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말 공부를 잘 한 사람한테 검은색의 반대말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 당연히 흰색이라고 하겠지. 그런데 온몸을 뒤덮은 부스럼 때문에 국민 학교 일학년을 건너 뛴 강정규 선생은 ‘검다’의 반대말을 '나쁜 것' 이라고 했단다. 반대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선생은 검은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럼 하얀 것은 좋은 것일까 ?전쟁은 이렇게 9살짜리 어린애 같은 사고방식으로 치루어지곤 한다. 우리 편은 하얀색이고 좋은 편이고 너희 편은 검은색이고 나쁜 편이다. 그뿐이다. 검은색은 몰아내야 한다. 검은색도 고향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검은색도 그 뛰는 심장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고 있다는 것은 흰색이 알 필요가 없다. 그저 검은색은 검은색 일뿐이니까 말이다.전쟁에 대해 우리가 혐오감을 가지는 이유는 그 희생물이 힘을 가진 자들, 전쟁을 일으키고 그 속에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아니고 영문도 모른 채 피를 흘려야 하는 무력한 생명 때문이다. 그 무기력한 생명들의 발버둥은 마치 겨울 산 올무에 걸린 토끼 같다.토기의 눈' 에서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인규는 토끼를 잡고 싶었다. 그 흔한 보물찾기 딱지 한번 찾아보지 못하는 인규는 할아버지 담배 몰려 훔쳐다 주고 얻은 올무에다 살집 통통한 토끼 한 마리 잡아 으스대 보고 싶었다. 잔뜩 기대에 차 눈을 헤집고 산을 올라가 본 날 올무는 끊어져 있었다. 흰 눈 위엔 핏방울 만 점점이 흩어져 있고, 얼마나 크고 힘이 센 토끼였는지 올무를 끊고 도망갔다. 정말 되는 일 하나도 없는 인규다.이듬 해 일단은 전쟁이 끝났다고 하고 마을 사람들은 토끼몰이 할 여유가 생겼다. 아무거나 먹어 대서 배울 것이 없다고 인규네 집 머슴살이를 하다 쫒겨난 올챙이 아저씨가 커다란 토끼 한 마리를 잡았는데 목에 철사를 감고 있었다. 칭칭 동여맨 철사를 새살로 덮어가며 살던 토끼는 그렇게 질긴 목숨으로 두 번 죽었다. 그 토끼였다. 작년에 인규의 올무를 끊고 도망간 토끼 말이다. 그 토끼처럼 죽어나간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강정규 선생이 부스럼으로 학교를 가지 못 할 때 무서운 선생님 노릇을 하며 일 년 동안 공부를 가르쳐 주던 동무 순덕이도 콩 포기를 끌어안은 채 피를 많이 흘려 백짓장처럼 하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전쟁 일 세대 선생의 동무들은, 친지들은 어디선가 그렇게 죽어 나간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수런거렸을 것이다.푸른 책들에서 나온 동화에는 공통점이 있다.대부분의 동화들이 극적인 재미를 위해 주인공들을 마구 밀어부쳐 궁지에 몰아넣지 않는다. 공포영화를 왜 보며 갈등이 넘치는 드라마를 왜 보는가? 그런 갈등과 긴장은 재미있다. 그 재미를 위해서 주인공들은 고군분투하며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몰려 가야한다.그런데 푸른 책들에서 나온 동화들은 주인공들이 그렇게까지 위기에 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값싼 재미를 위해 주인공을 혹사시키기 보다는, 읽는 이와 주인공들을 다 같이 부드럽게 감싸 안고 싶어 한다.
봉사활동 감상문학 과 :학 번 :이 름 :이번 봉사활동 수업을 신청하고 중학생 시절 방학과제로 봉사활동을 해본 이후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봉사활동에 대한 의미도 몰랐고 적극적인 의지 또한 없었다. 다만 졸업을 하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써야 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언젠가는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봉사활동 과목 수강신청은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 할 수 있을지 난감했다. 첫 소양교육시간에 봉사활동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소양교육 시간에 받았던 안내를 통해서 학교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봉사자 모집 공고 란을 참고해서 내가 참여할 봉사활동 프로그램들을 알아보았다.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만큼 의무감이 적고 자발적 의지가 중요한 활동이기 때문에 되도록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부담이 덜한 활동부터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들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원을 다니기 힘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학습지도를 해주는 ‘어깨동무 교실’ 이었다. 우리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연무동 사회복지관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거리가 가까워서 좋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학생들의 학습을 지도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어깨동무 교실’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예상을 뒤엎는 험난한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20명에서 23명 정도의 학생이 학년 구분 없이 한 교실에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6개의 학년으로 나누어짐에도 불구하고 봉사활동 선생님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생님 한명 당 학년 구분 없이 섞인 4-5명의 아이들을 지도해야 했다. 학습지도에 일정하게 정해진 커리큘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 또한 학습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아서 힘들었다. 하지만 처음에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 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내 주변의 사람들, 하다못해 사촌동생들도 이제 거의 중.고등학생이 되었고 대부분은 성인이기 때문에 요새 초등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영악한 아이들은 어색해서 쩔쩔매는 봉사자 선생님들을 간파하고 새침하고 짓궂게 행동하면서 텃새를 부렸다. 힘들게 첫날 봉사활동을 끝마치고 봉사활동 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봉사활동 회수차가 늘어갈수록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요령도 터득하게 되었고 아이들과도 조금씩 친해지면서 의무감으로 시작했던 봉사활동이 일주일에 한 번. 이제는 기다려지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 친해지기 힘들었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고 서로 익숙해지면서 친해지고 나니 학습지도나 놀이지도에 순순히 따라 주었고 간식시간이나 청소시간 등 오히려 자신이 앞장서서 선생님을 챙기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와 생각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들 속에서 오히려 내가 잊고 살았던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아이들에게서 제공 받은 셈 되었다.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복지관에 나와서 학습지도를 받지만 봉사자 선생님들은 자신이 필요한 시간만 채우고 나면 더 이상 복지관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동안 그렇게 쉽게 떠나가는 선생님들을 여럿 봐왔던 것이다. 조금 친해지고 마음을 열 때가 되면 떠나가고 보고 싶은데 다시는 오지 않았던 봉사자 선생님들... 그래서 아이들은 처음 선생님들이 새로 왔을 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라고 담당자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듣고 왠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서 부모님이 있다 하더라도 맞벌이를 하시기 때문에 항상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있었고, 몇몇 아이들은 부모님이 부재해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 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봉사하는 마음이 아닌 학점이나 이력서 기재 등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위해 의무적인 마음으로 활동에 참여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Ⅰ. 서론현재 인구의 고령화추세는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진행 중이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7.0%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였고, 2018년에는 14.3%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며, 2026년에는 20.8%로 본견적인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해영, 2008)우리나라는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불과 19년 만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어 OECD국가인 프랑스의 115년, 스웨덴의 85년, 미국의 71년, 이탈리아의 61년에 비하여 매우 급속한 수준이다.(이해영, 2008)고령화사회는 수명연장이라는 인간의 소망을 현실화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전반적인 상황에서는 고령인구의 증가로 인하 노인의 빈곤, 질병 및 소외문제가 심화될 뿐만 아니라 노인부양을 위한 사회적비용 등 여러 가지의 사회문제를 낳게 될 것이라고 예측된다.사회적으로 적극적인 부양체제가 미비한 우리나라의 노인들에게는 노인의 경제적 빈곤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특히 여성노인의 빈곤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노후의 빈곤문제나 건강문제는 여성노인의 문제인 경우가 많고 여성노인의 경우 타 연령집단의 여성이나 남성노인에 비하여 경제적으로 더 어렵고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박만인, 2006)우리나라 여성노인은 남성노인에 비해 약 8년 정도 더 오래 산다. 그래서 혼자 사는 여성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여성노인의 노후 생활이 남성노인에 비해서 더욱 힘들다는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여성노인의 경제적 빈곤상태가 심각하다.그래서 여성노인의 빈곤에 대한 원인 및 빈곤현황을 살펴보고, 현재 여성노인이 겪고 있는 빈곤에 대한 문제점을 찾아보고, 개선방안을 알아보자.Ⅱ. 본론1. 여성노인 빈곤의 원인1) 남성에 대한 경제적 의존여성노인의 빈곤은 우리 사회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을 강화해 온 사회 제도적, 문화적 요인에 그 성에 따른 직종의 분리와 임금격차를 경험하며 결국 은퇴 후의 여성의 경제적 궁핍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남녀 간의 소득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수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인적자본론과 노동시장 자체가 완전경쟁이 아니고 제도적으로 분절되어 있다고 보는 노동시장분절론 등의 이론들이 제기되어 왔다. 노후의 경제적 위치를 설명하는데 개인적인 접근법을 적용해 보면, 개별 근로자의 직접적 지위나 임금 수준을 학력, 기술 등 인적 자본에의 투자 정도에 의해 노후의 소득이 결정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가정하고 있다.먼저 한국에서 임금결정에 가장 중요시 되는 교육과 경력에 따른 남녀 노동자의 평균 임금수준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학력은 임금수준을 높이고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조건 중의 하나이다. 성별, 근무년수, 교육별 월평균 임금를 살펴보면, 학력이 높을수록 남녀 임금 격차가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즉 중졸이나 고졸수준에서는 거의 남성임금의 60-70% 수준인데 비해 전문대 이상의 경우 75-80% 수준이며 대졸의 경우 80-85% 수준으로 임금이 올라간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와 동일한 경력과 학력수준을 갖추었더라도 여전히 그들의 임금수준은 60-85%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여성의 임노동시 임금수준이 남성보다 낮게 책정되는 것은 퇴직 후에도 여성의 수입이 남성의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임을 시사한다. 최근 연구에서도 교육과 직업상의 기술과 같은 인적자원은 노후수입으로 전환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실제로 에서 볼 수 있듯이 전 학력에서 남녀 임금격차가 고루 나타나는 것은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이나 직업경험을 가졌더라도 여성은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예이다.노동시장분절론은 개인의 인적자원이 아니라 한 개 이상으로 구성되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자가 점유하는 구조적 위치가 수입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1차 노동시장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직업의 안정성, 좋은 근로조건, 다양한 승진기회 등이 보장로의 전환은 여성의 경제적 복지에 서로 반대되는 결과를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다.빈둥지 시기로의 진입이 여성의 경제적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결혼의 해체는 이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두 사건은 대개의 중년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으로 앞으로 노후까지 여성의 경제적 복지 수준이 향상될 것인가 아니면 저하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만일 결혼의 해체가 빈둥지 시기로의 전환보다 먼저 발생할 경우, 여성들은 가정 내에 의존적인 자녀들을 책임지면서 남편의 수입에서 차단되므로 소득 절감을 겪어야 한다. 이런 경우 여성의 임금노동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은 폭으로 증대되며 이후에 빈둥지 시기를 맞이하더라도 경제적 손실을 회복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자녀출가를 결혼의 해체보다 먼저 경험한 여성은 적은 수의 자녀와 연관해서 감소되는 소비 수준으로 잠정적이나마 경제적 혜택은 경제적 호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빈둥지 시기가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은 결혼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에 가장 크게 나타난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누리는 경제적 호전 상황이 노후까지 연결되는 효과도 상당하지만 이어서 결혼 해체가 발생할 경우 경제적 복지의 저하 효과가 오히려 더 부각될 수 있다. 중년기에 빈둥지 시기로의 전환만을 경험할 때 여성은 가장 큰 경제적 혜택을 누림을 알 수 있다.7) 복지정책의 모순한국의 연금제도는 개인자격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은 남편에 종속된 존재로 가족구성원에게 지급되는 가급연금이 부여되며 남편 사망 시에는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이와 같은 연금제도는 결혼을 평생 지속할 것으로 간주하고 남편은 경제적인 부양자로 부인은 전업주부라는 가정 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이혼이 증가하고 있고 여성의 취업이 늘어나면서부터 이러한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여성이 이혼을 하는 경우는 연금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고 여성이 취업을 하는 경우에도 여성취업의 특성상 연금혜택을 받기에 불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여성이 취업한 경우에는 20년 이상을 근무해야 들은 신체적 노화현상으로 의료비용이 더 필요하게 되므로 그에 따른 추가적 소득이 필요하다.소득구분세분화된 소득전체남성여성근로 ? 사업 ? 부업 소득원근로소득56.678.230.3사업 ? 부업소득52.662.431.5소계56.072.031.0자산소득재산소득61.073.437.0금융소득49.147.952.3개인연금32.747.814.9소계61.071.041.1공적이전소득공적연금54.061.533.8기타사회보험급여55.969.922.4경로연금4.13.94.1교통수당1.00.91.0기초생활보장급여18.015.919.8참전명예수당5.95.513.3소계11.820.16.3사적이전소득친인척보조금17.316.018.0사회단체보조금12.617.710.1기타소득8.47.711.4소계17.616.718.1월평균총수입계48.678.329.9 65세 이상 노인의 성별 개인 소득원자료: 김은아 2004년도 전국 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 p.45에서 보면, 여성노인은 노인의 자립적인 소득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근로소득과 금융소득, 부동산소득에 있어 남성노인보다 현저하게 그 수준이 낮고 가족과 정부에 대한 소득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소득을 주로 배우자에게 의존해온 여성노인들은 주 소득원이었던 배우자가 노동능력을 상실하거나, 사망으로 소득원을 상실하더라도 열악한 건강상태와 낮은 학력으로 인해 근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고, 그 결과 자녀나 정부로부터의 이전소득에 경제생활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빈곤여성노인가구 중 노인단독가구의 비율이 높은 것도 여성노인의 이전소득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은아, 2005)(2) 노인고용(노인취업)의 현황에서 보듯 우리나라 65세 이상 전체노인 중 30.8%가 수입이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전체 경제활동노인인구 중 53.9% 정도가 농?어?축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다음으로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노인이 27.8%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무직종과 서비 스 ? 판매직에 근무하는 노인은 9.의 혜택을 받는 노인은 30.7%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69.3%의 노인이 연금 영역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황진수 외,2007)여성은 공적연금제도로서의 국민연금 가입비율이 남성보다 낮고 공공부조수급자 비율은 남성보다 높아 사회보장제도의 성분절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김태현 이문숙,2007)(1) 국민연금 국민연금가입자 현황자료: 한국여성정책개발원에서 보면, 여성의 국민연금가입자가 증가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2005년 남성가입자는 약 32%인데 비해, 여성가입자는 약 18%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총가입자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에 비해 여성의 국민연금가입율은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국민연금수급자 분포자료: 한국여성정책개발원에서 보면, 여성의 국민연금 수급현황을 살펴보면 2005년 남성의 수급비율은 약70%인데 비해, 여성의 수급비율은 절반도 안 되는 약 47%이다. 국민연금 총가입자 중 여성가입자의 비율이 약 18%에 불과한데, 그 중 여성 수급자의 비율이 47%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 공공부조공공부조인 국민기초생활보장은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필요한 급여를 행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수급권자의 범위는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또는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자로 정하고 있다. 남녀의 수급자 백분율 분포영유아기(0-4세), 학령기(5-9세), 청소년기(10-19세), 청년기(20-39세), 중년기(40-64세), 노년기(65세 이상)자료: 보건복지가족부 2006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에서 보면, 2006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전체 수급자 중 노인 수급자는 남자는 15.7%이고, 여자는 33.2%이다. 65세 이상 여성노인 수급자 비율이 남자노인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우리나라 여성노인들의 빈곤 완화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역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김은아, 2005) 공공부조의 경우 연령별로는 65대 이상
목차1. 서론① 연구의 목적② 연구의 범위2. 본론① 배경② 북방외교란③ 공산국가 소련과의 관계3. 결론① 북방외교의 의의한국외교의이해Ⅰ. 서론1. 연구의 목적우리나라의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를 시작한 노태우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다.노태우 정부에 들어와서 민주화의 열의와 탈냉전의 국제정세는 외교의 중요성을 가져왔고 노태우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외교정책을 펼치게 된다. 대북정책 같은 경우에는 제5공화국까지는 냉전적 사고 하에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권위주의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 못했고, 노태우 정부부터는 국제적인 해빙무드에 편승하여 많은 관계진전을 이루었다.이렇게 노태우 정부의 외교정책은 이전 정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노태우 정부의 외교정책의 특징과 외교의 성과와 한계를 알아보도록 하겠다.2. 연구의 범위노태우 정부의 외교정책을 살펴봄에 있어 한국과 소련이 국교를 수립하기에 이르기까지의 국제적 국내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고 노태우 정권의 외교에 가장 큰 특징인 구 소련과의 북방외교를 통해 노태우 정부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살펴 볼 것이다.Ⅱ. 본론1. 배경당시의 국제적 배경을 보면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소의 냉전적 대결이 완화되었으며, 미국과 중국, 일본과 중국의 국교정상화가 추진되고 있었다. 1989년에 이르러 한국은 헝가리, 폴란드와 국교를 수립하였고, 이어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와 국교정상화를 이루는 등 동구권의 국가들과의 화해?협력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또한 독일이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달성하는 등 국제적으로 새로운 데탕트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소련 국내의 배경을 보면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는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보다는 보편적 가치의 우선, 세계의 상호의존성 증가, 무력 사용의 부도덕성, 핵시대의 상호안보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을 보다 중요시하며, 국가안보는 군사력 축적에 있기보다 무기 통제, 지역 갈등의 해소, 타 국가 자극 요소 제거 등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대외정책의 탈 이데올로기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외교는 국가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이었다.한편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시장에서 고립되어 있던 소련 경제는 지나치게 국방비에 예산을 집중시킴으로 인해서 매우 침체되어 있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르바초프는 1987년 15개년 시베리아 개발계획을 추진하였으나 이는 2천억 루블의 대량 투자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당시 서독을 제외하고는 소련에게 투자하는 것을 대부분의 국가가 난색을 표하는 실정이었다.2. 북방외교란북방정책이라고도 한다. 중국 ·소련 ·동유럽국가 ·기타 사회주의국가 및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외교정책으로, 중국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사회주의국가와의 경제협력을 통한 경제이익의 증진과 남북한 교류 ·협력관계의 발전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국가와의 외교 정상화와 남북한 통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서독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에 걸쳐 미국과 소련의 긴장완화를 배경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한 동독 및 사회주의권에 대한 ‘동방정책(Ostpolitik)’의 논리적 구조와 비슷하다.즉, 한국정부는 북방정책을 통하여 안보와 통일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한국경제의 활로를 개척하는 한편,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시키는 등의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국가와의 협상에서의 저자세, 국민적 동의의 창출 미비, 정부 부처 간의 정책 혼선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3. 공산국가 소련과의 관계노태우하면 가장 큰 치적은 북방외교입니다.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1988년 9월 17일 160개국에서 1만 3천 6백여명이 참가한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성공리에 치루면서 그 여파로 1989년 2월 1일 공산권 국가로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공식수교를 맺었고, 6월 5일에는 고르바초프와 한-소 정상회담을 열어 북방정책을 시도 했다.88올림픽 당시 소련이 참가한 것은 전 세계가 놀랄 일이었다. 자유진영의 최전선에 있었던 한국이 공산국가의 우두머리인 김일성 사진도 방송과 출판물에서 내보내지면 안되던 북한을 금기시하고, 북한의 아버지격인 나라 소련은 타도할 나라여서 거래가 한 번도 없었던 소련을 올림픽에 출전시킨 것이다. 소련의 서기장인 고르바초프의 시대흐름을 간파한 판단이 가장 컸겠지만 우리의 노력도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미수교국가인 소련이 참전한 88올림픽은 성공하고 이로써 한국과 소련은 1990년 9월 30일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최호중 외무장관과 셰바르드나제 소련외상이 ‘한소수교공동성명서’에 서명함으로써 수교를 맺게 되었다.
REPORT전태일 평전 독후감[불꽃속의 전태일의 열망]학과 :학번 :이름 :일년 12달 중 5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따듯한 봄’과 ‘가정의 달’ 이다.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날들이 많이 있어서 마음까지도 따듯해지는 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 등을 기념한다. 심지어는 공휴일이 아닌 성년의 날 까지도 기념한다. 하지만 5월의 시작인 5월 1일 근로자의 날(노동절)은 많은 사람들이 기념하지 않고 또 특별히 인식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근로자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전태일 평전’ 이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위해 컴퓨터로 이것저것을 찾아보고 나서야 근로자의 날이 있다는 것과 근로자의 날 전태일을 추모하는 행사도 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땅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모습을 기념 해주는 근로자의 날 조차도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와서 인권이 향상되었고 시민의식수준도 상당히 성장하여 근로 조건 역시 매우 좋아 졌기 때문에 근로자의 권리에 대한 열망이 뜨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책을 읽은 나는 어린 나이에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며 온몸을 불사질렀던 전태일의 열망을 기억해 주기 위해서라도 근로자의 날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 되고 기념되었으면 좋겟다는 생각이 들었다.22살의 재단사 전태일. 자신의 일을 도와주는 시다가 있었지만 마음껏 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도와주는 그 시다를 더 위하였던 마음 따듯한, 함께 일하는 여공들에게 붕어빵을 사다줄 줄 아는 인간적인.., 지금 현대사회에서 그런 전태일 같은 22살 청년을 만나 볼 수 있을까. 현대에도 사회의 부조리에 반하여 정의를 내세우며 운동하고 있는 청년이 분명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본 22살 청년의 모습은 부모님에게 용돈 받아 생활하고 대학생활 하며 술에 쩔어 있는 모습들 뿐 이다. 전태일이 있었던 사회와 지금의 사회 모습이 많이 다르다고 할지 몰라도 책을 보는 내내 과연 22살의 전태일이 정말 실존했던 인물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1984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평화시장 피복공장 재단사였다. 전태일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경제발전이란 명목하에 짓밟힌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전태일이 살았던 당시의 사회모습은 박정희 정권의 급격한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어른아이 할 것없이 공장에서 일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운데 나이어린 학생들까지도 교육에 전진하지 못하고 학교에도 다니지도 못한채 돈을 벌기 위해 도시의 공장에서 일을 했다. 저임금에 장시간동안 노동을 했고 , 다닥다닥 붙은 작업장에서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30촉 전구에 의지해서 밤샘 철야 작업을 하였다. 심지어는 잠이 오지 못하게 하는 주사까지 맞아가며 일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일했지만 일한만큼의 돈도 받지 못하고 병만 얻었다. 전태일은 이런 현실을 매우 가슴 아파했다. 자신들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기계처럼 쉬지않고 일을 했고 돈도 얼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매우 기뻐하며 ‘바보회’를 만들고 평화시장의 재단사 친구들을 중심으로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운동을 하였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자신들을 같은 사람으로서 존중해달라고 주장하지만 그 당시 사회현실 속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바라봐 주지 않았다. 게다가 공장장들은 그들을 해고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다른 어떤 공장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전태일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분신자살이란 방법을 택하였다.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불꽃이 되어 날라간 것이다. 전태일의 삶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20세기 후반기에서야 우리사회에도 자리잡기 시작한 이른바 '사회개혁'과 '경제성장'은 '개인'을 남김없이 '시스템'으로 묶어세웠다. 이것이 '더나은 세상'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믿고 있기에 사람들은 이러한 대세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시스템은 인간이 아닌 '물질'임으로 내면이 없다. 내면이 없기 때문에 양심이 없고, 따라서 목표를 향하는 길의 차이로 서로를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왜 사회개혁을 위한 조직들이 넘쳐나는데 본질적인 변화의 기운은 조직되지 않는가. 이토록 많은 환경운동조직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데, 왜 여전히 개발과 파괴의 광란에 대한 경종은 몇몇 종교인들의 극한의 자기희생만으로 메아리쳐야 하는가. 방방곡곡 모든 학교에 양심적인 교사들의 조직이 활동하고 있건만, 왜 우리의 아이들은 그 조직이 건설되던 15년 전보다학교욱교에커다란 육체적?정신적 학대 속에서 생기를 잃어가는가. 우리 오른편의 전태일은 5년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것은 '당신 자신이 느낄 연민과 사랑'에 있다고, 미디어의 귀를 빌리지 말고, 시스템에 의탁하넰 이전에, 당신의 E교사깊은 곳에서 샘솟는 연민과 사랑의 기운에 집중하라고, 당신 한사람으로도 이 세상을 넉넉히 떠받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전태일이 다시 이 땅에 살아온다면, 으로으로도게 표현년 , 우리 오른편의 전태일은 이 시대 말았떻게 살아갈 것인가.아마도 전태일은 그 어떤 미디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그 어떤 사회 시스템도 궁극적으로 보듬을 수 없는 '현실들'을 부여안을 것이다. 그래서 전태일은 죽어가는 '농업'의 문제를 고민하며 스스로 똥짐을 지는 농부가 되거나, 자신이 처했던 것과 너무나 비슷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시민권을 유린당하는 장애인들의 벗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전태일은 맹목과 파괴만이 횡행하는 이 사랑없는 세계를 넘어서 인간들의 우정과 사람만이 교통하는 어느 '가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