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2 감상문주체로서의 인간과 자연의 교감-서정주의 「상리과원」을 읽고-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와도 같은 융융(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둥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꿈치에까지도 이쁜 꽃숭어리들을 달았다. 멧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새끼들이 조석(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 만 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고치고 마짓굿 울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當然)한 일이다.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묻혀서 누워 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워서, 때로 가냘프게도 떨어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 위에 받아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山)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 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 속에 이것들이 잦아들어 돌아오는 아스라한 침잠(沈潛)이나 지킬 것인가.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저것들을 축복(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 귀소(完全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鐘)소리를 들릴 일이다.-「상리과원」(『현대공론』, 1954.11)「상리과원」은 서정주가 1954년에 발표한 시로, 그 시기로 보아 6.25전쟁 직후에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산문시로 드러난 시적 운율은 없지만, 과수원의 만개한 꽃들의 시적 비유와 풍부한 어휘력, 적절한 방언의 활용으로 표현되어 있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6.25전쟁의 직후에 쓰여진 시라고 보기에는 전쟁의 공포나 두려움은 전혀 느낄수 없다. 오히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상리과원의 꽃밭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온갖 미사어구를 동원해 비유하고 있는 이 꽃을 통해 시인은 자연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그저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자연이 아니라, 영원성을 가진 보편적인 자연의 가치에 현실을 극복하는 성찰의 장소, 인간이 구원되는 장소로서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이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그 자연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있다. 자세히 보면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에서는 꽃밭을 조카딸년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으로 비유하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當然)한 일이다.]부분에서는 배나무와 새, 꿀벌을 마치 인간인양 표현하고 있다. 또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려면 ~ 아스라한 침잠(沈潛)이나 지킬 것인가.]의 처음 부분인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하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꽃밭, 즉 통합된 자연을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이고 함께 해야 하는가에 대해 묻고 있다. 즉 현실에 존재하는 자연과, 그 자연과 공존하고 있는 인간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교감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은 결국 합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자연과의 완전한 동화를 시도하다가 여기에 와서 결국 자연과 인간을 별개로 두고 있는 것은 당시 시대적 불안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여전히 슬픔과 두려움이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묻고 있는 듯한 어투는 자연이 어떠한 치유, 정화 능력을 가지고 인간을 지켜줄 것인가 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인간이 현실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순응적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현실 회피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순수함의 결정체인 꽃봉오리에는 슬픔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이러한 자연과 같이 살아가는 우리 ‘어린것들’에게 굳이 설움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혼란한 시대상황을 생각해 볼 때 속세의 고민을 해탈하고, 보이고 느껴지는 그대로의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 귀소(完全歸巢)가 끝난 뒤 ~ 제일 오래인 종(鐘)소리를 들릴 일이다.] 여기에서도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이라고 하며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현실 인식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일 가까운 곳의 별’과 ‘제일 오래된 종소리’로 표현되는 현실 극복의 힘은 ‘어린것들’에게는 자연처럼 밝고 생동감 있는 미래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후손들이 사는 미래에는 자신들이 겪은 현실의 불안과 공포가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현대문학사1염상섭,「만세전」을 읽고전체적으로 우울하고 허무한 인상을 받았다. 식민지 시대의 우울한 현실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주인공인 ‘나’가 현실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오히려 무언가 그 현실에 대해 대안을 내놓고, 행동하려했다면 완성도가 떨어졌을 것 같다.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 전개와 사실적인 표현이 더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만세전」을 읽으면서 조금 거부감이 들었던 점은 일본어를 한국어화 하려고한 점이다. 경도, 대판, 신호, 하관 등으로 한국어식 한자 발음으로 표기하여 마치 한국지명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차라리 교토, 오사카, 고베, 시모노세키라고 쓰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그리고 ‘정자’ 또한 처음에는 한국여자라고 생각했다. 일본어 발음을 살려서 쓰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같은 인물이라도 ‘정자’의 이름을 가진 여자와, ‘시즈코’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느껴지는 분위기나 감각이 다르다.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상황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만 주인공 ‘나’(이인화)에 많은 공감을 했다. ‘나’는 고국의 부인이 위독하다는 통보를 받고도,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미적거린다. 카페 여급인 정자를 만나서 선물을 주고, 또 신호에 있는 을라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고국으로 와서 부인이 죽자마자 일본으로 돌아갈 궁리만을 한다. 현실을 소극적으로 비판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의 상황에 분노하지만 대항하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선진, 근대화된 것에 동경하여 일본의 존재를 원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나와 조금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현대의 입장에서 보면 그 상황에 놓인 입장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지만, 나는 어떠한 공통점을 느꼈다. ‘나’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던가, 귀국한 뒤 한국의 암담한 상황을 보고 속으로만 울분을 토하는 장면에서, 일년간 일본의 대학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류로 인해 상황이 많이 좋아졌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은연중에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게 옷차림이나, 억양에 있어서 많이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 원인이 모두 무시받기 싫기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또 한번은 아시아에서 한창 논란이 되었던 야스쿠니 신사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꽤 나이를 먹은듯한 일본인들이 “한국이 식민지로 남아있어야 했다”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물론 속으로 울분을 삼켜야 했지만, 그 곳을 나오고 나서 잠시 동안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그렇게 흥분했던 것을 잊었었다.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물론 중요하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몸을 일으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시민으로, 부끄럽지만 내가 있고 조국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단 일년간이었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내 머릿속 때문에 한국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고 또 슬펐다. 어떻게든 일본으로 다시 갈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하고 눈을 굴렸던 지난 일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현실도피 인 줄은 잘 알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나’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현대문학사1 감상문쓰기김유정, 「땡볕」,「소낙비」를 읽고두 작품 모두 유랑농민의 비참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의 비극적인 농촌 현실에서 떠도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김유정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동백꽃」이나 「봄봄」과 같이 따뜻하고 희극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희극적이지만 절망적이고 비극적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다.「땡볕」의 덕순이는 농촌에서 서울로 올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주자로 설정되어 있다. 세상물정에 어둡고, 무지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는 돈을 받으면서 아내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돌아오는 길은 절망과 깊은 한숨만이 함께 할 뿐이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더운 땡볕은 식민지 시대 하에 놓인 하층민들의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빈곤한 생활을 좀 개선하여 볼까 하여 서울로 상경했지만,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그들이 하층민인 것은 바뀌지 않는다. 이 작품은 가난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비통한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등장인물을 ‘죽음’이라는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면서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소낙비」의 현실도 「땡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낙비」의 배경은 농촌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도시(서울)로 가는 것을 그래도 희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내용면에서 가난한 농촌 하층민의 삶, 빈부격차, 정조에 관련한 윤리적 문제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춘호와 그 아내는 일을 해 볼 심상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만, 빚만 늘어날 뿐 생활을 나아지지 않는다. 가난을 타파하기 위한 마지막 출구로서 노름을 택하고, 아내에게 돈을 요구한다. 춘호의 매를 두려워한 아내는 자신의 정조를 2원에 팔기로 한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윤리적인 죄의식은 전혀 없다. 춘호도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아내의 매춘을 조장한다.「땡볕」의 부부는 정이 많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가엾이 여긴다. 땡볕아래 지게로 한몸이 되어 흘리는 질퍽한 땀처럼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소낙비」에서는 비정상적인 부부의 관계를 보여준다. 마치 매춘부와 포주의 관계마냥 매로 위협해 아내를 매춘의 현장으로 내몬다. 그 목적이란 것도 굶어 죽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다던가 하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노름의 밑천으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서울로 간다 해도, 예쁘게 꾸며서 주인집의 안잠을 잘 자주면 집까지 얻어 갖는 수가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남편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제목에서 보듯이 「땡볕」은 한낮의 땡볕 아래에서 일어난 일이고, 「소낙비」의 사건은 천둥이 치고 날이 점점 침침하여지는, 소낙비가 내리는 날에 일어난다. 이것은 부부간의 관계를 암시하는 한편, 괴롭고 힘든 현실을 나타내는 배경적 장치로서 작용한다. 이 더위가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또는 소낙비처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시련에 대한 긴장된 두려움이 느껴진다.
현대문학사1 감상문쓰기강경애, 「원고료 이백원」을 읽고식민지 시대 하에서 궁핍하고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이주민, 노동자, 사회운동가 등이 받는 핍박과 어려움을 이야기 한다. 앞으로의 지식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강력히 주장하는 부분이 있는데, 개인의 사사로운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첫 부분에서 화자는 어린시절 학교에서 느꼈던 열등감을 이야기한다. 가난한 기숙사생이었던 시절의 일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빈부 격차의 문제가 나타나 있다. 화자도 겨우겨우 학교를 나온 것이니, 이보다 더 못한 상황에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살던 이가 많았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그리고 근대의 상징의 하나인 ‘모던걸’을 허영적 소비의 주체로 보고 있다. 돈 이백원에 잠시나마 허영을 품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책에서 말하는 ‘모던걸’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즉,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는 세태를 비판하고 반성하며, 정신적인 가치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깨닫고 있다.화자는 글을 쓰는 지식인 여성으로, 그녀의 남편 또한 지식인으로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남편의 하는 말은 옳고, 비판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남성의 폭력과 훈계에 의해 여성이 올바른 가치를 찾아내고 있는 전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화자가 여성이고, 화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대도 여성이다. 그러나 물질주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민중과 동지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며 나아가 사회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먹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남성이다.화자는 남편에 의해 집에서 쫓겨났을 때 고향으로 가도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서울로 가서 신문사나 잡지사에 취직을 해도 종래의 염문만 뿌린 여기자들과 자신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고, 동경으로 공부를 하러 가도 타락할 뿐이다 하고 생각한다. 결국 지아비에게 속해있을 수 밖에 없는 가부장 사회의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문학사1 감상문쓰기「감자」「감자」의 주인공 복녀의 인생은 참으로 기구하다. 이름이 ‘복녀’인 것이 민망할 정도이다. 처음에는 도덕적인 편에 속했던 인물이 점점 타락해가고 결국엔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되는 전개가 무척 비참하게 다가왔다. 복녀가 이러한 결말을 맞게 된 것은 사회의 탓일까, 개인의 도덕성의 문제일 뿐일까.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지는 못할 것 같다. 오히려 살기위해서 그러한 방법-몸을 판 돈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을 택했고, 어차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면, 오히려 죄의식 따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배우지 못하고 계몽되지 못해서 사회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주위에 그러한 지식인이나, 혁명가도 없었다. 스스로 각성하여 지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기에는 현실 자체가 너무나 혹독했다. 결국 복녀는 죽음이라는 끝을 보게 된다. 그러나 죽음이 그러한 현실을 타파하는 출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한 여자의 생은 결국 이렇게 비참해진다고 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그 시대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따라서 복녀의 삶은 그렇게 불행했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당대의 삶의 현실을 고려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도덕적이지 않지만, 비난만 할 수는 없다.「배따라기」뱃사람의 기구한 사연이 배따라기의 선율에 ‘한’으로서 더해져, 슬프지만 무언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뱃사람의 고향인 영유의 아름다움, 부인의 아름다움, 배따라기의 아름다움 등 모두 아름답지만 허무하고, 또 슬픔이 느껴진다.만약 ‘나’가 배따라기를 불고 있는 뱃사람의 동생과 만났고, 그로부터 그들의 이십년전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떠했을까. 뱃사람(형)이 아무리 반성하고 죄를 뉘우쳐 동생을 이십년간 찾아다닌다고 한들, 그에 대해 정말 나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형 자신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고, 또 그의 배따라기 선율이 너무나 슬프도록 고와서 그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로 예술의 아름다움은 대단히 큰 힘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