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은 인간이 자신의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하는 도덕적 의식으로, 양심을 지니기 때문에 우리는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 이러한 양심을 통해 인간은 그의 자아, 즉 내면에서 선한 삶 혹은 도의(道義)의 가치를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양심은 찰나의 쾌락이나 원시적인 욕구를 억제하고 초자아의 실현을 가능케 해주는, 즉 우리 내면의 의미 있는 속삭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양심의 특성은 작품 속 윌리엄 윌슨에게도 잘 드러난다. 처음 작품을 읽을 때는 두 명의 윌리엄 윌슨이 단순히 주인공의 다중 인격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윌리엄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마주 대하는 시점은 그가 자신 스스로도 도의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고 느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회의감을 보이는 부분이다. 게다가 그러한 시점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윌리엄 윌슨은 옳지 못한 길을 가려는 주인공에게 충고를 건넸으며, 주인공의 행동이 도의에서 더욱 멀어질 때에는, 스스로 그 행동을 바로잡기까지 한다.또한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또 다른 윌리엄 윌슨은 자신은 항상 주인공의 내면에 존재했으며 자신의 죽음이 곧 주인공의 죽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또 다른 윌리엄 윌슨은 곧 주인공 윌슨의 양심의 발현, 즉 초자아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의에서 어긋나려는 자아를 끊임없이 옳은 길로 인도하고, 충고하려는 존재. 양심에서 비롯된 윌리엄 윌슨의 초자아는 그에게 계속해서 선을 선택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던 것이다.이렇듯 양심에 의한 초자아는 우리 삶의 선과 악, 옳고 그름, 쾌락과 도의 등 중요한 기로에서 옳은 길을 향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또한 이러한 초자아는 개인적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한 선택이 미치는 파장에 따라 양심의 옳고 그름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한다.최근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 사건이 하나의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오던 김 변호사는 ‘양심고백’이라는 이름 하에 삼성이 그 동안 저질렀던 각종 비리 혐의들을 대대적으로 폭로했다. 혹자는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몸담고 있던 기업의 비리를 ‘이제 와서’ 드러낸 것을 탐탁지 않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근무기간에도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는 ‘이제 와서’ 양심고백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삼성에서 근무하던 동안 느낀 양심의 가책, 즉 초자아의 목소리를 ‘양심 고백’을 통해 드러냈고, 그의 고백을 통해 우리 사회는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삶은 나날이 편리해지고, 개개인은 삶의 다양성을 추구하게 됨으로 사회는 다원화되어 가고 있다. 그에 따라 사회에 존재하는 가치 역시, 과거와 비교해 훨씬 다양해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은 상반되어 존재하는 여러 가치들 때문에 황금만능주의와 같은 가치전도 현상, 가치관의 혼란 등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부딪히는 이러한 가치 갈등 가운데서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에드가 앨런 포우의 작품 은 이발사의 아들이었던 싱검 밥이 자신이 어떻게 명망 있는 편집자이자 시인이 됐는지 회고하고 있는 내용의 소설이다. 싱검 밥에게 인생 최우선의 가치는 돈과 명성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시인이 되게끔 영감을 준 편집자를 철저히 비난하기도 하고, 작가의 자존심 따위는 버린 채 다른 책을 베끼기도 하며, 마침내 자신의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없애 버리기까지 한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결국 업계에서 가장 큰 인물이 되었으며 자신의 지난날들을 자랑스럽게 되돌아본다.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만족할 만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내면에 가치 있는 삶이란 풍요 이전에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이라는 전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싱검 밥은 돈과 명예라는 눈에 보이는 가치를 손에 넣었으나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사회가 빠르게 변모하면서 물질적 가치, 일시적 가치들은 우리 삶에서 분명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수단적, 도구적 가치 이전에 우리 내면에 가치 그 자체로 존재하는 본래적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본래적 가치란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목표치로, 그것은 자신의 비전이 될 수도 자아실현이 될 수도 있다. 부와 명예와 같은 도구적 가치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한시적 성격을 띠지만 궁극적, 본래적 가치는 항상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끔 하며 내 삶에 행동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때문에 자신의 본래적 가치를 설정하는 일은 삶에 있어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후대에 의해 훌륭한 삶, 뜻 깊은 삶을 살다 갔다고 여겨지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본래적 가치의 신념을 놓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신의 가치를 실현했으며 그에 따라 보람된 삶을 살다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순간 가치에 삶의 지향점을 두는 단순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며, 궁극적인 가치를 실현 가능케 하는 가치 선택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에 따른 신념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 걱정이 없고, 살기 좋은 세상을 ‘태평천하’라고 말한다. 그만큼 어떤 시대를 태평천하라고 일컫는 것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강한 만족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채만식의 작품 ‘태평천하’에 나타나는 시대 역시, 그 사회 사람들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진정한 태평천하였을지 살펴보도록 하겠다.작품의 주인공인 윤직원은 영감은 한 마디로 놀부 같은 지독한 구두쇠이다. 그는 버스를 공짜로 타기 위해 잔돈이 없는 척을 하고, 인력거꾼에게 삯을 주지 않으려고 한참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또 돈을 덜 주기 위해, 데리고 부리기가 갑갑할지라도 멍청한 상노아이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짠돌이인 윤직원 영감은 사실 엄청난 부자이다. 그가 재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구두쇠가 된 이유는 그 재물을 모으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윤직원 영감과 그의 부친 윤용규는 고을 수령에게 뇌물을 바치고 화적떼에게 가끔 재물을 빼앗기면서도 재산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집으로 쳐들어 온 화적떼에게 윤용규가 목숨을 잃게 되고 그 이후 윤직원 영감은 아버지의 피가 묻은 재물이기에 더 악착같이 돈을 모으게 된 것이다.이제 윤직원 영감은 뇌물을 강요하는 탐관오리도 없고, 화적떼도 없는, 돈 많은 자신이 떵떵거릴 수 있는 지금 시대를 태평한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평안해 진 시절에 자신의 가문이 더욱 빛나기 위해선 문벌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돈을 주고 족보를 만들고, 향교에서 직원이란 벼슬을 사고, 자식들을 양반의 가문과 혼인시켰으며 마지막으로 손자들을 군수와 경찰 서장으로 만들려고 계획한다.과연 윤직원 영감이 살고 있던 사회는 진정 그 시대 사람들에게 태평천하였을까? 우선 윤직원 영감 스스로도 태평하지 않다고 여겼던 화적들이 들끓고 탐관오리가 뇌물을 강요했던 시기는 누가 봐도 태평천하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윤 영감이 태평하다고 여기는 시대는 어떠한가? 돈만 있다면 누구나 벼슬을 살 수 있고, 아무렇게나 족보를 위조할 수 있는 사회. 모두가 평등하다곤 하지만 실제로는 구시대의 신분인 ‘양반’임이 중요시되는 사회. 식민지 시대였으나 일제에 순종하는 군수와 경찰 서장이 대접받는 사회. 이런 사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태평천하로 받아들여 질 수 없을 것이다. 이 사회를 태평천하라고 여기는 것은 윤직원 영감처럼 그 사회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뿐이었을 것이다. 결국 작품의 제목인 태평천하와는 달리 작품의 내용은 그 시대에 소수인, 힘을 가진 이들에게만 태평천하였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힘들고 괴로운 식민지 시대였던 것이다.
이상의 에 나타난 사건들모든 서사는 하나 이상의 사건으로 구성되어지며, 그 사건들이 모여 플롯을 이루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상의 소설 에서는 그러한 사건들과 플롯을 명확히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다른 소설들과 달리 이야기가 큰 하나의 줄기를 이루며,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작중 화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작품에서 ‘사건이 무엇이다’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작중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 는 생활 능력이 결여된 무능력한 남자로 매춘부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서사를 바탕이 되는 기본 사건은 바로 이것이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나’와 매춘부 아내와의 생활. ‘나’는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내와의 이 기막힌 동거를 하고 있다. ‘나’의 생활은 반복되는 행동으로 일관된다. 아내의 공간과 ‘나’의 공간 두 개로 나뉜 방에서 ‘나’의 공간에서 지내다가 아내가 외출을 하면 아내의 공간으로 가서 화장품 냄새도 맡아보고, 휴지도 그슬려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아내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화자의 어투와 사고로 보아, 멀쩡한 사내요, 지식인임이 분명한데, ‘나’는 이상하게도 아내에 의해 철저히 감금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나’의 감금을 의 주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감금 속에서 벌어지는 ‘나’의 구체적 생활, 즉 의식의 흐름을 통해 보여 지는 ‘나’의 일상과 사고들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사건이라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나’의 감금의 생활은 또한 탈주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을 작품 안의 또 다른 큰 사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내가 준 감기약이 사실 수면제였다는 것을 알고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또한 아내의 방을 지나다 못 볼 장면을 보게 되고 물어뜯기고 만다. 감금된 생활에서 특별한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던 ‘나’이지만 이러한 일들을 겪고 보니 그 내면의 탈주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그것은 겨드랑이의 가려움, 즉 날개의 돋아남으로 표현된다.
내용증명수신인(임대인)성명 : 홍길동주소 : 서울시 ㅇㅇ구 ㅇㅇ동 1801 304호임차인성명 : 한국토지주택 공사 인천지역본부주소 :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로46번길 23 한국토지주택 공사 인천지역본부발신인(거주자)성명 : 성춘향주소 : 인천광역시 ㅇㅇ구 ㅇㅇ동 13-1 201호----------------------------------------------------------------------------제목 : 임대차 계약 종료 및 전세금 반환 요청부동산의 표시 : 인천광역시 ㅇㅇ구 ㅇㅇ동 13-1 201호1. 귀하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합니다. 귀하와 임차인은 상기 부동산에 대하여 임대차보증금 10500만원, 계약기간은 2017.12.10.부터 2019. 12. 10.까지 24개월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2 계약기간 만료일(2019.12.10)이 다가옴에 따라 전세금 반환에 차질이 없도록 전화를드렸음에도 반환 기일을 약속 받지 못하여 불안한 마음에 서면으로 요청 드리는 바입니다.3 이에 발신인은 본 내용증명을 통하여 임대차계약의 해지통지를 하는 바이며, 2020년 3월30일까지 이사를 나갈 예정이니, 해당 일까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5. 위 3항 내용이 이행되지 아니할 경우 법률적인 절차로써 해결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이 때에 발생되는 제반 비용은 귀하에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계약해지에 대한 의사표시를 명확히 하는 것이 추후 분쟁에 소지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내용증명을 발신하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2019. 12.9발신인 성춘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