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1.1. Arthur MillerArthur Miller를 칭하는 가장 흔한 표현은 아마도 이라든가 라는 말일 것이다. 이는 곧 극작가로서 밀러의 경향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밀러는 미국사회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산업화 경향이 빚어내는 물질적 성공을 선으로 착각하는 가치관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같이 가치관의 폭넓은 비판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개인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져야 됨을 강조하는 Miller는 인간이 거대한 기계의 한낱 부속품으로 전략해 가는 물질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외치는 작가이다. Miller의 강점은 도덕주의자의 입장을 추구하면서도 흔히 거기에 따르게 마련인 오만함이나 위압감이 없이 인간적이고 동정적인 시선으로 사회와 인생의 패배자를 바라보는 자세에 있다고 하겠다. Miller는 1920년대의 극심한 경제 공황을 겪으면서 극도의 이기주의가 지배한 미국 산업사회의 한계성과 이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살상 행위를 통해 나타난 인간의 잔인성을 목격한다. 특히 미국사회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급격히 산업화됨으로써 물질문명에 의해 지배당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개인도 이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밀러가 자신의 일련의 작품을 통하여 지적하는 것은 인간은 비록 잔인하고도 이해타산적인 사회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잔인성과 이기성은 바로 인간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자각해야 된다는 것이다.Arthur Miller는 1947년 2월에 Death of A Salesman을 발표함으로써 현대에도 비극이 관객들의 정신영역에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Death of A Salesman은 제목 그대로 한 시대에 낙오하고 적응하지 못한 평범한 세일즈맨의 죽음을 그린 작품의 겉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시민인 한 외판원의 죽음을 통하여 고도부양하기 위하여 구두회사의 창고에서 일을 하는 인물이다. Laura는 자폐증을 앓고 있으며 선천적인 불구 때문에 집에만 있는 아가씨이다. 이 가족들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소시민 궁핍하게 사는 한 가족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Miller가 주장한 비극 관에 얼마든지 접근한다고 볼 수가 있다.다음으로, 우리는 유리동물원의 어떠한 요인에서 비극적인 감정을 느끼는가를 살펴보면 Miller의 비극 관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리동물원에 등장하는 가족의 비극을 살펴보자. Amanda는 현실세계가 아닌 다른 시간, 다른 세계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블루마운틴(Blue Mountain) 시절을 늘 회상하며 추억한다. Amanda의 현실부적응 양상은 작품을 뜯어보면 알 수가 있다. Amanda는 허영심이 있으며 집이 못사는데도 불구하고 소파, 그릇, 스탠드 등 비싼 물건을 사는 것을 좋아하고. 또한 Amanda는 남편이 집을 나간 이후로 남자들에 대한 신뢰가 깨졌고, 자신이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때를 자꾸 회상한다. 그 시절 그녀는 꽤나 잘나가고 예쁜 여자이며 하루에 수십 명을 한꺼번에 접대한 적도 있고 말이 있다. 서두부분에 회상을 얘기하는 Amanda의 대사에서 '사실 대농장주의 아들들과 결혼해서 넓은 농장에서 하인들을 부리고 살려고 했었는데 어쩌다가 네 아버지를 만나버렸다'.'네 아버지를 사랑했었다.' 라는 대사에서 그녀가 남편을 사랑한다는 건 알 수 있지만, 그에 상응해 부유해질 수도 있었던 결혼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꽤나 크다는 걸 알 수가 있으며 그래서 그녀는 더더욱 블루마운틴 시절을 잊지 못하게 된다. 그녀는 Jim이 집에 올 때 과민반응을 보이며 마치 자신이 소개받는 듯 흥분하고 Tom의 봉급은 한달에 고작 65달러인데도 불구하고 새 소파와 그릇을 사고, Jim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것은 마치 Amanda 자신이 ‘블루마운틴’ 시절의 처녀로 돌아간 착각을 하는 거며 또 한 가지 덫 붙이면삶을 다루는 자연주의와 과다한 상징이 혼합된 작품으로서 역시 실패한다, 후에 신사방문객 The Gentleman Caller를 MGM사에 보내고 The Glass Menagerie 1945이란 제목으로 뉴욕공연에 대 성공한다. 이후 이 작품에서 내재한 주요주제와 인물들을 발전시킨 형태로 A Streetcar Named Desire를 1947년에 브로드웨이에서 공형하고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다,1951년의 The rose Tattoo, 1953년의 Casino Real 1955년의 Cat on a Hot Tin roof의 성공과 두 번째 퓰리처 상 수상, 그리고 1957년의 Suddenly Last Summer 1959년 Sweet Bird of Youth , 1961년 The Night of Iguana에 이르기까지 거의 22년 간격으로 성공을 거두며 1961년까지 계속된다.하지만 1960년대 이후 미국 연극계는 다른 틀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요구했고 과거향수를 가지고 과거에 집착하여 그것만을 회상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시대였다, 개인의 심리에 강조를 두는 ‘Method'스타일의 연기가 어울리지 않았다. 따라서 1945년부터 1960년 때까지가 Williams의 전성기라 볼 수 있다.1970년대와 1980년대 초기는 계속적인 실험과 상업적 실패의 연속이었고 유일하게 1972년 발표한 Small Craft Warning이었다. 1983년 Williams는 엘리제라는 작은 호텔에서 플라스틱 병마개가 목에 걸려 질식사 하였다, 그의 죽음은 그의 예술과 삶에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A Streetcar Named Desire 에서 Elysian Field에 내려 마지막 퇴장할 때까지 그곳에서 잠시 떠돌이로 살다 간 것을 생각할 때 그가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호텔의 이름은 그의 인생의 종말을 시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Tennessee Williams는 현대인의 영혼의 갈등과 심리적 강박관념 내지는 정신병적 분열을 일으키는 병약한 인간상을 그리는데, 그의 인물들은 되었다. 그리하여 사회 내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성공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되어 사회계층을 형성하게 된다.이렇게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을 하자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대표 이름이 되어 버린 부의 축적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부의 축적이 곧 한 개인의 성공의 잣대가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순수하고 소박했던 초기의 꿈을 잊고 허황된 꿈을 좇는 이들로 변하게 된 것이다.당연히 성공한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와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가난과 상대적 빈곤감에서 허덕이며 좌절감을 느껴야만 했다. 결국 변화된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인도 변화를 해야만 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된 것이다. 그 부작용의 단면이 바로 인간성의 상실과 잘못된 성공의 지나친 집착을 불러일으키게 된 인간의 모습이다. 물질만능주의는 곧바로 공동체적 유대감을 퇴색시키고 Willy와 같은 소시민이 방향을 잃고 흔들리게 되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다음의 인용문에서 주인공 Willy가 경험하게 되는 미국 사회의 비극의 시작을 엿볼 수 있게 된다.In Death of a Salesman, Miller Challenges the process whereby the individual defers to society. Willy Loman refuses to accept his own freedom to act. He retreats into a world of illusions and grants as real and important. "Only rank height of power, the sense of having won... the galaxy thrust up into the sky by projects on the rooftops of the city he believes were real stars." The society to which Willy devotes himself is clearl걷고 있는 남부는 그를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게 만든다. 플랜테이션 중심의 농경 제도가 물질문명과 기계 문명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그 사회의 사람들 또한 전통적 가치관과 새로운 생활양식의 충돌에서 갈등을 겪는다. Williams는 이처럼 뿌리를 상실하고 설 자리를 잃은 인물들의 정신적 갈등을 동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이들의 억압된 충동과 낭만에 대한 향수를 극화한다.사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Williams의 가족들을 모델로 삼았다. 즉 남부의 숙녀로서 교양과 부덕을 지녀온 모친 Amanda로부터 자폐증에 걸린 처녀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음판과 유리동물만을 상대로 마음의 창문을 꼭 닫고 달팽이 같이 자기만의 시계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누이 Laura, 그리고 월급 65 달러로 대륙제화 회사에서 일하면서 시를 쓰는 Tom의 모습은 젊은 Williams가 미주리 대학을 중퇴한 후, 약 2년 동안 고초를 겪었던 체험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10여 년 전 가출하여 거실 벽에 사진만 덩그러니 걸려 있는 부친 역시 모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이 작품의 중요한 테마의 하나인 Tom과 Laura의 이별은 1937년에 가장 사랑했던 누이 로즈가 뇌엽 절개 수술로 말미암아 영원히 정상적인 의식을 상식하게 된 슬픈 체험을 형상화 한 것이다. 그리고 작품 무대가 되고 있는 아파트는 부친의 전근으로 가족이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했을 때 처음 살게 된 어두운 아파트를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이 희곡의 소재는 1930년대 작가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Ⅲ. 주변인물의 비극적 환경 비교3.1. Biff VS Tom과 Laura주인공인 Willy는 일종의 고집스러운 면을 갖고 있다. 자신이 추구해온 모든 것의 실패를 통해서 무언가를 깨닫고 그 Character를 변화시킬 만 한데도 끝까지 외판원으로서의 자신의 Character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작품을 통해서 원래 갖고 있는 성격이 변하지 않는 Flat Character라고 할다.
처음 이 수업을 접하였을 땐 수업 방침에 대한 조금의 의아함을 가졌다. 다른 수업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수업진행방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들려지는 여러 음악을 접하면서 클래식에 대한 나의 고지식한 적개심은 점차 사그러들었다. 사실 나는 고전 음악에 대해 아주 무지한, 말 그대로 “음맹” 이었다. 이것은 내가 평소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가 강의에 의해 접하게 된 영화중에서 오직 “파리넬리”란 작품 하나만 접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에서 또한 보여 질수 있다. 그래서인지 클래식에 대해 좋지 않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는 거야 고작 전 국민의 기본적 소양인들인 희대의 음악가,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같은 음악가의 이름뿐이었고 어렸을 때 초등교육과 상업적 목적성을 띤 방송에 의해 익숙한 베토벤의 “운명”과 같은 곡에 불가하였으며 심지어 그들의 음악과 그 곡을 작곡한 작곡가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다. 수업을 들은 지 일주일이 지나갈 무렵, 음악과 영화들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파고 들어왔고, 굳게 닫혀있던 나의 음악적 감성의 눈을 뜨게 했다.첫 수업시간부터 ‘Sound Of Music'이란 영화를 본 후부터 쭉 이 강의를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교수님이 너무 좋았다. 다른 교수님들과는 달리 교수라는 권위적 직책에 얽매이지 않으시는 것 같았고 친절하고 겸손하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영화음악의 부연설명 하나하나 짚어주시며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이 수업에 대해 더 큰 애착이 생겼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이 수업시간보다 길어 어쩔 수 없이 스킵하면서 감상 했어야만 했던 터라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때그때 교수님이 내용이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그냥 지나치시지 않고 설명해 주셔서, 교수님은 그렇게나마 우리에게 내용 이해의 의구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심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전 중간고사를 감상문으로 대체한다는 강의 계획은 공부를 해야 하는 부담감은 줄었지만 “음맹”의 입장에선 음악적 견지에 대한 결여가 오히려 두려움을 더 앞서게 하였다. 오늘까지 수여 편의 영화를 보며 음악 감상을 하였지만 어떤 영화의 어떤 음악을 선택하여야 할지는 한참동안의 고민 후에야 비로소 결정지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그 어느 작품 하나하나 작품성이 없다고 여겨지지 않았고 감명 깊게 보지 않았던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베토벤의 천재적 음악성을 엿볼 수 있는 “불멸의 연인”과 환상적인 오페라 아리아를 보여주었던 “파리넬리”를 쓸까 고심도 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영화의 단조로움을 깨고 발랄하고 산뜻한 느낌을 주었던 첫 감상작 ‘Sound Of Music'으로 기울게 되었고, 끝내 감상문의 소재로 선택하게 되었다.‘Sound Of Music'이라는 작품의 타이틀은 작품 속에 배경음으로써 나오는 ‘Sound Of Music'이란 수록곡을 본 따 지어진 듯 했다. 작품해설을 잠깐 하자면, 이 영화 ‘Sound Of Music'은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기 전 미국으로 망명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족 합창단 ‘트랩 패밀리 싱어즈’ 의 리더인 마리아트라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노래가 영화의 중심인 ‘Sound Of Music'은 물론 노래에 의해 진행되는 이야기 영화이다. 노래는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아름다운 알프스 언덕에 오른 마리아의 자유스러운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Sound of Music' 을 시작으로,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Maria', 대령의 첫째 딸과 그녀의 남자친구 뢀프가 어른이 되기를 그리며 부르는 ‘Sixteen Going on Seventeen', 천둥번개가 치던 날 밤,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부른 노래가 끝내는 서로간의 애정을 돈독케 하는 계기가 되는 ‘My Favorite thing', 커튼을 찢어 아이들 옷을 만들어 입히고 간 소풍에서 음악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 음계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노래 ‘Do-Re-Mi', 음악도 모르는 무서운 사람인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됐으며 후반부에 오스트리아 민중의 자유를 염원하는 노래가 된 ‘Edelweiss’ 등등 이 작품에 수록 되어 있다.‘Sound of Music'이라는 이 작품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영화사상 가장 사랑받아온 뮤지컬 영화의 걸작으로 첫손 꼽힌다. 춤과 음악, 연기력, 영화의 정서적 표현 등에서 나무랄 곳 없이 즐거움의 향연과도 같은 작품으로 빚어냈다고 한다.풀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The Sound Of Music’에서 음악이 사랑의 마음에 거부감을 물리치고 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과, 어렸을 적 한국어로도 개사되어 주로 동요로도 불러 익숙하였으며 음악의 발랄한 표현을 다룬 ‘Do-Re-Mi Song’은 누구라도 따라 부르기 쉬운 음계를 가지고 있어서 음악이 좋아지게 하는 마술과도 같은 노래같이 느껴졌다, 여주인공 마리아의 초상이 담긴 ‘Maria’라는 작품에서는 장난스러운 가사와 익살스러운 어조가 돋보였으며, 그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왠지 음악의 상식과 존엄성을 변화하여 극화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애틋한 정서가 함축된 ‘Edelweiss’에서는 익숙한 음정으로 편안한 마음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Maria'역의 July Andrews의 풍부한 연기력과 가창력은 가히 최상의 위치에 있었으며, ‘Edelweiss’를 부르는 캡틴의 엄격한듯하면서도 내심 다정다감한 표현력과 가창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아이들과 마리아의 인형극에서 흐르던 'Lonely Goatherd', 그리고 엘자의 권유로 파티 날 저녁 사람들 앞에서 7명의 아이들이 불러서 그들의 아름다운 합창을 선보였으며, 나치로부터 도망칠 때 시간을 끌어준 노래인 ‘So Long Farewell' 등 오래된 영화치곤 아름다운 화면, 조화된 배우들의 연기력 외에 음악에 무지한 나가 들어도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선율을 느낄 수 있는 노래들이 영화 전반을 지배함에 있어서 실로 “와!” 하는 탄성을 자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