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15세기 국어의 음운학과국어 음운사 요약-1. 훈민정음의 조직훈민정음 당시의 글자 수는 모두 28자인데, 그 중 첫소리 글자가 17, 가운뎃소리 글자가 11자이다.첫소리 17글자는 어금닛소리 ㄱㅋㅇ, 혓소리 ㄷㅌㄴ, 입술소리 ㅂㅍㅁ, 잇소리 ㅅㅈㅊ, 목소리 ㆆㅎㅇ과, 반혓소리 ㄹ, 반잇소리 ㅿ이다. 가운뎃소리 글자는 하늘?땅?사람을 본뜬 기본글자 [ㆍㅡl]와, 하늘에서 나온 [ㅗㅏ], 당에서 나온 [ㅜㅓ], 그리고 재출글자 [ㅛㅑㅠㅕ]의 네 글자를 합하여 모두 11글자가 된다. 첫소리 글자나 가운뎃소리 글자를 물론하고, 두 글자 이상을 가로 나란히 쓰는 것을 병서라 한다. 병서에는 첫소리병서가 있는데 여기에는 같은 첫소리 글자 둘을 나란히 쓰는 각자병서와 다른 글자를 둘 이상 나란히 쓰는 합용병서가 있다. 가운뎃소리 병서에는 각자병서는 없고 오직 합용병서만 있다. 그리고 첫소리 글자 둘을 세로 이어 쓰는 것을 연서라 하는데 우리말을 적는데 있어 실제로 쓰인 것은 [ㅸ]하나 뿐이다. 그리고 같은 글자 밖에 또 한 가지 중요한 표기법은 방점인데 이는 글자의 왼편에 점을 찍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한 점을 찍는 거성과 두 점을 찍는 상성, 점이 없는 평성이 있다.지금 쓰이지 않는 글자를 소리 잃은 글자, 지금 쓰이고 있는 글자 중 소리가 달랐으리라고 추측되는 것을 소리 바뀐 글자라고 부른다.? 지금 쓰이지 않는 글자: ㅸ, ㆆ, ㅿ, ?, ㅳ, ㅄ, ㅶ, ㅷ, ㅺ, ㅻ, ㅼ, ㅽ, ㅴ, ㅵ, ㆅ, ㆀ, ㅥ이 있다.? 지금도 쓰이고 있으나, 옛 소리와 지금 소리가 달랐으리라고 생각 되는 글자: ㅇ, ㅓ, ㅕ, ㅝ, ㅚ, ㅐ, ㅟ, ㅔ, ㅒ, ㅖ, ㅅ, ㅈ, ㅊ, ㅆ, ㅉ, ㄹ이 있다.? 지금도 쓰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소리도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되는 글자: ㄱ, ㅋ, ㄷ, ㅌ, ㄴ, ㅂ, ㅍ, ㅎ, (ㄹ), (ㄲ, ㄸ, ㅃ), ㅡ, ㅣ, ㅗ, ㅏ, ㅜ, ㅛ, ㅑ, ㅠ, ㅘ, ㅢ, (ㅟ)1) 그 때 어학자들의 이 글자의 소리에 대한 설명.2) 다른 언ㄱ) 임자씨나 풀이씨 줄기의 끝소리 [ㅅ]가, 홀소리로 첫소리 삼은 씨끝이나 토씨가 이어날 때에-곧 홀소리 사이에 끼일 때에-[ㅿ]로 변동하는 것이 있다.(ㄴ) 한 형태소 안의 홀소리 사이에서.(ㄷ) 합성어의 둘째 말의 첫소리 [ㅅ]가 홀소리 사이에 들게 될 경우에는, [ㅿ]로 바뀌는 일이 있는데, 거의 같은 시기의 문헌에서 본디 소리 [ㅅ]를 지닌 꼴과 [ㅿ]로 변동한 꼴이 섞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ㄹ) 예를 들어 ‘?이와 앗이’의 경우처럼 [ㅿ]는 [ㅅ]과 통용된다.(ㅁ) 용비어천가에서는 사잇소리 적기에 [ㅿ]를 쓰고 있는데, 이것도 [ㅿ]의 소리와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ㅿ]가 잇소리란 점으로 보면 [ㅅ]와 같은 갈이소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로 울림소리사이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ㅿ]는 분명히 울림소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ㅿ]는 [ㅅ]의 울림으로 단정할 수 있으니, 곧 [ㅿ]글자는 [z]의 표기였을 것이다.[ㅿ]을 가졌던 옛말[??, ??, 겨?, ??] 따위 말은, 어떤 방언에서는 [ㅿ]가 완전히 없어지고, 어떤 방언에서는 [ㅅ]로 남아 있다.? 나래(용 12장), ??니(능엄 4:18), 오? 나래(1-4) [ㆍ](가) 훈민정음 해례의 설명훈민정음 해례의 설명에 의하면 이 설명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첫 부분은 [ㆍ, ㅡ, ㅣ]의 소리 설명이고 다음 부분은 [ㅗ, ㅏ ; ㅜ, ㅓ]와 [ㆍ, ㅡ]와의 소리 비교이다. 그리고 첫 부분은 두 방면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하나는 혀의 상태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리의 인상에 관한 것이다.(나) 혀의 상태에서 본 [ㆍ]소리혀는 세 가지 상태를 분별하였으니, 하나는 오그라지지 않음, 하나는 조금 오그라짐, 하나는 오그라짐이다. /ㅣ/에서 멀어질수록 혀는 오그라진다. 오그림은 [ㅣ]에서의 거리가 가장 먼 소리이고, 조금 오그라짐은 그보다 [ㅣ]에 가까워진 소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다) 소리의 인상에서 본 [ㆍ]소리성이란 분명히 청각 인상에 의한 설명이다. 해동제국기와 화한삼재도회, 그리고 일본말의 일부 단어와 우리말의 단어가 한 어원이었을 점이라는 것, 삼국사기를 통해 [뿔]이 [?]이었음을 통해 [ㅅ]이 [s]라는 점, 평안북도 자성, 강계 땅의 [?]의 첫머리 [ㅅ]이 [시]로 남은 것, [ㅻ]는 [sn]이외의 다른 소리로 생각할 도리가 없는 것과 같이 [ㅅ]도 [s]로 보지 않을 수 없는 점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마) [ㅅ] 끝소리첫째, 15세기 문헌의 표기법은, 월인천강지곡만 빼면 모두 거의 정확한 소리대로 적었으므로 한 음절은 항상 한 덩이로 뭉쳐져 있다. 그러므로 받침은 바로 발음에 있어서의 끝소리를 표시하는 것이 원칙인데, 받침으로 쓰인 [ㅅ]이 분명 [s]로 발음된 예가 많이 보인다.둘째, [??-]는 [??-]와 함께 쓰이다가 지금말의 [같(다)]로 바뀐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그와 비슷한 꼴을 가진 [??-]는 [닽-]으로 변하지 않고, [??-]~[?-]으로 쓰이다가 지금말의 [다스하다, 다습하다]로 남게 된다.셋째, [??-]의 /ㅸ/는 입술을 완전히 닫지 않는 갈이소리인데, 이 소리가 유지되려면 [ㅿ]도 닫음소리가 되기 어렵다. 그리고 [?]가 [우]로 바뀌는 것은 앞-뒤의 소리의 공깃길이 커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받침의 [ㅿ]는 갈이소리 이상의 공깃길을 가져야 한다.넷째, 훈민정음 해례에 끝소리를 여덟으로 정하고 있는데, 일곱은 지금말의 경우와 같으나 [ㅅ]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실제 표기에도 [ㅅ] 받침과 [ㄷ] 받침을 쓴 자리는 잘 결정되어 있어서 좀처럼 혼용되는 일이 없다.다섯째, 앞의 논증들로 보면 [ㅿ] 받침이 끝소리의 [z]를 나타내고 있음은 거의 확실한데, 그렇다면 받침의 [ㅅ]은 [s] 끝소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여섯째, [갓나?]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에 앞가지 [가-]가 붙은 것이므로 [kasna-]란 발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갓]의 [ㅅ] 받침은 [s]로 읽혀진다. 이 말이 [kasna-]로 발음되었기 때문에/ㅈ/가 다음의 「ㅈ」첫소리와 더물어 울림이 되었다는 설명은 불가능하다. 「이?저긔」와 같은 표기와「이실쩌긔」와 같은 표기의 뒤섞임은 「ㅉ」이 울림소리라면, 안울림의 휴식 다음의 /ㅈ/가 울림이 되는 꼴이니,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음성학적으로 15세기에도 지금말의 경우와 같이, 거센소리 : 된소리 : 약한소리의 대립이 있었다. 쌍서가 울림소리이고, 「ㅅ」-계 병서가 된소리였다고 주장함은 옳지 않다. 또한 한자음을 적은 쌍서는 울림소리고, 토박이말을 적은 쌍서는 된소리라고 주장하지만 이것 또한 모순에 빠진다.(2) 소리 바뀐 글자(2-1)「ㅇ」와 「ㆁ」「ㅇ」은 소리 없는 글자이다. 이러한 소리 없는 글자는 만든 이유는 그 때의 음운학자들은 한문글자의 소리가 초ㆍ중ㆍ종 세 소리로 갖추어 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한자의 소리는 반드시 초ㆍ중ㆍ종 세 소리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ㆁ」은 ‘어금닛소리’로 첫소리로 쓰였든지 끝소리로 쓰였든지, 반드시 「?」소리를 가진다. 뒷 시대에 내려오면서, 이 둘 글자꼴이 구별이 없게 되어, 첫소리의 「ㅇ」은 소리 없는 글자이고, 끝소리 「ㅇ」은 「?」를 나타내게 되었다.(2-2)「ㅓ」(ㅓ,ㅝ)지금말의 /ㅓ/는 분명히 다른 두 가지의 변이음을 가지고 있지만, 훈민정은 창제 당시엔 /ㅓ/는 단일한 음성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15세기의 /ㅓ/는 [?]나[?]의 한 쪽과 같았거나, 아니면 어느 것도 아닌 제 삼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에는 앞혀ㆍ반높은[-뒤, -(높은, 낮은)]홀소리는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러므로 /ㅓ/는 가운데 자리에서 앞자리로 움직이고 있지나 않았을까 추측된다.(2-3)「ㅚ, ㅐ, ㅟ, ㅔ, ㅒ, ㅖ, ㆉ, ㆌ, ㅙ, ㅞ, ㆎ」지금말의 홑홀소리인 「ㅐ, ㅔ, ㅚ」는 그 글자꼴로 보아서 정음 청제 당시에는 단순한 홑홀소리가 아니었지 않나 의문을 품게 된다. 만일 이 글자들이 홑홀소리가 아니었더라면, [aj, ?j, oj]와 같은 겹홀소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음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다른 두 글자를 쓸 필요가 없다. 발설중음의 「ㄹ」[l]와 반설경음의 「?」[?] 이 한 음소의 변이음이었기 때문이다.3. 음소 체계(1) 음소의 수(1-1) 닿소리[p, p ?,b]→/ㅂ/ 이 세변이음의 배치는 지금의 경우와 같다 생각되며, 훈민정음으로 [ㅂ]으로 표기하게 된다. 첫-끝소리로 쓰임.[t, t ?, d]→/ㄷ/ 위와 같은 경우와 같고, 정음으로는 「ㄷ」으로 표기된다. 첫-끝소리로 쓰임.[ts, dz]→/ㅈ/ 음절의 첫소리로만 쓰이며, 정음으로 「ㅈ」으로 표기된다.[k, k ?, g]→「ㄱ, [s]→「ㅅ」첫-끝소리로 쓰임.[h]→/ㅎ/ 뒤에오는 홀소리의 안울림소리로서, [a],[u],[?] (아래 。붙음)로 변이 되었으리라 추측된다.[β]→/ㅸ/ 거의 변이되지 않았으리라 추측되며, 정음으로 「ㅸ」표기되며, 첫소리로만 쓰임.[z]→/ㅿ/ 변이되는 일이 별로 없고, 주로 첫소리로만 나타나되, 끝소리로도 쓰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울림소리 사이에서만 쓰이며, 정음으로 「ㅿ」로 적힌다.[p']→/ㅃ/ , [t']→/ㄸ/ , [k']→/R/ , [ts']→/ㅉ/ , [s']→/ㅆ/ , [C]→/ㆅ/이것들은 된소리로 적었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독립한 음소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다.[p?]→/ㅍ/, [t?]→/ㅌ/, [k?]→/ㅋ/, [ts?]→/ㅊ/거센소리가 한 음소가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며, 거센소리는 죄다 첫소리로만 쓰인다.(다만 표기법에 있어서, 원형 의식이 작용할 때는, 「ㅍ, ㅊ」 따위가 받침으로 쓰이는 일은 있으나, 그렇다고 이것을 /ㅍ, ㅊ/따위 음소의 표기는 아니다.)[m]→/ㅁ/, [n]→/ㄴ/, [?]→/ㆁ/, [l, ?]→/ㄹ/겹닿소리 열도 그대로 겹음소로 성립된다.(1-2) 홀소리[i]→/ㅣ/, [?]→/ㅡ/, [u]→/ㅜ/, [?]→/ㅓ/, [?~?]→/?/, [o]→/ㅗ/, [a]→/ㅓ/[jo]→/ㅛ/ [ju]→/ㅠ/ [ja]→/ㅑ/ [j?]→/다.
음소의 정의음소란 변별적인 최소의 음적단위를 말한다. 음소의 정체를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여러 음운학자들과 관련하여 여러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음소 정의의 가장 고전적인 예로서, 먼저 쿠르트네이의 정의를 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음소는 ‘언어 음성의 심리적 대등’이라 정의된다. 이것은 심리주의적 관점으로서, 구체적인 말의 소리, 소리내기와 듣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물질적인 소리가 머리 속에 반영된 것이 음소라는 것이다. 곧 [p]로 나든 [b]로 나든 한국 사람의 머리 속에서 하나의 같은 소리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 소리들은 한국말에서는 하나의 음소가 된다는 것이다.쿠르트네이의 정의와 비슷한 것으로 비이크의 정의를 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한 언어의 음소는, 한 언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정신에 존재하는 언어 요소의 한 범주를 형성하는‘ 것이며 음소란 ’언어의식이 불가분리한 것으로 감지하는 최소의 단위‘란 것이다.말의 소리란 것은, 발음 작용을 통해서 음파로써 전달되고 귀로 청취되는 말하자면 생리-물리적인 현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소리도 있는 것이다. 곧 심리적인 소리란 것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쿠르트네이는, ‘언어음성’을 연구하는 부문을 ‘생리음성학’이라 한 데 대해서, 그 심리적 대등인 음소를 연구하는 부문을 ‘심리음성학’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아메리카의 언어학자 사피어도 일찍 말소리가 존재하는 세계가 둘이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그 한 가지는 심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곧 그는 영어의 ts가 말 끝에만 나타나는 닿소리떼임에 대해서, 도이치말에 나타나는 같은 소리는 한 소리의 심리적 대등으로서, 자유롭게 위치의 제한없이 쓰임을 주의 하였다. 한 언어에 독특한, 그리고 힘드는 음성적 분석으로만이 도달되는 순 객관적 음성 체계의 배후에, 더 한정된 내적인, 또는 관념적인 체계가 있는데 이 체계는 소박한 언중에게는 아마 다 같이 한 체계로서는 의식되지 않겠지만, 완성된 모형으로서, 심리적인 기구로서, 객 대한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한 회답을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음소의 정의는 그것으로써 음소를 가려낼 수 있는 방편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심리적 성격은 음소의 중요한 한 면이기는 하나, 이러한 한 면만으로는 음소를 가려내는데, 분석해 내는데 많은 난관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심리주의적 관점의 단점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매우 주관적이며 외국어 음운은 분석 불가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잘못된 예측으로 토박이 화자의 직관에서 정의 내렸기 때문이다.이러한 심리적인 파악 방법과 정반대되는 관점에서 음소를 규정하려는 방법이 있다. 국어의 [p]:[b]의 관계로써 설명한 바와 같이, 이 두 소리는 그 자리가 배타적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면, 자리가 배타적인 소리는 한 음소로 뭉쳐진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어떠한 소리이든지 자리가 배타적이기만 하면 한 음소로 묶이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고, 이에는 다시 두 소리는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조건이 하나 더 붙게 된다. 왜냐하면 음성적인 성격이 아주 다르게 되면, 그것은 같은 소리로 생각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정의 방법의 대표적인 예로서, 존즈의 설명을 들 수 있다. 한 음소란 어떤 언어에 있어서의 음성들의 가족인데, 그 음성들은 성격상 서로 관계가 있고, 그리고 그 가운데의 어떤 한 음성도, 한 낱말에 있어서, 다른 음성과 같은 음성적 환경에 쓰일 수는 없는 것이다. 곧 상보적 분포를 보이는 소리들의 집합이 음소라는 것이다. 이는 여러음성들의 분포가 배타적일 때, 그 음성들은 한 음소의 가족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이 정의는 결국, 우리가 국어의 [p]와 [b]로써 설명한 바와 같이, 두 음성이 서로 비슷하고, 그리고 그 자리가 배타적일 때는 한 음소로 뭉쳐진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정의 방법은, 심리적인 정의에 비하면, 주관적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적어서, 음소를 가려내는 데 이러한 정의를 적용하면, 문제를 객관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을 가진다.그러나 두 음 음성기관의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소리를 음성기관의 작용으로 돌이켜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임도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독으로 발음될 수 있는 낱말이 한 번의 조음 운동만으로 이루어질 때는, 우리는 쉽사리 그 하나의 조음 운동에 대응하는 하나의 낱소리를 알아챌 수 있게 된다. 소리의 연결체에 있어서도, 능동부의, 고정부에 대한 운동은 연속체로서, 그 사이에 낱소리의 토막을 잘라내기가 어려울 것 같으나, 그 운동에는 굴곡이 있어서 고정부에 대한 거리가 가장 가깝게 된 순간과, 그 거리가 가장 멀어진 순간이 있게 마련인데, 이러한 두 극단으로의 움직임은 그 사이에 어떠한 분절이 가능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하나의 소시란 등질적인 어떠한 인상을 주는 것이므로, 이러한 면으로 하나의 소리를 뽑아내기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존즈의 정의는 매우 가치있는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의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트루베츠코이는 음소는 그 심리적 성격으로나, 그 음성적 변이에 의해서는 만족스럽게 정의될 수 없고 오직 언어에 있어서의 기능에 의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어떤 언어에서 지적인 의미를 분화할 수 있는 모든 소리의 대립을 ‘음운적 대립’이라 하고, 이러한 대립에 있어서의 각 항을 ‘변별적 음운적 단위’라 한다. 그런데 이 음운적 대립은, 그 대립 부분의 범위에 일정한 한계가 없어서 도이치말의 bahne와 banne의 두 말은 그 첫 음절의 홀소리의 길이만의 다름이오, tausend와 Tischler에 있어서는, 그 첫 부분이 같을 뿐, 나머지 부분은 죄다 다르며, Mann과 Weib에 있어서는 같은 부분이라곤 전혀 없다. 여기에 있어서 서로 달라진 각 부분이 ‘변별적 음운적 단위’인데, 어떠한 변별적 음운적 단위는 더 작은 변별적 음운적 단위로 분석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와 같이 쪼개어 나가서, 그 이상 더 쪼개지지 않는 가장 작은 음운적 단위가 곧 단순 음운적 대립인데, 여기의 ‘울림’을 ‘음운적 단위’라 한다. 그는 음소를 때로는 동시적 음운적 단위로는 분석될 수 있되, 계기적 음운적 단위로는 분석될 수 없는 복합 음운적 대립의 일항의 일부라고 정의한다. [b]는 동시적 음운적 단위닌 ‘[p]+울림’으로 분석되나 계기적 단위로는 분석되지 않기 때문에, 한 음소가 되는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언어학에 있어서의 ‘형식론자’와 ‘실재론자’와의 대립을 볼 수 있다.형식론자는 모든 언어 단위에 있어서, 관계의 묶음만을 보게 된다. 그들에 있어서는, 음소 /p/나 또는 papier와 같은 단위는, 그것이 말의 연쇄에서 취할 수 있는 결합과, 조직 안에서의 이웃 요소와의 관계에 관한 자율성의 정도에 의해서만이 규정된다. 소리의 실질성은 그들에게는 흥미가 없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누구든지, 음소에 대해서 심리적인 존재를 생각하는 사람은, 음소에 신경-근육적 실재성을 부여하려 하는 사람과 같이, 실재론자인 것이다.트루베츠코이는 음소의 소리바탕에보다 말의 뜻을 달리하는 그 기능을 중시했고, 존즈는 음소와 그의 실현인 변이음과의 관계는 매우 알뜰히 파악하려 했으나, 그것이 말의 뜻을 달리하는 데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점은 약간 소홀히 한 느낌을 준다.음소의, 말의 뜻을 달리할 수 있는 기능을, 음소 자체의 물질적인 소리바탕에서 찾으려고 한 학자는 블룸필드이다. 블룸필드는 한 언어의 음소는, 소리가 아니라, 말할이가 실지 말소리의 흐름 속에 만들어 내고 인지하도록 훈련된 소리의 단순한 바탕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는, 음성 실험실에서 기록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소리의 모든 바탕을 ‘모든소리바탕’이라 하는데, 모든 바탕의 어떤 부분은 말의 뜻을 알아듣는 데 상관 없는것, 비변별적인 것이며, 그 중의 어떤 한 부분만이 뜻과 관련되어, 말의 통달에 본질적인 것, 변별적인 것이라 한다. 이를테면 영어의 man은 누가 어떤 때에 발음하거나 어떠한 높이를 가지지 않을 수 없으나, 이 소리의 높이는, 영어의 낱말의 뜻을 pelle-belle입안 : crispe-chrisme그리하여 그는, 각 음소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특징짓는 모든 변별적 바탕을 열거함이 좋다고 하고, 변별적 바탕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가까운 음소 끼리를 비교해 보아햐 한다고 하였다.그러나 음소를 분석해 내는 방법은, 트루베츠코이들의 방법과 비슷하다. 곧 한 낱말과, 그 소리가 일부 비슷한 다른 낱말을 맞댐으로 해서, 한 낱말의 음소를 가려내는 방법을 취한다.이러한 각도에서 음소의 본질을 보는것은 형식론과 실재론의 종합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소리바탕이라는 소리의 실질적(물질적)인 방면을 고려하면서도, 말의 뜻을 분화한다는 형식적인 면도 아울러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음소를 이러한 변별적 소리바탕의 묶음으로 보는 견해는, 트루베츠코이에서도 볼 수 있으나 그에 앞서 야콥손에서 볼 수 있는데, 그의 변벌적 바탕을 파악하는 방법은 특이하다. 그는 여러 쌍의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가지씩의 변별적 바탕으로써 음소를 규정하려 하였다. 이를테면, 입안의 공깃길의 공기의 흐름이 자유롭고, 주로 울림이 있는 것은 vocalic, 그렇지 않은 것은 non-vocalic, 입안 공깃길의 막음이 있는 것은 consonantal, 그렇지 않는것은 non-consonantal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소리의 바탕을 묶어 보면, 홀소리는 vocalic-nonconsonantal,닿소리는consonantal-nonvocalic,흐름소리는 vocalic-consonantal이 된다. 그 밖에도 compact와 diffuse, tense:lax, voiced:voiceless, nasal:oral, discontinuous:continuant 따위 여러 대립항을 설정하였다.짝대립으로 음소의 변별적 바탕을 파악하는 방법은 모든 바탕을 일관된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고, 따라서 논리가 정연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무리 없이 적용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어떠한 한 가지의 바탕의 있고 없음하다.
(3) 최재서의 모랄론호 석경우(石耕牛). 황해도 해주 출생. 경성대학 영문과를 나와 런던대학교에 유학하고 돌아온 후 경성대학 강사, 보성전문 ·법학전문(法學專門) 교수 등을 지내면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문학평론을 썼다. 1934년부터 문학평론을 시작, 종래의 경향문학(傾向文學) 비평이나 인상주의적 비평에 대하여 주지주의적 비평을 시도, 우리 문학에 과학적 비평 방법을 제시했다. 1939년 《인문평론》을 창간하여 친일적인 글을 쓰기 시작, 1941년 친일문학지 《국민문학》 주간,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이사를 역임하면서 천황숭배론자가 되었다.① 모랄론의 출발-불안 사조와 위기 의식30년대 당시 문화계에 팽배했던 불안 사조와 위기 의식에서 모랄론은 출발된다. 모랄론의 출발점이 된 시대적 위기 의식의 근원은, 당시 문단의 주류를 형성해왔던 카프의 붕괴와 프로문학의 퇴조라고 할 수 있다. 최재서는 이러한 시대적.사회적 위기가 문학적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작가가 충분한 창작 의사를 가지면서도 정직히 창작할 수 없는 모순 상태-이것이 즉 진정한 의미의 문학적 위기다.그러면 이상과 같은 문학적 위기가 조선에 도래하였느냐? 그렇다고 나는 대답한다. 인생 삼십을 지나고서도 오히려 문학밖에는 없다는 순직하고 강렬한 신념을 가지고 문학에 종사함을 가능케 할 신념과 지지가 조선에 있는가? 그는 믿을 뿐 아니라 사랑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실천할 만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는가? 자기의 순간순간의 부분적 자아뿐만 아니라 자아 전체를 통일할 만한 태도와 자기의 사색 생활뿐만 아니라 생활 전체를 규휼할 만한 주의나 원리를 가지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한 나라가 시대적,사회적 위기에 처하면, 그 영향을 받아 작가의 신념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신념은 자아를 통일하고 그의 생활을 규율할 수 있는 원리이기 때문에, 비록 작가들이 창작 의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신념이 없으면 원만한 창작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최재서는 「풍자문학론」을 통하여 “현재에 있어서 비평의 임무는 문학의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고 아울러 창작 지대를 방어함에 있다”고 하면서 그 실천을 보여준다. 최재서는 냉철한 과학적 판단력으로 인간을 파악하는 W. 루이스의 이론에다 A. 헉슬리에 연결되는 자기 풍자 방법을 접목시킨다. 이는 문단 위기의 타개책으로 제창되었다는 휴머니즘의 미래적 입장만을 내세움으로써 창작과 실제 비평에 전혀 공론을 거듭하고 있었던 한국 문단에 대한 혼란의 타개책으로서, 그 현실적 요청와 의의가 있는 것이다.② 비평과 모랄최재서의 모랄론은 문학의 본질을 도덕성과 윤리성에서 찾고 있는 입장이다.그는 ‘비평이란 가치 평가다’라는 명제를 비평의 기본 바탕으로 삼았다. 이는 비평의 해설적 기능과 평가적 기능을 상호 분리시키고, 비평의 본질은 해석을 넘어서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규정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학 작품의 가치 판단에 대한 적절한 기준이나 규범을 설정해야 한다. 이에 최재서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나 규범을 ‘도그마’라 이름하고, 비평의 임무는 적절한 도그마의 확립에 있다고 언급한다.도그마는 신념의 결정이고 또 그것의 표백이다. 그것이 없이는 비평가는 그 자신의 신념을 유지할 수 없거니와 표현할 수도 없다. 도그마는 비평에 있어서 허다한 과오를 범할 위험성이 있지만 그것이 없이는 비평은 성립되지 않는다. 도그마의 단정이야말로 비평의 유일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도그마야말로 감상과 무정형한 감수성의 끊임없고 한정없는 파도 속에 세워진 유일한 실체이다. 도그마는 우리들의 자유를 침범할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잠시도 그것에 주저하여서는 안 된다. 왜 그러냐 하면 비평의 궁극의 목적은 도그마의 비평이며, 또 문학의 필요성이나 또는 의사 이상의 가치를 표현하는 도그마만이 능히 비평적 정신의 습격을 감당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가치 평가의 기준으로서 도그마는 비평가의 신념과 가치 의식이 합리적으로 체계화된 것이다. 최재서는 이것을 모랄이라고 하였다. 그가 ‘비평은 가치 평가다’라는 주장은 바로 도그마와 모랄의 확립니다. 최재서의 견해는 가치 의식, 윤리 의식, 도그마,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비평의 고유한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는 진위와 선악에 입각한 인식 판단과 윤리 판단에 가깝다. 이는 단순히 선악에 기초하는 도덕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문학의 현실 인식과 사회적 의의를 매개로 하여 형성될 수 있는 하나의 체계적인 규범으로서의 도덕성을 뜻한다. 그런데 도그마가 권위로서 고정될때 그것은 경직된 도식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비평가 내면의 개성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처럼 판단자로서 비평가 내부의 개성과 외부의 도그마가 종합될 때 진정한 모랄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③ 작가와 모랄최재서의 모랄론이 작가와 장인을 구분하는 척도라고 할 때, 모랄의 기초는 작가적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적 자각이 없는 장인은 용한 화술로써 드는 사람에게 일시적인 소일 거리를 제공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작가적 자각은 독자를 즐겁게 할 때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무엇이나 실속 있는 것을 주고 나아가 독자들을 계발하고 지도하는 데서 생겨난다고 한다. 즉 작가적 자각의 바탕에는 작가의 직업적인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독자에게 쾌락만 주어서는 안 되고 그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최재서의 효용론적 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최재서는 작가가 모랄을 갖는다는 것은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뜻한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속문화란 인간이 자기가 속한 자연적 환경, 역사적 환경, 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기 위하여 지혜와 신앙으로 엮어낸 생활풍속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세시풍속, 마을신앙을 비롯한 여러 의례들을 통해 혈연적인 유대감은 물론 이웃간의 정을 더욱더 돈독히 쌓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데에 힘썼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듯이,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이웃과의 협력적인 생활방식을 통해 혈연적 관계 못지 않은 정을 나누었던 것이다.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전통적인 노동형태로서 두레와 품앗이, 사계절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 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쇠퇴해져갔고, 가택신앙이나 마을신앙 그리고 무속신앙 등도 미신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일생중에 행하게 되는 통과의례 등도 간소해지게 되었다.우리 조상들이 행하였던 민속문화는 종교적이고 주변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켜 주는 사회적 기능을 비롯하여 그 안에서 예술을 즐기고 축제의 한마당이 되기도 했던 다양한 기능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기능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민속문화가 상당수 쇠퇴해져 가고 있는데, 우리의 소중하고 가치있는 민속문화를 어떻게 하면 보존하고 이어나갈 수 있을까? 물론 시대는 많이 변하였다. 시대가 변한만큼 우리 선조들이 행하였던 민속문화 그 자체를 그대로 수용하여 현대인들이 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시대에 발 맞추어 현대에 적합하게 적용하여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2007년 ‘문예의 밤’ 풍물팀나는 현재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재학중인 학생이다. 우리 학과에서는 ‘문예의 밤’이라 하여 연극, 풍물, 시낭송 등을 공연하는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탈춤이나, 풍물을 공연함으로써 국어교사의 자질을 함양하는데 힘쓰고 민속문화인 풍물과 탈춤등을 활용하자는데에 그 취지가 있다.이렇듯 우리의 민속문화를 교육현장에 활용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에서 ‘한복입는날’을 정하여 제대로된 한복을 갖춰 입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요즘 아이들은 명절때에도조차 한복을 입어볼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한복이 어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어떻게 입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학교현장에서 ‘한복입는날’을 정하여 아이들에게 민속의상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체험해주게 하면 좋은 민속교육의 기회가 될 듯 하다.또한 체육대회 종목으로 고싸움이나 연날리기와 같은 세시풍속놀이를 포함시킨다. 초등학교 운동회에 청군, 백군이 있는 것을 활용하여 고싸움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보통 체육대회를 보면 줄다리기는 많이 행하고 있다. 줄다리기와 같은 차원에서 고싸움놀이도 함께 행하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연날리기를 활용하여 연줄을 끊는 등의 게임을 접목시켜 체육대회에한복을 입고 학교로! -대전금동초등학교(교장 김선진)는 2006년 6월 17일 학교 강당에서 ‘한복입고 걸음걸이가 바른 어린이’를 선발한다. 학교의 특색사업인 예절교육의 일환으로 매월 셋째주 토요일 실시하는 ‘한복 입는 날’ 행사인 것이다.‘한복 입는 날’에는 어린이들이 학교에 한복을 입고 와서 ‘큰절하기’, ‘역할극하기’, ‘옷고름매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활동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우리 고유의 한복을 일상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고유의 멋과 아름다움을 느끼며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되었다.지난 5월에는 한복을 가장 바르고 예쁘게 입은 어린이를 학년별로 선발하였다. 대전금동초 허예림(12)은 “한복은 명절에만 입는 옷인 줄 알았는데 학교에 입고 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요. 불편하여 어쩌나 걱정했지만 입고 생활해 보니 적응이 되요. 벌써 다음 달 한복 입는 날이 기다려져요.”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한껏 드러내었다.대전금동초등학교는 한복 입는 날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예절실 운영 등을 통해 바른 인성을 지닌 예절 바른 어린이를 기르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대전금동초 학교 뉴스활용하면 좋은 민속교육의 장이 될 것 같다.마을신앙은 미신이라고 취급되어 많이 쇠퇴해져 가고 있다. 특히 단골의 약화로 마을신앙의 전승이 단절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는 마을신앙을 지역축제로 활용하여 많은사람들에게 그 의미와 방식을 알린다면 조금이나마 우리 민속의 명맥을 이어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예로 ‘진도영등축제’가 있다. ‘진도영등축제’는 그 축제 행사에 전통민요와 민속공연등을 비롯하여 뽕할머니축원 등을 하여 전통문화축제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흥겨운 축제의 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전통 민속과 신앙에 대해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진도영등축제▶ 축제의 유래 및 특성: 아주 먼 옛날에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중 풍랑으로 표류하여 지금의 회동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호랑이의 침해가 심하여 마을을 호동이라 불렀다. 그 후 호랑이의 침해가 날로 심해져 살기가 어렵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의신면 ‘모도’라는 섬마을로 피하면서 황망중에 뽕할머니 한분을 호동마을에 남기고 말았다.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원하였는데 어느날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내릴테니 바다를 건너가라”는 선몽이 있어 모도와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기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호동과 모도 사이에 무지개처럼 바닷길이 나타났다. 그 길로 모도에 살던 사람들이 뽕할머니를 찾기 위해 농악을 치면서 호동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나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면서 기진하여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를 본 주민들은 뽕할머니의 소망이 이루어져 길이 열렸고 영(靈)이 등천(登天)하였다하여 영등살이라 칭하고 이곳에서 매년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1978년부터 관(官)주관하에 행사를 하였다.▶ 지역특성: 우리나라 서남단에 그림처럼 펼쳐진 인정이 넘치는 곳으로 다도해의 수려한 경관, 비옥한 토지, 그리고 온난한 기후속에 진도개와 구기자, 홍주, 검정약쌀 등 산물이 풍부하며, 예로부터 시·서·화·창 그리고 고유 민속이 살아 숨쉬고, 고려 삼별초의 대몽항전과 조선시대 이충무공의 명량대첩 등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던 호국의 얼이 깃든 곳이다.▶ 축제행사종목: 식전한마당, 전통민요·민속공연, 바닷길체험, 개매기, 조개잡이체험, 페러글라이딩 시범, 해상선박퍼레이드, 뽕할머니축원, 향토수석전시회, 진도개체험마당 등이밖에도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 강릉 단오제, 부여 은산 별신제, 완도 장보고당제 등이 지역축제로서 민속문화를 이어나가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있다.현대에 와서 우리의 전통악기나 민요보다는 서양악기를 중심으로한 음악이 전반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중음악 역시 거의 대부분은 서양악기를 이용한 음색과 리듬들이며 민요 공연등은 크게 감소하였지만 오케스트라 연주회와 같은 장르의 음악은 우리 문화속에서 크게 자리잡고 있다. 교회나 학교현장에서의 음악시간과 같은 경우에도 피아노, 바이올린 등과 같은 서양악기가 반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악기와 민요 역시 서양음악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중음악이나 우리 생활 속에 우리의 전통 악기인 가야금이나, 해금 그리고 풍물 등을 겸하여 음악을 만들어내어 퓨전형식의 음악을 창출해 내는 것도 전통 민요를 이해하고 그 민속을 이어나가는데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얼마 전 ‘sg워너비’의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노래의 전반부는 풍물과 함께 전통악기의 음색을 통해 반주가 이루어진다. 중간부에 들어서면 서양악기와 퓨전형식으로 음색이 이루어진다. 여타의 대중음악에 결코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훌륭하고 멋진 한 곡의 음악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전통악기를 이용한 음악도 충분히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을 현대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러한 전통민요를 결부시킨 대중음악이 많이 탄생되어 그 명맥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클래식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 우리의 전통악기인 가야금이나 해금 그리고 북을 대신한 징을 사용하는 퓨전 형식의 오케스트라의 탄생도 민속 의 현대적 활용의 방안으로써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이러한 방법을 활용하여 민속 뮤지컬을 만드는 등의 예술부문에 적절히 활용하면 훌륭한 문화로써의 창출이 될 것이다.전통적인 관점에서 가족 개념은 애정을 바탕으로 혈연 중심의 부모자녀관계의 생활공동체로 보았는데, 이는 한 사회의 규범과 사회구조적 특성에 적응되어 온 것으로 한 사회의 역사적 산물이며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의미와 가치 기준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결혼관의 변화, 가족 주의 가치의식의 약화, 부계 의식의 약화, 출산율 약화 등으로 무자녀 가정이 있는가 하면 입양 가정의 증가 등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과의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보보스족’, ‘프리터족’, ‘웰빙족’, ‘캥거루족’등의 단어가 생성될 만큼 가족 문화가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변화되고 있는 가족 문화에 맞추어,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혈연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를 가족이라 보는 것에 의거한다면, 현대에는 이러한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 걸맞는 가족이 몇 안될 것이다. 사회의 구조도 많이 변화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혼과 가족에 대한 가치도 많이 변화 하였다. 그러므로 종전의 제도적 가족의 개념에서 동반자적 가족의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진실이 담긴 ‘나’의 수필적막이 흐르는 이 시간,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 본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항상 아쉽고도 반성만 남는 지난 날들이다. 지난날을 반성하고 돌이켜 보면서 얻는 결론은, 헛되이 보냈다고 생각한 시간들의 댓가로 더 많은 노력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지난날의 보상을 위한 성공적인 미래를 만들어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난날이 후회되는 오늘 같은 날, 많지 않은 나이지만 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날엔, 나는 종이와 펜에게 의지하여 내 마음에 있는 투정을 부리곤 한다. 그럴때면 하소연 후에 느껴지는 한결 가벼운 마음이 나를 다시금 삶의 중심에 서게끔 도와준다. 내가 투정을 부리며 썼던 글, 그리고 다시금 삶의 힘을 얻게 해주었던 그 글, 그것이 바로 수필이다. 수필은 나의 고백이다. 그리고 참회록이다. 수필은 원고지에 쓰여지는 내 인생의 축도요, 고백소다. 그러므로 나는 수필이라는 텃밭에서 내 삶의 애환을 있는 그대로 소박하고도 진솔하게 그려내고자 한다.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왔는가를, 또한 삶의 무게 때문에 내가 짋어진 세속적 욕망에서 저지른 나의 잘못을 하나하나 고백하고자 한다. 그럴때면 수필은 나의 위로가 되어준다. 또한 피난처가 되어주며 내 삶의 안락한 휴식처가 된다. 나의 기쁨과 슬픔의 마당이기도 하며, 기쁠 때 수필은 나에게 있으며, 세상 사는 일에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역겨운 현실이 나에게 있어 수필의 현장이 되곤 한다.수필을 쓸 때에는 겸손과 진실을 갖춘 바른 마음의 자세를 갖고 수필쓰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마치 이 세상을 모두 아는 듯, 제 위에 아무도 없는 듯 생각하거나, 문학을 마치 생활의 도구로 삼거나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저 삶의 모습들을 사랑하는 마음자세로 수필을 써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하면 완숙한 문장보다는 사물에 대한 깊고 밝은 눈을 갖고자 애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모두 그만이 지니고 있는 개성적 특성이 있다. 이느 하나의 아름다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를 찾아내는 것이 소재의 선택이다. 이를테면 버스안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 친구,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 등등... 다른 이들은 전혀 눈여겨보지 아니하는 하잘것 없는 사물 하나하나에까지 의미를 부여하며 나의 시선이 머물도록 애쓴다. 그리고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의 발견, 어떤 내 나름대로의 의미와 진리를 찾아내고자 노력한다. 이는 수필을 쓰기에 앞서 멍석을 까는 그런 명상법이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이 같은 발견의 기쁨을 느리기 위하여 때를 놓치지 않고 언제나 깨어 있는 눈을 갖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것이 소재가 되는 수필을 쓰기 전에 나는 분주하게 메모하는 버릇을 버리지 않는다. 모처럼 주변의 사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망각하기 전에 메모라도 해 두어야 활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에 소용되지 않는 소재나 제재라도 그것이 어느 날 빛을 띠고 가치를 나타날 때도 있어서다. 수필을 흔히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붓 가는 대로 씌여진 글이 몇 편이나 될까? 적어도 글을 쓴다면 쓰기 전에 반드시 무엇을 쓸 것인가 머릿속으로 한동안 생각하게 될 것이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그 글의 차례나 내용을 구조화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할 것이다. 만일 그런 과정이 없이 무턱대고 붓 가는 대로 글을 쓴다면 이를 어찌 글이라 할 것인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수필의 일반적 정의에 반감이 있는 나로서는 수필문학이야말로 작가 스스로 비범하고 완숙한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한다.주변의 모습들을 통해 소재나 제재가 정해지면 어떻게 이것들을 진실되게 형상화시켜 놓을까 고심해야 한다. 다른 문학 장르도 그렇겠지만 수필만큼 글쓴이의 진실을 요구하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수필은 자신을 살피는 문학적 용기임은 물론, 수필만큼 독자를 감동시키는 문학도 없을 것이다. 글이란 자기 내면의 솔직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좋은 글일수록 은은한 인생의 향기를 지니게 마련이다. 아마도 이런 글을 읽는 이의 가슴에 충분히 와 닿을 것이다. 그래서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진한 감동을 주게 된다. 결국 수필의 생명은 진실이 아닐까 싶다. 글쓴이의 마음을 온통 드러내어 하얀 자아를 내보이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진실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진실의 목소리, 일상의 삶에 숨겨져있는 반짝이는 아름다움이 아롱져 있는 수필은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며 공감하게 된다. 따라서 생명이 있는 글로 형상화되기 위해서는 진실성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다.소재가 선택되고 이를 배열하여 한 편의 작품으로 짜기에 앞서 글의 주제의식의 구현을 위한 문학성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모든 문학작품 속에는 나름의 주제가 들어 있게 마련이다. 주어진 소재를 어떻게 의미화하여 언어로 질서화 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문학적 형상화라는 생명감을 불어넣기 위한 작업이다. 이 중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참신하고 산뜻한 서두 쓰기 그리고 여운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결말 쓰기는 한 편의 수필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촉매 구실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