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제 목 : 아동청소년 사례연구통영 아름이 성폭행 사건그룹 조 정보수업과목청소년 복지담당교수해당 조및 조원 소속1조 농촌지역 청소년 사례 연구학번 / 이름발표일자2012년 9월 25일 화요일 5-6교시그룹활동 일지활동 일지날짜활동 내용9월 4일발표 주제 및 사례 선정, 클럽 개설9월 4일~9월 8일자료수집9월 8일(네이트 온) 수집한 자료에 대한 논의9월 8일~9월 11일개인별 사정기준표 작성 및 농촌 복지에 관한 자료수집9월 11일사정 및 개입에 관한 토론 및 구체적인 역할 분담9월 11일~9월 16일보고서 및 PPT 개략적인 틀 작성, 개별성원의 COMMENTS9월 18일최종 보고서, PPT 수정 및 발표에 필요한 동영상 선정상시싸이월드 클럽에 자료수집 및 피드백카카오톡 그룹채팅으로 사례관리에 관한 논의 및 피드백사례선정 이유왜 농촌지역의 청소년 복지 사례를 선택했는가?대도시의 경우 CCTV가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고 경비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데 반해,농촌과 시골은 땅은 넓지만 인구밀도가 낮아 도시에 비해 치안이 열악하다.서울, 경기 지역의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학교에서 어린이를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범행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던 CCTV 덕분이었다.하지만 이번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과 통영 아름이 사건에서는 경찰이 CCTV를 정밀분석 했지만 범행 장면을 찾을 수 없었다.한 시간에 한두 대 꼴로 오는 버스가 전부인 열악한 교통도 문제였다.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던 아름양은 등굣길 버스비를 아끼려고 종종 주민들의 차를 얻어 탔는데, 지난 16일에도 학교에 가기 위해 가해자 김점덕의 트럭에 올랐다 변을 당했다. 범죄를 저지른 주민에 대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이라며 관대하게 넘기는 농어촌 특유의 분위기가 사건 발생에 한 몫을 한 것이다.아름양이 살던 마을 주민들은 김점덕의 과거 성범죄 전력을 알면서도 문제삼지 않았다.농사일의 특성상 부모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홀로 방치되는 경우가 운 것도 이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따라서 우리 조는 아름이 사례를 통해서 농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 상황과 문제들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농촌의 열악한 청소년복지 환경에 대해 알리고 싶어 이 사례를 선정하게 되었다.사정자료수집클라이언트의 일반적 사항이름 : 한아름성별 : 여나이 : 11세 (만9세)주소: 경남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OOO번지학교: 산양초등학교동거가족 : 아빠, 오빠특이사항 : 새엄마는 두 달 전에 집을 나갔고 가족과 연락 두절됨.개인력산양초 4학년(11살)인 클라이언트는 아빠, 새엄마, 오빠와 함께 살고 있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움. 항상 배고픔을 느꼈던 클라이언트는 자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 자연스러웠음.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새엄마가 밥을 해주지 않아 슈퍼에 외상을 하는 일이 잦았으며 이웃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는 일도 허다했음.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끼니를 해결했고 약 1년 전부터 집 앞 음식물 쓰레기를 먹기 시작함.새엄마는 클라이언트를 이유 없이 싫어했음. 여섯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으며 클라이언트가 집에 있을 때면 정신적신체적 학대와 방임을 함. 아버지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으나 출장이 잦아 클라이언트를 양육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음. 클라이언트가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에 주 양육자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함.클라이언트는 또래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소외를 당함. 그에 반해 이웃사람들과의 관계는 좋았음. 평소 착하고 싹싹한 성격 때문에 이웃사람들이 클라이언트를 자주 챙겨줬다고 함. 사건의 피의자 역시 클라이언트를 도와준 경험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클라이언트와 친해짐.사건발생당일 한 달 전에 새엄마는 집을 나감. 그 후 아빠가 클라이언트를 양육하게 되었지만 직업 때문에 불가피하게 방임을 하게 됨. 사건발생당일 클라이언트의 아빠가 출근하기 전 아침에 버스비를 깜빡하고 챙겨주지 않았고 클라이언트는 평소처럼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서 학교로 가려관계는 원만했음. 클라이언트에게 오빠가 한 명 있지만 오빠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지낸 탓에 클라이언트를 돌봐줄 수 없었음.➟가족 구성원 중 클라이언트를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주 양육자가 없음.가족력친 엄마 - 클라이언트가 2살 때, 남편과 이혼하고 부산에서 살고 있음.새 엄마 - 아빠와 재혼하고 집에 자주 안 계신 아빠를 대신해 클라이언트의 보호자 역할을 함. 평소 클라이언트에게 밥을 챙겨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클라이언트가 이웃사람들로부터 밥을 자주 얻어먹음. 또한 클라이언트에게 정신적인 학대뿐만 아니라 파리채로 클라이언트를 이유 없이 때리는 등 육체적인 학대도 가했음. 아이에게 온 전화를 못 받게 하고 방에 강제로 가둬놓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고 함. 새엄마는 평소에 주위사람들에게 클라이언트가 싫다고 말했으며 클라이언트가 저녁 6시 전에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함.사건발생 한 달 전 새엄마는 집을 나감.아빠 - 건설일용직근로자이며 클라이언트와 사이가 원만했음. 그러나 직업상 클라이언트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않았음.오빠 - 클라이언트와 10살 차이가 남. 군 입대를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지낸 탓에 클라이언트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음.클라이언트의 기능신체적 기능 – 이상 없음정서적 기능 –낯선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근한 모습을 보이며 사람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없음. 엄마가 밥을 챙겨주지 않아 마을 주변을 맴돌며 밥을 얻어먹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낮은 것으로 보임. 어렸을 때 주 양육자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했음.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사랑을 준다고 생각했고 그 들을 좋아하고 잘 따른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음. 낯선 사람이 베푸는 호의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음.사회적 기능 –마을에 살고 계신 이웃 사람들과 살갑게 지내왔었음. 마을 회관, 버스 아저씨, 이웃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며 애교도 자엄마: 이혼, 단절관계새엄마: 재혼, 갈등관계,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가함, 방임 + 별거 중아빠: 유대가 강한관계오빠: 소원한 관계생태도산양초등학교, 슈퍼: 소원한 관계교회, 마을 회관, 이웃사람들: 유대가 강한 관계또래 친구들: 단절 관계피의자: 성적신체적 학대이론적 배경 → “심리사회모델”(기본관점 - 상황 속의 인간(person in situation))심리사회모델은 개인의 심리, 정서, 및 생물학적 요인 + 사회 환경 및 물리적 환경의 영향을 인정하며 이들 요소간의 상호작용에서도 주의를 기울인다. → 심리사회모델은 정신분석이론을 기초로 개인의 심리 정서적 요인 뿐 아니라 체계 이론 등 물리, 사회적 여건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반영했다.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 CT의 생애초기에서부터 접근이 가능하여 CT가 자라온 환경을 토대로 형성된 CT의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인간은 성장하고 학습하며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CT의 문제 회복의 가능성을 믿는다.인간의 심리체계는 생물학적 체계·사회적 체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고 전제된다. → Person in Environment-환경 속의 인간을 강조한다.문제 상황을 다룸에 있어 차별성이 강조된다. → CT의 문화적 배경, 사회·경제적 배경, 계층, 주변 환경에 대한 개별적 접근이 가능하다.개입문제강점/약점목표1. 성폭행 당한 후 클라이언트에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관리가 안됨-사람에 대한 두려움, 공포 → 대인관계 단절-신체 접촉에 대한 두려움강점밝고 씩씩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함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큼사람을 만나고 사귀는데 거부감이 없음약점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낮으며 두려움이 없음 →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음지지체계 부족클라이언트의 심리적인 안정 도모-대인관계 회복-신체접촉에 대한 거부감 극복2. 주 양육자의 직업 특성상 클라이언트를 방임하게 되는 환경강점클라이언트가 겪은 보기6~9세션: 사회복지사와 가족이 아닌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과 친해지는 연습 해보기10세션: 현재 또래 친구들과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 나눠보기-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단절된 대인관계를 개선할 수 있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음-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을 할 수 있음장애물친구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신체접촉이 있을 때대응책학교 사회복지사나 담임선생님에게 클라이언트의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에게 설명 해줄 것을 부탁주 양육자의 직업 지원클라이언트를 돌봐 줄 수 있는 센터와 연계1. 통영 고용센터에서 운영하는 디딤돌 일자리 사업에 대해 설명해주고 클라이언트를 양육하기에 적합한 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줌2.지역사회 맞벌이가정 아동 돌봄 서비스(초등공부방)취약가정아동 방과 후 집중관리 프로그램(방문지도)-총 10세션을 진행하는 동안 클라이언트와 주 양육자에게 위에 나온 두 가지의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함-그 후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을 클라이언트와 주 양육자가 선정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와 도움을 줌1. 클라이언트를 양육하기에 적합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수 있음2. 주 양육자가 일을 하는 시간 동안 클라이언트를 돌봐주기 때문에 위험노출 정도가 낮아짐장애물클라이언트가 센터에 가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음대응책클라이언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기다려줌정서적 지지체계 확립1.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부모교육 이수하기2.클라이언트와 함께 성폭행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자조집단에 참여1.-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부모교육에 대한 설명과 정보를 제공해줌-그 후 주 양육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줌2.1세션: 자조집단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자조집단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설명해줌2세션~10세션: 클라이언트와 주 양육자가 같이 자조집단에 참여해서 자신과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매 세션이 끝나기 전에 자신의 느낌을 얘기할 수 있도록 함1
무소유고등학교 때 보았던 를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에 다시 한 번 펼쳐보았다. 분명 과거에 이 책을 통해 느끼고 깨달은 바가 많았었지만, 어느새 인가 그 때 읽어 내려갔던 깨달음은 시간 속에 묻어 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 분명 책을 읽을 때에는 책 속의 세계에 물들어있었지만,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에 물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내야하고, 월세를 내야하는 학생 입장에서 자본을 소유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이었는지 소유하지 못한 자로서 늘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법정스님의 수필은 잠시나마 부정적인 사고로부터 해방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우선 이 책의 내용은 소유와 무소유에 관한 이야기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다. 인연 따라 있었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즉, 소유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법정스님은 책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가짐으로서 소유욕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소유라는 것은 집착을 가지고 오게 되고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 책에서는 이러한 대목이 등장한다.“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 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길로 돌아왔다. …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 무소유中이 대목에서 나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작년 여름 한창 주식에 빠져있던 나였다. 주식이 하락하면 하락하는 대로 괴로워했고, 상승하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을까 갈등하고 괴로워했었다. 돈을 많이 번다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지식을 습득하고 돈을 버는데 실상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소유하려는 과정에서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결국 주식을 통해서 돈을 잃었고, 시간도 잃었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 또한 잃었다. 머리 속의 70~80%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아닌 금전적인 스트레스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게 되었을까.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류의 역사는 소유사로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소유에 대해 서로 경쟁하고 투쟁하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소유라는 것이 행복을 좌우하는 척도가 되어버린 지금,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낙오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인지 책에서 말하는 무소유가 필자처럼 종교에 귀의하거나 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이러한 무소유의 철학을 나에게 적용시키려고 하니 어느 정도 실제 삶과는 괴리감이 있었다.실제의 삶에서 소유하지 못한 자는 아이들의 식비를 책임질 수 없고, 아내의 수술비를 책임질 수 없는 나약한 사람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최소한의 생활조차 할 수 없는 사회구조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지독하게 소유하지 못했던 시절의 고통을 알고 있기는 본인에게 무소유라는 것이 다소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렸다.하지만 실천하기에는 이상적인 내용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무소유라는 책에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법정스님의 인덕에서 묻어나오는 솔직하고 간결한 글체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은 자기계발서가 난무하는 지금의 시대에 유독 소박한 빛을 밝혔다. 또한 각박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서로 소유하려는 이 시기에 소유한다는 것의 부질없음과 허망함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유의 역사를 살아온 독자들이 모든 것을 내놓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지나치게 소유하려는 것을 방지하기에는 좋을 것이라 본다.
눈먼자들의 도시고등학교 시절 그리스로마 신화를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동시에 신화 속 등장인물인 오이디푸스 왕에 대해 다소 엉뚱한 궁금증이 생겼었다. 바로 “눈멂”에 관한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을 하게 되는 끔찍한 운명에 처하게 되며, 결국 파멸한다. 그런데 신화 속 그는 극한에 이르렀을 때, 죽음 대신 자신의 눈을 뽑았다. 대부분 한국에서의 비극은 죽음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왜 오이디푸스는 눈을 찔렀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황당한 설정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이번에 읽게 된 “눈멂”에 관한 이야기인 라는 소설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왜 작가는 “눈멂”이라는 장치를 설정을 한 것이며, “눈멂”이라는 것이 책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책은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며 차에 있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남자를 시작으로 도시의 사람들은 급속도로 눈이 멀어가기 시작하고 의사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던 숨겨놓은 본성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그 중 가장 먼저 그리고 지속적으로 보여 진 본성은 참혹했다.눈이 먼다는 질병이 원인불명의 감염성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정치인은 냉소적인 태도로 눈먼 사람들을 물건 취급하듯 정신병동 수용소에 격리시켰다. 또한 수용소 안에서 군인은 눈먼 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였고, 눈이 멀어버린 개인들은 조금이라도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는 눈이 먼 가운데에서도 권력을 쥐려고 하는 무장그룹이 등장하는 불편한 모습들이 보였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의 치졸함, 악날함이라는 신체적인 눈으로 볼 수 없던 것들을 눈이 멀게 됨으로 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질투와 험담을 늘어놓는 인간의 본성,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눈먼자들은 그동안 숨겨왔던 이기적인 속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고, 눈이 먼 후에에야 비로소 볼 수 있게 되는 것들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느껴졌으며, 앞만 보고 살아가는 지금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변해 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동시에 진실성, 배려, 그리고 정직함과 같은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린 내 자신도 발견하게 되었다.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하나만 존재할 수는 없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인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날 때부터‘인간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인간성’은 의사의 아내를 통해 잘 나타났다. 그녀는 눈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돌볼 수 있었다. 또한 돌본다는 것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에게 돌봄을 당하는 이들은 그녀의 따뜻한 인간적인 말과 행동에 의지하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다. 처음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간 집단은 그녀의 도움으로 서로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가 의지하며 도와가는 본래의‘인간적’인 모습을 독자로 하여금 보게 했다.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그들만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지나친 개인주의로 물들어버린 사회에서 연대의식이라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서로 양보하며 타협해 나간다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녀를 통해 보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생각, 마음, 의식, 정신, 영혼과 같이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비가 내리는 날 그들은 알몸을 한 채로 비를 맞으며 목욕을 했다.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들은 부끄러워했을 것이며, 지저분한 옷과 행색에 불쾌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눈이 멀었기 때문에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더 친밀함을 느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물놀이를 가서 장난을 치고,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학벌, 재산, 능력에 관계없이 인간의 모든 껍데기를 내려놓고, 인간 대 인간으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정감이 가고 연대를 갖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경쟁사회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남들과 많은 것을 비교하고 소유하려고 하였다. 경쟁사회의 소유에 관한 관점으로 본다면 목욕을 하는 그들에게 눈이 멀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물질적인 것이나 육체적인 것에 있어서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많이 소유한다는 것이 내 존엄성과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진정한 가치인 인간성과 도덕성을 말살시켜 진정한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며 스스로를 장님으로 만들고 있었다. 기득권층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기득권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은 기득권을 손에 쥐기 위해서 우리는 눈이 멀었었다. 우리는 모두 눈먼 자들이었다. 지금 나또한 눈이 멀어있고, 진정한 것을 볼 수 없었다. 책에서는 이러한 구절이 등장한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얼마 전 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땅을 가진 자에게는 축복을 주고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저주를 내렸던, 2009년 1월 용산 참사의 24시간을 기록한 영화이다. 용산이라는 지역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의 천문학적 이익 앞에 고려대상이 되지 못해 쫓겨 난 주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고등학생 때 읽었던 조세희작가의 과 오버랩되어 내 기억 속을 맴돌았다. 소설 속 행복동 주민들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팬지꽃을 들고 폐수로 던지는 영희의 모습, 달나라고 가려고 종이비행기를 띄우는 난쟁이. 영수, 영희, 영호가 벗어나고자 했던 사회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아주 오래 전 산업화 사회로 인해 사회의 하층계급에게 주어졌던 고통과 차별이 영화 속에서, 그리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정보화 사회로 변모했지만 산업화 시대에 몸살을 앓았던 자본주의의 폐해의 골은 좀 더 깊어졌다. 반복되는 이 현실 속에서 열어 보고 싶지 않았던 사회의 불편한 면을 꺼내어 볼 수 밖에 없었다.소설의 배경은 공장의 기계가 쉬지 않고 돌아가던 산업화 사회이지만, 정보화 사회인 지금도 사회와 불가분적으로 뗄 수 없는 공통된 관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물질만능주의’이다.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돈이 돈을 낳는 사회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보다도 심한 지금의 상황은 참으로 부끄럽다. 1년에 1억을 호가하는 피부 관리를 받는 눈부신 육체가 있고, 무상 급식을 기다리는 절박한 육체가 있으며, 조망권까지 고려하여 개발되는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의 안락한 육체가 있고 도시의 난개발로 화염병에 참사당한 용산 세입자, 상인, 철거민의 참담한 육체가 있다. 가진 자에게만 더 많은 특권이 주어지고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가 주어지는 현실은 참으로 가혹하다. 본인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싶다. 지금도 신분상승을 하기 힘든 사회구조가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난쟁이 가족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공평한 사회가 계속된 다는 점에서 공장 굴뚝 위에서 달나라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작은 쇠공을 쏘아 올리다 추락사하는 난쟁이 아버지의 아련함 이 못내 가슴을 시리게 한다.소설의 구성은 독특했다. 단편소설 속에서도 영희, 영수, 영호의 시점에서 사회를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서술했다. 어린 아이들 눈에 비친 사회는 좀 더 냉정하게 느껴졌다. 반면 사실적인 서술과 더불어 팬지꽃과 폐수, 달나라로 가려는 난쟁이와 같이 환장적인 분위기 조성은 현실과 대비 되어 난쟁이 일가에게 측은함과 동시에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특히, 난쟁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갈 수 없는 공간으로‘달나라’를 작가가 설정해 놓음으로 인해 소시민에게 신분상승이라는 것은 환상과 같은 것이며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좀 더 아련하고 슬프게 보여주었다. 소설 속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나는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할머니, 할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할머니들이 최하층 천인으로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 알고 있다. …우리 조상은 신역을 바쳤다. 우리의 조상은 상속·매매·기증·공출의 대상이었다.(P.65-66)"그랬다. 쳇바퀴가 굴러가듯이 우리는 늘 제자리에 있었다. 조상이 그러했듯이 현대판 천인으로서 신분상승을 하고자 늘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제자리 걸음이 었다. 좋은 학교에 가기위해서는 사치스러운 사교육의 현장에 들어가야 하고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해서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학원에 다니며 자신을 위해 투자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렇게 투자를 받기 힘든 학생은 상대적으로 뒤쳐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회는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일까.책에서는 “법이란 그들 편이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회복지법제론 이라는 과목에서 나는 법에 대해 배웠었다. 법과 질서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이유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이고 국가의 근간은 바로 국민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국민을 위해 법을 만든 사람들은 사회의 기득권층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국민을 위한 법이 기득권만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변모한 경우가 빈번했다. 군사정권시절에는 대통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현재에는 대기업의 이권을 챙겨주는 수단으로 정치와 경제가 유착되어 이용되고 있다. 반면, 사회복지와 관련한 법이 발달하고 있지만아직도 사회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래도 희망이라면 복지라는 법도 발달하고, 사람들도 조금씩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광장부끄럽게도 분단국가를 살아가는 젊은이 중 한명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기억이 없었다. 이념같이 복잡한 문제는 인생 저편에 묻어 둔 채로 살아왔었다. 하지만 2009년 탈북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 멘토링’이라는 봉사활동에 1년간 참여 했고, 이 과정에서 그들이 무슨 이유 때문에 죽을 각오를 하고 남한행을 선택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북한은 어떠한 곳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남한은 어떠한 사회인지 알고 싶어졌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들과 교류하며 남한과 북한의 정치 이념이나 체제에 대해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했기에 고교시절 따분하게 읽어 내려갔던 이라는 작품이 2012년 현재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놓는 소설이 되어있었다.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꿈꿨듯이 현존하는 인간은 늘 이상적인 세상을 꿈꾼다. 본인 또한 남한에 살며 경쟁적인 사회구조가 머리를 짓누를 때도 있었고,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바라보며,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명준이 그토록 원하던 광장은 결국 죽음으로 끝났듯이 완벽한 세상도 이념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인 듯하다. 명준 이야기는 제 3의 길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과 동시에 현실에서의 패배를 보여주었다. 인간의 삶은 밀실과 광장이 유기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던 명준은 죽음 밖에는 선택할 수 없었다.결국 소설의 마지막은 죽음으로 끝나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러한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유토피아를 만들 수 없을 지라고 적어도 그와 가까운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선택 대신에 광장과 밀실이 적절히 공존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준의 죽음이 헛된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분단국가를 사는 우리에게 생각해 볼만한 과제를 주어줬다고 본다. 현재의 남한에 살고 있는 학생으로서 가끔은 개인적이고 경쟁적인 사회현실에 회의감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고등학생은 좋은 대학을 가야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곳에 취업을 하기 위해서 다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또 이러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사회는 냉정하게 돌아선다. 어쩌면 나도 명준처럼 남한에서 권세, 욕정, 욕망으로 뒤범벅되어 자본주의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삶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광장을 찾아 월북이라는 상상으로 했을지 모른다. 사전을 찾아보면 북한의 체제인 공산주의란 사유 재산제 대신에 재산의 공유를 실현시킴으로써 계급 없는 평등 사회를 이룩하려는 사상 및 운동이라고 한다. 남한에 사는 학생으로서 한번쯤은 꿈꾸어본 세상이 아닐까. 하지만 남한이 완벽하지 못하듯이 북한의 체제 또한 완벽할 수는 없다. 명준이 일한 노동신문 편집부에서는 개인(명준)이 없고, 당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주관보다는 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념이라는 것은 이념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이념에 관해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요소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명준의 나이가 나와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되기에 그가 이념에 대해 느꼈던 것들에서 측은함을 느끼고, 공감하는데 어색함이 없었다. 행복해질 권리를 가진 한 개인으로서,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념 하에 사랑하는 이웃과 가족들이 서로에게 총대를 겨눌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인간으로서 견디지 못할 고통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랑을 하기에도 부족한 20대에 말이다. 특히나 명준에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 또한 사회의 체제 아래서 억압받으며 이루어 졌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청춘은 갈등과 번민의 연속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