년에는 해체하기에 이른다. 카프의 활동이 활발하고 영향력이 컸던 만큼 카프의 해체는 우리 문학계를 크게 위축시켰다. 민족주의와 독립정신을 고양하던 문학운동이 위축되면서 순수문학과 모더니즘이 대두하게 되었다. 1930년대 초 시문학파를 중심으로 한 순수시 운동과 산문 부문에서 활약한 9인회의 등장, 1930년대 후반을 특징짓는 모더니즘 경향, 생명파 등은 모두 일제 강점기 말기 민족말살 정책의 회오리 속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불허되던 우리 문학계 상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문학적 경향이다.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움직임이 고전부흥론이다. 고전부흥론은 1935년 조선일보가 특집기사로 “조선고전문학의 검토”와 “조선문학상의 복고사상 검토”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확산되었다. 고전부흥론 확산에 기여한 김태준은 1920년대 최남선 등에 의해 시도되었던 복고주의의 망령을 경계하면서 민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민족해방운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원조는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하고 기술함으로써 역사를 재창조하는 것이듯이 고전부흥도 고전적 작품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요컨대 고전부흥론은 국수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군국주의의 물결에 위기감을 느끼고 우리 민족의 전통과 특수성을 찾아내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목적이 최우선적으로 모색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고전부흥론의 확산 가운데 태어난 것이 문예지 과 문장파 예술인들이다.2. 의 창간과 문장파 예술인의 활동상은 1939년 2월 창간호를 발간한 후 1941년 4월호까지 2년 2개월 동안 통권 26호를 발간하고 폐간되었다. 의 창간 배경과 관련한 구체적 정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발행인 김연만이 창간호의 여묵(餘墨) 란에서 밝힌 소회와 편집책임자 이태준의 설명에서 그 一端을 찾아볼 수 있다. 김연만은 “예술에 대한 존경과 서적에 대한 관심이 오래 되었고 힘만 자라면 좀 진취적인 문화행동을 갖고 싶었다”라고 밝혔고 이태준은 “내세울만한 문예지 하나 없는 참담한 현실이 창간 배경”이라고 설명하였다.은 시, 시조, 소설 등 장르를 망라한 종합문예지를 추구하며 장르별 편집 책임자를 두었고, 문학적 장르 이외에 표지화나 고전의 발굴 소개 같은 작업의 책임자를 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장르별 편집 책임자들은 시 부문 정지용, 시조 부문 이병기, 소설 부문 이태준이었고 이병기는 시조 부문 편집 책임 외에 고전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작업도 담당하였다. 장정과 표지화는 김용준과 길진섭이 담당하였는데 문예지에 표지화가 등장함으로써 이 종합 문예지에서 나아가 종합 예술지가 되는 단초가 되었다. 은 또한 신인작가들을 추천하여 등단시키는 역할도 했다. 덕분에 일제 말기와 해방, 그리고 분단의 시기에 우리 문학사의 흐름을 이어준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같은 청록파 시인들이 등단하였으니 그 활동의 성과가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다.3. 문장파 예술인들의 지향점 -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문장파 예술인들의 공통적 지향점은 일본 군국주의와 그들에 의한 민족말살 정책, 그리고 그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폭력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또 하나의 극복 대상인 마르크스주의에 맞서 우리 민족의 전통을 되살려 선양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통의 복원이 과거로의 뒷걸음, 곧 현실도피와 문화퇴행이 아니라 새로운 이념과 시각으로 전통의 본질과 의미를 찾고 평가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가는 동력을 얻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미래는 곧 민족의 해방이었다. 정리하자면 잊어버린 민족전통을 발굴하여 새로운 이념과 시각으로 재평가하고 민족해방을 향한 민족적 추진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 즉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문장파의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는 당시 문단의 주류였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을 극복한 결과이기도 했다. 문장파는“현실도피적”이라거나 “시대역행적”이라는 비판, 나아가“반민족적 행위”라는 카프 진영의 비판을 감수하며 유교적 선비정신을 계승하려는 전통적 태도를 견지했다. 카프 진영의 “반민족적 행위”라는 비판은 이병기가 일제에 맞서 우리 글과 말을 고집하고 고전 문화유산을 수집하여 게재한 활동에 천착햇다는 점, 일제의 검열에 걸려 삭제된 원고 분량이 많았다는 점, 그리고 일제의 “일선어(日鮮語)를 반분(半分)하고 황도정신을 함양하라”는 지시에 항거하여 자진 폐간한 점 등에서 그 부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장파의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구체적 활동 내용은 다음과 같다.첫째, 의 장정에 선비문화의 전통이나 고풍스러운 문인화 정신이 나타나도록 배려했는데 이 활동은 주로 표지화를 담당한 김용준과 길진섭에 의해 이루어졌다. 의 편집진은 이원조가 “뛰어난 교양인의 풍모를 지녔다”고 극찬한 추사 김정희의 필체를 제자에 활용함으로써 미학적 특색과 고풍을 되살렸고 김용준은 산수, 꽃, 과일 등을 소재로 한 문인화 양식의 고상하고 품격 있는 표지화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