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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강의를 읽고
    REPORT과학과 기술로 본세계사 강의과목명.담 당.교수님학 과.학 번.성 명.처음에 교수님께서 이 책을 보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책 표지와 제목만 보고 별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직접 책을 구입하고 나서는 깨알 같은 글씨와 생각 외로 두꺼운 책의 두께에 부담이 갔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니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한 좋아하지도 않는 나에게 있어서도 과학과 기술을 같이 역사와 함께 흥미 있고 쉽게 풀어나가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1장과 2장은 각각 선사시대의 이야기와 도시혁명을 이룬 세계각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몇 장 지나지 않아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현제 살고 있는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인간이 가장 진화했고, 진화한 인류인 만큼 보통 동물의 지능을 얘기 할 때 뇌 용량에 관해서 같이 말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뇌의 용량도 가장 큰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보니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 의 평균 뇌 용량이 현제의 인류보다 약 100cc가량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보다가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종이 현존 인류보다 더욱 진화했고 지능이 높았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이들은 현존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보다 성장이 빨랐고 덩치도 크며 힘도 세었다고 한다. 성장이 빠르고 힘이 세었다는 내용을 보면 아무래도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는 현존인류보다 야생의 환경에 맞게 현존인류와는 다르게 진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뇌 용량은 덩치와도 어느 정도씩 비례하고 지능은 뇌 용량 보다는 뇌의 주름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찾아볼 수 있었다. 자료를 찾다보니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종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거의 전멸하고 극소수만이 살아남아서 깊은 산속으로 은신했는데 이들이 '예티'라는 가설도 볼 수 있었류는 떠돌이생활을 하지 않고 정착생활을 하면서도 식량공급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생산하는 식량의 양은 예전에 인류가 수렵, 천렵, 채집을 하던 식량의 양보다 훨씬 많아서 잉여식량이 생기고, 잉여식량으로 인해 도시가 생기고 계급제도가 생기게 된다.그렇게 도시혁명은 시작되었으며 이 도시혁명은 구세계와 신세계의 여러 중심지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되었다. 기원전 3500년 이후 메소포타미아, 기원전 3400년 이후 이집트, 기원전 2500년 이후 인더스강 유역, 기원전 1800년 이후 중국의 황허 강 유역, 기원전 500년 이후 중앙아메리카, 기원전 300년 이후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동일한 패턴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들 문명의 기원과 발전은 각각 독립적으로 일어났다. 하나의 중심문화가 확산된 것이 아닌 모두가 '원초문명'이라는 것이다. 이 문명발생지들의 공통점은 모두 강변에 위치하여있고 관계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이들 중에 4대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 문명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메소포타미아 문명이집트와 거의 같은 무렵에 메소포타미아 평원에서도 문명이 일어났다. 메소포타미아란 본래 ‘ 두 강 사이에 있는 땅’ 이란 뜻으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가리킨다. 이 두 강도 나일 강처럼 잦은 홍수로 땅이 기름져서 농사짓기에 알맞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초를 닦은 것은 수메르 인이었다. 수메르 인은 일찍부터 두 강의 하류 지방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었으며, 기원전 3000년경에는 우르·우르크 등의 많은 도시 국가를 건설하였다. 그들은 도시 한 가운데에다 그들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는 한편, 활발한 상업 활동을 벌이면서 문자도 만들어 썼다. 수메르인이 창안한 문자도 그림 문자에서 상형 문자로의 단계를 거쳤는데, 쐐기 모양의 글자란 뜻에서 설형 문자라 한다. 그들은 종이 대신 점토판에다 뾰족한 갈대나 쇠붙이로 글자를 찍어 썼기 떄문에 글자 모양이 쐐기처럼 되었다. 이 설형 문자는 수메르 인으로부터 페르시아 인까지 약 3000년들 도시 유적은 현대인이 보아도 놀랄만큼 훌륭한 도시 시설을 갖추었다. 벽돌로 쌓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안에는 말끔히 포장된 도로가 사방으로 곧게 뻗어 있다. 도로 양쪽에는 벽돌로 지은 주택과 공동 목욕탕·곡물 창고·제분장·시장 등의 큰 건물이 즐비하고, 하수도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궁궐이나 신전의 유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 도시의 주민들은 관개 농업으로 보리·목화를 재배하고, 소·양·코끼리 등을 사육하였다. 또 정교한 청동기와 채색 토기·저울 등을 만들어 썼다. 그런데 이 곳의 출토품 중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유물과 닮은 것이 있어, 일찍부터 두 지역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이들은 매끈한 돌에다 신성한 동물 등의 그림과 함께 독특한 상형 문자를 새긴 도장도 만들어 썼는데, 그들의 문자는 아직까지 해독되지 않고 있다. 이 인더스 문명은 약 1,000년 동안 계속 되다가 기원전 2,000년에서 기원전 1,500년 사이에 갑자기 몰락하고 말았다. 그 원인이나 그들의 민족 계통 등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지금의 남인도에 많이 살고 있는 드라비다 족의 조상들로서, 아리아 인의 침입을 받아 멸망한 것이 아닌가 추측될 뿐이다.중국의 황하 문명중국에는 황하와 양쯔 강, 두 개의 큰 강이 있는데, 문명이 처음 싹튼 곳은 북쪽의 황하 유역이었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황하 유역의 기름진 황토 지대에는 한족의 조상들이 나타나 조·수수 따위를 재배하면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또한 그들은 개·돼지 같은 가축을 길렀으며, 나무와 돌로 만든 연모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거칠고 투박한 회도(회색토기)와 함께 아름다운 채도(채색 토기)도 만들어 썼다. 회도는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토기로, 그 중에는 다리가 3개 달린 ‘ 삼족 토기‘ 도 있다. 기원전 2000년경에 이르자, 황하 하류 지방을 중심으로 큰 마을이 여러 곳에 생겨났다. 이들 마을은 차츰 읍이라 불리는 도시 국가로 발전해 갔다. ‘읍’ 은 토성들은 국가를 위해 일해야 했다. 많은 군사비와 전문 기술자들의 국가차원에서의 통제가 중국의 기술력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것 같다. 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은 황하강의 대운하나 만리장성, 유럽인들의 배보다 5배는 크고 잘 만들어 졌던 정화의 배 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 한 점이 있다. '중국에는 과학들이 있었지만, 과학은 없었다.' 라고 한다. 이 말인즉 중국인들은 다양한 과학적 활동 - 천문학, 점성술, 수학, 기상학, 지도 제작술, 지진학, 연금술, 의학 등- 을 추구했지만, 그 개별적인 활동을 통일된 자연에 관한 비판적인 연구로 묶어내지 못했다. 지금으로 보자면 순수한 현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는 과학보다는 실생활에 유용한 공학에 관심이 많고 발전 시켰던 것 같다.이 4대 문명과는 약간 시간의 차이를 두고 신세계에서도 문명이 발생하였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아스테크 문명과, 남아메리카의 잉카문명이 그것이다.마야문명마야 문명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수학과 천문학이었다. 그들은 0 개념을 알았으며,20진법을 썼고,막대기와 점 모양으로 숫자를 나타냈다. 이렇듯 뛰어난 수학 실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학을 발전시켰다.마야인의 태양력에서 1년은 365.2420일,오늘날의 365.2422일과 비교해 오차가 거의 없다. 달의 운행은 29.5320일,금성의 주기는 580일로 계산했는데,지금과 비교해 오차가 겨우 0.00039일(달)과 0.08일(금성)이다. 마야의 복잡한 역법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마야의 달력은 서로 다른 날짜를 나타내는 그림 문자 20개로 되어 있다. 이것들은 다시 1에서 13까지의 숫자 기호와 조합되어 모두 260일을 만들어 낸다. 이것을 트졸킨이라 하는데, 진짜 역년과 구별되는 신성한 역년이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진짜 역년은 1년이 18개월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들은 한 달이 20일씩으로 되어 있어 모두 360일이다. 여기에 닷새밖에 없는 19번째 달이 덧붙어서 1년은 365일이 된다. 이 알았다. 그들은 일식과 월식 따위를 예언해 평민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오로지 천체를 관측하고 역법을 계산하면서 시간의 비밀을 풀고 그 해의 길흉을 점치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렸다.신관들은 또 노예나 평민을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산 사람의 가슴을 돌칼로 가르고 뜨거운 심장을 꺼내어 신에게 바치는 잔인한 의식이었다. 신관들은 사람 제물을 많이 구하려고 포로를 잡기 위한 전쟁을 자주 부추겼다. 마야의 전쟁기록에는 어떤 사람을 얼마나 잡았다는 기록만 있을 뿐 어떤 도시나 땅을 빼앗았다는 기록은 아무 데도 없다.마야인들은 자기네가 살던 도시를 하루아침에 버리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데 대해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세운다. 강제 노동에 견디다 못한 평민의 반란, 다른 민족의 침입, 천재지변 등등. 그러나 그것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들의 도시에는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난 흔적이 없으며, 마야를 정복할 만한 민족도 주변에 없었다.가장 설득력 있는 말은,미국인 실바너스 모를리가 주장한 대로 화전 탓이 아닐까. 마야인들은 끝을 뾰족하게 한 막대기로 땅을 내리찍어 구멍을 낸 다음 거기에 옥수수씨를 몇 알씩 뿌려 농사를 짓는다. 오늘날의 마야인들도 여전히 그렇게 한다. 땅을 불태워 농사를 지으면,그 땅의 지력이 되살아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도시 주변의 밀림을 모두 일궈 먹은 마야인들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들은 화전을 일구려고 밀림에 터를 잡았고,그 때문에 밀림 속을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다(그러나 이 주장도 1972년 계단식 논의 자취가 발견되고,낮은 늪지대에서 흙을 돋워 농토를 만든 증거가 몇 군데에서 드러남으로써 절대적인 설득력을 잃었다).아스테크 문명멕시코에는 예로부터 몇 개의 고도로 발달한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그 중 가장 영향이 강했던 테오티우아칸 문화는 7세기경 멸망하고, 그 뒤를 이은 톨텍문화가 12세기에 수도 투라에서 멕시코 중앙고원의 텍스코코 호반으로 옮겼을 때,하였다.
    사회과학| 2009.11.09| 9페이지| 1,000원| 조회(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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