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환-밥상을 차리는 여인한 글자, 한 구절 모두가 아름답고, 몇 번을 읽어도 여운이 길게 남는 글을 읽거나, 언제 들어도 저절로 코끝이 아려오는 음악을 듣거나, 볼 때 마다 항상 새로운 감동을 주는 그림을 보고 내가 느낀 감동을 구태여 언어로 풀어내야할 때 속상하다. 아무리 잘 표현해보려고 노력을 해도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겨울의 환」의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겨울의 환」은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을 담담한 고백체로 나타낸 작품이다. 마흔 셋이 되도록 스스로를 여자로 느끼지 못한 주인공은 '늙어가는 여자의 떨림'이라는 말에 비로소 여자가 된 듯 한 기분을 느낀다. 주인공은 여자로서 절정인 나이인 서른둘에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 고요에 안주하면서 주인공은 왠지 모를 갈증을 느낄 무렵 골목에서 '그'를 만난다. 3년간 '그'와 진전 없는 만남을 계속하던 중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에 대해서 글을 써 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6 ? 25 전쟁 중, 피난길에 무사히 돌아온 후 어느 날, 어머니는 말없이 일만 하시던 할머니를 이모네 가서 살게 했다. 그러나 외삼촌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하러 갔던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되어 얼마 후 갑자기 쓰러지신 할머니는 곧 돌아가시고 만다. 할머니의 일을 들추며 몇 해를 두고 거듭된 어머니와 '나'의 싸움 끝에 결국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이제 '나'는 어머니와의 화해를 생각한다. 그것은 '그'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어머니와 화해하고 함께 산다는 것이 그 옛날 어머니가 할머니를 감당하지 못해 이모네로 보냈던 심정처럼 '나'에게도 속박일지라도 그것은 또한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낭만적 사랑이란 첫눈에 반해서 평생을 지속하는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랑을 결혼으로 연결해야 하고, 두 사람 사이의 마음보다는 결혼식, 신혼여행, 혼수 등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고 인정받음으로써 두 사람의 결합을 지속하는 것이 이미 일반화 되어버렸다. 주인공은 이에 대해 부정하지만 혼수 문제로 할머니-어머니에 이어 3대째 결혼 생활에 실패를 하게 된다. 주인공의 진정한 낭만적 사랑이 '그'와의 만남으로 비로소 찾아오는가 싶었지만 어머니와 화해하고 기다리겠다는 다짐으로 그 낭만적 사랑을 승화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기다림이 여인 3대에 걸쳐 운명적 순환 고리에 놓여있는 것이다.
I. 본문 내용 요약1. 제국의 남쪽 문을 열다15, 16세기 이후 서구는 항로를 개척하여 동양으로 무역 활동을 확대하고 17세기에는 중국 대륙까지 발견하여 진출하는 동안, 중국은 명나라 이래 300여 년 동안 해금(海禁)정책을 실시하여 외부와의 통상을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희제의 대만 수복 후 해금을 해제하고 서구와의 교역을 시작했으며 동남 연해에 월해관, 민해관, 절해관, 강해관 4개 세관을 설치하였다. 정책적으로 교역이 허용되자 중국 연해 지방의 해양 무역은 곧 성행을 이루었다. 광동 관청과 월해관은 안정된 거래와 세금 징수를 위해 재력이 탄탄한 상인들을 지정하고 그들의 상점을 '양행(洋行)'이라 하여 외국과 거래할 수 있는 독점권을 부여하였다. 이 양행이 13 곳이 있어 13행이라 한다. 13행의 행상들은 서면 계약 없이 구두와 약정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거래를 할 정도로 도덕적이고 성실하며,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외 무역을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광주의 황포항은 지형상 바닥이 넓고 수심이 알맞아 천혜의 항구여서 광주의 이러한 인문과 지리적 조건은 전통적으로도, 해금이 해제된 후에도 대외무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그러나 외국 상인들이 중국 내륙으로 진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자 건륭제는 3개관을 폐쇄하고 항구를 광동으로만 제한하는 일구통상(一口通商)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에 영국 동인도회사는 황제에게 직접 월해관의 부패와 광주 양행의 무역 독점을 항의하기 위해 제임스 플린트를 파견하였다. 서양 상인들은 플린트의 고발로 무역이 확대되리라고 기대했지만 방비가 통상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륭제는 오히려 해금(海禁)을 결정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건륭제의 해금 결정 이전까지 개방되었던 광주의 월해관은 어떤 곳인가. 월해관은 대외무역과 해안 방어의 요충지이자, 중국과 서역 교역의 중요한 교차로이며, 국가의 재화와 부가 모이는 곳이었다. 월해관의 세관 수입은 전국 세관 수입의 1/4에 달하였고, 황궁에 진귀한 서양의 물품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또한, 월해관에서는 매년 중앙에 고정적으로 은 5만 5천 냥을 보내어 황실의 사치 생활에 중요한 자금원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월해관에서의 대외무역이 번성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상업을 경시하는 중국의 풍조는 일관되었다. 따라서 행상이 굉장한 부를 쌓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지위를 얻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행상들은 거금을 기부하는 연납을 하여 관직을 얻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광주의 13행이 눈부신 번영을 이루는 동시에 외국 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닻을 내리던 황포항도 번성하였다. 이곳 황포에는 당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데, 황포를 통하여 차, 비단, 도자기가 세계로 나가 서양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이 되었다. 중국의 비단은 색이 좋고 윤기가 흐르며 가벼워서 유럽 상류사회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중국의 대외 무역에서 2천여 년 동안 우위를 차지했던 비단의 자리는 차가 새로 차지하여 유럽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소비 대상이 되었다. 비단, 차와 함께 좋은 조합을 이루던 중국의 도자기는 유럽에서 부유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고, 18세기엔 정점에 이르러 일반 가정에서도 중국 도자기를 쓸 정도로 수요가 급증하였다. 이렇게 중국은 뛰어난 상품으로 세계 시장을 사로잡았고 광주의 무역도 눈부시게 번성하였다.2. 세계 최고의 갑부청나라 때에는 진상, 휘상, 그리고 광주 행상이 중요한 상인 집단을 형성하였다. 행상에서는 반(潘)씨와 오(伍)씨 집안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반 씨 집안은 광주 13행의 역사상 유일하게 백여 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집안인데, 이 집안의 첫 행상인 반진승은 광주의 대외무역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 1714년 복건 천주부에서 태어난 반진승은 어려서 광동으로 건너와 남양 무역을 시작하였고, 큰돈을 벌어 광주에 동문행(同文行)을 열었다. 반진승은 영국 동인도회사와 가장 많이 거래하여, 영국 동인도회사도 장기간 거액의 계약을 성사시켜온 반진승의 능력을 인정하였다. 1760년대 이후 영국 동인도 회사는 대중국 무역에서 백은으로 상품을 사는 방식에서 은행을 통한 환어음을 사용한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러한 시류에 맞추어 반진승은 대담하게 영국 동인도회사와 환어음으로 결제할 것을 받아들여 중국의 대외무역에서 가장 먼저 환어음을 사용한 중국 상인이 되었다. 공행에서 가장 능력 있는 인물로 알려지게 된 반진승은 연납을 통해 3품의 관품을 제수 받았다. 반진승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반진승의 사업은 셋째 아들인 반유도가 물려받았다. 그는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남에게 과시하지 않는 인물이었고, 진취적이고 학구적인 상인으로 당시 중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유럽에 대한 식견도 보였다. 반씨 가문은 좋은 품질의 상품을 제공하여 성실하고 신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신중하게 거래 상대를 선택하여 위험한 거래를 피하면서 100여 년 동안 건재할 수 있었다.반씨의 동문행이 상업계를 독주한 이후에는 오씨의 이화행(怡和行)이 전성을 맞이했다. 반씨 집안이 신중하게 무역에서의 위험을 피하는 방법으로 성공했다면, 오씨 집안은 새로운 무역 환경에 잘 적응하여 성공을 이루었다. 오씨 역시 복건 출신으로 동문행의 회계를 맡았던 오국영이 이화행을 창업하였다. 경영이 순탄치 않기도 했지만 끝까지 위기를 이겨내어 손자에게까지 세습할 수 있게 되었다. 오국영의 아들 오병감은 가업을 계승하여 반유도가 행상에서 물러난 뒤 총상의 자리를 이었다. 오병감은 외국 상인이 진 7만 2천원의 채무를 거리낌 없이 탕감해주고, 파산 위기에 처한 행상에게 2백만이 넘는 은원을 지원할 정도로 대범한 거물이었다. 또한, 반유도가 신중하게 거래처를 선정한 것과 달리, 오병감은 미국이나 인도에서 온 새로운 외국 상인들과 거래를 시도했다. 그는 미국 상인들과 대리인들을 신뢰하여 잘 대해주었기 때문에 많은 이익을 얻고 중국과 서양의 무역 시장을 주름잡았다.
「거울에 대한 명상」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즘이란 무엇인지 이 정도의 간략한 문장으로 나타낼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김영하의 「거울에 대한 명상」에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허위의식을 가진 한 남자가 등장한다. 주인공 자신의 이상자아가 만든 거울들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나르시시트의 모습에 대해서 간단한 문장으로 정의된 것보다 더 실감나게 알 수 있었고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거울에 대한 명상」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빠진 한 현대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와 ‘나’의 정부인 ‘가희’와 함께 강변에 세워져있던 폐차의 트렁크 안에 갇히게 된다. 주인공은 트렁크 안에서 가희와 함께 죽어가는 중에도 자신의 모습을 아내가 알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는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자신의 거울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중시하고 그 모습을 자신의 실체라고 착각하는 나르시시트임을 나타낸다. 주인공은 실제 자신의 모습으로 가희를 만나고 있지만 그의 아내 성현은 거울에 투영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은 ‘가희’를 신파적인 여자로 치부하고, 그녀와의 사랑은 불륜으로 바라보고 있다. 반면에 아내인 성현은 순결하고 정숙한 여성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와 나누는 사랑은 로맨스로 여기며 만족스러워 하는데, 이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완성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트렁크 안에서 가희와의 대화를 통해 ‘나’의 나르시시즘이 만든 ‘성현’이라는 거울과 그의 나르시시즘은 파멸의 길로 이르게 된다.주인공은 자신의 실체보다 자신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비칠 수 있는 타인이라는 거울에 절실한 현대인이다. 비단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미 수많은 현대인들이 이처럼 실제의 자신을 잃고 타인에게 투영된 자신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나르시시즘에 빠져있을 것이다. 나만큼은 아닐 것이라고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인공처럼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포기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르시시즘이 무엇인지, 더불어 나 또한 은연중에 포장된 타인과 포장된 나의 모습만 알고 있는 나르시시트는 아닌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