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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적치유]헨리나우웬의 상처입은 치유자 요약 평가A좋아요
    헨리 나우웬의 머리말네게의 열린 문들이 책은 자신들이 사역에 적합한지, 그리고 효율적으로 일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역자들에게 대답을 제시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하여 진행한다. 사역자의 부르심은 자신의 시대가 처한 고통을 그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며, 그 깨달음으로부터 그의 사역이 시작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이용되는 방법을 사역자는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상처입은 치유자’로 정하였다.1장단절된 세상에서의 사역 - 핵시대의 인간이 추구하는 것서론저자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피터’라는 청년을 통하여 ‘핵인간’이 처한 고통스런 상황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경계들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었다. 자신과 환경사이, 환상과 현실사이, 해야할 것과 거부해야할 것 사이에 명확한 구분없이 현재의 포로가 되어 현재에 붙잡혀서 과거나 미래와 적절한 연관성을 갖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 그가 확신하는 단한가지는 삶에서 가치있는 것은 ‘지금 여기’뿐이라는 사실이다. 이장에선 피터와 같은 핵인간이 당면한 어려움과 해방되는 길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Ⅰ. 핵인간이 당면한 어려움핵 인간은 인간이 지상의 생태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그 복구 가능성마저 파괴할 수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일부 인간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한시적 기간이 아니라 역사 자체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창조적 힘이 자멸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미래란 결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려움의 성격을 3가지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1. 역사적 단절첫 번째로 ‘역사적 단절’이다. 역사적 단절이란 “문화적 전통 가운데 존재하는 필수적이고 유익했던 상징들 다시 말해 가족, 사고체계, 종교 그리고 일상 생활의 모습들과 관련된 상징들에 대해 인간이 느껴온 연계감의 단절”이다. 핵인간에게는 ‘지금 여기’라는 순편들을 언제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확고하고 완전한 형태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더 유동적이고 단편화된 이데올로기로 옮겨왔고 그들의 가치체계도 아주 빠르게 바뀌게 된 것이다. 그들이 기독교에 회의적인 이유도 기독교메세지가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하나의 관념이므로 자신의 삶과 적절한 연관성을 가질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은 아닌지 추측할 수 있다.3. 새로운 불멸에 대한 추구세 번째로 ‘새로운 불멸의식의 추구’다. 피터는 설계나 계획 목표가 없기 때문에 갈등도 우울하지도, 자살충동도 느끼지 않는 자신의 상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런 피터의 마비상태를 창조성의 원천인 ‘불멸의식’을 상실하였기 때문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 같다. 불멸의식이란 “우리 내면의 연속의식이 다양한 삶의 요소들과 더불어 시공을 초월해 지속되기를 바라는 강력하고도 보편적인 욕구로 한인간이 전인류와 연계성을 경험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새 방법을 모색하는 핵인간의 문제로 보고자 한다.Ⅱ. 핵인간이 해방되는 길핵인간의 강박과 고통에 직접 참여해 본에 의하면 핵 인간이 자신의 처한 상황에서 해방되는 방법으로 ‘신비주의적 방법’과 ‘혁명적 방법’ 두가지가 있는 듯하다.1. 신비주의적 방법신비주의적 방법은 내적 방법으로 명상이나 정신통일, 묵상, 선이나 요가 등을 통하여 생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전체역사 및 자연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한 순간, 한시점, 또는 하나의 중심점을 찾으려 한다. 그 방식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상의 환경을 초월하여 자신의 일상 생활의 비실체로부터 한단계, 두단계, 그 이상 벗어나서 포용적인 시각을 바라보며 실체를 경험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는 시작도 끝도 모르지만 어떤 이야기에서 자신이 독특한 위치를 갖는다고 느끼게 된다. 거기서 그는 미래에 대한 암울한 생각에 수동적으로 희생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2. 혁명적 방법혁명적 방법은 아예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 것려 있지 않다는 확신에 근거하여 헌신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현재 상황을 초월하고 수동적 운명론을 벗어나 급진적 행동주의를 향해 나간다.3. 기독교적 방법기독교적 방법란 예수님안에서는 위의 두가지 방법이 경험적 초월 방식의 양면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회심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과 인간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별개의 과제가 아님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신비주의자이면서 혁명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핵인간의 해방과 자유의 길이라는 것이다.결론지금까지 핵인간이 당면한 곤경으로 ‘역사적 단절’, ‘단편화된 이데올로기’, 그리고 ‘불멸의 추구’라는 것과 그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신비주의적 방법’과 ‘혁명적 방법’을 보았다. 그리고 이 두가지 방법 모두를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자신 안에 신비주의자와 혁명가가 있다. 자신의 삶에 서서히 나타나서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는 비전으로부터 힘을 얻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은, 그것은 우리가 꿈꾸는 것이고 우리가 언젠가 자유롭게 사랑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게 한다.2장뿌리없는 세대를 위한 사역 - 도망자의 눈을 바라보며서론내일의 세대인 젊은이들을 이끌어갈 미래 세계의 기독교 사역은 두가지 질문에 직면해 있다. 내일의 세대가 오늘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느냐와 우리가 내일의 세대를 어떻게 인도해야 그들이 그들 세대 사람들을 구해 내게 될 것인가이다.Ⅰ. 내일의 세대내일의 크리스천 리더십은 내일의 세대가 공통적으로 갖는 적어도 세가지 특징 즉 ‘내향성’, ‘아버지의 상실’, 그리고 ‘강박성’에 의해 결정된다.1. 내향적 세대이 세대는 개인적인 것에 절대 우위를 부여하고 자아 속으로 움츠러드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세대이다. 어떤 권위나 제도, 외적이며 확고한 어떤 실체도 그들의 불안과 고독을 덜어주거나 그들을 자유롭게 할 수 없기에 그들은 내면으로 향한다. 가장 개인적인 자아의장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세대다. 그들은 사람의 가치는 아버지들로부터 받은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태도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3. 강박적 세대다가올 세대는 그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마음속 깊은 곳에 불만을 종종 목적없이 파괴를 행하는 맹목적인 폭력이나 세상을 벗어나서 자살하는 행위로 표출한다. 왜냐하면 자신들 또한 효과적인 대안을 갖지 못하므로 좌절감에 빠져 자신이 직면한 공포로인해 방향성없이 행동하기 때문이다.Ⅱ. 내일의 지도자1.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사역자그러므로 내일의 사역자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과제는 새로운 내적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 직면할 수 있는 엄청란 혼란을 해소하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존재의 중심에 들어가서 우리의 내면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복잡한 일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써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그것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2. 긍휼의 사람으로서의 사역자또한 하나님이 보여주었던 긍휼의 마음은 아버지를 상실한 이 세대에 새로운 권위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긍휼은 외부의 어떤 권위와 압력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인간의 어떤 감정과 삶과 죽음의 방식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그 긍휼을 통해 그들의 강박적 공포를 없애고 좁은 마음의 문을 열어 전 인류의 넓은 세계로 나아가도록 인도해야한다.3. 묵상의 사람으로서의 사역자마지막으로 기독교 지도자에게 묵상하는 비평가여야 한다. 그가 강박적 세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것과 접함으로써 조작된 세계의 환상적 가면을 벗겨 문제의 핵심에 이르도록 권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세대의 즉각적 욕구와 만족의 악순환을 극복하여 창조적인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결론결론적으로 내향적이고 아버지가 없으며 강박적인 이 세대를 구원으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는 기도의 사람이다. 기도의 사람이야말로 자신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정확하게 표 이해하고자 한다.Ⅰ. 해리슨씨의 상태1. 비인격적 환경존과의 대화 속에 해리슨씨는 병원에서 이질적인 많은 사람들과 낯선 의료행위의 수동적인 희생자가 되었다고 느꼈다. 해리슨씨는 그들이 자신을 수술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이는 어떤 관심에도 신경쓰지 않았고 더구나 관심을 갖도록 독려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빼앗아 갔다고 느끼고 있다.2. 죽음에 대한 두려움해리슨씨는 가장 염려했던 것은 죽음이었다. 그는 이런 비인격적인 환경에서 자신이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맞이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함으로써 생을 마감하게 되리라는 사실과 무엇보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 그를 가장 두렵게 하였다.3. 삶에 대한 두려움그렇다고 그가 살고 싶어했던 것도 아니다. 해리슨씨에겐 죽음은 지옥일지 모르지만 삶은 깊은 고독과 고된 노동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 목숨을 건지기 위한 투쟁도, 자신의 목숨을 편안하게 포기하는 결정도 하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Ⅱ. 해리슨씨를 내일로 인도하는 방법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비인격적인 환경 가운데 놓여있는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삶을 통해서뿐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까지 타인을 기다릴 수 있다.1. 인격적 반응만약 해리슨씨가 익명성의 환경에 둘러싸여 있을 때 자신의 형제가 되어줄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에게 진정한 관심의 표시로 교제할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2. 삶 가운데서의 기다림사람은 자기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는 한 온전한 정신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존의 임무는 자신의 환자인 해리슨씨의 회복의 욕망을 강화시키고 삶과 투쟁하고 있는 미약한 그의 힘을 보강해 주는 것이었다. 그가 회복되는 것이 그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존은 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3. 죽음을 넘어선 기다림그리고 해리슨씨가 존의 존재를.
    인문/어학| 2007.11.11| 7페이지| 1,000원| 조회(2,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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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적치유]헨리나우웬의 상처입은치유자 요약과 감상(1장 요약) 평가A+최고예요
    헨리 나우웬의 상처입은 치유자이 책은 자신들이 사역에 적합한지, 그리고 효율적으로 일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역자들에게 대답을 제시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하여 진행한다. 저자는 사역자를 '상처입은 치유자‘로 정의하고 책의 각장을 세상과 시대, 그리고 개인과 사역자가 받고 있는 고통으로 나누어 제시하면서 사역자가 자신의 상처로 그 고통을 어떻게 치유되게 하는지 방법들을 소개한다.첫 번째장인 ‘단절된 세상에서의 사역’에서 저자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피터’라는 청년을 통하여 ‘핵인간’이 당면한 어려움과 해방되는 길을 소개한다. 핵 인간란 “인간이 가진 창조적 힘이 자멸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미래란 결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상태의 인간”을 말한다. 그들에겐 단지 ‘지금, 여기’뿐이다. 때문에 현재상황에 가장 적절한 답변을 해주는 사상과 경험을 중요시하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마비 상태에 빠져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새로운 불멸을 추구하는 핵인간의 문제로 보고 이문제의 해결책으로 인류가 그동안 사용한 두가지 방법 즉 신비주의적 방법과 혁명적 방법을 소개한다. 신비주의적 방법은 일상생활을 벗어버리고 자신이 인류 전체의 역사와 자연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달음으로서 자멸의식에 의해 수동적으로 희생당하는 것을 거부할 힘을 얻는 방법이며 명상이나 정신통일, 묵상, 선이나 요가 등이 있다. 혁명적 방법은 아예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새로운 세상인가 사이의 선택으로 자살을 하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보는 것이다. 이로써 자신의 현재 상황을 초월하고 수동적 운명론을 벗어나 급진적 행동주의를 향해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두가지 방법도 결국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며 그분은 핵인간을 미래로 이끌 창조적인 비전을 갖고 계시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우리 안에도 신비주의자와 혁명주의자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두 번째 장인 ‘뿌리없는 세대를 위한 사역’에서는 오늘날 내일의 세대인 젊은이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사역자들이 이들을 어떻게 인도해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내일의 세대인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가 이뤄놓은 세상에 대해 비판과 불만을 품은 나머지 당연시 인정되어 오던 전통적인 권위조차도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대신 그들은 점점 내면으로 깊숙이 파고들어가서 거기엔 뭔가 의미있는 것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효과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때때로 방향성 없는 엉뚱한 행동들을 자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내향적이고 아버지를 상실하였으며 강박적으로 행동하는 이 내일의 세대에 대해 저자는 사역자들에게 세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로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기록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복잡한 일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써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그것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긍휼’을 아버지를 상실한 이 세대에 새로운 권위로 제시하며 사역자는 그 긍휼을 통해 그들의 강박적 공포를 없애고 좁은 마음의 문을 열어 전 인류의 넓은 세계로 나가게 인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사역자는 ‘묵상하는 비평가’여야 한다고 말한다. 묵상은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것과 접함으로써 일상생활의 허상을 벗어나 문제의 핵심에 이르도록 권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세대의 즉각적 욕구와 만족의 악순환을 극복하여 창조적인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향적이고 아버지가 없으며 강박적인 이 세대를 구원으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는 ‘기도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도의 사람이야말로 자신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고 비판적이면서도 긍휼히 여기는 시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묵상하여 이 세대의 강박적 파괴성을 새 삶을 위한 창조적 사역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세 번째 장에서는 병원에 입원해있는 농장 노동자인 ‘해리슨’씨와 신학생 ‘존 앨런’과의 대화를 통해 ‘소망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소개한다. 저자는 해리슨씨와 존과의 대화 속에서 해리슨씨가 병원의 비인격적인 환경으로인해 처한 곤경을 끌어낸다. 해리슨씨의 말에서 그가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죽음이었다. 그는 인간답게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맞이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되리라는 사실과 무엇보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더 두려워했다. 그렇다고 그가 살고 싶어했던 것도 아니었다. 해리슨씨에겐 죽음은 지옥일지 모르지만 삶은 깊은 고독과 고된 노동 뿐이었으므로 사실 이미 스스로 목숨을 건지기 위한 투쟁도, 자신의 목숨을 편안하게 포기하는 결정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해리슨씨가 비인격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을 때 자신의 형제가 되어주어 삶과 죽음 양쪽에서 그를 기다려 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자기를 기다려 주는 그 한 명으로인해 자신의 느끼는 두려움에 저항하고 내일로 향하도록 인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저자는 해리슨씨와 같은 이런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크리스천 리더십으로 개인적 관심,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확신,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소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한마디로 이 리더십은 섬김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마지막 장인 ‘외로운 사역자의 사역’은 사역자가 입은 상처들과 그 상처들이 다른 사람들의 치유의 원천이 된다는 개념을 자세히 살펴본다. 인간의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들 가운데 하나로 ‘외로움’을 들 수 있다. 이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보는 경험이겠지만 사역자는 자신의 직업적 특성상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좋은 의도와 신실한 행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실패하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역자들의 상처는 휠씬 심각하다. 그러나 외로움이 사역자의 가장 큰 상처라면 ‘환대’는 그 상처를 치유의 원천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환대는 편협한 마음을 깨뜨리고 자신의 집을 개방하는 것이며 다른 목적없이 타인에게 집중하는 능력이다. 묵상을 통해 삶의 중심에서 안정된 장소를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이렇게 해서 자신의 외로움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이 이해되고 공감될 것이며 더 이상 그것을 회피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것을 인간의 근본적 상태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근본적인 나약함을 고백하고 소망을 나눔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도출해 내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처는 소망의 표적이고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는 장소이다.저자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 태도를 환대라고 했다. 이 환대는 사역자가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하고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를 알도록 한다. 이것을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지만 그 위험을 서로 분담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어 인간과 세상의 완전한 해방을 향해 전진해 나가게 된다.이 책은 현재까지 내가 겪은 경험들에 가장 적절한 의미를 부여해주었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자신이 제 2장에서 내놓은 대안에 부합되게 우리 내면의 문제를 아주 사실적이고 정밀하게 표현해놓았다. 내겐 막연하고 어려웠던 이 시대가 갖고 있는 문제성과 그 영향으로 인해 생겨난 세대간의 내면 갈등의 연결고리가 그의 영성과 지성에 의해 차츰 선명해질 때마다 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사람같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것이 내가 그토록 추구해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이정도로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것은 나 역시 상처입은 치유자이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제1장에서의 피터의 사례는 내가 군대에서 느꼈던 경험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피터와 난 같은 목회를 꿈꾸는 크리스챤이란 점까지 같은 걸 보면 난 그가 느낀 것이 내가 느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저자는 피터를 핵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게 했던 사건을 설명하고 있지 않으나 나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제2장의 ‘내일의 세대’에서 그 원인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기독교의 진리만이 나와 세상을 죄와 죽음, 억압과 혼란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 속에서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찾기가 어찌나 어려운가? 난 그 누구보다 위의 진리를 굳게 믿어 왔던 신학도로서 내가 배워온 신앙의 행위가 군대라는 사회에서 전혀 효력이 나타내지 못함에 큰 실망과 좌절을 맛보았다. 마치 내일의 세대가 아버지를 상실한 상태에 이른 것처럼 피터는 기독교라는 자신의 커다란 가치관이 일순간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난 이것을 겪고 처음엔 강박적인 공포에 휩싸여 버려 방향성 없이 반항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효과 없는 신앙의 행위에 얽메이지 않게 되었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며 피터처럼 편견없이 살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시도해보았다.
    독후감/창작| 2007.11.11| 3페이지| 1,000원| 조회(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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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사]미국의 복음주의 운동 평가A+최고예요
    ※ 미국의 복음주의(evangelicalism) 운동 ※1. 복음주의의 의미복음주의는 교회사에 나타난 여러가지 신학적 현상과 부흥운동의 총칭을 말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역사를 볼 때 이단적인 것이나 로마 가톨릭 교회적인 것에 반대하여 일어난 프로테스탄티즘으로 나타났고 형식주의에 반대하여 청교도주의나 경건주의 운동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19세기 자유주의적인 것에 반대하여 전통적 또는 보수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교리/형식주의자유주의 운동신복음주의 운동근본주의/세대주의영미 대각성부흥 운동종교개혁 운동청교도/경건주의 운동가톨릭현대에 들어와서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하나는 넓은 의미에서 18세기 대 각성운동으로부터 일어난 신앙전통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좁은 의미에서 그 하부 그룹인 ‘신복음주의자’들에게 사용되는 명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와의 차별을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1942년 미국에서 오켄가의 지도로 조직된 전국 복음주의자 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NAE)의 창립을 통해 공식화되었다. NAE는 엄격한 근본주의자들보다 오히려 온건한 복음주의자들 단체로 헤렐드 오켄가, 칼 헨리, 빌리 그래함 등이 주도했는데 새로운 형태의 복음주의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극단적 근본주의자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신복음주의란 용어를 사용했다. 최근에는 신복음주의란 용어 대신, 간단히 복음주의란 용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2.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20020043 소완영 20050002 고보성 20050023 박한빈복음주의는 성서의 메세지로부터 유래한 신학체계인 동시에, 기독교에서 일어난 경건하고 헌신적인 신앙 운동이다. 종교개혁 운동, 경건주의 운동, 청교도 운동, 대각성 운동, 부흥운동, 근본주의 운동, 오순절 운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복음주의의 역사적 뿌리가 되는 4가지 운동인 종교개혁, 청교도 운동, 경건주의, 부흥운동 등이 지금의 복음주의 운동에 어떠한 영만 종교개혁 운동이야말로 복음주의 운동의 근원과 근간을 제공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의 중심 주제들인 ‘오직 성경’,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의 원리가 복음주의 정체성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복음주의의 초점과 표준이 되었다.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이 교회 개혁에 주 관심이 있었던 것에 반하여 불신자를 회심시키는 복음전도와 선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제한적이었다. 반면 현대 복음주의는 교회 개혁보다는 회심과 복음전도에 더 관심이 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을 ‘죄와 용서’라는 법적인 면에서 이해한 반면에,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을 통한 내적 변화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둘 수 있겠다.2) 청교도 운동복음주의의 두번째 역사적 원천은 17세기 청교도 운동이다.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은 청교도 운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현대 복음주의자들 역시 청교도들의 후예들이다. 청교도 운동은 영국교회 갱신운동이었다. 청교도들은 영국의 종교개혁이 불완전하다고 평가하고 온전한 개혁을 추구했다. 그들은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고 신약성서적 교회의 회복을 추구하였다.청교도 운동은 건전한 신학과 윤리적 삶에 관심을 두는 이론적이고 도덕적인 운동이다. 그러나 최근 청교도들이 종교적 감정과 경험을 강조했다는 사실들이 연구로서 나타나면서 이러한 점에서 복음주의가 신앙의 체험적 측면을 강조하며, 그것이 그 중요한 특징이 된 것도 청교도 운동의 영향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청교도 운동은 복음주의에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확신과 기독교 국가 건설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와 18세기에 요나단 에드워드의 저서와 대각성운동 등으로 미국을 청교도 운동의 중심지로 만들며 또한 복음주의 운동의 큰 족적을 남겼다.3) 경건주의 운동복음주의의 세번째 원천은 경건주의 운동이다. 독일 경건주의는 어떤 사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종교적인 부흥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17세기 정통주의 개신교가 종교 개혁의 신앙을 상실하고 형식스게이트 체험은 경건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체험을 강조한 전형적 실례이다.경건주의는 기독교가 한 신념 체계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삶이라는 진리를 재발견하며, 형식화된 정통주의 기독교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공헌했다. 그것은 생명력 있는 개인적 종교에 대한 욕구를 육성했다. 독일에서 시작된 경건주의 운동은 18세기 영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곧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는 현대 복음주의 운동으로까지 계승되어진 것이다.4) 부흥운동종교개혁청교도/경건주의신복음주의현대 복음주의의 또 다른 원천은 부흥운동이다. 부흥운동은 독일의 경건주의,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 운동 및 각성 운동 등에 의해 18~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광범위한 신앙운동이다. 그것은 종교개혁적 신앙을 강화하는 영적 각성 물결이었다. 부흥 및 각성운동의 특징은 회심 체험, 경건하고 성결한 삶, 교회갱신, 노예제도 폐지와 인권향상 등 사회개혁, 봉사와 선교 등을 강조한 것이다.172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제 1차 각성운동은 1740년대 에드워드와 휫필드의 설교를 통해 그 절정에 달했고 영국에서는 웨슬리 형제를 통해 영국교회 갱신운동이 일어났다. 제 2차 각성운동은 18세기 말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초 찰스 피니 등의 주도로 미국에서 일어났다.현대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청교도 운동, 경건주의 및 부흥운동의 산물이다. 이 운동들은 복음주의에 근본 토대와 기반을 형성했다. 한편 복음주의 운동은 현대 초기에 태어나 20세기 중엽 성숙에 이르렀다. 복음주의는 과학적 사고, 경험적 접근 및 상식주의와 같은 현대의 도구를 항상 사용하고 있다.3. 미국 복음주의 운동1) 신학적 배경19세기 미국 기독교가 직면했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학적인 것이었다.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다윈의 진화론은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론과는 상치되는 것이었음으로 일반인들 사이에 커다란 소동을 발생시켰다. 그리고 신학자들 중에서는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러한 사상들의 구조 속에 기독교를 집어 넣으려고 하는 자유주의나이아가라 폭포 집회에서 다섯가지 근본이념을 정의하였는데 첫째로 성경의 무오성, 둘째 예수님의 신성, 셋째 동정녀 탄생, 넷째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육체적 부활과 임박한 재림 등이다. 이러한 운동이 바로 ‘근본주의’였다.① 근본주의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기 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1920-40년대 사이에 프리스턴 대학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일어난 신학 운동이다. 그것은 현대주의 혹은 자유주의의 도전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정통주의 기독교 신앙의 ‘근본’ 요소들을 재확인하고 재천명한 것이다. 근본주의의 주 관심사는 신앙의 ‘근본’과 바른 교리, 즉 성서 무오설을 변론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교리 중심의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적인 흐름을 차단하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를 보존하는데 크게 공헌했는데 특히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학습을 금지시키고자 자유주의자들과 맞섰고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성경의 역사 비평적 해석에 응전하여 새로운 형태의 성경 해석을 창출하였다. 이들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소위 ‘세대주의자’들이다. 반면에 근본주의자들은 사회적 비전을 가진 기독교적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내세 지향적이며, 반지성적, 비교화적이라고 하여 기독교 지식인들로부터 흥미를 끌지 못하였다.② 복음주의(또는 신 복음주의)1940년대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신복음주의’다. 미국의 근본주의 안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지성적 표현을 추구하는 젊은 지도자들이 나타났으며 헤롤드 오켄가, 칼 헨리, 빌리 그래함 등이다. 그들은 개신교 정통 교리를 유지하면서도, 학문적 연구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가졌던 온건한 근본주의자들이었다. 신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주류의 입장을 회복하면서 특히 세상을 긍정하고 문화를 포용하는 복음주의적 비젼을 지니고 있었다. 신복음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문화를 변혁시키는 복음에 대한 비젼을 제점과 해외 선교에 눈을 뜨게끔 했다는 것이다.① 금주운동과 노예제도 폐지제 2차 대각성 운동 중에 설립된 단체로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던 ‘아메리칸 식민협회’와 금주 운동을 벌였던 ‘미국 금주협회’가 그것이다. 그리고 금주 운동에 있어서 여성들이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는데 미국 여권 운동의 뿌리도 제2차 대각성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인권에 대한 높은 관심은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게 했는데 이는 19세기 남북 전쟁이 북측의 승리로 결말 짓게 만드는데 공헌하였다.② 도시 인구 문제와 복음 전파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사회적 경제적 긴장 관계는 계속 증가했다. 남부는 보다 더 인종차별적이며 반지성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고 북부에서는 밀려드는 이민들과 보다 나은 생활 조건을 따라 이주해온 흑인들 때문에 도시 인구가 급증해 사회 문제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가 도시민들을 위해 설립된 ‘기독교 청년회(YMCA)’와 ‘기독교 여성회(YWCA)’와 같은 단체들의 설립이었다. 그리고 ‘주일학교’의 시작은 쇠퇴해가는 성경공부에 대응책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주일학교는 대각성 운동 중에 주최되었던 ‘천막 집회’를 새로운 상황에서 부활시켜 부흥회가 도시지역 종교 생활에 중요한 요소가 되도록 하였다. 이 운동 초기에 활약한 복음전도자로 ‘찰스 피니’와 ‘드와이트 무디’가 있다.③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이와 다른 도시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교파가 생기게 되는데 감리교가 초기의 모습에서 벗어나 빈민층 구제에 무관심해지자 성결교회와 영국에서 창설된 구세군은 도시 빈민들의 영적, 육체적 복리를 위해 활약했다. 이중 성결교회는 방언, 신유, 예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이런 현상이 1906년에 일어난 ‘아주사 거리 부흥’에서 ‘오순절의 불길’로 미국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④ 식민지 확장과 세계 선교또 복음주의는 식민지주의와 경제적 제국주의라는 기틀 아래에서 19세기 초 복음 전파를 위해 ‘
    인문/어학| 2007.10.26| 6페이지| 1,000원| 조회(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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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트만] 삼위일체와 하나님 나라 - 하나님의 수난 요약
    2. 하나님의 수난 20020043 소완영2-1. 하나님의 무감정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수난인가?희랍 사상에서 신적 허무한 현상의 이세계에 대하여 근거시키고 유지시키는 영원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 실체는 고난을 당할 수도, 움직이지도 않고 자기 자신으로써 만족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 신학의 핵심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초대교회의 신학이 희랍문화의 배경 속에서 희랍 철학의 사고방식에 따라 형성되면서 신론개념은 그리스도의 수난의 역사가 아닌 무감정의 공식이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래서 “고난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고난”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파라독스를 감수해야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론에 있어서 무감정의 하나님이 강조되면 될 수록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동일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진다.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리스도의 수난 속에서 인식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열의 공식으로 출발해야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의 본질 안에 근거한 사건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발적인 고난, 다시 말해 격정적인 사랑의 고난이었던 것을 말한다. 만일 하나님이 어떤 면에서도 고난을 당할 수 없다면 사랑의 능력은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할 능력이 있다면 다른 것에 대한 사랑을 일으키게 하는 고난을 통하여 자신을 개발할 것이다. 그는 자기 존재의 넘쳐 남을 듯한 사랑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신다.2-2. 하나님의 정열몰트만은 하나님에 대한 유대교적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의 정열의 개념을 아브라함 헤셸의 견해를 빌려 설명한다. 구약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의 정열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그의 선택한 백성에게로 간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을 이 백성의 계약 파트너로 삼고 그 계약의 사귐을 통하여 고난을 당할 수 있게 된다.이 하나님과의 계약에는 하나님의 양극성이 드러난다. 자기 자신 안에서 자유로우시지만 그의 정열 가운데에서 계약의 관계를 맺음으로서 자기를 구여금 절망과 시련 속에서 구원의 희망을 유지하도록 하는 무한한 힘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기 구분의 모습을 의식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하나님 이해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정열과 공감으로부터 출발할 때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자기 구분과 ‘균열’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2-3. 사랑의 영원한 희생제물수난 가능성은 다윈의 진화론이 제기한 하나님의 전능개념(하나님의 적극적인 품성)에 대한 답변으로 논의되었었다. 몰트만은 롤트의 견해를 빌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하시는 유일한 전능은 고난당하는 사랑의 전능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본질에 대한 추론은 그가 역사속에 보여준 십자가의 사건으로만 귀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역사적 수난은 하나님의 영원한 수난을 계시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자기 희생은 하나님의 영원한 본질을 뜻한다. 이 사랑의 희생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을수 있는 우연한 역사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은 고난을 받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랑의 고난은 고난을 당하는 자의 헌신과 자기 희생에서 완성된다. 그러므로 자기 희생이 하나님의 본질이다. 그래서 골고다의 사건은 악과 고난의 세계 속에 일어난 그의 본질의 불가피한 계시인 것이다.이 과정을 삼위일체의 공식으로 정리하자면 하나님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 외에 대체할 만한 어떤 것도 없으므로 자기 자신 밖에는 줄 수 없다. 또한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에 자신을 줄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의 존재 전체가 사랑의 영원한 희생이며 이것이 그의 본질임을 증명하며 그래서 인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시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이고 ‘사랑받는 자’이며 그리고 ‘사랑’의 구조를 갖게 됨으로 완전한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이 고난당하시는 하나님의 신학은 1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시대에 세상과 함께 고통당하며 앞에서 영원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얻을 수 없는 모순에 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인간이 힘써 노력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함은 인간에게 가장 쓴 고통이라고 하며 이를 'congoja'라고 부른다.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고뇌가운데서 절망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하고 참되며 감동적인 상이다. 하나님은 그의 무한한 사랑 속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 속으로 들어온다. 여기에 하나님의 자기 제한이 있다. 왜냐하면 무한하신 분이 이로써 그의 유한한 창조물 안으로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그 과정 중에 그는 피조물과 동일하게 고통의 경험을 통하여 앎, 감정, 고난의 의식, 즉 자신에 대한 의식을 얻게 된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이런 의식은 모든 피조물들이 죽음에 있어서 느끼는 근심과 상실을 동일하게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구원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고통 속에는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이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영원히 자기 자신 안에 데리고 있는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희망, 새롭고 영원한 질서 속에서 모든 사물들이 회복되고 통합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다. 즉 종말론적 차원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이 고뇌의 신학은 고난을 통한 행복의 경험의 관계를 제시함으로써 인간성을 발전에 기여한다. 고난을 당하지 않고는 기쁨을 느낄 수 없고 고통을 당한만큼 행복의 경험도 커진다. 그러나 고뇌는 고통속에서도, 행복속에서도 작용한다. 현실적 행복을 넘어서는 신적인 고뇌 속에서 자신의 고통은 행복과 희망으로 즉 하나의 종말론적 차원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congoja' 모순은 불가피하게 하나님을 삼위일체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게한다.2-5. 하나님 안에서의 비극베르쟈예프는 하나님께서 자유를 원하셨기 때문에 세계가 시작되었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가 자유를 언제나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하나 ‘타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동경이다. 그가 이것을 동경하는 것은 존재에 있어서의 어떤 결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사랑 뿐 아니라 동일한 것과 자기 자신의 것에 대한 사랑이기도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바로 그의 형상이다. 다시 말하여 창조는 신적 삶에 참여하고 신적인 사랑에 응답하는 “타자”를 만드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소원의 성취를 뜻한다.그러므로 인간의 자유의 비극은 동시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동경의 수난사이다. 그는 강압적으로 인간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는 오로지 인간의 자유로운 답변과 그의 자유로운 창조만을 하나님은 원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역사의 참된 비극은 자유를 원하시고 사랑의 고통을 통해서만 이 자유를 창조하시고 유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비극이라야만 한다. 이것만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동경에 상응하는 유일한 길이다.결국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인식으로 정립된 신적 본성에 있어서의 운동에 대한 인식이요 하나님의 수난의 역사로부터 솟아난 무한한 자유의 경험인 것이다.2-6. 하나님과 고난고난속에서, 즉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고난은 하나님의 문제화를 제기한다. 죄없는 사람들을 고난받게 하며 의미 없는 죽음을 허용하는 그런 하나님은 하나님이라고 불릴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없다 해서 고난이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 전혀 완화되지도 않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유신론은 고난의 문제 앞에서 좌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동경, 정열, 목마름은 고난을 의식적인 고통으로 만들며 고통에 대한 의식을 고난에 대한 저항으로 만들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세계 속에 산다는 것은 이 개방된 문제와 함께 존재하면서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고 극복하시며 다시 회복하시는 미래를 찾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순수 이론적으로 답변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실 때에만 답변될 수 있는 하나의 실천적인 문제인 것이다.고난과 죽음에 대해 두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보편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왜냐하면 고난에 대한 경험은 죄에 대한 경험과 은혜에 대한 경험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태초의 창조가 선과 그리고 악의 역사에 대하여 개방되어 있다면 태초의 창조는 고난을 당할 수 있으며 고난을 불러일으키는 창조이기도 할 것이다.이제 죄 없는 고난이라고 불리는 것은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면 사랑의 고난이요 사랑을 받은 자들의 고난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랑에 있어서는 오직 “죄없는 고난”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난을 더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랑은 다른 사람의 고난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며 다른 사람의 죽음에서 자기의 죽음을 경험한다. 고난은 사람만큼이나 넓으며 사랑은 고난을 경험함으로써 성장한다. 이것은 현실의 삶에 대한 지침이다.2-7. 하나님의 자유하나님의 수난의 신학에서 두 번째로 고찰되어진 문제는 하나님의 자유에 대한 문제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자기를 개방하고자 결의한 것을 하나님의 자기 규정으로 이해하였으며 이 하나님의 자기 규정을 “그의 선하심의 자유로운 넘침”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추리는 잘못된 것이다. 이것이 간과되지 않을때만이 하나님의 자기 규정은 자의가 아니게 되며 그의 선하심의 넘침은 자연적 사건이 아니게 된다.그는 사랑이시고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면 결단코 그는 “그 자신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 점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다. 만일 그가 최고로 선하시다면 그의 자유는 선과 악 두가지 가운데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사랑에 있어서 완전히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자유는 선을 원하고 그것을 행하는 자유보다는 덜 한 것이다. 선택해야하는 사람은 고통을 가진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의심과 위협 가운데에 있는 고통이 아니라 선한 일에 대한 단순한 기쁨이다..
    인문/어학| 2007.10.26| 5페이지| 1,000원| 조회(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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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격심리학]인본주의 성격이론(매슬로우,칼로저스)
    상담과 심리 20020043 소완영인본주의 심리학심리학의 제1세력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제2세력인 행동주의 심리학, 이 두 입장에 비판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3의 세력인 인본주의 심리학이 탄생되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행동과 동물의 행동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인식한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것, 즉 인간에 관해서 이론화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이 갖추었다고 보는 점이다. 즉 인간은 특별한 종류의 동물이라는 것이다.실존주의 및 현상학적 관점먼저 아브라함 매슬로우와 칼 로저스의 성격이론에 대해 살펴기 이전에 그들의 이론에 바탕이 되었던 실존주의와 현상학적 관점에서의 인간이해를 잠시 살펴보고자한다.1. 실존적 존재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즉 존재는 비존재를 수반하기 마련이므로 고립, 허무 , 개인적 의미나 주체성의 상실, 소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실존주의에서 인간은 바로 이런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이며 한 개인으로서 실존이란 이러한 특수한 문제를 가진 존재로 간주한다. 그러나 한편 인간은 무로부터 시작된 자유로운 존재이며 바로 이 실존의 사실로부터 본질을 창조해 간다고 믿었다. 비록 내던져진 존재이긴 하나 그러한 상황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각 개인의 선택여하에 달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장차 자기가 어떠한 인간이 될 것인가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마음먹은 대로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실존주의들이 갖는 의문은 과연 인간이 참된(정직하고 순수한) 삶을 살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그래서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선하고 아무리 못하여도 중간의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본주의적 견해에서 보면 사람의 악하고 파괴적이고 폭력적 요소들은 인간의 내적 부패에서보다는 좋지 않은 환경으로부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태인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며 매슬로우는 일곱자녀 중 첫째로 출생하였다. 어린시절 매슬로우는 이웃의 유태인에 대한 편견 및 자신의 신체적 외모에 대한 달갑지 않은 눈초리를 받으며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면서 성장하였다. 그는 친구들이 없었으며 부모와도 친밀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동기 및 청소년기는 불행한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시립대학에 입학하였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느끼고 일년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집을 떠나 고넬대학으로 갔으며 다시 심리학을 공부하려고 위스콘신 대학으로 이동하였다. 거기에서 그가 사랑했던 베르싸(Bertha)와 20세에 결혼하였고 결혼은 그에게 소속감과 방향감을 제공하는 전환점이 되었다.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인 매슬로우로 하여금 처음에 심리학에 매력을 느끼게 했던 것은 왓슨(John B. Watson)의 행동주의 심리학이었다. 그는 행동주의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34년 위스콘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시에 있는 브룩크린 대학으로 돌아와 1951년까지 머물렀다.그러나 나치를 피하여 미국으로 이주한 여러지식인들과의 만남과 2차 세계대전의 경험, 그리고 그의 첫아이 출생 등을 통해 매슬로우는 행동주의 관점에서 인본주의 관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과 잠재력을 다룰 심리학의 발달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1951년부터 1969년까지 매슬로우는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심리학과 과장으로 임녕되어 심리학 교수로 가르쳤다. 그기간동안 그는 미국 심리학계의 인본주의 운동의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고 많은 상을 받았으며 1967년에 미국 심리학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인생의 말미에 그는 심리학 영역 및 일반대중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 되었고 1970년 6월 8일 62세에 지병이던 심장병이 도져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동기는 결핍 동기가 만족되어진 후에 작용한다. 매슬로우는 성장 동기들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생활 환경이 그렇게 명령할 때 한 동기는 쉽게 다른 동기로 대치된다. 자아실현의 동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비자아실현자와 다른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의 만족에 대해 동기부여되는 반면, 자아실현의 사람들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 그들 자신의 스타일을 보다 더 완전히 발전시키려고 한다.칼 로저스(Carl R. Rogers, 1902~1987)로져스는 무엇보다도 완전한 인간상으로 충분한 기능을 하는 사람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가장 핵심이 되는 자아의 형성으로 인한 자아실현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치료기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상담에서 내담자가 중심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내담자와의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통하여 내담자가 건강한 자아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였다. 인간중심적 상담가인 칼로저스에 대해 살펴보자.1. 생애로저스(Carl R. Rogers, 1902~1987)는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에서 6명의 자녀 중 네 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적 견해를 가졌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조금도 따뜻하거나 애정적이지 않았다. 로저스는 1919년에 농업을 공부하기 위해 부모의 모교인 위스콘신 대학에 입학. 그는 농업에 흥미를 발견하지 못하여 심리학 강의도 들어봤었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종교에 관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1924년 부인 헬렌과 위스콘신 대학을 졸업하고나서 목사로서 진로를 위해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 입학하였다.뉴욕에서의 두가지 경험이 그의 삶의 방향을 다시 변화시켰다. 첫째 경험은 로저스가 심도 있는 신학연구를 통해 자신의 종교적 믿음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두 번째 경험은 새롭게 심리학에 대한 이해를 한 것이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로저스는 길 건너 있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심리학 강의를 들으면서 새로다.2) 긍적적 대우(관심)에 대한 욕구로저스 이론에서 중요한 가정 중의 하나는 모든 사람은 긍정적 대우에 대한 욕구를 가진다는 것이다. 로저스는 긍정적 대우가 자아의 건강한 발달과 성공적인 대인관계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부터 따뜻함, 존중, 사랑 그리고 수용과 같은 태도를 받고 싶어하는 기본적인 욕구로 나타난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뿐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긍정적 대우를 받고 싶은 욕구도 갖는다고 주장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긍정적 대우를 받고 싶은 욕구는 과거에 타인으로부터 긍정적 대우가 만족되었을 때와 좌절되었을 때 생긴 자아의 경험을 통해 모방된 형태로 발달하게 된다.① 가치의 조건화우리 각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약한 아동으로써는 그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부모의 양육태도에 따라 ‘가치의 조건’을 형성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로저스의 성격형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다. 가치의 조건화는 주로 눈에 보이는 행동, 즉 외적 준거에 따라 평가하는데서 비롯된다. 아동은 기본적인 욕구인 긍정적 대우를 얻기 위해서 부모의 판단에 따라 세운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동은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할 때만 긍정적 대우를 받고 착한 아이가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즉 자기의지와 관계없이 어떤 점에서는 칭찬을 받았고 어떤 점에서는 칭찬을 받지 못했는지만 생각하게 될 뿐이다. 로저스는 이것이 실현화 경향성을 방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타인이 세운 기준에 맞춰서 노력하기 때문에 행동이 제한적이고 자유롭지 못하여 자신의 경험을 확대시키지 못하고 폐쇄적이게 되어 개인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자신의 경험과 불화를 갖는 자아개념을 초래하여 심리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해나가지 못하게 한다.타인(타인에 의한긍정적 대우)자기(긍정적 자아 대우)조건적(성취나 행동에 근거한)무조건적(소중한 사람이라는 이유로)긍정적 대우에 대한 욕구유기체조건적(행동의에 융통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창의적인 소산과 삶으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주변 환경의 자극에 대응하여 변화하고 발달한다. 또한 자신의 문화 내에서 건설적으로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남으로부터의 인정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3. 성격이론의 적용로저스의 주요관심은 성격의 변화가 일어나는 방법이다. 초기에 로저스는 치료시에 감정 반영의 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비지시적 접근에서는 내담자가 말하는 것에 대해 치료자의 활동과 지도가 최소화된다. 비지시적 상담자가 종종 수동적이고 흥미가 없는 사람처럼 지각되기 때문에 로저스는 자신의 관심을 내담자 중심으로 바꾸었다. 궁극적으로 로저스는 치료에서의 중요한 변인이 치료적 환경이라고 믿었다. 만약 치료자들이 내담자에게 현상학적인 의미있는 방식으로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세가지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치료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조력하기 위해 갖추어야할 세가지 태도 및 특성은 진실성, 무조건적 긍정적 대우, 그리고 공감적 이해이다.1) 진실성(congruence or genuiness)진정한 상담자는 있는 그대로 겉치레를 없이 진솔한 모습을 열어줌으로써 내담자에게 진실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담자는 내담자와 인간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진실성이란 상담자가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나타내는 반응이 그가 내적으로 경험하고 느끼는 바와 합치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진실성이 상담관계에서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진실성은 내담자로 하여금 상담자와 상담과정을 쉽게 신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상담자가 진실되게 자신의 약점까지 모두 나타낼 때 내담자도 자신의 약점을 나타내면서 자기를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셋째, 진실성의 반응으로 내담자는 자신도 진실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되고 자신의 감정에 좀 더 솔직하고 정확하게아니다.
    사회과학| 2007.10.26| 14페이지| 1,000원| 조회(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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