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 千 年 絹 五 百 年한지는 천년이요, 비단은 오백년이다.한지의 美우리 민족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인 신라 불국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과 역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같은 세계적인 종이문화재를 만들어냈다. 한지는 우리 민족이 발전시켜온 우리 고유의 필수품이다.자랑스런 문화유산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지질을 정밀 분석하는 과정에서 방충목과 고급화를 위해 닥종이에 황벽(黃蘗)물을 들인 사실이 판명됐다. 또한 평량 65.2g/m², 평균두께 0.080mm, 특히 그 밀도가 보통 닥종이의 약 3배에 가까운 0.815g/m³이나 되는 촘촘한 종이임이 드러나 p인들을 놀라게 했다. 중국에서는 신라의 닥종이(백무지)를 “백추지(白芻紙)”라 하여 “천하제일”이라고 칭송했다.직지심체요절직지심체요절 권말의 간행기에는 선광7년 정사칠월(宣光七年 丁巳七月) 청주목외흥덕사주자인시(淸州牧外興德寺鑄子印施)라고 적혀 있어서 1377년에 청주 관하의 흥덕사에서 활자를주조하고 책을 찍어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것은 쿠텐베르그의 금속활자보다 70년이나 앞섰다.세계최초의 색지와 봉투미국의 저명한 제지사가인 다드 한트(Dard Hunter, 1883~1966)가 세운 다드 한트 종이박물관(The Dard Hunter Paper Museum) 안내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한국인은 아마도 지통(紙桶)에서 종이 원료 자제를 염색하여 색종이를 뜬 최초의 장인(匠人)들이며 또한 생각건대 최초로 봉투를 만들어 쓴 민족으로서, 이 두가지 중요한 발명에 있어서는 중국인조차도 앞지르고 있다.”고려지한지는 일찍부터 ‘고려지’라는 브랜드로 동양 삼국에서 이름을 떨쳤다. 당시에 그 품질이 얼마나 우수했는지 중국인들은 한지를 누에고치로 만든 종이로 믿어왔다고 한다. 15세기 (명조의 홍치 원년)에 와서야 비로소 닥으로 만든 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반여사(書般余事)에는 고려능성이 높다. 따라서 7세기설은 우선 타당성이 부족하다.다음으로 불교의 전달로 인한 불경의 유입연대를 기준으로 삼으려는 생각이다.1960년대 초반 북한의 사회과학원은 평양의 정백동(貞栢洞) 2호 고분(일명 고상현묘;高常賢墓)에서 두 개의 은도장과 더불어 마분지 같은 종이 조각이 출토되었다는 발굴기를 발표했다. 이 묘의 부장품으로 나온 양산(洋傘)대의 제작시기가 ‘영시(永始) 3년 12월’로 기록돼 있어서 전한 성제(前漢 成帝) 때의 것으로 판명됐다. 이는 BC 14년에 해당한다. 이로써 한반도의 종이 사용은 기원전으로 소급되어으며 불교가 전래된 4세기설보다 무려 3세기 이상이 앞당겨졌다. 문제는 ‘초창기의 종이가 중국 것이냐, 한반도에서 우리 선조들이 뜬 종이냐’라는 것이다. 해답의 실마리는 최초의 종이가 마(麻)섬유지였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생활 주변에서 나온 풍부한 헌 누더기(베옷)를 두들겨 빨고 햇빛에 말리는 일을 반복했을 것이다. 이때 피어난 섬유들의 엉김에서 힌트를 얻어 자연스럽게 종이 창호문 한지등를 만들어 썼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BC 37~AD668)는 건국 초부터 글자를 썼으며 고서적 5권을 간추려서 역사책 100권을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볼 때 고구려의 경우 종이는 오래전부터 익숙해있던 물건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반도에서는 이르면 기원전부터 종이를 만들어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종이의 발명자는 누구?종이는 AD 105년 중국 후한시대 화제(和帝)의 물자조달관인 채륜(蔡倫)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그런데 1933년부터 중국의 활발한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여덟 건의 발굴지(發掘紙)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방마탄의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방마탄지’가 가장 유명하다.이 종이들은 적어도 채륜보다 180년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들의 품질이 매우 조잡해서 학자들간에 ‘종이냐, 아니냐’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초창기의 종이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현대 제지공학에서는 피브릴화(fibrilation)라고 한다. 채륜도 여기서 지질 개량의 힌트를 얻은 것으로 짐작된다.그리고 거기에 섞는 식물성 섬유의 종류에 따라 종이의 감촉과 풍김새도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놀라운 것은 이같은 종이의 제조원리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종이라는 이 불가사의한 소재는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생활의 지혜가 축적됨으로써 서서히 배양되어 완성된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2. 한지의 발전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고유의 전통한지는 품질이 우수하여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주원료인 닥나무의 섬유질이 무척 단단해서 매우 질긴 종이를 생산해 낸 것이다.닥나무를 이용한 종이 제작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신라시대에 중국에서 우리나라 종이를 사들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이 엮은 「고려도경」이나 명나라 도륭이 편찬한 「고반여사」등 중국의 문헌에서도 전통 한지의 우수성을 칭찬하고 매우 귀하게 여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려 인종 23년(1144)에는 왕명으로 닥나무 섬기를 권장하였으며, 명종19년(1188)에는 아예 이를 법제화한 기록이 남아 있다. 전통한지 생산에 대한 당시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조선시대에는 세조 12(1466)에 태종이 세운 조지소(造紙所), 1415)를 조지서(造紙署)로 개편하여 종이생산에 힘썼다. 조지서는 고종19년(1882)까지 존속하면서 인쇄술의 발달, 향교, 서원, 서당 등의 설치로 급증하는 서책류의 수요와 기타 생활용품의 보급 및 생활양식의 고급화 등으로 증가하는 종이의 수요를 감당했다.그러나 근대 이후 서구문명의 유입과 더불어 전통한지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조지서가 철폐되고, 1901년 용산에 양지제조소가 설치되면서 펄프를 원료로 하는 양지가 양산됐다. 양지보다 비싼 한지는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점증하는 양지의 수요에 밀려이었다. 그 지방 소국가의 배신으로 당나라군이 크게 패하자 부하 가운데 제지공 출신들이 포로로 잡혔다. 그들에 의해 제지술이 서방 세계로 전달됐다.일본 서기 권22에 의하면 담징 스님은 AD 61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제지술을 전달했다. 그런데 담징 이전에도 제지술을 전한 우리 선조들이 여러 지방에서 지조신(紙祖神)으로 추앙 받고 있는 사실이 최근에 확인됐다. 담징보다 100여 년 앞선 AD500년경 선진문명을 수용하는 일본의 현관 역할을 했던 츠루가만에 상륙한 우리 선조들에 의해 제지술이 소개돼 일본 전통 종이인 화지의 뿌리가 됐다.한때 위축되었던 한지와 달리 화지는 근대 이후에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에치젠 화지 (越前和紙)로 연마된 제지기술은 메이지 정부가 들어선 후 일본은행권의 조폐기술로 채택되었다.지금도 일본의 조폐공장에는 당시 제지술을 전해준 지조신(紙祖神)에 제사지내는 미니신사가 모셔져 있다.3. 한지의 특성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오래 가는 중성지로 손꼽히는 한지에는 우리 선조들이 높은 과학수준이 깃들어 있다.우리 선조들은 재료의 성질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닥나무에 리그닌과 홀로세롤로오즈 성분이 이상적으로 함유되어 있는 시기인 가을에 닥나무를 채취하였다. 또한 알카리성인 전통 재물로 포백하고 닥풀(황촉규)을 접착제로 사용했다. 잿물은 주성분이 산화칼륨(K₂O)으로, 이 성분의 양에 따라 잿물의 염기도가 증가하며 이밖에도 인(P₂O?), 산화나트륨(Na₂O)및 산화칼륨(CaO)의 양이 많아서 한지를 약알카리로 만든다. 특히 주성분인 당류인 닥풀은 종이를 뜰 때 닥나무의 섬유점착을 좋게 해주어 종이의 강도를 증가시키며 얇은 종이를 만드는데 유리하다. 순간적인 산화가 빨라 젖어서 겹쳐진 종이가 떨어지기 쉽게 한다.한지를 만드는 공정 또한 펄프종이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사실에서 우리 조상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다. 양지는 로진사이즈 처리와 황산알류미늄의 사용으로 강한 산성(PH4-5.5)을 띠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가수분해가 진행 길이 2~3m 정도의 일년생 가지가 좋다. 같은 종류의 닥나무라도 기후, 토질에 따라 섬유의 폭, 길이 등이 달라져 품질에 영향을 준다. 국산 닥나무가 수입 닥나무에 비해 광택이나 탄력이 훨씬 우수한 것도 토양의 차이 때문이다. 최근에 한지에 대한 관시이 다시 높아지고 있지만 한지산업의 사양화로 국산 닥나무가 거의 사라진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한지산업을 육성하기위해 전주와 원주, 문경지역을 중심으로 닥나무 집중재배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개성공단 설립을 계기로 한층 가까워진 북한에서 닥나무를 재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니, 우수한 품질의 국산 한지를 만날 날도 멀지 않았다. 또 다른 재료인 닥풀(황촉규: Hibiscus manihot L.)은 아욱과에 속하는 일년생 초본식물이다. 닥풀은 뿌리에 점액이 많기 때문에 지통에서 닥 섬유가 빨리 가라앉지 않고 물 속에 고루 퍼지게 하여 종이를 뜰 때 섬유의 접착이 잘 되도록 한다. 또한 발에서 물이 빠지는 속도를 조절하여 물질을 쉽게 할 수 있으며 종이의 질을 고르게 하는 작용을 한다.닥풀의 농도가 낮으면 종이를 뜰 때 물 빠짐이 빨라 두꺼운 종이가 만들어지고 농도가 높으면 물 빠짐이 나빠 얇은 종이가 된다.(2) 한지의 제조과정①닥나무 채취11월경에 1년생 닥나무를 배어낸다. 이때가 닥 껍질에 수분이 적당하여 벗기기가 쉽다. 어떤 닥나무가 재료로 적당한가를 알아내는 데는 숙련이 요구된다. 손에서 섬유가 자연스럽게 끊어지는 정도를 보고 느낌으로 가늠한다.②닥나무 껍질 벗기기베어온 닥나무를 커다란 솥에 넣고 삶는다. 그런 다음 수피를 벗겨내면 흑피가 되고, 다시 흑피의 겉껍질을 벗겨내면 백피가 된다.③닥나무 삶기1~2일 동안 물속에서 백피를 충분히 불린 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솥에 넣어 2~3시간 정도 삶는다. 이 때 삶는 액으로 잿물을 이용한다. 잿물은 표백제의 역할도 하며, 그 속에 함유된 알카리성 성분으로 인해 천년이 가도 한지는 변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볏짚, 메밀대
「 종 교 사 회 학」-후기 산업사회와 인간 공동체-1.머리말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류는 초기부터 함께 모여 사회 생활을 해 왔다. 인간은 개인으로 고립되어서는 살 수 없고 반드시 공동체에 소속되어 사회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가 속한 사회안에서 가치와 규범, 지식과 기술, 종교와 관습 등을 배운다. 이 과정을 사회화(socialization)라고 한다. 인간은 이 과정을 경험하면서 사회인으로 성숙하게 된다. 이것은 사회가 인간을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그 반대도 사실이다. 즉 인간이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가 또한 주체로서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다. 버거와 루크만은 이 관계를 외면화(exrernalization), 객체화(objectivation), 내면화(internalization)라는 용서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그가 가진 모든 속성을 반영하며 사회를 만들지만(외면화), 일단 만들어진 사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객관적 실재(Reality)가되며(객체화), 이렇게 독립된 실체로서의 사회는 다시 그 사회의 모든 속성을 인간에게 사회화시키게 된다(내면화)는 것이다. 인간이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는 사회는 시대에 따라 그 구조적, 제도적, 문화적 특성, 규모, 그 안에서의 사회관계와 인간관계등이 변할 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도 각기 다양하다. 현대 사회를 좀더 세분하는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은 산업화의 정도에 따라 전기산업사회, 산업사회, 후기 산업사회로 나누는 방법이다. 그런데 흔히 산업사회와 후기 산업사회는 인간 공동체가 상실되거나 혹은 파괴되는 사회라고들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런 사회들에서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변하면서 인간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 구조가 그 의미와 근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그 문제들, 즉 후기 산업사회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현대적 상황의 특징은 무엇이며, 이에 따라 인간 공동체는 어떠한 위기를 맞고 있으며, 어떠한 식으로 이에 대처하려는 것이다.2. 공동체의 의미공동체라는 말은 영어의 Community라는 말로 그 어원은 확실치 않으나 ‘Common’(공동의), ‘Communal’(공공의, 자치적인)이라는 형용사, 또는 ‘Communicate’(의사소통하다)라는 동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동체라는 개념을 간단히 정의내린다면 “지리적 근접성(지역성)과 사회적 단일성(공동의식) 및 문화적 동일성(공동규범)을 가지는 공동 사회적 집단”이라고 하겠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공동체는 동질성을 가진 일정한 인구가 자연적, 생태적, 지리적으로 한정되고 근접한 지역에 살고 있으며, 역사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고, 일련의 기본적 봉사기관을 가지고 있고, 공동의 생활 방식에 참여하고 있으며, 단일성의 의식을 가지고 협동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회 집단을 나타낸다. 공동체란 지역성을 떠나 공동성에 더 깊은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한 마을조차도 공동체가 되기 어렵고, 반대로 공동성이 있다면 세계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성을 막키버(MacIver)는 공동체 감정(community sentiment)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생겨나는 요소들로 그는 ‘우리의 감정’(we-feeling), ‘역할감정’(role-feeling), ‘의존감정’(depending-feeling)을 들고 있다. 우리감정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하나됨을 느끼는 것이고, 역할 감정은 구성원 각자가 공동체 안에서 의미있는 하나의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며, 의존 감정은 구성원이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들이 약화되는 현상을 우리는 흔히 공동체가 붕괴된다든가 공동체성이 파괴된다는 식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3. 공동체의 변화와 공동체성의 붕괴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사회학자들의 주된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사회가 변하면서 어떻게 공동체성이 약화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뒤르껭은 사회를 결속시키는 연대감을 기(organic solidarity)으로 구분함으로써 사회의 특징적인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전자가 지배적인 전통사회는 개인들이 그 사회의 가치들, 이념들, 믿음들, 그리고 정감들을 공유하고 있으며, 합의를 통해 잘 통합되어 있으나, 후자가 지배적인 현대사회는 동질성을 상실한 채 단순히 공존을 위한 상호 의존의 관계가 남아 있을 뿐인 사회로 그는 보고 있다. 벡커도 사회를 ‘거룩한’(Sacred)사회와 ‘세속적’(Secular)사회로 구분하여 현대적 추세는 세속사회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거룩한 사회는 구성원들이 사회변화에 저항하는 사회이며, 가치체계가 통합되고 유지되는 사회로서 성(거룩, 영적, 신적, 종교적 개념 포함)이 지배적인 사회이다. 세속적 사회는 사회성과 자발성의 수단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새로운 것에 반응하는 능력의 수단으로 그 구성원들을 유도해 내거나 전해주는 사회이다. 여기서는 가치 체계가 유동적이며 종속적이고, 합리적으로 근거된 공리적 기준들이 중요시 된다. 그들은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통합력이 약화되면서 공동체적 관계들이 깨어져가고 있다는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공동체 생활과 사회 생활의 차이도 현저하다. 공동적 관계들은 혈연에 기초한 신뢰, 충성, 연장자에의 존경, 그리고 권위의 분명한 형태들을 수반하고있다. 역할보다는 사람이 문제되며 수행부다는 성의가 문제된다. 그러나 사회는 비인격적 역할 관계들, 기술들의 협조, 그리고 근본적으로 공식적이고 계약적인 행위 형태들에 기초하고 있다. 즉 사회에서는 의무들과 역할 수행들이 합리적 구조의 요구들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정당화되는에, 여기서는 기술들이 훈련되고 유능함이 중요하다. 도덕적 세계의 한 부분이었던 공동적 질서의 균형은 개인화된 세계안에서 깨어졌다. 그리하여 공동체는 심하게 약화되어 왔고, 심지어는 친밀한 관계들까지도 이제는 기계적 장치들에 대한 의존에 의하여, 그리고 합리적으로 질서잡혀 요구된 수행들의 제한에 의하여 침해받고 있다. 이러한 이 과정에서 종교는 필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변화를 초래한 가장 현저한 현상으로 사회학자들은 산업화 과정을 들고 있다.4. 산업화와 공동체의 위기산업화(industrialization)란 기본적으로 생산에서 공업기술을 적용하는 공업화 과정과 생산활동, 그리고 이와 관련된 활동들이 구조적으로 분화되고 새롭게 통합되는 사회적 성격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회의 산업구조가 1자 산업 중심에서 2차 산업 중심으로, 다시 3차 산업 중심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산업화라고 한다. 그러면 산업화 고정이 어떻게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산업화의 결과는 문화 영역에 미쳐 공동체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우선 ‘문화지체’(cultural lag)현상을 살펴보자. 문화요소들 사이에서 변화의 속도가 달라 그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현상을 문화지체 현상이라 하는데, 이것은 특히 테크놀로지와 도덕, 이념 사이의 발전 속도가 달라 후자가 전자에 적응하지 못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산업화는 또한 가치갈등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농촌 사회의 가치와 도시 사회의 가치가 같을 수 없고, 전근대 사회의 가치와 근대 사회의 가치가 같을 수 가 없기 때문에, 변화되는 사회의 새로운 가치들과 전통적인 가치들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 갈등은 공동체의 일체감과 조화에 커다란 장해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산업화는 uac가지 중요한 사회적 결과를 초래하면서 또한 공동체의 붕괴를 촉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화(ulbalization)와 이에 따른 문제들이다. 도시화는 특히 인구학적 측면에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 현상과 이와 관련된 사회변화의 현상을 의미한다. 산업화는 인구의 도시로의 이동을 촉진한다. 이와같은 도시화 과정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모여든 그 인구가 이질적이라는 점이다. 여러 지역에서 이주해 온 도시인들은 서로 이질감을 느끼며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한다.하여 전문화는 개인들로부터 공통된 삶을 살고 있고 공동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빼앗아가 버린다. 도시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규모의 거대화와 관료주의이다. 거대한 조직규모는 서로에 대한 친숙성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관료적인 일으 l처리는 인간의 개성과 자유를 침해하여 비인격적 대우를 받게 만든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소속감의 상실과 관계되어 있으며 결국 공동체 의식의 약화에 기여하고 있고, 따라서 도시화는 공동체 붕괴에 결정적 작용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산업화가 초래한 사회적 결과의 또 다른 양상을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이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요인들로 작용하면서 공동체의 부조화를 조장하게 되었다. 셋째, 산업화의 결과는 생태계에 영향을 미쳐 공동체의 안전과 복지를 위협하고 있다. 산업화는 많은 공해와 오염을 만들어내는 근원이 되고 있다. 수많은 오염이 자연과 인간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 공동체의 존재위기와 관련된 또 다른 환경 문제는 자원의 고갈이다. 자연 자원들에대한 남용을 산업화 과정이 촉진했고 이로 인해 점차 자원, 특히 에너지 자원이 결핍위기를 맞게 되었다. 생태계의 또 다른 문제로 산업화는 과학 기술의 발달을 촉진했는데, 그것이 인간 공동체의 복지와 안전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그것이 인간 공동체 자체를 파괴시킬 힘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화의 결과로 생겨나는 네 번째 문제는 심리적 혹은 사회-심리적 측면에서 보여지는 소외문제이다. 기능과 능률만이 중요시되는 직업구조 안에서 인간은 하나의 기계인간, 기능 인간이 되어버리고, 인간가치보다 상품가치에 의해 평가되면서 타인들로부터 소외의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소외감은 산업화 과정의 직접적 결과라기 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생태적 변화에 따른 결과라고 하겠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산업화 과정은 인간공동체에 여러 가지 이점을 마련해줄 수도 있지만, 대체로 보면 인간공동체의 파괴와 와해에 대크게 작용해 왔고, 또한 그런 잠재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힘이다.
여자만의 나라누구나 잠시만이라도 여성들의 유토피아를 꿈꿀 것이다. 유토피아 소설은 세계의 문제점을 뽑아내서 이를 교정한 이상향 사회를 제시하여 미래에 대한 개혁적인 전망을 유도하는 이념적인 장르다. 페미니즘 역시 이 장르와 상당히 근접한 거리를 유지해왔다.성차별적 현실을 뒤엎는 이상향 사회 제시그런데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한 대우를 보장해야 할 유토피아 소설이 언제나 성평등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1516년 토머스 모어가 발표한 최초의 유토피아 소설 는 복종과 획일화를 요구하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사회를 담았다. 1888년 에드워드 벨라미가 발표한 역시 겉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존중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는 여성의 본성을 하찮은 것으로 규정하여 여성집단을 분리한 성차별적인 텍스트다. 벨라미가 소설을 쓸 당대는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요구하는 여권신장운동이 막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결국 벨라미는 이 흐름에 반하여 남성과 여성이 본질주의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주장한 셈이다. 이처럼 유토피아 소설이 그리는 이상향 사회는 지극히 역사적으로 구조화돼 있으며,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1916년 발표된 샬롯 퍼킨스 길먼의 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이다. 샬롯 퍼킨스 길먼은 정형화된 여성상을 요구하는 남성적인 정신의료기술로 인해 서서히 미쳐가는 여성의 내면을 실감나게 형상화한 단편소설 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작가다. 는 여성들 서로간의 애정과 민주정신, 탐구성에 바탕을 둔 세계 ‘헐랜드herland'에 3명의 지극히 평범한 남성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이 남성들이 지닌 여성에 대한 편견은 헐랜드의 용감한 여인들에 의해 무참히 부서지고 만다.이처럼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들은 성차별적 현실을 뒤엎는 이상향 사회를 구조적으로 제시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유토피아 소설의 고전적 양식은 사회 문제를 분석하는 포괄적인 틀을 제시하고 아울러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지를 북돋워줄지는 모르나 소설을 읽는 맛은 꽤 떨어지는 편이다. 보통의 경우,지리적으로 괴리된 곳에 위치하며 초역사적인 속성을 띄고 있어서 백화점처럼 이상향 사회의 정보를 훑어보게 하는 차원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이 전달하는 긴장감이나 인물 내면의 변화가 전달하는 생생함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때문에 현대에 등장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들은 장르의 법칙을 해체하여 보다 흥미로운 내용을 선보이고 있다. 이상사회와 디스토피아를 병치하거나 혹은 현실을 병치하는 방식, 열린 결말의 이용 등이 그 예다. 이는 디스토피아와의 근접을 초래하기도 한다.마가렛 애트우드의 는 얼핏 보기에는 남성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여 기계적으로 섹스와 임신을 제어하는 지극히 우울한 사회를 그리고 있지만, 성적 자유가 주어졌던 과거와 미래로 향하는 열린 결말을 통해 새로운 미래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남겼다. 또한 여성들 간의 차이에 주목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는, 추상적인 자매애에 기반을 둔 이상향 사회는 이미 설득력이 떨어졌으므로 다른 방식으로 우회하여 보다 치밀하게 이상향을 꿈꾸거나 이상향의 한계를 소설 속에서 제시하기도 한다.두 개의 재판을 통해 제기된 논쟁적 이슈들A. S. 바이어트의(1996)은 여성의 이혼과 성적 자유의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전복적인 이상향 사회의 소멸을 그린 소설 속 텍스트 ‘배블탑’이 현실에 수용되는 과정을 통해 당대 여성이 처한 현실을 보다 날카롭게 파고든다. 역사 너머로 사라진 어느 여성 시인의 삶과 사랑을 추적하는 소설 로 유명한 A. S. 바이어트는 생경한 역사적인 자료들과 당대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이슈들을 능숙하게 소설 속으로 삽입하여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법을 아는 작가다. 뿐만 아니라 어디엔가 꼭 있을 법한 전형적인 인물들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있다. 흥미로운 신문기사들을 직조하여 소설화했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의 배경은 1960년대로 막 접어든, 의 판금 해제와 더불어 성문제와 일상적인 억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한 영국사회다. 소설은 두 개의 재판을 다룬다. 하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 지성적인 여인 프레데리카의 이혼 소송이고 다른 하나는 누드모델 주드 메이슨이 쓴 유토피아 소설 '배블탑'의 음란 여부를 따지는 재판이다. 지은이는 이 두 개의 재판을 통해 교육받은 여성의 사회적 이미지와 역할모델, 여성의 성적 자유, 성도착적 내용을 다룬 매체에 대한 수용 여부와 같은 논쟁적인 이슈를 다룬다. 이 이슈들은 단독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지은이는 심리치료나 문학교육과 같은 인간의 심성을 다루는 영역의 역할을 진단하는 한편 막 생기기 시작한 클럽문화와 인도 등지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심리치료를 겸비한 신종교의식들을 소개하면서, 개인의 심성-특히 여성의 심성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프레데리카는 잘 나가던 문학 비평가였으나 언니가 어이없이 감전사를 당한 후 갑자기 결혼을 결심한다.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문학적 교양과는 아무 상관없는 시골 귀족 나이젤이다. 프레데리카가 나이젤을 선택한 것은 나이젤이 프레데리카에게 성적인 만족을 통해 생명감을 주는 존재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이젤이 부유한 귀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는 결혼의 구속력을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성적인 모험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억압적이다. 남편은 그녀가 일을 하는 것을 막으면서 집안에서 아이 양육에만 몰두하기를 바랬다. 그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는 평소에는 감춰져 있지만 그녀가 반항하며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면 즉시 튀어나온다. 남편에게 폭행당하고 손도끼로 등을 가격당한 후 그녀는 아이와 함께 집을 뛰쳐나오고 만다.프레데리카의 이혼소송은 법정의 언어가 남성 중심적이며 개인의 삶과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법 논리를 보다 잘 활용하는 자에게 관대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일상적인 상태, 그러니까 적당히 자존심을 지키고 상대의 사정을 봐주는 심정으로 법정과 맞섰던 그녀는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남편에게 당했던 폭력들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반면 프레데리카가 집을 나온 후 가졌던 성관계들은 남편이 돈을 주고 고용한 심부름센터 직원에 의해 노골적으로 까발려진다. 프레데리카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교육을 잘 받은,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는 여성’이 되었다.편견으로 작동되는 사회 시스템의 통제한편 주드 메이슨의 '배블탑' 소송 역시 법정과 법정을 지지하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지닌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배블탑'은 프레데리카가 출판을 제안한 소설로 아르토의 잔인극에 비견되는데, 성서의 바벨탑이 무너진 것처럼 이상향 사회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 소설의 사상적인 바탕에는 푸리에와 사드가 있다. 푸리에는 인간의 열정과 욕망을 모두 충족시켜주면 조화로운 세계가 온다고 믿었으며, 성도착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또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설의 진행은 사드 후작의 사상을 빌려오는데, 컬버트와 그가 이끄는 집단은 모두에게 성적 자유를 허용하는 사회를 제창한다. 그러나 성적 자유는 반드시 조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컬버트의 남자 시종 데미안이 컬버트의 애인 레이디 로즈에이스를 원하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배블탑은 욕망을 좇아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강간하고 고문하는 세계로 변모한다. 결국 레이디 로즈에이스는 컬버트가 만든, 성적 자극을 주는 고문 기계에 의해 무참히 죽임을 당한다.
탈무드를 읽고 …….5천년의 수난의 역사 속에서 유태인과 함께 한 탈무드…….이 문구는 신문을 읽다가 도서광고란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것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이기도하다. 평소에 유태민족의 문화와 학살에 대해서 궁금해 했던 터라 더욱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탈무드가 어떤 책이기에 수천 년간 뿔뿔이 흩어진 유태민족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된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집대성한 책이라면 탈무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이 책은 4세기 말경과 6세기에 편찬된 두 종류가 있는데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사상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또 유대교의 율법과 전통적인 습관, 민간전승 등을 총망라한 유대인의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으로 유대교에서는 매우 중요시되는 것 중에 하나라고도 한다. 또 이 책에 대해 흥미로운 것은 법을 다루었지법전도 아니고, 역사를 다루었지만 역사 책 또한 아닌 백과사전과 같은 내용의 역할을 수행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다른 책들보다 흥미를 갖고 좋아하는 이유는 접해보지 못했던 책의 종류이기도 하지만, 알지 못했던 그들의 문화와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정신적인 사상과 신앙심이 신비롭게 다가왔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무한한 지혜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미묘한 이끌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사소함에서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하나씩 배워나가는 그들의 사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 본받고 싶어 하고 정신적인 지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온갖 핍박과 유랑의 역사 속에서도 풀뿌리 같은 생명력으로 버텨온 그들의 힘을 오직 5천년의 혼과 지혜가 담긴 탈무드 속에서만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 탈무드의 가르침으로 교육받고 성장해 온 유태인들 중에는 우리들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 뉴턴, 마르크스 등등이 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세계의 역사에 이바지 한 인물들이 대부분 유태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을 만큼의 업적을 남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이 탈무드 속에는 마음과 귀와 눈과 머리와 손, 발 6개로 나뉜다. 나는 이 6가지 중에서 탈무드의귀를 가장 좋아한다. 귀는 청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모든 이야기와 정보가 들어온다. 중요한 것은 그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치 있는 것을 얼마나 잘 선택해서 듣느냐는 것이다. 이 책은 귀라는 신체의 한 일부에서도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수양시키는 삶의 지혜를 우리들에게 보여준다.또한, 탈무드의 구분으로 볼 것 같으면, 농업과 제사, 여자, 민법과 형법, 사원, 순결과 불순 등이다. 탈무드는 반드시 이슈나 라고 하는 부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규칙이 있다. 이 미시나 는 유태 민족에 있어 오랜 전통의 가르침과 약속이 구전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기원후 200년경에 이르러서야 체계적으로 모아져 빛을 보게 되었는데, 500그램에 불과한 가벼운 책이다. 이 미니 사에 대한 별다른 이견의 없다. 이러한 미시 나를 중심으로 더욱 발전된 토론과 논의가 바로 탈무드이다.유태인은 세계의 많은 민족 중에서 종교에 대한 계율을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동시에 그만큼 종교에 심취해 있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에는 종교라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유태인들의 평소의 생활 그 자체가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토론 중에 하나인 하라카라는 말은 유태인적인 생활 방법이라고나 할까, 인간들의 모든 행위를 숭고한 것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 건강, 예술, 식사, 언어, 대화, 대인관계 등 평소 생활에서의 일체의 행위가 이 하라카에 합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기독교의 교인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이미 교인이 되지만, 유태인은 그렇지가 않다. 유태인에 있어서는 오직 행위만이 유태인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또한 토론의 다른 하나인 아키타는 탈무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철학, 신학, 역사, 도덕, 시, 속담, 성서 해석, 과학, 의학, 수학, 천문학, 심리학, 형이상학 등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지혜가 담겨져 있다.
이슬람교에 대해서목 차Ⅰ. 서론 Ⅱ. 본론 1. 이슬람교의 정의 2. 이슬람교의 성립 3. 이슬람교의 교리 4. 이슬람교의 신앙생활 5. 이슬람교의 오해와 진실 Ⅲ. 결론Ⅰ. 서 론이슬람은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의 3대 종교로 꼽히지만 유독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슬람은 전세계 인구의 1/5이 넘는 13억 명의 신도를 가진 세계적 종교이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흔히 종교전쟁이라고 한다. 내전으로 치닫는 이라크의 상황을 보면서 이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Ⅱ. 본 론1. 이슬람교의 정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로써 전지전능한 알라의 가르침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마호메트에게 계시되었으며, 유대계의 여러 종교를 완성시킨 유일신 종교임을 자처한다. 유럽에서는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마호메트교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위구르족을 통하여 전래되었으므로 회회교(回回敎) 또는 청진교(淸眞敎)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슬람교 또는 회교(回敎)로 불린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슬람은 유일신-우리말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 복종하는 종교이다. '알라'란 특정한 신의 이름이 아니라 영어로는 the God 에 해당되는, 즉 유일한 신이라는 뜻이며 '이슬람'(어원적 의미로 순종 또는 평화)이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뜻을 따름으로써 평화를 얻는 길을 의미한다. 이슬람에서 신격은 하나뿐이며, 그 어떠한 인격도 신격화되거나 신성을 가질 수 없는 철저한 유일신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2. 이슬람교의 성립 성지(聖地) 메카는 아라비아반도 중부, 홍해(紅海) 연안에서 약 80 km 지점의 불모지 골짜기에 위치하는 도시로, 카바 신전과 북동쪽 구릉지는 옛날부터 유대교 ·그리스도교의 성지로써 매년 많은 대상과 순례자들이 찾아들었다. 메카의 지배계급은 5세기 말경, 부근 황야에서 온 코레이시족이었으며 마호메트는 그 중의 하심가(Hashim 家) 출신이다.당시 아라비아 각지에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전선의를 갖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마호메트가 자신은 유일신 알라의 가르침을 모든 아라비아 백성에게 전도할 사명을 띤 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40대에 들어서였다.마호메트는 메카에서 선교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40명, 10년 만에 겨우 100명의 신도밖에 얻지 못하였고 게다가 메카의 집권자인 코레이시족의 박해가 날로 심해졌으므로, 이를 피하여 622년 9월 메카 북방 약 400km 떨어져 있는 메디나로 갔다. 신도들도 이때를 전후하여 메디나로 피난, 그곳 협력자들의 집에 수용되었다. 이 메디나행(行)을 이슬람에서는 '헤지라'라고 하는데, 이 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아라비아에서는 어떤 명문 인사가 다른 유럽 부족의 보호를 요청하여 그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헤지라라고 하는데, 지금도 가끔 볼 수 있는 풍습이다. 마호메트의 운명과 이슬람의 장래는 이 헤지라를 통하여 일변하였다.메카에서 이주한 교도(무하지룬)와 메디나의 협력자들은 힘을 합쳐 교단(움마)을 조직하였다. 이것이 이슬람교의 시초인데, 후에 점차 강화되어 이슬람교단은 국가로까지 발전했다. 그 후 마호메트는 교단을 이끌고 여러 차례 메카군과 싸워 630년 1월에는 마침내 메카를 정복하고, 카바 신전을 알라의 신전으로 바꾸어놓았다. 얼마 후 아라비아인의 태반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그 광대한 아라비아 지역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된 것은 실로 유사 이래 처음이었다.그의 이상은 종래의 부족단위의 사회를 하나의 이슬람 교단으로 바꾸어, 알라의 가르침에 따라 전체 교도를 한 형제로 삼는 평화스런 사회를 만드는 데 있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632년 6월 메디나의 자택에서 병사하였다.3. 이슬람교의 교리 이슬람교도들은 기본적으로 몇 가지의 믿음과 실천이 있다. 그 믿음 중 첫 번째 '알라 이외의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하메드는 알라의 사자이다.' 이슬람에 있어서 알라 이외의 신은 없다. 다른 신과 알라를 동일시하는 것은 중죄에 속하며 알라는 유일하며 전지 전능하다. 무하메드는 예언자들 중 가. 무슬림에 있어 내세는 이 세상의 보상과도 같으며 알라를 믿고 무하메드를 따르는 자와 그렇지 못한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믿는다. 네 번째는 정해진 운명을 믿는다. 인간의 운명은 신이 정해진 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다. 이는 일종의 예정론으로 받아들일 수 도 있으나 그것과 다르게 인간의 노력과 책임을 요구한다.4. 이슬람교의 신앙생활 이슬람 신앙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음의 셋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지(知)'인데, 이것은 알라의 계시를 잘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언(言)'인데, 마음으로 알고 또한 믿는 바를 말로 표현하는 일이다. 셋째는 '행(行)'인데, 이슬람교도로서의 의무(즉 5주 등)를 열심히 실행하는 일이다. 무슬림에게는 실행해야 할 중요한 의무 다섯 가지가 있다. 이것을 오주(Pillars of Islam)라 하며, 이들 의무를 다함으로써 알라에게 봉사하는 일을 '이바다트(奉化 또는 勤行)'라고 한다. 《코란》에서는 희사와 단식을 중요한 봉사로 들고있으나, 후세에 이르러 다음의 다섯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 상례로 되었다. ① 증언 또는 고백(샤하다): “나는 알라 이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합니다. 또 나는 마호메트가 알라의 사자임을 증명합니다”를 입으로 왼다. 신도는 어릴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증언을 고백하게 되어 있다. ② 예배(살라트): 일정한 시각에 규정된 형식에 따라 행하는 예배를 말하며, 개인적으로 수시로행하는 기도는 '두아'라고 부른다. 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을 일출·정오·하오·일몰·심야에 하며, 특히 금요일 정오에는 모스크에서 집단예배를 행한다. 예배를 드릴 때는 반드시 메카가 있는 쪽을 향하고 행한다. ③ 희사(자카트) 또는 천과(天課): 국가재정의 근간을 이루며, 비 이슬람 국가에서는 선교기반이 이루어지는 데 필수불가결한 무슬림의 의무중의 하나이다.④ 단식(샤움): 성년인 무슬림은 매년 라마단 월간(月間:제9월) 주간(晝間)에 음식·흡연·향료·성교를 금하고, 과격한 말을 삼가며 가능한 한 《코란》을 독가할 의무가 있다. 능력이 없는 자는 하주를 못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해에 따라 일정하지는 않으나 현재도 매년 약 20만 명에 달하는 신도가 하주에 참가하고 있다. 메카 다음가는 성지는 메디나에 있는 마호메트 묘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예루살렘의 여러 성적(聖蹟) 등이 있으며, 또 시아파(派)의 무슬림은 알리의 묘(廟)가 있는 나자프, 알리의 아들 후세인의 묘가 있는 카르발라, 이란 동부의 마슈하드 등을 순례하는 사람이 많다.5. 이슬람교의 오해와 진실 ◇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 흔히 이슬람을 가장 오해하도록 하는 말이 바로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 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슬람이 무력으로 종교를 전파했다는 오해 뿐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무척 호전적이고 강제적이라는 이미지로 호도되도록 하는 가장 잘못된 말이다.한 손엔 코란, 다른 손에는 검'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한 사람을 13세기 중엽 십자군이 이슬람 원정에서 최후의 패배를 당하던 시기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스콜라 철학의 대부인 토마스 아퀴나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로서 애당초 신앙을 '검'으로 강요하지 않으며, 관용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허용해 왔다. 이와 같은 말은 이슬람 문명에게 지속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중세 유럽인에 의해서 만들어 졌으며, 이슬람교는 기독교에 비해 배타적이지 않았다.이슬람은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것을 이미 그들의 경전인 코란에 언급하여 종교의 자유와 다른 종교를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 속에서부터 구별되니라 (쿠란 2:256) 이 코란의 절에서 하나님(알라)은 진실과 거짓을 서로 구별되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전자 혹은 후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하메드 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무슬림이 되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일부다처제 일부다처제는 사회구조상 등장하게 되는 제도로 상황에 따라선 그것이 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로부터 전쟁이 휩쓸고 간 지역은 일부다처제가 잠깐씩 존재했었던 빅토리아시대에는 첩을 거느릴 수 없자 온갖 불륜과 매춘이 성행했다. 이에 비하면 이슬람은 단지 일부다처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것만 빼고 보면 가장 여성을 위하는 종교라 할 수 있다.Ⅲ. 결 론인간의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예술은 물론이고 종교라는 두드러진 요소로 이루어진다. 아득한 원시시대 이래 종교는 인간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역사의 진로를 결정하는 동인으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넓게는 인류의 역사, 좁게는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본질과 변천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번 조사를 통해 이슬람교의 발생과 기원, 경전의 구성과 주요가르침, 삶의 양식, 오해와 그 진실 등을 살펴보았다.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동양의 메시지가 서양의 한 대 지방에 도착하면 그 종교의 시적인 부드러움을 잃게 되고 딱딱한 분열주의의 차가운 독단으로 되기 쉽다. 그들의 손과 머리는 현명하면서도 동양인의 가슴의 지혜를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원후 7세기는 세계가 차가워지고, 유대교가 출생지에서 쫓겨나고, 기독교가 로마 종교와 야만인의 미신과 혼합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때에 순수한 신앙의 새로운 샘이 갑자기 동양에서 터져서 서양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새로운 신앙은 땅 중에서 가장 건조한 곳,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생겼다.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의 3대 종교를 이루는 이슬람은 오늘날 서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국대륙뿐 아니라 미국에까지 보급되어 4억 이상의 신자를 포용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인구의 10분의 1을 그 영향권 안에 두고 있다는 사실과 6세기 이래 1천 3백여 년 가까이 세계의 역사에 큰 변혁을 일으킨 주체로 작용해왔다는 사실은 그 오랜 세월 속에 베인 정신과 역사와 본질의 범위가 참으로 넓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기에 이슬람교에 대하여 모두 설명하기엔 어려운 것이고,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 또한 어렵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종교를 표현하기란 자칫 왜곡될 우려가 있고, 그 내용과 범위가 참으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