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발전 가능한 한류를 위해일본지역학과200625020 허세영목차1. 개요 : 한류의 현주소2. 본론1) 한류의 문제점2) 일본인이 생각하는 한류3. 결론 : 지속발전 가능한 한류의 방안4. 출처 및 참고자료5. 설문조사 전문1. 개요 - 한류의 현주소국내 문화 콘텐츠의 높은 경쟁력에 따라 한류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지속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역적으로도 북미, 러시아, 유럽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으며 콘텐츠에서는 영화, 드라마, 음악, 게임에서 화장품, 한글 등 다양화되고 있다. 이러한 한류의 확산에 의해 기업의 활용도 활발해지고 있다. 문화콘텐츠 수출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매년 44%씩 증가하였고, 한류와 연관된 음식, 화장품, 의류, 패션, 미용 등 문화 파생상품의 수출도 크게 늘어났다. 또한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한류스타를 활용한 한류마케팅도 활발하다. 이렇듯 한류열풍은 국내 경제적 효과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하지만 문화콘텐츠 수출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총 생산 GDP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오히려 2005년 이후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 영화, 음악 등 문화콘텐츠 수출액은 2005년 12억4000만 달러, 2006년 13억7000만 달러, 2007년 15억6000만 달러, 2008년 18억4000만 달러로 전체 규모가 상승했다. 하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05년 31.9%에서 2008년 17.9%로 주춤하는 추세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한류열풍이 국내 산업과의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으며 실제 국내 사정은 한류열풍을 뒷받침 할 법제도 및 인프라가 미비한 실정이다. 또한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중국 응원단 팀이 한국의 상대팀을 응원했던 데서 보았듯이 '反한류' 분위기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현재 중국 tv에서 최신 한국드라마가 보기 힘들어 졌는데 이것은 중국 정부의 정책과 무관치 않다. '한국에서는 중국 드라마나 영화 방영을 제한한다는데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③ 한류인프라 부족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이 한국드라마 소비자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72.6%)에 따르면 스토리가 드라마 만족의 가장 큰 이유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창작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국내 실정은 아직 한류에 대한 관심부족과 전문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한 재산권 보호에 대한 인식이 낮고 법제도상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장치가 미비한 상황이다.2. 일본인이 생각하는 한류한류의 최대 수혜국은 어느 나라일까? 정답은 일본이다. 일본은 한류를 통해 음반과 캐릭터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드라마 주인공을 광고에 출연시켜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 DVD 전집은 당시 7만1400엔(약 75만원)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불티 나게 팔렸었다. 또한 일본은 탄탄한 팬시, 캐릭터 산업을 바탕으로 열쇠고리와 휴대폰 줄, 달력, 서적 등 다양한 한류 상품을 개발해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는데 이는 국내보다 더 큰 한류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한류의 최대 수혜국인 일본 국민들은 한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인을 통해 한류에 대한 느낌과 바라는 점들을 물어보았다. 한류 문화를 접해본 여성 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대해 여러 의견 중 선별해보았다.질문1. 한류라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韓流という現象に?して感じる事?韓?ドラマと初めて出?った時には、こんなに近い?に、素晴らしい作品がたくさんあると思いました。特に俳優については、日本の「アイドル=俳優」に嫌?がさして、ほとんどドラマを見ることがなかったので、その演技力の素晴らしさに見事にハマってしまいました。(40代)한국 드라마와 처음 만났을 때에는 이렇게 가까운 나라에, 좋은 작품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배우에 대해서는 일본의 '아이돌=배우'에 싫증이 나서 대부분의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그 연기력의 훌륭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40대)なぜこれほどまでに韓流にハマる人が多いのかわかりませんが、そのことによって、韓?という?に興味류는 이전에는 흥미가 없었던 한국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더 알고싶습니다. 매력있는 문화입니다. (50대)今まで?米に目が行きがちだったなか、同じアジアにこんなに優れた文化があるというのは正直驚きでした。これが一過性のものでなく、日本人も過熱しすぎることなく、また韓?側も商業意識に走りすぎることなく、永く?くとよいと思います。(30代)지금까지 서양에 눈이가는 경향이였지만 동일한 아시아에 이렇게 훌륭한 문화가 있다는 것에 솔직히 놀랬습니다. 이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일본인도 너무 과열되지 않고 한국 측도 너무 상업적이지 않고 오래도록 계속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30대)日本人にはない魅力があってすばらしいと思います。日韓友好のためには、ぜったい必要です。(20代)일본인에게는 없는 매력이 있어 훌륭합니다. 한일우호를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20대)韓流という言葉には否定的です。?の?に?係なく、良いコンテンツなら自然と?たり、聞いたり好きになります。自分の好みに合えば、?は?係なく受け入れます。(20代)한류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입니다. 국가의 경계에 관계없이 좋은 콘텐츠라면 자연히 보거나 듣고 좋아합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다면 국가에 관계없이 받아들입니다. (20대)일본인 모두 한류라는 문화자체에는 너무 상업적이지 않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류문화를 위해 바라는 점은 어떨까?질문2. 일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으로부터 바라는 점韓流について~日本人が考える、これから韓?からして欲しい事.何かして欲しい事があるとすれば、韓?の映?をもっと??に?たいと思います。興行成績が期待でき、日本でも?れるような映?だけではなく、地味でも良質な映?を、もっと日本でも?られるようにして欲しいです。(50代)뭔가 원한다면 한국의 영화를 더 가볍게 보고싶습니다. 흥행성적에 기대되서 일본에서 팔리는 같은 영화뿐만이 아니라 수수하더라도 양질의 영화를 더 일본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50대)韓?の文化やさまざまな情報をもっともっと日本に?えてほしいです。K-POPやドラマ、韓?のグルメ情報や?光名所などを紹介するテレビ番組や企? 좋아하는 배우를 사용한 작품을 보면 매우 유감입니다. 리얼리티가 있는 작품을 기대합니다. (50대)芸能人に?してですが、もっと大事にしてあげてほしいです。日本人もアイドルの?口など言いますが、韓?のネットって凄く怖いです。自殺する人も多いような?がして大?だなぁと思います(50代)연예인에 대해서지만 더 소중하게 여겼으면 합니다. 일본인도 아이돌을 비난하지만 한국의 인터넷이란 정말 무섭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힘들것 이라 생각합니다. (50대)이외에도 한국요리의 전파, 한국 화장품 및 화장법의 소개, 도시가 아닌 지방에서의 대공연 기획을 희망하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다. 가장 많은 의견으로 한국의 작품들이 상업의 일환이 아닌 양질의 작품을 만들기 희망했으며 일본의 문화 또한 긍정적으로 봐주길 희망하는 의견이 많았다.3. 지속발전 가능한 한류의 방안위에서 언급한 문제점과 일본인들이 원하는 점을 취합하여 지속발전 가능한 한류를 위한 대안은 다음과 같다.1) 산업연계를 통한 경쟁력 강화한국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류현상이 문화산업 외에 상품수출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수 있도록 상품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한류마케팅을 대기업 위주에서 중소기업으로 확대하는 등 대중 비지니스 전략을 한층 강화해야한다고 한다. 지속적인 한류를 위해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므로 문화관광부와 산업자원부의 공조와 더불어 현지의 한국문화권 개설이 필요하다. 아울러 산업구조 또한 이러한 현상에 알맞게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류열풍과 같이 대중문화산업의 성장은 철저한 상업주의와 자본주의 논리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대중의 문화욕구와 이목을 찾아내서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는 상품으로 연결시키는 민간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인 창의성을 길러내서 경쟁력있는 우리 고유의 문화산업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절실하다.2) 반한류 정서에 대응한류를 일방적인 문화침투가 아닌 상호호혜적인 문화교류로 접근하여 한류 현상을 문화적 우월감이나 경제적인 기회보다는 문화교류의 차무역연구소,2005)사이트블로그 http://blog.naver.com/rj2222?Redirect=Log&logNo=50035081224블로그 http://blog.naver.com/vivamd?Redirect=Log&logNo=10091634656영화진흥위원회 http://www.kofic.or.kr한국무역통계 www.kita.net한류우드 http://www.hallyu-wood.co.kr/5. 설문조사 결과 전문質問① 韓流について~日本人が考える、これから韓?からして欲しい事?今のままでも十分に?しめたり、新しい?見があったりします。何かして欲しい事があるとすれば、韓?の映?をもっと??に?たいと思います。興行成績が期待でき、日本でも?れるような映?だけではなく、地味でも良質な映?を、もっと日本でも?られるようにして欲しいです。(50代)?私が初めて韓?の文化に?れたのは、映?「シュリ」です。小さな映?館でしたが?席でした。それまで洋?を好んで?ていたので、いろいろな意味で衝?的な作品でした。その後、韓?映?をたくさん?ましたが、銃??や暴力シ?ン、性描?や自己主張を、とことん表現するので、日本との違いを感じながら?ています。しかし、?容が薄く完成度の低い映?でも、ただ日本で?れるためにと日本人の好きな俳優を使った作品を?ると、とても?念です。リアリティのある作品を期待します。(50代)?日本人が考えるというよりは、私個人の考えになってしまいますが、韓?の文化やさまざまな情報をもっともっと日本に?えてほしいです。K-POPやドラマ、韓?のグルメ情報や?光名所などを紹介するテレビ番組や企?がもっとあれば、まだ韓流を知らない人?も、韓?に?心を持つきっかけにもなると思います。韓?の方と交流できる場がもっとたくさんあるといいです。(50代)??日本人に薄れてきている、家族愛や相手を敬う姿勢をどんどんアピ?ルして欲しいです。ドラマを通して、心を?かくして欲しいです。(40代)?日本や日本人についてもっと理解を深めてほしいと思います。(30代)?これからデビュ?するアイドル?歌手?俳優etc.は、無理に日本語をしゃべらないでほしいです。下手な日本語でしゃべられると、韓?でのキャラが?れるし、かっこよさが半減する。。。(代)
동아시아 시민사회 교류(2010년도 1학기)기말보고서< 오자키 호츠미와 리 따자오의 논문비교를 통해 본 동아시아연대 >일본지역학과200625020허 세 영아시아는 서양에 의해 발견되고 그 이름이 명명되면서 지난 세기 ‘서세동점’이라는 말로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파란의 시기를 보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 중국 이 삼국이 포함된 동아시아는 유구한 역사 속에 얽히고설킨 역사가 말해주듯이 동아시아는 지정학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특수하며 최근 국제사회에서 그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나는 오자키 호츠미의 ‘동아협동체의 이념과 그 성립의 객관적 기초’논문과 리 따자오의 ‘신아시아주의’논문을 통해 각 논문의 저자가 생각하는 동아시아 연대에 대해 비교하기로 했다. 여기서 동아시아 연대라는 표현은 저자들이 구상하는 동아협동체와 신아시아주의를 포함해 최근 제기되고 있는 동아시아 협력기구, 경제협력공동체, 동아시아 지역기구 등을 모두 포함하는 표현으로 정했다. 그 이유는 각국의 이익이 반영된 어떤 주장에도 편향되지 않고 단순히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협력하는 협동 및 공동체로 정한데 그 이유가 있다. 최근에 동아시아 협력에 관한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 중 몇 개의 논문들을 수업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는데 위 두 논문과 비교하기엔 시대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배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에세이를 통해 각 저자들이 주장하는 동아시아 연대에 대한 의견을 비교하면서 아래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1. 이들이 대립하는 측면은 동아시아 과거와 미래의 평화와 관련하여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가?두 논문의 대립하는 측면을 밝히기 전에 우선 공통성을 먼저 언급하자면 바로 저자가 속한 국가의 주도적인 동아시아 연대 구상이다.먼저 오자키 호츠미는 논문에서 중일전쟁의 가운데서 중국의 민족주의와 관련하여 중국 민중들의 항일정신과 동아협동체의 인식부족 그리고 일본인들의 경제적 착취와 동원에 그치는 대 중국 인식과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등을 동아협동체의 걸림돌이라고 규정하지만 그것의 가능성을 밝히면서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한다. 그리고 결론은 중국 민중들의 의식전환도 중요하지만 일본과 일본인들이 경제블록 넘어 주도적인 일본의 경영과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일방적인 것이 아닌 일본의 주도적인 협동체 구상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저자가 말하는 일방적이지 않은 것은 일본 단독의 동아협동체가 아닌 중국과 중국 국민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양국 모두의 동아협동체 구상에 대하여 의식전환의 필요성을 각각 제기하지만 저자는 특히 일본의 주도적인 노력과 실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논문 " 동아협동체의 이념이 실천의 과정을 수반하여 발전할 수 있는가 아닌가는 중일 항쟁의 역관계와 국제 관계 양자 모두에 달려 있지만 이것을 촉진할 만한 일본 국내 세력의 결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중략)...일본 국내의 개혁이 실행되어 '협동체'론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국민에 의해 부여될 수 있을지 여부에 달려 있다. "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본의 실천적이고 일본국민의 의식 재편성과 정부와 정당을 비롯한 국내세력의 결성에 달려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다음 리 따자오의 논문을 확인해보면 저자는 일본이 주장하는 대아시아주의를 일본의 중국병탄주의와 대일본주의로 정의하고 중국을 결여한 대아시아주의는 있을 수 없으며 미주연방과 유럽연방과 대항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아시아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신아시아주의를 동아시아연대라고 포함시킬 수 있는가라고 고민해보았지만 저자는 논문에서 " 진정 아시아인의 공동 문제는 마땅히 우리 아시아인의 전력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중략)...민족 해방을 기초로 삼아 현상의 근본 개조를 주장한다. 남에게 병탄된 아시아의 민족은 모두 해방되고 민족자결주의를 실행해야 하며, 그런 후에 하나의 대연합을 결성하여 구미의 연합과 함께 세 세력이 정립함으로써 공동으로 세계연방을 완성하고 인류의 행복을 더욱 증진해야 한다. " 라고 기술하였는데 동아시아를 넘어 아시아를 지칭하고 있지만 서양의 지역연방과 동등한 지역기구의 필요성을 언급함으로써 일종의 동아시아 연대라고 생각했다. 이런 신아시아주의도 결국 중심에는 중국의 역할이 절대적이며 중국이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어떻게 보면 지나친 중국 중심의 주장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자국의 주도적인 동아시아 연대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두 논문은 자국의 주도적인 역할아래 동아시아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점이 공통성이라 하겠다.그러면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 두 논문은 과거 혹은 미래의 평화와 관련하여 어떠한 중요성을 가지는 것인가? 두 논문의 시대적 상황을 보자면 20세기 초, 일본은 러일전쟁과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점점 근대화에 성공했으며 이미 조선을 식민지화 시키고 중국을 차식민지화 시켰다. 일본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이미 일본의 제국주의는 한국과 중국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이 두 논문에서도 평화를 향한 의지를 찾을 수 있었다.우선 오자키 호츠미는 평화를 위한 동아협동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논문에서 "중국의 정복에 있지 않고 중국과의 협력에 있다...(중략)...진실한 동아협동체는 중국 민족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와 같이 중국과의 협력과 중국의 참여를 요구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동아협동체는 대동아공영권과는 완전히 다른 발상이라 생각이 든다.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중 동아시아를 넘어 동남아시아까지 침략하며 내세운 슬로건인데 서양의 식민지 지배에 벗어나기 위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결성하여 아시아에서 서양세력을 몰아내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일본 제국주의의 뒷받침하는 주장으로써 다른 나라들의 입장을 무시한 채 일본 아래의 아시아 통합을 주장한 것이다. 그에 반해 오자키 호츠미가 주장하는 동아협동체는 대동아공영권과는 조금 다르다. 저자는 중일전쟁의 가운데서 동아협동체가 성립되기 위해선 일본의 일방적인 방식에 의해서 여러 나라를 경제적으로 조직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민족문제 같이 동아협동체 구상은 실제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만 저자는 그 가능성을 보았다. 오로지 일본의 경제발전을 위한 일본, 중국, 만주의 경제블록론을 주장하는 일본의 자본가들의 인식의 전환 즉, 착취와 동원이 아닌 중국의 부흥을 위해 먼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 재건을 위해 일본과 중국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와 일본 국민의 협동체에 관한 이해로부터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한 가지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중국의 자발적인 참여이다. 저자는 일본만의 노력이 아닌 중국과 중국인 스스로 올바르게 자신의 문제로서 동아협동체 건설에 노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중국에게 일본에 대한 투쟁은 지속되리라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조속히 민족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의 이익 방위를 위해 인식을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동아협동체를 세계적 질서에 있어서 봉쇄적인 일본과 중국만의 단위로 생각하지 않고 그 질서에 선행하는 국제사회와의 관계도 고려하고 있는 점을 엿볼 수 있다.리 따자오의 신아시아주의에서도 평화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일본의 대아시아주의를 침략주의라고 비판하고 중국의 역할을 중요시한 신아시아주의를 주장한다. 저자는 일본과 중국이 아닌 아시아와 서구의 대립구도로 보고 있다. 서구 열강은 아시아인, 황인종을 멸시하고 동방 민족을 희생으로 삼으며 아시아 전 민족을 위태롭게 하며 전 세계의 평화를 위태롭게 한다고 말한다. 일본도 아시아에 위치하지만 서구 열강과 다름이 없음을 말하고 현재 서구 열강들은 미주연방, 유럽연방처럼 조직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모두 신아시아주의 아래 대 연합을 주장하고 있다. 비록 중국 중심의 연합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서구 열강에 대해 아시아 연합이라는 연대를 주장하고 있고 아시아 각 민족의 해방과 자결주의를 주장하면서 인류의 행복 증진과 평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로 볼 때 동아시아의 장래 평화에 있어 저자가 주장하는 동아협동체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2. 이들의 입장은 이 측면에서 어떻게 대립되는지 (혹은 나는 왜 이들이 이러한 측면에서 서로 대립한다고 해석하는가?)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두 저자의 논문에서 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연대 구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저자는 구상에 있어 차이가 있다.
동아시아 시민사회 교류(2010학년도 1학기)중간보고서일본지역학과200625020허 세 영1. 저자에게 아시아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저자는 왜 아시아에 주목하는가?)다케우치 요시미의 는 이전의 사상가들이 쓴 글과 달리 일본의 패전 이 후에 쓰인 것으로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일본의 전후 반성과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중국과의 비교를 통하여 일본을 바라보는 점이다. 저자에게 아시아, 특히 중국이 가지는 의미는 결과적으로 일본을 돌아보는 반성과 성찰을 다루고 있으며 저자가 중국에 관심을 가지는 궁극적인 목표는 일본과 중국의 근대화 과정의 비교를 통해서 일본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저자가 중일 비교를 통해 반성과 방향제시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성격 상 개인적인 성찰과 국가적인 성찰로 구분했다. 개인적인 성찰에서는 저자가 아시아, 특히 중국에 관심을 가지는 과정으로 구분했으며 국가적인 성찰에서는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일본과 중국의 과정 차이와 어떤 점이 다른가로 구분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저자가 왜 중국에 주목했고 중국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로인해 일본이 새로운 구상을 가져야 하는 필요성까지 도출하는 과정으로 구분했다.먼저 개인적인 성찰로 판단한 이유는 저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이 단순히 지나 문학과(중국문학과)에 입학하였는데 중국여행을 통하여 저자의 편견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중국에도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생기 있게 매일의 생활을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일본에서의 편향된 교육이 편견을 만들었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 저자는 중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중국에 대한 문학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중국에 가서 경험해보니 그것은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한학이나 지나학에서의 중국을 공부하고 그것을 통하여 일본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나 잘못을 개선하고 학문의 성격을 변화시켜간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은 죽은 학문으로 이웃같이 현재 살아있는 중국을 음으로 국가적인 성찰이다. 저자는 일본과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단순히 현재 보이는 모습이 아닌 그 근원과 과정에 있어 일본과 중국을 비교하게 된다. 단순히 겉으로 보기엔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 후 빠른 서양문물의 도입과 서구열강에 대한 동경으로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강성한 제국의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중국은 중화민국이 탄생하고 정치 제도상으로는 일본과 차이가 없지만 실세는 군벌이고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혼란으로 가득한 국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의 저서를 언급하면서 중국의 그 혼란한 모습에서 아래로부터 새로운 정신의 모습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중국의 5.4운동으로 나타났으며 새로운 정신, 새로운 근대의 발아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은 겉으로 진보하고 있지만 언제 붕괴될지 모르며 중국의 근대화는 대단히 자발적이고 강고하다고 보고 있다. 즉 지금 중국이 혼란스러운 것은 원래의 중국적인 것은 매우 강고하여 잘 붕괴되지 않으며 이런 이유로 근대화에 즉시 적응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근대화의 물결이 시작되면 구조적인 것부터 파괴하기 시작해 그 안에서 자발적인 힘을 만들어 낸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표면은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근대성은 일본보다 본질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비교는 일본이 늘 서구선진국과와의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며 중국계 미국인 펄 벅, 미국에서 교육받은 츠루미 처럼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까지의 비교를 통하여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틀로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일본과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를 말한다. 근대화의 속도가 아닌 바로 근대화의 질인 것이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한 주도적인 일본의 근대화와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힘으로 일꾼 중국의 근대화인 것이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이루어 아시아 근대화를 자극했지만 이런 근대화과정은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근대화 과정이 있는 것난 일본의 현실을 보면서 동양의 것, 서양의 것처럼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새로운 구상을 제시한다. 개인적인 성찰과 국가적인 성찰로 구분지어 봤는데 결과적으로 저자는 개인의 성찰로부터 시작해 일본이 가져야 할 모습까지의 과정의 이야기이며 이 두 가지 이유는 저자가 가지는 아시아의 의미이자 아시아, 중국에 주목하는 이유이다.2. 저자가 바라보는 아시아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아시아는 어떻게 변모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속에서 일본의 모습과 역할은 어떤 것인가? (또는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저자는 아시아, 중국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일본과 중국의 비교에서 그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고 중국을 통해 일본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을 말하고 있다. 일단 저자는 중국과 일본은 비슷하지만 그 차이를 인정한다. 언어의 어순부터 생활모습, 근무 형태 등 여러 면에서 그 차이는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뿐만이 아니라 저자는 더 나아가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일본과 중국의 차이를 언급한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서구 그대로의 모델이 밖으로부터 도입되었지만 중국은 민족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여 안에서부터 강하게 제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중국의 5.4 운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겉모습은 혼란스러울지 몰라도 중국의 근대화는 대단히 자발적인, 자신의 요구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일본은 이런 중국의 본 내면을 보지 못한다. 일본은 오로지 서양의 것만 최고로 여기고 서양 중에서도 영국, 독일, 프랑스의 문물을 최고로 여긴다. 이것은 일본 내 정치제도상으로만 보더라도 그렇다. 일본의 대학 중에서도 조선어를 가르치는 학과는 단 하나 뿐이고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가르치는 곳도 그 수가 미미하지만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는 대학마다 앞 다투어 다루고 있다. 또한 인도의 종교 신학자이자 철학자 수학자인 타고르에 대한 평가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평가는 다르게 나타난다. 일본은 타고르는 단지 망국의 시인이며 그가 일본은 무력에만 의존하여 서방의 근대화를 흉내 내고 이웃 나라를 침략셈이지만 중국은 근대화 과정이 늦어져 열강의 침입을 받았고 식민지화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속도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근대화의 질이다. 앞에서 언급한 민중, 아래로부터의 근대화가 그것이며 듀이를 비롯한 저자는 이런 점에서 중국을 높게 사고 있으며 앞으로의 중국까지 예견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중국의 모습을 보고 일본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한다. 이것은 저자가 말하는 마지막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적인 문제에 있어서 저자는 전후 서구적인 교육제도의 도입을 통해서 이것이 유리한가 아니면 오히려 아시아적인 원리를 기초에 두어야하는가 하는 의견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서구와 아시아를 떠나 인간은 다 똑같으며 그 내용 또한 공통이고 역사성에 있어서도 인간은 등질이라고 말한다. 근대사회도 마찬가지로 세계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며 등질의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제국주의 같은 식민지 착취를 인정한 것 위의 평등의 개념을 관철해야 하며 토인비 같은 서양의 침입에 맞서 동양이 저항한다는 사고방식이 아닌 서구적인 우월한 문화 가치를 보다 대규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서양을 한 번 더 동양에 의해 되감싸 안아, 문화 가치상의 보편성을 만드는 것, 즉 동양의 힘이 서양이 만들어낸 보편적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서양을 변혁하는 구상을 요구한다. 이것이 일본이 가질 구상이며 나아갈 방향이라고 제시한다.3. 위와 같은 저자의 아시아 그리고 일본에 대한 생각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내적 한계는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글이 씌어진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비추어 저자의 주장이 가지는 한계는 있다면 무엇인가?저자는 글의 마무리에서 새로운 구상을 제시한다. 인류의 문화와 가치에 있어서 그 내용은 같으며 서구의 제국주의는 물론 아시아나 아프리카를 식민지 착취를 인정한 위에서의 평등 또한 관철해야할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서양과 동양의 이분법적인 대립이 아닌 서양의 우월한 문화를 인정하면서 그 가치를 더욱 높이고 실현하기 위해 동양의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본다면 이 글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점과 연계해 세 가지 한계를 언급하고 싶다.첫 째, 서양문화와 가치의 우월성을 인정한 점이다. 저자 다케우치 요시미는 글의 결론에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이것은 서양의 우월문화를 다시 동양의 힘으로 되감싸 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글이 제작된 1961년 당시 상황에 미루어 볼 때, 서양은 이미 경제, 산업기술 모든 면에서 동양보다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동아시아, 아시아 그리고 동양의 모든 국가들도 근대화를 향한 자발적인 역량이 있었지만 서양의 식민지로 나타난 제국주의로 인해 그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점에서 저자는 동양의 힘으로 되감싸안는 것이라고 제시하면서 동양의 문화와 가치는 이미 서양보다 낮은 즉 서양의 문화와 가치가 더 우월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런 논리 하에 어떻게 동양의 힘으로 서양의 문화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궁금했다. 나는 서양의 문화와 가치가 동양보다 앞섰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 위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일방적인 통합이 아닌 상대적인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둘 째, 구체적인 방법의 결여이다. 저자 다케우치 요시미는 마지막 일본이 가져야 할 구상에 대해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사회는 다양한 방면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그가 전공하고 관심 있던 문학, 교육에 있어서는 자세한 방법이 논의 되었으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셋 째, 한국의 결여이다. 글이 쓰인 시점에서 봤을 때 한국 또한 독립 후 한국전쟁까지 겪고 아직은 혼란스러웠지만 점차 안정화되던 시기였다. 한국 또한 3.1 운동부터 독립과 근대화를 위한 자발적인 역량이 있었고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운 구상에서 동양의 힘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과 일본에 국한된 것 이었다. 저자는 식민지를 인정하는 인
『金?の草原』の感想文"ニッポリ、彼の物語、夢と現?の間に"日本地域?科200625020 허세영現?に住んでいる人?は誰も夢を持っている。夢をかなえようと思うが、現?の制約の中で、人?は易しく現?を認められている。しかし、映?『金?の草原』は、現?と夢の境界が崩れる映?のようだ。どう考えてみれば映?の中で少女ナリスと、80代の痴?年寄りニッポリとの緊密な?係には感動もあるが、極めて現?的な問題を扱った映?だと見ることもできる。しかし、この映?は、まったく別の視点で見せている。映?は終始一貫でニッポリを20代の若い?年で見せている。ニッポリは一番幸せな瞬間に?り、夢を見ていると信じている。このような?想の?換は、私に1つの疑問を持つようにした。なぜニッポリは、どうして20代の若い?年の姿に?ったのか。ただの生涯で一番幸せな瞬間に?っただけなのか。映?はそれ以上の意味を?えていると考える。映?で、ナリスはニッポリが簡?に書き留めた年代記を?見した。その記?には、年代別の事件が書かれている。しかし、ほとんどの記?は、『心?止まらず』と書かれている。これは若い頃病?になった彼が生涯をかけて、その病?と?ってきたことを語っている。ひたすら生命を維持するためだけに生きてきた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ほど、自分の人生に愛情を持っていない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る。そんな彼が人生に果たせなかった未練がたくさん?っている20代に?る夢を見るのはおそらく?然であるかも知れないと思った。またナリスも、ニッポリの20代の純?な?年の姿を?見し、結婚の申し?みまで受け付ける。つまり、ナリスのことは、現?の制約で弟への愛の感情を?すが、ニッポリは夢だからナリスに求婚できた。現?の人?の弟と友人は、ナリス止めさせるが、今ナリスは心を決めた。後にニッポリは年代記を見つけて夢と現?の間で大きな混?を持って結局1つを選ぶために屋根に落ちる。そして映?は浜?場面のエンディングでニッポリが?の金?の草原に?ったと思った。私たちは、色んな現?と?って認めながら、その中で生きていく。夢をつかむために懸命に生きる人?もあり、夢さえ持っていない人も多い。人生を生きながら、現?を認めるのは言いやすいが、夢を認めるのを言いにくいことがその理由と思う。しかし、ニッポリが夢だと信じるからナリスに愛を告白することができて、彼は夢を成したと信じた。これを見ながら、夢というのは、せめて感情表現ができる力やら私たちの人生がより素敵に作ってくれると思った。カ?リンジブランは、『昨日は今日の記憶であり、明日は今日、見る夢だ』と言った。夢は、私たちが目指すべき理想の世界で、?際に到達しなければならない世界だ。最後に、整理しながら『金?の草原』は、まだ走らなければならない距離が遠い私にとって、夢を忘れず、思い出した映?と思う。대중문화와 일본어 - 일본지역학과 허세영"닛뽀리 그의 이야기,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현실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다. 꿈을 이루고자 하지만 현실의 제약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현실을 인정하곤 한다. 하지만 영화 '금발의 초원'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영화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영화에서 소녀 나리수와 80대 치매노인인 닛뽀리와의 긴밀한 관계는감동도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닛뽀리를 20대 젊은 청년으로 보여주고 있다. 닛뽀리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서 꿈을 꾸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나에게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했다. 왜 닛뽀리는 하필 20대의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인가이다. 비단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간 것뿐일까. 영화는 그 이상의 의미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나리수는 닛뽀리가 간략하게 써둔 연대기를 발견한다. 그 연대기에는 연대별 사건들이 적혀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록은 '심장 멈추지 않음'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것은 젊은 나이에 병에 걸린 그가 평생에 걸쳐 그 병과 싸워왔음을 말해준다. 오로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신의 삶에 애정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삶에 대한 이루지 못한 미련들이 많이 남은 20대로 돌아간 꿈을 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리수 또한 닛뽀리의 이런 20대 순수한 청년의 모습을 발견하고 청혼까지 받아들인다. 즉, 나리수는 현실의 제약으로 남동생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만 닛뽀리는 꿈이기에 나리수에게 청혼이 가능했다. 이것을 나리수는 알게 된 것이다. 현실의 사람들인 나리수의 남동생과 친구는 말리지만 이제 나리수의 마음은 굳건하다. 마지막에 닛뽀리가 연대기를 발견해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큰 혼란을 가지고 결국 하나를 택하기 위해 지붕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영화는 바닷가 모습의 엔딩으로 닛뽀리가 진정한 금발의 초원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여러 현실들과 싸우고 인정하며 그 안에서 살아간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며 꿈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현실을 인정하기엔 쉽고 꿈을 인정하기엔 어려운 것이 그 이유라 생각된다. 하지만 닛뽀리가 꿈이라고 믿기에 나리수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었고 그는 꿈을 이뤘다고 믿었다. 이것을 보면서 꿈이란 최소한의 감정표현도 가능하게 하는 힘이며 우리의 삶이 더 멋지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 칼린 지브란은 '어제는 오늘의 기억이며, 내일은 오늘 꾸는 꿈이다' 라고 말했다. 꿈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세계이며 실제로 도달해야하는 세계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정리하면서 '금발의 초원'은 아직은 달려야 할 거리가 먼 나에게 있어서 꿈을 잊지 않고 상기시켜준 영화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