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ianHermann Hesse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서 끊임없이 말하고자 하는바는 바로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에 대하여 집중하라' 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라는 주인공이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인도하는 자로 싱클레어가 자기의 세계를 깨는데 영향을 준 인물이다.헤르만 헤세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라도 작가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 같다. 혹은 데미안이라는 책에 대해서 더 유명할지 모르겠다. 데미안이라는 작품은 학생이나 청년들이 그들의 자아를 발견하고 성숙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귀 기울이라고 조심스럽고도 처절하게 외치고 있는 듯 보여진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내게는 내 이야기가, 어떤 작가에게든 그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첫번째 장인 두 세계를 읽으면서 이 작품은 흥미진진한 유년시절 이야기로 시작하여 자기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유쾌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유쾌함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책을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읽을 준비가 좀 덜 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기대감을 갖는 책이 있고 그렇지 않는 책이 있다. 전자는 익히 들어온 책들. 고전이나 양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일 것이다. 대부분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감이 오기 때문에 대략 그럴것이다라는 기대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아무래도 처음 보는 책을 집어 들었을때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로 결심 했을 때이다. 이 작품은 전자로 내용을 거의 다 안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데미안을 읽기 전 사실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허클베리핀의 모험같은 좀 더 발랄한 이야기 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고 첫 시작은 어느정도 그러했다. 나쁜친구 크로머가 등장하고 주인공 싱클레어는 그 친구의 손아귀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또 데미안이라는 친구가 등장하여 그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조금씩 조금씩 주인공 싱클레어를 깨우기 시작한다. 처음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나쁜 친구로부터 구제해 주는 내용은 크게 흥미롭진 않았지만 앞으로 데미안을 통해 싱클레어가 성장하리라는 믿음을 주는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장이 진행될 수록 자기 내면의 이야기가 추상적으로 그려지고 기대함과 다르게 진지한 내용으로 진행됨으로 가볍게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프도록 진지하게 성장해 가는 싱클레어를 마주하게 되었다.에밀 싱클레어의 유년시절은 도덕, 부모님, 종교 안의 따뜻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나는 기독교 집안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라왔다. 주인공 싱클레어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의 모습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 이유는 바로 여기서 온다. 그러나 꼭 기독교인이나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살아왔던 유년시절의 어떤 관념이나 가정환경이 한 개인 개인을 각기 다른 내용의 억압속으로 몰고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싱클레어와 마찬가지로 유년시절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세계는 종교라는 세계안에서 이루어졌다. 부모님과 누나들 사이에서의 안정감. 외부에서의 어떤 악함과는 다른 생활을 선 그으며 살게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다. 모든 생각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이 이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의 한계를 결정짓고 사는 싱클레어는 그 세상을 깨는 메세지를 전하는 데미안과 만나고 이야기 하게 되면서 자기의 세계를 조금씩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데미안과 나누는 첫 마디에서 자기의 세계를 깨지는 못한다. 충격과 놀라움으로 데미안이 던져준 메세지를 생각해보지만 이내 그것을 옳지 않다고 덮어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이 주시는 안정이 익숙하기 때문이었다.나 역시 종교적으로 굉장히 좁은 시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데미안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싱클레어가 데미안과 만나 놀라움과 충격에 휩싸인 일이 나에게도 똑같이 일어난 경험이있다. 나는 싱클레어보다 훨씬 어른이 되어서 그런 일을 겪어서 인지 더 거부 반응이 심했고 나의 사상과 세계를 흔드는 데미안과 같은 존재와 싸우기 까지 했다. 하지만 그 세계는 내안에서 금이 갔고 조금씩 조금씩 다른 세계를 깨닫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과정을 싱클레어는 괴로운 모습으로 깨쳐나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내 경우 새로운 세계는 내 안에서 조금씩 열려졌으며 금이 간 그 틈으로 세어나오는 찬란한 빛은 내손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이었다. 나는 그 빛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순간 세계는 깨졌다. 인간이 우주를 발견하고 은하계를 발견한것 만큼 놀라운 일이 내 안에서 조용하고 찬란하게 일어났다. 그 일은 평생의 신념을 깨는 일이었고 스스로 죄악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지독하게 가슴이 떨렸다.
현대 사회에서 효의 중요성과 효 교육의 필요성을 쓰시오.한국은 동방에 있는 예의지국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효라는 것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효는 정신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가장 처음 접하는 사회는 바로 가정이다.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며 완성된다. 물론 신체와 정신 모두 그 안에서 골고루 성장해 나가야 더 넓은 세상에서도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본이 되는 곳 즉 가정이라는 곳에서 몸이 자라듯이 정신도 자라난다. 이는 바로 부모가 어떤 기준에 맞춰서 아이를 가르치고 키워낸다는 것이다. 그럼 바로 그 기준이라는 것은 어디서 시작하는 것일까? 부모가 존댓말을 가르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며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께 감사함을 표시하라고 배웠다. 이런 일들은 한마디로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바로 효라는 것! 그것으로 설명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언어를 일차적으로 가르치게 된다. 한국어는 영어와 다르게 높임말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어렸을 때 부터 부모에게 높임말을 하면서 언어를 시작한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효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 할 수 있을까?어린시절 겪는 일들은 아이의 인성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 가정의 화목은 아이에게 올바른 인성교육이 될 것이지만, 가정에서의 불화는 아이의 성장에 옳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잘못된 언행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특히 어린시절의 가정교육은 올바른 사회인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이다. 효는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뿐 아니라 부부간의 사랑, 자기 자식을 잘 돌보는 것, 나라와 자연을 사랑하는 것 등을 포괄하고 있다.우리는 모두가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다. 싸우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보다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모를 괴롭히는 경우까지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가정에서만 이루어지는 효 교육을 만족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교육이 없이 한글을 배우는 것보다 하나하나 가르침을 받으면 더 쉽게 기억된다. 선생님 없이 수학공식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많은 시간을 이해함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공식이해를 빠르게 도와준다면 더 빨리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한마디로 효율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하물며 한글, 수학과목도 선생님께서 직접 교육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성을 어떻게 가정에서의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효 교육은 필요하다. 효도 크면서 자연히 깨달아 질 수도 있지만, 교육을 통한 효는 배우는 이들에게 정확한 개념으로 자리잡힐 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에게까지 더 올바른 효교육이 이어 질 것이다. 무엇이 옳다고 말하기 전에 또 그 무엇을 똑바로 인식하기 전에 이미 지나쳐 버린 것이 너무 많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서 빨리 우리의 희미한 정신관념들을 좀 더 뚜렷하게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파일럿피쉬를 읽고오사키요시오기억이라는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있는 옛날의 기억들. 나는 특별하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닌데 사람과의 추억들은 잊어버릴 수가 없다. 무엇을 할때 제일 먼저 옛 추억이 내 머리를 때리고 그 후에야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내 기억력을 가끔 증오스럽다고 생각할때 마저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옛추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또한번 찾게 되었다. 주인공은 나만큼 추억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은 아니였지만 나보다 훨씬 능숙하게 대처해 나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마음가짐때문이 아니였나 싶다. 나는 확실히 내 길은 스스로 찾지만 그 길목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리저리 헤매는 방향치이지만 그 길목에서 누군가를 심하게 의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주인공과 나 우리둘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기억하고 있지 않은지는 묻지 않아도 된다.책에서는 파일럿피쉬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이끌어간다. 파일럿 피쉬라는 것은 물고기를 키울때 수조속에서 건강한 박테리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값싼 물고기들이다. 그들 물고기들은 좋지 못한 수조속의 물을 살기좋은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로한다. 그들이 없으면 수조안의 예쁜 물고기도 값비싼 물고기도 소용이 없다. 인간세계에서도 파일럿피쉬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떠난 이들...내게도 수없이 많은 파일럿피쉬들이 곁에 살았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파일럿피쉬가 되어 희생되고 있을 것이고. 물고기의 세계처럼 파일럿피쉬와 값비싼 물고기들이 분간되어 있진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이기심 때문인지 자꾸 내가 누군가의 파일럿피쉬인가에 집중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내 주위의 파일럿피쉬같은 존재들이 확실히 있음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리라. 아무튼 나는 이런 저런 파일럿 피쉬에 대한 생각들을 해보면서 누구하나도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게는 두가지만 머릿속에 남는다. 기억과 파일럿피쉬. 기억을 떠올리면 아련함이 느껴지고, 파일럿피쉬를 떠올리면 따뜻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 대상에 크게 좌우되는 듯 하다. 기억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들이고 파일럿피쉬는 내 주위 고마운 은인이라던가 없으면 안되는 관계들이다.나는 절대로 열어서는 안되는 마음속의 상자를 아주 가끔 열어보곤 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내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해 몇일을 앓을 때도 있다. 아예 열어보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자꾸 희미해져 아름답게만 보여, 마음속의 상자를 건드린다. 그러다가 열어보곤 이내 깊은 곳까지 펴보지도 못한채 괴로움에 그 상자를 닫아버리곤 마음까지 닫아 버리고 만다. 나는 지금까지 몇번을 그렇게 상자를 열어보았다. 한가지 확실한건 점차 열어보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열었을때의 파동도 점차 그 세기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당못할 심한 파동은 여전하다. 지금은 그 상자가 내 마음속에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자리하고 말았다. 억지로 기억들을 넣어두었던 상자가 이제는 내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그 상자가 없으면 나라는 사람이 아닐 것이고 그 상자를 열어보지만 않는다면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나와 함께할 또다른 내가 된다는것. 이제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참 이상하다. 그렇게 아프고 그 상자를 지울 수만 있다면 하고 늘 기도했었는데 지금은 그 상자가 없으면 내가 아닌게 되어버릴 것 같으니 말이다. 난 이런식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얌! 고객에 미쳐라책을 받아들고 붉은색 표지에 얌! 이라는 한글자가 빨리 책장을 열어 자기가 누구인지 봐달라고 손짓하는 듯 했다. 얌이라는 단어가 계속 궁굼증을 자아내게 했고 그 단어에 대해 빨리 해답을 찾고 싶었다. 이런 관심이 쏠리는 단어를 앞에 두었다는 것은 중요한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얌은 이 책의 중요한 키 포인트였고 이제부터 얌이 뜻하는 바를 설명하겠다. 얌(YUM)은 You Understand Me의 약자이다. "당신은 저를 이해하시는 군요!"라고 해석한다. 이는 회사의 이름이다. KFC, 피자헛등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음식회사의 모회사 이름이 얌이란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자헛,KFC,타코벨, 롱존실버스,A&W올아메리칸푸드가 바로 얌이라는 이름의 회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유명한 기업이라면 뭔가 대단한 이름을 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한 단어는 고객과 직원 리더자(코치)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단어임에 가장 적합한 이름이 아닐까 싶다.경제,경영에 대해 지식이 거의 없는 나같은 사람은 회사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떠한 원리로 돌아가는지 그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는 싶지만 관련서적을 볼때마다 좌절을 할 뿐이였다. 얼마전 경제/경영에 대해 유명한 베스트 셀러를 많은 이들에게 추천받았다. 그렇지만 그 책을 읽고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이해한 책을 왜 나는 이해할 수 없는가 게다가 한장한장 넘기기도 왜이렇게 버거운가라는 생각을 안고 중간에 책장을 덮어야 했다. 나만 유난한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종류의 책은 정말 소설읽듯이 술술 읽혀지게 씌여질 수 없는 것인가하고 꼬집고 싶었다. 이 책도 그런 분류의 책이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얌!고객의 미쳐라’는 제목에서부터 좌절한 마음이 풀리고 내용에서 손쉬운 방법으로 회사경영이라는 것을 풀어나가고 있어 내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인재를 인재답게 쓰는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인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을 그 분야에서 자신감 넘치는 인재로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의 포인트를 그렇게 잡았다. 인재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고의 인재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올바르게 코칭하면 고객감동은 당연한 답이 될 것이다. 이에 이 책에서는 그 코칭의 방법을 설명해준다.우선 이 책의 분류는 간단하다. 얌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그 회사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 원칙4가지, 고객 마니아가 된 얌. 3개의 분류로 나뉘어서 이야기 되는 이 책은 경영 리더자(코치)들보다 직원들에게 더 긴장할 것을 요구한다. 고객과 실제로 만나는 직원은 어저면 리더자들보다 더 막대한 임무를 실행하는 실행요원이다. 이에 경영자는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 먼저 취해야 할 것은 바로 직원을 사로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직원을 격려하고 더 높은 가치로 끌어 올리는 것은 리더자가 할 일이다. 그렇지만 리더자는 거기까지만 할 수 있고 직접 고객을 대하는 것은 직원이다. 이에 직원이 손님을 귀찮아하는 마음과 주인의식이 없다면 고객도 잃고 직원도 잃게 된다. 그럼으로 리더자는 먼저 직원을 열광하는 팬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우선은 적절한 사람을 뽑고, 그 뽑은 사람을 격려해주고 인정해준다. 그리고나서 그 성과를 코치해 주는 방법이다. 얌은 명목상의 우두머리보다는 가까이에서 실제로 다독여주는 코치처럼 직원들을 대하라고 일러주고 있다. 사실 직원모두가 주인의식으로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한다면 가장 좋은 회사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직원이 열광하게 되면 그것은 고객에게 속일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고객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직원들의 관심과 애착을 무시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고객은 주위사람들에게 그 회사의 이미지를 전달할 것이고 또한 그 고객은 다시 그 회사를 찾게 될 것이다.나는 1시간반정도 차를 타고 열심히 가야 먹을 수 있는 스파게티집을 알고 있다. 그 주위에는 별 달리 재밌게 놀만한 곳도 없고 아름다운 경치도 없다. 다만 스파게티가 맛있고 그 직원들이 나를 기억해 준다는 사실만으로 10분이면 다 먹어치울 스파게티를 먹으러 3시간을 운전한다. 그 스파게티집이 있는 주위에 무엇하나 간 김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맛을 못 잊어 친구들을 데리고 그곳엘 간다. 그 집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고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서비스와 맛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틈나는대로 그 집을 찾아가곤 한다. 물론 뭐하러 멀리까지 가서 먹느냐는 친구의 잔소리를 들으며 말이다. 여태까지 나는 그런 서비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집이 특별한 것이겠거니 했었는데 바로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고객이 열광하는 한 예가 아니겠는가. 사실 이제와서야 분석해 보건대 내가 열광하는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바로 나를 기억해주는 직원 때문이다. 그곳에서 직원은 4년동안 바뀌지 않았다. 요리사부터 홀서빙하는 아르바이트 생까지 말이다. 물론 중간에 아르바이트생이 종종 바뀌기는 했지만 계속봐오던 아르바이트 생이 있다는 건 놀랍다. 그 직원은 나를 기억한다. 나는 특별하게 생긴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메뉴를 주문한 적도 없고 다만 몇 번 왔을 뿐이다. 그 직원이 알아봐 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내게 관심을 갖고 있는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물농장을 읽고동물농장은 어렸을때도 읽어봤었던 기억이 난다. 만화로도 몇번 본것 같고, 그렇게 많이 접했던 것이지만 내용은 지금만큼 잘 알지 못했던것 같다.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돼지가 누굴 의미하는지 풍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것 같다. 어렸을때 봤던 동물농장은 이랬다. 사람이 아닌 동물들이 이끌어 가는 농장이라니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돼지들이 동물들 중에서 제일 똑똑한 동물이라는 데도 놀랐다. 그러면서 재밌을것이라고 기대했던 동물농장은 별 재미없이 끝나곤 했다. 끝이 전혀 생각이 안났던것으로 봐서 끝까지 읽지도 안았던것 같다.지금에 와서 동물농장을 다시금 읽어보게 되었다. 예전의 생각때문에 계속 읽지 않았던 책이지만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읽기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내가 생각했던 책내용이 아니였던 것이다. 너무 놀라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나는 동물농장이 무엇을 풍자해서 그린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만 우화에 지나지 않겠거니하면서 짐작했었던 터라 그 내용을 접했을때 너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말그대로 정말 기가막힌 풍자였다. 내가 놀라웠던건. 이 동물농장이 춘판되었을때 조지오웰이 어디 잡혀가지 않은게 참 다행스럽게 여겨지기까지했다.사실 책을 읽는동안 끝을 알 수 없었던 나는 계속 돼지가 정신을 차리고 많은 동물들을 위해 동물로 돌아가기를 바랬었다. 또 한편으로는 또다른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결국 동물들의 바램은 물거품이 되어 돼지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거래까지 하게 된다. 내용을 읽으며 내가 분개했던 부분이 바로 동물들의 무지함이였다.돼지가 말을 바꾸고 자기권력을 키워나갈때 동물들은 지식을 키워나갔어야 했다. 그래서 최소한 용기가 없다할지라도 무엇이 지금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물들은 기억력이 좋지 못해 자신들이 세우고 지지했던 7계명도 점차 까먹고 있었다. 또 자신들이 기억했던 진정한 영웅의 모습도 지도자가 한번 연설한번이면 극도로 나쁜 스파이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말을 바꾸며 무지한 동물들을에게 거짓사실을 알리며 자기네 편으로 만들었다. 돼지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쉬운 방법이였다.지도자가 둘이 있었고 지지하는 무리가 양쪽으로 비슷하게 나뉘어 있을때는 그 세력이 서로 견제하기 때문에 의견의 일치는 보기 힘들다 할지라도 최악의 상태까지 빠져버리진 않는다. 그러나 동물농장처럼 한세력이 다른 한 세력을 무력으로 몰아내버리면 민중들은 순간 겁을 먹게 된다. 그것도 잠시 민중들은 그런 사실조차 점점 잊어가고 끝내는 한 지도자만 영원했었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부분들이 조지오웰이 그렇게 밝히고자 했던 바로 배반된 혁명이다.혁명이라고 하면 이전 시대의 옳지 못한 지도자들을 물리치고 더 좋은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혁명에서도 지도자가 있다. 그 지도자들은 자주 초심을 잃고 권력과 명예와 부에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또 민중을 속이고 이전 지도자들이 밟아 왔던 그대로(물론 모양을 같지 않겠지만 그 뿌리는 비슷할 것이다.) 밟아 갈 것이다. 한가지 희망적인것은 나라는 사람 한명이라도 그런 부조리함을 깨닳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불합리한 시대가 돌아온다면 내 생명을 바칠 만큼 용기있게 대응하지는 못하겠지만 지식을 제공하는데 불편해 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지금 시대의 개개인들은 많은 지식과 정보속에서 너무 똑똑하다. 그렇지만 가끔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많은 정보들은 그대로 받아 들여 지난날의 기억을 쉽사리 잊어 버리게 되곤 한다. 그럴 수 밖에 없음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날의 아픔이였던 것은 그 전처를 밟지 않도록 최소한 기억은 해야 할 일이다.돼지들이 주장했던 지금은 예전보다 통계치로는 많이 나아졌다고 발표하는 것처럼. 이 시대는 동물농장보다 나아진것도 없고 더 어려워진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영원한 지도자는 없다는 것이다. 그 지도자가 현명하다 할지라도 주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지도자도 그 배후에는 악심을 품은 이가 없을 수가 없다. 그러니 아무리 우리가 지지하는 그 지도자가 배경이 좋고 성품도 좋다 할지라도 무지(無知)하게 따라다니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맥락이 다른 이야기 이지만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있는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마찰에 대해 잠깐 언급해야 겠다. 일본인들이 독도를 무시하고 해양을 개발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영역을 침범하고있다. 이런 적극적인 일이 벌어진것은 처음이지만 수년 전 부터 일본은 준비해 왔던 것이다. 독도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되지도 않는 말을 퍼뜨리는 것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는 그런 소식을 우리 한국인들은 접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