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1. 요약2. 1-2편 경제이념 전쟁- 케인즈 학파(정부주도 경제) 와하이에크 학파(시장주도 경제)3. 3-4편 개혁의 고통-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성공그리고 자유 시장 경제정착4. 5-6편 새로운 게임의 규칙- 세계화시대의 탄생 배경 과새로 만들어야할 ‘게임의 규칙’5. 감상평 및 대안- 세계화는 인류의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인가- 부자들이 세계경제의 흐름을 정하는 것이 정 당한 것인가- 테러리즘은 세계화의 어두운 얼굴인가/ 글로 벌 경제를 위한 과정인가..- 정실자본주의, 양극화 문제 해결- 브레튼우즈 체제 개선- 무분별한 금융자본주의 규제1. 요약20-21세기 세계화의 전개와 세계경제의 촉발과 발전이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느냐가 본 다큐맨터리의 기획의도이다.퓰리처상 수상자인 다니엘 여진이 2006년 미국 CBS에서 6부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이다.크게는 3파트로 내용이 나뉘는데 1부는 케인즈로 대표되는 정부주도 경제과 하이에크로 대변되는 시장경제(신자유주의)의 대결에 관한 내용이고, 2부는 공산주의체제의 몰락과정, 3부는 자유무역의 전파로 인한 세계화, 국제금융위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2. 1-2편 경제이념 전쟁(행동주의 vs 방임주의)수백만의 사람들이 경제 세계화 이전보다 부유해졌다. 하지만 그에 따라서 태러리즘의 이념도 확산되었다. 세계화가 모두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적용에 대한 이념은 차이가 있다.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보며 지난 20-21세기에 걸쳐 진행되어온 경제의 세계화 과정을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계화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커맨딩하이츠란 소련연방 당시 레닌이 사용한 용어로 다른 산업을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관을 의미하는 용어를 따온 것으로 오늘날 경제에 있어 그 통제권을 정부에게 줄것이냐 시작에게 줄 것이냐를 놓고의 이념적 대결의 기준이 되었다.이를 대표하는 각각 발표했고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전체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의 이론을 도입하여 경제의 안정화를 꾀하려 하였다. 미국의 루즈벨트가 대표적인 예로 케인즈의 이론을 받아들여서 세계경제학계의 주류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다.그의 경제 통제에 대한 이론은 매우 세세하고 완성된 것이어서 2차석유파동이 터지기 전인 1970년대 초까지 경제이념의 진리처럼 사용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민간 기업들은 매각되어 정부가 운영하게 되었으며 국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발전보다 복지를 우선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하이에크는 완전히 외면당한 채 시골의 한 대학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는 이념전쟁에서 지고 있었다.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그동안 정부주도하의 경제체제에 의존하던 자본주의 국가들은 지금의 경제이념이 잘 못되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몇몇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경제 공식 등을 통하여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그 이론과 공식은 명확했고 성공적일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때까지도 주류는 케인즈의 이론이었다. 그 당시 하이에크는 미국에서 교수를 하기 원했지만 그를 받아주겠다는 대학은 시카고대학뿐 이었다. 시카고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도시로 늘 주류와는 벗어난 학문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훗날 시카고대학은 두 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곳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케인즈이론이 주류였고 당대의 대통령인 케네디 또한 케인즈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하이에크는 낙심했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하지만 제 2파 석유파동과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즈의 이념의 치명적 문제점이 드러나는 분명한 계기가 되었고 이는 전 세계의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점차적으로 하이에크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실업률과 물가의 동반 상승은 결국 정부통제의 실패의 결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의 이론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연구회가 속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의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은 이 싸움의 중심이었다.대처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노동자들의 시위에 힘을 실어 줬으며, 볼리비아의 작은 군사쿠데타로 인한 정권 교체와 물가 상승 또한 개혁에 장애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는 거의 모든 국가가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 맥시코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는 공산주의의 결함과 패배를 의미하는 것들이었고 세계는 이러한 문제점을 뛰어넘어야만 했다.이를 뛰어넘는 과정 즉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하면서 발생한 문제점으로는 남미에서는 정실 자본주의 즉, 기존의 정부 관료들과 연계된 몇몇 자본가가 국영기업을 사들여서 독점을 하는 방식의 패거리자본주의가 발생하였다. 이는 공정한 분배는커녕 빈부격차만 더욱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참으로 어려웠고 지금도 그렇다.볼리비아는 충격요법을 도입에 시장에게 경제를 맡기는 노력으로 했고 다행이도 이는 성공적이었다. 그 후 많은 국가가 이 방식을 모방했는데 대표적으로 폴란드가 그랬다. 다행이 폴란드로 물자부족현상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 이를 알 수 있는 지표를 계란가격의 하락으로 증명해냈다. 냉전이 해소 되면서 공산주의 체제하의 국가들이 해방 되면서 해당 국가들의 국영기업들이 점차 민영화 되고 수 많은 민간기업들이 생겨나며 경제가 부흥하고 있었다.중국도 점차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져 가고 있었다. 공산주의의 경제가 무너졌고 등소평은 이를 극복하고자 시장을 개방했다. 중국은 정부통제하에 경제를 개방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고르바초프는 이를 쉽사리 따라하지 않았는데 이는 중국과 상황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소농경제였지만 소련은 중공업산업이 80% 이상을 차지했기에 갑장스런 변화는 위험성이 크다고 느껴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에 소련 내부에서는 이러한 고르바초프에 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쿠데타도 발생했지만 다행이 막아냈다. 하지만 이미 소련의 국운은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다. 러시아 경제는 붕괴되었다. 물가는 치솟아 클린턴의 분투는 자유무역이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는 세계화를 정치적실험대에 올린 역사적인 무역협정이었다. 이는 자유시장으로의 큰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협정에 무조건 찬성의 입장은 아니었다. 그는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거라며 지지했지만 그 이면에 노동자의 근로 기준이나 복지등의 불이익에대한 우려 또한 고려했다. 표면적으로 NAFTA는 성공적이었다. 맥시코는 6년만에 400억달러에서 2800억 달러로 무역량이 크게 늘었다. 이처럼 맥시코와 같은 개발도산국이 자유무역에 대한 시각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달랐다. 무역의 규모는 그들에게 아무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노동자들은 피해를 봤다. 맥시코 등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인건비와 비교 당하며 반강제적인 임금 불이익을 당한 것이다.자유무역을 통한 세계화는 막대한 자본의 상승을 초래 했다. 돈이 빠르게 많은 양이 세계에 돌면서 자본의 규모가 커지게 된 것이다. 이는 물적 자원의 이동에 비해 어마어마한 만큼의 규모로 교통하게 되었다. 물적자원규모가 8조원 이동 할 때 자본은 1500조원이 이동했다. 실로 엄청난 액수 였다.자본의 이동이 활발하니 모두가 부유한 듯한 느낌이었지만 이는 위험성도 가지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자본주의는 공산주의가 죽은 이후 새로이 그 발톱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규제 없는 자본의 무분별한 유입이 국가를 다른 의미의 식민지화 시키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1994년 결국 멕시코는 최초의 금융위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실물자산보다 많은 자본의 이동은 곧 보이지않는 자본인 채무의 증가를 의미하고 이는 대부분의 자유무역에 참여한 국가들이갖는 것이었느데 멕시코는 이 채무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도래한 것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이 멕시코만의 문제도 아니고 앞으로도 빈번히 발생하리라는 것을 예상했다. 때문에 멕시코의 금융위기는 멕시코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당연히 미국은 원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도움을 받은 멕시코는 위기를 넘겼지만 실패한 기업고 할 뿐이었다. IMF는 차관을 최대한 늘려서 보조하며 당해국의 부패척결을 지도했다. 이 전염병은 가장 발달한 아시아 국가였던 한국에 까지 전염되었다. 자본이 빠져나가고 가난해진 국가들은 부자나라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는 군사 없이 그 나라를 식민지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제적 식민지 말이다.‘아시아의 금융시장은 이제 통제하의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도 채무불이행을 선언해버렸다. 이는 완전 공황상태를 야기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의 견실한 해지펀드회사인 롱텀캐피달메니지먼트(LTCM)가 휘청거리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회사는 1000억 달러의 자본을 직접관리했고 간접적으로는 1조달러 이상의 자본을 관리했다. 싱가포르, 도쿄, 런런, 뉴욕 등에서 활동하는 등 금융계의 큰손이었고 이 회사의 위기는 곧 관련 국들과 회사 즉 전세계의 위기가 될수 있는 상황인 것이었다. 이에 은행장들이 모여 이 사태의 해결을 모색했고 이들은 LTCM을 구제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은행장들은 세계의 평화를 위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자기회사 주주들의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하는 월급쟁이였을 뿐이었다. 이로써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염병은 아직 남아있었고 곧 브라질에게 그 위기가 닥쳤다. 다행이도 IMF는 빠르게 반응하여 차관을 지급하고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점차적으로 위기가 끝나가는 듯했고 위기를 겪은 국자들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위기로인해 상처를 받았다. 파산하고 빚으로 인해 집이 저당을 잡히는 등 인생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치닫게 되었다.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세계화는 각국의 물건들을 효율적으로 사고 팔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물건,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구할 수 있게 해주고 가격 또한 안정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제도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실상은 강대국들이 유리한 조건으로 무역장벽을 두는 것이었다. 예를들어 인도에서 미국이다.
제로다크써티 (2012)법학과 200816529 윤 기봉이 영화는 실제 미군작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제목인 ‘zero dark thirty’ 는 빈 라덴을 죽이기 위한 미군의 실제 작전 시작시간이다. 빈 라덴은 9.11테러의 주범이다. 미정보부는 빈 라덴을 10년간 쫓아다녔다. 10년이라는 긴 시간만큼, 거액의 돈을 들였다.각종 무기와 정보 등을 수집하고, 수색을 하지만 늘어나는 것은 아군의 피해뿐이었다, 진전 없는 작전 앞에 인질로부터 나온 한줄기 단서를 가지고 은신처를 찾아낸다, 아니 은신처일 가능성이 높은 장소를 찾아냈다. 그러나 지난 실패의 사례와 확실한 물증의 부족으로 미정보부 내에서도작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수 개월 동안의 고심 끝에 작전을 감행하여 빈 라덴을 제거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마야는 자신의 청춘을 바쳐 진행해온 작전이 끝나자 기쁨이라고는 볼 수 없는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나 이제 뭐하지’ 라는 듯 한 허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작전성공으로 영화는 끝난다.해피엔딩인가? 세드엔딩인건가? 영화를 다 보고나서 영화의 결론에 대한 감정이 모호하다. 테러는 나쁘다, 하지만 항일독립운동은 값진 희생이었지 않은가?그렇다면 빈 라덴은 나쁜사람인가? 미군은 착한 사람들인가?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미국의 피해에 대한 보복의 성공이라는 것만이 진실을 말한다고 본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복은 정의로운 것이었고, 빈 라덴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탄압과 어떤 이해관계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테러를 감행해서 성공했던 것 일 뿐이니까 말이다. 일반인의 피해 때문에라도 빈 라덴의 테러가 더 나쁘다고 볼지도 모르겠지만, 미군이 실수로 죽인 일반인 아랍사람도 만만치 않게 많다는 사실. 이를 놓고 보면 누가 옳고 그르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개인의 판단임으로 이 영화는 정의로운 영화라기 보단 복수의 성공담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테러는 왜 발생할까?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인 것 같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국제사회는 사실상 미국이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에 미국에 반하는 행동이나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나라는 각종 경제 재재 및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은 강자의 주관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치이니까(적자생존). 하지만 약자도 사람이고 자존심이 있는 법 재재와 착취의 강도가 심해지면 그에 대한 반발도 심해지는 법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듯이 말이다. 빈 라덴도, 아니 아랍의 산유국들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 반발심이 올라오고 마침내 그 의중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 테러는 그렇게 생겨난 것이라고 본다.미국은 이러한 테러를 안고가야 하는 입장인 것이고 테러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제재의 선을 찾아야 할 것이다.미국은 알카에다라는 세계적인 태러조직의 수장을 잡은 쾌거를 자위하며 축제분위를 내지만 그것이 국제법적으로 합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식코(2007,마이클 무어)序 Ⅰ. ‘식코(sicko)’는 미국의 속어로 ‘환자’나 ‘앓던 이’ 라는 뜻이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마이클 무어 이고 2007년에 개봉된 작품이다. 이 영화를 직접보게 된 것이 본 수업을 통해서이다. 개봉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부끄럽게도 재미없어보였기 때문에 안 봤었다. 그 동안 이런 영화를 왜 안 봤을까 하며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보고난 후의 진심이다. 지금부터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쓰고자 한다.Ⅱ. 영화는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이 자신의 무릎에 난 상처를 직접 꼬매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작업도중 손가락을 잘렸던 또 다른 한 남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지의 봉합은 6만 달러이고 약지의 봉합은 1만2천 달러였는데, 잘린 손가락을 모두 붙이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커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약지만 붙일 수 밖에 없었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이 남성들을 보며, 안타까워 속이 끓었다. 병원비가 비싸기 때문에 돈 없고 의료보험이 없는(미국인 5천만명) 사람이 아프면 병원치료가 매우 어렵다는 거다. 까다로운 보험가입 기준 때문에 보험료를 낼 돈이 있어도 가입이 어렵다.위의 두 사례가 이미 충격적이었지만, 영화는 보험에 가입한(미국인 2억5천만명)사람들에게 초점이 잡혀있다. 치료를 받기위해 보험회사에 치료비용을 청구해도 보험회사는 어떻게든 치료비용을 주지 않기 위해 마치 살인사건을 탐정하듯 치밀하게 지급거부의 근거를 찾아내고 보험료를 지급하더라도 강력한 패널티를 부여한다. 단지 곰팡이 감염 같은 작은 병력 하나 때문에 보험지급을 거부당하고 의료보험비가 비싸서 파산을 한다. 보험회사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병이 악화되고 사망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내 아버지 같고 어머니처럼 느껴저서 슬프고 한편으론 화가났다. 이 토록 이기적인사회가 제1의 선진국이라 불리우는 미국의 실태라는 것 이 말이다.영화는 이런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닉슨 정부 때 시작되었고 수 많은 모순성에도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그 이면에는 보험회사와 제약회사의 막대한 로비가 있었음을 주장한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받은 실제적인 금액까지 보여주며 그 주장의 신빙성을 더해준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위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알면서도 묵과해온 것이다. 반면 캐나다나 영국, 프랑스에서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의료해택을 누리면서도 해당 병원의 의료진들의 높은 소득받는다. 이 광경을 통해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각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