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 각 시대별로 그 때의 각 전쟁과 분쟁, 그리고 각 나라와 집단간의 갈등을 예로 보여주면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각 시대를 뛰어넘으며 각각의 원인에 대해 비교분석 또한 해주고 있다. 1400년대부터 현재까지 총 7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를 전부 다 말하기에는 방대한 양이여서 그중 7장인 1990년 이후 오늘날의 전쟁에 대해서 언급하기로 하겠다.이 책의 마지막 장으로 되어있는 7장 오늘날의 전쟁은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목적인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오늘날에는 왜 전쟁을 기피하려고 하고 안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더 많이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이 장의 처음부분에서 전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론적 경향중 하나를 인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로 문명의 발달로 인해 많은 인간 사회에서는 전쟁 발발 견향이 줄고 사상자를 내기를 꺼리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생겨나는 조짐이 있었다. 또한 이미 18세기부터 열린 외교와 합리적 정책을 요구하고 있었고, 20세기 초부터는 군비축소와 국제법 제정, 국제기구의 설립, 전인류의 형제애를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각 선진국을 비롯한 북한과 여러 중동지역에서는 아직도 서로 현재의 무기보다 더욱 좋은 무기를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또한 여러 첨단장비를 군에 도입하여 군의 첨단무기화를 꾀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현재 세계가 전쟁발발 경향을 줄이자고 하고 있는 상황에 비하면 아이러니한 상황일 수 밖에 없다. 국외적으론 전쟁을 하지말자고 하면서 국내에선 전쟁에 대비한 여러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도 충분히 빠르게 많은 부분에서 발전했고 또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전에도 볼수 있듯이 전쟁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본다면 얼마나 더 발전을 해야 전쟁을 초월하는지 전혀 예감을 못할 것이다. 특별한 기준도 없으니 말이다.두 번째로 현재 군대의 변화에 그 이유가 있다. 현재 세계 선진국의 군대는 우리처럼 징병제가 아닌 직업군인이며 용병의 개념인 모병제를 택하고 있으며 세계와 지역의 온건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찰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한예로 미국이 현재 이라크를 비롯한 여러나라에 파병하는 이유에서 들 수 있다. 최근 이라크전 이후에 미군의 이라크주둔은 이라크의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일종의 경찰력행사가 목적이다. 또한 현재 주요 국가에서는 정부에서 군대의 역할이 줄어들었다. 실제로 20세기에 점점 민간으로 옮겨진 정부들에 의해 군대 문제에 대한 이해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특히 자국민이 아닌 사람들을 징집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려 하지 않았고 또한 잘 훈련된 군인들과 값비싼 군사장비들은 전쟁이 일어나서 직접 사용하기 전까지 드는 많은 비용을 국가에서 감당하기가 점점 버거울정도로 비싸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국가에서 가지고 있는 무기보다 더 좋은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여 드는 비용 또한 이에 버금가기에 현재 각 세계 주요국가들은 무기계발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제 군대도 민간의 색채를 띠게 되었다. 군대는 더 이상 자체의 규칙을 따르는 사회의 협력자가 될 수 없고, 사회의 기준을 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군대의 변화에 대한 저자의 발언들중에 한가지 의견을 제시하자면 군대가 예전에 비해 점점 축소되어진다고 했는데 이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실질적으로 전쟁에서 싸우는 군인들의 수가 줄어간다고는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을 대처하는 전쟁로봇의 개발과 무인비행기의 등장, 또한 예전의 화력에 비해 몇배 혹은 몇십, 몇백배에 달하는 신무기의 개발을 본다면 이는 결코 군대가 예전에 비해 작아지고 있다고만 볼 수는 없을 듯 싶다.세 번째로는 국제정서가 점점 평화적 협력관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는 핵무기의 개발로 인해 그 절대적인 파괴력은 대체로 하나의 완전한 전쟁 억제책으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의 윤리를 제시했다. 이러한 결과는 핵무기에 관해서 세계가 서로 고민하게 되었고 고민한 결과 핵무기에 관한 규제들을 정한 단체를 만들게 되었으며 서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말자는 동의를 구했다. 또한 두 국가 간에 혹은 국가와 단체 또는 비정부조직 간에 일어나는 갈등을 해당 국가만의 국한된 문제로 보지 않고 주변국가들도 함께 신경써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필자의 의견은 한가지를 간과 한 듯 하다. 각 국가는 아직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하나의 이익집단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단지 북한과 우리나라의 대치 관계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 주둔하며 남북문제에 신경을 쓰는것인지, 또한 이번 이라크 전쟁은 정말 이라크내 있을 것이라 예측되는 대량살상무기를 압수해서 국제평화에 이바지하려는 것이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이번 전쟁사 서평으로 내가 택한 책은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라는 책이다. 교수님께서 나눠주신 많은 책 목록중에 이걸 택 한 이유는 우선은 서점에서 학교서점에서 쉽게 구입할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한국사에 대해서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 어느나라 역사이건간에 전쟁이 없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요즘에 다시 이슈가 되고있는 독도문제로 인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욱더 확실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꼇기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여 읽게 되었다. 살때에는 약간은 두꺼워 보이는 듯한 책이여서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은터라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막상 책을 처음부터 읽어보니 고등학교때 국사책 보다 훨씬 내용 정리도 잘되어 있는 것 같고 많은 연구와 분석, 그리고 다른 고서적등을 토대로 하여 다른 책에서는 알기 힘든 내용들 까지도 자세히 그리고 섬세하고 다뤄서 읽기에도 많은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알아가도록 하여 쉽게 알수 있었고, 전쟁을 단순순서나 전술등을 글로 나열한게 아니라 자세히 지도를 통해 그림으로 전술과 작전 그리고 진영등을 나타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우리나라가 겪은 많은 전쟁들중에 그 의미는 다 있겠지만 나 나름대로 그 중에서도 다른 타전쟁들보다 우리나라에 큰 영향과 의미를 부여해준 전쟁을 다뤄보려고 한다.먼저 말할 전쟁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통쾌하고 멋진 승리를 거두어 그 명성을 떨친 살수대첩이다. 살수대첩은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가 고구려를 정복하려고 113만명이라는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왔지만 이를 을지문덕장군이 거의 전멸시킨 전쟁으로 유명하다. 수는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서 5년전부터 막대한 비용을 들여 그당시 고구려의 난공불락의 요새인 요동성을 함락하기 위한 공성무기들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요동성을 함락하려고 하였지만 이를 미리 예상한 고구려군에 의해 힘들어 할때 수양제는 좌 제6군 사령관이였던 단문진의 간언을 받아들여 주력부대로 평양성공격을 하였다. 허나 이마저 이미 알았던 고구려는 여러번의 기습공격으로 공성무기를 부수고 심적으로 힘든 수군에게 계략으로 항복의사를 밝히는 수법등을 써서 평양성을 물러나기 시작한 수군을 기습공격하였다. 그리고 살수에 도착하여 강을 건너가려할 때 가두었던 물을 물을 풀어 선봉과 후위를 분리시켜서 수군을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공황상태에 빠진 적을 궤멸시켜 대승을 거두었다. 이리하여 거의 주력군을 잃은 수양제는 전쟁의 참패를 인정하고 철군을 하였다.살수대첩에서 을지문덕장군의 엄청난 계략과 함께 미리 적의 움직을 파악하여 그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을 세우는 유비무환의 자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거대한 중국을 통일하여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온 수군에 대해 전혀 기죽지 않고 중국에 비하면 정말 작은 이땅을 지키고 대승을 거두었다는 대해서 다시 한번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용맹했던 고구려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다음으로 고구려를 계승하여 커다란 만주대륙을 지배했던 대발해국의 건국전쟁인 천문령전투이다. 천문령전투는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된 전투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전투란 말이다. 요즈음 동북공정으로 전국민이 발해에 대해 관심이 많아져서 나 역시 발해란 나라에 알아보기 위해 이 전쟁을 더욱 자세히 읽어보고 생각해보았다. 이 책에서 보면 천문령 전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확실한건 거대한 당의 연합군에 맞서 보잘것 없는 유민으로 구성된 고구려 말갈족이 대승을 거두어 대발해 건국의 바탕을 마련한 전쟁이다. 천년 역사를 자랑하던 고구려는 수와 당을 상대로 한 70여 년의 전쟁끝에 국력이 소모되어 멸망하였다. 후에 고구려의 주요 속민이었던 거란은 당에 반기를 들고 오직 군사적인 승리에만 주력하고 전쟁의 목표가 뚜렷치 않아서 단지 반란에 그칠 수밖에 없었고 거란은 끝내 당군과 돌궐군 해족으로부터의 공격으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최후를 맞아하였다. 이에 비해 말갈인은 국가 건립의 목표를 가지고 당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거란이 최후를 맞이하여 힘들어진 말갈인들은 요동지방을 떠나 천문령으로 갔다. 그리고 막강 기마전력을 자랑하던 당을 맞아 상대적으로 기마전력이 부재했던 말갈인의 지도자 대조영은 당의 기마병과 보병을 분리한 다음 보병을 각개격파하고 고립된 기마부대를 습격하는 작전을 짰다. 당이 천문령을 빠져나와 낮은 구릉지로 나온순간 기습을 하고 후퇴하여 낮은 구릉지에서 상대적으로 이동하기 불편한 기병과 이동하기 편한 보병의 사이를 벌려놓았다. 그리고 당의 보병을 각개격파하고 보병과 있어야 강한 기병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대조영군에게 모두 당했다. 이 천문령 전투에서 뛰어난 전술로 당군을 크게 물리친 대조영은 전투의 결과로 인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로서 실질적인 고구려의 부활이 이루어졌다. 이 전투에서는 수업시간에 배웠던 목표의 원칙과 기습의 원칙이 절실히 들어난다. 별다른 목표없이 오직 복수만을 위해 당과 싸웠던 거란과는 다르게 국가 건립이라는 확실한 목표를 말갈인들은 가지고 싸웠기 때문에 이겼을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장소에서의 기습공격으로 적에게 혼란을 주었기에 더욱이 쉽게 이겼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세계 최초의 함포전이라는 진포대첩이다. 이 진포대첩으로 인해 세계 전쟁사는 바다 위의 전투가 더 이상 육지 전투의 연장선상이 아닌 해상전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려는 1373년 명에 사신을 보내 화약을 나누어 달라고 하였지만 이를 국비로 여긴 명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해안에 왜구가 창궐하기 시작하자 고려가 왜구를 무찌르는 것이 자국에게도 이익이라는 판단아래 화약재료를 고려에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그 양이 적어서 충분한 양의 화약무기를 만들 수가 없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최무선이다. 그는 여러번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쉽게 화약제조의 비밀을 풀지 못하자 그 열쇠를 찾기 위해 백방 돌아다녔다. 마침 이원이라는 중국인으로부터 염초자취술과 염초를 흙에서 추출하는 비법을 알아냈다. 이로 인해 고려에서도 대량의 화약을 생산할수 있었고 공식 화기 제조기관인 화통도감을 만들었다. 이후 화통과 화포를 대량 제조하고 이를 선박에 달았다. 그리고 이를 운용할 수 있는 수군을 전라도지방의 어부들과 어민들 중 숙련된 수부들을 선발하여 강화도와 교동도로 이주시킨 다음, 경작지를 나눠주는 대가로 수상 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이로서 고려는 전문적인 수군을 육성하였다. 마침내 왜구의 선단이 전라도 앞바다에 나타나자 고려는 우수한 함대에 전문적으로 육성된 수군을 태워 화공을 이용해 이들의 배를 모두 격파해버렸다. 이 진포대첩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세계최초의 함포전이라는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오랜 시간 동양의 과학기술은 개발과 그 응용에 있어서 서양에 뒤져 있는것처럼 인식되었지만 이처럼 동양의 기술개발과 그의 이용에 있어 앞섰다는 사실들도 많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군사기술과 전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 배려-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바로 문득 드는 생각이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이 나와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을 하였는가? 또 배려라는 것을 잘 실천하며 살았는가?’ 라는 질문 이였다. 배려는 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정말 인간사회에서 꼭 필요한 덕목인거 같다.얼마 전에 여자친구랑 헤어지기 직전까지 싸운 적이 있었다. 내가 하계휴가 때 유럽여행을 준비한답시고 여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와 문자연락, 그리고 대화상대 등을 해주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나는 그저 여자친구가 나를 이해해주기만을 바란 채 다가오는 내 유럽여행에 급급하기만 하였다. 드디어 휴가가 시작되었고 유럽여행을 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후에야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그동안 신경 못써준 것을 풀어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자친구는 나와 만나는 내내 좋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내가 풀어줘야 하는 입장이기에 계속 웃어가며 삐진 여자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계속 입술만 삐죽 내밀고 있어서 결국 내가 화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별다른 말도 없이 유럽여행을 떠나버렸다.이제 와서 여자친구와 대화로 서로가 가지고 있던 앙금을 지웠다. 서로에게 화난 건 정말 간단했다. 서로의 입장을 거의 배제한 채로 각자의 입장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한 데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나는 생도생활의 막바지에 다시는 오지 않을지 모를 유럽여행을 위해 준비하는 것을 여자친구가 당연히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여자친구는 아무리 유럽여행이지만 매번 주말에만 보다가 모처럼 평일에도 만나면서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는 만큼 그전에 뭔가를 해주거나 자신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기를 바랐던 것이었다.이번의 경험과 책을 읽어보니 배려는 결코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나의 아주 작은 생각과 행동이 상대방에겐 큰 감동과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러기에 내가 중심이 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을 나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다른 사람을 나의 중심으로 세우는 일은 알고 보면 정말 간단하고 쉬운 일이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그에 대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을 한다면 이는 다른 사람을 나의 중심에 두는 동시에 나를 그 사람의 중심에 두는 일이기도 하다. 책에도 즐거움의 조건과 성공의 조건으로 ‘너와 나를 위한 배려’ , ‘모두를 위한 배려’ 가 나와 있다. 이는 나를 다른 사람의 중심에 놓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위해..(백범일지)8중대 56사 0025황성태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백범일지” 어렸을 적부터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이라고 누누이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기회를 만들어 읽어 보려고 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민족의 희망이셨던 김구 선생님에 대해 고작 10퍼센트 정도 밖에 알지 못한채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백범일지”에서 백범이 김구 선생님의 호 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지”의 한자가 하루하루의 일을 기록한다는 뜻의 일지(日誌)가 아니고 세속(世俗)을 초월(超越)한 뜻의 일지(逸志)라는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백범김구 선생은 병자년(1876년) 7월11일 자시에 안동김씨 김자점의 반계후손으로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아명은 창암이라 한다. 김구선생은 알에서 태어난다는 등의 다른 위인들처럼 그리 특이한 출생과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백범김구 선생의 조상인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려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어 고향에 망명하여 멸문지화를 피하기 위해 상놈 행세를 하며 지냈는데, 나는 백범김구 선생이 이렇게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한 것을 보고 이 백범일지는 한 치의 속임 없이 썼겠구나 하는 그럼 신뢰감을 가지고 책을 한장 한장 읽어나갔다.백범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은 사내 아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랬을 듯이 개구쟁이였다. 헌 숟갈이라야 엿을 주는 줄 알고 성한 숟가락을 것들은 글을 잘 공부하여 큰 선비가 되면 과거에 급제하여 된다는 것을 듣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졌다. 하지만 선생의 아버지는 양반네 서당에서 백범김구 선생을 받아 줄지도 의문이였고 설사 받아 주어도 양반 자식들에게 멸시 당할까봐 주저하셨다. 그래서 동네 상놈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글공부를 하게 하셨는데, 백범김구 선생의 글공부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오래 글공부를 배우지는 못했다.어느 날 백범김구 선생을 가르치던 정 선생이 과거에 백범김구 선생을 데리고 가는 일이 있었는데 낙방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돈만 많으면 과거도 할 수 있고 벼슬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심혈을 바쳐 장래를 개척하려고 공부를 하던 백범 김구 선생은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그 뒤 김구 선생은 거울을 보며 부위와 명칭을 자신의 상으로부터 다른 이의 상에 적용하여 보는《상서》를 공부했는데 자신의 상이 귀격이거나 부격이라고 할 만한 좋은 상은 한 군데도 없는 것을 보고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한다.《상서》중에 있는 구절 중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가 있는데, 이 구절을 보고 김구 선생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세상에 남자로 태어나서 부귀영화를 누려보고 싶은 마음은 나 역시 가지고 있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 거의 모두 가지고 있다. 이 구절을 읽고 나도 얼굴이나 몸보다는 얼굴이나 몸등 모든 것을 다 지배할 수 있는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김구 선생의 청소년 시절은 우리와는 조금 달랐다. 가문이 패망하여 상놈의 대우를 받고 자란 김구 선생은 만민이 평등하다(人乃天)는 동학의 사상이 선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19세에 팔봉접주가 되어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왜놈과 '척양척왜"를 부르짖으며 싸웠다.19세란 나이 때 나는 수능이라는 시험아래서 부모님에게 보호받고 있었을 때에 김구 선생은 수백 명에 달하는 신자를 데리고 있는 포주였다는 사실은 김구 선생의 큰받을만한 사람을 소문으로 듣고 찾아가 보았으나 마땅한 사람이 아니었다.병신년(1896) 2월 하순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놈을 칼로 난도질해 죽였다. 만약 나였다면 우리 국모를 죽였다며 속으로는 매우 원통해 했겠지만 막상 이렇게 원수를 갚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을 보아도 김구 선생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신년 5월 11일 왜놈을 칼로 죽인 이유로 김구 선생은 압송되어 인천 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인천 옥에서 신문을 당할 때 김구 선생은 오히려 왜놈 순사를 꾸짖었다. 그리고 그 뒤 다른 여러 명의 관리가 신문을 하러 들어왔지만 오히려 책망하고 이 이야기의 소문을 듣고 인천 옥에 면회 오는 사람의 수가 매일 같이 늘었다.김구 선생의 옥중 생활 중 첫 번째는 독서였다. 옥에서 여러 책들을 읽으며 서양 근대문물을 접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교육이었는데 징역수 중 열 가운데 아홉이 문맹인 것을 알고 열심히 교육하였다. 그러던 중 김구 선생은 교수형에 처한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다행히 김구 선생은 대 군주 폐하께서 사형을 정지하라고 해주셨다. 그리고 난 뒤 김구 선생은 왜놈들과 같은 죄인에게 죄인이 되어서는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을 자격이 없고 죽을 때까지 부끄러울 것 같아 탈옥을 하였다. 탈옥을 한 뒤 부모님께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서 이때부터 방랑을 하게 되었다. 김구 선생이 방랑생활을 할 때 인천 옥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의 집을 찾아 머물기도 하였다.그러던 중 공주 마곡사에 입사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의 승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풍진 세상과의 인연을 다 끊지 못했는데 인천 감옥에서 떠난 후 소식을 모르는 부모님을 뵙고 싶고 자신을 인천 감옥에서 꺼내주기 위해 집과 몸을 모두 바친 김주경이라는 사람과 고능선 선생과 안진사를 매우 만나고 싶어 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간으로 나와 부모님을 모시고 해주 본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김구 선생의 아버지가 병세가 위중하시자 김구 선생은 자신의 허벅지에서 살 한 점을 떼어내어 고기는 이 들었다. 그러나 선생의 아버지는 끝내 병이 위중하셔 돌아가셨다.장련에서 돌아와 교육과 종교에 종사하고 있던 김구 선생에게 군수 윤구영이 초청을 했는데 해주로 뽕나무 묘목을 내려 보내기 위해 묘목을 가져오는 일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민생사업과 관계된 무척 중요한 일이라 승낙을 한 김구 선생은 이 일을 제대로 성사 시킨 후 여비 계산을 한 뒤 남은 금액을 돌려주었는데, 여기서 나는 김구 선생의 청렴함에 또 한 번 경탄하였다. 짚신 한 켤레에 얼마, 냉면 한 그릇에 얼마, 떡 한 그릇에 얼마 등등 이렇게 세세한 내용까지 정확히 기록하였는데 정창극의 말에 의하면 다른 사람이었다면 최소한 몇 백 냥은 더 청구 했을 것이라 했다.1904년 당시 18세인 최준례와 김구 선생은 혼인을 한다. 이때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김구 선생은 이를 반대하며 나섰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 반대하며 모였던 동지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애국사상을 고취하고 신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김구 선생이 교육에 매진하던 중 고향에 갔는데 예전에 그처럼 교만하던 양반들이 김구 선생에게 경대도 아니고 하대도 아닌 말로 대했는데 그것이 나라가 죽게 되어 세력이 부쳐서 그런 것이라 생각이 든 김구 선생은 자신이 더 학대를 받아도 나라만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어릴 적 상놈대우를 받으며 마음아파 자랐지만 자신이 그 양반들에게 또 상놈의 대우를 받을지라도 나라가 살아나길 바라는 김구 선생의 애국심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나라를 되찾기 위해 김구 선생은 끊임없이 노력하셨는데, 그 중 정치적 비밀결사로 조직된 신민회가 있다. 하지만 활동을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많은 지사들이 잡혀가게 되었는데, 김구 선생도 잡혀 들어가서 다른 지사들과 말도 안 되는 죄명으로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된다.경시총감부에서 신문을 받을 때 와타나베 라는 일본인을 17년 후 다시 마주 앉았는데 김구 선생이 17년 전 김창수 인 것도 모르고 선생의 가슴에 X선을 붙여서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김구 선생은 매우 기뻤다. 그리고 김구 선생은 죽더라도 뭉우리돌의 정신을 품고 죽고 살더라고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고 말리라는 생각을 깊이 새겼다. 김구 선생을 논밭에서 농사를 짓는데 방해를 하는 뭉우리돌이라는 존재처럼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걸 막는 뭉우리돌 같은 존재라고 받아들이는걸 보고 그만큼 김구 선생이 우리나라 해방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서대문 감옥에서 의병 신사등 을 만났는데 특히 활빈당 간부 김진사에게서 비밀결사의 요령을 듣고 국사를 위하여 가장 원대한 계획을 품고 비밀결사로 일어난 신민회 회원의 한 사람인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그리고 조직과 훈련이 아주 유치한 것을 깨닫고 자괴를 금할 수 없었다.메이지의 사망으로 김구 선생은 8년이 감형되었다. 그리고 남은 형기가 2년이 되었을 때 세상에 나가 활동할 신념이 마음에 깃들기 시작했는데, 성결한 정신을 품은 결심의 표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구(九)라는 이름과 백범(白帆)이라는 호를 동지들에게 공포하였다.1915년 김구 선생은 가출옥으로 방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홍량과 용진, 용정에게 농촌생활을 의뢰하였는데 소작인들의 인품이 극히 험하고 풍토가 나쁜 동산평을 요구하였다. 동산평 농장의 농감이 되어 소작인 준수규칙을 정하고 동네에 소학교를 세워 소작인들을 계몽하였다. 아무도 감히 청하지 못했던 동산평을 소작인들을 계몽함으로써 도박도 없애고 사람들의 예전 악습을 없앤 김구 선생의 사람들을 다스리는 능력은 매우 놀라웠다.무오년 11월에 김구 선생의 아들 인이가 태어났다. 안악에서 출발하여 평양 신의주 안동을 거쳐 상해로 망명하여 김구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이 되었다. 상해에서 이동휘의 공산주의 운동의 권유를 받았으나 한민족의 독자성인 독립운동을 하기위해 거절하였다.김구 선생이 활동을 하는 동안 김구 선생을 따르는 많은 독립투사들이 모여 자신의 목숨과 정신을 김구 선생과 함께 나라에 바쳤다. 그 중 이봉창 의사는 동경에서 일왕 있었다.
여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세트장과 다르지 않은 이 프로그램은 생중계로 방송하며 살인사건의 진황을 파악해 갈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하철 ,건물 내 심지어는 거리의 전광판에서까지 방영되며 70%에 이르는 시청률에 육박한다. 타인의 사생활, 그것도 살인 사건이라면 더욱 흥미로움을 느끼는 인간의 심리는 이 프로그램의 리얼리티에 쉽게 반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영화를 보러 온 관객임과 동시에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가 되게끔 만들어준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범죄 없는 사회 만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허울 좋은 '살인사건의 수사 생중계'가 공중파를 타고 실황 중계되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간단하다.5월20일 밤 11시40분, 호텔 1207호에서 미모의 카피라이터 정유정이 아홉 군데 칼에 찔린 채 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그런 다음 검사 최연기 (차승원)가 등장한다. 현장에서 용의자 김영훈 (신하균)이 잡히고, 그에 대한 취조에 들어간다. 그걸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48시간 생방송 중계를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이 방송의 취지는 범죄 예방이다. 하지만 범인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 수사를 하고 있는 검사에게 PD는 굿을 하여서 범인을 잡자는 제안을 한다. 이유인즉 가장 시청률이 높은 지금 사람들이 굿을 함으로써 범인을 잡는다면 더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시청률이 높아 질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 영화는 우리가 개인의 인권문제와 미디어매체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끔 해준다. 한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애도하기 보다는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 할 뿐이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이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이런 미디어 매체와 관련된 영화로 ‘트루먼 쇼’가 있다. 이 영화는 거대한 세트장을 만들어 트루먼이라는 주인공이 성장하고 살아가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이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은 자신이 시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PD는 이렇게 말을 한다. 트루먼은 아무 걱정 없는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행복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신의 부인까지도 거짓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현실이 과연 유토피아 일까? 트루먼의 가족을 알고 가족과 함께 살아 갈수 있는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죽었다고 한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카피라이터 정유정과 범인이라는 이유 하에 용의자로써 심문을 받는 모습을 전국 곳곳에 보이게 되는 김영훈의 인권을 무시 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은 그 세트장 밖으로 탈출 하게 된다. 이 주인공을 지켜보고 주인공이 슬퍼할 때는 함께 울고 즐거워 할 때는 함께 웃던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세트 밖으로 탈출하자 이런 대사를 던진다. ‘어 벌써 끝나버렸네, 다른 재미있는 프로그램 안하는지 한번 틀어봐’ 한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미디어라는 굴레에 가둬서 자신들의 재미를 즐기고 트루먼이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이야기 하던 것도 그 순간 뿐 이었던 것이다. 트루먼이 세트장 밖으로 나가버리자 바로 뒤 돌아 서 버리는 것을 보고, 미디어 매체의 순간성을 알게 해 준다. 이것은 ‘박수칠 때 떠나라’ 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살인사건이라는 거대한 타이틀 아래 많은 관심을 쏟고 범인이 누군가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시청자들은 정유정이란 한 사람에 대한 애도보다 다른 재미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정유정이라는 존재는 잊게 될 것 이다.이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보자. 아쉽게도 ‘박수칠 때 떠나라’ 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상당하다. 영화는 이러한 부분을 교묘히 빠져나와 관객을 속이고 있다. 현실적인 부분은 이성으로 판타지 부분은 감성으로써 말이다.우리가 이 영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오프닝 부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여성의 시체가 호텔방에서 발견된 살인사건이라는 것과 용의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검거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남자는 김영훈이고 최 검사에 의해 심문을 받게 된다. 이 부분까지는 프로그램에 의해 설명되며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 후 김영훈은 정유정의 동생으로 밝혀진다. 이 부분은 검사의 유도 질문으로 알게 되지만 현실적으로 용의자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 없이 신문을 하는 무능력한 검사라는 이미지를 주게 된다. 그리고 정유정을 사랑하여 원래는 여자였지만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과거사는 잠깐의 설명으로만 나올 뿐 왜 정하연이 김영훈이 되었는지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심어주지 않는다.타 영화에서 나오는 플래쉬 백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정하연에 대한 궁금증만 커져갈 뿐이다.그리고 영화 중간부분 윤 반장의 입을 통해 이 살인사건의 프로그램 문제점을 직접 말해버린다. 그리고는 영화는 더 이상 최 검사와 김영훈의 싸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영화 초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렇게 맥없이 끊어져버린다. 이로써, 주연 급의 김영훈은 첫 번째 살인 용의자라는 조연이 되어버리고 그 이후 관객과 함께 프로그램의 쇼를 보는 시청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그리고 가장 이상한 점은 이 영화에서 검사가 피의자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건을 해결할 담당검사는 어떤 사건을 맡을 때 시체확인과 동시에 법의학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 부분을 완벽히 배제하고 들어간다. 배제된 사실로 영화는 관객들에게 반전의 쾌락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