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 1980년대민족?민중문학론Ⅰ. 1970년~80년대 민족문학론1. 민족문학론의 대두와 전개1970년대 초반, 민족문학이라는 용어는 문단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에서 사용하는 의미가 전혀 달랐다. 초반에는 양 진영 모두가 그들의 문학적 사명을 민족문학의 구현으로 생각했는데, 보수진영이 ‘과거와 전통성’을 강조하며 이 용어를 사용했다면 진보진영은 ‘현실과 미래성’을 중시하며 이 용어를 사용했다.1970년대 초중반 사이 치열한 논의를 거친 민족문학론은 70년대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현실성 중시의 개념으로 정착된다. 진보진영 쪽의 이론으로 수렴되는 것이다.(1) 보수적 민족문학론의 전개민족문학이라는 용어는 1970년 10월 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월간문학’의 특집을 통해서였다. 이 특집에서 문덕수, 이형기, 김상일 등의 문인들은 민족문학의 예를 ‘고전’에서 찾으며 민족문학을 민족 특유의 의식이 담긴 문학이라고 정의했다.김현은 과거 우리나라 문족문학론의 특색을 우파적 보수주의, 복고조, 계몽주의라는 세 축으로 파악한다. 김현은 민족문학이라는 용어가 국수주의적이고 지나치게 복고, 교조적이라는 점을 비판하며 ‘한국문학’이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한다.이런 ‘월간문학’의 특집은 해방 직후 이분법적 대립 상황 속에서 제시된 김동리, 조연현 식의 민족문학론을 확인 부활시키겠다는 의도를 띠고 있었다.이후 김동리는 ‘월간문학’에 ‘근대문학이 곧 민족문학’이라는 추상적인 정의를 내렸고 김현승은 민족문학의 정의는 누구에게나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냈다.또한 김동리는 보수진영의 민족문학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이라는 글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글에서 민족문학이란 곧 인간주의 문학의 하나이며, 그것은 근대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김동리는 한국인의 전형에 대해서도 찾았는데 한국적인 고유한 정신의 흐름과 한국인의 특성을 찾는 과정에서 그가 찾은 것은 샤머니즘의 세계이다. 게다가 이런 가장 한국적인 민족문학은 보편성을 바탕으로 해야 하므로 세계문학으로서의 반기에 이르러 민족문학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그 계기는 라는 백낙청이라는 이론가의 글이었다. 이 글에서 백낙청은 기존의 논의가 복고주의와 국수주의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 비판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먼저 민족문학의 논의가 관념적인 것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민족적 현실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일단 민족이 존재해야 하고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문학을 ‘민족문학’이라고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민족문학이란 민족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을 외면할 수 없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민족문학이 민중에 바탕을 두어야 할 필요성이 더욱 가중되었다고 판단하였다.백낙청은 민족문학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민주회복’과 ‘분단극복’ 두 가지로 제시하였는데 이는 진보적 민족문학론이 반체제론으로 간주되어진 원인이기도 하다. 결국 백낙청은 민족문학을 제 3세계 문학의 일환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문학적 표현 방법과 태도의 주류를 리얼리즘으로 선택하며 자주화의 노력 속에서 민족통일을 이루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이 시기의 진보적 민족문학의 시점을 갖고 있는 이론가는 염무웅, 임헌영, 고은 등이 있었는데 이들도 모두 백낙청과 인식을 같이 하면서 민족문학 실행론에서는 각자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2. 1980년대 민족?민중문학론의 전개(1) 민족문학론에서 민중문학론으로80년대 민족문학 논의에서는 무엇보다 민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채광석은 민중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우리에게 만남의 문화, 통일의 문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채광석의 논의는 기존의 민족문학론에 민중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적 민족문학론’의 초석을 마련한 논의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의 견해는 백낙청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보완적 성격이 강하다.백낙청은 민중문학의 창작 주체에 대한 논의로서, 누구의 손에 의해 창작되었는가는 부수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민중의 참여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작품이 민중주장이다. 이는 문학예술운동에서 소시민적 주도권의 해소와 민중적 주도권의 확립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또한 문학운동을 문화운동 내지 사회운동 차원에서 보려는 시각도 점점 강해진다. 특히 이 시기에는 민족?민중문학과 그 실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창작주체에 대한 의견 개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장르 확산에 대한 논의도 일어난다.김명인의 민중적 민족문학론의 핵심은 무엇보다 창작 주체 문제에 있다. 즉, 지식인 창작 중심의 민족문학론에서 생산대중 혹은 민중 창작 중심의 민족문학론으로의 전이를 주장한 것이다. 김명인은 소시민계급의 몰락과 더불어 거기에 계급적 기반을 둔 지식인 문학의 위기를 주장했다. 이 점에서 그의 이론은 기존의 이론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이론이라 할 수 있다.이 시기에 사용되는 민중문학이라는 용어의 내면적 의미는 70년대 이후의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맥락 속에서 대부분 포괄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새롭게 대두된 민족문학 논의는 70년대 이후 진보적 민족문학론 속에 그대로 묶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기에 제기된 다양한 이론들은 서로 간에 분명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었고, 이러한 차별성을 바탕으로 상호 비판과 공격이 이루어졌다.Ⅱ. 텍스트 자료ⅰ. 백낙청, 1. 머리말백낙청은 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부마민주항쟁, 80년 5월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통해 민족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을 찾게 된다. 한 시대의 진실이 그 시대의 문학의 흐름 속에서 드러난다는 전제에 의하면 이 사건으로 인해 80년대에는 민족문학에 있어서 ‘새로움’을 갖게 되는 시기라고 한다.하지만 80년대 초의 문학에서는 그러한 새로움을 찾기는 힘들고 오히려 ‘후퇴’의 느낌이 더욱 강하다고 한다. 또한 다시금 되살아나는 논의의 목소리가 70년대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민족문학의 고비를 맞아 뒷걸음질 칠 것인지 역사 속에 80년대의 새로움을 찾아내어 실현할 것인지의 분수령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2. 단계’라고 설정하였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민주회복’운동에 전념하고 뒤이어 본격적인 ‘분단극복’의 노력이 전개되리라는 식의 ‘단계’설정부터가 많은 문제점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민주화’의 문제와 ‘분단극복’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두 문제가 단 하나의 어떤 결정적 사건으로 성취되리라는 말이 아니고,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동일성을 말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 문제들은 분단시대 안의 여러 문제들이 분단으로 인해 갖게 되기 마련인 본질적인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인식의 발달로 인해 오늘의 현실이 새로운 ‘단계’냐 지체되는 ‘국면’이냐를 따지는 일이 무의미함과 분단극복운동으로서 4?19가 갖는 한계자체, 바로 민주화가 8?15처럼 갑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한다는 것과 한편으로는 7?4 공동성명처럼 소수 집권자들의 과업이 사실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민주화 운동의 부분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진전은 1980년을 고비로 ‘새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국토의 분단과 민족의 분열을 다룬 작품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결코 많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전에도 박봉우와 신동엽, 만년의 김광섭 등 시인들의 업적을 뺀다면 분단의 비극을 비극으로 실감시켜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게다가 소설분야에서는 최인훈의 이나 이호철의 을 꼽을 정도이며, 60년대 말 방영우의 이나 70년대 초의 이문구의 , 박완서의 정도 일 것이다. 하지만 백낙청은 7?4 공동성명이 나오기 전에 정통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분단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어 높은 예술적 성과를 이룩한 것은 황석영의 중편 로 보고 있다.7?4 이후에는 직, 간접적으로 이 주제를 다룬 소설이 훨씬 많아졌는데 대표작으로는 신상웅의 장편 을 비롯하여 이정환의 단편 , 김원일의 , 그리고 전설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박태순의 등을 꼽는다.7?4 공동성명의 충격에 따른 국민들의 민족적 각성에 나오는 등, 소설의 분야에서만도 분단시대에 대한 인식의 전진과 확산이 눈에 뜨인다.중요한 것은 이 작품들이 ‘분단 주제의 문학’이라는 무슨 특별한 장르를 이루며 따로 성립했던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분단시대의 삶 전역에 걸쳐 우리의 문학 탐구가 확대되고 심화되는 과정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단 바깥에서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이 점점 일체화되어가던 과정과도 맥이 일치하며, 작가가 분단시대의 왜곡된 삶을 올바로 인식시켜준다든가 그 역사적 뿌리를 일제시대, 그 이전으로까지 추적하여 밝혀주는 작업과 이어지는 것이다. 의 작가가 의 작가이자 의 저자이며 탈춤과 마당극 운동의 동참자로 되기도 했다는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시집 에 이르러 열화와 같은 통일지향 시인으로 부각된 고은의 경우도 시집 에서 남북통일 없는 민주주의의 무의미함을 직설적으로 그러나 의표를 찌르는 심상을 교묘히 용해시키면서 주장하기에 이른다.백낙청은 이후 자신의 글에서 70년대 후반, 80년대의 많은 작품들을 인용하면서 80년대 민족문학의 과제를 올바로 알려고 한다.이호철의 장편 의 작가후기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분단극복의 의지가 단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8?15처럼 통일이 갑작스럽게 올 수도 있다는 이호철의 말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광복이 갑작스럽게 왔기 때문에 이렇게 진짜 해방이 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작가가 이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고 늘 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일 테지만 식민지 시대든 분단현실이든 주어진 삶, 주어진 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인데 이런 작가의 생각은 의 작중인물들에 대하여 작가가 작중의 현실에 혼신의 애정을 쏟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방관하며 희화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게 된다. 즉, 분단시대의 허깨비 삶을 부정하고 언젠가는 극복해내리라는 의지를 갖고 있어도 작가가 이라는 작품에서 자기비판한 것처럼 그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하지만 문학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나
교수/수업교육공학에서 뿐만 아니라 교육과 관련된 학문 전반에서 교수와 수업은 자주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두 용어의 쓰임을 살펴보면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두 개의 용어를 같은 의미로 쓰게 된다면 사용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 뿐더러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혼란이 생기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와 ‘수업’이라는 용어의 차이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교수설계의 모형 중의 하나인 에서 보면 ‘Develop Instructional Strategy’와 ‘Develop and Select Instructional Materials’ 라는 단계가 있다. 이는 모두 교수설계의 개발단계에 속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번역함에 있어서 ‘교수전략 개발, 수업자료 개발 및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공학과)’ 혹은 ‘교수전략 개발, 교수개발 및 선택(, 나일주 외)’ 와 같이 다르게 번역이 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Instruction’이라는 단어가 ‘교수’와 ‘수업’ 두 가지 단어로 해석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와 ‘수업’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알아보자.우선 사전적 의미로는 교수?수업?학습지도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사범대 교육연구소에서 발행한 에 의하면 교수를 ‘Teaching’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교사가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체의 활동을 말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흔히 수업, 위교, 훈련, 조건화 등을 교수활동에 포함된다고 보며, 그 중에서 교수의 핵심적인 의미에 가장 가까운 것이 수업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수업을 ‘Instruction’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학습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학습자의 내적 및 외적 조건을 체계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즉, 수업은 훈련이나 조건화가 행동과 습관을 바꾸는 일인 것과는 달리 지식과 신념을 바꾸는 일이며, 그 중에서도 ‘근거 있는 지식과 신념’을 가지도록 한다는 점에서 위교와 구별된다.한편, 교육과학사에서 펴낸 )의 개념은 어떠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박성익은 수업을 진행되는 특정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데 이를 ‘처방적 지식’이라 하며 처방적 지식은 학습과 수업을 구성하는 일반적인 요소 혹은 방법)의 특정을 잘 드러내는 개념으로 Design(설계)라 서술하고 있다 (교육공학 탐구의 새지평, 244). 다시 말한다면, 설계는 교수/수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련의 모든 전반적인 활동으로 계획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으로 표현 할 수 있다. 위 제시된 Instruction Design(교수설계/수업설계)은 즉, 가르치는 행위에 있어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제반적인 활동이며 창의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각각 다른 서적에서 ID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살펴보자. ID를 교수설계로 표현하고 있는 서적은 ‘21세기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이화여자대)와 ‘교육방법과 교육공학’(번영계 외)이다. 수업설계로 표현한 서적은 ‘교수학습방법의 이해’(김광자)와 ‘교사를 위한 교육공학’(신통철 외)이다. 위 4개 서적에서 용어 정리를 간략히 살펴보자.먼저 ‘21세기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에서 교수설계는 ‘특정의 학습내용과 특정의 학습자가 주어졌을 때 기대하는 학습자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최적의 교수방법이 무엇인가를 결정해 나가는 과정이다’(Reigeluth, 1983). 그러므로 교수설계이론은 사람들이 배우고 발달할 수 있도록 더 잘 도와주는 방법에 대하여 명백한 지침을 제공하는 이론이다(Reigeluth, 1999)'라고 Reigluth의 정의를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두 번째, ‘교육방법과 교육공학’ (번영계 외 저)에서의 교수설계의 개념은 ‘특정 학습내용이나 학습 집단에 대하여 학습자의 지식과 기능면에서 기대되는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최적의 교수방법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음으로 수업설계의 의미는 첫 번째 ‘교사를 위한 교육공학’ (신동철 외)에서 수업 활동은 계획적으로 의도한 결과를 학생들습지식, 전제학습지식, 필수전제지식 혹은 사전학습지식을 추천할 수 있겠다. 용어 통일 시 우선, 다양한 서적들에 쓰인 용어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선수’라는 용어는 거의 모든 서적에서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고려하여 ‘선수’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 더불어 미리 알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 중 능력이라는 개념이 더 포괄적인 의미로 지적 기능, 즉 지적 능력이란 개념 또한 포함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또한 능력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기술이라는 용어보다는 능력이라는 용어가 인간에게 사용하기에 더 적합하고, 일상에서 더 빈번히 쓰여 이해하기 수월하므로 기존 용어와 새 용어들을 모두 고려하였을 때, 선수기능이나 선수학습기술 등 보다는 ‘선수학습능력’으로 통일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참고문헌박성익 외, 교육방법의 교육공학적 이해, 교육과학사 2003.나일주 외, 교육공학의 이해, 학지사 2006.조규락 외,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학지사 2006한국교육공학회 엮음, 교육공학 용어사전, 교육과학사 2005.이화여대 교육공학과, 21세기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교육과학사 2007.성과평가 / 총괄평가'평가‘는 어느 분야, 어떤 활동을 막론하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과정이다. 즉, 하나의 단위 활동이나 특정 과정을 진행해 나가거나 마무리 하면서 그 활동을 총체적으로 점검, 반성해 봄으로써 보다 나은 시작을 준비하게 하고 개선된 산물을 만들어 나가는 건설적 과정이 바로 평가이다.교수설계 및 개발과정에서의 평가는 교수-학습 활동에 대한 다양한 분석, 설계, 개발, 실행의 모든 절차와 각 단계에서 수행되어야 할 과제 및 구성 요소를 포괄하여 형성적으로 평가함으로써 보다 질적으로 개선된 교수 개발을 목표로 하는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과정이다. 교수설계 및 개발 과정이나 그 과정의 결과물을 평가하고자 할 때 우선 평가의 목적이 무엇이며 무엇을, 누가, 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교수설계 및 개발에서의 평가는 교수개발의 전 과정에 걸쳐 on appropriate conditions of learning. Guiding the development of measures of learner performance assisting learners in their study efforts.' 이다.그렇다면 현재 한국에 편찬되어 있는 서적들에서는 Performance Objectives를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살펴보자. Performance Objectives를 ‘수행목표 진술‘ 로 표현하고 있는 서적은 이다. 반면 ’성취목표 진술‘ 로 표현하고 있는 서적은 와 다. 이 외에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에 의하면 ’수행목표 진술‘과 ’성취목표 진술‘ 외에도 ’구체적 행동목표의 진술‘ 과 같은 개념도 쓰이고 있었다.’21세기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에서의 ’수행목표 진술’ 은 ‘학습과제 분석의 결과와 학습자 특성의 분석결과를 기초하여 학습자들이 수업이 끝났을 때 성취해야 할 수행목표들(objectives)을 구체적으로 진술한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두 번째로 ’교육공학의 탐구‘에서는 ’성취목표의 신술이란 교수분석에서 확인된 기능에 대한 성취목표를 진술하는 단계이다. 성취목표는 한 단위의 교수 프로그램 학습이 끝났을 때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자세하게 기술한 것이다. 성취목표는 교수분석에서 도출된 각 기능에서 하나 이상의 목표가 신술된다. ‘ 라고 표현하고 있다. 세 번째로 에서는 ’교수분석 및 준비행동, 특성파악에 기초를 두고 학습자가 교수를 통하여 성취하여야 할 목표를 진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목표 진술에는 학습자가 배워야 할 지식 또는 기술과 이러한 지식, 기술이 성취되는 조건 및 성공적인 학업수행의 준거 등이 상세히 명시되어져야 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외 인터넷 자료실 등에서 찾을 수 있는 정의 들을 몇 가지 제시하자면 ’수행목표 진술이란 교수 분석 및 출발점 행동 진술에 근거하여 설계하고자 하는 교수 프로그램에 의한 학습이 끝났을 때 학습의 결과로서 학습자가 행동이 상례다. 앞서 여러 가지 책을 조사한 것과 같이 필요분석이란 용어가 거의 동일한 뜻으로 사용된다. 교수설계 모형에서는 대체로 여러 단계의 교수 설계 과정 중에 학습자가 성취하여야할 목표를 정하는 첫 단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어 어떤 책에서는 ‘교수목적의 파악’이라고 하거나 ‘요구분석과 목표설정’이라고 제목에 추가적인 단어를 붙이기도 한다. 현재는 ‘요구분석’이라는 용어가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으나 ‘요구분석과 목표설정’과 같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추가되는 것이 이해하는 데 용이할 것이다.참고문헌교육공학의 이론ㆍ적용ㆍ논쟁, 박정익ㆍ강명희ㆍ김동식편, 교육과학사교육공학의 탐구, 권성호,양서원교육공학,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과학사21세기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교육과학사교육방법 및 공학, 유구종ㆍ강병재, 창지사교육공학의 이해, 나일주ㆍ정인성, 학지사교육공학용어사전, 한국교육공학회이러닝(e-learning)이러닝(e-learning)은 교육공학분야에서 매우 자주 볼 수 있는 용어로 그 개념이 매우 광범위하다. 다음에서는 이러닝(e-learning)의 사전적 정의와 실제로 여러 교재에서 서술되고 있는 이러닝(e-learning)에 대한 각각의 개념들, 또한 그를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e-learning의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먼저, 교육공학 용어사전에 따르면 이러닝(e-learning)에서의 ‘이(e)'는 electronic을 의미하고 ’러닝(learning)'은 학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기선을 연결하여 사용하는 학습 매체, 즉 컴퓨터를 중심으로 CD-ROM, 인트라넷,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가 매개체로서 작용하여 학습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테크놀로지가 학습을 위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기계의 성능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Masie(2001)에 따르면 이러닝에서 “e"의 의미는 전기적인 의미 외에도, efficient(효율적인), effective(효과적인), engaging(참여하는), evolving(발출판사
리얼리즘 운동의 성과와 한계-사회주의 장편소설과 가족사소설1. 들어가며1910년 이상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것으로 나아가던 우리 문학은 식민 체제의 심화를 겪어가면서 점점 역사적 현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1920년대에 들어 과도기적 리얼리즘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1930년대에는 리얼리즘 장편 소설이 등장한다. 때 맞추어 식민 체제 극복의 일환으로 사회주의 사상까지 유입되어, 우리 사회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 그 중에서도 장편 소설의 등장기를 맞게 된다.또한, 가족사를 다루며 리얼리즘적 경향을 보여준 소설들이 있다. 가족은 인간의 상상력의 범위 안에서 또는 인간의 역사적 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기원)이자 가장 최후의 것(미래)이다. 특히 가족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건드릴 수 없는 신성한 영역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회적 격변기-일제 시대-는 기존의 가족주의의 품에 안주할 수 없는 시기였다. 특히 전근대와 근대, 가정과 사회의 갈등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작가들에게 가족의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그칠 수 없었다. 세계적으로 가족사소설이 사회적 격동기에 대두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작가들은 여러 대로 이어오는 가족사야말로 현재 시대를 가장 잘 투영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족사소설이 리얼리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선지식을 가지고 추리해볼 때, 가족사소설에서 등장하는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며, 등장인물 역시 당시 사회 일원의 모형이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으며, 본인은 그것이 가족사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본고에서는 이러한 리얼리즘의 기류를 타고 만들어진 장르, 가족사소설이 왜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것의 특징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후의 글에서, 이기영의 「고향」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 장편소설이 가지는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 고찰해보도록 하겠다.2. 사회주의 리얼리즘 장편소설의 성과와 한계 - 이기영의 고향을 중심으로2.1 사회주의 리얼리즘 장편소설의 개품이, 안정된 사회에는 장편 작품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1930년대의 문학을 살펴보면 사회의 안정을 논하는 것이 우습게 느껴질만큼, 당시의 피폐함을 나타낸 작품들이 많다. 이는 당시의 분위기가 이전의 시기보다는 문학하기 편한 분위기로 흘러갔다는 사실을 말해줌과 동시에, 리얼리즘 문학의 성숙을 말해준다.결국 식민체제의 심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장편 소설의 등장을 불러왔고, 1930년대에 들어 이는 KAFP)의 등장으로 나타난다. 이후의 글에서 그 허와 실에 대해서 논의해보도록 하겠다.2.2 사회주의 리얼리즘 장편소설의 성과1930년대에는 많은 작가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이기영의 「고향」 같은 경우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다. 단편과는 달리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고 그 개연성을 만드는데 용이한 것이 또한 장편이다. 그래서 문제에 대한 한층 깊고 개연성있는 해석이 가능해졌다.“두레가 난 뒤로 마을사람들의 기분은 통일되었다. 백룡이 모친과 쇠득이 모친도 두레 바람ㅇ에 화해를 하게 되었다. 인동이와 막동이 사이도 옹매듭이 풀어졌다.” 238면“그는 마을 사람들과 상의한 후 두레먹을 돈으로 이번에 수해를 많이 입은 사람에게 분배해주기를 제의하였다. 그래서 우선 집이 무너져서 거처할 수가 없는 사람에게는 집을 짓도록 조력하였다.” 444면농민들과 김희준과의 관계는 두레를 통해 유대감을 얻고, 이후 수해를 입은 이들에게 돈을 분배해주는 과정을 거치며 끈끈한 것으로 발전해 나아간다. 개인의 성격 창조와 사건의 개연성에 있어서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을 이룩하고 있다.“이것은 참으로 노동지옥이 아닌가! 농촌에는 이와 같은 노동이 없는 대신에 거기는 기아가 대신하고 있다. 노동과 기아! 그 어느 편을 낫다 할 것이냐? 아니 그들에게도 농민만 못지않은 기아가 있고 농민에게도 그들만 못않은 노동이 있다. 결국 두 가지는 그들에게 공통된 운명이 아닐까?” 80면적어도 농민과 노동자를 같은 운명에서 이해한 책은 드물거니와, 최초라고 보아도 좋다. 노동자를 장편소설에는 한계가 훨씬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저 이기영의 고향에 나타난 한계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오늘 우리가 안승학이를 만나서 강경하게 해내기만 하면 제가 굴복하고야 말 것입니다. 제 자신의 명예에 대하여서는 신경이 예민한 자이니까 우리가 제집 가정의 아주 불미한 사실을 가지고 세상에 전파시켜서 행세를 못하게 만든다면 그 조건에는 제아무리 물욕에 들어서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안승학일지라도 결국은 양보할 것입니다.” 547면“우리는 오늘 마지막으로 담판을 하러 온 것입니다. (중략...) 또 지주가 반대하지 않는 소작인의 요구를 억압하는 사음의 사회적 죄악을 철저하게 규탄하고 응징할 결심이니 그런 줄 아십시오.” 552면수재로 인하여 수확이 떨어졌는데도 마름 안승학은 폭력적인 수탈을 계속한다. 이에 소작인들은 논의 벼를 추수하지 않는 식으로 항의를 하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돈을 마련하거나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농민들은 서로 단결하여 투쟁 끝에 안승학의 집을 찾아가 도지를 탕감 받는다. 윗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 부분은 어떤 대안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무척이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이 대안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당 시대는 일제의 식민체제가 굳어져가던 1930년대다. 작가는 노동자 농민의 투쟁을 대안으로 부르짖었지만, 그 대안은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다. 이는 사회주의 사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데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러시아에서는 실제로 노동자 민중 투쟁이 상당수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식 사회주의를 만들고 그 대안을 만들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사실 이기영의 「고향」과 같은 경우 괜찮은 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글이다. 문학과 이데올로기를 훌륭하게 조율시킨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경우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다수 KAFP의 작가들은 이데올로기를 위해 문학은 수단화 되어도 좋다고 생각새로운 창작방법을 모색하던 여러 작가들에게 호응을 얻어 실제 창작으로 실현되었다. 여기에는 기존의 가문소설의 전통과 함께 서구 가족사소설의 체험도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 이 시기가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마저 유지할 수 없는 식민치하에서 가족의 안정과 번영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존의 가족주의 질서를 답습하는 가문소설과 달리 가족사소설은 근대화라는 과제 속에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근대 속에 전근대적 영지로 남아있는 ‘가족’은 근대기획을 위한 의문 제기에 효과적인 소재였던 것이다.인간 생활의 가장 자연스러운 본연의 상태로 인식되어 왔고 어떤 사회, 어느 시대에서나 존재해왔던 보편적인 사회 형태인 ‘가족(가문)’의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신의 에서 최상의 비극 작품들이 ‘저주받은 가문’에서 취재했다는 사실을 언급할 정도로, 문학창작과 해설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어 왔다.우리 문학사에서 가족이 작품의 중심 모티프로 작용한 예는 와 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가족사소설의 원류는 ‘가문소설’)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양식이다. 가문소설은 유교적인 가치관에 따라 가문의 영예를 서술하거나 후손들에 대한 교훈을 나열하는 등의 목적의식을 앞세운 서사양식이다. 이런 가문소설 가운데 현대 가족사소설의 개념과 비슷한 형식을 지닌 조(祖)-부(父)-자(子)의 3대 이상이 등장하여 상호 갈등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구체적인 사건이 전개되는 작품만도 상당하다고 한다. 가문소설은 한 가족이 여러 대에 걸쳐서 경험하는 사건들의 연대기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족사소설과 일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문소설이 봉건적 윤리의 전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사회현실의 역사적 인식을 추구하는 가족사소설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가문소설은 가족주의의 적극적인 옹호를 목적으로 한 반면에 가족사소설은 가족의 역사를 의식적인 역사주의의 관점에서 문제시한 양식인 것이주관성으로써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을 왜곡 없이 반영하는 가운데 리얼리즘이 살아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족사 소설은 겉으로 볼 때는 주관적인 세계로 보이지만 사실은 객관세계의 청사진인 것이다. 3대에 걸쳐서 보이는 주인공의 특징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조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었는지, 이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지를 더 심층적이고 통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가족사소설은 역사서가 아니므로 문학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스탕달의 비유처럼 ‘달리는 마차에 붙인 거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가족사소설의 형성에는 김남천의 소설론)과 함께 서구 가족사소설의 일조도 빼놓을 수 없다. 근대 문학 초창기의 한국 문학가들이 일본에 유학하면서 또는 국내에 유입된 번역서적을 통해서 서구의 가족사소설들을 수용했을 것이고 그러한 유형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1920년대에 졸라의 『루공마까르 총서』, 투르게네프의 『父子』,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등이 소개되어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염상섭, 채만식 등이 술회하듯 서구 가족사 소설을 독서체험으로 갖게 됨으로써 서구 문학의 리얼리즘을 수용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전통적인 가문소설에서는 가문의 명예만을 위한 유교적인 교훈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면적으로 서술된 데 비하여, 서구의 가족사소설에서는 세대간의 갈등과 사회사적인 삶의 대응 방법이 제시되었다는 것은 30년대 가족사소설의 형성에 하나의 큰 핵이 된 것이다.3.2. 그렇다면 왜 ‘가족’인가?근본적으로는 왜 이 시기에 작가들이 ‘가족’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우선은 당시의 시대상황이 인간 삶의 본질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물음의 제기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마저 유지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위협받는 가족의 대해서 단순히 안정과 번영을 지향한다기 보다는, 근대화의 과제 속에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 Report >- 제 4장 독일 역사주의의 이론적 원천Ⅱ목차1. 역사주의란?………………………………………12. 랑케란 누구인가? ………………………………23. 현실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24. 역사주의를 바탕으로 한 랑케의 주장 ………25. 랑케가 후세에 준 영향…………………………36. 역사주의에 대한 회의 …………………………3근대유럽의 사상과 현대사 ? 권오중 교수님한국외국어대학교1. 역사주의란?일반적으로는 19세기 독일 역사학파의 역사적인 것에 대한 견해를 가리킨다. 그 원천은 독일 경제학의 역사학파에 의해 비롯되었는데 그 뒤, 여러 사람들에 의해 다의적으로 사용되고있다. 역사주의를 학문적 용어의 단계에까지 올려놓은 것은 A.트뢸치와 P.마이네케이다. 트뢸치는 역사주의를 자연주의와 함께 ‘근대세계의 두 가지 위대한 학문적 창조물’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역사적으로 사유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회의론에 빠진다. 그리하여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적 문화종합’과 ‘미래에의 가치 형성’의 입장을 주장하였다.마이네케는 역사주의를 사적으로 고찰하고 역사주의란 ‘라이프니츠로부터 괴테에 이르는 대규모적인 독일사상에서 얻어진 새로운 생활원리’인 동시에 ‘서유럽적 사유가 체험한 최대의 정신혁명의 하나’이며, 이는 단순히 정신과학상의 방법에 머물지 않는 세계관 ·인생관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역사주의는 개체성과 발전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자는 서로 직접 관련되어 있으며, 개체성은 발전에 의해서만 나타나고, 발전은 개체의 자발성에 입각해 있다. 이것이 사상으로서는 괴테에 의해서, 역사학에서는 랑케에 의해서, 각각 결실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분석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개체성의 개념인데, 이것이 그의 역사주의의 중핵적 지위를 차지한다. 따라서 유물사관과 같은 역사법칙과 유형 탐구와는 상반되는 것으로 상대주의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의 이 위험성 극복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규범을 도덕률 속에서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방법론으로서의 역사주의는 F.W.니체와 J.지멜 등에 의해 인간정신의 형성과 창조력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또한 K.R.포퍼로부터는 역사주의적 방법이 빈곤하다는 비난을 받았다.2. 랑케란 누구인가?새로운 연구방법과 교수법으로 서유럽 역사서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신학 ·언어학을 수학하고, 1818년 랑크푸르트 안데어오데르의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 처녀작 《라틴 및 게르만 제 민족의 역사 1494∼1514》(1824)를 저술하였는데, 이것이 학계에서 인정을 받아 25년 베를린대학에 초빙되었다. 그 후 이곳에서 50년간에 걸쳐 강의를 담당하면서 많은 저작을 남겼다.그 사이 1841년 프로이센 국사편수관, 1859년 바이에른 학사원 사학위원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역사서술은 원 사료에 충실하면서 사실의 개성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할 것을 강조하고, 역사란 많은 사상 이 상호 관련되어 발전된 그대로를 기술해야 하며, 또 각 시대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개성가치를 간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그가 주장하는 객관주의는 역사학을 현실의 철학 ·정책에서 해방시켜 역사학 독자의 연구시야를 개척하였다는 점에서 공적이 크며, 이것이 그를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연유이다. 주요저서에 《종교개혁 시대의 독일사》(1845~1847) 《프로이센사》(1847∼1848) 《16~17세기 프랑스사》(1852~1861) 《16~17세기 영국사》(1869) 등이 있다.3. 현실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헤겔과 랑케는 현상계의 다양성을 바라보는데 다른 관점을 보인다. 물론, 역사의 현상들의 배후에 이성적 실체(혹은 원리)가 존재하고 진정한 철학과 진정한 역사학은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것은 헤겔과 랑케 모두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랑케는 배후에 존재하는 실체를 헤겔이 인식한 범논리적인 우주 개념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생동적이며 포착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발성과 독특성의 여지를 아주 많이 갖고 있는 것, ‘총체성(Totales)’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역사학만이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자비니는 역사학이란 단순한 사례들의 수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와 과거 사이에 놓여있는 생생한 연관관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고, 과거가 현재보다 우위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한편, 이런 관점에 따르면 현상계의 다양성을 존재하게 하는 이성적 실체가 매우 생동적이고 포착하기 어려운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형화될 수 있는 자연법이나, 추상적이거나 철학적인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4. 역사주의를 바탕으로 한 랑케의 주장독일은 다양성 가운데 존재해온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서 발전했던 자유주의적 제도들은 독일의 현실에는 적합하지 않다. 왜냐면 랑케가 보기에는 ‘모든 민족에는 그 민족 고유의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랑케가 생각한 독일인의 과제는 민족정신과 일치하는 진정한 독일국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가 바라본 프랑스 혁명은 매우 위험하고 좋지 않게 결말을 맺은 혁명이었다. 프랑스는 영국과 미국 같은 외국의 정치사상을 프랑스 고유의 전통적 제도에다 주입시켰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를 맛보았던 것이다.랑케가 이해했던 바에 따르면, 좋은 국가란 조직적인 면에 있어서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곳으로 자리 잡고 있는’ 군주정이었다. 피지배자로 하여금 국가 활동에 참여하도록 요구하고, 지배계급을 피지배계급과는 별개의 집단으로 보는 것은 사회내의 노동 분업의 역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5. 랑케가 후세에 준 영향첫 번째, 비판적인 문헌 활용과 그 가운데서도 외교문서에 집중된 문서의 활용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로, 새 세대의 민족주의 역사가들은 역사 속에서 국가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외교를 강조했던 점에서 랑케를 추종하였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역사가들은 그들 자신이 랑케를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 간의 투장이 역사의 중심이라고 본 그의 사상 대부분을 흡수한 것이다. 세 번째, 랑케는 헤겔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윤리적 선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권력을 정신화하는 태도는 현실정치적 역사가들의 주장을 용이하게 하도록 뒷받침했기 때문에 랑케를 제한적으로 추종하게 하였다.6. 역사주의에 대한 회의중세 이후, 인간 위에 군림하던 초월적인 보편자를 땅으로 끌어내려 세속적 국가, 세속적 인간 속에 그 보편자를 내재화하는 작업이 일어났다. 그리고 인간 속에 내재하는 보편으로서 ‘이성’의 발견과 그 확대 과정을 통해 근대화가 시작되었다. 헤겔은 ‘모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고 말하면서 이성에 대한 신앙까지 갖고 있었다. 이성이야말로 인간이 갖춘 신적인 지혜로, 법률이나 국가, 역사도 결국 이성이 현실을 통해서 전개되는 합리적 과정이라고 풀이되었다. 즉, 근대화의 이념 속에는 보편주의적 이성의 실현이 깃들어있는 것이다.
구비문학에 대하여2007년 월 일1. 구비문학이란?구비문학이란 말로 된 문학을 지칭한다. 언어란 것이 처음에는 말로 존재하는 것이지 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글은 어디까지나 말을 보조하는 구실을 하는데 그친다. 왜냐하면 글이 없이 말은 있을 수 있지만 말이 없이 글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비문학의 학문적 가치는 굳이 기록문학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곽정식의 정의에 따르면 구비문학이란 ‘말로 된 문학, 구연되는 문학, 공동작의 문학, 단순하며 보편적인 문학, 민중적?민족적 문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구비문학은 말로 존재하고 말로 전달하며 말로 전승하는 문학이므로 항상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구비문학의 전승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인 ‘구연’은 구연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며 원래의 이야기는 전승이 거듭될수록 구연자의 개성이 덧입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비문학은 공동작의 특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동작의 비중이 높다는 특성은 많은 구연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단순성을 초래하게 된다. 결국 구비문학은 창작과 향유의 기회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개방된 공동의 문학적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김의숙의 정의 또한 곽정식의 정의와 비슷하지만 ‘현장성’을 강조한 것에 다른 점이 있다.) 구비문학의 이해와 연구에는 현장을 중요시한다. 특히 구비문학은 화자나 창자, 그리고 시청자가 일체가 되는 일회성의 현장에서 생성되는 예술이기 때문에 같은 작품이라도 상황이 다르면 대사나 감흥도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구비문학의 현장성은 효과의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현장성을 잃었다고 해서 구비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였다고 하기에는 현장성이 구비문학의 전적인 특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 설화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구연성이나 현장감이 없다고 할지라도 현장에서 구전되는 것을 채록, 기재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층적 성격을 감안하여 구비문학으로 취요: 음악적 구연방식을 따르나 자족성을 특징으로 한다. 세부적으로 다양한 기준으로 하위분류할 수 있다.④ 민속극: 연극적 구연방식에 의한 것으로 가면극, 인형극 등이 있다.⑤ 판소리: 창과 아니리, 발림 등에 의해 다양하고 종합적인 구연방식을 취한다.⑥ 기타: 속담 ? 수수께끼다음 단원에서는 여러 구비문학의 갈래 중에 설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보기로 하겠다.3. 설화에 대하여간단히 말하자면 설화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단순한 발화는 아닌 허구적이며 서사적인 체계를 갖춘 문학적 이야기이며 산문적 형태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설화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설화의 특성첫째, 설화는 구전된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의 이야기에 첨삭이 이루어지면서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한 유형(type)의 이야기라도 화자에 따라 조금씩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때 각각 달라지는 이야기 하나하나를 각편(各篇, version)이라고 한다.) 각편들은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지니고 있지만 한 유형의 뿌리에서 태어나 분가한 가족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한편, 구전된 설화를 기록하면 문헌설화가 되는데, 이는 현장성이 결여되어 현장에서의 구전성과 구연성이 없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다시피)문헌으로써 전승하고 이것을 전승하는 과정에서 구연성이 다시 재연되므로 구비설화로 인정할 수 있다.둘째, 설화는 구연의 기회에 제한이 없다.) 설화는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 있는 분위기만 되면 언제, 어느 때나 쉽게 구연할 수 있다. 구비문학의 갈래 가운데 특정한 기회에만 구연할 수 있는 노동요 ? 무가 ? 판소리 ? 민속극 등과는 다르게 구연의 탄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셋째, 설화의 화자는 자격에 제한이 없다.) 설화를 구연하는 화자는 판소리 ? 무가 ? 민속극에서 보듯이 특별히 수련을 쌓아야 담당할 수 있는 자격이나 능력이 없어도 구연이 가능하다. 들은 이야기를 옮길 수 있는 기억력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전달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설화의 화자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설화는 다른 구비문학 장르와 다르으로 판별할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 의 유화가 300개라면, 학승, 함몰, 금기, 화석 등, 몇 개의 모티프만으로 분석하고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티프보다 하위 구조를 설정하고 이를 ‘화소’라고 부르는 것이다. 화소라는 것은 모티프를 구성하는 하위 단위로 설화를 육하원칙으로 나누는 것이다. 화소의 실제 활용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화: 옛날에 장자 영감이 중에게 쇠똥을 주었다.2화: 신라시대에 장씨 부자가 노승에게 외양을 주었다.3화: 고려쩍에 장자댁 시어머니가 도사에게 쇠똥을 주었다.4화: 근년 인색한 부자가 걸승에게 인분을 주었다.정리: 언제(시대) 어떤(생활상) 누가(악한 자) 누구에게(내방자) 무엇을(악한 짓)참고적으로 이들 화소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의미를 ‘속성’이라고 한다. 위에 제시된 예 중에서 내방자가 가지는 속성이 ‘동냥자’라는 속성을 갖지만 중이나 노승은 ‘불교성’에 ‘신통력’이라는 속성이 내포되어 있고 도사는 ‘불교성’이 거세되고 ‘신통력’만을 속성으로 갖는다. 그런데 걸승은 ‘불교성’에 ‘동냥’ 속성이 강조된 변이인 것이다. 이처럼 화소나 속성은 설화의 분석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설화의 갈래설화는 크게 신화 ? 전설 ? 민담의 세 가지로 나뉜다. )기준신화전설민담전승자의 태도신성성, 진실성의 인식진실성, 실재성의 인식(증거물의 존재)흥미나 교훈을 위해 꾸며진 이야기시간과 장소태초의 신성한 장소구체적으로 제한된 시간과 장소뚜렷한 장소와 시간이 없음증거물포괄적 증거물ex)천지창조신화의 천지, 국가창건신화의 국가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증거물증거물이 없거나 아주 포괄적인 증거물주인공신 또는 신적인 존재다양한 종류의 인간일상적인 인간이나 의인화된 동물, 사물주인공의 능력초월적이고 신적인 능력예기치 않던 관계나 사태로 인한 좌절, 죽음인간적 행동, 예기치 못한 사태에 초월자의 도움결구의 특징숭고하고 종교적비극적이고 운명적희극적이고 낙관적전승의 범위민족적 또는 씨족적지역적 범위범세계적이고 범민족적기능민족 융합에 기여지역 전설의 역사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③ 향토성이 있는 이야기- 전설은 증거의 확보를 위해 지역적 전승의 모습을 띠게 된다. 따라서 원래 파생된 지역에서 벗어나 증거와 멀어지게 되면 민담이나 문헌설화로 정착하게 된다. 반면 그 고장 사람에게는 자연환경, 문화유물에 대한 긴밀한 유대감을 조성함으로써 애향심을 유발하고 지역공동체의 결속을 돈독히 하는 기능을 가지기도 한다.④ 설명성과 단순성을 지니고 있는 이야기- 전설은 증거물에 대해서 그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이런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화나 민담보다 훨씬 구조가 단순한 편이다. 물론 모티프 자체의 단순성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설명성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문학적 형상화가 충분하지 못한 단순한 내용의 전설이 산출되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화술의 자유로움이나 비약이 허용되기도 한다.※ 전설의 갈래전설은 크게 전승 장소와 발생 목적, 설화 대상의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전승 장소에 따라서는 크게 지역적 전설과 이주적 전설로 나눌 수 있다. 지역적 전설은 어떤 특정 지역에서만 전승되는 이야기로 지리적 특성 ? 명칭의 유래 ? 습관의 기원 등 주로 그 지방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다룸으로써 다른 지방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전설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구비문학 조사를 위해 찾아갔었던 전라남도 함평군에서는 ‘용천사 이야기’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용천사라는 절에 있는 못에서 매번 사고가 일어나 어떤 노승이 숯으로 메워 물이 맑아지고 사고도 없어지게 되었다는 내용의 전설이다. 이는 전라남도 함평군의 용천사와 관련되어서만 전해지는 것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어렵다.이에 비해 이주적 전설은 어떤 특정 지역에 고착되어 전승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비슷한 줄거리를 가진 전설들이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어 이주에 의한 전승으로 볼 수 있는 전설을 말한다. 따라서 이주 전설은 광범위한 분포 때문에 ‘광포 전설’이라고 불리는데 ,,,, 등이 대표적이다.발생목적에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구비문학은 생각보다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만만찮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넘어오는 것이 대세로 보였지만 기술의 발달은 그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구술적 전달 및 향유를 특성으로 삼는 대중적 전파 매체의 발달은 다시 ‘말’을 문화적 주역의 자리로 끌어냈다.)컴퓨터를 사용한 온라인 소통방식도 구술적 성격을 짙게 향유하고 있다. 이러한 세태를 타고 새로운 구술문화, 새로운 구비문학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현대 구술문화를 점검하고 새로운 구비문학의 형태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자.(1) UFO 이야기)외계 문명의 우주인이 UFO를 타고 지구에 온다. UFO는 지구의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이동한다. UFO를 목격한 사례가 많고, 그 속에 들어갔다 온 사람, 우주인의 아이를 임신한 사람도 있다.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갖가지 기적을 일으켰으며 그 증거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강대국의 정부 당국은 사실을 파악하면서도 속수무책이며 혼란을 염려해 공개하지 않는다. 장차 지구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이런 내용을 갖춘 UFO 이야기는 현대구비문학 가운데 가장 구비문학다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일단 사진 같은 증거물을 제시하면서 사실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여부는 계속 불분명한 점에서 전설의 특징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이 참가해 갖가지 논란을 벌이는 것도 전설답다. 목격담이 구전되고, 기록에 오르고, 정체에 관한 의문을 해명하는 추측이 이루어지고, 증거를 보완해 거대한 담론이 만들어진다.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진실성을 굳게 믿고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 숭상하고, 다른 쪽에서는 착각이며 허위에 현혹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전설을 신화로 만들어 숭상하는데 이른다. 이처럼 구비문학이 쇠퇴한다고 염려하는 동안에 최대 규모의 구비문학이 지구 전역의 범위에서 나타나 누구나 관심을 갖고 있는 상태이다.(2) TV와 이야기)1970년대 TV가 막 보급되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