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이광수)나는 입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병감으로 보내어 진다. 병감이란 아픈 죄수들이 있는 감방 한 편 끝의 방들 이였다. 나는 일방에 들어갔고 그 곳에는 민이라는 사람과 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윤은 C경찰서 유치장에서 십여 일이나 나와 함께 있다가 나보다 먼저 송국된 사람이다. 빼빼 마르고 목소리만 크고 말끝마다 대가리라는 말을 쓰기 때문에 같은 방 사람들에게 대가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놀림을 받았다. 민이라는 껍질과 뼈만 남은 노인에게 나를 소개하고 그 옆에 앉았다.윤씨의 죄는 현모 임모하는 자들이 공모하고 김모의 토지를 김모 모르게 어떤 대금업자에게 저당하고 삼만여 원의 돈을 얻어 쓴 것이라는데, 윤은 이 공문서 위조에 쓰는 도장을 파준것 이었다. 윤은 고래고래 자신이 무죄임을 말한다. 옆에 있던 민은 밤낮 되풀이하던 소리라는 듯이 일부러 안 듣는 양을 보이며 똥통으로 올라간다. 윤은 또 똥질이냐고 소리를 꽥 지른다. 그리고는 민의 흉을 보는 것이다. 자식이 있고 열 아홉살 된 여편네가 있는데 여편네는 젊은 남자랑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려 면회 한번 안온다고 하면서 민의 심기를 건들이는 것이다. 참고 있다가고 아내 얘기만 나오면 민은 성을 낸다. 성을 내면서도 또한 침착한 천품을 보이는 것이다. 윤은 내게 대해서는 친절하였다. 사식차입이 들어오기 전 윤은 나의 밥과 자신의 죽을 맞바꾸어 먹자 하였다. 나는 법을 어기는 것이 뜻에 맞지 않고 의사가 죽을 먹으라고 명령한 환자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죄스러워 끝내 사양 하였다. 그래도 윤은 억지로 나의 조밥을 빼앗아 먹었다. 윤의 병은 점점 악화하였다. 확실히 과식하는 것이 한 원인이 되는 것이 분명하여 나는 먹고 남은 것을 윤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 먹을 것을 다 먹고 나서는 벤또 그릇을 창틀 위에 갖다 놓았다. 하지만 윤은 그 그릇을 집어다가 먹었다.그래서 나는 사식을 끊어 저녁 한 때만 사식을 먹고 아침과 점심은 관식을 먹기로 하였다. 윤은 나의 이런 행동이 저를 미워해서 그런 것 같이 나를 원망하였다. 더구나 윤의 아들이 삼원을 차입해 우유나 휴지를 사서 쓰게 된 뒤로 부터는 나에게 더 냉랭해 졌다. 윤의 차입은 일주일이 못해서 끊어지고 말았다.하루는 간수가 방문을 열어젖뜨리고 구십구호 민을 불렀다. 민은 집으로 가나 싶어 기뻐했지만 간병부가 웃방으로 갈거란 말에 금방 해골같이 변했다. 자신의 짐을 챙겨 웃방으로 옮겨간 후 윤은 또 민의 험담을 하였다. 간병부들은 윤을 윤서방 이라 불렀는데 전라도에서는 서방이라 하면 하인을 부를 때나 하는 말 이였다. 그래서 한날 윤은 간병부에게 서방의 뜻이 머냐고 물어봤다가 크게 당하였다. 그 후로 당분간 간병부 2명은 교대로 와서 윤을 놀러먹었다. 윤에게 더욱 불쾌한 일이 생겼는데 그것은 정이라는 사기범이 설사병으로 우리 감방에 들어온 것이다. 정은 거짓말쟁이이고 간병부에게 아첨에 가까우리만큼 공손하였다.정은 맛난 것은 젓가락으로 휘저어 골라먹고 남은 찌꺼기를 행주에다 싸서 소금을 치고 반죽을 하여 맛있을 거 같은 부분은 자기가 떼어 먹고 남은 것은 간병부에게 주면서 크게 생색을 내었다. 한번은 윤이 이것을 지적하였지만 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잠을 자기 위해 우리 방에 들어온 간병부에게 정은 그 떡 같은 것을 주었다. 윤이 간병부에게 먹지말라는 말을 하여 정과 윤은 서로 크게 싸우고 그 뒤로 더욱 냉랭해져 서로 험담을 하였다.윤, 정, 그리고 나는 다른 방으로 옮겼는데 그곳에는 민이 있었다. 더욱 해골 같은 모습으로이젠 눈알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방에는 강이라는 청년도 있었는데 성미가 괄괄하고 비위에 거슬리는 일은 참지를 못하는 사람이어서 윤이 민을 못 견디게 굴면 윤을 책망하고 정이 윤을 못 견디게 굴면 또 정을 몰아세운다. 한번은 점심때에 자반 멸치 한 그릇이 나왔는데 정은 가장 맛있어 보이는 멸치를 2/3이상 가지고 가 먹었다. 강은 멸치에 손도 대지 않고 조밥 한 덩어리를 다 먹고는 남은 멸치를 정에게 다 쏟아 부으며 저녁때까지 먹어라한다. 정이 밥을 먹고 잘 때 강은 주전자의 물을 다 먹어버리고 잠에서 깬 정은 목이 타서 주위 사람에게 욕을 한다. 민의 우유를 다 마시고 나서야 잠잠해진 정은 그래도 저녁에 밥과 남은 멸치를 다 먹고 물을 세잔 마신 후에 잠을 청하지만 속이 뒤틀려 구역질만 한다.옆방에 스물일곱의 장질부사 환자가 있는데 가게를 내고 장사를 하다가 그만 밑져서 화재보험을 타먹을 양으로 불을 질러 들어오게 되었다. 의무과장이 와서 진찰을 하고 복막에서 고름을 빼어보고 나간 후, 이삼일 지나서 민이 보석으로 나가게 된 날 밤 장질부사 청년은 죽어서 나가게 되었다. 그 청년이 죽은 뒤로부터 윤의 상태는 악화되었다. 기침은 더하고 열도 삼십팔도나 올랐다. 하루는 정이 간부병에게 말하여 윤을 검사시키게 하였고 윤은 죽은 청년 방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윤은 정을 원망하면서 꼭 죽어서 나갈 거라는 정에게 악담을 하고 나갔다. 정은 자기가 무죄로 나가게 되기 위해서 불경을 읽는데 윤이 나와 정이 밖에 나와 있을 때 나에게 염불을 어떻게 뫼시냐고 물어본다. 그 후에 윤은 보석이 되어 나가게 된다. 나는 출옥한 뒤에 민도 죽고 윤도 죽고 강은 목수일을 하고 정은 중병환자로 병감에 있는데 공판정에 나가볼 수 없다는 소식을 간병부에게서 전해 듣는다.
할머니의 죽음 (현진건)이 소설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가족들의 모습, 행동에서 나오는 심리를 묘사하였다.3월 그믐날 조모주병환위독 이라는 전보를 받고 그날 밤차로 떠났다. 새벽3시가 넘어서야 기차에서 내린 나는 할머니가 벌써 돌아가시지나 않으셨나 하여 염려하였으나 아직 숨은 붙어 계셨다. 할머니의 옆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안 이씨로 예절 알기와 효성 있기로 집안 중에 유명한 중모이다. 할머니에게 이 아이가 누구냐 물어보아도 알아보지 못하신다.나는 그날 밤을 할머니 곁에서 밝히었다. 모였던 자손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불교의 독신자인 중모는 할머니 곁에서 목청을 가다듬고 밤새도록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그 소리는 적적한 새벽녘에 해가와 같이 처량히 들렀다. 이렇게 할머니 곁에서 밤을 새는 중모는 우리 젊은이 패사. 육촌형제들이 잠깐 눈을 붙이려 하면 불러내어 다짜고짜 야단을 쳤다. 그 중에도 가장 나이 어리고 만만한 내가 이 꾸중받이가 되었다. 중모자신은 한 달이나 밤을 새웠다며 자랑스럽게 야단을 쳤다. ‘놀라운 효성을 부리는 게 도무지 우리 야단칠 밑천을 장만하는 게로구나’ 라고 밖에는 나는 생각 할 수 없었다.어느 한날, 중모가 우리를 불러 들어 할머니 방으로 갔다. 할머니의 머리맡 벽에는 다라니가 걸리어 있어 할머니가 곧 운명을 하시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모였던 자손들은 돌아가고 그날 저녁 할머니는 깨어나셨다. 이렇게 다라니는 벽에 걸리었다 떼였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자손들의 얼굴은 자꾸자꾸 축이 나갔고 불언중 할머니가 하루바삐 끝장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조차 맞추어서 칠까지 먹여놓았다.하지만 할머니는 정신이 돌아오는 때가 많아지고 자손들을 거의 틀림없이 알아맞히었다. 그리고 가끔 몸부림을 치면서 일으켜 달라고 야단을 쳤다. 할머니의 엉덩이에는 손바닥 넓이만치나 빨갛게 단 쇠로 지진 듯이 시커멓게 벗겨졌는데 이는 뒤를 잘 가리지 못하는 할머니의 옷을 제때에 갈아드리지 못해서였다. 나는 책임자인 계모가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일일이 그것을 갈아 드리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날 할머니가 하도 일으켜 달라 애원 하시 길래 곤장 일으켜 드렸다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 다시 눕혀드렸다.조금 진정이 되더니 내 조끼 단추를 붙잡아 당기었다. 단추를 푸니 옷고름 풀고 소매를 잡아당기었다. 여기저기서 애쓰는 웃음소리가 킥킥 들리었다. 나는 경멸과 모욕의 시선을 그들에게 던지었다. 그들에게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다른 방에서는 할머니의 병세에 대한 의론이 분분하였다. 그들은 변호사 은행원, 회사원으로 하루 빨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더 이상 무작정 기다리기 보다는 의원을 청하기로 하였다. 의원이 오늘 내일을 넘기시기 어렵다 하여 그들은 또 붙잡히게 되었지만 할머니는 점점 기력을 회복 하시는 거 같았다. 사람의 수명을 아는데 한의보다는 양의가 더 낫지 않을까 해서 양의를 청하니 2,3주일은 아무 일 없을 꺼라 한다. 할머니 또한 일어나 앉으시고 진지도 드셔 그날 밤차로 모든 자손들은 돌아간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 ‘오전1시조모주별세’ 라는 뜻 아니한 전보 한 장이 닥치었다.
장언원의 역대명화기는 고대에서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화론과 작품을 소개하고 그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였고 그 감상까지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역대명화기인 만큼 이책의 주제도 모두 회화이다. 회화의 원류, 쇠퇴와 흥성, 화육법 그리고 산수와 수석, 화법의 전수 등 수 천 년간의 중국 예술이 추구해왔던 가치가 담겨져 있다.장언원은 회화의 효능에 대하여 ‘백성을 교화시키고 인륜을 돕는다’고 하였으며, 바로 이러한 교육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육경에 비길 수 있다고 보았다. 뜻을 전하는 서가, 형태를 보는 데는 화가 강조되면서 서화가 분화되었다 보는데, 회화가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 은 순임금 때부터이다.고대의 사람들은 모두 유명한 서화의 가치를 존중하여 진귀한 서화를 모으는 것을 중시 하였다. 중국의 황제들 또한 서화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서화는 전쟁 때 불에 타거나 배를 통해 이동하면서 물에 빠지게 되어 없어지게 된 진귀한 서화들이 많다고 한다.그러므로 후세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장한 서화를 더욱 굳건하게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를 한다. 그리고 회화품평 기준인 ‘화육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림에는 여섯 가지의 법칙이 있는데 첫째는 기운생동이라 하고 둘째는 골법용필이라 하며 셋째는 응물상형, 넷째는 수류부채, 다섯째는 경영위치라 하고 여섯째는 전모이사라 하였다. 특히 기운과 형사의 관계에 있어서 형사는 그림의 보조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해 기운은 그림의 최종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체 중국 화사를 상고, 중고, 근대, 금인의 네 단계로 나누어 각각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상고시대는 붓의 흔적이 간략하고 축약되어 있고 뜻이 맑고 담백하고 단아 정순하다고 정리 하였고, 중고 시대는 붓놀림이 세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수려하고 우아한 광채가 들어 난다 하였고, 근대시기는 눈에 띄게 화려하면서 형체를 완벽하게묘사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화가들의 그림은 무질서하게 이것저것 뒤 섞여 있고, 특정하게 추구하고자 하는 핵심이 없다하였다.산수는 당나라의 오도현에 이르러서야 산수화의 일대 변혁이 시작되었으며, 이사훈과 이소도 부자에 이르러 나름대로의 체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이 외에도 왕유의 산수는 중후하고 심후함, 양염의 그림은 고아하고 기이함, 주심은 농후하고 수려함, 왕재의 정교하고 세밀함, 유상은 사실적 표현 등은 모두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산수와 수석을 표현하는 옛 사람들의 의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뜻이 자기가 핵심으로 하는 장점을 발휘하는 데 있으며, 세속적인 변화나 유행에 얽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이전 까지의 회화는 대부분 인물화가 중심이었지만 그 후 산수 자체에 대한 관심이 팽배해지고, 기법과 재료의 발달로 인하여 본격적이 산수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작품 줄거리작가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 주홍글자는 자신의 고향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서론 부분에서 자신의 세관 이야기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되, 즉 마녀사냥을 주도한 것에 대한 죄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시대의 사상인 청교도는 주홍글씨의 시대적 배경이다.여러 가지 풀들이 있는 목조감옥 에서 한 여인이 주홍색 글자 A를 가슴에 달고 아이를 그 가슴에 안고서 나온다. 이 여인의 이름은 헤스터 프린이고 이아이의 이름은 펄이다. 펄이라 이름 지은 이유는 굉장한 가치를 지녔다는 의미로 엄마의 희생으로 얻은 단 하나의 보배라는 뜻이다.헤스터 프린은 영국의 시민 이였으나 17세기 뉴잉글랜드로 남편보다 먼저 오게 된다. 뒤따라오기로 했던 남편이 오지 않는 동안 헤스터는 교회의 독신 목사 아서 딤즈데일과 사랑을 나눔으로서 아이, 즉 펄을 낳게 된다. 17세기의 엄격한 청교도 법에 따라 원래는 사형에 처해져야 하지만 남편이 사망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여 극형 대신 교수대 위에서 주홍글자 A를 단 채로 3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하는 공개적인 수치를 당해야 한다. 가슴에 달고 있어야하는 주홍글자 A는 Adulteress의 첫 자로 간음을 나타내며 이 표식은 평생 붙이고 살아야 된다. 교수대 위에 서 있는 동안 헤스터는 고관들에게 남자의 이름을 밝혀라고 강요받고 딤즈데일 목사 또한 이름을 밝혀야 한다고 설득 하지만 헤스터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렇게 헤스터는 아이를 안고 입을 다문체 교수대 위에 서있는 동안 주위에 몰려서 수군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눈에 익은 듯 한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한쪽 어깨가 올라간 굽은 늙은 한 남자는 헤스터의 남편 이였다. 헤스터를 먼저 보내고 뒤 따라 오던 남편은 인디언들의 포로가 되어 의사 생활을 하다가 인질금을 내기로 하고 풀려나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헤스터의 죄를 알게 되고 헤스터를 보살펴 주기 위해 그녀가 있는 감옥에 들어가서 그녀의 정부를 밝혀 낼 거라고 선언하며 자신이 남편이라는 것을 숨기게 한다. 그리고 로저 칠링워스라는 가명을 쓰고 의사 노릇을 한다. 감옥에서 나온 후 헤스터는 펄과 함께 마을 외곽 오두막집에서 살면서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한다. 바느질로 번 돈을 최소한의 생활과 펄의 옷감에 사용하고 나머지의 돈은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헤스터가 자신의 죄를 들어내 놓고 사는 동안 딤즈데일 목사는 내면의 죄의식으로 인해 몸이 많이 망가져 가고 있었다. 목사의 심신을 위해 칠링워스가 그의 주치의로 들어가게 되어 생활하던 중에 목사가 잠드는 사이 그의 가슴을 풀어 해 쳐 그의 가슴에서 주홍색의 A를 보고 그는 복수의 대상과 목적을 분명하게 하게 되었다. 그 후, 벨림햄 총독은 펄을 헤스터에게 서 떼어내어 청교도의 윤리 교육을 시키려 하였지만 딤즈데일의 설득으로 펄을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펄은 또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지만 혼자서 노는 법을 아는 아이였다. 펄은 헤스터 곁에서 밝은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어느날 헤스터와 펄이 장례식을 다녀오는 길에 딤즈데일 목사가 교수대 위에 서있는 것을 보게 된다. 셋은 나란히 교수대 위에 서서 떨어지는 성운을 보게 되는데 환영인지 모르는 주홍색의 A자를 같이 보게 된다. 헤스터는 목사의 몸이 심하게 상한 것을 보고 칠링워스에게 가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질 말 것을 부탁했으나 그는 거절하였고 헤스터는 그가 남편이라는 것을 말하겠다며 선언했다.며칠 후 인디언 부락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돌아오는 딤즈데일을 기다려 헤스터는 그에게 이 사실을 모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뉴잉글랜드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잉글랜드로 돌아갈 것을 딤즈데일에게 제안하며 가슴에 있던 A자를 던져버리고 머리를 감싸고 있던 수건도 풀었다. 그러나 펄로 인해 다시 A를 가슴에 달게 된다.새 총독이 취임하는 축제일에 설교를 다 마치고 영국으로 떠나기로 계획을 하였다. 축제날 감동적인 설교를 마친 딤즈데일은 헤스터와 펄을 데리고 교수대 위에 올라간다. 그는 7년전에 저지른 죄에 대해 말하고는 그 자리에서 헤스터의 품에 안겨 죽게 된다. 칠링워스는 그해 급격하게 몸이 약해져 죽게 되는데 그의 막대한 재산을 펄에게 남겨준다. 그리고 헤스터와 펄은 영국으로 떠나 살게 되지만 십 년후 헤스터는 뉴잉글랜드 오두막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불행한 이웃들을 도우며 살다가 자신의 여생을 마친다. 헤스터는 Adulteress에서 Angel로 바뀌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죽었다. 그리고 딤즈데일 목사의 무덤 곁에 묻혔다.
“가을” (김유정)이 단편 소설은 늦은 가을날 일제 감정기 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복만이와 나는 한 동리에서 서로 담을 사이에 두고 사는 이웃이며 동무이다. 평소 복만이는 말이 없지만 남의 꾐에 넘어가거나 하는 그런 얄팍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공문서 쓰는 종이 한 장을 들고서는 나를 찾아와 기약서 쓸 굴 아냐고 한다. 학교를 잠시 다녔던 ‘나’는 기약서는 쓸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둘은 함께 주막으로 갔다. 주막으로 가는 길에 복만이는 붓과 먹을 가지러 갔다. ‘나’는 복만이에게 하나 있는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아내는 팔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제 아무리 돈하나 못 벌어 와도 방안에 우두커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돌아다니며 양식을 꾸어다 남편을 공경하던 아내가 아닌가. 그런 아내를 팔아버린다 하니 ‘나’는 복만이가 여간 밉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 함부로 말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세 식구 함께 굶어 죽느니 아내는 아내대로 소장수 집에서 잘 얻어먹고, 남편과 자식은 또 그 받은 돈으로 먹고 산다면 일이 필 수도 있다.‘나’ 또한 벼 두말로 한겨울 날 것을 생각하면 어찌 보면 복만이 보다 더 안되 었 는지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주막에 이르니 큰 덩치가 떡하니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소장수와 복만이의 계약 내용을 ‘나’가 다 받아 적어 기약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장수는 처를 데리고 떠났다. 복만이는 울며 보채는 아들을 안고 있을 뿐 떠나는 처에게 잘 가라는 인사조차 없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닷새째 되는날, 소장수가 ‘나’를 무작정 찾아와 복만이 처가 도망갔다며 복만이를 찾아내라 한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 모두 복만이의 행적을 모를뿐더러 그의 처의 행적은 더더욱 몰랐다. 단지 기약서를 써주었다는 것으로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실컷 얻어맞고 ‘나’는 소장수를 따라 주제소로 가는 길 에 복만이가 덕냉이 즈 큰집에 갔을 거라 하지만 속으로는 아니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