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day Usealice walker-당신의 할머니에게 바칩니다.나와 매기가 어제 낮에 아주 깨끗하게, 풀을 가지런히 다듬어 물결이 치도록 해 둔 뜰에서, 나는 그녀를 기다릴 것이다. 이런 뜰은 생각 외로 편안하다. 이곳은 그냥 뜰이 아니라, 아주 커다란 거실 같은 것이다. 흙과 모래를 가장자리의 작고 구불구불한 도랑으로 쓸어내면 마루처럼 깨끗해지는데, 그러면 누구나 와 앉아서 느릅나무를 찾을 수 있고, 거기서 집 안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않는 산들바람을 기다리는 것이다.매기는 언니가 돌아갈 때까지 불안해할 것이다. 그녀는 언니를 부러움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 팔과 다리 아래쪽에 있는 화상 자국이 흉하고 부끄럽다고 여기면서, 모퉁이에 절망적으로 서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언니는 항상 삶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언니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매기는 생각했다.텔레비전의 쇼 프로그램에서 자수성가한 자녀와, 무대 뒤에서 나약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등장하는 부모가 만나고 놀라고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때 놀랐다는 것은 기분 좋은 놀라움이다. 부모 자식이 TV에 나와서 서로 저주하고 모욕하는 꼴은 보일 수 없지.) TV에서 어머니와 자식은 포옹하고, 마주보며 웃는다. 부모가 흐느끼면 자식은 부모를 팔로 감싸고,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탁자에 기댄다. 나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아주 많이 봐 왔다.가끔, 내가 갑자기 이런 류의 방송에 나가 디를 만나는 꿈을 꾼다. 어둡고 의자가 푹신한 리무진에서 내린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밝은 방으로 안내된다. 그 곳에서 나는 조니 카슨 같은 사람을 만나고, 그는 나에게 미소 짓고 악수를 청하면서 내가 얼마나 좋은 딸을 뒀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무대로 올라가고, 디는 눈물을 머금고 나를 껴안는다. 그녀는 내 드레스에다가 핀으로 큰 난초를 꽂아준다. 뭐, 비록 예전에 그녀는 난초가 영 촌스러운 꽃이라고 했었지만.현실의 나는 크고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백인 남자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도망갈 준비를 한 채, 그들과 가장 먼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디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언제나 누구든 똑바로 쳐다볼 것이다. 그녀는 천성 자체가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는 아이였다.“나 어때요, 엄마?” 매기가 거의 문 뒤에 숨은 채로 말했다. 깡마른 몸에 분홍색 치마와 붉은 블라우스를 입어서 겨우 그녀가 거기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뜰로 나오렴.”당신은 부주의한 운전자의 차에 치인 개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자신에게 친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만가만, 절룩거리며 다가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매기가 꼭 그런 식으로 걸었다. 그녀는 늘 그랬다. 가슴에 턱을 딱 붙이고, 땅을 보면서, 발을 질질 끌고. 예전 집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었던 그 화재 이후로 말이다.디는 매기보다 피부색도 더 밝고, 머리칼도 더 예쁘고, 체격도 더 컸다. 나는 가끔 잊어버리지만, 그녀는 이제 완전히 여자가 됐을 것이다. 집이 불탄지 얼마나 되었더라? 나는 아직도 가끔 불꽃 튀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매기가 머리에서는 연기가 나고 입고 있던 옷가지는 작고 검은 종잇조각이 되어 날리는 모습으로 내 팔을 붙드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그녀의 동공은 확장되고, 번쩍이는 화염이 그 눈에 비치는 것 같다. 그리고 디의 모습. 나는 껌을 파내던 고무나무 아래에 그녀가 가끔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불탄 집의 거무스름한 회색 판자가 붉은 벽돌 굴뚝 앞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 그 모습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 디의 표정... 잿더미 옆에서 춤이라도 추지 그러냐고, 그녀에게 묻고 싶었었다. 그녀는 그렇게도 그 집을 싫어했다.나는 그녀가 매기 역시 싫어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와 내가 그녀를 아우구스타의 학교에 보내려고 모금을 하기 이전의 일이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 그녀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주었다. 말들, 거짓들, 다른 민족의 풍습들에 관 질문이 허락되지 않았다. 가끔 매기가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줄곧 더듬더듬거리며, 하지만 싹싹한 태도로 읽어나갔다. 그녀는 자기가 별로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멋진 외모나 돈도 그렇지만, 민첩성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치석이 가득하고 성실하게 생긴 존 토마스와 결혼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여기에 자유롭게 앉아서, 아마도 그저 찬송가나 혼자 부르며 살 것이다. 비록 내가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하지도 못한다. 나한테는 언제나 남자의 일이 더 나았다. 내가 1949년에 옆구리를 채이기 전까지는 우유 짜기도 좋아했었다. 소들은 사람이 우유를 잘못 짜지만 않으면 얌전하고 느리고 사람을 공격하지도 않는다.나는 일부러 집을 등지고 앉았다. 지금 집은 지붕을 주석으로 만든 것만 빼면 예전에 타버린 집처럼 똑같은 방이 세 개 있다. 이제 널지붕은 쓰지 않는다. 창문이랄 것은 없고, 배의 현창 같은, 동그랗지는 않고 네모져서는 덧문을 바깥으로 지탱하도록 생가죽을 달아놓은 구멍은 몇 개 있다. 이 집도 예전 집처럼 초원에 있다. 디가 보면 분명 이 집도 부숴버리고 싶어할 것이다. 한 번은 디가 편지를 보내서는 우리가 어디에 살든 우리를 보러 어찌 오기는 할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친구들은 절대 데려오지 않겠지. 매기가 나에게 “엄마, 디한테는 언제쯤 친구가 생길까요?”하고 물었을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했다.디에게는 몇 명의 친구가 있다. 세탁일에 학교 끝나고 어울리는 분홍 셔츠 입은 교활한 소년들, 절대 웃지 않는 신경질적인 소녀들. 그 애들은 디의 잘 다듬어진 화술, 귀여운 몸매, 세제 거품마냥 뿜어져 나오는 통렬한 유머에 감명을 받아 그녀를 숭배했다. 그녀는 그애들에게 설교를 해주곤 했다.디가 지미 티를 좋아할 때, 그녀는 자신의 모든 흠잡기 능력을 그에게 발휘하느라 우리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지미는 겉치레밖에 모르는 무식한 가족이 있는 싸구려 도시 여자와 결혼했다. 만한 노랑과 주황색이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열기에 내 얼굴이 다 더워지는 것 같다. 귀에 걸린 금귀걸이도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그녀가 드레스 겨드랑이 주름 부분이 흔들리도록 팔을 움직일 때마다 팔찌가 흔들리면서 소리를 냈다. 그녀가 가까이 와서 드레스가 느슨하고 늘어져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꽤 맘에 든다. 매기는 또 “으으으” 소리를 했다. 자기 언니, 디의 머리 때문이었다. 디의 머리는 양털처럼 쭉쭉 서 있었다. 머리 색깔은 밤처럼 검었고, 머리 양쪽에는 돼지꼬리 같은 두 개의 밧줄이 작은 도마뱀들처럼 꼬여 귀 뒤로 넘겨져 있었다.“와수조티아노!(아프리카 반투족의 인사말)” 그녀는 드레스 때문에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으로 다가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배꼽까지 오는 머리를 한 그 땅딸막한 남자가 방긋 웃으면서 따라 말했다. “아살라무알라이쿰(아랍 인사말, 평화가 그대에게), 어머님, 여동생!” 그는 매기를 껴안으려고 했지만 매기는 내 의자 뒤로 숨었다. 매기의 떨림이 느껴졌고, 올려다보자 그녀의 턱으로 땀이 흘러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일어나지 마세요.” 디가 말했다. 난 뚱뚱해서 일어나려면 좀 노력이 필요하다. 1~2초간 애를 쓰면 아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디는 자기 샌들의 흰 굽을 보이며 돌아서서 차로 돌아갔다. 다시 나온 그녀는 폴라로이드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는 집 앞에서 재빨리 허리를 굽히고는 나와 내 뒤에 겁먹고 선 매기를 집을 배경으로 찍었다. 그러고는 폴라로이드를 뒷좌석에 다시 놓아둔 후, 와서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그러는 사이에 아살라무알라이쿰은 매기와 악수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매기의 손은 물고기같이 흐느적거렸고, 땀이 나면서도 차가워졌다. 그녀는 계속 손을 뒤로 빼려고 했다. 마치 아살라무알라이쿰은 악수를 하고 싶긴 한데 어렵게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악수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곧 매기와 악수하기를 포기했다.“그럼, 디,”“아니에요, 엄마, ‘디’가 아니헤아려봐야 되니?”그는 모델A카(1927년 포드 사에서 내놓은 보급형 자동차 모델)를 살펴보는 사람처럼 그저 웃으면서 서 있었다. 때때로 그와 왱가로는 내 머리 위로 눈짓을 주고받았다.“새 이름은 어떻게 발음하는 거니?” 내가 물었다.“그 이름으로 절 부르고 싶지 않으시다면, 그럴 필요 없어요.” 왱가로가 말했다.“왜 그래야 하니?” 내가 물었다. “네가 원하면, 그렇게 불러 주지, 뭐.”“처음엔 어색할 거라는 것 알아요.” 왱가로가 말했다.“익숙해지겠지,” 내가 말했다. “다시 한 번 발음해줘 봐.”뭐 곧 우리는 그 이름을 이상하게나마 발음하게 되었다. 아살라무알라이쿰은 힘겹게 두 번, 세 번까지 이름을 말해주었다. 두 세 번 내가 잘못 발음하니까 그는 그냥 하키마 바버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는 당신 진짜 이발사(=barber, 바버)냐고 묻고 싶었지만, 머리 꼴을 보니 그럴 것 같지는 않아서 그만 두었다.“저 식용 소 모는 사람들하고 출신이 같은 모양이에요.” 나는 말했다. 그들은 아마 당신을 보면 아살라무알라이쿰, 하고 불러주겠지. 하지만 악수는 하지 않을거야. 그 사람들은 항상 너무 바쁘니까. 소를 먹이고, 울타리를 고치고, 가축용 소금을 은신처인 동물 사육소에 두고, 건초를 쌓아두느라 말이지. 그들은 백인들이 그들의 소떼를 독살시키면 밤새 총을 들고 깨어 있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려고 1.5마일이나 걸은 적도 있다.하키마 바버는 말했다. “나는 그들 사상 중에 일부는 받아들이지만 농사짓고 소 먹이고 하는 일은 내 스타일이 아니에요.” (왱가로가 정말 바버와 결혼했는지 그들은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우리는 식탁 앞에 앉았고, 그는 앉자마자 콜라드 풀과 돼지고기는 더러워서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왱가로는 가서 창자와 옥수수빵과 풀 같은 다른 것들을 먹었다. 그녀는 고구마에 팬 푸른 곰팡이 이야기를 했다. 모든 것이 그녀를 기쁘게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의자 살 돈이 없어서 아버지가 만든 의자를 아직도 쓰고 있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Lady Lazarus이제까지의 과제들 중 이번 시가 가장 난해한 것 같다. 도대체 시인의 생각을 잘 따라갈 수가 없다. 시가 짧고 단어도 쉬운 편이라 시를 해석하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수업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 같다.우선, 이 시는 전체적으로 매우 음울하고 어두운데, 실제로 작가인 Sylvia Plath는 이 시를 30세 때 자살 기도 이후에 썼다고 한다. 이 시에 따라, 죽는 것을 ‘기술’로 여기고 그것을 매우 잘한다고 느끼는 그녀는 그 후 31세에 실제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어둡고 기괴한 그녀를 나는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 이 시 또한 별로 훌륭한지를 잘 모르겠다. 어쨌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니 열심히 공부는 해 보아야겠다.시의 첫 부분(1~4연)에서 그녀는 “그것”을 매 10년에 1년씩(나는 이것을 “10년에 한번씩”이라고 해석했다) 한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여기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러나 시를 끝까지 읽어보니 여기에서 말하는 “그것”은 자살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점으로도 미루어보아, 작가는 이 작품의 시적화자와 동일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시의 첫 부분에서는 그녀의 외적인 묘사도 나오는데, 그녀의 피부는 나치의 램프 갓처럼 밝고 그녀의 오른발은 서진같고(묵직하다는 뜻일까?) 그녀의 얼굴은 특색이 없고 화사한 유태인의 린네르 천 같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치의 램프 갓”은 (교재의 각주에 따르면) 실제로 나치가 유태인의 살갗을 벗겨 램프의 갓으로 사용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왜 여기에서 유태인의 이미지를 사용했을까? 무언가 박해받고 고통당한 희생자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그러한 유태인들을 잔인하게 죽였던 야만인의 이미지를 부각하고 싶었던 것일까..그 후(5~8연) 그녀는 자신이 죽게 되면 그녀의 숨결과 얼굴은 곧 사라진다고 하면서, 무덤 속의 살(즉 죽음)이 자신에게 익숙하다고 한다. 흔히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 죽음이 두렵기보다 친숙한 사람들이 자살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녀 또한 그러한 케이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녀는 서른 살의 미소 짓는 여인으로, 고양이처럼 9번 죽는다고 한다. (여기서 왜 ‘고양이’를 비유로 들었는지 궁금하다.) 그녀는 자살 시도가 이제 3번째라고 하면서, 자신이(혹은 자신의 생명이) 10년에 한번씩 소멸하는 것이 매우 하찮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그녀가 그녀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매우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녀는 10년에 한번씩 그녀의 삶을 포기하려 하는 걸까? 왜 그녀는 삶에 애착을 가지지 않고 죽음에 익숙하다고 느끼는 걸까?이제 그녀는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인정 없는 군중들을 묘사한다(9~12연). 그녀가 손발을 푸는 것(그녀의 사망)을 보기 위해 군중들은 땅콩을 씹어 먹으며(거의 오락을 즐기는 수준으로) 몰려온다. 이러한 군중들을 보며 그녀는 인정 없고 오히려 타인에게 잔인하기까지 한 그들을 비난하고 책망하는 듯 하다. 그러한 가운데 그녀의 썩어가는 무릎과 피부와 손은 그래도 여전히 그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그녀가 온전한 피부와 손을 가지고 있든 혹은 그것들이 썩어 문드러져 있든 어쨌건 그녀는 그녀 자신인 것이다.그 다음 부분(12~14연)에는 그녀의 자살 과정이 설명되어 있다. 처음 자살이 시도된 것은 10살 때였고 그것은 사고였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자살 시도 때에는 정말 죽으려고 작정을 했었지만 결국 의사들에 의해 목숨을 구했던 것 같다.그 후 그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오는데(15~19연), 그녀는 죽는 것은 기술이며 그녀는 그것(죽는 것)을 매우 잘한다고 한다. 그녀는 죽는 것을 마치 하나의 ‘작업’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고 더 나아가 그것을 그녀의 ‘천직’이라고 한다. 죽는 일이 천직이 될 수 있다니 참 괴이한 일이다. 그녀는 독방에서 죽는 것은 매우 쉬우며, 자살을 시도하고 죽음의 상태로 있는 것이 매우 쉽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은 또한 그녀를 녹초가 되게 한다.그 다음 부분(20~22연)에서 그녀는 그녀의 상처를 보고 그녀의 가슴소리를 듣는 데 요금이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 말, 한 번 만지는 것, 피 한 방울, 머리 한 올에도 요금이 있다고 한다. 내 생각에 이 부분은 그녀 존재의 소중함과 가치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녀는 그냥 썩어지고 희생되고 마는 그러한 값어치 없고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그녀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는 가치가 있고 귀중한 것들임을 이 부분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