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전에 읽었던 ‘역사란 무엇인가?’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내 생각들이었다. 나는 역사를 개인을 통해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근데 이 두 책을 읽으면서 역사도 개인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들은 미시사적인 역사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는 메노키오라는 인물을 통해서 그리고 은 마르탱을 통해서 보이고 있다. 책을 들여다보면 에서는 메노키오라는 인물이 남겨놓은 단서를 보면서 우리는 그 시대의 종교적인 가치관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는 역사의 종교적인 면을 알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을 읽다보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끔 하였다. 이 또한 역사의 한편을 볼 수 있게 한다. 나는 이 두 책을 같이 읽게 한 교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역사를 보는 관점을 좀 더 넓혀주려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에 나오는 두 인물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 배경을 통해서 역사를 보는 방법을 일깨워주시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거기서 또 하필, 이 두 책을 선택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 두 책의 공통점? 비슷한 점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선 두 책은 어떤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어찌 보면 역사에 남은 사람들이다. 뭐, 훌륭한 위인으로써 남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또 민중들의 모습을 그렸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때의 사회문화상을 그린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시발점은 모두 재판이다. 는 메노키오라는 인물이 직접 재판을 받으면서 당시의 상황을 자신이 남겨놓은 것이고 은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가 남겨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다. 이것이 두 책을 함께 엮어 놓으신 나름대로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먼저 는 메노키오라는 인물의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이 인물이 이 책의 중심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그 당시의 종교적인 문화에 대한 획기적인 역사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메노키오가 살던 시대는 기독교, 그리스와 같은 신을 받드는 중세시대의 신앙주의 사회에서 살았다. 그런 교황이 지배하던 시대에 살던 그가 신을 부정하였다. 그 당시 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였을 것이다. 이것은 이단을 나타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메노키오는 재판까지 받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신앙주의에 살던 사람들 중에는 과연 메노키오와 같이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많이 있었다면 이 책의 주인공으로 메노키오가 선정될 이유가 조금은 적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사연 중에서의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알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메노키오는 왜 신을 부정하게 되었을까? 이 책의 제목은 이다. 이 책의 제목 또한 특이하다.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감히 내용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런 내용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책을 읽어보면 왜 책의 제목이 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구절을 따오면 “ …… 흙,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들입니다. 한 지고지순한 존재는 아들이 하느님과 천사이기를 원하였고, 그 많은 천사들 중에는 같은 시간대에 그 큰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신도 있었지요 …… ” 이 내용을 보면 메노키오의 사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것은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것으로 알고 그를 떠받들었는데 메노키오는 다른 사상을 내밀어 신을 부정하였다. 또한 메노키오가 신을 부정하게 된 것에는 교회가 자신들에게서부터 가혹한 착취와 억압을 당한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메노키오가 위와 같은 사상을 할 수 있게 더 부가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낱 방앗간의 주인일 뿐이었던 사람이 이와 같은 사상을 내 비출 수 있었던 것도 대단한 일이다. 이 시대를 살던 사람으로서는 더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평범했던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와 같은 사상이 나왔다는 것은 그 사람이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같게 만들었다. 비록 메노키오는 이단자로 몰려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메노키오가 시대를 잘 만났더라면 방앗간의 주인이 아니라 좀 더 멋진 일을 해내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다음 을 들여다보면 이 또한 신기한 사건이다. 이 책의 내용은 가짜 마르탱이 나타나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끝이 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 같지만 소설 같지 않았던 책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읽었던 책들보다 조금은 쉽고 내용이 흥미가 있어서 읽기가 편했던 책이었다. 가짜 마르탱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한다는 것. 것도 그 사람의 진짜 가족에게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닮았으면, 얼마나 똑같이 행동을 했으면 진짜처럼 알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 시대에는 사진 없어서 직접 비교를 해서 판단할 수 없었을 지라도 아무리 오랜 세월을 떨어져 있었지만 자신의 남편을 착각한다는 것도 이상하기만 했다. 내용에는 가짜 마르탱은 실제로 진짜 마르탱과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었고, 떠난 지가 십여 년 가까이 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습이 조금 변한 것에 대해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가짜 마르탱이 진짜 마르탱의 정보를 여기저기서 입수하여 그것을 이용했기 때문에 더 의심을 사지 않았다. 이런 가짜 마르탱의 실력?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진짜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같이 살던 그의 아내 베르트랑드도 정말 자신의 남편이라고 믿었던 걸까? 아님 믿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어찌 보면 베르트랑드에게는 가짜 마르탱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진짜 마르탱은 가정생활에 불성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짜라는 사실을 알았어도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진짜 마르탱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마 가짜 마르탱은 베르트랑드와 함께 잘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재판도 아내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삼촌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채고서 재기된 것이기 때문에 아내 베르트랑드는 가짜 마르탱과 함께 생활에 안착하고 잘 살았을 것 같다. 가짜 마르탱은 왜 가짜의 삶을 살려고 했는지도 의문이다.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그랬다고는 하는데 그럴 것이었다면 가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 힘을 진짜 자신의 삶을 위해서 노력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아니면 가짜 마르탱인 아르노는 잠깐 그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 가짜 행세를 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면 사건을 중심으로 그 시대의 생활상을 표현한 내용도 심심치 않게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시대 프랑스의 배경과 농민들의 생활상을 시대의 살아가는 방식과 연결시켜 줌으로서 그 시대의 생활상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된다는 점도 나름대로의 읽는 재미를 주었다. 나는 이 저자가 사건을 내용의 중심으로 하면서 그 시대 당시의 생활상을 알게 해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그 생활상에서 그 시대의 역사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찌 보면 역사라고 하기엔 그 역사적 가미가 덜 들어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기 때문에 저자의 생각도 가미가 됐을 수도 있다. 역사는 흔히 사실만을 전달한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하지만 이 책은 한 가지 사건을 그 당시의 다양한 배경지식으로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어쨌든 이 사건을 통한 역사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토대로 쓰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하는 의문점에 대해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먼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써야하는 이런 리포트를 중학교 이후로 처음 해보는 것 같다. 어릴 적에 방학 숙제나, 국어 수행평가로 많이 했던 독후감과 같은 이번 리포트는 사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원체 책 읽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나라서 독후감과 같은 과제는 나에게는 어려운 과제이다. 그리고 책을 책으로 읽지 않고 책을 공부하는 듯이 읽게 만드는 과제의 압박감 때문에 어릴 때부터 노이로제가 걸린 듯이 독서라는 것을 멀리하기만 해왔었다. 억지로 분량에 맞게 짜 맞추는 듯이 토해내야 하는 나의 느낌이라는 것에도 힘들었다. 그래도 이 책의 첫 파트를 읽어가기 시작할 때는 역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좀 괜찮은 듯 싶더니 점점 읽어나갈 수록 복잡해져만 갔다. 생각을 정리하지도 못하겠고 말이다. 얼추 생각을 나열해보았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짧은 생각을 적어보겠다.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저 역사는 우리와 조상들이 지내온 시간들을 기록한 것이라는 얇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어떤 깊은 생각을 가져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저 물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도 같았고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어서 정확한 해답을 얻기가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그 정리에 도움보다는 오히려 생각을 헤집어 놓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역사란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자꾸 엉키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사라는 의미의 어지러움과 같이 그런 역사를 엮어가는 역사가들 또한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처음 느끼기엔 역사는 후세에 남겨질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 그 가치가 인정되는 것만이 기록되어 역사로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럼 기록이 되지 않으면 역사가 아니냐는 물음에 또 생각이 흔들리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역사라는 의미에 대한 나의 첫 생각은 그러했다. 책을 읽으면서 첫 파트가 가장 읽기 편했는데 이 부분에서 보면 역사는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그 뒤에 그렇다하더라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도 나온다. 이 말은 사실을 무시해서는 역사가 될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전달되었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근데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문득 이런 생각을 가지게 했다. 역사서에 기록된 역사를 나는 지금 것 한 번도 의심이라는 것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관심이 없어서라는 것도 맞겠지만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배우면서 과연 이 내용들이 정말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근데 그런 생각을 가져 볼만도 하지 않을까? 역사는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럼 역사가들은 그 사실과 진실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해석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가들에게 사실과 문서는 역사를 쓰기위한 필수적인 것이라고 한다. 허나 이런 사실과 문서를 무조건 적으로 숭배를 해서는 안 된다고도 한다. 이런 자료들을 역사가들은 거르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이것저것 재보고 나서야 역사라고 기록될 수 있는 것들을 엄선해서 써내려가는 것이다. 물론 역사가들의 판단이 옳고 그르다는 것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엄선해가는 그런 과정들을 겪어야 하는 역사가들이 나에게는 대단하게 비춰졌다. 자칫 잘못하여 그릇된 내용을 적을시 에는 우리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는 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판단이 어찌되었는지는 둘째 치고 그 과정으로만 역사가들을 본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손에 막중한 임무가 주어진 것에 그들은 참 힘든 한줄 한 줄을 써내려가고 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리포트를 쓰고 있는 이 기록도 나는 생각하고 쓰고 지우고 고치면서 애쓰는데 그들은 한 줄을 쓰기위해 많은 자료들에 둘러싸여 고뇌하는 한 줄에 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고, 역사가들의 임무는 기록보다도 평가에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역사를 기록하고 보전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어떠한 문제들이 옛날에는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갔는지를 알아보는 것, 과거의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미래를 위한 지침서의 역할을 하는 것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좀 더 신중하게 기록하는 것이 역사가들에게 주어진 몫이 된 것 같다. 그 몫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역사가와 사실들이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이런 임무를 부여 받은 역사가들도 사회에 의해서 형성된 한 사람의 개인이다. 각각의 개인은 사회의 영향을 받듯이 사회도 개인의 영향 받지 않는다고는 못할 것이다. 역사는 개인에 의해 쓰이고 개인에 의해 기록되어진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마치 역사가들이 사실과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들 사이에서 애쓰는 모습과 비슷하게 비춰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이는 역사가들이 역사를 만들어 내는 데에 어떤 또 다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시점을 버리고 지극히 사실에 의해 쓰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역사가가 되어 다른 시대의 흐름까지 간파하는 수위까지 이르게 되고 사회적, 역사적 상황을 넘어서서 분별 성을 깨우친다면 역사가들이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 있어서 좀 더 판단력이 서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가져봤다. 그렇다고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역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사실은 사회적 힘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 인권선언’ 분석 ? 평가하기먼저 내가 다른 선언문 중에서도 “세계 인권선언”을 택한 것은 내가 이번 사회운동에서 주제로 택한 것이 ‘장애인 고용촉진’ 과 관련 된 내용이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니 내가 선정한 주제와 세계 인권이라는 것이 내 주제를 받쳐주기에 좋은 뒷받침이 될 것 같아서였다. 세계에서는 어떻게 인권을 받들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나면 내 주제의 주체인 장애인들 또한 어떻게 인권이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하는지를 더 자세히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택하게 되었다. 이 인권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평가해보면서 인권선언문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계기 또한 될 것이다.세계 인권선언의 조항들을 살펴보자. 처음부터 살펴보면 먼저, 제 2조의 내용은 차별에 관한 내용이다. 많은 인권에 관한 조항들 중에서도 나는 이 조항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잘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해서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조항으로 그나마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항의 내용을 보면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이라고 나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차별의 대상을 세세하게 늘어놓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히 인종, 피부색 그리고 성별 정도의 차별을 금해 놓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조항들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했다면 그냥 나와 같이 몇 개의 조항들만 적어놓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적어놓았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차별로 불이익을 당하는 입장에서 뭔가를 더 요구하여 이렇게 쓰여 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인종만을 적어놓았다면 그 외의 사회적 출신이나 재산과 같은 부분에서는 또 다르게 차별을 받았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하나를 정할 때 확실하게 이렇게 조항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후에라도 조항에 덜 넣었을 때 생기는 불이익을 면할 수 있지 않을까?조항들 보다보니 재미있는 조항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제 13조항이다. 조항의 내용은 이렇다. “2.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떠한 나라를 떠날 권리와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 라는 내용의 조항이다. 이 조항을 보니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아프간에 피랍됐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 권리를 부여받지 못한 것이다.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들에 의해 그 권리가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이 조항을 어겼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밖에도 제 18조에 보면 “모든 사람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 선교, 행사, 예배 및 의식에 의하여 … 자유를 포함한다.”라는 조항도 있다. 이 조항을 보면 선교활동의 자유가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설령 그들이 선교활동을 간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이 선교활동을 했다면 이는 보호 받을 수 있는 권리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조항에 위반되게 일이 행해진 것 같다. 그들은 선교의 자유로 아프간에 갔지만 자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를 보호 받지 못했다. 타당한 권리로 갔지만 그 권리가 그 곳에선 통하지 않는 곳이라서 다른 하나의 권리를 받지 못하였다.여기서 또 든 생각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 조항들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세계인권선언은 그 조항을 어긴다고 해서 처벌을 받거나 하지 않는다. 단지 국가들이 이를 참고하여 지켜지기를 위한 하나의 지침서의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들은 이런 강제성이 없는 것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강제성을 띠고 있는 법 또한 잘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강제성이 없는 것도 반반일 거라고 생각한다.조항에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교육의 권리 또한 제 26조에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육의 권리가 있는데 이 또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초등교육까지의 무상이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세계로 통하는 말인가 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교육이라는 것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만이 아니다. 제 26조 2항을 살펴보면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 존중의 강화를 목표로 한다. 교육은 … 이해, 관용 및 우의를 증진하며, 평화의 유지를 위한 국제연합의 활동을 촉진하여야 한다.” 라는 구절이 있다. 나라간의 평화를 위해서 배우는 교육이라는 말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잘못된 인식에 잡혀서 나라간의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이 가던 책이었다. 정말 부모가 될 부부라든가 현재 아이들을 키우는 부부들이 읽어 보아도 좋을 내용이었다. 아직 엄마가 되기에는 먼 미래 같은 이야기인 나이지만 나에게도 이 책은 나중에 내 아이를 키울 때 도움이 많이 될 책일 것 같다. 아직 나는 아이를 키워보지도 않았고 동생을 돌본 경험도 없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이 공감이 가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이 책에 제시된 육아원칙에 내 어린 시절을 대입 시켜 보기도 했다. 내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내 부모님께서 이 책을 먼저 읽으시고 내 육아를 지켜보셨더라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내 아이를 키울 때에 한번 이 책의 도움을 받아볼까 한다. 이 책의 목차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먼저 아이들을 돌볼 때에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의 의욕을 우리가 꺾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떻게 인식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에서 제일 지우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부모님께서 다투던 모습이다. 어린 내가 본 부모님의 모습에서 나는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자꾸 억누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예를 들어 돈 문제로 다투는 모습에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할 때 과연 내 말을 들어주실까? 그럴 돈에 여유가 있으실까? 하는 생각을 하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린지만 아이들도 생각을 할 수 있다. 어떤 분위기를 보아서 어린 아이들도 분위기에 따라 무엇을 결정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은 웬만하면 우리 아이들 앞에서는 어떤 모습이라도 안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것도 아이들이라 생각한다.아이들은 항상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가 직접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텔레비전이나 이런 매체를 통해서 본 아이들은 항상 “왜요?”라는 질문을 한다. 그래서 그런 모습도 봤었다. 자꾸 질문하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처음에는 잘 대응해주다가 나중에는 귀찮거나 잘 모르는 질문도 있어서 아이들의 질문에 점점 응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호기심 많고 알고자 하는 것이 많은 아이들에게 대응해주지 않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귀찮더라도 아이들에게 응해주라는 것이다. 이 중에 좋은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그 방법이 나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방법이라 함은 자꾸 질문하는 아이에게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왜 그렇게 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에 맞는 답을 일러주지 말고 아이에게 다시 질문을 한다. 바로 ‘너의 생각은 어때?’ 하고 말이다. 이것은 아이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한 번 더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물어봤을 시에는 그 답을 함께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냥 답을 해주지 말고 그 답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이 발달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책을 이용해서 찾는 것이 아이들에는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또 이것은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하게 할 수 있는 방법도 된다고 해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이 아이들은 항상 부모에게 물어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 뜻을 내비춰서 부모들을 가끔은 당황하게도 하는 것 같다. 또 그런 아이들이 좋은 아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런 것도 하지 않는 아이보다는 이렇게 부모에게 하려고 하는 것이 밝게 클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 책의 제목에서처럼 꾸짖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모든 부모들이 무턱대고 꾸짖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직까지는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의 생각을 제대로 전해 받지도 않은 채로 아이를 꾸짖기만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맞으면서 큰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을 가지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누구든지 말로서 사람들을 이해하고 감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꾸짖기 전에 먼저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잘못 된 것이 있다면 고쳐주고 바르게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꾸짖기 않고도 올바르게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도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상대방을 나무라기 전에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고 서로 이해하고 대화로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우리는 몸소 익혀 아이들에게 좀 더 다정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이 책에서는 육아원칙을 제시하였다. 그 원칙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고자 한다. 먼저 원칙의 첫 번째는 어린이의 장난질을 지켜보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장난은 호기심의 표현이라고 한다. 어린 아이가 몸을 이동할 수 있게 되면 주위의 모든 사물을 탐색하게 되는데 이러한 장난질은 탐색활동이며 스스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의욕의 한 표현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장난을 막게 된다면 아이는 어른스런 아이가 되어 자기의 뜻대로 과업을 행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장난을 치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아이들은 장난꾸러기라는 말을 많이들 하고 들었을 것이다. 전에는 그냥 아이들의 단순한 장난으로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뭔가를 더 알 것 같다. 어린 시절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 아닐까 한다. 그 호기심이 아이들의 창의력을 길러주기도 하고 생각하는 힘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호기심을 막아버린다면 그 아이는 더 많은 재능이 있을지 모르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두 번째로 어린이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라는 것이다. 자발성의 발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린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자유란 방임과는 다른 것으로서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하고 있는 일에 눈을 떼지 않으면서 가급적 지시, 명령, 통제 등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말참견하거나 손을 거들어주지 않는 가운데 주어지는 자유야말로 자발성, 즉 하고자 하는 마음을 생성케 하는 필요 불가결한 양육방식이 될 것이다.세 번째로는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키우라는 것이다. 어린이답다는 것은 어떤 어린이를 말하는가 하면 장난스러운 어린이, 농담을 할 줄 아는 어린이, 친구들과 말다툼을 하거나 심지어는 싸움도 불사하는 어린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거나 이유를 물어보는 어린이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그 모습을 나타내는 어린이를 말한다. 이러한 어린이는 가끔 버릇이 없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거짓 없이 표현하는 진정 좋은 어린이의 모습이 된다 한다. 나는 이 원칙에 백배 동감한다. 요즘은 어린 나이 때부터 학구열이 대단하다고들 한다. 아직 놀이터에서 뛰어놀아야 마땅한 아이들이 모두 학원이라는 곳에 박혀 몸이 녹초가 되도록 공부에 힘을 쓴다고 한다. 공부라는 것에 일찍 눈을 떠 열심히 하는 것을 나쁘다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아직 세상을 알기보다는 하늘을 알아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등살에 못 이겨 학원만 죽어라 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너무 안쓰럽다. 또 도수 있는 안경을 쓰고서 논리정연하게 세상의 일이라도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어린 아이가 안쓰럽게 보인다. 그 아이는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놀지 못했을까, 얼마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난을 쳐야할 아이들이 뛰어놀아야할 아이들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이것은 네 번째 원칙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네 번째는 어린이의 발달과정을 알고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어린이는 독자적인 존재이며 하나의 인격체이다. 그들을 존중하는 부모야말로 존경받는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부모는 어린이의 발달과정을 숙지하여 발달 단계에 따른 발달과업을 성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게젤의 연령별 표준행동목록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성숙주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준비성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양육방법이 선택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원칙은 현대적인 표현을 빌면 교육의 적기성(결정적 시기)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의 원칙처럼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키워야 한다는 것과 같다. 그 나이 때에 맞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부모들은 어린 나이인 어린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조기교육이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 의미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는 지켜야할 어린이들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생각한다.다섯 번째 유머와 농담을 조장하라는 것은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생각해 보자. 가정에 활력이 있고 평온함이 흐르며 마음의 벽이 없어진다. 그러나 웃음이 없는 엄격한 가정을 생각해 보면 모든 행동이 틀에 얽매어 무미건조한, 웃음이 없는 가정생활이 되고 말 것이다. 유머는 사랑이 통하는 길이라고 했다. 익살과 농담이 있는 가정이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안식처가 된다는 사실을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