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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I 예술과사회]백 년 동안의 고독 감상문
    ‘백 년 동안의 고독’- 그 고독의 세월을 느끼며 -과 목 명 :학 과 :학 번 :이 름 :제 출 일 :담당교수 :감상에 앞서평소 리뷰쓰기를 즐겨하지만 이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몇 가지 경우가 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아 요약하기 어려운 경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잘 파악되지 않을 경우, 여러 각도의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리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 G.G.마르케스의 은 이 모든 경우에 해당된다. 약 100년여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 이야기는 그저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가족사로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의 고독을 다룬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볼 수도 있으며 역사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남미문학 또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과제이자 지금부터 풀어나갈 이야기이기도 하다.리얼리즘과 판타지가 공존하는 허구의 세계처음 이 책의 서평과 서문을 읽을 때만 해도 은 라틴 아메리카의 슬픈 운명을 100년에 걸쳐 그려낸 매우 현실적이고도 정치적 색채를 띤 이야기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야기가 부엔디아 ‘대령’으로 시작한데다가 서평에 ‘한 가문과 함께 마을 전체가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하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어쨌거나 그런 첫인상과 달리 이 책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허구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것을 ‘마술적 리얼리즘(환상적 사실주의)’라고 정의하는데, 작가는 환상을 충실하게 현실적 묘사로 다루면서 ‘환상’을 ‘현실’에 가깝게 느끼도록 ‘환상’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마술과 같은 서술을 해낸다.먼저 주요 인물들의 나이를 살펴보자. 이야기의 핵심인물인 우르술라는 100살 넘게 살았던 것으로 묘사되고, 점술가 필라르 역시 150살 가량을 살다 죽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처음엔 대단한 생명력이라고 느껴지던 것이 나중에서야 허구의 세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일이었구나 싶어진다.또,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죽었을 때 ‘바깥에서 잠자던 짐승들을 질식시킨 노란 꽃비’라는 묘사와 피가 여러 군데를 거쳐서 어머니에게로 가는 장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화창한 날 하늘로 승천하는 미녀 레메디오스나 죽었다가 살아나는 집시 메르키아데스, 이사벨 신부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장면과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태어나 개미떼에게 끌려가는 장면은 터무니없는 내용을 치밀하게 풀어내어 마치 동화책을 읽거나 전설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게다가 실제 사건인 바나나 농장의 참살극의 실제 사망자수인 13명을 3천명으로 과장하여 서술함으로써 역사적 숫자(현실)를 환상적 숫자로 믿게끔 만드는 행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제 3의 현실을 만들어낸다.벗어날 수 없는 운명, 그 고독한 세계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인간 내면의 ‘고독’을 다루고 있으며, 이것은 전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공감 받고,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이 말하고자 하는 고독은 무엇일까.먼저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콘도는 고독의 섬이다. 마콘도에 마을을 건설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친구들과 함께 산맥을 넘어서 바다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 곳에 정착하게 되는데, 마콘도는 이때부터 외부에서 올 수는 있어도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고립된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고립된 섬이었을 때의 평화로운 마콘도는 외부 세력이 들어오면서 서서히 황폐해져 간다. 마콘도 역시 등장인물과 마찬가지로 고독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이제 고독의 섬을 배경으로 고독의 운명을 타고난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은 모두 애정이 결핍되어있고 이로 인해 근친상간을 반복하며 각자 특이한 버릇을 가졌다. 이러한 행위는 모두 ‘고독’에서 기인한 것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은 ‘고독’ 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소통된다.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혁명 이후 집안에 틀어박혀 황금 물고기를 주조했다가 녹이고 그것을 반복하는 행위를 하며, 아마란타는 수의를 짰다가 풀고 다시 짜는 행위를, 레베카는 약혼자의 빈자리를 보며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흙을 먹는다.사실 이들의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의미 또한 이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고독이며, 이 고독의 근본적 원인은 알 수 없다. 숙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의 반복을 라틴 아메리카의 좌절의 역사로 보는 시각도 있다.버릇처럼 반복되는 이런 행위 외에 가장 두드러지는 행동은 바로 성행위인데 근친상간으로 시작해 근친상간으로 끝을 맺는 소설의 구조에서 보이듯이 그들의 성행위 역시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근친상간인가.그들의 사랑이 비정상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고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광적으로 성에 집착하고 근친상간을 하게 되는데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닌 이 극단적인 형태의 사랑은 결국 고독을 치유하지 못하고 고독을 재생산할 뿐이다.이러한 고독의 병을 천운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부엔디아 가문, 혹은 마콘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체된 자폐 상태의 라틴 아메리카를 뜻함과 동시에 인류의 존재론적 고뇌의 표현을 뜻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은 인간의 숙명적 고독은 쉽게 해결되지 않으며 그를 해결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도 불사하고 노력하지만 마침내 파멸하고 마는 인간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고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은 파멸하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등장인물 대부분은 자신에게 내재된 고독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의 고독은 이야기가 종결될 무렵 아우렐리아노가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를 해독할 때 비로소 자각하게 되는데,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이 원고를 해독하게 되는 순간부터 마콘도는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양피지에 적힌 글들은 영원히 어느 때에도 다시 되풀이 될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백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양피지가 해독되기 전까지는 그들도, 그들의 고독을 쉽게 눈치 챌 수 없었던 것이다.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중남미문학이라는 지역적 특색과 라틴아메리카인의 존재론적 인식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 본인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집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품 내에서 객관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고독’을 다루면서 언급한 적이 있는 고독의 섬 마콘도는 고립되어 있을 때가 가장 평화로웠던 유토피아였다. 현대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점차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 변화는 유토피아를 몰락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마을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전에 없던 사상의 대립과 내란으로 인해 많은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수 년 간의 대립 끝에 급기야 무장한 군인들이 마을을 통치하기 위해 들어오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그 후 바나나 농장의 참살극이 벌어진다. 그 후 4년 남짓 비가 내리고 외부인과 문명이 어느 정도 자취를 감춘 후, 마콘도는 안정을 조금씩 되찾아간다.이 모습에서 서구중심주의를 배척하는 작가의 사상이 드러나고 있으며, 문명이 들어오기 전과 후의 모습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마콘도 마을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립의 근원은 서구방식의 정부와 정당의 도입이었으며 그 결과는 마콘도의 몰락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지적을 통해 서구중심주의에 도전하고 있으며 서구중심사상이 앗아간 평화를 부르짖고 있다.또 다른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앞서 다룬 마술적 사실주의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이 용어는 문화적 맥락에 따라 충분히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데 라틴 아메리카의 특수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서구 중심적 시각이라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구의 관점에서 타 문화의 현실은 종종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것으로 묘사되고, 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 같은 제3세계 문화권에서 서구의 논리와 과학은 영적인 세계나 마술이 아닌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인의 관점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며 서구인들에겐 낯설고 초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남아메리카 출신의 작가는 자신을 ‘환상문학가’ 대신 ‘리얼리스트’로 규정한다.
    독후감/창작| 2010.02.04| 5페이지| 2,500원| 조회(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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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I 색채심리학]영화 홍등 감상문
    색채학적 관점에서 감상한 ‘홍등’~ 원제: 大紅燈籠高高掛: Raise The Red Lantern ~과 목 명 :학 과 :학 번 :이 름 :제 출 일 :담당교수 :이 영화를 한 줄로 평하자면 적색과 청색의 대비가 돋보이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홍등에서 보여주는 [여름-가을-겨울-다음해 여름]의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구성은 여타작품의 구성과 다를 바 없으나 영화 전반을 어우르는 배경의 색감 변화를 보면 크게 붉은색과 푸른색이 대비되는 구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우선 이야기가 시작되는 여름을 보자. 주인공인 송련은 부잣집의 네 번째 부인으로 시집가게 된다. 집안의 법도이자 대감과의 하룻밤을 결정짓는 홍등이 이제 막 시집 온 송련만을 위해 켜진다. 이때부터 가을까지의 배경색감은 붉은 빛이 주를 이룬다. 그 붉은 빛 속에서 그녀가 입은 무채색 의상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그녀의 심리상태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색감패턴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반영하는 의상의 색에 있다.첫 번째 부인은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여유로움을 가진, 주인마님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여자로 채도가 낮고 어두운 색의 의상을 입고 나온다.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은 첫 번째 부인과 달리 대감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며 그 때문에 주로 밝은 색감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직 가수 출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세 번째 부인의 의상이 더 원색적이고 화려하다는 것이다.이야기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송련은 점차 집안 분위기에 익숙해져 가고 의상도 무채색에서 붉은 색으로 바뀌면서 그녀가 집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과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이 나름 안정적이라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가고 있는 사이, 송련은 친하다고 믿었던 둘째부인이 실은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임신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남편을 독차지하고 둘째 부인에게 복수를 하는 듯싶었지만 진실이 밝혀지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다.홍등은 봉인되어지고 영화 전반을 아우르던 붉은 빛은 검은 천에 뒤덮여 사라졌다. 대신 차가운 푸른빛이 겨울이 왔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송련의 의상도 그녀의 젊음과 정열을 나타내던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뀐다. 젊음도 웃음도 사랑도 없는 그녀는 허무함에 휩싸였고 술로 자신을 달래다가 취중에 말실수를 해서 셋째부인의 외도현장이 발각되게 만든다. 셋째 부인은 결국 집안의 법도에 따라 목을 매게 되고 그 충격으로 송련은 미쳐버린다.다섯 번째 부인이 시집오면서 다음해 여름이 왔고 이야기의 처음과 같이 홍등이 밝혀진다. 푸른 배경과 대비되는 붉은 홍등 사이에서 송련이 무엇인가 찾아다니듯 돌아다니면서 막이 내린다. 그녀가 찾아다니는 것은 그녀의 잃어버린 젊음일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정열을 불태우지 못했던 데 대한 미련일지도 모르고, 미처 해보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일지도 모른다.
    독후감/창작| 2010.02.04| 2페이지| 1,500원| 조회(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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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I 색채심리학]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 감상문
    색채학적 관점에서 감상한‘천국보다 아름다운’~ What Dreams May Come ~과 목 명 :학 과 :학 번 :이 름 :제 출 일 :담당교수 :지난번에 감상했던 ‘홍등’이 절제된 색상의 배치가 돋보이는 영화였다면 이번에 감상한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다채로운 색상들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첫인상을 아주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딱히 지배하는 색상이 없으면서도 모든 색상이 두드러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이 현실이 아닌 그림(상상) 속의 세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우선 등장인물 의상에서 색상의 대비가 돋보인다. 영화는 하얀 의상을 입은 두 남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흰색은 크리스와 애니의 첫 만남(시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앞으로 펼쳐질 둘의 행복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 사랑, 연애를 나타내는 붉은 천이 날아가는 장면은 시작한지 5분도 채 안되어서 바로 결혼식을 올리는 다음 장면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준다.흰색과 붉은 색으로 둘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연애행각을 보여주는데 노란 옷을 입은 애니와 파란 옷을 입은 크리스의 모습에서 기쁨과 행복이 느껴진다.평소의 크리스는 평범한 무채색 양복이나 푸른색 옷을 자주 입는 반면 애니는 거의 붉은 옷을 입고 있다. 영화의 내용과 흐름상 우울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모습에 가려진, 활기차고 명랑한 본래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색이다. 크리스의 푸른 의상은 주로 아내와 함께 있을 때 등장하는데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과 그에 따른 행복감이 잘 나타난다.보라색 라일락 꽃잎이 흩날림과 동시에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영화는 중반부에 접어든다. 이때부터 애니의 의상은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을 유지한다. 아이들을 잃고 힘들게 이어가던 둘의 평화는 크리스의 죽음으로 엉망이 되어버리고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결국 보라색 잠옷을 입은 장면을 끝으로 자살해버린다.아내의 죽음으로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크리스는 아내가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못했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알버트의 말을 듣고 아내를 찾으러 죽음의 세계로 간다. 아내를 찾아내기 전, 아이들을 잃고 힘겨워하는 애니의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의상과 배경 모두 녹색으로 버무려진,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노골적인 색상배치가 돋보인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애니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모습과 잘 어울리는 색이다.암흑에서 살고 있는 애니를 가까스로 찾아낸 크리스는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애니와 함께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애니가 크리스를 기억해내면서 영화는 결말을 맞는다.애니는 마침내 죽음의 검은의상을 벗고 행복을 나타내는 푸른 원피스를 입는다. 천국에서 크리스는 둘이 가장 행복했을 때 입었던 푸른 의상을, 애니는 평소의 붉은 의상을 입고 다시 태어날 미래를 기약한다.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색채는 푸른색, 붉은색, 검정색, 흰색, 보라색 정도인데 의상 외에 눈에 띄는 색이 보라색이다. 아내가 그리는 그림 속에서,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배경에 등장하는 라일락 나무가 바로 그것인데 찾아보니 보라색은 고귀함을 넘어선 이 세상을 초월한 어떤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라일락 나무가 천국에 있는 크리스와 교신하는 매개체로 쓰인 것이나 현실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장면에서 라일락 꽃잎을 흩날리게 한 것은 이런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독후감/창작| 2010.02.04| 2페이지| 1,500원| 조회(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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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티베트(티벳,tibet)의 회화(미술)
    티베트 회화티베트의 예술 분야는 ‘소와릭빠’ 라고 부른다. 한문으로 의역하면 ‘공교명부(工巧明部)’인데, 이는 ‘예술의 지혜’라는 뜻이다. 티베트의 학문은 이런 식으로 대개 10개의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학문은 )‘대오명부’로, 나머지는 )‘소오명부’로 나누어진다. 여기에서 다룰 예술부분은 ‘대오명부’로 분류되어 예부터 중요시되어 왔다. 이 속에는 회화, 공예, 조소 등이 포함된다.대부분의 종교는 신의 말씀을 온갖 방법으로 표현, 치장하게 하기 마련이다. 고대의 모든 예술은 줄곧 이런 역할을 해왔고 종교를 전파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했으며 그 중에서도 티베트는 생활과 종교가 거의 분리되지 않은 곳으로 1,300년 이상 불교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때문에 티베트의 회화는 불교미술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종교적인 내용을 담았고, 승려들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개성을 중시하는 창작자가 아닌 단순한 장인으로 여겼고, ‘신을 만드는 자’라는 명칭을 부여받았으나 그 경지를 넘어 모든 학문과 철학을 넘어선 정신적 구도자였다.티베트 회화에도 역사적 흐름이 존재하지만 티베트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티베트 불교회화와 그 대표적인 장르를 정리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감상해보도록 하자.탕카(Thangka)13C, 천위에 황금과 채색,86X62.6cm, 포탈라 궁 소장17~18세기, 천위에 채색85X56cm, 포탈라 궁 소장티베트의 불교미술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탕카(Thangka)와 만다라(曼茶羅), 불교 조각과 공예 등이 있다.탕카란 티베트 불교회화인 헝겊에 채색한 그림을 축(軸)으로 말아 보관하는 형태의 그림을 말하는데, 우리가 사원을 장엄하기 위해 거는 불화, 즉 탱화(幀畵)가 탕카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티베트는 해발 4,000m 이상의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의 설산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그 환경 속에서 티베트인은 절박하고 간절한 염원들을 신들에게 청하기 위해 탕카를 제작해 봉헌하였다. 티베트 불교미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탕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선 1,700여년간 티베트인들의 정신세계와 생활양식을 이끌어온 불교의 역사와 미술의 특징을 알아야 할 것이다.티베트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7세기 통일국가를 이룬 송첸캄뽀(Songtsen Gampo, 581∼649) 왕에 의해서였다. 그는 양국의 불교를 동시에 수용하게 되었고 이 때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가 티베트로 시집오면서 라싸의 포탈라 궁에 있는 탕카를 가져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탕카, 17세기, 멘땅화파 제작,포탈라 궁 소장티베트 탕카에서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색은 만다라에서 오방불을 상징하는 백·황·청·녹·청 다섯 가지로서, 이것들로부터 불화에 필요한 32가지 색을 만들어낸다. 탕카의 제작 기법을 보면 먼저 면포 끝에 대나무살을 넣은 후 기워, 화면보다 조금 큰 나무틀을 만들어 동여맨 다음 아교로 칠하고 난 뒤 백토를 앞뒷면에 칠한다. 칠이 마른 다음 매끄러운 돌로 문질러 화면을 고르게 한다. 먼저 중심이 되는 존상부터 그리는데, 채색은 넓은 면을 고르게 칠한 후 세부를 운염 처리하고 나서 남색이나 연지 등으로 윤곽을 그리고 중요한 작품에는 금니를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다.석가모니를 주존으로 표현한 (왼쪽)은 물감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여러 색깔의 비단을 이어붙인 아플리케로서 이 자수 그림을 티베트어로는 ‘꿔땅’이라고 부른다. 화면 가운데 석가모니가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촉지항마인을 경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석가모니 도상과는 달리 왼손에는 금강발을 들고 있다. 이 자수 탕카는 청나라 때인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서, 주로 이 시기에 제작된 탕카를 보면 )멘땅(Menthang) 화파와 켄쩨화파가 불화 불사에 많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티베트 탕카불화 중에서 독특한 것으로 이른바 )촉싱(Tsokshing)을 들 수 있다. 촉싱은 원래 ‘생명의 기둥’이라 하여 향기가 좋은 나무를 골라 윗부분에는 불탑인 최뗀(Ch?rden)을 조각하고 기둥의 몸에는 붉은 색을 칠한 후 불경을 적어 넣으며 아랫부분에는 바즈라를 새긴 것인데, 그 형태는 작은 오벨리스크를 연상시킨다. 회화에서는 좀 다른 경우에 해당하는데 티베트의 각 종파들은 자기 계보의 권위와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 창시자와 역대 조사, 그리고 자신들의 수호존인 이담을 그려 넣은 촉싱을 가지고 있다. 이때 촉싱은 나무줄기와 가지를 통해 여러 존상들의 모습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집회수(集會樹)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여기에 공양함으로써 복덕을 쌓을 수 있다 하여 복전(福田)이라고도 부른다.만다라(曼茶羅)두 번째로, 티베트의 불교회화에서 만다라(曼茶羅)는 수행자들의 명상을 위해, 일반신자들의 예배를 위해 제작되었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중요한 의식이 있을 때 여러 색깔의 모래로 정교하게 만다라를 제작한 후 그것이 완성되자마자 지워버리고는 하는데 색깔 있는 돌가루로 만다라를 제작하는 행위는 사경처럼 수행의 한 방법이므로 그 제작 과정 자체가 성스러운 의식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도판5, 17C, 켄쩨 화파 제작포탈라 궁 소장대부분 만다라를 티베트의 고유한 종교미술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 기원은 인도의 굽타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도를 하기 위해 일정한 구역을 정하여 흙을 파낸 다음 깨끗한 흙을 넣어 그 위에 토단을 만들고 존상을 그린 것이 만다라의 시작이다. 승려들은 이 신성한 단 안에 제자를 끌어들여 법을 전하기도 하고 혹은 여러 붓다·보살·존상을 청하여 붓다의 경지에 도달하려 했다. 또, 신도들은 만다라 앞에 향·꽃·음식 등을 공양하고,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기원의 의식으로 시작되었던 만다라는 어느덧 티베트 회화의 중요한 경향이 되었다.만다라(曼茶羅)는 힌두교에 기원을 둔 용어로서 산스크리트어로 ‘만달라(Mandala)’는 원·본질·전체성·우주적 지성·완전함을 의미하지만, 이 개념이 불교로 수용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상징적 도형’이 되었다. 명상이나 환시를 통해 형성된 체계인 만다라의 기본 도형은 사각형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으로 구성된다. 만다라는 지상에 실현되는 천계의 질서를 나타내는 가로 세로 8개의 정방형을 기본으로 한다.포탈라 궁 소장의 도판5에서 볼 수 있듯이 통상적으로 만다라는 금강환의 내측에 연꽃잎의 고리를, 외측에는 황·녹·적·청색으로 분리된 화염의 바퀴를 표현했다. 보색관계의 화려한 원색을 잘 활용한 이 그림은 옛것이라는 느낌보단 지금 막 붓을 놓은 듯이 보이는 신선함을 준다.그 밖의 티베트 회화조소조소는 불보살, 존상, 호법신상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르로 벽화나 탕카에 못지않게 비중이 무겁다. 티베트어로 평면회화를 ‘리모’라고 부르는 데 반해 입체적인 조소는 ‘쿠(Sku)’ 또는 ‘부르(vbur)'라고 부르고 회화와 조소를 합쳐 부를 때는 ’리쿠(rissku)'라고 부르기도 한다.18세기, 청동조각조소 불상은 진흙, 동철, 목석이 주로 재료로 사용되며, 드물게는 옥조, 상아조, 소유화조의 불상도 만들어진다.우선 보편적인 재료인 청동으로 만든 불상 하나를 소개해본다. 티베트 밀교에서 남신과 여신의 성적 결합을 뜻하는 얍 윰(Yab-yum)은 ‘궁극적인 사실의 실현’에 목적을 두며 개화의 마음을 상징하고, 부처의 가장 고귀한 정신의 본질을 의미한다.다른 재료와는 차별화되는 조소 중 ‘차차’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진흙에 망자의 유골을 섞어 찍어내는 것으로 영혼 천도용의 의미를 가진다. 소형이라 한눈에 띄지는 않지만 잘 살펴보면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서민적인 예배 대상이다.
    예체능| 2009.09.17| 5페이지| 4,000원| 조회(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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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티베트(티벳,tibet)의 정치
    티베트의 정치불교를 빼고 티베트 문화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불교는 티베트인들의 생활뿐 아니라 모든 것에 영향을 주고 있다. 불교는 티베트인들에게는 단순한 신앙체계가 아니다.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포함하고 있으며 생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국민으로서 그리고 민족으로서 티베트인들을 묶어주는 것 중에서 불교가 가장 강력하다. 1950년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를 점령하기 전에는 티베트인들의 25%가 종교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또한, 티베트 불교에서는 라마, 즉 스승이 죽으면 다시 어린아이로 환생(還生)하여 전생에서 다하지 못한 자신의 역할을 계속 수행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종교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세속적 통치권을 함께 지니는 전통이 있다.그렇다면 티베트 불교는 언제, 어떻게 성립했으며 언제부터 그 같은 '정교일치' 양상을 보여주었을까. 그리고 달라이 라마 제도는 누가, 언제,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는가.'달라이 라마제도'가 확립되기까지불교 도입 이전에 티베트에는 '뵌(Bon)' 혹은 '뵌교'라 불리는 신앙체계가 있었다. 자연종교적인 성격이 강했던 '뵌'교와 사제로서의 샤만(사제자)은 일정한 정치적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왕과 귀족들 사이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 구도 하에서, 불교는 새로운 정치이념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고대 티베트 고원에 흩어져 살던 티베트 민족은 7세기 중반 송첸캄뽀(Songtsen Gampo, 松贊干布, 581∼649)라는 걸출한 군주에 의해 왕국으로 탄생했다.송첸캄뽀 왕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당나라와 네팔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였고 이 결혼이 공식적으로 티베트에 불교가 전해진 계기가 되었다. 티베트에 시집을 온 두 공주는 각각 라모체 사원과 투르낭 사원을 세웠으며, 이들에 의해 시작된 불교는 송첸캄뽀 왕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티송데첸 왕에 의해 국교(國敎)가 될 수 있었다.(761) 이후 티베트 불교는 인도의 대석학 샨타락쉬타와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그러나 티베트 불교의 발전은 처음부이후 티베트 불교는 교권(敎權)과 속권(俗權)을 동시에 지니며(정교일치(政敎一致)), '활불전세(活佛傳世:'환생)' 라는 양식으로 충원되는 독특한 전통을 확립하게 되는데 이것이 '달라이 라마'다.이로 인해 달라이 라마의 등장 이전까지 송첸캄뽀 왕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티베트 인들에게 추앙되었다. 또한 정교일치 제도로 인하여 티베트 불교는 종파의 형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는 ‘달라이 라마’ 제도가 확립된 계기가 되었다.9세기 중반 융성을 거듭하던 티베트 불교는 랑 다르마(Lang Dharma)에 의해 일대 위기를 맞았다. 불교의 강력한 권력 아래 숨을 죽인 채 왕권의 회복을 노리던 그는 뵌교 세력과 손을 잡고 불교를 탄압했다. 그러나 강력한 권력을 누리던 불교 세력은 1년이 되지 않아 왕을 암살했고, 이는 토번 왕국의 몰락으로 이어졌다.이후 티베트는 1239년 오고타이 칸의 아들 쿠텐에게 점령당했고, 이 과정에서 사캬파의 사캬 판디트(Sakya Pandit)가 몽골과 손을 잡으면서 티베트는 몽골의 세력권으로 편입되었다. 당시 티베트에는 몇 개의 불교 종파가 있었으며, 이들 종파는 몽골 제국과의 관계 정립에 의해 집권과 몰락을 거듭했다. 그리고 몽골 제국의 지배가 약화될 무렵 쫑카파가 등장해 티베트 불교와 티베트 정치권력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몽고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세력 대신에 종교 지도자를 대리통치인으로 선택한 것이다.달라이 라마 정권수립달라이 라마의 정권이 확립된 것은 1642년 몽골의 침입 이후 제5대 나왕 롭상 갸초(Ngawang Lobzang Gyatso)에 이르러서였다. 달라이 라마는 법왕으로 추대되어 실질적 왕의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포탈라 궁에 주석하며 종교적·정치적 지도자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이렇게 티베트는 신정(神政) 국가가 되었고, 달라이 라마는 정신적인 지도자이자 동시에 세속적 통치자가 되었다.하지만 이 같은 신정정치는 내부적으로 균열의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환생'이라는 제도적 장치로 인해, 새 달라이 라마는 어린음은 14세기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티베트인들은 그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믿었다. 입적하기 전 그의 피부는 금빛으로 변했으며 1474년 앉은 채로 입적했다.2대 달라이 라마 : 겐둔 갸초(Gendun Gyatsho, 1475-1543)그는 4살 때 1대 달라이 라마 겐둔 둡빠의 환생으로 밝혀졌다. 특이하게 그의 환생을 라모이 라초(Lhamoi Lhatso)는 호수가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라모이 라초에 의해서 확인하게 된다. 그는 불교수행에 관련된 많은 주석서를 남겼으며 1542년에 자신의 환생을 예언하고 앉은 채로 입적했다.3대 달라이 라마 : 소남 갸초(Sonam Gyatso, 1543-1588)그는 티베트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달라이 라마로 추앙받는다. 그는 1578년 몽골의 황제 알탄 칸을 교화시키고 몽골 전역을 티베트 불교화 시켜버렸다. 이 당시 유럽과 아시아를 장악한 몽골제국이었기에 티베트불교와 달라이 라마가 아시아 전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588년 설법을 하다가 입적했다.4대 달라이 라마 : 용텐 갸초(Yonten Gyatso, 1589-1617)그는 티베트인이 아닌 몽골인으로 환생했다. 그는 알탄 칸의 직계 후손 이였으며, 이 일은 이전 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가 알탄 칸에게 몽골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티베트가 아닌 몽골에서 달라이 라마가 환생을 해서 직위가 늦어졌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몽골과 티베트는 강력한 유대 관계가 형성되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는 1617년에 일찍 입적했다.5대 달라이 라마 : 나왕 롭상 갸초(Ngawang Lobsang Gyatsho, 1617-1682)그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권력의 중심부에서 굳건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몽골의 구쉬 칸이 달라이라마 에게 티베트에 종교, 정치적인 통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며 그로 인해 수세기 전부터 지방으로 분산 되어 있던 티베트의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다. 1642년에 에 존재가 감춰 졌었다. 직위 후에도 자유분방함 때문에 수행 생활을 잘하지 않았으며, 20세에는 몽골에 의해서 포탈라궁에서 쫓겨나고 자리도 박탈 당했다. 몽골인들은 그를 몽골로 납치 했으며 그 다음해인 1706년에 입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쪽에서는 중국에 의해 암살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7대 달라이 라마 : 칼장 갸초(Kalzang Gyatso 1706-1757)그는 동티베트의 리탕에서 태어났다. 6대 달라이 라마와는 달리 불운한 시국과 환경 가운데서도 수행 생활에 전념했으며, 그로 인해서 티베트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되었으나 이시기에 중국은 정치적으로 티베트를 장악하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청정한 수행 생활과 많은 논서를 남기고 1757년에 입적했다.8대 달라이 라마 : 잠팔 갸쵸(Jampal Gyatso 1758-1804)그는 1762년 라사로 보내졌으며 뛰어난 정신력을 지녔으나 정치적 음모들 때문에 정치를 싫어했다. 네팔의 구르카 왕국의 침략을 받았으나 중국의 도움으로 물리 칠 수 있었다. 그 후 영국이 티베트를 식민지화하려는 계획을 알고 이때부터 티베트는 고립정책을 세우고 고수했다. 그는 1804년에 입적했다.9대 달라이 라마 : 룽톡 갸쵸(Lungtok Gyatso 1806-1815)그는 5대 달라이 라마 사후부터 급격히 약해진 지도력을 가지고 명목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당시 외부 세계와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내부는, 한동안 잠잠했던 권력 다툼이 다시 격동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서 달라이 라마 역시 이 격동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그는 1815년에 단명을 하게 되고 이 시기부터 티베트는 섭정이 다스리게 되었다.10대 달라이 라마 : 출팀 갸초(Chulteam Gyatso 1816-1837)*9대 달라이 라마부터 12대 달라이라마는 모두 단명했으며 이시기에는 티베트를 섭정이 통치하였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정치적인 암살이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11대 달라이 라마 : 케둡 갸초(Kuedup Gya조세법을 제정하고, 경찰이 양성되었다. 또한 그는 국제정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전기, 전화, 자동차가 티베트에 도입하였다. 그러나 그는 티베트의 어두운 미래를 예언하며 1933년 입적했다.14대 달라이 라마 : 텐진 갸초(Stanzin Gyatso 1935- )그는 티베트 북동부 중국 접경 지역에 자리한 암도에서 태어났다. 13대 달라이 라마의 예언처럼 그는 티베트의 어두운 상황들 속에서 환생했다. 1940년에 즉위 했으며 1959년에 인도로 망명 했으며 미국CIA가 함께 도왔다. 티베트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폭력 사용에 반대하며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였고, 이를 통해 티베트인들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침내는 19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많은 나라를 방문하며 티베트의 독립과 그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세계에 호소하고 있으며,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도 함께 전하고 있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어려운 상황과 혼란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는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현재 티베트의 정치 제도현재 티베트는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받고 있다. 공산당은 각 성(省), 자치지역, 자치 현(縣))에 광범위한 공산당 사무소와 정부 사무소를 설립하여 티베트를 통치하고 있으며 정부는 공산당의 하부기관으로서 공산당이 만든 정책을 실행한다. 라싸에만 60개 이상의 부서와 위원회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북경에 있는 중앙사무소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또, 공산당서기인 최고위급 티베트자치지역 간부는 항상 중국인이 독점하고 있어 사실상 티베트 '자치지역'이라는 말은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다.여전히 공산당이 티베트를 지배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그 지배력은 약화하기 시작했다. 공산당, 그리고 티베트에 위치한 중국정부에 대한 경멸이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비효울적인 통치와 부패, 정부 자금의 낭비로 업무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것과 공산당의 목표였던 위대한 개혁억된다.
    인문/어학| 2009.09.17| 6페이지| 3,000원| 조회(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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