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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용의 자연시를 중심으로
    정지용의 자연시를 중심으로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러하듯이 시인 역시 시대에 따라 문학 전개가 변모하게 마련이다. 정지용 역시 그의 생애와 시대에 따라서 문학이 변모하게 되었다. 그의 문학 세계 변화를 보면 1925년까지는 민요시풍, 1926~1932년까지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 1933년~1935년의 가톨릭 신앙시, 1936(1935)~1945(1941)년의 자연시, 1945년 이후~1950년까지의 문학적 혼란기 시대로 나눌 수 있다.그 중에서도 자연시 시기의 그의 작품은 그 전 첫 시집에서의 ‘바다’의 제재에서 제 2시집 ‘백록담’ 시집에서의 산의 심상으로의 변모가 자기 모색과 침잠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1926년부터 1935년 시기의 시, 특히 바다의 시가 언어의 기교를 위주로 한다면, 1935년~1941년의 산의 시는 기교성 보다는 정신성이 강조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래서 이번에 이러한 그의 시적 변모와 자연시(산수시)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자연시, 특히 산수시대의 시기 작품들은 동양적인 관조의 세계를 드러내면서 고용하고 단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정지용의 시에서 산이나 자연은 단순한 공간 배경이 아니라 극기적 정신성을 함축한 대상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 시기의 작품은 여전히 묘사적인 기법을 구사하나 대상을 단순히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거기에 어떤 정신(이념)을 담으려 했고, 주로 산과 산에 관련된 소재를 주로 시로 썼다.그의 작품 중 ‘장수산 2’ 에서는 한편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데 이는 자연을 통해서 어떤 보편적인 이념을 담으려 했기 때문에 그의 이미지즘 계열 시 창작 기법과는 다르다. 지용의 자연시 들은 산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산에 귀착된다.정지용이 그의 자연시에 오로지 산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은 같은 자연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전에 쓴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서 주로 바다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과 대조해 주목받을 만하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우리 문학의 근대 의식에 있어서 바다가 대체로 서구적인 이미지로 등장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신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해에게서 소년에게’에 등장하는 바다가 그렇고 김기림, 이상 등의 모더니스트들이 제시한 바다들이 그러하다. 우리 신문학사에서 바다란 서양 근대 물질문명이 유입되는 통로로서의 바다, 여객선과 마도로스와 화물과 항구가 연상되는 도시 이미지로서의 바다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시를 의도했던 지용이 바다 보다 산에 더 친밀함을 느꼈다고 할 수 있겠다.두 번째로는 자연 속에서 형이상적 이념을 추구하고자 할 경우라면 ‘산’이 보다 적합한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양적 정통에서 볼 때 대체로 자연은 산으로 대표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바다가 ‘고해’라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과 대조된다. 공자는 ‘군자는 평탄에 처하려 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에 처하여 행을 바란다’ 고 했고 유한과 적막무위의 경지를 추구했던 유교나 도교적 세계관의 경우에도 거칠고 험난한 바다는 결코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대체로 동양문학에서 도화원기에 나오는 별천지 ‘무릉도원’과 같은 곳이 모두 산에 있다. 동양화에서도 주로 산수화는 있지만 바다에 대한 장르가 성립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불교에서도 바다는 사악한 세계로 회피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세 번째로는 지용의 자연시가 동양화의 화법 그 중에서 산수화의 경지를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지용의 자연시는 일반적으로 산 그 자체나 산속의 은일주의, 적막무위자의 삶을 그려 보여준다. 이를 동양화의 산수화에 대응하여 산수시라고 규정하기도 한다.앞서 말한 것처럼 모더니즘 시 계열의 시로부터 자연시로의 전환은 큰 의미가 있다. 이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로부터 느낀 한계성을 느낀 것을 극복하고 시에서 고고한 정신주의를 추구하고자 한 결과이다. 즉, 정신적, 이념적, 형이상학적 세계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이 정신주의는 동양적인 사상 특히, 형이상학적 세계와 맞닿아있다. 그의 자연시에서 보여주는 은일주의는 상자연을 통해서 우주적인 의미를 탐구하려는 목적에서 쓰여 졌다.더불어 이 시기의 자연시들은 시인이 자연과 함께, 자연과 살아가려는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고, 나아가 그가 이제 자연과 함께 사는 경지를 넘어서 그 자인이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하기도 한다. 이는 시인의 자연의 시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정신의 높이를 가능할 수 있고 무아지경, 주객일여의 무위의 삶에 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문/어학| 2007.12.02| 2페이지| 1,000원| 조회(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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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여성, 허난설헌의 삶과 규원가
    조선의 여성, 젊은 허난설헌의 슬픔시대를 앞서 간 천재여류시인, 너무나 비범했던 자유롭고 방탕한 영혼, 세상의 모든 비난을 헤치고 나라 밖에서 더욱 빛나던 시인, 시를 사랑한 시인, 당대의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독보적인 자기 삶의 방식을 가졌던 여성, 오랜 한?중 문화 교류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의 많은 문헌 속에 편집되고, 또 가장 많은 사람들의 붓과 입을 통해 그 이름이 오르내린 단 한 사람. 이 많은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라 조선 16세기를 살아간 여성인 허난설헌이다.먼저, 그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강릉출생. 엽(曄)의 딸이고, 봉(#봉20)의 동생이며 균(筠)의 누이이다.가문은 현상(賢相) 공(珙)의 혈통을 이은 명문으로 누대의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학자와 인물을 배출하였다.아버지가 첫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에게서 성(筬)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 강릉김씨(江陵金氏) 광철(光轍)의 딸을 재취하여 봉·초희·균 3남매를 두었다.이러한 천재적 가문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때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허씨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으며, 15세 무렵 안동김씨(安東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하였으나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남편은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나,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 거기에다가 고부간에 불화하여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으며,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 설상가상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균마저 귀양가는 등 비극의 연속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먹〔墨〕으로 고뇌를 달래며, 생의 울부짖음에 항거하다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잇달은 가정의 참화로, 그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작품 일부를 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분다이(文台屋次郎)가 간행, 애송되었다.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고, 국한문가사 〈규원가 閨怨歌〉와 〈봉선화가 鳳仙花歌〉가 있으나, 〈규원가〉는 허균의 첩 무옥(巫玉)이, 〈봉선화가〉는 정일당김씨(貞一堂金氏)가 지었다고도 한다.여성들에게 조선시대는 어둡고 긴 터널의 시대와 같다고 한다. 그 긴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수세기 동안 여성은 생물학적인 기능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또 여성은 이름조차 없었고 다만 시대의 모순과 억압에 순응하며, 혹은 체념하며 그렇게 살아갔다. 허난설헌도 왜 하필이면 여자로 태어났을까, 많은 남자들 중에 왜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을까, 또 조선이라는 작은 천지에서 태어나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할까라는 난설헌의 한은 얼마나 그녀가 외롭고 쓸쓸했는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그것을 보여주는 예가 바로 허난설헌의 규원가라고 할 수 있다.엇그제 젊었더니 어찌 벌써 이렇게 다 늙어 버렸는가? 어릴 적 즐겁게 지내던 일을 생각하니 말해야 헛되구나. 이렇게 늙은 뒤에 설운 사연 말하자니 목이 멘다. 부모님이 낳아 기르며 몹시 고생하여 이 내 몸 길러낼 때, 높은 벼슬아치의 배필을 바라지 못할지라도 군자의 좋은 짝이 되기를 바랐었는데(바랬더니), 전생에 지은 원망스러운 업보(業報)요 부부의 인연으로 장안의 호탕하면서도(장안의 놀기 좋아하는) 경박한 사람을 꿈같이 만나, 시집간 뒤에 남편 시중하면서 조심하기를 마치 살얼음 디디는 듯하였다. 열 다섯 열 여섯 살을 겨우 지나 타고난 아름다운 모습 저절로 나타나니, 이 얼굴 이 태도로 평생을 약속하였더니, 세월이 빨리 지나고 조물주마저 시기하여 봄바람 가을 물(곧 세월)이 베틀의 베올 사이에 북이 지나가듯 빨리 지나가 버려꽃같이 아름다운 얼굴 어디 두고 모습이 밉게도 되었구나. 내 얼굴을 내가 보고 알거니와 어느 임이 나를 사랑할 것인가? 스스로 부끄러워 하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여러 사람이 떼를 지어 다니는 술집에 새 기생이 나타났다는 말인가? 꽃 피고 날 저물 때 정처없이 나가서 호사로운 행장을 하고 어디어디 머물러 노는고? (집안에만 있어서)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모르는 데, (임의) 소식이야 더욱 알 수 있으랴. (겉으로는) 인연을 끊었지마는 (임에 대한) 생각이야 없을 것인가? 임의 얼굴을 못 보거니 그립기나 말았으면 좋으련만, 하루가 길기도 길구나. 한 달 (곧 서른 날)이 지루하기만 하다. 규방 앞에 심은 매화 몇 번이나 피었다 졌는고? 겨울밤 차고 찬 때 자국 눈 섞여 내리고, 여름날 길고 긴 때 궂은비는 무슨 일인가? (봄 세 달 동안의 꽃과 버드 나무) 봄날 온갖 꽃 피고 버들잎이 돋아나는 좋은 시절에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아무 생각이 없다 가을 달이 방에 들이비추고 귀뚜라미 침상에서 울 때 긴 한숨 흘리는 눈물, 헛되이 생각만 많다. 아마도 모진 목숨 죽기도 어렵구나돌이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니 이렇게 살아서 어찌할 것인가? 청사초롱을 둘러 놓고 거문고를 비스듬히 안고서 벽련화 한곡을 시름에 잠겨 타니(연주하니), 소상강 밤비에 댓잎 소리가 섞여 들리는 듯(소상강 밤비가 대나무잎 소리와 함께 들리는 듯,) 망주석에 천 년만에 찾아온 특별한 학이 울고 있는 듯하고, 고운(아름다운) 손으로 타는 솜씨는 옛 가락이 아직 남아 있지마는(옛날과 다름없지만) 연꽃 무늬가 있는 휘장을 친 방안이 텅 비어 있으니 누구의 귀에 들리겠는가? 마음속이 굽이굽이 끊어졌도다.(구곡간장이 끊어지는 듯 슬프다.)차라리 잠이 들어 꿈에나 (임을) 보려 하니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풀 속에서 우는 짐승(벌레)은 무슨 원수가 져서 잠마저 깨우는고? 하늘의 견우성과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을지라도 칠월 칠석에 매 년에 한 번씩은 때를 놓치지(어기지) 않고 만나는데, 우리 임 가신 뒤에는 무슨 건너지 못할 강(장애물)이 놓여 있기에(가리었기에) 오고 가는 소식마저 끊어졌는가(그쳤는고)? 난간에 기대어 서서 임 가신 곳을 바라보니, 풀에 이슬은 맺혀 있고 저녁 구름이 지나갈 때, 대나무 숲 우거진 곳에 새 소리가 더욱 서럽게 들린다. 세상에 서러운 사람이 수없이 많다고 하지만,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자 신세야 나 같은 이가 또 있을까? 아마도 이 임의 탓으로 살듯 말듯 하구나.규원가는 남존 여비의 유교 사회에서의 한스러운 생활과 괴로움을 노래한 것으로 임에 대한 원망이 나타나 있는 글이다. 봉건 제도 하의 부녀자의 한과 원정이 나타아 있고 조선 시대의 모순된 사회 제도 하에서 규방에 갇혀 외롭게 살아가는 여인의 한을 여성적 감각으로 표현하였다.남성 위주의 유교 사회에서의 여성들은 남존여비나 여필종부라는 규범 속에서 인종의 나날을 보내야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처지의 여인이 자신의 한스러운 생활과 사무치는 괴로움을 노래한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 담긴 슬픔은 작자 자신의 외로움과 한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섬세하고 애절한 서정을 그리움과 슬픔으로 표출하면서 봉건제도 아래에서 인종만 해야 하는 여인의 원망스러운 한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도 온화하고 품격을 잃지 않은 시풍은 작품의 시적 감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이 글은 특히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체념해 버리는 한국 여인들의 슬픈 인생관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남편에 대한 원망과 눈물, 슬픔과 외로움의 안타까운 마음을 여성다운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무정한 임을 언제나 기약없이 기다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기구한 여인의 운명이 슬픈 탄식으로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또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은 난설헌과 짝이 되기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허난설헌의 문장과 학식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결혼 초기부터 외박이 잦았고, 부부간의 금슬도 원만치 못했다고 한다. 난설헌을 감당하기에 김성립이 그릇이 너무 작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항상 밖으로만 돌았고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당하고 아이들을 먼저 보내는 피눈물을 삼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남편 김성립에 대한 생각과 여념을 규원가라는 글을 통해 토해 내려 했던 것이다.
    인문/어학| 2007.12.02| 3페이지| 1,000원| 조회(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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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 소설연구-여성의 삶과 일생 평가A좋아요
    박완서 소설 연구;‘여성의 삶과 일생을 중심으로’- 목 차 -Ⅰ. 서 론Ⅱ. 본 론1. 청ㆍ장년기 여성의 삶(1) 결혼 정년기의 속물적인 여성의 모습 - ?휘청거리는 오후?(2) 삶의 허위성 자각하고 내면 갈등의 여성 - ?나목?(3) 결혼 후 어머니로서의 억척스러운 삶 - ?엄마의 말뚝?2. 중년기 여성의 삶(1) 전업 주부 아줌마로서의 삶 - ?엄마의 말뚝 2?(2) 가족 사이의 소외감과 불화 - ?포말(泡沫)의 집?과 ?닮은 방들?(3) 결혼 이후 소외된 여성들의 분열 의식 - ?초대?와 ?꿈꾸는 인큐베이터?3. 노년기 여성의 삶(1) 허위적 자아 발견 - ? 저문 날의 삽화 ?Ⅲ. 결론[박완서 소설 연구- 여성의 일생과 삶]현대 우리 문학사에서 박완서 소설만큼 여자의 일상을 치밀한 내면묘사를 통해 그려낸 작품도 흔치 않다. 사소한 일상을 낯설게 느끼는 내면 묘사는 박완서 소설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의 소설은 다양한 현실의 풍경을 담아내고 그것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는데 우리의 일상의 삶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표현하는데서 기인한다. 그리하여 그를 치밀한 심리묘사의 달인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7, 80년대 문학계에서 박완서에 대한 평단의 반응을 엇갈렸다. 세태작가라 불리우며 1970년대 평론들은 박완서 소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다가 1980년대 들어서는 당시 문단 특유의 분위기로 비판받는 작가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문단의 엇갈린 반응과는 달리 오랜 지지로 계속되어 왔다. 특히, 여성 독자들이 박완서 문학에 대한 지지와 사랑은 30년 지기의 친구와의 수다 마냥 풍부하고 거침없다.일상적 삶은 사소한 일들의 반복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의 주체자인 사람들은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감정과 감각에 사로잡힌 인물인 여성은 사소한 일상사도 특별하게 느끼고 별안간 느닷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인물의 내면적 자아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다양한 일상사에 드리워진 억압의 상실과 내면적 자아는 박완서 소설에서 인물의 성격화로 드러 되기도 했다. 속물적으로 형성화된 초희는 이런 결혼관을 스스럼없이 내면화한 평범한 결혼 적령기의 여성인 셈이다.초희가 과장하는 속물적인 면모 이면의 분열성을 알고 있는 서술자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초희를 동정하게 되고, 초희가 내면화한 결혼관의 부정성을 신랄하게 풍자하다가도 연민의 태도를 분열적 내면을 들춰낸다. 초희도 의식하지 못하는 초희의 불안과 고통을 연민의 태도로 묘사한다. 이것 역시 초희의 결혼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는 서술자는 이 결혼관의 허위성을 부정하고 초희의 속물성을 공경하는 만큼이나 이 결혼으로 인해 가장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초희에게 연민 또한 느끼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의 속물적인 허위성을 풍자하는 비판의식과 이러한 삶의 방식이 규범화된 사회의 희생양이 되는 초희를 가여워 하는 연민의 정서는 초희를 서로 다른 두 자아를 지닌 분열적 인물로 성격화하게 된다. 즉, 초희는 내면에 억압된 면모를 감각하더라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하지 않는다. 규범의식의 내면화가 전면적이어서 인물 스스로 억압된 ‘자아’를 의식하려 하지 않는다. 그나마 초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서술자의 도움으로 겨우 억압된 내면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야기 밖의 서술자의 태도는 초희 자신은 자기 삶의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작품은 초희 같은 인물들의 허위적 삶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의식의 지배형식 까지 비판하는 의식을 보여주게 된다.초희의 성격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풍자와 연민의 이중서술은 내면의 허위의식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에 의해 억압된 자아의 면모까지도 복원해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허위의식의 내면화가 강력하고 억압된 정도가 심해서 인물은 억압된 자아를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 자신의 허위성에 대한 자의식이 없는 것인데 다만 미미하고 일시적인 내면 동요를 단절적으로 의식한다. 또 허위적 규범을 따르는 인물이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의 위선적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인식하는 것에 연민을 느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모성 이데올로기 등은 모두 산업사회의 기반이 될 핵가족 구성의 핵심인자로서 여성의 역할을 공고히 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 가정 안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여성들은 겉으로 미화되는 것과 달리, 가사노동을 비하하는 사회풍조로 인해 자기비하감에 벗어날 수 없었다. 모성의 숭고함을 중심으로 미화되는 것과 달리, 실제 가족 안에서 사회적으로 자존을 확인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율배반적인 삶은 내면화된 이데올로기를 의심하는 분열적인 면모를 단절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여성들의 소비욕구나 자식을 위해 억척을 떠는 가족 이기주의 등도 이런 여성의 삶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다.어머니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무조건적이며 어머니가 갓난애를 사랑하는 것은, 그 아이가 어떤 특수한 조건을 만족시켜 주었거나 특별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가 그녀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라는 것처럼 모성의 이미지가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박완서 소설에서 이런 모성의 감정은 조금 다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작가의 체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어머니의 이야기들은 모성 신화를 비판한다. 박완서 소설에서 모성은 대표적인 이미지인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모성이 처한 이중성을 드러내는 계기로서 서사화 된다.억척인 모성은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자식들을 위해서 자기의 삶을 다 바치는 희생적인 모성의 면모이기도 하지만, 자식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사회적인 의미를 확인하려는 어머니들의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다. ?엄마의 말뚝?에서는 희생적인 모성이나 모성의 생명력이기보다, 자식을 통해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모성의 허영심을 드러냄으로써 당대의 삶을 문제시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온 어머니들의 이중성을 드러내면서,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이상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어머니의 허위의식까지 포착해낸다. 자식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삶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근대화를 지나오면서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어머니로 변모한 것이다. 이를 테면 이제껏 참아오던 자신의에서 이러한 느낌의 주체들은 거의 대부분 중산층 여성, 즉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엄마들이었기에 여성들의 의식과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소한 일상사를 낯설게 느끼게 하는 내면 묘사는 박완서 소설의 인물 묘사에 있어 중요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감각이나 통증을 통해 자기 삶의 허위성이 소외를 의식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서사적 계기가 된다.박완서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예민한 감수성이나 집요한 관찰력은 감각적인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일상사를 낯설게 느끼고 삶에 대해 사유하게 만드는 이 감각적인 체험은 인물의 내면에서 이성적으로 해명되지 않기 때문에, 서사적 의미 또한 불명확하고 비유적으로 상상되는 것으로 남겨진다. 중요한 것은 인물의 내면적 불안이나 동요일 뿐이며, 이런 내면의 정서적 고양을 통해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감각적 체험의 비유적 내면묘사가 강할 때 작품은 서정성을 띠게 된다.그런데 박완서 소설에서는 감각적 체험의 모호함과 불가해함을 순식간에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의미 부여함으로써 상상의 여지를 메워버리는 서술방식이 한 인물의 성격화에 공존한다. 이러한 감정들을 중년이라는 여성이 겪는 소외된 일상에 대한 내면의 느낌이라는 것이 일순간에 밝혀진다. 이러한 것은 느닷없고 갑작스러운 통증인 치통(?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메스꺼움이나 혐오감을 통한 현기증(?닮은 방들?), 부끄러움(?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행복한 것과의 위화감과 딸꾹질(?지렁이 울음소리?) 등은 삶의 허위성이나 소외를 의식하는 평온한 일상을 헤집어 놓은 뭔지 모를 거부반응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감정은 중년 여성이 그녀의 남편, 다른 애들, 낯선 사람들, 모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면 여자는 참으로 사랑하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감정을 갖고 살아오다가 자신의 삶의 문제를 반성하고 의식해 가는 진지한 탐색과정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누군가의 귀띔으로 나는 퍼뜩 정신이 났다. 그때도 나는 어쩌다 하루쯤 밖에 미화한다. ‘나’는 이들의 은폐된 열등감과 이기심 때문에 ‘공포감’과 ‘찌릿찌릿’한 심장의 전율을 느끼는 자신의 문제가 바로 이 남편의 허위의식에 의해 형성된 어긋난 가족관계와 소외라는 것까지 해명하고 있다.이러한 감정은 ?닮은 방들?에서 분열적인 성격의 주인공을 볼 수 있다. 주인공 ‘나’는 퇴근한 남편을 아파트 현관문의 볼록렌즈를 통해서 볼 때마다 매번 ‘호주머니엔가 목을 조를 밧줄을 숨김’ ‘어머니가 겁내던 아파트 살인범’으로 착각한다. 자신의 기대와 기대를 저버리는 남편의 변함없는 태도 때문에 낯설음을 느낀다. 결국 일숙하고 반복적인 이런 일상적인 일들을 낯선 것으로 인식하는 한다.나는 따분한 낮 동안 커튼을 젖히고 마주보는 13동의 방들을 헤어보고 거기다가 이곳 아파트 단지의 아파트 총 수를 곱해보고 하다가, 고만 눈이 아물아물해지면서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그럴 때 나는 이상하게도 내 쌍둥이 아이들이 싫어진다. 그 애들이 쌍둥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진다. 그리곤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면서 그 애들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인지를 못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쌍둥이 아이들의 닮음조차도 싫다고 도리질치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일상적인 사소한 행위를 특별하게 느낌으로서, 일상과의 불화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 소외된 실상을 해명하던 ‘나’는 자기 삶의 문제를 벗어날 돌파구로 옆집 남자와 간음을 시도한다. 간음은 잠자리에서의 옆집 남자마저 남편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하는 혼란을 가중시킨다. 오히려 모든 것이 닮아 있어서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분별해내지 못하는 낯설음의 감각만 더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역시 소외된 일상에 대한 감각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자아의 면모는 인물의 분열적 성격 뿐만 아니라, 인물의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해명할 수 있음에도 그런 삶의 문제는 지속되게 표현한다.위에서 말한 ?닮은 방들?에서 쌍둥이 아들들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없.
    인문/어학| 2007.11.24| 8페이지| 2,500원| 조회(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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