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국문학에서 전기 소설의 시발점인 나말 여초시기에 최치원과 같은 뛰어난 작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6두품 출신으로 신라 말 골품제의 폐해로 인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빈공과에 합격하여 중국에서도 문명(文名)을 떨쳤다. 최치원은 시와 문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유,불,선에 두루 통달하고 특히 불교의 심오한 뜻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었고 당시 중국에서도 통용되는 보편성의 높이에 도달할 만큼 뛰어난 문학가였다.) 또한 최치원의 문학은 외적으로는 형식이 다양하고 기교가 높은데다 작품량 또한 상당하고 내적으로는 개인적 감정과 사유가 풍부하게 담겨있다. 최치원은 삶의 문제를 문학의 본질과 결합시킴으로써 문학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데 여기에 그의 문학의 우수성이 있다. 그리고 최치원의 문학 세계는 한문시와 한문 소설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를 통해 최치원 개인에 대한 자각과 현실 생활의 인식까지 모두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본 서평은 그의 대다수 작품이 수록된『새벽에 홀로 깨어』를 바탕으로 당대의 시대적 상황에서 어떻게 최치원이 개인에 대해 인식을 하고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2. 개인에 대한 자각문학이라는 예술을 작가의 개성이 투사된 창조물이라고 보았을 때, 작가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가치관과 정신적 사유를 문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문학에서 특수하고 남다른 것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문학의 생명도 어떻게 개인을 자각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최치원의 개인사를 살펴보면 그의 문학 창작은 유년기인 12살 때 커다란 포부를 품고 당나라로 유학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 시기에 그는 진정한 학문을 하고자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과거에 급제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러나 학문의 길을 제일로 삼았던 그가 시를 통해 표현한 것은 먼 이국 땅에서 느끼는 외로움, 고독감이었다. 신라 말 폐쇄적인 골품제는 최치원을 자국으로부터 분리시켰으며 이러한 단절에서 비롯되는 그의 정서와 심리적 상태는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자각은 그의 작품 에서 잘 드러난다.가을바람에 괴로이 시를 읊건만세상엔 날 알아주는 벗이 없더라.창밖에는 깊은 밤 비 내리는데등불 앞 내 마음은 만 리 먼 곳에.이 작품은 타향에서 이방인으로써 느끼는 고독감과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지식인 최치원의 고뇌를 보여준다. 쓸쓸한 가을밤은 시적 화자의 적막감을 고조시키고 세상의 날 알아주는 이의 부재적인 상황은 더욱 고독감을 더해준다. 이 시가 귀국 후 쓸쓸히 지냈던 시인이 중국의 벗들을 그리워하며 쓴 것이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볼 때 시인은 중국에 있을 때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을 느꼈지만, 정작 고국에 돌아와서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던 듯하다.) 중국 당나라에 있었을 때는 자신의 뿌리가 있었던 고국이 그리웠지만 정작 고향으로 돌아오니 먼 길에서 같이 공부하였던 벗들이 그립다는 것은 상당한 아이러니다. 즉 최치원은 중국에서는 이방인이라는 고독감과 신라에서는 지식인이라는 고독감이 중첩된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인 고독감은 고국에서 온 친구와 이별한 후에 지은 시에서 잘 나타난다.산양에서 고향 친구와 헤어지며만나서 잠시 초산의 봄 즐기다가다시 헤어지려니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바람 맞으며 슬피 바라본들 이상타 생각마오타향에서 고향친구 만나기 참 어려우니.타향에서 그가 얼마나 외로웠냐 하는 가는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라는 다소 과장적인 표현이 거부감이 안 들 정도로 절실히 다가온다. 그런데 고향 친구와의 짧은 만남은 이별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기에 궁극적으로 그의 고독감을 해소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항구적으로 고독감을 해소할 수 있는 문학이 필요하였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타향에서의 느끼는 고독감이 어떻게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드러나는 가를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최치원에게 있어서 문학은 개인의 정신적인 상처의 치료제로서 기능하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최치원이 어떻게 자신을 반성적으로 자각하고 있는가는 이라는 짤막한 시에서 잘드러난다.옛 뜻여우는 미녀로 잘 둔갑하고살쾡이는 선비로 잘 가장하네.뉘 알리 짐승들이 사람 몸으로 변신해 홀리는 줄을.하지만 변신은 외려 쉬운 일이요.양심 지키기가 제일 어렵네.그러니 참과 거짓 알고 싶다면마음의 거울 닦아 비춰보게나.이 작품에서 겉모습을 바꾸는 것과 내면적 양심을 지키는 것을 대비함으로써 어지러운 현실에서 자기 자신을 반성적으로 응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표현하고 있다. 타락한 일상 세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참된 질문은 마음의 거울을 비춤으로써 자기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고 그 정체성을 확인함으로써 대답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정체를 인식하게 되면 이는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된다. 즉 외면의 변화에 이끌리는 근시안적인 자각이 아니라 깊은 자기 내면을 여러 번 곱씹어 본 자신의 존재 인식의 참됨을 내포하고 있다.3. 현실에 대한 인식최치원의 현실 인식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관적이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일차적으로 출생신분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차적으로는 당시의 어지러운 사회상 때문이다.봄날, 어느 새벽동으로 흘러가는 물 못 돌이키나시상을 재촉하니 이리 괴롭네.정 담뿍한 아침 비는 가늘디 가늘고아리땁고 고운 꽃은 필 듯 말 듯하네.어지러운 세상이라 좋은 경치에 주인이 없고뜬 인생이라 명리(名利)를 점점 멀리하네.한스러워라 옛날 유령(劉伶)의 아내가남편더러 술잔을 멀리하라 한 일.이 작품에서 최치원은 직접 현실을 어지러운 세상이라 언급하였다. 실제로 당시 중국 당나라에서는 ‘황소’라는 사람이 농민 대반란을 주도하여 ‘황소의 난’을 일으킨 만큼 시국은 혼란스러웠다. 이에 대해 최치원은 반란자인 ‘황소’의 옳지 못한 일을 힘찬 필치와 설득력 있는 논거로 꾸짖는 동시에 회유하는 ‘토황소격문’을 짓는다.) 이러한 시국과 신라 말 골품제의 폐해가 깊어져 사회는 혼란해지고 민간 사회에서는 잡다한 토속 신앙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최치원은 신라의 위대한 고승인 진감 선사 이야기와 낭혜 화상 이야기를 통해 유/불/선이 서로 융합된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제시한다.도(道)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도를 찾는 사람에게는 국경이 없다.(중략) 마침내 석가모니처럼 지혜의 횃불을 얻어 그 빛으로 오승을 융합하고 옛 유학자의 좋은 가르침을 배워 육경(六經)의 참맛으로 배부르게 하니, 많은 사람이 다투어 선(善)에 이르고, 나라에 인(仁)이 가득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