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 문제해결능력 강화사업 프로젝트』연구 논문다문화 가정 여성의 인권 -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전남대학교 인 문 대학독 일 언 어 문 학 과2010년 1월 4일다문화가정 여성의 인권 -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woman's right of international marries - in Gwang-juKey Words: 다문화가정, 여성, 인권초록(Abstract)Recently social interest about multicultural family and international marriage are increasing. Multicultural family means home that consists different people and cultural background. It is family from international marriage and foreign workers. This study is said women's rights of multicultural families through international marriage in Gwang-ju.In 2008, foreign woman and Korean man got married and the number of marriage is 649. Most of international marriages is marriage of foreign woman and Korean man, and it is that 'the feminization of international marriage' appears social phenomena..1. 서 론이제 길을 걷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다. 1976년부터 조사되기 시작한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2006년 632,490명, 2007년 765,429명, 2008년 854,007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본?상품?사람의 이동이 필연적인 대세1.9-1.3-10.5위의 통계 과 를 살펴보면, 국내 거주 외국인의 수치 증가와 더불어 2004년부터 외국인과의 혼인으로 인한 총 혼인건수 대비 외국인 구성비가 전체 혼인건수의 10%를 웃도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일민족이라 불리던 한민족은 이제 더 이상 한민족이 아닌 다민족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함께 높아져 가고 있다.다문화가정이란 우리와 다른 민족,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가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국제결혼 가정이나 외국인 근로자 가정을 통칭한다. 본 연구에서는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국제결혼을 통해 형성된 다문화가정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2008년 한 해를 기준으로 광주광역시에서 외국인 여성과 한국인 남성의 혼인 건수는 649건에 달했다. 국제결혼은 위의 통계에서와 같이 한국남성과 외국인 여성간의 결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국제결혼의 여성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결혼이라는 특정한 방식을 통해 한국에 이주한 여성들은 가족이라는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이주노동자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인의 배우자로서 국내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준비과정 없이 혼인을 통해 입국한 이들은 이주 초기부터 다양한 사회문화 적응상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회문화 적응상의 어려움은 언어 소통의 문제로 인한 가정폭력 등 인권침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들은 가부장적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로서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2008년 한 해 동안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의 상담실적 내용을 살펴보면, 총 상담건수 19,916건 중 광주 지역의 상담 건수는 276건으로 전체의 1.39%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상담내용의 유형을 살펴보면 가정폭력의 비율이 11.62%나 된다. 개개인의 사례를 들어보면 가정폭력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보이며, 입국한 지 며칠 만에 한국인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이주여성들은 여전히 많자와 임시근로자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3.1 광주지역 다문화가정 여성의 현황광주광역시의 경우 광역 도시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적인 특성 상, 인구대비 타지역에 비해 농업 및 공업 등의 단순노무직 종사자와 임시근로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때문에 많은 경우 대부분의 다문화가정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로 인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으로 가정 내의 불화 및 갈등을 고려할 수 있다.< 표 4 >를 살펴보면 결혼이민자 중 2/3정도가 되는 여성이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거주하고 있으면서도 취업이나 의료보험 등의 혜택에서 불이익을 받는 다문화가정 여성이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는 불안감과 국적 취득의 주도권을 남편이 쥐고 있는 경우에 이는 여성에게 억압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함께 발생한다. 결혼정보업체의 알선을 통해 여성을 매매한 경우, 심한 경우에는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하는 등의 인권 침해 및 유린의 양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표3 > 시도별 농림어업종사 남자와 외국인 여자의 혼인(단위: 건, %)구분시도별 혼인건수한국 남자와 외국 여자 혼인20072008(A)20072008(B)농림어업종사 男과의 혼인비중(B/A)20072008(C)비중(C/B)전국*343,559327,71528,58028,1638.63,1712,4728.8서울76,39971,7536,0045,5097.751430.8부산21,48420,1491,4291,5347.634372.4대구14,65513,7439219236.735323.5인천18,22718,1081,5341,6249.026291.8광주8,8588,4725956497.719274.2대전9,6849,4996367467.918182.4울산7,5637,8376065707.32491.6경기81,24878,0046,4096,4398.32902473.8강원8,9308,5178078119.519714618.0충북9,8349,51292697510.31781아니더라도 정서적인 무시로 인하여 자존감이 상하여 이혼을 요구하거나 경제적인 유기 등이 원인이 되어 가출을 하게 되는 경우를 본다면 실제로 가정폭력의 비율이 높아질 거라고 본다. 상담통계에 나타나는 것은 현재를 중심으로 한 폭력호소가 많으며, 아무래도 신체적 폭력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비율로는 약간 줄어들었지만, 이 역시 상담건수의 증가에 비추어보면 여전히 많은 수치이며, 개개인의 사례를 들어보면 가정폭력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고 본다. 입국한 지 며칠 만에 한국인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이주여성들은 여전히 많다. 이주여성에 대한 무시와 함께 이주여성을 향한 일방적인 한국생활 적응을 강요하면서 행해지는 폭력과 인권침해는 단순히 한국인 배우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가세하여 행해지고 있다.가출에 대한 상담내용은 5.38%에 이른다. 가정폭력의 결과 이주여성들이 집을 나와 상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주여성이 집을 가출한 상황에서 한국인 배우자나 가족들이 이주여성의 가출을 호소하는 상담을 하는 경우들도 있다. 우리 센터에서 상담을 전혀 하지 않은 경우에도 여성을 찾고자 하는 바램을 가지고 또는 분노를 삭이기 위하여 무작정 전화하여서 이주여성들을 폄하하는 내용도 간혹 있다. 가출문제는 앞으로도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의 원인은 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을 통해서 장밋빛 꿈을 그리면서 쉽게 입주하지만 꿈그리던 한국생활도 아니고, 여성의 일방적인 적응을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한국의 가족문화가 아시아 이주여성들에게 결혼생활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직업적인 중개업체들도 있지만, 본인들이 국제결혼을 한 뒤에 쉽게 중매인이 되어서 국제결혼을 성사시키는 경우들에 대해서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가족갈등상담은 3,593건으로 18.04%, 부부갈등은 2,337건으로 11.73%에 이른다. 2007년에는 가족갈등에 부부갈등을 포함한 통계치로 4,600건 34.65%였다. 2008년의 경우에 가족%로 약 2% 증가하였으며, 여전히 통역비중이 가장 높았다. 또한 생활문제는 19.15%로 한국어 학습, 은행이용 등 일상생활에서 이주여성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한 상담비중도 높았다.쉼터요청은 811건, 4.07%이었으며, 2008년 들어 와서 쉼터 요청이 증가하여 따로 통계를 내기 시작하였다. 가정폭력피해 여성의 경우에는 이주여성쉼터로 연결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폭력은 없지만 일상적인 무시나 욕설 등으로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거나 경제적인 어려움, 성격 차이로 남편과 함께 생활을 하기 어렵다면서 쉼터를 요청하는 이주여성의 경우에 이를 연계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친인척 등 개인적인 사회적 안정망이 없는 이주여성의 경우에 그 특수성을 인정하여 일시적으로 또는 중장기적으로 입소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표 5 > 거주지별 상담현황(단위 : 건)총계서울경기인천강원충북충남대전제주2008.1.1-12.3119,9164,04342171,*************57120비율100%20.3021,175.782.092.333.542.290.60대구경북경남울산부산전북전남광주본국기타2008.1.1-12.315297361,1803691.011*************.325비율2.683.795.921.855.084.494.101.391.0311.67< 표 6 > 상담내용의 유형(단위 : 건)계가정폭력가출외도가족갈등부부갈등성폭력2008.1.1-12.3133,5502,3151,0712703,5932,337254비율(상담통계19,916건대비)100%11.625.381.3618.0411.731.28성매매노동체류법률통역생활문제쉼터요청기타244943.1944,0786,9163.8148114,3790.122.4816.0420.4834.7319.154.9721.995. 대안책 제언정책적으로 다문화가정 여성에 대한 지원은 확대되어 가고 있으나 아직은 미약한 실정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대안책을 제언한다.첫째, 해외 결혼 여성을 우리의 일부이자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괄할
학사학위 논문「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 나타난브레히트의 전통극 파괴성전남대학교독일언어문학과2009년 12월목 차1. 들어가며 ...........32. 브레히트 이전의 전통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 .........2.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2. 브레히트의 서사극 ......2.2.1. 해설자 .....2.2.2. 노래 ......2.2.3. 서언과 발언문 ........2.2.4. 관객을 향한 대사 ................품의 완성기에 해당한다. 1941년 취리히에서 초연되었으며 독일에서의 첫 상연은 1949년 1월 11일 베를린에서였다.1930년경부터 브레히트는 연극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당대의 공연 예술이 삶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은 채 관객에게 환상을 심어준다는 이유에서였다. 브레히트는 작가의 의무를 이성적으로 표현된 현실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라 규정했기 때문에, 예술의 오락적 기능보다 교육적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미식가들처럼 문학과 연극을 향수(享受)하던 당시의 관객들의 인식을 바꾸고,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병폐를 고발하기 위해 그는 예술, 특히 연극을 사회학적 도구로 사용해야 된다고 믿었다. 예술의 오락적 기능에 문제의식을 느낀 브레히트는 연극의 변화를 시도하였는데, 연극이 달라짐은 물론 관객들의 변화를 함께 추구하였다.브레히트의 이러한 노력은 연극에 서사극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본격화 되었다. 우리는 이를 ‘소격효과’ 또는 ‘낯설게 하기’라고도 부른다. 관객으로 하여금 당연하고 절대불멸의 진리처럼 보이는 사회현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그것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극적장치인 것이다. 이를 통해 브레히트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은 변증법을 통한 ‘사고의 훈련’이다.때문에 브레히트가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에서 전통극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극에 서사극적 요소를 적용시켰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 해 낼 수가 있다. 우리는 기존의 전통극과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과의 차이를 통해 브레히트의 전통극 파괴성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2. 브레히트 이전의 전통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2.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브레히트 이전의 전통극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토대로 한 고대 그리스 비극의 삼일치론과 정화작용(카타르시스)을 중심개념으로 삼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목적으로 사용한 카타르시스가 비극이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모방함으로서 관객을 공포와 연민으로서 정화시킨다고 하였다. 예술 작품을 대한고 현대에 있어서의 가능한 사회개혁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브레이트의 서사극은 사회비판과 사회의 개혁을 목표로 한다. 낯설게 한다는 것은, 서사극의 기본구조를 이루는 개념으로, 서사극에서 낯설게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잘 알려져 있는 자명한 사실에 대해 놀라움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소격효과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눈에 띄게 하고,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하려는 기법을 말하는 것이다. 소격효과는 모든 일을 수긍하는 관객의 몰입적인 태도를 비판적인 태도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소격효과 사용의 전제 조건은 무대와 관객석에서 모든 '마술적인' 요소를 말끔히 씻어내고 '최면'에 걸릴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이런 소격효과를 통하여 브레히트가 이루려는 것은 '역사화'이다."낯설게 한다는 것은 결국 역사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건이나 인물을 지나간 일로 그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연극에서 다루어지는 사건이 관객에게 변경 가능한 것으로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다. 소격효과의 사용은 사회가 그 현재의 상황을 역사적이며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여길 것을 전제로 하며 투쟁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이다.서사극에서는 서사극의 목적과 범주의 연극적 실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2.2.1. 해설자해설자는 관객에 대해서 우월한 위치에 서서 사건전반에 대한 개관을 하고, 이에 대해서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음유시인과 같다.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워지는 해설자는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중개자이며 무대의 사건진행을 "위에서" 관찰하고 해설한다. 그는 그의 성찰을 직접 관객에에 호소하며 관객을 그의 관찰에 끌어들인다'. 즉, 해설자는 소격효과를 유발한다.2.2.2. 노래브레히트는 노래에 대하여 설명하는 곳에서, 대화로 이루어지는 희곡의 내면적인 차원과 해설하는 노래의 차원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무대상의 배열, 조명의 교체하는 방청객이 있음으로 해서, 극중극에서의 연극과 관객이라는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특히, 「코카시아의 백묵원」의 경우는 전체작품이 극중극의 형식을 띠고 있고 그 안에 또 하나의 극중극이 들어 있으며, 재판장면이 쓰임으로써 다중의 소격효과를 만들어낸다.2.2.6. 장면제목과 내용설명대부분의 브레히트의 희곡은 각 장면마다 간단한 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세한 내용설명이 붙여져 있다. 이러한 제목이나 내용 설명은 막에 투사되거나 현수막을 이용하여 연극적으로 실현된다. 이것의 역할은, 교훈을 이끌어내고 내용을 요약하며 바깥세계의 사건을 사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또,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드러나 있거나 감추어진 설화자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연극적으로 제시될 내용을 미리 이야기해 주는 내용설명이라는 서사적 기법은 연극적 사건에 대한 긴장을 해소시켜준다. 이렇게 될 때 관객의 관심은 '무엇'보다는 '어떻게'라는 진행에 대한 것에 쏠리게 된다. 즉, 소격효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2.2.7. 관객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기비유극의 서술자는 자기의 비유극에 필요한 모든 것, 사건 경위를 합법적으로 진행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다. 즉, 비유극의 무대 장치가는 비유극을 만드는 도구가 되는 조명등?악기?가면?벽?문?계단?의자?식탁 등을 공개적으로 보여준다.공개적으로 보여주기의 효과는 관객에게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연극적 사건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명기구를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불필요한 극적환상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1948년 스위스 추르의 소읍에서 공연했던 자신의 소포클레스 작 「안티고네」무대에서, 브레히트는 실제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지 않은 동안에도 무대 위에 있도록 했다. 그들은 네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서 석간을 읽거나 샌드위치를 먹거나 그들 자신의 의상을 매만지는 등의 모습이 드러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등장할 차례가 다가오면 그 그동안 내내 통틀어 단 한 번이라구요. 그 후에도 그 애는 전과 다름없이 여전하더군요. 하지만 그애가 그 날 무얼 경험했는지는 도무지 알아 낼 도리가 없더라구요. 내 한동안 그 생각으로 머리를 썩혔었지요. (그녀는 카트린이 가져온 물건들을 분노에 떨며 분류한다.) 이게 다 전쟁 때문이라구! 돈줄치고는 참 훌륭한 돈줄이지! (대포소리가 들린다)군 목 : 이제 용병대장을 묻는군. 역사적인 순간이로구나.억척어멈 : 그 녀석들이 내 딸 눈을 찢어 놓은 것이 역사적인 순간이라구. 그 애는 반쯤은 몸을 버렸다구. … (중략) … 쉬바이처카스도 이젠 볼 수 없게 됐고, 아일립이 어디 처박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저주받을 놈의 전쟁 같으니라구.첫 장면에서 억척어멈은 전쟁이 끝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는 연대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이동주보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에서는 물건을 하러 나갔던 딸 카트린이 상처를 입어서 돌아오자, ‘저주받을 놈의 전쟁 같으니라구’ 라며 전쟁을 부정한다. 그의 마음속에 동시에 자리하고 있는 물질에 대한 욕심과 모성애라는 대립적인 마음이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물욕과 모성애의 대립적인 모습과 각각의 상황에 대처하는 억척어멈의 이중적인 모습은 극의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그의 가치관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전통극에서의 주인공이라면, 전쟁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마음을 동시에 드러낼 수는 없다. 긍정이나 부정, 어느 한 쪽의 입장만을 취해 일관되게 발언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3.1.2 각 막의 독립성시간과 공간의 비약적인 격차에서 사건이 다를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문으로 된 이야기 형식의 시적 모방, 즉 서사시는 비극과 마찬가지로 그 플롯이 극적 일관성을 가져야 하며 또한 처음, 중간, 끝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이라 함은 그전의 어떤 사건과는 필연적 관련이 없지만 자연적으로 다른 어떤 사실이나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와 반대로 끝은 그전의것이다.
1표현주의 Expressionismus독일언어문학과62987 주 서 영【목차】? ? ? ? ? ? ? ? ? ? ? ? ? ? ? ? ? ? ? ? ? ? ? ? ? ? ? ?1. 들어가며2. 표현주의 명칭의 유래3. 표현주의 시대적 배경3.1 사회적 측면3.2 정치적 측면4. 표현주의 표현방법과 한계5. 표현주의 작가6. 표현주의 논쟁7. 마치며■ 참고 문헌1. 들어가며표현주의란 무엇인가?이 질문에 대해 ‘표현주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지어 개념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표현주의가 그동안의 어떤 문학사조보다도 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표현주의는 넓은 의미에서는 20세기 이전의 자연주의 등의 세기말 사조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지칭하기도 하고, 20세기 초 유럽 전역에 나타난 일반적인 문학운동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또는 표현주의란 명칭의 유래가 프랑스 회화에서 시작된 것임에서 알 수 있듯이, 20세기 초부터 형성된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미술상의 개념이나 경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다루고자하는 표현주의의 개념은 이러한 미술상의 개념이 독일인들에 의해 독일 내에서 일반화 되면서 1910년부터 1924년 사이에 나타난 예술 및 문학 운동을 말한다.Expressionismus다시 말해, 독일 표현주의는 인간성의 회복 Erneuerung des Mensch 이라는 강령아래 1910년에서 1924년까지, 젊은 작가 층에 의해 주도되었던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문학사조로 한정 시킬 수 있을 것이다.2. 표현주의 명칭의 유래표현주의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1년 파리에서 있었던 독립파 살롱 에서였다. 프랑스 화가 줄리앙 오귀스뜨 에르베 Julien Auguste Herve 가 처음으로 표현주의란 제목 아래 여덟 장의 그림을 전시한 것이 시작이었는데, 이 때 그의 그림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사실적인 그림으로 현재 우리가 표현주의라 부르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표현주의자라는 명칭 역시 마티스의 야 쾰른의 분리파 화가들의 전시회에서도 이라는 제목이 붙었다고 한다.이렇게 표현주의의 개념은 회화분야를 거쳐 문학에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문학 사조의 용어로 처음 사용된 것은 1911년 힐러 Kurt Hiller부터였다. 힐러는 (1911년 7월)에서 “가장 응축된 독일의 산문작가, 표현주의자, ‘축소형’ 미켈란젤로”라고 하르데코프 Ferdinand Hardekopf 를 말함으로써 표현주의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특기할만한 사실은, 표현주의라는 용어가 문학에서 사용되기 시작되었음에도 표현주의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일부 작가들은 당시 표현주의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 카바레 ‘새로운 파토스 Neo-Pathos’의 중심인물이었던 하임 Georg Heym 은 표현주의의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하임과 트라클 Georg Trakl은 이 개념의 의미가 자신들에게 적용되기 전에 죽어버렸다.3. 표현주의 시대적 배경3.1 사회적 측면마르티니 Fritz Martini 는 표현주의가 발생했던 당시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고전의 이상주의적 전통이 무색해지면서 사회와 문화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말하자면 시민적 생활규범의 틀이 와해된 것이다. 그래서 유럽 정신의 위기의식이 개개인의 마음속 깊숙이 새겨졌다. … (중략) … 그리하여 그들 젊은 세대들은 다시 내면화 Verinnerlichung 를 갈망하게 되었으며, 윤리적 ? 정신적 결단을 욕구하게 되었고,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그 당시는 독일의 고도산업화 시기로, 농업에 의존하던 19세기를 벗어나 급속한 성장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독일의 화학공업, 광업, 정밀기계, 광학, 전자산업, 조선업 등의 눈부신 발달은 다른 유럽 국가들이 백년 여에 걸쳐 이룩한 경제성장을 단 30여년 만에 이룩하는 성과를 보였다.이 같은 경제구조 변화와 더불어 사회구조와 계층의 변화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야기하게 된다. 먼저 도시로의 인구과밀 현상으로 18를 겪었으며, 부모들로부터 물려받은 도덕관념에의 회의로 인해 인간성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상당수의 표현주의자들이 훗날 무정부주의에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적 이데올로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여지가 여기에 있다.3.2 정치적 측면표현주의가 문학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1914년경은 세계 제 1차 대전의 발발 시기와도 맞물린다. 세계 제 1차 대전의 발발은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권다툼이 자리하고 있었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하여 판매를 하면 이익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확대투자가 이루어지면 또 다시 확대생산을 하는 것이 이론적인 기본 구조였다. 하지만 시장의 일정한 크기는 이러한 확대생산 후 국내에서의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본시장은 침체기에 빠지고 만다. 국내 시장의 소비량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제국 열강들은 식민지 개발을 통한 시장 확대를 이루고자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강대국끼리의 충돌이 세계 제 1차 대전으로 이어 진 것이다.이 시기의 20~30대 젊은 작가 층들은 유럽 열강 내에서의 제국주의를 보며 이미 전쟁을 예감하고 있었다. 인류 대 인류의 이러한 잔혹행위 앞에서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던 젊은 작가 층들은 의식의 개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이들은 식민지 개발 과정에서 이면상 국가가 내보인 ‘미개국에로의 문화전파’라는 측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답지 못하고 인간의 이성과 오성이 제대로 발동하지 못하는 이러한 인류애의 파괴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 것이다. 이들의 강령이 ‘인간성의 회복 Erneuerung des Mensch’ 인 것 또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때문에 표현주의 운동을 주도한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통하여 느낀 인간에의 환멸과 전쟁으로 인해 생긴 공포와 위기의식을 자신의 내면 안에서 소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표현주의는 반전운동(反戰運動)의 핵심이 되며,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게 된다.4. 표현주의 표현방법미이다.Die Auflosung der Formen wird Symbol einer in ihren Zusammenhangen zertrummerten Welt.따라서 만연체의 소설형식으로는 언어의 압축에 의한 강렬한 표현을 해낼 수가 없었다. 시 역시 이들의 욕구와 지향하는 바를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드라마에서 그 탈출구를 찾았다. 무대에서 상연되는, 작가의 주관을 관객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드라마야 말로 이들에게 꼭 맞는 문학 형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이들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것이나 형식에 의한 예술성만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지난 세대들의 감정 및 사고에의 한계들을 거의 극복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또한 자신들의 격정적 표현에 치중한 나머지 형식미를 소홀히 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표현주의 역시 나름의 독창성과 문학적 가치를 갖고는 있으나, 새로운 인간적, 사회적 내용의 제시에는 불충분 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즉, 당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는 있었으나 이것이 민중들의 삶에 녹아들지 못한 채 다만 작가들만의 자기만족의 선에서 끝이 나버린 형식실험에 그쳤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5. 표현주의 작가대표적인 표현주의 시인으로는 고트프리트 벤 Gottfried Benn(1886-1956), 게오르크 하임 Georg Heym(1887-1912)과 게오르크 트라클 Georg Trakl(1887-1914)을 들 수 있다.벤은 의사면서 시인, 그리고 에세이스트였다. 목사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학위를 마치고 의사생활을 하며 시체해부에 대한 경험을 시 속에 표현하였다. 그의 첫 시집 (1912)로 명성을 얻었으나 나치에 의해 공격받게 된다. 그의 첫 출판은 스위스에서 나왔으며 이후 뷔히너 문학상을 수상하였다.하임은 시민계층의 가정에서 성품과 다른 전통과 인습에 대해 고통을 느끼며 자랐다. 작품에 대해 엄격했던 아버지를 두었으며, 때문에 김나지움 시절부터 자살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베를린 에서 맹활약하며 표현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법합공부를 시작했다가 그만 둔 후 언론 활동을 하였으며, 풍자저널에 글을 싣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899년 황실모독으로 판결 받아 6개월을 복역하기도 한 그는, 시민계층과 거짓 도덕에 대한 반항을 주제로 삼았다.표현주의의 대표적 극작가의 한 사람인 카이저는 자연주의와 신낭만주의, 그리고 표현주의를 망라하여 가장 유명한 희곡 작가 중의 하나로 꼽힌다. 예술적으로는 매우 적극적인 입장이었으나 문단의 인정은 받지 못하였고, 191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1913)이 공연되고 나서야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표현주의에서 산문의 발달은 더뎠지만 하인리히 만 Heinrich Mann(1871-1950)과 토마스Thomas Mann(1875-1955)형제,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1883-1924)라는 거장들을 낳았다.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형제는 ‘삶의 평균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립하는 입장을 폈다. 시민적 질서에 대항하는 반항적이고 반어적으로 비꼬는 입장이었던 이들은, 니체의 저작들을 통해 비판을 펼쳤다.프란츠 카프카는 유대계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위를 마친 뒤 1년간 사법시보를 거쳐 일반보험회사에 취직했다가 1908년 이직한다. 그 후에도 꾸준히 작품을 써온 그는 1912년 첫 단편모음집 을 출판한다. 독자들은 카프카의 눈으로 본 언제나 동일한, 고뇌하는 주인공을 통해 혼란할 정도의 근접관찰을 경험하게 된다.6. 표현주의 논쟁1937년 Das Wort 지에 두 편의 논문이 실리면서 표현주의 논쟁이 시작된다. 하나는 클라우스 만의 논문이고, 또 하나는 치글러의 논문이다.클라우스 만은 초기 표현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고트프리트 벤이 나치스로 전락한 것에 대해 우연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표현주의 자체가 파시즘과 연결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논문을 게재하였고, 치글러 역시 표현주의를 발생시킨 정신이야말로 파시즘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하였다.즉, 이들은 표현주의가 반(反)파시즘 문학의 미래를 제시하는 유산인가, 반대로.
정상인을 위한 (비정상인들의) 사회-미셸푸코, 비정상인들을 읽고독일언어문학과62987 주서영미셸 푸코.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겨울이었다. 신문방송학에서, 수용자 비평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자료로 사용했던 학술비평 속에 그가 있었다. 저자가 당시 열풍처럼 번졌던 드라마 을 근대적 상징 공간으로 제시하며, 학교와 병원 그리고 감옥이 근대를 지탱하는 기초적인 구조물이라는 푸코의 근대 권력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을 인용했던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푸코는 병원(정신병원)이 고장 난 육체와 정신의 재생산을 담당하면서 온전한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검증 역할을 담당한다고 하였다. 병원은 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인간의 상태에 대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결정권을 행사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병원의 특권화된 과학의 권리는 범죄자의 정신을 감정하는 분야에까지 이르렀다. 푸코의 「비정상인들」에서는 그 특권화된 과학의 권리가 시대에 따라, 헤게모니에 따라 어떻게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이를 범죄학과 관련지어 담론이 탄생하고, 그 담론이 사회를 지배하는지 말하고 있다.동전에는 항상 양면이 있다. 어느 쪽을 앞, 뒤로 보건 동전에 앞과 뒤를 분리해 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에는 동시에 두 가지 대립하는 성질을 가진 것들이 생겨난다. 남자와 여자, 성인과 아동, 정상인과 비정상인등. 우리는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를, 성인과 아동을,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객관적으로 구별해낼 수 있을까? 객관적이라 함은 주관성이 배재된 채 제 3자의 입장에서도 언제나 그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헤게모니에 따라 객관의 기준은 언제나 변화되어 왔다. 남자인 동시에 여자인 사람들, 어른이지만 아이의 몸이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어느 범주에 귀속시킬 수 있을까?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사법적 관행은 확증 없는 죄인에게 심증만으로 형벌을 선고 할 수 있었고, 정신감정은 그것을 통해 사법이 담론을 정립할 수 있게 했다. 푸코는 이데올로기나 제도에 집중하기 보다는 담론을 사용하는 권력의 기술에 대해 분석하고자 했을 것이다.내가 이 책에서 가장 집중해서 읽었던 부분은 비정상인을 규정하는 사회의 모습에 관한 것이었다. 18세기의 광인과 19세기의 비정상인이었던 인간괴물, 교정해야 할 개인, 자위행위자 그리고 사회로부터 종종 발견되어 왔던 (그들이 이해 못할) 싸이코패스의 혼재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과제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비정상인인 이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18세기의 사회는 광인을 정신 감정에 입각해 하나의 치료받아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는 사회로부터 배제시키고 격리, 감금토록 했다. 사법기관이 광인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광인은 죄를 짓고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이 새로운 대상의 등장은 정신 의학을 탄생시켰다. 우리나라의 한 비평가는 정신 의학의 탄생은 담론이 하나의 지배 수단임을 보여준다고 말한 바 있다. 고대에는 폭력이 주요한 지배의 수단이었다면, 근대는 담론이 인간 지배의 주요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신의학에서 히스테리에 관한 논의는 그 본질을 정의하는데 목적이 있다기 보다 그 히스테리를 가진 자들을 인간 사회에서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느냐에 관심을 두고 있다. 푸코에 따르면 기독교 문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밀을 끄집어내는 기술인 고백의 문화를 갖고 있으며, 고해성사를 받은 신부는 그 교구의 모든 정보를 갖고 있었다. 신부가 갖고 있는 모든 비밀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기능을 함과 동시에 암묵적으로 하나의 지배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코는 정신분석학이 기독교의 고백문화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막스 프리쉬의 『안도라』이해하기독일언어문학과62987 주 서 영【목차】? ? ? ? ? ? ? ? ? ? ? ? ? ? ? ? ? ? ? ? ? ? ? ? ? ? ? ?1. 시작하면서2. 줄거리와 극의 구조2.1 줄거리2.2 극의 구조3. 편견과 정체성의 문제4. 등장인물의 한계5. 마치며■ 1차 문헌■ 2차 문헌1. 시작하면서막스 프리쉬의 대표적인 희곡작품인 「안도라」는 1961년 스위스 취리히의 샤우슈필하우스 Schauspielhaus에서 초연되었다. 프리쉬의 극작품 중 가장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1966년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서만 70개 이상의 극단에 의해 무대에 올려져서 전후에 독어로 된 극 중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에른스트 벤트 Ernst Wendt에 의해 “연극운동의 자극제”이자 동시에 “끝”)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현재까지도 독일 내의 김나지움이나 대학에서 해마다 다루어지는 중요작품이기도 하다.「안도라」가 희곡작품으로 갖는 의의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여 적용될 수 있는 작품의 성격 때문에 동서양 각국에서 번역되었음은 물론, 이러한 인기는 1965년 우리나라 연극계에 수용된 이래 1970,80년대 한국 독재정치시기를 거쳐 국내에서도 그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김기선 교수가 76여명의 현직교수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독일 희곡 강의에서 다룬 작품으로는 괴테의 『파우스트』(33교수),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27교수) 그리고 프리쉬의 『안도라』(23교수) 순서로 나타난다.)국내에서 10편이상의 논문에서 연구대상이 되었던 프리쉬의 작품은 Die chinesische Mauer (1947): 15편, Stiller (1954): 12편, Homo faber (1957): 20편, Biedermann und Brandstifter (1958): 13편, Andorra (1961): 28편, Biografie (1967): 10편 등 6편의 들어있는 「마리온과 꼭두각시」라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거리에서 ‘예수-꼭두각시’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렇지만 그 놀이는 경찰의 제지로 끝이 나게 되고, 마리온은 거기에서 안도라 사람들 역시 꼭두각시처럼 무엇엔가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후에 이러한 소재가 ‘안도라의 유대인’이라는 짧은 산문을 지나 희곡 「안도라」로 탄생하게 되었다.희곡 「안도라」에서는 유태인이 아님에도 유태인이라는 편견을 받은 채 살다가 결국 주위의 선입견에 의해 죽음을 맞는 ‘안드리’라고 하는 청년이 나온다. 교사(안드리의 아버지, 칸)는 안드리를 검은 나라에서 구해온 유태인 아이라고 주변에 알린 채 양아버지로서 그를 길러온다. 그들의 나라 안도라에서는 검은 나라 사람과의 교제, 더군다나 아이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극의 첫 경은 군인(파이더)과 바브린(안드리의 여동생이자 약혼녀)의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군인은 벽에 흰 칠을 하고 있는 바브린에게 추파를 던지고, 바브린은 군인을 귀찮아한다. 같은 시각 교사는 안드리가 가구사 일을 배울 수 있도록 가구사를 만나 견습생이 될 수 있도록 부탁을 한다. 가구사인 프라더는 견습 조건으로 50파운드를 요구한다. 광장에서 바브린을 만난 안드리는 자신이 가구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이 때 등장한 군인은 안드리에게 ‘유태인이기 때문에’ 겁쟁이라며 시비를 걸어 안드리와 다툼을 벌인다.제 2경에서는 안드리와 바브린의 대화가 이어진다. 안드리는 낮에 광장에서 군인과 다퉜던 일을 떠올리고, 바브린에게 자신이 겁쟁이 인지를 묻는다. 하지만 바브린은 안드리에게서 사랑만을 요구할 뿐이다. 안드리는 자신이 정말 유태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구사가 증언을 하는 전경이 이어지고, 제 3경에서는 안드리의 가구사 견습 모습이 나온다. 이곳에서 안드리는 유태인이라는 편견에 의해 자신의 꿈을 좌절당한다. 안드리가 장부를 이어 만든 튼튼한 의자와 견습공(훼드리)이 아교를 붙여 만든 의자를 착각한 가구사가 안으로 간 교사가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이 나오고, 제 6경에서 안드리는 바브린의 방문 앞에서 잠이 들어 있다. 그 틈에 군인이 바브린의 방에 침입하여 바브린을 겁탈하고,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안드리는 잠에서 깨어나 바브린의 방문이 잠겨 있다고만 생각한 채 저녁에 교사와 다툼을 벌인 이야기를 한다. 술 취한 교사가 등장하여 안드리와 또 한 차례 언쟁을 벌이고, 또 다시 자신이 ‘유태인이기 때문에’ 모든 꿈이 좌절당했다고 생각한 안드리는 바브린의 방문을 열려고 한다. 그 순간, 군인이 옷을 벗은 모습으로 방문을 열고 나타나고, 안드리는 또 다시 자신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음을 느끼게 된다. 군인의 증언 장면이 이어지고, 제 7경에서는 신부를 찾아간 안드리의 모습이 나온다. 신부는 좌절하고 있는 안드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유태인의 장점을 말해주지만, 이로 인해 안드리가 안드리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유태인화’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다시 증언을 하는 신부의 모습이 이어지고, 제 8경에서는 검은 나라에서 찾아온 한 여인(세뇨라)이 나온다. 이 여인은 안드리의 생모로, 교사가 자신들의 아이를 유태인이라고 속인 채 길러왔다는 사실에 대해 해명하고자 찾아온다. 하지만 검은 나라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안도라인들에 의해 여스파이로 의심을 받게 된다. 또 다시 여관에서 안드리와 군인의 다툼이 벌어지고, 그 자리에 있던 여인은 안드리가 자신의 아이임을 알아보고 안드리에게 자신을 교사에게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그 다음에 이어지는 전경에서는 여인과 교사의 대화가 이어진다. 관객들은 이 대화를 통해 안드리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이어지는 제 9경에서 여인은 안드리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자신이 생모임을 밝히지 못 한 채 여인은 안드리에게 자신의 반지를 선물로 주고 떠난다. 하지만 여인을 검은 나라의 스파이로 오해 한 안도라인에 의해 여인은 살해당하고 만다.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 되어 신부와 여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안드리에게 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 즉, 전체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극의 1 ? 2 ? 3 ? 6 ? 7 ? 9 ? 11장에 ‘전경’이라는 부분이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증언대’라고도 칭해지는 이 독립적인 공간은 시간적으로 안드리가 죽은 이후에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각 인물들이 증언을 하는 장소로 쓰인다. 관객의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이 전경은 왜 극을 구성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프리쉬의 참여문학관에 대해 먼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프리쉬는 문학이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문학이 사회의 한 제도로서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한, 현실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또 이에 대해 발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목표는 사회이다”, “당대의 현실의 상황이 요청하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는 그의 발언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그의 언급이 가리키듯 참여의 목적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다만 관건이 되는 것은 참여하느냐에 있다고 본다.)문학이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참여하느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프리쉬는 극이 현실과는 다른 독자적인 세계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대에 올려지는 극이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해석된 현실로써 관객이 의식할 수 있어야만 했다. 때문에 「안도라」에서 프리쉬는 ‘증언대’라는 독립적 공간을 통해 관객들이 전통극에서 벗어나 관찰자의 입장에서 극을 관찰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극의 효과는 극 중간에 누군가의 개입을 통해 관객의 몰입을 막고, 무대 위의 사건이 ‘실제가 아닌 연극’임을 깨닫게 하는 데에 있다. 이로써 관객들은 객관적으로 사건을 볼 수 있으며, 연극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비교 하여 자기 성찰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프리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이 책은 모든 안도라인들이 한 번은 줄거리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을 변호하도록, 또곡「안도라」는 집단의 맹목적인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 한 개인이 사회로부터 소외되어지고, 이로 인해 정체성마저 상실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체성의 상실은 결국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며, 자신들의 맹목적인 편견과 선입견을 깨닫지 못한 집단은 몇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자신들의 기억을 왜곡시켜가며 집단의 폭력을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인간의 정체성은 상호간의 교류와 관련이 있으며, 또한 인간의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때에만 정체성의 확립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안도라」에서 안드리는 전혀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다. 안도라인들의 ‘유태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안드리가 무엇을 하건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니며 유태인의 부정적인 속성들만을 적용시켜 안드리의 삶을 안드리 자신에 의한 선택이 아닌 주변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삶의 유형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안드리는 소외된 삶을 살게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삶을 포기하게 되는 기재가 된다.안도라인들이 가지고 있던 ‘유태인’에 대한 편견은 결국 안드리의 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문에 안드리는 극의 전반부에서 안도라인들이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유태인의 부정적인 속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태인의 부정적인 속성’은 안드리보다는 오히려 안도라인들의 모습에서 더 많이 드러난다. 유태인은 돈을 좋아한다, 라는 속성에 대해서 교사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수강료를 부른 가구사와 검은 나라 사람들을 두려워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여인을 투숙시키는 여관 주인 등이 모습이 그러하다. 그러나 정작 안드리는 자신이 받은 팁을 여러 명을 위한 주크박스에 넣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돈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이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유태인은 겁쟁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여러 명의 군인들이 안드리에게 시비를 거는 장면에서 물러섬 없이 이들과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안드리가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럼에도 안드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편견에 노출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