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고려속요(高麗俗謠)에 대해서상층문화권의 정통가요인 가곡(歌曲) 혹은 시조 등에 비해, 정제되지 못한 노래나 아정(雅正 : 아담하고 바름)함을 잃은 노래. 일반적으로는 정가(正歌)와 대립되는 노래, 곧 잡스럽거나 속된 하층문화권의 노래라는 뜻으로 속가(俗歌) 또는 잡가(雜歌)라고도 한다.그러나 한국문학사에서 ‘속요’라는 명칭은 경기체가(景幾體歌)와 더불어 고려시대 가요의 주요한 몫을 차지하는 특정한 장르 명칭으로 통용된다. 즉 조선 후기에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하여 집중적으로 창출된 잡가(속가)와는 별개의 장르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속요라 하면 일반적으로 고려시대에 경기체가와 더불어 공존하였던 노래들을 가리키며 속악가사를 통해 그 모습을 살필 수 있다. 한때 고속가(古俗歌)나 장가(長歌)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별로 쓰이지 않고 있다.한편 속요와 유사한 개념으로 ‘속악가사’라는 명칭이 있으나 이 둘은 구별된다. 속요는 특정한 형식적 구조와 담당층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장르 명칭이다. 이에 비하여, 석악가사는 ≪고려사 高麗史≫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실려 있는 모든 가요를 비롯하여 ≪악학궤범 樂學軌範≫·≪악장가사 樂章歌詞≫·≪시용향악보 時用鄕樂譜≫ 등의 악서(樂書) 또는 가집(歌集)에 실려 있는 노래 가운데 고려의 궁중속악으로 쓰인 가요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속악가사에는 속요를 비롯하여 향가·불가(佛歌)·무가(巫歌)·경기체가·지방민요 계통의 노래 등이 포괄된다.〔형 성〕 속요가 언제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현존 작품의 구조와 음악과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형성과정을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이는 현전하는 고려가요 가운데 상당수의 작품이 별곡(別曲) 혹은 별사(別詞)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데 주목하고, 이 별곡체의 형성과정의 하나로 속요의 생성을 밝히는 방법이다.즉, 별곡 혹은 별곡체 가요는 고려 예종 11년(1116)에 송(宋)나라로부터 대성악(大晟樂)이 들어옴에 따라 고려의 전통가악(歌樂)에 일대변혁이기 때문에 민요 가운데 지극히 한정된 범주를 선택하여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민요와 차이를 보인다.이를테면 민요는 원칙적으로 노동을 중심으로 한 민중의 고통과 현실 체험 및 애환을 담은 내용이 주류를 이루면서 그것이 노동요(勞動謠)로 나타난다. 혹은 그러한 고통과 비탄의 감정을 잊기 위한 생활의 지혜로 여가를 틈타 향락과 놀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유희요(遊戱謠)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속요는 이와 같은 민요와는 기능을 달리하므로 노동이나 고통스런 삶의 현장에서 지어진 민요보다는 향락 자체를 추구하는 상층인의 기호에 맞는 민요에 한정된 수용을 보인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미의식〕 대부분의 고려속요는 미적 범주의 측면에서 볼 때, 우아미를 바탕에 깔면서 비극미를 구현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정읍사〉·〈사모곡〉·〈동동〉·〈서경별곡〉·〈청산별곡〉·〈만전춘별사〉·〈이상곡〉·〈가시리〉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속요의 시대배경이 되고 있는 고려 후기의 사회 현실이 투영된 때문으로 보인다. 즉, 이 시대는 잦은 내우외환으로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하게 되고, 그에 따른 삶의 파탄과 비극적인 현실은 결코 현실을 우아하게만 바라볼 수 없게 하였다.그렇다고 비참한 삶을 의탁하고 그 고통을 이겨낼 만한 뚜렷한 신앙이나 이상적인 정신원리도 확고하게 설정되지 못하였다. 불교는 그 현실적 의의를 상실한 채 타락해갔고, 신흥사대부계층에 의하여 새로이 채택된 성리학도 확고한 정신원리로 작용하기에는 시기상조였던 것이다. 따라서 신앙이나 이념을 바탕으로 한 숭고미의 구현은 불가능하였다.다만 이 시기의 숭고미는 무속집단을 중심으로 한 무가계통의 궁중무악에서 구현되었을 뿐이다. 단 현세적이고 유한한 사랑을 이상화(理想化)·영구화(永久化)하여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고자 할 때, 우아미가 숭고미와 결합하여 표출되는 예를 〈정석가〉에서 볼 수 있다.속요에서 풍자나 해학에 의한 골계미의 구현도 찾아보기 어려운 범주이다. 왜냐하면 골계미는 숭고미와 함수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즉, 골계미가 즐겨 선로 되어 있는 부분은 4절 중 1절 부분만이어서 각 절의 음악이 같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1절의 가사가 16정간으로 된 악보 6행에 나뉘어 들어가 있다. 즉, ‘가시리 가시리’가 첫째행, ‘잇고 나勘’이 둘째행, ‘槨리고 가시리’가 셋째행, ‘잇고 나勘 위’가 넷째행, ‘증즐가’가 다섯째행, ‘대평성대(大平盛代)’가 여섯째행에 들어가 있다.각 행은 고(鼓)·요(搖)·편(鞭)·쌍(雙)의 장단으로 되어 있고, 각 행의 첫 박에는 박(拍)이 들어간다. 종지 부분인 ‘(대)평성대’ 부분은 선율이 하일(下一)·하이(下二)·하삼(下三)·하사(下四)·하오(下五)로 순차 진행하여 하강 종지를 하고 있다.≪참고문헌≫ 時用鄕樂譜(延世大學校 東方學硏究所, 1955), 麗謠箋注(梁柱東, 乙酉文化社, 1955), 韓國古典詩歌의 硏究(金學成, 圓光大學校出版局, 1980), 高麗時代의 가요문학(金烈圭·申東旭 編, 새문社, 1982), 韓國音樂通史(宋芳松, 一潮閣, 1984), 高麗歌謠의 作者層과 受容者層(金學成, 韓國學報 31, 一志社, 1983),2. 동동(動動)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고려시대에 구전되어 내려오다가 조선시대에 문자로 정착된 듯하다. 가사는 한글로 ≪악학궤범≫에, 작품해설은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각각 실려 있다. 내용에 남녀간의 애정을 그린 것이 많다 하여 고려시대의 속요(俗謠)로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고려시대부터 이 노래는 아박(牙拍 : 고려시대 궁중무용의 하나)의 반주가로 불리었다. 노래 형식은 전편 13장으로 된 연장체(聯章體)로, 첫머리의 서장(序章)을 제외하고는 달거리〔月令體〕로 되어 있다.민요의 달거리는 달마다 세시풍속을 노래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보통 1월은 답교(踏橋), 2월은 연등, 5월은 단오가 그 배경이다. 이 점은 〈동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동〉은 세시풍속이 달마다 설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달은 확실히 드러나 있고 어떤 달은 무엇을 노래하는지 불확실한 것도 있다.이 작품에서 2월은 연등, 5월재현한 바 있다.≪참고문헌≫ 時用鄕樂譜, 樂章歌詞, 琴合字譜, 國文學全史(李秉岐, 新丘文化社, 1960), 韓國歌謠의 硏究(金東旭, 乙酉文化社, 1961), 韓國音樂 7(國立國樂院, 1970), 高麗歌詞硏究(金尙德, 淸州大學校 論文集 5, 1966), 古代文學의 現實性 硏究(金鍾雨, 釜山大學校 國語國文學 7·8집, 1968), 思母曲 新考(李鍾出, 梁柱東博士古稀紀念論文集, 探求堂, 1973), 高麗歌謠 思母曲 新考(姜憲圭, 국어국문학 84, 1980), 韓國古典詩歌의 硏究(金學成, 圓光大學校 出版局, 1980), 張師勛博士回甲紀念東洋音樂論叢(한국국악학회, 1977).5. 상저가(相杵歌)고려 속요의 한 곡명. 조선 초기의 악보인 ≪시용향악보≫에 가사와 악보가 전한다. 이 노래는 사설의 내용으로 보아 방아타령의 일종으로 추정된다.사설의 뜻은 “들커덩 소리나는 방아지만, 하찮은 밥이라도 지을 수 있음이 다행이로다. 시아버지 시어머니께 먼저 밥상을 차려드리고 남는 것이 있거든 내가 먹으리다.”라는 것으로 되어 있다.≪시용향악보≫에 전하는 사설은 다음과 같다.桀긔동 방해나디히 히얘게우즌 바비나지袋 히얘아바님 어머님○받萊고 히야해남거시든 내 머고리히야 해 히야해이 사설은 민요의 선소리와 뒷소리를 연상시켜 주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사설은 평조의 악조로서 16정간보 16행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한편, ≪시용향악보≫의 〈상저가〉는 1976년 김기수(金基洙)에 의해 편곡, 재현되었는데, 김기수는 ≪시용향악보≫ 등에 전하는 〈상저가〉를 고악보의 내용에 근거하고, 나름대로의 재해석을 통하여 관현악 반주를 수반하는 중창형식으로 재구해 내었던 것이다. 이 음악이 ≪한국음악≫ 제7집에 전한다.≪참고문헌≫ 韓國音樂 7(國立國樂院, 1977), 時用鄕樂譜(韓國音樂學資料叢書 22, 國立國樂院, 1987).6. 서경별곡(西京別曲)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속요. ≪악장가사 樂章歌詞≫·≪대악후보 大樂後譜≫·≪시용향악보≫에 실려 있어 악곡 구조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작자와 제작동모르는 이내 몸이·내 님 두고서 다른 산에 올라가겠느냐·이 모두가 하늘이 낳은 연분의 기약인데·님이시여, 함께 지내고자 하는 기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소 님이시여, 함께 지내자고 했던 기약이 있을 뿐이외다.”이 노래에서 그 뜻을 알기가 어려운 부분이 ‘깃慨 열명길’이라는 구절이다. 이 노래의 어울림소리(和聲二有聲無詞)는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이다. ‘다롱디우셔’는 ‘다롱’ 계열의 어울림소리로 흥겨운 가락을 담은 것이고,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는 바삭바삭 소리를 내면서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서리를 밟는다는 뜻인 ‘이상’은 ‘서리를 밟게 되면 장차 단단한 얼음의 계절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어야 된다.’는 경계의 교훈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의 출처는 ≪주역≫ 곤괘초육(坤卦初六)에서 나온 것이다.곤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어서 땅의 바탕을 나타내는 것으로, 남자와 여자를 두고 말할 때 여자 쪽이 되는 것이다. 부드럽고 순하면서도 정조를 굳세게 지키는 것이 땅의 이치요, 여자가 걸어가는 길이라고 가르쳐준 대목이다.이 노래의 전체 뜻이 사람을 가르쳐 일깨우는 것이어서 고려 궁중악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표현이 음란하여 조선 궁중악에서는 배척을 당하게 되었다.≪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列傳, 成宗實錄, 樂學軌範, 樂章歌詞, 麗謠箋注(梁柱東, 乙酉文化社, 1954), 韓國文學史(呂增東, 螢雪出版社, 1974), 樂學便考(李衡祥 編, 權寧徹解題, 螢雪出版社, 1980).10. 정과정곡(鄭瓜亭曲)고려 때 정서(鄭敍)가 지은 가요.〔제작동기 및 연대〕≪고려사≫ 악지에 제작동기와 이제현(李齊賢)의 해시(解詩)가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말 노래는 ≪악학궤범 樂學軌範≫에 전한다. 또, ≪대악후보 大樂後譜≫에는 노래와 함께 곡조도 아울러 표시되어 있다.우리말로 전하는 고려가요 가운데 작자가 확실한 유일한 노래이다. ≪고려사≫ 악지에 따르면 작자는 인종과 동서간으로서 오랫동안 왕의 총애를 받아왔는데, 의종이 즉위한 뒤 참소다.
1. 고대가요의 개념 및 발생◎ 고대가요의 개념고대 가요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하는 시대부터 향찰 표기의 향가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존재하였던 시가를 총칭한다. 그 시대의 문화유산으로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에 고대 가요의 제목들이 기록되어 있으나, 노랫말까지 전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더욱이 우리 고유의 문자가 없었던 까닭에 대부분 한역하여 전해져 그 본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다.이와는 달리 신라의 노래인 향가는 역사학에서 구분하는 시대로 보아서는 고대 가요라 할 수 있으나, 향찰이라는 독특한 표기 방법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를 기록한 삼국유사에 이미 향가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므로 국문학에서 별도의 갈래로 본다.◎ 고대가요의 발생아득한 옛날 이 땅에 자리 잡은 우리 선인들은 하늘을 숭배하고 그에 대한 경외감(敬畏感)을 제천 의식(祭天儀式)으로 표현하였다.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삼한의 농공시필기(農功始畢期) 때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음주와 가무를 즐기던 집단적인 행사가 모두 그 예이다. 이러한 행사를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원시 종합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는 음악, 시가, 무용 즉 가무악(歌舞樂)이 어우러진 것을 말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술 한 잔 걸치고 노래하며 춤추는 것(음주가무(飮酒歌舞)`이 원시종합예술인 것이다. 이중에 `노랫말`에 해당하는 것이 고대가요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이러한 음주가무의 전통이 있었던 바, 일찍부터 가요가 발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2. 삼국 이전의 시가여기서 삼국 이전의 시가라 함은 우리나라 원시 시가로부터 삼국 정립(鼎立) 이전의 고대 시가를 말한다.그런데, 이 고대 시가를 연구함에는 옛 문헌이 너무나도 적다. 더욱이 중년에 와서 소위 ‘상말은 책에 싣지 않는다〔詞俚不載〕’라는 사대 사상에 젖은 지난날 유학자들의 그릇된 생각으로, 고대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의 말로 읊은 훌륭한 시가가 많이 있을 줄 믿으나, 입으로 전승하여 유동하는 구비(口碑) 시가가 자칫하면 사라지기 쉬운 것을 그나마들이 투항해오면 여기에 두었는데, 이에 따라 성의 이름을 내원성이라 하였고, 노래도 이에 따라 〈내원성〉이라고 했다고 한다. 내용과 형식을 전혀 알 수 없는 작품이다. 희귀한 고구려가요 중에서 이름 정도만을 제공하여주는 자료이다.≪참고문헌≫ 高麗史.(3) 연양가(延陽歌)고구려 때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가사는 전하지 않고 그 내력만이 ≪고려사≫ 권71 삼국속악(三國俗樂) 고구려조에 전한다. 연양현(延陽縣)에 한 충실한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였다.자기 몸을 나무에 비유하여 말하기를, “나무가 자신을 불태워 재가 되도록 직분을 다하듯이 나도 비록 재가 되어 버리더라도 열심히 일을 사양하지 않겠다.”라고 읊었다는 내용이다. 몇 곡 전하지 않는 고구려 가요의 단편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참고문헌≫ 高麗史.4. 가락국 시가고대 시가의 하나로 가락국(駕洛國) 건국 신화 속에 끼어 든 가 전하고 있으니, 여기서 살펴보기로 한다.(1) 구지가(龜旨歌)작자·연대 미상의 고대가요. 영신군가(迎神君歌)·구하가(龜何歌) 또는 구지봉영신가(龜旨峰迎神歌)라고도 부른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으나, 관련설화와 4구체의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삼국유사》권2 가락국기조에 전한다.龜何龜何 / 거북아 거북아首其現也 / 네 머리를 나타내어라若不現也 / 만약에 나타내지 않으면燔灼而喫也 / 구워서 먹겠다.이에 의하면 서기 42년 3월 계욕(擧浴)의 날에 북쪽 구지에서 수상한 소리로 부른 것이 있었다. 무리 200∼300명이 거기에 모였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지만 그 형상은 나타나지 않고 소리만 내어, “여기에 누가 있느냐?”라고 묻더라는 것이다.구간(九干) 등이 “우리가 있소.”라고 대답하자,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하고 재차 물어오자, 구간이 다시 “구지요.”라고 대답하였다.이에 다시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와서 나라를 새로 세워 임금이 되라 하였기에 여기에 내려왔다. 그러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를 파서 흙을 모으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채록되어 악장(樂章)의 하나로 정착하게 되었으나, 중종 때에 이르러 음란한 노래라 하여 궁중에서는 폐지되고 새로 만든 악장인 〈오관산 五冠山〉으로 대용하였다(중종실록 13년 4월조).◎ 가사 : ≪악학궤범≫에 수록된 노래의 원문과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① 원문(前腔) 槪하 노피곰 도愷샤/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後腔) 全져재 녀러신교요/어긔야 즌倨를 드倨욜셰라/어긔야 어강됴리(過篇) 어느이다 노코시라(金善調) 어긔야 내 가논倨 점그肩셰라/어긔야 어강됴리(小葉) 아으 다롱디리② 현대어 풀이달아 높이 높이 돋으시어/어기야차 멀리멀리 비치게 하시라/어기야차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시장에 가 계신가요/어기야차 진 곳을 디딜세라/어기야차 어강됴리/어느 것에다 놓고 계시는가/어기야차 나의 가는 곳에 저물세라/어기야차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박병채 역)〔형 식〕 음악 형식은 전강(前腔)·후강(後腔)·과편(過篇)·금선조(金善調)·소엽(小葉)으로 되어 있으며, 시의 형식은 11행이고, 후렴을 뺀 기본 시행(詩行)만으로 본다면 3연 6구의 형식이 되고, 또 각 연의 음절수가 3음 또는 4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여 시조의 3장 6구 형식의 근원을 〈정읍사〉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이 많다.각 연의 후렴을 보면 제1·3연에 해당하는 전강과 과편에는 각각 2구씩 되어 있으나, 제2연에 해당하는 후강에는 ‘어긔야 어강됴리’ 1구뿐이고, 음악적인 악조(樂調)인 소엽(小葉)에 해당하는 ‘아으 다롱디리’가 없다.그리하여 후강이라는 악조명 다음에 ‘전(全)’자를 붙여 후강에는 소엽 ‘아으 다롱디리’가 없는 것이 온전하다는 뜻으로 후강전(後腔全)이라 표시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아직은 어느 문헌에도 ‘후강전’ 이라는 악조명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후강에 소엽 ‘아으 다롱디리’가 있어야만 완전한 것이 된다.특히, 시가 형태면에서 보더라도 〈정읍사〉가 백제가요로 인정되기는 하나, 오랜 세월 고려속요와 함께 불려오는 동안 다분히 고려적인 성격으로 변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으므로 즐겁게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따라서 일종의 태평가라 하겠다.≪참고문헌≫ 高麗史, 文獻備考.(4) 방등산가(方等山歌)신라 말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백제 노래.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노래의 내력만이 ≪고려사≫ 권71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전한다.그리고 작품명과 지명들은 다르지만 같은 내력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전한다. ≪고려사≫에는 제목이 ‘방등산’이고 방등산이 나주의 장성경내(長城境內)에 있다고 하였으나, ≪증보문헌비고≫에는 제목이 ‘반등산곡(半登山曲)’이며, 반등산은 고창에 있다고 한다.그러나 작품의 내력은 두 기록이 같다. 신라 말기에 도적이 크게 일어 이 산에 근거를 두고 양가의 자녀를 많이 잡아갔는데, 그 가운데 장일현(長日縣)의 여인이 역시 잡혀가 이 노래를 지어 자기 남편이 와서 구해주지 않음을 풍자하였다고 한다.≪참고문헌≫ 高麗史, 增補文獻備考.(5) 지리산가(智異山歌)백제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고 제목과 노래의 내력만이 ≪고려사≫ 권71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전하며, 그 내용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옮겨져 있다.≪고려사≫에는 작품명을 ‘지리산’이라 적고 있고, ≪증보문헌비고≫에는 ‘지리산가(智異山歌)’라고 적고 있다.노래의 내력은 구례(求禮)의 한 여인이 집안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용모와 부덕을 갖추고 지리산 밑에 살았는데,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궁으로 데려가 첩을 삼고자 하였으나 그녀는 이 노래를 지어 죽기를 맹세하고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내력이 ≪삼국사기≫열전(列傳) 제8 도미처조(都彌妻條)와 유사한 점이 있어, 〈지리산〉의 작자가 도미의 처라는 주장이 있으나, 〈지리산〉에 대한 설명이 너무 짧아 속단하기는 어렵다. 거의 전하지 않는 백제가요의 일면을 보여주는 자료이다.≪참고문헌≫ 三國史記, 高麗史, 增補文獻備考.6. 신라 시가(1) 신라 시가의 명칭◎ 도솔가(兜率歌)「삼국사기」권1 신라 본기(本紀) 제1 유리왕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다.이 때 진 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會蘇會蘇(회소회소)’라 하였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도 아담하였으므로 뒷사람이 그 소리를 인연으로 노래를 지어 ‘회소곡’이라 이름하였다는 것이다.따라서 이 노래는 개인적·서정적인 내용이 주조를 이루는 가악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노래의 명칭인 ‘회소’에 대하여서는 ‘아소(아소서, 知)’로 풀이하는 견해와 ‘모이소(集)’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다.≪참고문헌≫ 三國史記, 增補文獻備考, 新羅歌樂試攷(崔正如, 淸大春秋 9, 1961).② 물계자가(勿稽子歌)신라 내해왕 때 물계자가 지은 노래. 가사는 전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그 내력만이 전한다. 이에 의하면, 물계자는 포상(浦上) 싸움과 갈화(竭火) 싸움에서 군공(軍功)이 컸으나 포상되지 않았다.그러자 그의 아내에게 “내 듣건대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위태함을 보고는 목숨을 바치고, 어려움을 만나서는 몸을 잊고 절의(節義)를 지켜 사생을 돌보지 않음을 충이라 하는데, 무릇 보라(保羅)·갈화의 싸움은 진실로 국난이요 임금의 위태함이었으나, 나는 일찍이 몸을 잊고 목숨을 바친 용맹이 없었으니 이것은 불충이 심함이요, 이미 불충으로써 임금을 섬겨 누(累)를 아버지에게 끼쳤으니 어찌 효라고 하겠는가. 이미 충효를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조정과 시정(市井)에 설 수 있겠는가.” 하였다.이에 머리를 풀고 거문고를 메고 사체산(師巡山)에 들어가서 대나무의 곧은 성벽(性癖)을 슬퍼하여 그것에 기탁(寄托)하여 노래를 짓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비겨서 거문고를 타서 곡조를 지으며 숨어 살고,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이 기록에 의하면 〈물계자가〉는 개인적·서정적인 내용으로 지어진 금곡(琴曲)의 가악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라 초기 부족연맹국가시대에 개인 작가(作歌)의 기록으로는 이 노래가 처음 보이는 것이므로, 신라의 시가문학사상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노래라 하겠다
한중만록(閑中漫錄)◇ 목 차 ◇1. 서론2. 한중만록의 특성2.1 각 권의 구성2.2 실기문학적 면모2.3 궁정문학으로서의 한중만록3. 한중만록의 장르성향3.1 수필로서의 한중만록3.2 소설로서의 한중만록4. 한중만록에 나타난 혜경궁 홍씨의 태도4.1 효와 충4.2 예(禮)와 연민, 두려움과 체념4.3 모정(母情)5. 한중만록의 의의6. 결론1. 서론혜경궁 홍씨는 1795년, 혜경궁 홍씨의 글을 집안에 남기고 싶어한 조카의 부탁으로 한중만록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혜경궁의 나이 환갑이던 이 해부터 67세, 68세, 71세 총 네 번에 걸쳐 집필되어 총 6권 6책으로 완성되었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중만록의 장르성향과, 한중만록의 지은이 혜경궁 홍씨의 태도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이를 중심으로 그 현실에 있던 인물들, 특히 작자인 혜경궁 홍씨의 태도에 대해서도 총체적으로 파악할 때 올바른 연구가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2. 한중만록의 특성한중만록의 역사적 배경에 관한 사항이나 혜경궁 홍씨의 족보는 지면관계상 생략하고 한중만록의 각 권의 구성과 실기문학적 면모에 대해서 논해보겠다.2.1 각 권의 구성2.1.1 제1권한중록을 쓰게 된 계기가 조카인 홍수영의 부탁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혜경궁 홍씨가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나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온 뒤 시아버지와 남편의 사랑을 받은 일, 이후 정조를 낳고 환갑을 맞기까지의 여러 가지 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이 때의 기록은 풍파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그런지 다른 권에 비해 담담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기술하고 있다.2.1.2 제2권과 3권임오화변의 주체인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위태했던 일들의 기록이다. 사도세자의 비범한 탄생과 뛰어난 자질, 죽을 경종의 궁인들에게 어린 세자를 보육하게 한 영조와 선희궁에 대한 원망, 사도세자의 기이한 병과 부자간의 갈등, 영조의 유별난 자식 편애, 사도세자의 비행으로 겪었던 마음고생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혹 친정집에 누에 없었다.① 실기문학은 사실성에 바탕을 둔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한 개인적인 체험이라 할지라도 공동체의 운명과 도덕적인 명분에 관련을 맺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글로 다루게 된다.② 기술방법은 기록과 표현의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다. 사태를 반성하는 입장에서 회고적 전망에 의한 예언 의식으로 주장하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하고, 현실과의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비현실적인 묘사도 서슴지 않았다.③ 역사적 시련에 대하여 좌절하지 않고 , 언어 예술의 內存的 질서에 기대어서 갈등의 지속으로 확대시키지 못한 체, 사실성에 입각하여 교훈적 성과에 치중하고 있다.④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역사와 설화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⑤ 작품을 전개해 가는 화자의 목적의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로써 기록 문학의 특성에 일치된다.한중록에서는 이러한 실기문학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사도세자의 탄생이나, 세자의 총명함을 이야기 한 부분에서 실록(實錄)의 기록과 한중록의 기록이 일치한다는 것이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2.3 궁정문학으로서의 한중만록2.3.1 궁정문학의 형성 배경2.3.1.1.시대적 배경임진왜란을 겪은 이후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왕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객관적인 인물로 대상화시켜 종이 주인의 시비를 가리는데 까지 나아간다. 이를 바탕으로 궁정문학 작품, 곧 「계축일기」, 「인현왕후전」, 「한중록」이 나타난다. 이 세 작품 중 「한중록」은 유일하게 작가가 밝혀져 있는 작품인데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영조의 며느리이고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는 네 번에 걸쳐서 자신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역사적인 사건들과 결부시켜 자신의 심회를 드러내고 있다. 사도세자를 두둔하면 영조에게로 화살이 돌아가고 영조를 두둔하면 남편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곤혹스러운 입장에서 작자는 이를 쓰고 있다. 그러한 입장을 바탕을 깔고,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절대권자인 왕의 처사를 간접적으로나마 비판할 뿐 아니라 사도세자의 비행도 드러내어 궁중 절대권자들의 기 때문에 어휘면에서 특수한 궁중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경어 사용에 있어서도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등장인물이 왕이나 왕후들이었으며 작자 또한 그러한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궁중문학들은 극히 보편화된 관용적 비유를 제외하고는 사물이나 행동을 서술함에 있어 비유의 수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즉, 어떠한 꾸밈이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여성 특유의 필치로 궁중의 이면을 사실 그대로 그렸으면서도 직접적인 감정의 노출을 피했다. 인간 심리의 묘사에 있어서도 다른 동시대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뛰어난 면을 갖고 있었다.3. 한중만록의 장르성향한중만록이 수필인가 아니면 소설인가 하는 것은 현대의 기준에서 규정하는 것으로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한중만록이 수필적 성격과 소설적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의 성격상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바로 이 점이 작품을 감상하는 독자에게 긴장감과 작품의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3.1 수필로서의 한중만록오늘날의 장르론에서 생각해 볼 때, 소설은 허구적인 서사의 성향을 수필은 경험적 서사의 성향을 보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소설은 미와 선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의 대립에 의해 갈등을 야기하고, 그 결과에 따라 희극과 비극으로 색깔을 달리하게 된다.수필은 경험적 서사의 추구 대상인 ‘사실’을 텍스트에 담고 있어야 한다. 이때 수필이 추구하는 사실은 경험적 사실이다. 경험적 사실은 수필이 수필의 위치에 놓이게 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수필에는 경험적 자아가 반드시 등장해야 하며, 이것은 자서전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자서전에서는 경험적 자아가 텍스트에 위치하여 끊임없이 사실을 추구해야만 한다.경험적 서사에는 경험적 자아가 텍스트의 화자로 등장한다. 허구적 서사에는 허구적 자아가 텍스트의 화자로 등장한다. 경험적 자아는 저자와 동일성을 가지며, 저자가 곧 텍스트의 화자가 될 수 있다. 반면 허구적 서사의 허구적 자아는 저자와 동일성을 지닐 수도 있고 지니지 않을 수도 있다. 가치있는 체험을 선택하여 문학적 재구성을 하게 된다. 역사의 문학적 재구성은 무수히 많은 이야기의 흐름을 텍스트에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한중록은 사실의 있는 그대로의 전달이라는 객관적 서사물인 역사와는 성격을 달리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중록은 역사와는 또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간직한 서사물로서 소설적 성향을 내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게 된다.3.2 소설로서의 한중만록저자의 과거 기억에 현재적 의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추가된다는 것이며, 이것이 한중록의 집필목적을 수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저자의 과거 기억에 추가되는 것이다’ 라고 쉽게 단정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저자의 과거 기억에 현재적 의식과 미래에 대한 기대의 추가는, 경험적 서사물로서의 자서전의 본래 목적인 진실추구에 상당한 간섭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중록은 과거의 불완전한 기억에 저자의 간섭이 추가되어 집필 목적이 수립되며, 자서전으로 미학적 형상을 갖추면서 보다 소설적인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기억에 추가된 저자의 간섭은 곧, 저자에게 주어진 픽션 충동이며, 이는 결국 한중록이 자서전으로서 소설적인 성격을 내포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만약 한중록이 저자 혜경궁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집필되었고, 저자의 주관성이 완전히 배제된 가치중립적인 텍스트였다면, 한중록은 역사 기록물에 불과했을 것이다.저자의 픽션 충동은 과거 시공간의 진실과 현재의 인식, 미래의 기대란 불완전하며 개방적이고 미완성적인 저자 내면의식을 총체적으로 기획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혜경궁에 의한 한중록의 집필행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사건과 시간으로 연결하여 저자의 내면 의식으로 포섭하는 과정이 되며, 이 때 혜경궁에 의한 픽션 충동, 달리 말해 ‘저자의 서사적 기획’이 과거 기억의 미완성적 공백을 메우게 되는 것이다.집필 목적을 세운 혜경궁은 역사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확보하게 된주인공으로 삼아 모든 인물들을 성격화하고 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오로지 하나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작가의 친정에 대한 것으로 모든 등장인물은 작가와 친정을 이롭게 하거나 해롭게 하는 인물들이다. 이는 작가 홍씨가 자기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은 인물들을 모두 자기와 자기 집안의 문제로 제한하여 성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한중록」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작가를 포함하여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홍봉한, 홍인한과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화원공주, 영조의 비 정순왕후를 한편으로 하여 구도화시키고 있다. 이들이 성격화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인물들이며 작품은 이들 사이의 갈등 관계를 중심에 두고 전편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는 한편의 완벽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저자 혜경궁에 의해 역사적 사실은 새롭게 문학적으로 형상화 되어 한중록은 새로운 갈등을 형성하는 한 편의 드라마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선이 악에 의해 시종일관 모함을 당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저자 혜경궁의 자의적 집필 목적에 의해 역사적 사실이 문학으로 재포장되는 것이다.왜냐하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적 대립 구도는 항상 존재했었고, 그것에 대한 평가는 후대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시대의 정치적 대립 구도에 대한 평가를 개인이 속단할 순 없는 것이며, 특히 조선시대의 붕당의 폐해에 대해서 잘잘못을 가려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4. 한중만록에 나타난 혜경궁 홍씨의 태도4.1 효와 충가부장적 사회에서 효와 충은 그 시대의 근본 이념이었다. 특히, 여성, 그 중에서도 며느리의 효행은 무엇보다 가치의 덕목이었는데 한중록에서 주지하다시피 혜경궁 홍씨는 시아버지인 영조로부터 ‘가효당’이라는 칭호를 받았을 만큼 인정받았다고 나온다.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아들은 세손과의 관계에서도 모자간의 사정보다도 봉건적인 가족제도 하에서의 부자관계, 곧 집안의 어른 있다.
긍정의 힘을 읽고1. 서론나는 크리스찬이다. 모태신앙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을 읽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부정적으로 보기 일쑤였다. 아무리 긍정적인 일이 내게 일어났다하더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쁜 일을 예상하며 기뻐하지 않고 만족하지 않았다. 시련이 찾아왔을 때에는 더욱 더 그랬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이 책 뿐만 아니라, 긍정의 힘 실천편도 구입해서 읽고 실천해 보았다. 그 후에 나의 삶은 더 이상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삶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삶, 긍정적인 삶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부분과 나의 삶을 본론에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2. 본론2.1 비전을 키우라.사람은 누구나다 어려운 일도 겪고, 즐거운 일도 겪는다. 어떤 이에게는 평생 즐거운 일만, 어떤 이에게는 평생 슬픈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일과 슬픈 일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늘 즐거운 일이 있는 것처럼 웃으면서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늘 고난이 뒤따라 다니는 것처럼 울상을 짓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그 사람에게 비전이 있는냐, 없느냐의 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요즘 자살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를 교회 목사님께서 꿈과 비전이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에게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이 있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나태해졌다. 사람은 심장이 멈추었을 때 죽는게 아니라 꿈이 없을 때 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늘 나는 할 수 없어. 내가 감히 어떻게 그런 꿈을 가질 수 있어. 라고 이야기 하면서 목표를 낮게 잡는 사람은, 그만큼의 노력밖에 하지 않게 된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기대했다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만큼 더 실망하게 되니까 아얘 기대조차 하지 말자고 하면서 목표를 낮게 잡고, 나 자신을 낮게 보면서 패배와 실패의 공간에서만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그리고 있으면 나는 실패자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고, 반대로 승리, 건강, 기쁨, 행복의 이미지를 늘 마음에 가지고,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으면, 그런 비전을 가지고 있어도, 똑같은 시련의 상황에 놓였을 때에 그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어쩌면 나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려고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부정적인 생각과 비전속에 갖혀서 그런 것들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한계를 만들어 놓지 말고 끊임없이 비전을 키우는 사람. 그런 사람이 긍정적인 파워를 갖고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2.2 과거의 장벽을 깨라.예전에 채플 시간에 오프라 윈프리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세계적인 토크쇼의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오프라 윈프리는 청소년 시절에 중절수술을 한 적이 있고, 미혼모의 딸이라는 사실이 언론에서 밝혀지자 이렇게 이야기 했다.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의 자신은 그 때의 자신이 아니라 충분히 바뀌었는데, 과거의 자기 모습이 지금와서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감동을 받았었는데, 긍정의 힘이라는 책에서 다시 한 번 나에게 이런 말로 일깨워 주었다. “마음속의 견고한 진을 부수라, 이제 새로운 비전을 품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때다” 나는 늘 과거의 내 모습들을 되돌아 보면서 ‘그 때도 그렇게 실수했고, 실패 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라고 하면서 쉽게 포기하고 주저 앉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늘 과거에 매여사느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뒤를 돌아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늘 앞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살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에 연연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미래와 계획을 체험할 수 없다. 바로 내가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바꿔 주신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을 것이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나는 과거의 그늘 안에 너무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가만히 앉아서 그저 그런 삶, 매일 똑같은 삶에 만족하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2.3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걸핏하면 ‘할 수 없어. 바빠죽겠는데, 이걸 어떻게 다 할 수 있겠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말들을 평소에도 자주 내뱉는다. 특히 상황을 바라보고 늘 해보기 전에 포기하고,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기숙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책상이 너무 조그맣고,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불평했다. ‘이런 책상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어. 이런 데서 제대로 공부하기 어렵겠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책상에 앉을 때마다 불편하고, 허리도 아프고 집중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긍정의 힘을 읽고난 이후에 말을 바꾸어서 ‘이런 책상이라도 있는게 어디야. 안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 중에 성공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책상이 없어서 바닥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는데, 책상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신기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한결 편해지고, 허리 아프다는 생각도 없이 공부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 나의 몸 또한 부정적으로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 뒤로도, 할 수 있다. 꼭 이 기간 안에 이것을 다 마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의 삶이 꼭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이 긍정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말은 자신에게 하는 예언이다' 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나는 절대 성공할 수 없어‘라고 말을 한다면 정말 성공하지 못하는 인생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반대로 ‘난 정말 대단해. 잘 할 수 있을거야’ 라고 말을 한다면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느 상황속에서 반드시 긍정적인 말로 내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결심했다.2.4 하나님의 친절과 자비를 실천하라.긍정의 파워는 나 뿐만 아니라 남을 어떻게 대하느냐도 해당된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자신에게 친절하게 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쉬운일이다. 이것은 동물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친절은 그게 아니었다. 친절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도 친절하라고 이야기 한다. 그들을 대할 때도 사랑과 예의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그 말이다. 나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친절하게 대하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렇게 나만 알고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나의 삶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우리를 어처구니 없이 대할 때야말로 상처 받은 심령을 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 또한 실천해 보았는데, 누군가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했을 때, 그 사람에게 오히려 친절하게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상대방의 마음이 부드럽게 바뀌었고, 퉁명스럽게 맞받아쳤을 때보다 순조롭게 일이 해결되었다. 나에게 나쁘게 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아보이고, 어리석어 보이고,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한을 품지 말고, 그 사람의 단점을 품어야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복이 나를 맞이 할 것이다.2.5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라.나는 지금까지 행복이라는 것이 주어지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 계획된 시간에 맞추어 행복이라는 것이 생기는 건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늘 웃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주변에 가면 나 또한 기분이 나쁘다가도 좋아진다. 그리고 같이 웃게 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변한다. 하지만, 반대로 늘 축 쳐져있고 온갖 슬픈일을 다 겪은 듯한 얼굴로 앉아 있는 사람의 옆에 앉으면, 나 또한 기분이 좋다가도 나빠지고 의욕이 사라져 버린다. 언제 어느 곳에 가든지 열정있는 사람, 늘 기쁜 마음으로 있는 사람이 인기 만점이다.
역사 속에 살아있는 문학‘문학은 문학! 역사는 역사!’지금까지 나는 이렇게 생각해 왔었다. 역사공부를 할 때도 그렇고, 두 개는 별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국문학통사 총 3권을 읽으면서 문학없이 역사를 이야기 할 수 없고 역사 없이 문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사시간에는 역사만 배우고, 문학 시간엔 문학작품만 접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함께 숨쉬고 함께 발전해온 문학작품을 역사와 병행해서 읽으니 두 말할 것 없이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 시대 지배계층들과 장악 했던 문학의 장르들과 그 배후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은 서로 접목시켜서 알아봐야 무엇보다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이 책의 첫 단원부터 ‘우리문학사’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다. 북쪽과 남쪽의 문학을 같이 한다는 것. 새롭게 느껴진 사실이다. 조선시대 까지는 남북한의 문학이 궂이 이렇게 명칭에 신경쓰지 않아도 같은 분류였을 텐데, 분단되면서 남북한의 문학도 함께 분단되고, 서로 다른 갈래를 가지고 제 갈길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문학이라는 말을 통해서 다시 예전의 그 하나였던 문학의 분류시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 같다.그리고 또한 한문학과 구비문학의 존재가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문학은 웬지 한문으로 쓰여있으니 중국것인 것 같아 그다지 정이 들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문학도 뚜렷이 우리나라의 문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중 하나이고, 구비문학 또한 입으로 전해졌지만 문학의 개념에 비추어 볼때 확실히 문학에 속하고, 충분히 문학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해 보이는 문학적 변화가 이렇게 많은 갈래 구분과 시대까지 고려한 이후에 나타나고 형성되는 것인지 이번 단원을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하나라도 그냥 이루어지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시대구분은 어떤 작품의 특징과 결부되어있었다.문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배층 귀족만 하늘에 연결된다는 사상을 넘어서서 다음 시대에는 백성의 괴로움과 고통을 이해하고 덕치를 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한시대라도 같은 사상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되는 문화속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고대가 중세나 근대에 비해 훨씬 저급한 문화이고, 배격해야하는 문화라는 건 아니다. 고대는 그 시대상의 나름대로의 사회상이 있었고, 중세는 중세나름의 사회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 시대의 문학은 역시 각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문학을 통해서 그 나라의 건국도 대략적으로 짐작 가능하다. 건국 신화가 초 자연적인 모습도 담고 있지만, 신화를 통해 그 나라가 어떤 이념과 가치관으로 생겨났는지 알 수 있다. 허구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노래를 부르고 연구하는 신화일지 몰라도, 그 시대의 지배층에게는 건국신화가 자신의 세력을 모으고 통치영역을 확장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