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학년도 1학기 과제물교과목명 : 영어교수법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o 과 제 명 : 주제 중심 교수법(Theme-based Instruction)의 특징서론내용중심교수법(Content-based Instruction: CBI)은 이전의 교수법들이 학습자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아서 발생하게 된 학습자들의 불균형적인 영어능력(Limited English Proficiency: LEP)형성의 결과로 빚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영어교육의 한 방법으로써 실험적으로 시도하게 되었다. 내용중심 언어교육은 단순하게 학습자들이 언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목표언어를 모국어와 같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사용하는 이중 언어의 병용을 목표로 한다. 기존의 영어교육만 단독으로 분리한 것보다 이중 언어의 병용수업을 통해 학습할 내용과 교육을 통합함으로서 학생들의 언어적인 능력과 함께 수준 높은 수준의 사고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브린톤(Brinton)은 내용중심교수법을 크게 세 가지 모형으로 분류하여, 주제중심모형(Theme-based Model), 보호모형(Sheltered Model), 그리고 부가모형(Adjunct Model)을 설정하였다. 주제중심모형에서는 언어 교육이 특정한 내용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보호모형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모형들 중 한국에서 가장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주제중심모형이다. 본 과제에서는 주제중심모형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먼저 주제중심모형에 대해 간단히 살펴 본 후, 주제중심 교수법의 특징과 내용중심모형의 나머지 두 모형과의 차이점에 대해서 서술하겠다.본론1. 주제중심 모형주제중심모형은 내용중심교수법의 세 가지 모형 중 하나로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특정 주제와 내용을 목표언어로 교수하는 방법이다. 학습자는 선택된 주제에 관련된 어휘와 지식을 목표언어를 통해 습득한다. 수업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현지 학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것과 비슷하게 진행되고 목표언어와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 명의 교사가 목표언어로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주제중심 수업은 학습 전략, 내용 이해, 과제수행, 그리고 이를 통한 언어습득을 주된 학습목표로 한다.주제중심모형의 수업에서는 한 주제를 다각적인 활동을 통해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학습자는 주제망(Brainstorming)을 작성하고 급우와의 의견 교환을 통해 새로운 내용이나 지식을 발견하기도 한다. 학습자는 수행한 과제를 급우와 교환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 교실에서 학습하는 학습자들 간의 친목과 능동적 학습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주제중심 수업은 언어교육을 실시할 때 주제에 관련된 자료 적용의 범위와 빈도를 최대화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모형에서 사용되는 주제들은 학생들의 흥미에 따라 결정되며, 이를 통해 언어 습득의 네 가지 기술인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향상시킬 수 있다. 수업에서는 다양한 주제들을 이용하거나 한 가지의 주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최근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 등의 발달로 인해 초등학교 학습자들일지라도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다.주로 청소년 이상의 학습자에게 적용되던 주제중심모형의 학습이 최근에는 어린 학습자들에게도 적용되는 추세에 있다. 이는 학습자의 모국어 어휘력과 내용의 이해 수준에 맞춘 주제중심모형이 외국어 학습이 목표언어를 높은 흥미도와 함께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2. 주제중심모형의 특징◈ 내용(주제)중심과 통합적 학습-내용이 교과과정의 출발점이며, 곧 교육을 체계화하는 근본적인 요소이다.-내용에 대한 학습이 언어 학습보다 훨씬 중요해서 내용에 대한 학습이 잘 이루어졌는지가 언어 학습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러므로 내용에 초점을 둔 의미 있는 활동을 제공해준다. 이때 언어는 활동을 하기 위해 쓰이며 학습자들은 활동을 통해 언어를 배운다.-내용과 언어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 학습을 추구한다. 즉, 학습에 도움이 되는 분명하고 자연스러운 맥락(Context)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학습자들은 주제 또는 타교과와 관련된 활동학습을 통해 언어를 내용과 연결시킴으로써 개념을 이해하고 기억하는데 도움을 받는다.◈ 실질적인 자료의 활용과 학습자의 동기유발-실질적인 자료 사용을 강조하기 때문에, 모든 사실에 근거한 자료와 과제를 활용한다. 수업시간에는 언어 그 자체를 가르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 직접 쓰이는 자료가 사용된다.-학습자가 접하게 되는 자료들이 흥미를 유발시키고 실용적이며 학습욕구를 충족시킨다면 최대의 언어 능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교사는 학습자의 언어적 성취와 내용의 이해에 적합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적극적인 활용을 돕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을 통해 학습자들과 교사 모두에게 동기 유발이 되고 공통의 흥미와 재미를 갖게 된다.◈ 학습자의 중심의 수업진행과 학습자들 간 의미협상(의사소통)-학습자들이 특정 학문 분야의 내용을 학습하는 것을 돕기 위해 학습자의 요구에 맞는 적절한 조정이 일어난다.-학습자의 지식과 이전의 경험들을 활용하고 연관시킬 수 있게 해준다. 학생들은 중요한 인식과 이해를 도출할 수 있게 된다.-주제에 관련된 내용이 학습자 중심의 토론을 통해 제공되며, 다양한 과제 수행 활동 및 발표 활동은 학습자 간의 정보교환이나 주제망 형성에 도움이 된다. 또한 다양한 조별활동을 통해 상호협동 하면서 수준이 서로 다른 학생들에게 차별적인 학습의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언어사용을 위한 진정한 목적을 부여한다. 학습자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이해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언어를 사용한다.-학습자들은 자발적, 능동적으로 수업을 이끌어가며(‘자기주도력’), 교사는 학습자에게 제공할 좋은 자료를 개발하고 학습자가 주제와 내용에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학습자들은 참여도, 흥미도, 그리고 언어수행 능력뿐만 아니라 창의력 등에서도 향상된다. 학습자가 제2언어를 습득하는 경우, 학습자의 관심분야와 관련된 내용을 통해 학습하면 논리적 사고력이나 창의력과 높은 인지적 능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3.주제중심 모형과 보호 모형, 부가 모형의 차이점이 모형들의 차이점들은 교육의 목적과 학습의 초점, 교육의 형태, 교사의 책무, 학생의 구성, 그리고 평가의 기준 등이 있다. 주제중심모형의 기본적인 목적이 제2외국어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보호모형의 목적은 내용 자료들에 정통하게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두 모형은 또한 언어의 목적이 각각 다르다. 주제중심모형의 경우 특정한 주제 분야 안에서 제2외국어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고 계획되지만, 보호모형은 우연적으로 계획된다고 볼 수 있다. 부가모형은 다른 교육과 연계된 것이므로 이 두 가지 교육 목적 모두 중요하다.교육 형식적인 면을 비교해보면 세 모형은 언어적인 것과 내용적인 구성요소의 통합정도와 범위가 서로 다르다. 주제중심모형에서는 언어 교육이 특정한 내용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보호모형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영어교육에 있어 이러한 차이점들은 교사들이 내용과 언어에 대해 갖는 책임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제중심모형의 경우, 언어교사가 언어와 내용의 구성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갖는 반면에 보호모형에서는 그 두 가지 모두의 책임을 내용지도 교사가 단독적으로 갖고 있다. 부가모형의 경우는 내용에 대한 책임은 내용지도 교사가, 언어 구성에 대한 책임은 언어교사가 각각 가진다.
서 론1본 론21) 결사운동2♠대한독립의군부2♠대한광복회3♠조선국민회3♠신한청년단32) 학생운동43) 종교계 및 각종 문화운동5?종교5?민족사학74) 농민?노동자운동7◆ 참 고 문 헌 ◆83?1운동 이전의 항일민족운동서 론1910년 경술국치 이후 반침략 구국운동은 독립운동으로 계승?발전되었다. 강점 이후 일제의 철저한 탄압 속에서도 반일 민족해방운동은 계속되었다.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을 주도한 세력들은 국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는 한편,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였다. 이처럼 독립운동의 공간이 국내에서 국외로 확장되었고, 또한 주요한 방략으로서 독립전쟁론)에 합의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각 지역에서 민족의 군대인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독립운동의 전열을 정비하고 민족의 역량을 축적해 갔다.)또한 이 시기의 독립운동은 여러 이념과 노선이 교차하며 전개되었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여 원래의 대한제국을 다시 건설하자는 주장과 공화주의에 입각한 근대국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를 복벽주의 노선, 후자를 공화주의 노선이라고 한다. 이러한 노선과 이념의 차이는 3?1운동을 통해 공화주의 노선으로 합일되면서 극복되었다.한편 독립운동의 공간이 해외로 확대되면서 1910년대 독립운동은 국제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1911년의 신해혁명과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한국 독립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3?1운동이 전사(前史)라 할 이 시기 국내 반일 민족해방은동은 크게 세 계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의병전쟁을 무장독립군조직으로 발전시키는 독립전쟁론의 입장에서 국내 무장투쟁의 조직이나 국외 무장투쟁의 지원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운동, 둘째는 한말 계몽운동의 실력양성 운동 노선에 서서 종교단체?학교 등을 이용한 공개적 교육?문화운동, 셋째는 식민지 경제수탈에 대한 농민?노동자의 생존권 수호투쟁 등이었다.)이 시기 다양한 운동들은 국내에서의 폭압적인 무단통치, 국외지역으로의 운동공된 여성단체 송죽회 및 1914년부터 1916까지 개성의 사립 한영서원을 비롯하여 함경도 일대의 사립 학교에서 전개된 애국창가 교육활동 등을 들 수 있다.이러한 항일 결사는 각지의 교육 기관 및 종교 단체 조직을 통하여 교사와 학생, 그리고 뜻있는 종교인들을 규합하면서, 조국의 광복을 위한 독립 운동을 폭넓게 전개하였다. 그리고 식민지 경제 정책으로 착취당하던 농민, 노동자들과도 연결하면서 민족 운동을 널리 확산시켰다.♠대한독립의군부최익현의 문하였던 임병찬이 주도한 대한독립의군부는 유생들로 전국 각 군을 조직하여 조선총독부에 축출각서를 보내고 일본정부와 외국정부에도 항의각서를 송달하면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1914년 5월에 조직이 발각되어 의병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기들 세력은 붕괴되었다. 그 후 한말 의병장 이인영?이강년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이동하?이은영 등이 조직한 민단조합 역시 군자금 모집과정에서 발각되고 말았다. 척사유림이 중심이 된 복벽주의운동은 대한제국을 복구하여 봉건적 지배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계급적?사상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복벽주의적 항일운동은 일제의 탄압에 의해 좌절되기도 하였지만, 식민지하 민족해방운동으로서 이미 이념적 설득력뿐만 아니라 대중적 기반도 상실한 운동으로서 사라져갔다.♠대한광복회한편 공화주의를 표방하며 장기적 전망에서 독립군양성을 목적에 두고 군자금모집과 무기구입, 친일부호를 습격?처단하는 비밀결사도 등장하였다. 1915년 7월 대구에서 결성한 대한광복회는 당시 활동했던 단체들 가운데 가장 전투적이었다. 풍기 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을 발전적으로 통합?조정한 대한광복회는 처음에는 경상도 일대에서 조직되었으나, 1916년부터는 충청도?경기도?강원도?황해도?전라도?평안도 등지로 확대되어 전국적으로 200여 명에 달하는 회원이 구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세계 각 국의 혁명과 중국 신해혁명의 교훈을 강조하며 국권회복과 공화중치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국내 100여 곳에 대중적 힘을 끌어들이는 데까지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1918년 중에 모두 와해되어버렸으나 이러한 조직활동의 경험은 3?1운동 당시 전국에 걸쳐 대중운동을 지도한 비밀결사조직의 모체가 되어 3?1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2) 학생운동국내에서 학생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하는 것은 3?1운동 이후의 일이었다. 3?1 운동 이전의 초기 학생활동은 각 지방의 학생들이 모여 단체활동을 갖는 것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것은 학생 독립운동의 형성기에 접어드는 전사적(前史的)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후에 조선물산장려계)나 조선학생국민회운동) 등은 반일과 독립의 회복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초기 학생의 활동을 지나 독립운동의 형성기로 접어든 학생운동으로 파악되어질 것이다. 그 즈음 서북지방을 위시한 전국에서 새 지식?새 사조로 흐르는 교육열이 드높아져 갔다. 이 교육은 곧 민족과 구국으로 관련된 성격을 가졌고 이것이 1910년 이후의 한민족의 구국교육의 내용으로 성립되고 있었다).1910년대 전개된 민족교육운동은 한말 계몽운동계열의 실력양성론을 계승한 것으로, 이제 나라를 잃었으니 독립을 위한 기초정립을 위해서 민족교육에 주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민족교육운동은 민족적 기풍을 가진 사립학교?서당?야학을 통해 수행되었다.한말 계몽운동을 통하여 비약적으로 성장했던 사립학교는 일제의 사립학교규칙 등을 통한 통제와 감시 속에서 그 숫자가 감소하였으나 이전의 학교를 정비하여 민족교육의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애국적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민족학교는 선교를 목적으로 한 선교학교들과 달리 민족교육에 힘을 쏟았다. 여기서는 근대적인 자연과학?실업교육?역사?지리 등의 교육을 실시했고, 교사의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각종 교육과정을 통하여 조선어?조선역사?조선지리?창가?체조 등도 가르쳤다. 남궁억은 『조선이야기』를, 장도빈은 『국사』를 비밀리에 저술하여 보급시켰다. 개성의 한영서원, 경성의 온천학교, 이원의 일신재, 영흥의 문명간도?연해주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독립전쟁을 위한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무장활동을 벌이는 한편,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교포사회를 중심으로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북간도의 명동학교, 서간도의 신흥학교?동창학교, 북만주의 대전학교, 연해주의 한인학교 등이 유명하였다. 1910년대 이 지역에서 이룩된 민족교육의 성과는 1919년 3?1운동의 소식이 간도지방에 전해지자 이 지역 학교 교사?학생층에 의해 삽시간에 대대적인 만세시위운동이 나타난 것으로도 알 수 있다.또한 일본의 유학생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학생들은 일본인의 왜곡된 대한 인식을 절감하고 민족적 단결을 강화할 필요성을 통감하였다. 그 결과 1909년 1월에 통합 유학생단체인 대한흥학회가 결성되었다. 또한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인 1912년 10월에 조직된 대한 조선인 유학생학우회는 재일유학생의 구심점이자 1910년대 민족운동의 본산으로서 역할을 담당하였다. 동경 한인 유학생의 다수가 망라된 학우회가 성립되자, 이 조직은 일반 한인단체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학우회는 결성 초기부터 단순한 친목도모단체가 아니라, 재일한인 반일투쟁의 중심기관이었다. 다양한 모임마다 웅변과 연설 프로그램 등으로 한국독립을 대중적으로 선전하고 조직의 강화를 도모하며 나아가 한국독립을 갈망하는 대중적 열기를 모아 나갔던 것이다. 또한 재일유학생들이 주도한 2?8독립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후 일본지역 한인운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3) 종교계 및 각종 문화운동?종교종교단체는 일제의 통치하에서 많은 역할들을 해왔다. 1910년 일제병탄 이후 조선 민중에게 희망이었던 민족주의 진보 성향의 종교들로는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 나철의 대종교, 개신교(기독교) 그리고 대대로 민족 수호적 성격을 가졌던 불교가 있었다. 이들 종교 단체는 교단 차원에서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종교계는 별도의 외곽 단체가 조직되어 문화 운동을 표방하며 비밀리에 항일 독립 운동을 전거두게 된다. 일제하 대종교는 포교 그 자체가 독립 운동으로 간주되었으며 창립부터 순수한 종교단체라기보다는 일종의 독립운동 단체에 가까웠다. 종교 단체이면서 무장 항일 운동에 직접 참가한 것은 대종교가 유일하였다).1911년 소위 105인 사건의 검거 속에서도 기독교의 세력은 꾸준히 자라 1911~1912년에 장로 교회는 650여 개의 남녀 학교를 운영하고 14,400명에게 신앙과 민족을 교육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이렇듯 불어난 세력과는 달리 조선 교회 지도자의 대부분이었던 선교사들이 민족의 위기를 이겨내는데 방해를 하였다. 조선 기독교는 처음에는 단순히 내세 행복만을 추구하는 성격을 가진 종교는 아니었다. 오히려 선교사들의 가르침에는 기독교를 믿어 문명 진보와 민족 구원을 강하게 담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선교사들은 조선 기독교인의 우민화 정책과 함께 정교 분리 정책을 실시해 민족의 독립과는 거리가 있는 정책을 실시해 나갔다.한일합방 당시 한국 불교계는 일본 불교가 이미 폭넓게 침투해 들어와 일본 불교의 추종 세력과 한국 불교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세력간의 분열이 있었다. 일본 조동종(曹洞宗)과의 통합을 획책하는 친일 불교 세력에 맞서 임제종(臨濟宗)을 내세워 한국 불교의 전통과 정통을 지키고자 한 민족 불교 수호 운동이 구국 운동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그리고 3.1운동에는 한용운, 백용성 등이 민족 대표로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나라의 위기를 맞아 우리 나라의 종교들은 대부분 조국 수호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중 종교활동과 밀접히 관련을 맺어 교육활동에 종교계에서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신앙이라는 일차적인 목적을 넘어 민족 교육을 통해 일제에 항쟁한 것이라 볼 수 있다.?민족사학한국 근대 역사학은 일제의 식민 사학에 대항해 올바른 민족사를 정립하고 민족 정신을 일깨워 민족의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발전했다. 일제는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한국의 독자적 발전을 부정하는 타율성론과 내적 발전을 부정하는 정체성론 등의했다.
13. 전통과 혁신Ⅰ - 15세기 후반 : 이탈리아15세기의 미술을 사로잡았던 모험 정신은 중세와의 진정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략 1400년까지는 유럽 각지의 미술이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해갔다. 이것은 예술의 영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 정치 세계에도 적용된다. 이 시대의 귀족들은 왕이나 봉건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거기에는 그들 자신이 어떤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의 옹호자라는 생각은 들어 있지 않았다.중세 말기에 이르러, 시민과 상인들로 구성된 도시가 점차 봉건 영주의 성보다 중요한 것으로 발전하게 되자 이러한 모든 점들도 점차 변해갔다. 상인들은 모두 그들이 태어난 고향의 말을 했고, 타국의 경쟁자나 침입자들에게는 일치 단결해서 대항했다. 각 도시는 교역과 산업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지위와 특권에 자부심을 갖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도시들이 큰 세력을 얻게 되자 미술가들은 다른 직공이나 장인들처럼 길드(guild)를 조직했다. 그들은 회원들의 권익을 열심히 보호했으며 따라서 다른 지방의 미술가가 일자리를 얻거나 그들 사이에 정착하지 못하게 했다. 단지 가장 유명한 미술가들만이 때때로 이 저항을 물리치고 대성당들이 건축될 시절에나 가능했던 것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일하는 것이 가능했다.15세기에는 미술이 각기 다른 여러 유파(流波k, school) 들로 분열되어 이탈리아, 플랑드르, 독일 등지의 모든 도시나 마을에는 그 나름의 회화유파 가 생겨났다. 15세기의 그림은 그림 자체만 보아도 그것이 피렌체의 것인지 또는 시에나인지, 디종 또는 브뤼주, 쾰른 또는 비엔나의 것인지를 식별할 수가 있었다.다양한 거장들과 유파 들, 그리고 그들이 시도한 실험들을 한 눈에 개관할 수 있는 유리한 장소인 피렌체를 중심으로 브루넬레스키{) 고대 연구의 성과를 최초로 실현시킨 건축가로 그는 전통적인 양식을 버리고, 로마 유적에서 복제한 원주, 박공, 처마 장식띠와 같은 고적적인 건축 형식들을 도입하려 했다. 또한 그는 미 술의 함으로써 획기적인 르네상스 양식에 이르렀다.의 뒤를 이은 다음 세대가 이들의 발견을 어떻게 이용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것을 어떻게 응용했는지 살펴보자.15세기 피렌체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새로운 고안을 오래된 전통에 맞도록 조화시켜야만 하는 그런 처지에 놓일 때가 많았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고딕 전통과 근대적인 양식 사이의 절충은 15세기 중엽의 많은 거장들의 특징이었다.·레온 바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 1404-72)도판 162 : 교회의 정면을 로마 풍의 거대한 개선문처럼 구상했다.도판 163 : 알베르티는 소위 야만적인 첨형 아치를 부드럽게 만들고 또 고전적인 기둥 양식의 요소들을 재래의 인습적인 형식 안에 채택함으로써 단지 고딕 식 설계 방식을 고전적 형식으로 번안했을 뿐이었다.·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 1378-1455)도판 164 : 세부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도 중세의 선구자들의 수법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기베르티의 부조는 그런대로 도나텔로의 작품만큼 힘차고 실감나게 보인다. 기베르티는 도나텔로가 목적으로 했던 실제 공간에 대한 개념은 주지 않은 체 명료하고 절제있는 표현으로 단지 깊이의 암시만 주어 그의 주요 등장 인물들이 모호한 배경과 대조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기를 원했다.·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 1387-1455)도판 165 : 회랑은 마사초의 유명한 프레스코의 둥근 천장만큼 원근법을 통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이 그림에는 거의 운동감이 없으며 실재의 단단한 인체를 암시해주는 요소도 보이지 않는다. 전시대의 정신을 변화시키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 1397-1475)도판 166 : 얼핏보면 중세풍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우첼로가 원근법의 발견에 너무 큰 감명을 받아 그것에 매료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곳곳에서 엄격한 원근법을 찾아 볼 수촐리(Benozzn Gozzoli : 1421경-97)도판 168 : 프라 안젤리코의 제자임에도 그와는 화풍이 대단히 다른 고촐리에게는 이 성경의 일화가 단지 아름다운 장신구와 화려한 의상, 매혹과 환락의 동화 같은 세계를 그릴 수 있는 기회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유쾌한 허식 속에서 국제 고딕 양식으로 되돌아가려는 기미를 찾아볼 수 있다.한편, 피렌체 남쪽과 북쪽의 도시에 사는 화가들도 도나텔로나 마사초의 새로운 미술의 의미를 받아들여서 어쩌면 피렌체 미술가들보다 그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골몰했던 것 같다.·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 1431-1506)도판 169 : 만테냐는 당시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현실성의 기준은 - 내면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형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 조토{) 피렌체 화파의 창시자로서 비잔틴주의를 극복함과 동시에, 조각가 N.피사노나 로마화파 카발 리니 등의 영향을 발전시켜, 그림을 그리스도교 교의(敎義)의 그림해석으로부터 해방, 인간성 과 종교성이 융합한 예술적 표현의 세계로 높혔다. 거기서는 주제로서 필요한 것만이 파악, 단 순화되어 있다. 화면은 인물과 공간과의 합리적인 연관으로 무대적으로 구성됨과 동시에, 인물 상은 조형적으로 형태화되어 각각 마음의 움직임이 개성적으로 표현되었다. 이탈리아 회화의 창시자로 불리며, 정신성과 현실성과의 종합으로 고딕회화를 완성하였다.의 시대보다 훨씬 더 정확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림의 전체에서 엄격한 단순성과 장대함을 가진 로마 미술의 정신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인물들은 마사초의 인물들처럼 조각적이고 인상적이다. 그는 마사초처럼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열심히 사용하여, 인물상이 단단하고 형체가 있는 존재들처럼 서 있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무대를 창출하고 있다.·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a : 1416?-92)도판 170 : 만테냐의 작품처럼 이 작품도 어딘가 연극의 한 완벽한 구성을 창출하기 위해서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화면 전체에 인물을 배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현실 세계를 거울과 같이 반영하는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관념(원근법의 발견과 자연의 탐구)이 채택되자마자 인물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그 이전처럼 용이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거대한 제단화나 그와 비슷한 작업에 직면했을 때 특히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왜냐하면 이런 그림들은 멀리 떨어져서 보여지며 또 교회 건축의 전체적인 구조와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미술가들은 성경의 이야기를 분명하고 인상적인 윤곽으로 신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안토니오 폴로아우올로(Antonio Pollaiuolo : 1432?-98)도판 171 : 폴로아우올로는 정확한 규칙을 써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전적으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 배치가 지나치게 딱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분명하고 좌우대칭적이다. 또한 배경에 있는 토스카나의 풍경은 원근법을 이용하여 훌륭히 묘사하고 있지만 그 주제와 배경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전경의 언덕과 배경의 풍경을 연결시키는 길은 하나도 없다.·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 1446-1510)도판 172 : 이러한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한 유명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사실상 완변하게 조화된 화면을 이루고 있다.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우아한 운동감이나 선율적인 선들은 기베르티나 프라 안젤리코의 고딕 전통, 또는 앞에서 우리가 부드러운 육체의 곡선과 섬세한 옷주름을 언급한 바 있는 14세기의 미술을 상기시켜준다.우리는 이제 후대의 역사가들이 중세의 공식적인 종언이라고 부른 그런 시대에 도달했다. 그 동안 이탈리아 미술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러 전환점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즉 1300년경의 조토의 발견이나, 1400년경의 브루넬레스키의 발견들과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러한 기법에 있어서의 혁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세기가 경과할미술가들의 그것과 아마도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는 대단히 달랐다.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차이점을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분야는 건축이었다. 이들 나라에서는 15세기 내내 전 세기의 고딕 양식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건물들의 형태는 고딕 건축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아직도 간직하고는 있었지만 시대적인 취향은 크게 바뀌고 있었다. 15세기에는 복잡한 트레이서리와 환상적인 장식에 대한 취향이 더욱 강해졌다.도판 174 : 프랑스 고딕 양식의 최후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도판 175 : 이 예배당의 형태는 그전 시대의 고딕 양식의 내부형태보다 훨씬 더 단순하다. 이 예배당은 수직양식{) 장식에 있어서 그 이전 시대의 장식적인 트레이서리의 곡선과 아치보다 직선을 더 빈번하게 사용한 14세기 말과 15세기 초 영국 건축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말이다.으로 알려진 고딕 양식의 마지막 단계이다.이탈리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회화와 조각의 발전은 이러한 건축의 발전과 어느 정도까지는 나란히 갔다. 알프스 산맥 이남에 사는 미술가들은 이미 근대 에 속하는 반면 그들은 아직도 중세 미술가들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프스 이남이나 이북의 미술가가 당면한 문제는 놀랄 만큼 비슷한 것이었다.·슈테판 로흐너(Stefan Lochner : 1410?-51)도판 176 : 이 그림은 고딕양식의 〈월튼 두폭화〉와 가깝다. 작품이 중세의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혹적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현실적인 공간과 정확한 소묘 때문이다.북유럽의 다른 화가들은 오히려 베노초 고촐리와 비견된다. (도판 177) 이탈리아 미술에 비해서 이상적인 조화와 아름다움을 성취하는 데 관심을 적게 가졌던 북유럽의 미술은 일상생활을 매력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유파 즉 이탈리아 미술과 북유럽 미술이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장 푸케(Jean Fouquet : 1420?-쳤다.
Ⅰ.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이 책에서는 과학적인 설명을 통해 유전적인 요소를 매우 강하게 긍정하고 있다. 특히 뇌와 호르몬에 의해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본래부터 차이를 지니고 태어났고, 이러한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분히 본질주의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유전적인 차이의 시작은 과거의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사냥꾼 남자와 양육자 여자의 특징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여자의 경우는 집에서 양육자의 역할을 담당했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와 관련한 정신적 특징을 소유하게 되었고, 남자의 경우에는 사냥꾼의 기질에 맞는 정신적 특징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그 시대에는 당연한 순리였지 지금과 같은 차별적인 의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이 과학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진화의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여자는 남자가 없을 때 가족의 수호자로서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했다. 수호자로서 외부의 적으로부터의 침입에 대한 경계심은 자연스럽게 여자가 시각?후각?미각?청각?촉각에 예민하도록 하였다. 또한 양육자로서 여자는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과 접촉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남자에 비하여 언어능력이 매우 뛰어나며 여러 상황을 직관(육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다중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남자는 사냥이라는 하나의 일에 몰두하는 습성 때문에, 감각에 무디며 한번에 하나씩만 일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오고 많은 오해가 생긴다. 대신에 여성에 비하여 공간지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지도를 잘 읽고, 평행주차를 잘할 수 있다.이 책에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화학 변화, 즉 호르몬에 의하여 설명하고 있다. 언어영역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호르몬에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호르몬에 의해 차이점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또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공간 지능에 영향을 끼친다. 낮은 테스토른 유전병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레즈비언의 부분에 있어서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 태아의 원판을 여성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남자와 여자의 성관계에 있어서 역시 역사와 진화를 고려하고 있다. 사냥꾼인 남성은 자신의 사냥과 자신의 종족번식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섹스에 있어서 맹목적일 수밖에 없고, 원래 일부다처제의 형태가 좀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여성에게 있어서 섹스는 남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 남성에게 있어서 사랑과 섹스는 별개의 것이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사랑이 없는 섹스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책에서 무조건 이러한 생물학적인 차이를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는 차이점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단지 역사적인 과정에서 남성중심의 문화가 이루어진 것일 뿐이고, 이를 현명하게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Ⅱ. 『여자 똑바로 읽기』이 책에서는 그동안 서구 학계에서의 이분법적인 사고, 특히 남성과 여성을 나누고 남성적인 것에 더욱 가치를 두는 남성중심의 특징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성(sex)은 인간의 사고, 행동, 정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인들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 즉, 인간에게 영향을 행사하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을 둘러싼, 한 개인의 성을 포함한 그 모든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성차가 아닌 개인차에 관심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심리학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성심리학에서는 주로 남성에 관한 내용을 연구하는 심리학적 전통 속에서 여성은 기껏해야 남성과는 다른 개체일 뿐이었다고 주장하고, 여성에 대한 이해만을 돕는 분야라기보다는 남녀를 모두 포함하는 인간 이해를 돕는 분야임을 강조하고 있다.먼저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은 틀로 여성과 남성을 바라봄으로써 다양한 모습의 여성과 남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성 본질주의적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시각이 성 구성주의이다. 성 구성주의는 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왔고 만들어져 왔다는 시각이다. 구성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성이란 여성과 남성, 어느 한 성에게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특정 행위와 동일시되는 개념이다. 성 본질주의적 관점은 문화와 사회를 초월해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보편적 행동과 판단상의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성 구성주의는 한 사회에서 합의된 남성과 여성에 관련된 특징에 대해 문화와 사회를 초월한 보편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또한 여러 가지 남성적인 특성과 여성적인 특성을 우리가 구별하려는 경향을 성 정형화 이론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기본적으로 본질주의를 비판하며, 구성주의 시각에서 서술해가고 있다.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서 보이는 여성과 남성의 특정한 행동 양식은 본질주의 시각처럼 그들의 유전자 속에 기억된 것이 아니고, 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의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일정하게 조장되어 온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본질주의자들이 주장해온 남성의 특징과 여성의 특징 특히 남성이 다소 우월하다고 주장되어진 특징이 자라오는 동안 사회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성욕에 있어서도 다르도록 ‘길러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여성의 이미지는 아름다움, 어머니라는 제한된 이미지로 규정되도록 억압되어 왔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이 책에서는 이전의 남성적인 학설을 설명하고 이를 비판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사고의 전환을 요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독자에게 함께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있다.Ⅲ. 여성 심리학1. 여성심리학의 출현미국 내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서의 변화와 금세기의 여성해방운동(feminism)의 출현은 여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나라에서 여성해방운동은 다시 하나의 강력한 사회운동로써 성차의 진정한 의미를 규명하려고 한다.지금까지의 심리학 연구들은 남성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성과 그들이 갖는 문제나 관심은 남성들의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고 여성들은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인식되지 못하였다. 심리학적 이론들은 남성을 규준(norm)으로 삼았고 남성들에 의해 채택된 표준에 맞지 않는 여성들은 무시되거나 심리적 문제나 결함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었다.지금까지의 여성에 대한 심리학적 지식이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 해방론적 입장의 심리학자들은 여성에 대한 이론과 연구에서 무시되는 영역들을 포함하고 남성 중심적인 개념과 추론의 잘못을 지적하여 여성에 대한 보다 더 포괄적이고 적절한 심리학을 구성하려고 한다.3. 성역할 정체감 발달이론1) 여성의 열등성을 강조한 이론일명 심리성적 발달이론으로 불리는 프로이드의 이론은 남녀의 생식기의 차이로부터 초래되는 사건에 의해 성역할 정체감발달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프로이드는 자신에게 음경이 없다는 소녀의 발견이 여성의 심리적 발달의 전환점을 이룬다고 가정하였다. 남근의 부재는 여성의 열등감의 근원이고 자기가치감을 저하시키는 직접적 요인이다.여성의 성역할 정체감 발달을 설명하는 프로이드의 이론은 남성의 발달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첨가되었을 뿐 이론의 중요한 부분이 되지 못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계층 여성들에 대한 임상적 관찰을 통하여 여성을 수동적이고 허영심이 가득찬 피학적 존재로 인식한 프로이드는 여성의 발달을 남성의 규범적 발달로부터 일탈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정하였다.또한 정신분석학파에 속하는 에릭슨(Erikson, 1964)에 의하면, 여성신체의 내부공간인 자궁과 질은 여성의 자아발달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여성은 인간 영아를 돌보는 데 적합한 해부학적 운명을 타고났으므로 여성의 정체감 성취는 결혼과 어머니 역할의 맥락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숙명적 신체조건은 여성의 성격발달을 제한하고 잠재가능성의 발현을 억압할 수밖에 없다. 그er)도 신프로이드 학파에 속하는 심리학자로서 소녀들이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계속적으로 경험하면 자기 신뢰를 잃게 되고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우수하고 힘을 가지려는 기본적 동기의 추구를 방해받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남성적인 특성이고 여성적인 것은 무엇이든 열등한 것처럼 보이므로 여성과 남성 모두 여성을 평가절하하게 되기 때문이다.사회와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카렌 호니, 크라라 톰슨 그리고 알프레드 애들러는 모두 1800년대 말엽에 태어나서 1900년대 중반에 활발한 활동을 하였던 신프로이드 학파의 심리학자들이다. 그들은 프로이드 심리학의 세계적인 유행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의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하였고 특히 그들의 남녀 평등적 사고는 20세기 페미니즘의 이론적 바탕을 이루었다.3) 여성의 어머니 역할을 강조한 이론낸시 초도로우(Nancy Chodorow, 1979)는 정신분석 이론으로부터 도출된 개념의 일부를 활용하여 여성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심리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초도로우에 의하면 어린 영아는 자아(self)를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자신과 어머니(양육자)를 구별하지 못한다. 어머니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어린 영아들은 심리적으로 어머니와 융합되어 있다. 그러나 영아는 점차적인 분화과정을 통하여 자신과 어머니가 분리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물론 영아가 어머니와의 분리를 인식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생리적 성숙과 인지적 성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아가 어머니와 관련되어 발달한다는 것이다.여성들의 아동을 통하여 관계욕구를 충족시키고 아동양육의 책임을 맡는 한, 직업세계에서 활동할 기회는 감소되고 남녀의 사회적 역할에서의 차이는 불가피해진다. 다시 말하면 여성의 어머니 역할은, 비록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남녀의 성격에서의 차이는 물론 사회에서의 역할 분담을 초래한다는 것이 초도로우 이론의 핵심이다.4) 후천적 학습을 강조한 이론스키너(B.F. S.
1. 자연을 위협하는 요인12. 자연을 보존하는 이유13. 보존 지역을 지정하는 이유24. 지정 가능한 보존지역35. 자연 보존을 위한 노력41. 자연을 위협하는 요인최근 환경에 대해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환경을 위협하게 된 원인과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자연관 그리고 중세와 근세의 ‘자연의 마법’의 자연관은 모두 자연을 질적인 대상, 즉 생명력을 가진 대상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그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시대에도 역시 자연은 인간에 인하여 조금씩 오염되어지고 있었다.그러나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 급격한 파괴력을 가진 오염을 초래한 것이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근대 과학의 성과는 광범위한 자연파괴와 환경오염 그리고 인간의 파괴와 소외를 담보로 달성되었다. 이것은 자연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살아 움직이는 자연을 죽은 자연으로 취급하였고, 이것은 바로 자연파괴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급진적인 공업의 발달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개발이 미덕이고, 산업의 발달이 인류의 생존의 열쇠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사람들은 개발을 위해서라면 죽은 자연을 정복하여 자의적으로 파괴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자연을 위협하는 요인을 세부적으로 살펴본다면 하나의 이유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사고인 것 같다. 인간의 발달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결국 자연을 위협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2. 자연을 보존하는 이유20세기 후반 공업이 발달한 국가들에서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이 비단 그 내부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생태계는 거대한 ‘생명의 사슬’을 이루고 있어서, 이 사슬의 한 고리가 끊어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자연 생태계 내의 상이한 종들 사이에는 상호의존성이 작용하고 있다. 인간은 복잡하게 얽혀 있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수천 종의 식물과 각종동물에서 여러 약용물질을 추출하여 사용하고 있고, 여러 에너지 자원을 자연으로부터 얻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인구증가는 더 이상 자연이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소비를 조장하였고, 자연 흐름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문제는 자연에 의존하여 살고 있는 인간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자연은 우리에게 홍수와 가뭄, 산사태, 산불 등의 큰 재앙을 주기도 하였다. 물질?문명의 혜택은 환경오염과 자연파괴는 물론이거니와 결국에 가서는 인간의 생존 자체마저 어렵게 한 것이다.이렇듯 자연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서적인 면에서 역시 자연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물질적?정신적인 큰 안식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이라는 큰 울타리 속에 포함된 작은 생명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인간에 의해 약해져 있는 자연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은 인간의 당위일 지도 모른다.3. 보존 지역을 지정하는 이유생물종과 이들의 서식지를 보호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자연보호지구’나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연보호지구나 공원에서 제1원칙은 보호와 보존이다. 하지만 ‘보존’이라는 것이 반드시 현상유지를 뜻하지는 않는다. 여러 사례를 통하여 이러한 보존 지역이 각각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 알아보자.★먹이연쇄의 복원 : 사라진 많은 수의 생물종을 다시 자연생태계에 도입해야 했다. 즉 포식자와 피식자로 이루어진 ‘먹이연쇄’를 복원하기 위해 세벤 지방에는 야생 독수리, 메르캉투르 산악지대에서는 야생 염소, 알프스 산악지대에는 수염수리(큰 야생 독수리), 보주 지방에는 스라소니, 다른 여러 곳에는 비버를 다시 도입해야 했다.)★종의 번식 조정 : 경우에 따라서 인간은 지나치게 번식하는 일부 생물종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한다(한 예로 1950년 열띤 논쟁 끝에 우간다 국립공원에 과 동물원에서 보호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본능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므로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이것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연은 인간에 의하여 파괴되었고, 그 위협은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왔다. 이와 같이 보존구역을 지정하는 이유는 인간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되는 자연이 이미 스스로 일어날 힘을 잃었기 때문에 인간이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다시 자연이 스스로 건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4. 지정 가능한 보존지역세계적으로 열대림과 습지는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DMZ 역시 좋은 습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수업 시간을 통해 알 수 있었으며, 갯벌 또한 보존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그러한 확연한 지역 외에 내가 생각하는 지정 가능한 보존지역에 대하여 이야기하겠다.얼마 전 TV에서 난지도의 생태에 대한 방송을 시청했다. 쓰레기장이라는 난지도의 이미지와는 달리 많은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것을 보며 느낀 것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둔다면 자연은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손길이 여전히 닿지 않는 곳들을 발굴해 보존지역으로 지정하고, 그곳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꾸려나가도록 약간의 인간의 신중한 도움을 주는 것 또한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불가피하다면 가급적 자연의 자정작용을 초과하지 않는 정도의 오염만을 허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라산의 경우,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판단이 될 때 일정 기간동안 그곳의 입산을 통제하기도 한다.하지만 도시와 같은 곳은 이러한 곳이 흔하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도시에서는 보존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있을까? 최근에는 도시의 강가나 여러 주택가를 중심으로 여러 생태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생태공원을 조성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생물학적 다양성이 확보 : 존의 공원에 비해 공원 및 녹지관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것은 공원 조성 및 유지관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또한 생태공원을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 등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조성함으로써 환경교육의 장으로, 더불어 자연상태를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생태공원은 다양한 소생물의 서식을 유도한다. 이렇게 서식된 소생물권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일정지역을 보호?관리하여 생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훼손된 생태계의 복원방법과 기술?연구 등의 학술적 작업으로 생태공원 조성 시 소재 공급지로서의 역할도 한다.)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개발과 환경은 큰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정 가능한 보존 지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혹은 국내적으로 이미 유명해진 여러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밖에 밝혀지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 더욱 보존되고 지켜져야할 많은 지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지역과 더불어 많은 보존 가능한 지역을 찾아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지키고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며, 또한 생태공원 조성과 같은 지속적인 노력이 있다면 인간과 자연이 다시 예전과 같이 가까워 질 날이 올 것이다.5. 자연 보존을 위한 노력★현대의 환경오염의 특성첫째. 다양화를 들 수 있다.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원인물질의 다양화는 예전에는 없는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둘째, 누적화이다. 산업화 및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환경의 자정능력을 벗어나 환경오염이 누적되어 환경오염이 심화되고 있다.셋째, 다발화이다. 많은 생산시설, 인구 등으로 환경오염을 발생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산재해 있으므로 자주 또는 계속적으로 환경오염이 발생한다.넷째, 광역화를 들 수 있다. 예전에는 공단지역, 생산시설 밀집지역에 한하여 발생하였으나 도시의 비대화 등으로 일정 지역의 환경오염의 심화는 그 지역에서 정화가 안되므로 주변의 지역으로 광역화되고 있다.★환경보전 방향첫째로 육체적으로 안전한 방연자원의 변화를 초래한다. 사회전체적으로 본 대기, 물, 자연경관 등의 오염은 공공재의 경제적 손실을 의미한다.넷째로는 지적이며 심미적으로 창조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이러한 미적 추구는 생활환경이 인공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거의 무시되어 왔으나 개발사업을 수행할 때 사전 영향 평가에서 개발이냐 보전이냐의 관점이 깊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다섯째로는 도덕적으로 충만한 방향이어야 한다. 환경오염은 산업발전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기업가가 스스로 부담해야 될 오염물질의 처리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전 사회에 피해를 강요하는 데서 빚어지기 때문이다.)위에서 현대 환경오염의 특징과 환경보전 방향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이러한 자연?환경 보존을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해왔으며 또한 어떠한 노력을 해야할지 이야기 해보겠다.먼저 현실적으로 관련법을 제정하여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를 방지하도록 해야한다. 그러나 환경보호법 및 규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난제가 있다. 우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경찰을 붙여놓는 일’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한 이 담당 ‘경찰’이 환경보호에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일 수도 있고, 직무유기를 하지 않는 정도로만 그칠 수도 있다. 따라서 환경보호를 위한 국가의 활동은 지역에 따라 필연적으로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한마디로 말해 불공정해진다. 국내에서는 각 도별로, 세계 차원에서는 각 국 별로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여러 경제적 유인책과 세제상의 유인책을 마련하여 자발적으로 공정하게 자연보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가장 중요한 노력은 시민들과 환경 관련 단체의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은 이미 여러 개발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들은 환경에 관련된 법을 제정하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직접적인 활동을 통하여 여러 환경파괴를 저지하기도 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중 중요한 것은 환경교육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