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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종결법 리포트
    보고서문장종결법 재고대 학학 과학 번이 름과 목담당교수차 례Ⅰ 논의를 시작하며 ---------------------------------3Ⅱ 학교문법에서의 문장 종결 표현-----------------------41. 평서문 -------------------------------------------------42. 의문문 -------------------------------------------------53. 명령문 -------------------------------------------------84. 청유문 -------------------------------------------------105. 감탄문 -------------------------------------------------11Ⅲ 문장종결법 종류에 대한 재고 ------------------------13Ⅳ 논의를 마치며 -----------------------------------18Ⅴ 참고문헌 ---------------------------------------19Ⅰ. 논의를 시작하며첨가어인 우리말은 명제 내용과 관련하여 말하는 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어미를 통하여 문장 끝에 오는 용언에 계속 덧붙을 수 있다. 이러한 첨가어로서의 성격 때문에 국어의 종결어미는 둘 이상의 어미가 겹쳐 나타나는 복합형태가 매우 발달해 있다. 영어와 같은 굴절어는 문장의 핵인 용언이 주어 다음에 위치하므로 양태가 조동사로 실현되지만, 국어와 같이 문장의 핵인 용언이 문장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언어에서는 양태를 비롯하여 높임법이나 문장종결법을 나타내는 요소들이 문장의 끝에 오게 된다.)문장종결법이란 어떤 언어의 형태적 특징이나 특별한 통사적 구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따라 문장의 유형을 나누어 보는 것이다. 즉 영어의 경우 서술법은 통사적으로 무표적인 데 반해 의문법은 주어와 서술어가 도치되며, 명령법에서는 주어가 생략되면서 동사의 원형이 쓰인다고 하는 통사적인 장치로 같지만, ‘형용사 어간 + 다’는 언제나 현재형으로 해석될 뿐 동사의 경우처럼 그 의미가 구별되지는 않는다.)(6) 가다 : ① 목적한 곳을 향하여 움직이다. ② 떠나다 (사전 뜻풀이의 일부)(7) ㄱ.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ㄴ. 어니스트 캠핑 가다(미국 영화 제목)(8) 나무들 비탈에 서다 (황순원 소설 제목)(9) 한국 축구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다 (신문 기사 제목)(10) “그래, 요 다음엔 꼭 너를 부르마.”(10)의 ‘부르마’는 약속을 의미하는 해라체의 특수한 평서문이다. 이를 약속평서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문법가에 따라서는 ‘약속법’이라 하여 독자적인 문체법으로 인정하기도 하나 학교문법에서는 평서형에 포함시켰다. 하게체에서는 ‘-(으)ㅁ세’, 하오체에서는 ‘(으)리다’, 합쇼체에서는 ‘-(으)오리다’로 나타나나 요즈음은 해라체의 ‘-(으)마’만 주로 쓰인다. 이러한 예는 화자가 자기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베풀어 그 실현을 기꺼이 약속할 때 쓰이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다음의 예는 자연스럽지 못하다.(11) ?오냐, 내가 때리마.남을 때리거나 남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는 일방적으로 부정적 가치를 띤, 소망스럽지 못한 행위로 인식되고 있으므로 자연스럽지 못한 발화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허락의 의미를 표시하는 특수한 명령형어미 ‘-(으)려무나’와 용법이 비슷하다.)평서문의 종결어미는 직접 인용절에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렇지만 간접 인용절로 안길 때면 이들이 모두 ‘-다’(‘이다’일 경우에는 ‘-라’)로 바뀐다.(12) 민수는 수영이가 오늘 학교에 안 왔다고 말했다.)2. 의문문의문문은 화자가 청자에게 질문하여 그 대답을 요구하면서 언어 내용을 전달하는 문장으로 의문형으로 성립된다. 의문문은 요구하는 대답의 유형에 따라 다시 다음과 같이 하위분류할 수 있다.판정의문문일반의문문설명의문문의문문수사의문문특수의문문간접화행의문문)판정 의문문은 긍정이나 부정의 대답을 요구하는 의문문이다. 이 의문문을 가부 의문문, 또는 ‘예-아니오 의문 이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문장 유형인데 명령형으로 성립된다.(1) ㄱ.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라.ㄴ. 아래 물음에 알맞은 답의 기호를 고르라.(1ㄱ)은 화자보다 신분이 아주 낮은 사람에게나 어린이들 사이에서 쓰일 수 있는데 화자는 청자에게 자기의 의도대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를 것을 직접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1ㄴ)은 출제자인 화자가 수험생인 청자에게 종이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자기의 요구대로 행동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앞의 명령문을 직접명령문이라고 하고, 뒤의 명령문을 간접명령문이라고 하는데, 직접 명령문은 직접 청자를 보고 명령하는 명령문이고 간접 명령문은 담화 현장에는 없는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명령문이다. 직접 명령문을 구성하는 명령형 종결 어미는 ‘-어라’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를 취하나, 간접 명령문을 가능하게 하는 명령형 어미는 ‘-(으)라’ 하나만 존재한다.)국어의 직접명령문의 대표적인 형태는 해라체는 (1ㄱ)의 ‘-아라’이다. 이 형태는 환경에 따라 ‘-어라, -거라, -너라, -오’로 교체되며 상대높임법에 따라 ‘-게, -오, ㅂ시오’를 붙이면 각각 하게체, 하오체, 합쇼체의 명령문이 된다.두루낮춤, 두루높임의 ‘-어(요), -지(요)’와 하오체는 평서문, 의문문과 형태가 같으므로 어조에 의해 구별되며 글을 쓸 때는 마침표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명령문에는 허락의 의미를 표시하는 특수한 명령문이 있다.(2) 그러면 너도 따라가려무나.(2)의 예에 나타나는 ‘-려무나’)는 해라체인데 하게체에서는 ‘-게나’, 하오체에서는 ‘-구려’로 실현되고 있지만 해라체를 제외하고는 고유한 형식이 없고 의미에 있어서도 일반 명령문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독립된 문장종결형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서 유의할 것은 약속법의 ‘-(으)마’와 같이, 화자의 마음이 언짢거나 좋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3) ?그러면 네가 그 애를 때리려무나.‘때려라’는 자연스러워도 ‘때리려무나’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으) 상대높임법에 따른 등분이 없다. 이 감탄형어미는 흔히 형용사와 결합되는데 화자 자신의 느낌을 감동적으로 표시할 때 쓴다. 이런 의미상의 특수성 때문에 보통 놀라움, 슬픔 등 감정표시의 감탄사가 동반된다. 다른 감탄문에 비하면 매우 주정적이라 할 수 있다. 느낌의 주체가 화자가 아니거나 형용사가 아닐 때에는 이런 감탄문이 성립되지 않는다.(3) *아이고! 철수가 무서워라.(4) *아이고! 네가 벌써 거상을 벗어라.(5) *아이고! 네가 벌써 고등학생이어라.‘-어라’ 형태의 감탄문은 해체인 ‘-어’로도 나타난다.(6) 아이고! 추워!이런 때에는 문장종결의 표가 없으므로 느낌표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감탄문 어미의 대표적인 것은 ‘-구나, -군, -구려’ 등과 같은 소위 ‘-구-’계 종결어미들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평서문과 감탄문이 어미만으로는 잘 구별되지 않는다. 감탄문을 따로 설정할 수도 있지만 ‘-구나, -군, -구려’ 등의 공통적인 의미인 ‘새로 앎’에서 감탄의 의미가 파생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새로 알게 되거나, 이미 알고 있던 대상이라도 새롭게 인식하게 될 때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어미는 꼭 ‘-구나, -군, -구려’ 등으로 제한되는 것 같지도 않다. (7), (8)에서는 어미 ‘-ㄴ가, -다, -어, -어라’가 쓰여 감탄을 표현하고 있다. (9)도 앞뒤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감탄문인지 아닌지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다.)(7) 녹차의 어린 이파리 한 봉지 / 이것이 우러나 / 이렇게도 원숙한가 / 서럽다 화두 30년(고은, 「녹차 한 잔」)(8) ㄱ. 아이구, 추{워, 워라}!ㄴ. 앗, 뜨거{워, 워라}!(9)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뿐만 아니라 감탄문은 간접 인용절로 안길 때, 감탄문 고유의 종결어미 형태가 없이, 평서문의 종결어미 ‘-다’를 쓴다. 국어의 종결 표현 중에서 다른 문장은 간접 인용절로 안길 때 고유한 형태가 있는 데 비해, 감탄문에서만 유독 일반적이다. 그리고 일곱 가지를 설정하는 경우에는 감탄법과 약속법을 모두 포함시키되 허락법이나 경계법 가운데 한 가지를 더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들은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문장종결법으로 포함되기도 하고 배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 자체가 이들의 문장종결법으로서의 자격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며 그 검증은 다른 문장종결법, 예를 들면 평서법이나 의문법, 명령법, 청유법의 설정 타당성을 따지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검토되어야 한다.셋째, 소원법이나 추측법 따위를 설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소원법은 의미 기능이나 사용 형식이 명령법과 다르지 않고 추측법은 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진술이라기보다는 문장에 담긴 명제 그 자체에 대한 심리적 태도라는 점에서 문장종결법이라기보다는 서법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결론적으로 우리는 무엇보다 이러한 혼란이 문장종결법의 범주 설정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법 범주로서의 문장종결법의 의미 특성과 기능 영역이 분명하게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다른 문법 범주와의 구별이나 이들의 내적 구분이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문법 범주로서의 문장종결법에 대한 논의는 윤석민(2000)에서 논의하였으므로 문체법을 몇 가지로 결정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이 문제는 종결어미의 분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문체법에 의한 문장의 종류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의미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을 담당하는 전형적인 형태’가 존재하며 다른 것과 구별되는 ‘형태론적, 통사론적, 화용론적 특성’이 있어야 한다.(윤석민, 1998).윤석민(2000)은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설명법, 감탄법, 의문법, 약속법, 허락법, 경계법, 명령법, 청유법의 8가지로 문장 종결법을 결정지었다. 이것은 학교문법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유형의 문장종결법 이외에 약속법, 허락법, 경계법이 추가된 것이다. 이 세 가지의 문장종결법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그가 말했던 의미 기능, 전형적 형태, 형태?통사?화용론적인 특성을 말하고 있다. 우선 킨다.
    인문/어학| 2011.02.16| 19페이지| 3,500원| 조회(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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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용운, 김소월, 김영랑, 정지용, 이상, 윤동주 시인에 대한 정리
    한용운한용운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이 실패하자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가 불경을 공부, 승려가 되었다. 그 뒤로 1919년 3?1운동에 민족 대표로 참여하였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 그 이후로도 그는 불교청년운동 및 불교의 대중화운동을 주도하며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하였다.한용운의 삶을 보면 그는 한국 불교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섰던 승려였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던 저항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의 하나가 시작 활동이라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한용운의 시는 일상적인 생활에 뿌리박고 있는 고유한 한국어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미의 단조로움이나 시 정신의 소박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적인 생활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에, 시적 정서의 공감대를 더욱 확대시켜 놓고 있다고 할 것이다. 자기 모국어를 순화하는 것이 시인이 맡은 궁극적인 사명 중의 하나라면, 한용운은 초창기의 시단에서 바로 그러한 일을 수행했던 시인임에 틀림없다.한용운은 그의 시를 통해 ‘님’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적 관심은 모두 ‘님’이라는 존재에 집중되고 있으며, 시를 통해 ‘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켜 놓고 있다. 그는 ‘기룬 것은 모두 님’이며 ‘내가 사랑할 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존재가 바로 ‘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님은 시적 자아와 함께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이 아닌, 이미 현실을 떠나버린 떠나버린 님, 지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님을 노래하고 있다.그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의 존재는 ‘침묵’이라는 말을 통해 역설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는 ‘님’이 떠난 현실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객관적인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님’은 떠났기 때문에 ‘님’이 부재하는 현실은 비극적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는 시적 진술처럼, 시적 자아는 대상으로서의 을 지키고, 악에 항거하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 투쟁했던 행동적 실천가였음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의지를 시적으로 구현하면서 가장 서정적인 어조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다. 한용운의 시적 언어가 획득하고 있는 일상적 경험의 진실성은 저항적 시 정신의 형상을 위해서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김소월한국 근대시의 형성 과정에서 김소월은 시 정신과 시적 형신의 조화를 통해 한국적인 서정시의 정형을 확립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을 수 있다. 김소월은 서구 시의 형식을 번안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 근대시의 형식에 새로운 독자적인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시적 형식은 전통적인 민요의 율조와 토속적인 언어 감각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250편이 넘는 그의 작품들은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균제된 시적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모든 작품들이 그 자체의 형식을 통해 완결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간결하면서 절제된 형식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그의 시들은 율조의 흐름에 무리가 없고, 내적인 호흡의 자유로움을 구현하고 있다.흔히 정한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소월 시의 정서적 특질을 규정하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민족적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김소월이 그의 시에서 즐겨 노래하고 있는 대상은 ‘가신 님’이거나, 떠나온 고향으로 모두가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만나기 어렵고, 다시 찾기 힘든 그리움의 대상을 끈질기게 추구하면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의 시가 보여 주는 정한의 세계가 좌절과 절망에 빠진 3?1운동 이후의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비극적인 상황 인식 자체가 현실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김소월은 그의 대부분의 시에서 서정시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를 중시하고 있다. 그는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그려내기 보다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 속으로 자연을 끌어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관서 지방의 방언까지도 그의 시에서 훌륭한 시어로 활용되고 있다. 일상의 언어를 전통적인 율조의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김소월의 시는, 바로 그러한 언어의 특성에 기초하여 민족의 정서를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적 언어의 토착성이라는 것은 그 언어를 바탕으로 생활하고 있는 민중의 정서가 언어와 밀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그의 시의 율조는 민중의 호흡과 같이하면서 유장한 가락에 빠져들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면서도 가벼운 음악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그는 초기에는 민요조의 여성적이고 서정적인 목소리의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후기작(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라면 등) 에서는 민족적 현실의 각성을 통행 남성적이며 참여적인 목소리로 기울었다.한용운이 일시적 부재로서의 ‘님’을 신념에 차서 기다린다면, 김소월은 님이 사라진 시대의 비장한 감회를 노래했따는 점에서 20년대 저항시로서 한용운과 비교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김영랑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난 김영랑은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등과 동인지 《시문학》(1930)에 참여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 창작활동을 보여준다. 그의 초기 시들은 『영랑시집』으로 묶여지고 있는데, 서정적 자아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비애의 정감을 섬세한 율조의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그의 시에는 슬픔이나 눈물과 같은 시어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과장적인 수사에 의한 영탄이나 감상에 기울지 않고, 오히려 균제된 언어로 표현되는 정감의 시 세계를 잘 보여준다. 김소월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율조가 시인의 내적 정서의 흐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김영랑의 경우는 시적 언어 자체의 음성적 자질과 연관된 리듬 감각을 살려내는 조형성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내 마음을 아실 이,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라는 두 시에는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한 시적 소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내 마음’이라는 시적 소재는 구체성을 지닐 수 없는 주관적인 세계이다. 이 주관적 세계를 감각적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시대적 상황의 변화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인 자신이 지켜온 섬세한 감각의 언어와 순수한 시 정신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지기 어렵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시기에 그는 인생과 사회에 대한 절망과 회의를 노래하면서 ‘죽음’을 강렬하게 의식했다. 이때의 ‘죽음’은 초기에 노래했던 비애의식이 아니라 ‘삶’자체에 대한 회의를 나타낸 것으로 일제 말기의 어려운 현실을 잘 보여주었다. 이 시기의 시는 ,를 거쳐 묘비명, 한줌 흙에 이르면서 운명론으로 기울어진다.독을 차고에서 ‘독’의 의미는 매우 상징적이다. 괴로운 현실 상황에 대면하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독’을 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무서운 각오는 결국 죽음이라는 자기 희생의 고통을 전제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면서도 지켜야 하는 ‘내 깨끗한 마음’이란 현실을 넘어선 절대적 가치의 영역에 속한다.이와 같은 시 경향은 해방이 되자 판이하게 바뀐다. 해방의 감격을 그대로 읊은 바다로 가자, 겨레의 새해 등을 발표하여 조국의 산천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과 새로운 조국건설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초기시의 섬세한 감각, 서정의 정조와 다른 적극적인 참여의 일면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들도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부족한 격정적 토로에 그쳤다.정지용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의 발전 과정에서 시적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들은 두 권의 시집 『정지용시집』,『백록담』으로 집약되고 있는데, 자기 감정의 분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1920년대의 서정시와는 달리, 시적 대상에 대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고 있다.정지용은 1930년대 중반에 그가 빠져들었던 종교적인 구도의 세계를 노래한 일련의 시들을 제외한다면 거의 일관되게 시적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종교적인 시들을 제외한 초기 시와 후기 시를 각각 감각적인 시와 동양적인 시라는 서 활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시법은 주관적 감정의 절제와 정서의 균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적이고도 감정적인 것들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사물과 현상을 순수 관념으로 포착하여 이것을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어린 딸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진 유리창과 같은 작품을 보면, 이와 같은 감정의 절제된 표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정지용의 시에서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균제미는 시집 백록담에 이르러 거의 절정에 이른다.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장수산, 백록담과 같은 작품에서는 시적 심상 자체가 일체의 동적인 요소를 배제한다. 그리고 명징한 언어적 심상으로 하나의 고요한 새로운 시공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 이러한 시적 방법에서 우리는 정지용이 체득하고 있는 은일의 정신을 보게 된다.정지용의 시가 보여주는 절제된 감정의 세계는 섬세한 언어 감각을 통해 가능해 진다. 이 언어 감각은 물론 시적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것이다. 정지용은 대상에 대한 언어적 소묘를 통해 하나의 독특한 시적 공간을 형상화한다. 이 시적 공간이 바로 일제 말기에 정지용이 만들어낸 이른바 ‘산수시’의 새로운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시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와 동화하거나 합일화하기를 소망하였던 자연관에서 벗어나, 자연과 거리를 둠으로써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는 자연을 새롭게 발견한다.정지용은 자신의 주관적 정서를 철저히 배제하고 감각적 언어로 시적 대상을 소묘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자연 그 자체를 공간적을 재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인간이 범접하지 못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정지용은 자연 그대로의 질서와 자연 그대로의 미를 추구한다. 정지용이 그의 시를 통해 발견한 이러한 자연은 어떤 의미에서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이상이상의 시에 대해서는 그가 남겨놓은 작품의 양보다 훨씬 많은 여러 가지 주석이 붙어 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그가 살았던 짧은 생애보다 훨씬 이채로운 해설이 따라 붙는다. 그는 희대의 천재가 되기도 하고, 전위적 였다.
    학교| 2010.06.04| 6페이지| 3,000원| 조회(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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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현대시사 오세영 외 3장. 요약
    3장 근대시의 전개(1919년~1931년)1. 서구적 시풍과 근대시의 전개한국 근대시는 ‘1910년 한일 병합에 의한 조선 왕조의 국권 상실’과 ‘새로운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인해 시대적 전환 열망하는 대중적 요구가 크게 확장되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생성되었다.? 이 시대의 시사를 이해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① 시대 사상의 변화: 20세기 초에 대두된 사회사상은 일본을 통해 유입되는 서구 사조. 전통적 사유와 방법이 그 근본에서 부정되는 시대였으므로 서구 사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② 사회?문화적 여건 변화: 대표적인 것이 활자 문화의 도입. 이는 대중문화의 확대를 뜻하며 다양한 잡지 발간과 더불어 지식 교육의 대중화로 구체화된다.③ 개화기부터 시작된 국문 운동의 가속적인 전개: 말과 글이 일치하는 한글 전용 시대.④ 민감한 동시대적 영향 관계 형성: 어떤 하나의 작품은 그 홀로 존재하거나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다른 시인이나 다른 작품과 깊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동시대적 질서를 구성하게 됨.? 청소년 종합지 《소년》에 최초의 ‘신시’로 평가되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 발표.? 1918년 창간된 《태서문예신보》에 프랑스 상징주의 계열의 시들을 비롯한 서구 문학의 여러 경향이 김억, 황석우 등에 의해 소개되면서 작품 번역이 이루어짐. → 서구 문학의 새로운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당시 문학을 지망하던 젊은 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침.? 1910년대 후반~1920년대 중반한국 시인들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감상적이며 낭만적인 취향을 모방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성을 개척→?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이 결성되면서 리얼리즘 계열의 시가 창작? 1926년을 전후하여 정지용, 임화, 김여수 등이 다다이즘, 포멀리즘, 초현실주의 시들을 모방→? 193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시가 등장결과적으로 첫 단계에서는 프랑스 상징주의 계열의 시들이, 다음 단계에서는 리얼리즘 계열의 시들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모더니즘박영희 등이 창간한 시 전문 동인지? 백조(1922) : 홍사용, 박종화, 현진건, 이상, 나도향, 박영희 등이 창간한 문예 동인지? 금성(1923)? 영대(1923)? 주요한《창조》 창간호(1919.2)에 「불놀이」등의 작품을, 그리고 일본 유학생 기관지 《학우》 창간호(1919.11)에 「샘물이 혼자서」, 「시내」등을 발표.종전의 최남선이나 이광수가 보여 준 계몽적인 틀을 벗어나 있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새로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김억《태서문예신보》를 통해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다수 번역?소개. 특히 《폐허》,《백조》등에 번역?소개한 시들을 모아 1921년 한국 최초의 번역시집인 『오뇌의 무도』를 간행.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 가운데 특히 베를렌의 시에 경도되었는데 김억을 통해 소개된 그의 「작시론」은 당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커다란 공명을 불러일으켰다.‘아름다운 말을 얻으려 하지 말고 말을 가벼이 하여 음악적인 효과를 목표로 하라’는 「작시론」의 창작 원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강한 전파력 발휘.? 황석우일본 유학 시절 당시 그곳에서 유행하던 상징시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시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한편 이러한 취향을 반영한 시들을 발표.「벽모의 묘」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실재 고양이가 아니라 푸른 털의 고양이로서 신비하고 몽환적 분위기와 관능의 세계를 보여 줌. 이는 3?1운동 전후의 불투명한 시대적 상황과 황석우 개인의 우울한 현실 인식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상징주의 시들의 특징들인 음악성, 언어의 형상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부정적 측면만 수용하게 된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의 상징주의 수용의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이장희「봄은 고양이로다」: 감각적 관능성에서 보다 명징한 이미지의 세계로 나아감. 황석우의 시와 같이 고양이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섬세한 언어적 감각에 의해 묘사된 구체적 이미지가 돋보인다. 감정적 표현을 객관적 이미지로 변용시켜 절제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은 주정적인 감각을 새로운 감각으로 변혁시키부서진 개인들의 폐허화된 삶의 공간을 메아리치면서 이념적 논리를 넘어서는 영혼의 절대성을 표현한 시로 평가하게 한다.? 변영로서정성과 사상성이라는 양극을 대표하는 김소월-한용운 사이의 시인.1922년 4월 《신생활》에 발표된 「논개」는 민족적인 의분을 서정적으로 승화시킨 변영로의 대표작이다.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논개라는 구체적 인물은 독자들의 공감을 깊게 불러 일으키는 매개항이다.? 오상순한용운과 더불어 시에 사상을 불어넣었다. 변영로-오상순으로 이어지는 의미망은 현실주의를 지향하는 프롤레탈리아 사상과는 달리 불교적, 선적 명상과 사유를 통해 우리 근대시에 내적 깊이를 심화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적 의미를 갖는다. 오상순은 ‘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에서 밤에 호소하여 생명을 얻는다는 시적 상상을 비친다. 이는 폐허에서 새로운 창조의 불씨를 찾으려는 젊은 시인들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용운피압박 시대를 살아야 했던 20세기 한국의 정신적 기둥. 그의 다면적 특성이 그의 작품에 고유한 문학적 힘을 불어 넣어 준다.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1926)의 표제시이기도 한 「님의 침묵」은 님이 떠나간 후 침묵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화자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만남과 이별의 변증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용운의 시적 사상은 불교적 사유를 통해 축적된 것으로서 이를 통해 만남은 이별이 되고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계기가 된다는 역설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이를 당대 상황과 연결하여 말하자면 그것은 조국을 잃어도 다시 조국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이 배어 있는 시적 상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불교적 사유이기는 하지만 당대의 상황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인생의 원리이다.? 이상화이상화의 초기 시들은 유미적이고 퇴폐적인 《백조》 동인들의 시적 특성을 그대로 공유하고 있다. 「환몽병」,「말세의 희탄」,「이중의 사망」 등과 같은 열정적인 초기 시에서 한걸음 나아가 우리 시에 현실 인식과 남성적 맥박있을 때 오히려 시단의 심층에서는 한국적 주체성에 대한 탐구가 한층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었다.1926년 최남선의 최초의 개인 시조집 『백팔번뇌』가 간행된 시기를 전후하여 프로 문학에 대응하는 국민문학파의 논리가 시조 부흥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었다.「조선 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조선문단》 16호, 1926.5)에서 최남선은 “시조가 조선의 국토, 조선인, 조선심, 조선 음률을 통해 표현한 필연적 양식”이라고 정의하면서 국민문학의 정신을 시조 형식에서 찾으려고 했다.1920년대 중반의 시조 부흥 운동은 최남선에 뒤이어 이병기, 조운, 이은상 등에 의해 시조 개혁 운동으로 전개, 이는 단지 구투의 시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의미의 정서와 감각이 가미된 시조를 부흥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정형시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가 있다.? 이병기시조 부흥 운동에 동참하여 현대 시조의 독자적인 미학을 확보하였다.이병기 시조의 특징은 관념을 직접적으로 토로하지 않으면서 대상에 대한 명료한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 이는 그가 내세웠던 실사구시의 시작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1930년대 이후 이병기의 시조는 독자적인 미학을 성취하기에 이르렀으며 『가람 시조집』(1939)은 이러한 성과를 보여 준 것으로 평가된다.? 조운‘가갸날’과 시조 부흥 운동을 국민 문학의 이론적 근거로 내세웠으며 내용이나 기교상의 혁신을 통하여 현대적 감각의 시조를 새롭게 시도했다. 그는 전통적인 아어체를 거부하고 일상적 화법을 구사했으며 다양한 형식의 실험을 통해 시조의 도식성을 극복하고자 했다.1930년대 이후 조운의 시조는 더욱 발전하여 간결한 이미지 구사와 절제된 묘사를 통해 현대 시조의 한 전범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인보민족 사관 또는 국학 정신에 바탕을 둔 국토 기행을 통해 민족 정신을 고취하는 경향의 시조를 썼다. 그의 시조는 파격적인 형태 실험이나 풍류 정신과는 달리 규범과 격식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시조의 정도를 보여 주었다고 할 것이다.* 시조919년 3?1독립운동, 1926년 6월 육십만세운동은 역사적으로 조선 왕조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한다. 그동안 500년을 지켜왔던 제도와 가치관은 붕괴되었고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 나아갈 새로운 제도와 가치관의 확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프로계열 시인들은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방향성을 정했다. 사회주의 문화 단체를 표방한 ‘염군사(1922)’와 힘의 예술을 추구한 ‘파스큘라(1923)’는 1925년 8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을 결성, 1927년 9월 조직의 확대 개편을 통해 계급 문학 운동의 실천 이념을 분명히 제시하면서 제1차 방향 전환을 시도.민족 진영의 ‘조선어 연구회’는 1926년 11월 4일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맞이하여 ‘가갸날’을 정하고 농촌의 문맹 타파 운동을 전개. 이는 한글을 국민운동의 중심에 내세워 새로운 국민 운동과 문화 운동을 전개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1927년 1월에는 좌우를 비롯한 민족 전선이 연합하여 ‘신간회’를 발족, 이는 서로 다른 지향성을 가진 세력들의 연합인 동시에 민족 역량의 총결집이라는 점에서 민족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1920년대 초반의 다종다기한 문학적 경향들은 세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전통적 서정시파(민요시, 시조부흥운동)아방가르드적 모더니즘파프롤레타리아적 카프파? 해외문학파의 서구문학 소개이하윤, 김진섭, 손우성, 정인섭 등 유학생들은 다른 한편에서 1926년 10월 ‘해외 문학 연구회’를 결성, 1927년 1월 문예지 《해외문학》을 발간. 서구 문학은 이들 서구 문학 전공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활동이 모더니즘 시를 발전적으로 전개시키는 촉발점이 되었다. 해외문학파의 이런 역량은 서구 문학이 한국에 전파되어 뿌리내린 초석이 되었다.? 다다이즘1924년 한국에 처음 소개. 전통의 부정을 내세운 고한용은 다다이즘에 대한 개념적 정의와 더불어 문학 운동으로서의 다다이즘을 소개, “따따는 일체를 부정한다, 모든 것에 절망한
    학교| 2010.06.04| 10페이지| 2,500원| 조회(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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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종호 시란 무엇인가
    숨어있는 부호-숨어있는 인용부호-모든 사람들의 발언에는 소속한 언어공동체의 관습과 가치관이 배어 있게 마련이다. 소설 ‘나목’의 여주인공 또한 절감하고 있는 ‘말의 닳아 있음’에 모든 시인은 민감하다. 그것을 극한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 상징주의 시인들이다. 닳아빠진 말에 절망하여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음악을 동경하고 그 언어 등가물을 마련하려 독자적인 시적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그러나 때묻고 닳아빠진 언어는 시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모든 낱말에는 무수한 선인들이 발음하고 발음했다는 뜻에서 보이지 않는 인용부호가 숨어 있다. 시인은 사장된 인용 부호를 특정 문맥에서 되살려 자기 언어에 풍부한 암시성과 두겹, 세겹의 울림을 더할 수 있다. 그래서 때묻고 닳아빠진 말이 아무도 써보지 않은 슬프고 진한 어휘로 변용된다. 낯익은 것이 낯선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보들레르의 ‘이방인’을 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 얼마쯤 바뀌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가족, 친구, 조국과도 담을 쌓고 황금을 거부하며 불멸의 여인을 사랑하겠다는 유미적 예술가를 구현했다. 의도적인 인유든 아니든 복음서의 대목이 잠재의식 수준에서 잠복해 있다가 집필과정에서 명시화 되었다는 가능성이 있다.복음서에 대한 암묵적 언급을 도외시하더라도 우리들의 작품 이해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인용부호를 감득하는 것은 작품의 의미를 더욱 극명하게 해준다. 훈련된 문학독자의 소양 중 하나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인용부호의 자리에서 희미한 부호의 윤곽을 찾아내어 겹친 목소리를 감지하는 능력일 것이다.-문학적 과거와 그 의식-말의 성격상 또 시가 시를 낳는 다는 성격상 모든 시는 알게 모르게 선행 시편을 딛고 서 있게 마련이다. 이른바 상호 텍스트성, 대화이론으로 이는 시인들이 의지하고 있던 전통이요, 관습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을 의식적 혹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 않느냐의 여부일 것이다.엘리엇은 20세기 시인으로 17세기 시인들의 많은 의 고전적 에세이 ‘얘기꾼과 소설가’에서 그리스의 최초의 얘기꾼은 헤로도토스라고 말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이집트의 왕 프삼메니투스가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에게 패배하여 붙잡혔을 때, 프삼메니투스가 캄비세스 때문에 자기 앞에서 딸이 하녀 복장을 하고 물동이를 가지고 우물로 가는 모습과, 아들이 처형장에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프삼메니투스는 그것을 보고도 전혀 울지 않고 꼼짝않고 서있었다. 그러나 거지 같은 몰골의 늙은 하인 하나가 포로 행렬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바로 그 순간 굉장히 슬퍼했다.프삼메니투스가 자신의 자식의 비극적 모습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다가 정작 늙은 하인의 모습을 보고 슬퍼한 모습은 무엇일까? 이어서 벤야민은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리며 이 이야기가 아무런 설명 없이 사실을 보고만 하기 때문에 프삼메니투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놀라움과 깊은 명상을 자아내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에서 얘기의 본질을 읽어낸다. 정보란 것은 그것이 새로웠던 바로 그 순간에 가치를 상실한다. 그러나 얘기는 스스로를 완전히 소모하지 않는다. 얘기는 자신의 힘을 유지하며 집중하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가치를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것은 프삼메니투스의 삽화의 해석에 있어서도 성급한 단정보다도 여러 해석 방식에 대한 꼼꼼하고 세심한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가까운 당대적 경험의 검토를 통해서 사람들은 옛 사람의 경험을 확인다. 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해석하고 이해함에 있어서 그것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떠한 방법이라도 동원하고 활용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모든 문학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며 이러한 의미와 해석의 교호작용을 통해 문학작품은 탕진되지 않는 의미를 부가적으로 축적하게 되는 것이다.-맹아적 힘-지금까지 심리적 분석이나 설명이 배제된 간결한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생성하고 발전하는 ‘맹아적 힘’에 주목하였다. 시에서도 군소리가 배제된 간결한 이미지나한 프삼메니투스의 슬픔이 그렇듯이 갖가지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존재가 그대로 의미가 되어 있는 이러한 시편의 이해는 독자 쪽의 소홀치 않은 해석능력을 전제로 한다. 이때의 해석 능력은 여러 가지 지력과 감응능력을 요구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축적된 문학경험 특히 독시 경험이다.정현종의 ‘송아지’와 스티븐스의 ‘단지의 삽화’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정현종의 시를 읽은 독자에게 ‘단지의 삽화’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갓난 송아지의 뛰놂이 세상마저도 젊게 만든다는 작은 것- 큰 것의 대조는 스티븐스의 삽화에서 더욱 극대화되면서 조그만 단지가 테네시주와 대비되는 것을 설명해 준다. 즉 여기서 ‘상호부조’가 일어난다. 상호부조란 앞선 문학 경험이 뒤의 문학 경험을 돕는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것은 고전 작품과 현대적 작품 겹쳐 읽기, 두 개의 현대적 작품을 겹쳐 읽기를 함으로써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독자는 다른 작품과 비교하여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리하여 텍스트가 많을 수록, 즉 독시 경험이 많을 수록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시와 정치적 전언-전언의 전경화-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심리적이고 피부적인 불신이 널리 퍼져있음에 반하여 시인 작가가 공언하는 문학적 발언은 대체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의 경우에도 우리는 불신의 기술을 적절히 적용하고 활용해야 한다. 시적 전언이 시의 전부가 아니며 중요 부분도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먼저 임화의 ‘기빨을 내리자’에서 “깃발을 내리자”고 호소하는 시인은 정의와 자유의 편에 선 투사처럼 보이고, 대중들에게 ‘늙은 종들’만 제거하면 현실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부추기며 즉흥적 행동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즉행적 효과는 현실의 과도한 단순화에 힘입고 있다. 더불어 대중 앞의 시인은 정의와 자유의 편에 선 투사처럼까지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전언과 즉행성 유도의 시인들이 호소하는 이상적인 독자는 이러한 호소에 즉행적으로은 글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떤 결론이 날지 정해놓지 않고 쓰는 과정에서 발견의 기쁨을 얻는 것인데, 전언의 시는 결론이 정해져 있어 어떻게 논리적으로 말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만 있을 뿐이므로 핵심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되지 못한다. 이는 오히려 논리적인 글쓰기에 가까운 것이다.정치시인 가운데서 유일하게 해방후파로 시적 성취에 이른 사람은 설정식이다. 그는 읽을만한 시편 ‘제신의 분노’에서 ‘구약’을 빌려 해방 직후의 상황을 질타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시적 화자가 아랫것에게 질타하고 지시하고 위협하는 투로 되어 있어 독자 편에서의 사고나 자유로운 판단은 처음부터 그 가능성이 배제되어 있다. 독자에게 주체적으로 판단할 기회는 애초에 없다. 결론적으로 이때 가장 큰 미덕으로 떠오르는 것은 이미 결정된 판단에 대한 교조적 충직성인 것이다.명시적이고 지령적인 정치적 전언이나 미리 책정된 선과 정의에 대한 교조적 충직성이 시의 우아함을 배제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여러 시편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를 정치적 전언이나 편협하게 정의된 도덕적 열정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성취에 대한 작품적 고려 없이 일정한 정치적 관점에서 그 전언을 평가하는 것은 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당화 될 수 없다. (주체적, 창조적 독자 강조)시적이라는 것-음률성-운문성을 의식하고 지향한 현대시인들이 실천한 것은 적절한 길이의 행갈이를 통한 음률성의 확보였다고 생각된다. 특히 구비적 전통에 대한 청각적 충실을 도모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김소월에게 있어 음률성은 가장 중요한 시적 자산이 된다. 정지용은 2행 단위로 띄어쓰기를 선호하였고 이러한 시형으로 ‘고향’, ‘해협’, ‘춘설’ 등 수많은 명편을 남겼다. 이러한 2행 단위 띄어쓰기 시형은 누구나 한번쯤 시도해 본 시형이다. 이러한 시형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크게 퍼진 바 있다.요즘은 행갈이 사이를 띄어쓰지 않는 시형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시행이 제가끔의 음률성을 확보하고 적 기능-그러나 이러한 음수율에 관련된 우리의 음률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대시는 산문시적 요인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여느 산문과 산문시를 구분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문학 연구에 언어학을 적용한 러시아 형식주의나 그 흐름의 이론은 하나의 해답을 시도한다. 그것은 야콥슨의 이론을 이해함으로써 알 수 있는데, 우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가 말하는 의사소통의 여섯 가지 요소를 이해해야 한다.일상의 모든 의사소통은 발신자, 수신자, 메시지로 성립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접촉을 필요로 하며, 메시지는 일정한 코드 속에 담겨있어야 한다. 또 메시지는 발신자와 수신자 쌍방이 이해하고 있는 맥락을 지시해야 한다. 이 맥락이 메시지로 하여금 의미있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사소통이 메시지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을 때 지배적인 것이 기능이다. 메시지 단어들 자체가 우리의 주의력 속에서 전경화될 때 시적 기능이 지배적이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메시지가 소리의 패턴이나 어법이나 구문에 주의를 당겨서 메시지 자신을 강조하는 경우인 것이다. 그리하여 기호와 대상 사이의 근원적인 이분법을 심화시킨다고 야콥슨은 말한다.이와 관련하여 야콥슨은 ‘시적 기능은 선택의 축에서부터 결합의 축에로 등가의 원리를 투사하고, 유사성이 인접성에 덧붙여지는 시에 있어서는 어떠한 환유도 얼마쯤 은유적이며 어떠한 은유도 얼마쯤 환유적’이라고 한다. 그러한 선택에 의해서 시에서 쓰인 모든 단어들은 동등한 가치를 갖게 되며 그 사이의 밀도가 높아지고 수신자의 주의를 그 형태상의 특징 쪽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지시적 의미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따라서 아무리 산문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산문과 비교하여 시에서는 기호의 촉지성이 강화되어 있는 것이다.가령 랭보의 시에서는 유사성을 찾을 수 없는 비유는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지시적 기능이 극소화되는 만큼 언어의 밀도는 두꺼워지고 기호의 촉지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
    학교| 2010.01.20| 8페이지| 2,000원| 조회(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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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는 가끔 여관으로 들어온다 - 윤대녕
    윤대녕의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은 내게는 너무 생소한 소설이다. 기독교인으로써 불교에는 문외한이라 ‘운수납자’니, ‘법당’이니, ‘하처래하처거’니 내게는 너무 생소한 소리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소설을 전반적으로 아우르고있는 ‘십우도’와 ‘소’는 더욱 더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미지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 대는 만큼 이 소설 속의 배경도 점점 비 속으로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갔다.이 작품 속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나온다. 그것은 나, 금영, 금영의 아버지, 그리고 밀짚모자를 쓴 여자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가운데 마치 이 네 명의 인물이 같은 인물같이 느껴지곤 했다. 금영이 소를 찾아 헤매이듯이 나는 금영을 찾아 헤매이는 인물이었고, 금영의 아버지 또한 방랑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인물로 금영처럼 무언가를 찾아 헤매이던 사람인 것 같았다. 밀짚모자를 쓴 여자는 군 부대로 누굴 면회하러 가던 길인 모양이지만, 그녀가 춘천으로 나가면 미시령을 넘어 양구로 가는 버스가 있을텐데 그곳으로 가지 않고 ‘나’가 있는 곳에 남는 것을 보아 그녀 또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이던 여자였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비슷한 인물을 만든 ‘윤대녕’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나는 여러 가지의 소설적 맥락과 단서를 통해서 그것을 파악해보자 한다. 그리고 나의 생각의 흐름대로 이 리포트에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금영’은 “네 에미는 소가 되어 물 속으로 갔다. 그뿐이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아라. 누구나 먼 것이 있어야만 산다.”라는 아버지의 죽기 전의 말을 듣고 입산한다. 그때부터 그녀는 소를 찾아다니게 된다. 그녀에게 소는 법당이자, 마음이다. (p.283) 그녀가 마음의 법당을 찾아 헤매일 때 ‘나’는 우리 육신이 법당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녀는 누가 지어 놓은지도 모르는 법당이라며 육신을 부정한다. 이러한 ‘나’의 의문은 작가의 의문이기도 하다.잠깐 아버지가 한 말을 짚어보고자 한다. ‘먼 것’이란 무엇일까. 나는 ‘거리가 멀다’의 먼 것, ‘눈이 멀다(보이지 않음)’의 먼 것, ‘내세를 말하는 상징적’인 먼 것이라는 의미를 추정해보았다. 세 가지를 적어보니 결국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즉, 아버지 또한 ‘금영’처럼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을 것이고,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물 속으로 간 소, 금영의 친어머니, 또한 법당도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죽음으로써 그것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법당을 찾는 길이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나’는 금영이 법당을 청평사를 간다고 했을 때, 그녀의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 뒤에서 울려 나오는 차갑고 축축하고 어두운 빛깔의 묘한 떨림을 감지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가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는 청평사에 죽음을 맞이하러갔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그는 청평사에 뒤늦은 발걸음을 하기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 우리 육신이 법당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한 그가 이 소설을 읽어낼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아닌가 하고 나는 이쯤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는 그의 마음속에 굳건한 그녀라는 법당 하나를 지어놓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는 범속한 만큼 사랑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멀리 있는 금영과의 사랑을 꿈꾼 것이다. 그것 또한 끊임없이 찾아 헤매어야 할 사랑인 것이다.그러다가 청평사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밀짚모자를 쓴 그녀를 만나게 된다. 남춘천역에서 내려 소양호에 도착한 ‘나’는 청평사에 가기 위한 막배를 놓치고, 우연찮게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는 ‘십우도’ 이야기를, ‘금영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게 된다. 그녀는 마치 자기의 이야기인양 심취해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자신이 금영이가 ‘법당’을 찾아 헤매이듯이 금영이라는 ‘법당’을 찾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녀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녀가 멀리 있음으로 해서 그녀가 자신에게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음 알게 되었다. 결국 그도 그녀와 같이 ‘먼 것’을 통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 이후, 그와 밀짚모자의 그녀는 어떤 알지 못할 느낌에 이끌려 함께 여관을 향해 걸어간다. 여관을 가는 도중에 지독한 안개를 만난다. 그리고 뿔피리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마치 전생에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느끼게 된다. 그녀가 “여긴 나그네를 태운 소가 가끔 들어올 법한 그런 곳이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무엇인가 놀라운 느낌이 나에게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이야기에 의하면 ‘소’는 ‘법당’을 의미하는데 그러한 ‘법당’이 들어올 만한 곳이 ‘여관’이라니.다시 돌아가보자면, 이 소설의 결말을 예측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먼저 금영의 양어머니이다. 그녀가 경남 양산에 잇는 통도사의 말사인 내원사에서 행자로 머물다 사미니계를 받고 집으로 내려왔을 때, 승복을 입은 그녀를 본 그녀의 양어머니는 그녀를 붙잡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사건은 차치하고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 떠나려는 그녀에게 “이년아, 여기가 네 법당이야!”라고 외친다. 그녀가 찾아 헤매이는 ‘법당’이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외침이었을 것이다.또한 금영의 부친이 그녀가 다섯 살 나던 해 제 딸을 업고 청평사에 찾아갔을 때 주지 스님이 부녀에게 “지금 등에 부처를 업고 어데 와서 부처를 찾습니까? 하래처하처거라 했으니 그저 하룻밤만 요사채에서 머물고 내려가도록 하세요”라고 하는 말,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불가의 말이 있으나 스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님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금영의 부친이 찾는 것이 청평사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독후감/창작| 2009.06.25| 2페이지| 1,500원| 조회(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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