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학입문- 목 차 -카롤링거 르네상스대공위 시대아비뇽 유수봉신은대지 제도길드실재론장미전쟁인클로저(Enclosure)카롤링거 르네상스카롤링거 르네상스에 대해 알아본 이유- 15세기 르네상스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9세기쯤에 일어난 르네상스는 처음 들어본데다가 뒤에 일어나는 르네상스와 헷갈리지 않게 정확히 알고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내용카롤링 르네상스는 프랑크 사회를 그리스도교적인 사회로 변형시키려는 동기에서 출발했으나 필연적으로 문화 부흥을 수반했다. 샤를마뉴는 교리 교육을 위해 수도원과 교회의 부속학교를 설립하고 라틴어를 교육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유럽 각 지역으로부터 알퀸(Alcuinus), 부제 파울루스(Paulus), 테오둘프(Theodulph) 등 학자들을 초빙하고 자신도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해독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영국 출신의 수도사인 알퀸은 샤를마뉴 궁정에서 15년 동안 머물면서 학자들을 지휘하였다. 그는 학문의 영역을 3학과 4학과(문법 ·수사(修辭) ·논리의 3학과, 산술 ·기하 ·음악 ·천문의 4학과)로 구분하였는데 이러한 구분은 그 후의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샤를마뉴 시대의 학문의 본거지는 수도원들이었으며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은 수도사들이었다. 그러나 샤를마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인민은 여전히 문맹이었으며 광범위란 지식인 계층은 형성되지 않았다. 9세기의 창조적업적은 보잘 것 없었다. 카롤링 학자들은 방대한 양의 시를 쓰고, 수도원은 많은 연대기를 작성했으나 내용적으로는 무미건조하면서 고전문화의 형식적 모방에 그쳐 창조적인 창작에 이르지 못했다. 그 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문화부흥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 성과가 그리 좋지는 못했다. 이와 같이 당시의 업적은 매우 한정적이었으나 고전연구와 문학은 어느 정도 부활했다. 9세기 중엽에는 유럽의 전 지역에 고전문학과 교부들의 저작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인 집단이 있었다. 수도사들은 노동의 의무를 책을 필사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그리자에게 과세하는 것은 전례가 있었지만,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는 교황의 사전 동의를 얻은 성직자 과세만을 인정한다고 결정하였다. 교황지상주의의 철저한 신봉자인 보니파키우스 8세는 자신의 허락을 결여한 필립의 행위를 교황권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였고 1296년 2월5일 교서 [재속의 사제에 명함](Clericis Laicos)을 공포하여 교황의 재가 없이는 성직자 과세의 금지와 이를 준수하지 않는 군주를 파문에 처하겠다는 강경책으로 필립을 굴복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는 일개의 무력한 봉건군주가 아니라 강력한 군주권을 확보하고 있었던 필립에 대한 과소평가이자 동시에 시류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오판에 있었다. 필립은 파문의 위협을 일축하고 성직자 과세를 강행하는 한편 프랑스로부터 금과 은의 유출을 금지함으로써 교황청에 재정적 압박을 가하는 역공을 취했으며 또한 당시 보니파키우스와 심각한 알력을 빚고 있었던 로마의 콜로나(Colonna) 가문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완고한 교황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사면초가에 봉착한 보니파키우스는 결국 1297년 7월 한 교서를 통하여 프랑스 국왕은 국가의 위기 여부를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자의적으로 성직자에 과세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그것은 교황지상주의자 보니파키우스의 치욕적인 패배였고 또한 교속관계의 한도 변화를 알리는 신호였다.보니파키우스의 양보로 일단락된 양자의 경합은 또 다른 문제로 재연되었다. 1301년 필립은 자신이 심기를 건들인 교황의 사절이자 남 프랑스의 한 주교였던 베르나르 드 세세(Bernard de Saisset)를 반역의 명목으로 투옥시킨 후 보니파키우스의 승인을 요구하였다. 과거의 쓰라린 패배를 곱씹으면서 교황지상주의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보니파키우스에게 필립의 행보는 도저히 승복할 수 없는 교황권에 대한 침해였고 나아가 교회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율권에 대한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그는 베르나르 드 세세의 무조건적 석방을 요수하고 나아가 성직자 과세와 관련된 종전의 양보를프랑스왕의 강력한 간섭을 받았으며, 로마로 들어가지 못한 채 프랑스에 체류하게 되었다. 교황은 초기에 아비뇽 북동쪽에 있는 카르팡트라스에 정청을 설치하고 아비뇽에 거주했으나, 제4대 클레멘스 6세 때인 1348년 프로방스 백작 겸 시칠리아 여왕으로부터 아비뇽을 사들여 파리 왕궁을 모방한 호화스러운 교황청 궁전을 건조하였다. 제6대인 우르바노 5세 때 일시 로마로 복귀하였으나 교황청의 주요 기능은 아비뇽에 잔류하였고, 그레고리오 11세에 의해 본격적인 로마 복귀가 이루어질 때까지 역대의 프랑스인 교황이 독자적인 프랑스적 교황청 행정을 담당하였다.일반적으로 유수 시대는 중세 교황권의 몰락기로 간주하고 있으나 근년의 연구에서는 클레멘스 5세에 의한 교회법, 교회재판 제도의 확립, 제2대 요한 22세에 의한 교황청 재정·징세기구의 재정비 등 근세적 성격의 혁신이 있음을 인정하고, 궁전 건축을 비롯한 미술 면에서의 번영과 휴머니즘 학회의 보호·장려 등의 측면을 인정하여 이 시기를 재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분열기인 1378년 로마에서 우르바노 6세가 선출되자 프랑스인파(人派)는 이에 불만을 품고 대립되는 교황 클레멘스 7세를 내세워 또다시 아비뇽에 교황청을 열어 1417년까지 존속시켰다. 14세기는 군주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러한 형세전환은 종교개혁 기에 더욱 가속화되면서 근대 유럽의 질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봉신봉신에 대해 알아본 이유- 우리나라에 이와 비슷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봉신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어서 찾아보게 되었다.내용봉건사회에서 주군에게 군사적인 봉사와 충성을 서약하고 그 대가로 봉토를 받던 제후(諸侯)·배신(陪臣)·가신(家臣)을 말한다.봉토를 받지 않고 근위 기사로 궁에서 사는 봉신도 있었다. 왕에게 직접 봉토를 받는 직속봉신은 봉건사회에서 중요한 귀족계급을 형성하였으며, 그들은 다시 자신의 봉신들에게 봉토를 나누어주었는데 이것을 부속토지라 하였다. 봉건계약에 따라 영주는 자신의 봉신들을 보호하고 봉토를 지급하는 대신 봉토와 관련된 군사들이 전사나 종자에게 증여한 것은 주로 동산(가축·무기·전리품 등)이었고, 그것도 전공 ·충성 등에 대한 보상적인 성격의 것이었으므로 베네피키움과는 다르다. 베네피키움이 출현한 7,8세기는 북 갈리아(라인강·루아르강 사이 지대)를 중심으로 영주직영지, 농민보유지로 이루어진 고전장원이 형성된 시기이다. 12∼13세기는 봉건사회에 있어서의 농업상의 기술혁신과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향상이 선구적·산발적으로 나타난 시기이다. 그와 함께 토지지배 형태가 모든 인간관계를 규정하게 되었는데, 정치적·군사적 관계(主君·臣下의 관계, 즉 주종관계를 매개하는 토지가 베네피키움이고, 사회경제적인 영주·농민 관계를 매개하는 것이 프레카리아(Precaria:장원에 있어서의 농민보유지)였다. 그러나 당시 두 가지 말이 혼용되어(프레카리아는 일대한의 토지라는 뜻이지만 사실상은 세습), 모두 토지의 사용수익권자(신하·보유농)가 명목적인 증여자인 국왕·교회 또는 세속유력자와 어떤 정치적·사회적 관계를 갖고 있음을 표시할 뿐이었다.11∼12세기에 있어서의 봉건사회 확립, 기사·농민의 신분의 엄격한 구별과 함께 베네피키움은 봉토, 프레카리아는 농민보유지로서 뚜렷이 구분되었다.길드길드에 대해 알아본 이유- 많이 들어는 본 단어이지만 정확한 단어의 개념을 알지 못했지 때문에 정확하게 알고 싶었고, 길드에 속하는 도제나 직인 같은 개념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서 찾아보게 되었다.내용상인과 수공업자들이 그들의 공통의 이익을 위해, 서약을 통해 결집된 인적집단을 말한다. 중세의 상인과 수공업자는 길드라는 조직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서 상업과 생산에 종사했다.상인 길드는 이미 11세기에 그 모습을 나타냈으며, 수공업자 길드는 이보다 늦게 12세기 말까지는 대부분의 도시에 형성되고 13세기에는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상인길드는 원래 원격지 시장에 가서 거래를 하는 상인들의 공동방위와 거래선의 확보를 위하여 필요할 때마다 결성된 조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인들이 정주하면서 새로운 목적에 입각한 항구능하였고 그 구성원은 항상 연대주의에 입각해서 결합되고 있었다.수공업자 길드의 조직으로 장인(master), 직인(journeyman), 도제(apprentice)라고 하는 엄격한 계층 서열제는 주로 기술 및 경영면의 질서였다. 이중에서 장인은 도제와 직인을 양성하는 독립 경영자였고 사회적인 경험과 기능의 보유자였다. 이러한 장인만이 수공업자 길드에 가입할 수 있었다. 도제는 일종의 견습공으로, 장인 밑에서 일정기간 동안 기술을 익히면 기능공인 직인이 되었다. 직인은 장인으로부터 급료를 받으며 본격적인 기술 연마를 하고, 독립할 단계가 되면 그의 기술을 증명하기 위한 장인작품(masterpiece) 시험을 거쳐 장인 자격을 획득했다. 도제에서 장인에 이르는 수련기간은 영국에서는 7년, 프랑스에서는 6~8년, 독일에서는 4년이었다. 이들은 일정한 기간에 기술을 습득한 후 장인작품의 시험을 거쳐 장인 자격을 취득하였다실재론실재론에 대해 알아본 이유- 철학적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단락을 읽으면서 잘 이해도 되지 않았고,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해낸 관념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내용인식론(認識論)의 사고방식으로 의식 ·주관과 독립된 객관적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올바른 인식의 목적 또는 기준으로 삼는 입장이다.관념론(觀念論)과 대립되는 입장이지만 보편개념의 실재를 인정하는 의미에서는 대립되지 않는다. 즉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의 스콜라신학의 정통파, F.브렌타노, B.볼차노, E.후설 등의 현상학이나 A.마이농 등의 대상론(對象論)의 입장과 같이 개물(하나하나의 책상이나 삼각형의 도형 등)의 실재를 인정하는 입장도 실재론이라 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은 경험적 실재로서의 개물과는 다른 초월적 관념론적 대상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관념론적이다. 그 때문에 이 경향은 개물 이외에 보편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명론(唯名論)과 대립되고 용어로서의 ‘실념론(實念論)’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실재론에서는 보편적인 문제는 별도로 하고 다음 입장과 문제를 지적할다.
서양문화사서론본론1) 영화를 기준으로 한 알렉산더2) 영화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알렉산더3) 헬레니즘 문명의 전파와 알렉산더결론참고문헌알렉산드로스_ 영화감상평서론알렉산더라는 영화는 처음 개봉 당시에 본 기억은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교수님의 지정 영화라서 다시 한 번 보게 되었지만, 사학을 하려고 마음을 먹은 나에게 있어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서양역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헬레니즘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로 고대 서양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특히 지금 내가 듣는 이 강의는 서양문화사, 즉 역사의 전반 중 문화와 관련된 부분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헬레니즘 문화를 창조한 알렉산드로스의 영향은 크다고 본다.먼저 영화는 현대의 사람들이 당시의 상황을 추론하여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두고 시작하겠다. 물론 영화 제작과정에서 관련된 역사 전반을 두루 참고 하였을 것임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실존하지 않은 인물도 등장하고, 사실을 과장하고, 없었던 일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영화는 역사적 교훈을 주기보다는 흥미와 상업적 목적에서 탄생함을 기억해야 한다.나는 먼저 영화에 생략된 내용들은 두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한 뒤 이어 영화에 나오지 않는 부분들을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했다. 그리고 이어 알렉산더가 이룩한 헬레니즘에 대하여 밝히고 결론에는 영화감상후의 느낌과 과제를 쓰면서 공부한 것에 대한 느낌들을 토대로 작성했다. 이 과제가 나의 첫 리포트라 다소 어색한 부분들이 많이 있으나 나름의 방식을 세워 최대한 다양한 도서들을 참고하였음을 밝혀둔다.본론1)영화를 기준으로 한 알렉산더알렉산더 영화는 그의 신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의 구술로 시작된다. 영화는 알렉산더의 삶을 전기적 방식으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역사속의 많은 전투들을 생략하면서 알렉산더라는 인간의 삶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사실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이 전쟁으로 이어지지만 그의 진정한 삶에 비추어본다면 그다지 많지 많은 수 만족시키기에는 너무나 좁다.”고 깊은 감탄을 나타냈으며 그가 남자답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나이가 19세가 되는 당시의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알렉산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림피아스와 이혼을 한 필립은 새 왕비를 맞아들였고 결혼 주연 자리에서 알렉산더를 욕보인 앗타루스(새왕비의 숙부)의 편을 들며 알렉산더를 죽이려하였다. 이에 분노한 알렉산더는 어머니 올림피아스와 마케도니아를 떠나 잠시 숙부의 나라인 에피루스에 의탁한다. 다음날 술에서 깬 필립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알렉산더에게 화해를 요청하고 마케도니아로 돌아올 것을 요청한다. 이에 알렉산더는 어머니를 왕자의 생모로 대우해줄 것을 조건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두 부자간의 사이는 눈에 띄게 나빠졌고 새 왕비와 올림피아스도 앙숙관계를 유지한다.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어 거의 집착의 수준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뱀을 능수능란하게 잘 다루었으며 디오니소스신의 광신적 신도이며, 자신의 아들 알렉산더는 제우스신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녀는 필립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아들 알렉산더의 성장과 왕위를 물려받게 하는 것으로 대신하려는 보상심리로 인해 아들에게 더 집착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어머니의 집착은 알렉산더를 괴롭게 했고 그로 인해 아들과의 사이가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알렉산더는 ‘록산느’라는 여인과의 결혼에서 그녀의 눈빛이 어머니를 빼닮아 더 끌린다고 했다. 이는 어머니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알렉산더였지만 그도 어머니를 사랑했던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영화에 나오는 원정의 일정을 따라 살펴보면 먼저 필립의 적자로 이후 어린 이복동생이 태어나긴 했지만 그의 실권 장악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알렉산더가 왕이 된 이후 올림피아스에 의해 살해된다. 그로서 그는 필립이 암살된 후 별다른 의의 없이 왕위를 물려받는다. 처음 페르시아 정복에 나설 때는 아버지 필립의 복수를 명분으로 삼아 원정길에 오른다. 을 포로로 잡고 있었으며 다리우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야습을 하자던 부하들에게 화를 내며 승리를 훔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던 알렉산더의 모습은 절말 당당하고 멋있었다. 그리고 이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에 나는 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알렉산더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승리하고 다리우스는 쫒기는 신세가 된다. 승리한 원정대는 당당히 바빌론으로 입성한다. 바빌론에 도착한 원정대는 그곳의 건축술과 화려한 도시, 아름다움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원정을 해오던 그들에게 바빌론은 천국과 같이 편안하고 안락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원정을 계속 강행한다. 그 과정에서 평범한 동방의 여인 록산느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러나 부하들은 그녀를 첩으로 들이고 마케도니아의 정식혈통의 여인을 왕비로 맞으라고 권한다.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부하들에게 그리스인의 우월감은 하찮은 것이라며 버리라고 한다. 그 이전부터 바르바로이라고 하며 야만족이라 일컬어 오던 페르시아인들을 무시하고 있던 그리스인들의 경향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영화는 중반으로 갈수록 알렉산더의 인간적인 면에 집중하고 있다. 자신의 야망과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알렉산더에게 주변을 믿지 말고 강해지라는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헤파이스티온, 동방의 칠흑 같은 눈을 가진 알 수 없는 여자 록산느, 원정이 계속될수록 금의환향을 해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자하는 부하들 등 그의 주변의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외로워지는 영웅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난다.원정이 계속될수록 사람들은 지쳐가고 알렉산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계속되는 원정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보다 직접 경험해서 나아가는 세상의 크기가 다름을 알고 느낀다.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는 흰두쿠시를 넘어 가면 얼마가지 않아 큰대양이 나온다했으나, 원정대가 가고 있는 길 앞 어디에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알렉산더는 원정을 지에서 함께 온 평민들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원정대는 이미 한국가의 틀을 가지고 있었고 전체의 움직임은 국가가 이동해 다니는 것과 맞먹었다.인도에서 코끼리부대와의 전투에서 알렉산더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알렉산더의 부상 후 보이는 핏빛의 영상은 부상당한 알렉산더의 눈을 통해본 모습들로 이루어진다. 알렉산더를 지키려 달려오다 코끼리에 맞아 날아가는 헤파이스티온의 모습도 보이고, 그들 옮기는 부하들과 하늘, 나무들도 모두 빨간빛으로 제시된다.알렉산더의 부상으로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해졌고, 상처를 회복한 알렉산더도 귀환을 결정한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로 가지 않고, 바빌론에서 머물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헤파이스티온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는다. 알렉산더에게 있어 헤파이스티온의 존재는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어머니도 알렉산더에게 그만은 믿어도 된다고 할 정도였고 둘은 친구로서의 우정이상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그들은 영화 내내 자신들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이야기 속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로 비유했고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자했다. 실제 알렉산더는 헤파이스티온과 동성애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화 속에서는 정신적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맺어진 관계로 묘사되고 있다.알렉산더는 헤파이스티온의 죽음 후 8개월 정도 뒤에 열병에 걸려 죽는다. 그는 록산느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후계자가 불분명한 채 숨을 거두고 만다.영화는 마지막을 늙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이야기로 마무리 짖고 있다.2)영화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알렉산더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립포스2세 는 BC 359년 33세의 나이로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즉위한다. 그는 이전 테베 포로시절에 보고 느낀 선진적인 그리스 문화를 본국에 적용해 강력한 군대를 길러낸다. 긴창과 단검으로 무장한 그리스의 밀집방진대 형식을 도입한 팔랑크스제를 취한다. 최고의 정예군을 길러낸 필립포스는 트라키아 국경의 판가이오스 산에 있는 금광을 무력으로 탈취해 머케도니고 이에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다. 알렉산드로스는 배반한 테베를 용서하지 않았다. 테베시 사람들의 살육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잡아 노예로 모두 팔아버렸다. 이에 겁을 먹은 그리스 전체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반항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전부터 친분을 가진 사람들을 동원해 용서를 구하고 창끝을 그리스 밖으로 돌릴 것을 알렉산더에게 권했다. 이에 알렉산더는 그들의 용서하고 받아들였다.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가 마련해둔 틀을 유지하며 원정을 계획하였고 BC334년 대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하여 소아시아로 진군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페르시아 원정대의 처음 목표는 시리아해안을 탈취하고 이집트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원정이 계속되어 그라니코스 강 전투를 첫 승으로 소아시아와 시리아를 정복하고 이집트로 입성했다. 이집트인들은 일체의 저항도 하지 않았으며 알렉산드로스를 암몬 신의 아들로서 그를 파라오로 추도했다. 알렉산더는 이집트를 알렉산드리아로 명명하고 도시건설에 착공했다. 그리고 제우스-암몬 신전에서 파라오이며 암몬신의 아들임을 확인받았다. 신전을 다녀와 군대를 정비하여 페르시아로 원정을 떠난다. 그는 가우가멜라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상대로 승리한다. 가우가멜라에서의 승리는 알렉산드로스의 탁월한 전술력과 대담함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빌론을 점령하고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입성한다. 세상의 끝을 동경하고 정복의 목표로 삼았다. 이후 전개는 영화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그의 성격은 재위기간 13여년을 포함하여 그의 삶이 너무 짧았기에 극과 극으로 전해지고 있다. 알렉산더는 어려서부터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숙부의 아래에서 교육을 받았었다. 그의 영향으로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술을 과하게 마시는 단점이 있었다. 부하를 죽인 경우도 있었고 페르세폴리스에서 페르시아궁에 불을 지른 적도 있었다. 그는 술을 먹고 한 행동들에 늦게 후회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주술적인 것을 신봉하는 한편 막바지에 이르러 스스로를 신격화하기까지 했다다.
Chapter10. 구성주의 학습이론과 적용1. 학습에 대한구성주의자 견해1) 구성주의의 출현2) 인지적 구성주의3) 사회적 구성주의2. 구성주의의 특성1) 학습자가 이해를 구성한다.2) 새 학습은 현재의 이해에 의존한다.3) 학습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촉진된다.4) 유의미학습은 현실의 학습과제 내에서 일어난다.3. 구성주의의 수업적용1) 탐구학습과 문제기반학습(1) 탐구학습(inquiry teaching)(2) 문제기반학습2) 협동학습(1) 협동학습의 의의(2) 협동학습의 특성(3) 협동학습 방법(4) 효과적인 협동학습의 지침3) 대 화4) 인지적 도제Chapter10. 구성주의 학습이론과 적용1. 학습에 대한구성주의자 견해1) 구성주의의 출현구성주의 -개인적? 사회적 활동을 통한 의미와 학습에 대한 학습자의 기여를 강조함.구성주의자 관점은 Piaget, Vygotsky, 형태심리학자들, Baertlett, Brouner, 및 John Dewey의 교육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구성주의는 학습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이론이다. 구성주의의 철학적 근거는 만일 학습이 학습자의 생활에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학습자는 자기 자신의 이해와 통찰을 추구하도록 충분히 학습함으로써 성취할 것임을 시사한다. 학습자는 자기 자신의 지식에 대한 물음을 통해 그리고 새로운 발견을 통해 의미를 추구할 것이다.구성주의의 학습이론- 단일의 통일된 견해는 없다. 구성주의자들은 지식의 성격과 지식의 구성과정에서 상이한 요소들의 중요성에 대한 의견의 차이를 보인다.2) 인지적 구성주의인지적 구성주의(cognitive constructivism) - 주로 Piaget의 연구에 기반을 둔 것으로 지식의 개인적, 내적 구성에 초점을 둔다.- 심리적 / 개인적 구성주의라고도 부른다.개인의 지식, 신념, 자아개념, 또는 정체성에 관심을 갖는다.(=개인적 구성주의자로 불리기도 함.)학습에 대한 정보처리 접근들은 인간 정신을 상징처리제제로 간주한다.상징처리 체제 - 감각적 입력 -> 상징구조(명제, 해 구성되는 의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짐.인지적 구성주의자 - 아동 중심적 발견지향적인 학습활동 강조3) 사회적 구성주의Vygotsky의 영향을 강하게 받음.지식은 사회적 맥락에서 존재하며, 처음에 개인의 마음 속에 혼자서 표상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짐을 시사함. -> 지식의 나눔, 사회적 구성을 강조인지적 구성주의와 다른 점① 지식의 정의, ② 학습의 정의, ③ 학습의 소재지식은 문화에 의해 구성되며 지식은 지식을 산출한 활동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지식은 교류적/ 사회적으로 구성/ 공동참여자에게 분배학습은 맥락, 지식 및 의미를 구성? 재구성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다.사회적 구성주의자 - 나눔의 과정은 학습자들에게서 그들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련하고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형성하는 것을 돕게 한다.학습자가 개인적으로 이해를 구성하는 대신에 다른 학생들과 교환하는 직접적 결과로서 이해가 증가한다고 주장. 다른 학생들과의 대화가 더욱 분명히 이해하는 것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2. 구성주의의 특성<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4가지 특성 >? 학습자가 자기 자신의 이해를 구성한다.? 새 학습은 현재의 이해에 의존한다.? 학습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촉진된다.? 유의미학습은 현실의 학습과제 내에서 일어난다.1) 학습자가 이해를 구성한다.구성주의의 기본 원리학습자 - 정보에 대한 정확한 복사본을 기록?저장하지 않고, 아는 것에 기초하여 자극을 해석하며, 자신에게 뜻이 통하는 이해를 구성한다.교사 : 학생 학습을 자극함에 있어 절대적 역할을 지적(연구결과 토대)학생 : 주제를 이해하려 하고 그 주제에 관해 이미 아는 것(또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관련지으려 함으로써 능동적 조정. -> 능동적 구성 과정을 통해 새 지식 발달.2) 새 학습은 현재의 이해에 의존한다.학습의 성격 : 누가적(cumulative)새 지식의 습득에는 현재의 이해, 즉 선행지식(또는 배경지식)의 역할이 중요함.학습자가 새 자료를 학습하는 데 가져오는 조직된, 구조화된, 기존 지식과 연결된다.3) 학습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 촉진된다.사회적 상호작용 : 자신의 아이디어 표현,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고 필요하면 변화시킬 기회 제공.학습자 커뮤니티 : 협동적 감행을 통해 자기 자신의 학습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권장.- 학생들이 문제 해결 시, 교사는 진전을 확인시켜 주는 지도를 충분히 제안/ 또래들의 해결책을 경청하도록 권장함. -> 과정 촉진4) 유의미학습은 현실의 학습과제 내에서 일어난다.실제의 과거(authentic task) - 교실 밖의 세상에서 사용될 이해와 유사한 이해를 요구하는 교실학습활동현실상황에서 구체화되는 문제를 부과함으로써 현실 생활과 같은 상황에서 사고하는 실습현실의 상황 -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증가시키고, 동기가 증가함에 따라 더 깊은 학습을 함.학생 스스로 학문적 교과 학습의 이유를 발견뒷날 학생들이 정보와 기능을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을 높임.3. 구성주의의 수업적용구성주의자 관점을 수업에 적용하는 4가지 접근방법: 탐구 및 문제기반학습, 협동학습, 대화, 인지적 도제1) 탐구학습과 문제기반학습(1) 탐구학습(inquiry teaching)개발된 이유 - 세 가지 수업효과 달성을 위해① 학생들이 중요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지적 기능을 개발하도록 돕기② 학생들이 인간학습의 다양한 영역들과 연합된 탐구과정 기능을 습득하도록 돕기③ 학생들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자신을 갖는, 독립적인, 자율적인 학습자가 되게 하기『 탐구수업의 주요 단계 』? 목적 결정하기수업에 앞서서 수업이 초점을 두어야 할 정확한 지적 기능 설정특정 탐구수업이 자율적 학습자를 발달시키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것 인지 결정? 당황하게 하는 상황을 선택?고안하기당황하게 하는 상황 :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인과관계를 탐색하는 상황.탐구수업의 전제 : 당황하게 하는 신비스러운 상황은 불평형을 일으키고 이는 학생으로 하여금 특정 주제에 호기심을 갖게 함.호기심 : 학생들을 탐구?학습하게 동기화함.당황하게 하는 적정한 상황을 선택?고안하는 학생들은 아이디어를 공개적으로 자유로이 표현하도록 권장될 것? 당황하게 하는 상황을 제시당황하게 하는 상황은 가능한 흥미롭고 정확하게 학생들에게 전해져야 한다.흥미를 일으키고 탐구심 유발? 자료 수집하기와 성립학생들로 하여금 자료를 수집하고 당황하게 하는 상황에 관해 정신적 실험을 행하게 하는 중요한 단계? 가설 설정하기와 설명하기학생들이 현상에 관해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고 실험을 행한 후, 가설과 이론의 형태로 설명을 제안하기 시작할 것.교사는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자유로이 서로 교환하도록 권장.? 탐구과정을 분석하기마지막 단계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사고과정을 분석하는 것을 돕는다.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난 것을 되돌아 생각하고 이야기하게 한다.(2) 문제기반학습문제기반학습(problem-based learning; PBL) : 내용, 기능, 및 자기지도를 발달시킴을 초점으로 하여 문제를 사용하는 수업방략< 문제기반학습 방략의 전형적 특성 >? 수업은 문제나 물음으로써 시작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수업의 초점? 학생들은 문제를 조사, 방략을 고안, 해결책을 발견하는 책임을 짐.? 교사는 질문하기와 수업발판을 통해 학생들의 노력을 지도함.문제기반학습에서 학생들에게 의미를 갖는 실제 문제를 제시하며, 해결책을 발견하고자 협동할 때 탐구심을 일으킨다.< 문제기반학습에서의 교사의 역할 >① 문제에 대해 오리엔테이션 하기② 공부를 위해 학생들을 조직하기③ 독자 및 집단조사를 돕기④ 결과물과 전시품을 개발?제시하기⑤ 문제해결과정을 분석?평가하기프로젝트기반 학습(project-based learning) 학생들에게 프로젝트 목표와 최종기한과 함께 프로젝트 또는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구조를 제공함.< 프로젝트기반 과학의 구성요소 >? 질문도출? 실행할 수 있는 실생활 조사? 유형의 산물? 집단 공동연구?공학 도구의 이용2) 협동학습(1) 협동학습의 의의교사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기본기능으로부터 복잡한 문제해결에 이르는 어떤 목표든지 학습하도록 돕기 위해 매일 사용할 목표로 함. 건설적인 피드백주기, 의경일치에 도달하기, 모든 집단원을 관여시키기와 같은 협력하는 기능들이 효과적인 집단 기능화에 필요함.?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의존. 긍정적 상호의존은 경험함.? 팀 보상을 받음. 지정된 준거 이상의 성취를 하면 증명서나 보상을 받음.? 학습에 대한 개인적 책무성을 진다. 함께 활동하고 서로 도울지라도, 개별검사 또는 다른 평가를 통해 학습에 대해 책임을 진다.? 동등한 성공기회를 갖는다.협동학습의 필수 요소 - 팀 보상과 개인적 책임구성주의자 접근법- 정보처리이론가 : 지식을 시연? 정교화? 확장하는 것을 도움에 있어서 집단토의의 가치를 지적한다.- Piaget식 관점의 구성주의자 : 집단 내의 상호작용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해에 의문을 갖고 새 아이디어를 시도하도록 하게 하는 인지적 갈등과 불평형을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Vygotsky식 관점의 구성주의자 : 사회적 상호작용은 추리, 이해, 및 비판적 사고와 같은 고등정신기능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며 그 다음에 개인에 의해 내면화되기 때문에 학습에 중요하다고 시사한다.협동학습은 학생들이 학습을 전향적으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지원과 발판을 제공함.(3) 협동학습 방법? 학생 팀-성취 구분(Student Teams-Achievement Divisions; STAD)학생들은 성취수준, 성별, 및 인종이 혼합된 4명으로 된 학습 팀에 배정.수업을 완전 습득하였음을 확신하도록 자기 팀 내에서 활동모든 학생들은 자료에 대한 개별 퀴즈를 받음--> 기준을 충족시킴 팀은 증명서 또는 보장을 받을 수 있음.? 팀-게임-토너먼트(Team-Games-Tournaments; TGT)STAD의 경우처럼 동일한 교사 수업과 팀 활동을 사용하지만, 퀴즈를 주간 토너먼트로 대체/ 학생들은 자기 팀 점수에 기여하기위해 다름 팀의 구성원들과 경쟁함.하위수준의(다른 하위수준 학생들과 경쟁하는)과 상위수준 학생들(다른 상위수준 학생들과 경쟁하는)은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