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너희들은 백범 김구 선생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니? 그래, 한번쯤은 들어 본적이 있을 거야. 그런데 그 분이 왜 유명한지, 무슨 일을 하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학생들도 많을 거야.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김구 선생에 대해 이야기 해줄게. 김구 선생은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받고 있을 때 우리나라를 일본으로부터 독립시키고자 자신의 몸을 던져 애국하시던 훌륭하신 분이란다. 또한 해방 후에도 남과 북의 자주 통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지.그 분은 ‘백범일지’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단다.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고 다시 묻는다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라고 했단다. 여기에서 그 분의 지극한 나라사랑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않겠니?1. 개구쟁이 어린시절보통 우리는 위인들께서 우리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실수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훌륭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백범 김구 선생은 여느 보통 아이와 다름없이 개구쟁이 어린시절 시절을 보냈단다.김구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어. 어릴 때 이름은 창암 이었지. 그는 어릴 때 무척 개구쟁이로서 아버지의 멀쩡한 숟가락을 부러뜨려서 엿을 사 먹은 적이 있단다. 그래서 부모님한테 무척 혼이 났지. 또 어느 날은 어머니의 염색물감을 냇가에 가지고 나가서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풀어 놓고 그 멋진 장면을 구경하다가 그만 어머니에게 혼나기도 했다는데...... 생각해봐. 귀엽고 천진한 꼬마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지. 또 마을 아이들이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무시했다고 칼을 들고 쫒아의 집안이 몰락하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양반이 되기 위해 과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 마지막 과거 시험을 보지만 안타깝게도 낙방하고 말았단다. 그런데 그 과거 시험장에서 관직을 사고파는 온갖 부정적인 일들을 보고 과거 공부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어. 그래서 서당공부를 때려치우고 관상공부를 시작했는데 자신의 얼굴이 관상학적으로 너무 안 좋은 상이라는 것을 깨닫고“밖을 가꾸는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써 사람 구실을 하겠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해.그 뒤 동학단에 들어가 ‘김창수’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활동하는데 그의 능력이 뛰어나서 몇 달 만에 수천 명이 따르는 접주가 되었단다. 그 당시 김구 선생의 나이가 워낙 어렸기 때문에‘아기접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구나.1894년 19세 때 그가 선봉에 서서 해주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구월산 패엽사로 후퇴해 물러나 있던 중에 홍역에 걸려 심하게 앓게 되었는데 이 때 동학군이 대패하게 되고 거의 동학군이 소탕되었대.그리고 그 후 김구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인 안태훈의 집에서 머물게 되지. 그곳에서‘고능선’이란 훌륭한 유학자를 만나 그의 가르침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고, 고 선생의 뜻에 따라 김구 선생은 중국으로 가게 되는 기회를 갖지. 그리고 중국을 돌아보고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솟구치는 항일의식을 참지 못하여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 김이언의 의병부대에 몸담아 일본군 토벌에 나서지만 안타깝게도 패하고 귀향하게 된단다.2. 국모를 시해한 일본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다.어느 날 김구 선생은 처음으로 일본인을 살인하는 큰일을 저지르게 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명성왕후의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었어. 그것은 김구 선생이 21세 때 일이었어. 치하포란 곳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그 때 조선 사람으로 위장한 쓰치마라는 일본인을 만나게 되었어. 그를 살해하는 것이 처음엔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벼랑 끝에서 잡은 손마저 놓는 것이 대면회를 청하는 등 그를 치하했다고 해.또한 감옥에서 대학· 세계역사· 세계지지 등으로 개화사상을 서양문물을 접하면서, 우리나라가 부유하고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서양의 발달된 것들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김구 선생은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다행히도 고종의 특사로 사형 집행 날 극적으로 사형이 중지되었고, 김주경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털어 백방으로 힘을 쓰며 감옥에서 나오게 하려하지만 실패했는데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용감하게 탈옥을 감행하지.많은 방황을 하며 떠돌다가 마곡사에서 중이 되지만 그의 꿈과 거리가 멀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돼.3. 민족을 위해 애국계몽운동에 힘쓰다.그 뒤 어머니와 함께 자식인 김구 선생의 뒷바라지를 하며 온갖 고생을 하시던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하게 되시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서 드시게 하고 약간의 피를 드시게 하는 등 지극한 효성으로 간호를 하지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만단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효자였는지 알 수가 있지. 누가 감히 살을 떼어 낼 생각을 할 수 있겠니?그 후 기독교에 입문하게 되고, 장련 공립보통학교의 교원이 되어 학생들을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게 된단다. 이때 ‘최준례’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갖게 되며 교육을 중요시 하여 아내를 경신 여학교로 유학을 보냈단다.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한국 정부를 강압하여 체결한 조약인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나서, 김구 선생은 진남포 에버트 청년회 총무 자격으로 경성 상동교회에서 열린 전국대회에 참가해 상소를 올리고 공개 연설을 하는 등 열심히 구국운동을 해. 하지만 이런 것들로는 나라를 되찾는 데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교육 사업에 힘을 쓰기로 하지.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어둡고 애국심이 약한 국민들이 나라가 곧 자기 집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어떤 운동을 해도 나라를 건질 수 없다는 것을 느낀 때문이지. 그래서 신교육을 실시하기로 하고 고향에 돌아와 교육사업에 매진하지.또한 국내 국외를 통한 정치적 비밀결 다행히도 1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감형으로 5년 만에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어.그 뒤 안신학교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일부러 말썽 많은 동산평 농장의 농감이 된단다. 이 농장은 감독과 소작인이 서로 짜고서 수확한 것을 도적질하고, 도박을 하는 등 나쁜 풍습이 있다고 소문난 농장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좋지 않은 습관들을 고치기 위해 굳이 그곳을 선택한 것이었지. 소작인들을 계몽하기 위해 학교를 세우게 되는데 반대하는 세력에게 부딪치기도 했지만 모두들 김구 선생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존경을 하게 되었지.4.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3.1운동 이후 김구 선생은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는 활동을 하게 된단다. 이 때 김구 선생은 자신을 임시정부의 문지기로 써 달라고 당시 내무총장이었던 안창호 선생에게 부탁하지. 김구 선생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어. “나는 일찍이 본국에서 교육사업 할 때 집에서 혼자 순사 시험을 보았지만 합격하지 못한 경험이 있고, 서대문감옥에서 옥살이할 때 후일 독립정부가 조직되면 정부의 뜰을 쓸고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의 호를 '백범'白凡으로 고쳤는데, 이 일을 하는 것이 평소 진정한 나의 소원” 이라고 말했지. 안창호 선생은 그 뜻을 충분히 이해했고, 문지기가 아닌 경무국장에 임명되었단다.김구 선생이 내무총장일 때 세계정세가 복잡해짐에 따라 민족 운동계에서도 공산주의, 민족주의의 사상 충돌이 생기고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따로 활동을 하게 되었어. 또한 상해의 정세도 사상대립으로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이 있어 잔해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임시정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무정부상태의 임시정부가 되었을 때 김구 선생은 국무령이라는 직위를 역임하게 돼.김구 선생은 임시정부의 자금이 부족해 보전할 길이 막막해지자 미주ㆍ하와이ㆍ멕시코ㆍ쿠바에는 만여 명의 해외동포들에게 편지 보내 사정을 알리고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애국심만큼은 불타는 동포들이 많아서 그 편지에 회답하는 길 의사의 도시락폭탄 계획을 도모하여 홍구 공원에서 많은 일본인 고관들이 죽었어. 그 사건으로 인해 안창호선생과 같은 죄 없는 사람들이 잡혀가자 선언문을 내어 계획의 주모자는 자신이라고 당당하게 밝혔어.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한 그 영웅적인 일들은 일본에 동화되지 않는 우리의 정신을 세계에 널리 알린 계기가 되었지. 그러한 일들이 세계에 널리 알려짐으로써 곳곳에서 격려하는 편지와 지원하는 자금도 늘어났어.하지만 김구 선생은 쫓기는 몸이 되었고 가명을 쓰면서 중국인에게 도움을 받고, 신분을 감추기 위해 주위의 권유로 ‘주애보’라는 여 뱃사공과 위장결혼까지 하게 돼.그러는 중 중국의 장개석 장군과 만나 독립을 하기위해서는 군인을 키워야 한다는 둘의 뜻이 맞아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세우게 돼.참고로 말하자면, 김구 선생의 어머니는 무척 훌륭한 분이셨어. 김구 선생이 감옥에 갇힐 때마다 거처를 옮겨 가며 옥살이 뒷바라지를 하시고, 김구 선생의 어머니 생신 때 청년단과 동지들이 돈을 모아 생신 상을 올리려고 하였으나, 미리 눈치를 채신 어머니께서 당신 입맛대로 음식을 만들어 자시겠다며 그 돈을 달라고 하셨지. 그런데 어머니는 그 돈에다 얼마를 더 보태어 권총을 사서 일본 놈을 죽이는 데 쓰라며 청년단에 내어주셨단다.김구 선생은 일본의 수사망과 공격을 피해 비교적 안전한‘장사’라는 곳으로 옮겨 몇 개의 당으로 나누어져 있던 조선 혁명당, 한국 독립당, 한국 국민당을 단일 조직으로 만들자는 회의를 하던 도중 조선혁명단원인 이운환에게 총을 맞고 중상을 입게 돼. 다들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다행히도 기적적으로 살아나 죽을 고비를 넘겼어.일본의 공습이 점점 심해져 광주로 옮겼다가 다시 중경으로 옮기는 도중에 김구 선생의 어머니는 인후염으로 돌아가시게 돼. 김구 선생의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에도“어서 독립이 되도록 노력하라.”면서 돌아가셨어. 평생을 김구 선생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은 어머니가 아닐까 싶어.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김구 선생은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었으리.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 바보 만들기’ 를 읽고- 목차 -1. 학교 = 바보 만들기 교육2. 신자유주의의 교육3. 대안4. 결론‘바보 만들기...’ 제목이 참 독특해서 호기심을 갖게 했다. 학교가 학생들을 바보로 만든다고? 사실 나는 지금까지 학교라는 곳이 바보를 만드는 곳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오히려 학교라는 곳은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제목은 나에게 약간의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 도대체 이 작가는 학교의 어떤 점이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고 하는 것일까. 학생들은 교육에 의해 오히려 더 똑똑해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미래에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학생들을 학문을 가르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학교가 미치광이 제도라고 하며 바보를 만드는 곳이라고 말하는 개토의 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1. 학교 = 바보 만들기 교육이 책을 통하여 개토는 자신이 학교라는 현장에서 느꼈던 학교 교육의 폐해를 낱낱이 파헤치며 고발하고 있다.‘교사들의 일곱 가지 죄’라는 글에서 개토는 어느 학교에서나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일곱 가지 교과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첫 번째 교육과정은 ‘혼란’이다. 학교에서는 만사의 연관성을 파괴하도록 관계의 단절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단절된 사실의 파편들을 강조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의미 없이 그냥 외울 뿐 깊이 배울 수 없고, 따라서 수준 높은 교육의 질이란 성립할 수가 없다.두 번째 교육과정은 ‘교실에 갇혀 있기’이다. 학생들에게는 번호가 매겨져 있어 교실을 벗어나더라도 제자리에 쉽게 되돌려질 수 있고, 각자의 위치를 알고 받아들이게 한다. 시험 성적과 등급으로 학생들을 가르고, 구속해 학생들은 빠져나올 길이 없다.내가 학교 다닐 때에도 선생님들이 수업 중에 학생에게 질문을 할 때 이름을 부르기 보다는 번호로 호명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번호가 학생의 이름이 든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참고 종소리에 맞춰 끝내야하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학생은 알아서 스스로 호기심을 거두게 될 것이다.네 번째는 ‘정서적 의존성’이다. 상, 벌 등으로 각자의 의지를 버리고 목표가 정해진 지휘 체계에 따르게 한다.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만들어, 학생들이 스스로 자립할 가능성을 빼앗는다. 이런 곳에서는 개성이란 학급이론에 저촉되는 요인이며 심지어 암적인 존재라고 개토는 말한다.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최고 모둠을 뽑아 사탕을 나누어 준다든지, 선생님이 외친 구호에 따라 모두가 하나같이 박수를 친다든지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다섯 번째 ‘지적 의존성’에서 학교는 스스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기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만들고 있다.언젠가 ‘로빙화’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그 영화의 한 장면에서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아무 그림이나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리라고 하자 공부를 잘하던 한 아이는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만다. 이렇게 지적 의존성은 호기심은 필요 없고 동화만이 중요한 것이 된다. 학교는 지적으로 의존하게 만들어, 스스로의 호기심을 빼앗고 교사의 지시에 의해 사고하고 행동하게 한다. 이 다섯 번째는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된다.여섯 번째 ‘조건부 자신감’ 이다. 아이들의 자신감을 전문가의 의견에 얽매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시험성적과 통지표에 의해 자기 자신이나 부모를 믿기보다는 자격증을 가진 권위자들의 평가에 따라야 한다. 자신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도 남이 가르쳐 주어야만 알 수 있게 만든다.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고 부모들은 성적표만 맹신하는 모습들을 보면 알 수 있다.마지막 교육과정은 ‘숨을 곳이 없다’이다. 학생들은 항상 동료들이나 선생님에게 감시를 당한다. 쉬는 시간을 3백초로 제한해서 동료애 생길 여지 최소한으로 줄이고, 끊임없이 감시하여 개인적인 영역을 박탈하며, 혼자만 있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다. 고자질하는인정과 사람냄새가 없어지고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를 생각하면 숨이 막혀 온다.학교는 아이들의 시간의 절반을 가둬놓음으로써,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을 저희들끼리만 묶어놓음으로써, 일의 시작과 끝을 종소리로 통제함으로써, 여러 사람들에게 똑같은 주제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방법으로 생각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채소에 등급 매기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등급을 매김으로써,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강요당하며 생기를 잃은 채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아이들은 자신만의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엄마들의 극성에 의한 학원보내기 경쟁으로 그나마 있는 시간마저 학원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부설 초등학교만 보더라도 학교가 끝날 때 쯤 되면 아이들이 힘차게 뛰놀아야할 운동장이 학원 차들로 가득 붐비는 것을 보았다. 내가 초등학교 때만해도 그러진 않았는데 이제 놀려면 학원에 가야한다고 들었다. 놀 사람이 없고 다 학원에 있으니 말이다.학교에 다니기 전 아이들은 매우 창의적이고, 생기에 넘쳐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을수록 눈에 생기가 줄고 개성이 없어지며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학생이 되어버린다. 비판하는 생각을 할 줄 모르고 올바르게 토론할 줄도 모르며,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자유롭고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한다. 입시위주의 교육, 교과서 중심의 암기위주 교육 때문이 아닌가 싶다.학교는 사회의 계층간격을 넓히는 데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학교 교육은 대량교육, 의무교육으로 누구에게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미리 정해진 사회적 역할과 질서에 따라 지배 집단에 유리하도록 배분하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하게 된다.개토는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가 교사의 자질, 예산 부족 문제가 아닌 교육과 학교제도의 조화될 수 없는 관계교, 농장학교, 독학 등등.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되는 교육의 종류를 학생들이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학교의 잘못은 다른 학교에서 바로잡아질 수 있는 -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이해하고, 즐기고, 거기서 가르침을 얻으며 발전하는 - 자기교정능력이 자유시장의 원리에는 있다고 개토는 주장한다. 또한 학교의 나태한 모습들이 경쟁을 통해 개혁될 수 있을 것이며, 타율적이고 경직된 교육제도가 자율적이고 탄력성 있는 교육제도로 바꾸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2. 신자유주의의 교육그렇다면 존 개토의 말처럼 낙후되고 침체된 우리의 교육을 신자유주의 교육으로 바꾸어야 할 것인가. 이 책은 신자유주의 교육에 대해 적극 찬성하며, 지금 학교에서 나타나는 모순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시장과 학부모에게 학교의 선택을 맡김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교를 시장에 맡긴다는 말은 결국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서비스’의 경쟁 상태를 유도한다는 뜻이다.신자유주의 교육이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하 세계수준의 질 높은 교육은 다름 아닌 시장경제의 원리를 통해 걸러진 학교에서 가능하며, 그럴 때만이 교육소비자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교육을 우리보다 먼저 펼친 선진국에서는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경험적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소비자 또는 학부모의 시장참여방식이 계층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학생 및 교육자원에 대한 경쟁을 강요받고 있는 생산자 또는 교육자의 정책·실천·담론 방식도 학교 소재지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상이하여 결국 중산층 이상의 학부모에게 가장 유리한 교육조건이 마련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Murnane과 Levy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한 개혁이 학교로 하여금 학교에 기여할 만한 학생들만을 선발하고, 흠이 있다고 간주되는 학생들을 방치함으로써 학교의 성취를 개선하도록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위험한 실험 p.54)고 한다.신자유주의의 예로 자립형 사립고를 들 수 있는데 자립형사립고는 자율성과 다양성이 아니라 선택과 배제호에 알맞게 교육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부익부 빈익빈의 모습이 교육에서는 학교의 계급화로 나타나고 이는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시장경제 원리의 도입이 가져오는 최대의 해악은 '교육적 관계'를 '상품 관계'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교수 - 학습 관계로 나타나는 교육적 관계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사회적 능력과 가능성을 총체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인격적 주체간의 관계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교육을 하나의 상품 영역으로 전락시키면서 교육적 관계를 물신화된 상품 관계로 변질시키고 있다. 상품화된 교육은 더 이상 목적의식적인 지적·문화적 재생산, 인간화의 과정이 아니라 상품의 생산 - 소비 과정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교육은 더 이상 개개인의 인간적 가능성과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바람직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조직하고 전수하는 고도의 의식적 실천이 아니라, 잘 팔리는 교육 상품을 생산하고 다양한 상품 가운데 개개인의 욕구와 기호에 따라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경제행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운 교육비의 전가, 사학의 자율성 강화를 통한 교육기회의 차별화가 주요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돈 없는 노동자·민중에게는 교육 기회가 대폭 축소될 것이며, 그나마 제공되는 교육에서조차 질적 저하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창의성·자율성·다양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입시교육의 심화와 교육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시장적 관점에 의해 형성되는 학교간 경쟁체제는 필연적으로 입시교육의 강화로 연결된다. 실제로 학교간 경쟁체제가 형성될 때 경쟁의 핵심 요소는 상급학교 진학률·명문교 진학률·유망직종 취업률이 될 것임은 너무도 명백하다.진학률 경쟁 속에서 창의성·자율성·다양성은 허구화되거나 변질될 것이 명백하다. 시장논리 속에서 교육과정은 노동력 시장의 요구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 대학·대학원의 입시요강은 자본과 노동시장의 요구에 의해 규정되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