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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한국 교회의 종말론적 재림 신앙에 대하여
    초기 한국 교회의 종말론적 재림 신앙에 대하여I.서론그리스도인들의 최대의 관심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요,기독교의 핵심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에 대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완성과 은혜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약에서부터의 재림은 신약과 초대 교회를 거쳐 계속적으로 이어져 왔으며 특히 한국 교회에서 재림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대두되고 있으나 올바른 성경적인 재림 신앙의 부족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한국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초기 한국 교회의 재림 신앙을 살펴보는 가운데 성경적인 재림 신앙을 확립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된 신앙을 영위하여야 할 것이다.II.본론1.재림에 대한 성경적 고찰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에 관하여 언급하셨으며(마 24:30, 26:64, 요 14:3)사도들 역시 예수님이 재림을 말하고 있다(행 3:20, 21, 빌 3:20, 살전 4:15, 16, 히 9:28). 그리스도의 재림을 표현하는 용어에는 [1. 베일을 벗김-고전 1:7,살후 1:7 2. 현현-살후 2:8, 딤전 6:14 3. 임재-고전15:23, 살후 2:1-9]가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은 친히, 육체를 가지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완성의 형태로, 돌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재림의 시기에 있어 그 징조는 먼저는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되며(마 24:14, 막 13:10, 롬 11:25)이스라엘의 민족적 회심이 있으며(슥 12:10, 13:1, 고후 3:15,16, 롬 11:25-29), 적그리스도의 출현(살후 2:3-10)과 기사와 표적의 대 환란(마 24:29, 30, 막 13:24,25, 눅 21:25, 26)이 재림의 징조가 된다.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은 세계의 종말에 미래의 시대,곧 사물의 영원한 상태를 소개하실 목적으로 오시며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 심판이라는 두개의 사건을 정식으로 시작하며 완성함으로써 재림의 목적을 달성한다.2.초기 한국 교회의 재림 신앙의 특징그리스도의 재림 신앙은 주기철, 길선주, 손양원, 이성봉 목사 등에 의하여 한국 교회에 기쁨과 소망을 심어주면서 크게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1)재림 신앙의 동기한국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뜨겁게 갈망하기까지의 이유로 길 선주 목사는 말하기를 "세상이 병들었으므로 의사되시는 예수를 갈망하는 것이요, 시대가 컴컴하고 어두워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어 광명한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여 시대적 암흑기를 예를 들어 주의 재림을 고대하였다. 또한 손 양원목사는 일제에 압박을 받고 있는 민족의 구원과 일본의 멸망을 염두에 두고 주의 재림을 강조 하였다 "세상은 벌써 종말기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은 목척 간에 임박하였다.우리 신도들에 대하여 박해를 가하고 있던 악마인 현재 각국의 통치 제도를 멸망시킬때가 왔다. 그리스도가 지상에 재림하시어 전쟁에 대한 불 신자측 전부를 옥중에 수용, 구금한다. 따라서 일본 천황도 일반 불 신자와 함께 옥중에 구금당하게 된다. 현대의 악한 정치를 번역하여 만국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이것은 말씀에 근거한 재림의 이유는 우주적이고 인류적이며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해석되어 지지만 이 민족에 있어서의 신앙의 선배들은 다소 주의 재림의 이유를 민족에 적용시키는 쪽으로 재림의 소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2)시대적 상황김익두 목사는 "이는 깰때라"라는 설교를 통하여 성경에 가르친 대로 말세가 왔으니 징조를 보라! 인자가 극도로 발달하고, 악이 극성하고, 애정이 식어지고, 믿음이 박약하여져 간다. 그러므로 오늘밤 주께서 오신다면 앉았던 의자 밑으로 기어들 사람이 많겠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한탄을 하였다. 그는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에 적용시켜 주의 재림의 급박성을 논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정신 차려 시대를 분별하도록 한 것이다. 길선주 목사는 세상의 상황 속에서 재림의 징조를 보았는데 그에 의하여 강조된 징조는 1)아이들이 어른을 멸시함 2)지진 3)온역 4)전쟁 5)흉년 6)사술의 유행 7)열 뿔이 나타남 아)유대 제사법의 부활 8)사색말의 나타남 9)하나님의 6일간의 천지 창조 및 7일의 안식함을 재림의 징조로 증거하였다.3)재림의 시기한국 교회 역시 주의 재림의 시기에 관심을 크게 가졌는데 그 이유는 이 주제 때문에 많은 이단이 생겼고 건전치 못한 사상을 갖게 된 무리가 많았다는 점이다. 시기에 대하여 길 선주 목사는 마24:36을 들어 아무도 알지 못함이 진리임을 밝혔으며 알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요 알려고 않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 것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존 칼빈 역시 예언의 말씀속에 언급되어진 재림의 시기는 구체적인 날자와 시간을 알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소망과 인내를 이끌어 내고자 한 것이라고 하였다4)재림의 장소이성봉 목사는 부흥회 때마다 강조한 재림의 설교는 "주님의 초림에 이어서 말세에는 공중에 재림하시어 공중에서 택한 자를 영접하시고 다시 이 지상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증거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이러한 영향으로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에 관한 교리를 부담없이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길선주 목사는 공중에 주께서 재림하실 것을 말하면서"이 곳은 사도 요한이 계시로 본 곳이다"하여 신부된 교회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혼인하는 자리를 의미한다고 논했으며 이 때의 세상은 뜨거운 가마가 끓는 것처럼 고통의 재난이 있지만 이곳은 기쁨이 넘치는 혼인 연석이요, 노아 홍수때의 방주가 추억됨을 논했다.5)휴거한국 교회는 주님의 공중 재림의 목적을 먼저 성도의 휴거로 꼽았다. 살전4:16-17,눅21:34-36의 말씀에 근거하여 공중에 주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는 부활하고 지상에 생존한 성도들은 환란을 피하여 순식간에 영화되어 공중으로 들려올라 갈 것을 논햇으며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되는 것을 휴거라고 하였다. 초기 한국 교회 부흥사들은 부흥회 인도시 설교하며 재림의 관한 메시지를 던질때마다 첫째 부활,즉 휴거하는 성도가 복되도다 라고 강조하는 흐름이었으며 이것은 한국 교회의 전반에 걸쳐서 휴거라는 낱말이 소망과 기대가 곽찬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 교회는 모든 신앙의 촛점을 휴거에다 두었으며 휴거를 구원의 완성으로 생각, 재림의 임박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따라서 모든 부흥사들,목회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주의 재림을 준비할 것을 강조하였다. 주의 재림을 준비함에 있어서 주 기철 목사는 재림론에 빠져 현실을 도피하는 자가되지 말고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준비하는 신앙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그에게 있어 재림 사상은 극단적인 면을 피하여 생활에서 충실하는 가운데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쪽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열 처녀 비유를 들어 신랑되신 예수께서 오실때까지 성도는 깨어있어야 함을 강조한 길 선주 목사도 깨어 있지 않은 성도는 그 날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으며 그는 마지막으로 "깨어 준비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소망 가운데 즐거움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러한 강조들에는 재림의 임박성을 시사하는 의미도 있으며 각 개인의 뜨거운 신앙을 위해서도 힘을 썼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성봉 목사는 주께서 장차 공중에 재림하실때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음을 설교하여 청중들에게 회개하며 정신차릴 것을 말했다
    인문/어학| 2019.04.11| 4페이지| 1,000원| 조회(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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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교회의 해외 선교 현황
    한국 교회의 해외 선교 현황1. 1900 - 1945년 까지한국 교회의 선교는 크게 3시대로 구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상 2시기로 구분을 하고자 한다. 그 중 첫 시기가 1900-1945년으로 초기선교의 시작이며 끝나는 시기이다. 정확하게 표현 하자면 초기 선교의 마지막 선교사였던 방지일 목사가 귀국하는 해인 1957년으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합동과 통합이 나뉘던 시대를 중심으로 구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상 1945년까지로 한다.이 시대에 파송된 선교사의 수와 파송지역 등을 살펴보자, 김수읍 목사의 자료에 의하면(아직 검정이 되지 않았음) 장로교의 경우 1907년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에 파송한 것을 필두로 총 50명을 만주, 시베리아, 중국, 몽고 등지로 파송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62명의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그 중에는 김수읍 목사의 경우 한석진 목사를 일본 선교사로 인정을 하였으나, 실상은 일본의 선교 현황 시찰과 독려를 위해 3개월간 파송을 받은 것이므로 62명의 수에는 넣지 아니 하였다.(어떤 보고서는 선교사로 넣고 있다) 감리교의 경우 1902년에 하와이에 홍승하 선교사를 인천 내리교회가 파송한 이래 1937년 까지 33명의 선교사를 일본 만주, 시베리아, 중국 몽골에 파송하였고 인도에는 2명의 전도 부인의 활동비로 매년 850원을 지불하였다. 성결교의 경우, 12명을 1925년 부터 1937년까지 만주, 일본, 중국에 파송하였으나, 침례교의 경우 1906년을 계기로 12명을 만주, 중국, 시베리아, 몽골에 파송을 하였다.이상의 수를 합하면 총 119명이나 된다. 이 수는 그 시대의 기독교인 수나 그 시대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 볼 때에 엄청난 수의 선교사가 파송된 것이다. 만일 경제 차이는 배제하고 수적인 비율만으로 계산을 하여도 그 수는 대단하다. 그 당시 기독교인의 총 수는 약 500,000명으로 추산한다. 그러므로 교인 4202명 당 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현재의 선 한국목사가 태어났을 때 기념으로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을 하였다. 또 1913년에는 조선 장로교 제1회 총회가 모였을 때에 사병순, 박태로, 김영훈을 산동성 선교사로 파송을 하였다.2) 노회중심으로 선교를 하였다.선교를 기획하고 선교지를 결정하고 하는 것은 총회가 감당 하였지만 선교사를 관리하고 선교비를 보내고 선교지의 선교사 사역의 결정은 노회가 감당하였다. 이러한 제도가 언제부터 그같이 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1910년 시베리아의 선교사 최관홀 목사의 선교 계속 여부를 노회에서 결정을 지었다. 그 결과 선교비 500원을 거두어 최관홀 목사에게 보내고 1년간 연장하여 선교 사업을 계속할 것을 지시하였다. 물론 이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선교 사업지가 국경과 가까와 선교사 관리를 국경 가까운 또는 선교지가 가까운 지역 노회에 일임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3) 팀 선교를 하였다.팀 선교의 개념에 오늘날 문제가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지역에 목사나 전도사를, 즉 성경을 가르치거나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만 구성하여 선교지로 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팀 선교의 의미는 출발시부터 각자의 담당 역할이 결정지어져 서로간의 월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 서로가 없으면 선교를 원활하게 운영하는데 지장이 되거나 아쉽게 되어 있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책임과 의무의 소재가 분명하다. 이 당시 선교가 그러하였다.제주도의 경우 이기풍 목사를 1907년 파송한 이후 또 그곳에 목사를 파송하지 아니하고 대신 이기풍 목사를 도우며 선교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1909년에 이관선 여전도사를 파송하였다.1909년에는 최관홀 목사를 러시아에 파송하면서 조사 한병직 이외에도 매서인(매서인) 이재순을 성서공회와 의논하여 함께 파송하였다. 그 1911년에는 교회 2개 처소, 13개의 예배 처소, 764명의 교인을 얻었다. 이외에도 1921년에는 김윤식 씨가 내양(래양)에 선교 병원을 운영하도록 선교부가 허락을 하였다.여기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되는 것은 동일한 지역에라 국가 중에서도 지역 중심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선교지가 국가 중심이 되면 선교사는 어느 지역에서나 선교를 할수 있어 한 선교지를 두고 서로 분쟁을 일으킬 수가 있으나 선교지가 지역 중심이되면 서로 부딪힐 요소가 훨씬 적어지는 것이다.또 한 가지는 선교사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선교지로 떠나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유는 맡은 직분을 위해서만 일을 할 때에 역시 서로간의 마찰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선교지에 대해 꼭 필요한 선교사만을 보내게 되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다.4) 선교지 연구가 어느 정도 있었다.선교지 연구는 그 지역에 어떤 선교사를 파송하여야 효과 있게 선교를 할 수 있는지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이 같은 일이 이미 이 당시에 있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이 당시의 선교지가 국경 변방이므로 쉽게 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경제 사정 교통망 등을 고려할 때에 이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 예로 1917년 산동성 선교를 조사할 목적으로 방효원 목사를 파송하여 그곳을 조사케 하였다.5) 연합 선교를 하였다.일반적으로 장로교회는 감리교회와 연합을 많이 하였고 선교지를 두고도 서로 의논하며 협약을 하기도 하였다. 한 예로 191년 동경에서 감리교인과 장로교인 서로 분리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자 대구의 부해리 목사(선교사), 길선주 목사, 원두우 선교사 3인을 일본에 파송하여 서로 타협케 하여 연합으로 예배처소를 마련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1920년에는 감리교와 중국의 선교지에 대해 서로 의논을 하였다.6) 선교사를 위한 신학적 제시가 약하였다.이러한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선교사가 겪는 고통이다. 그중에 가장 큰 문제는 선교비가 지급되지 아니함으로 겪는 고통과 그 당시 일본인의 지배하에 있으므로 인한 신사 참배 문제 등과 같은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하였다. 한 예로 최관홀 목사는 1913년 희랍 정교회의 핍박을 이기지 못하여 희랍정교회로 개종는 대부분 1989년 또는 1988년의 것이고 기타 중 선교단체의 것은 1986년의 것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서로의 비교치가 객관성을 위한 것이므로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먼저 각 교단과 선교단체가 파송한 선교사의 현황을 밝혀 보자고 한다. 여기서 괄호 속의 수자는 파송된 선교사 중 은퇴하였거나 소천, 파면, 휴직 등의 사유로 활동하지 않는 선교사의 수를 의미한다.| 국명, 교파명 | 합동 | 통합 | 고신 | 순복음 | 기타 | 합계 || 서독 | 13(3) | 7(4) | 2 | 21 | 40 | 83(7) || 덴말크 | 1(1) | 0 | 0 | 0 | 0 | 1(1) || 영국 | 3(1) | 0 | 0 | 1 | 4 | 8(1) || 뉴질란드 | 0 | 1 | 0 | 0 | 1 | 2(0) || 오스트리아 | 0 | 1 | 0 | 1 | 0 | 2(0) || 스웨덴 | 0 | 2(1) | 0 | 1 | 1 | 4(1) || 스위스 | 0 | 1 | 0 | 0 | 0 | 1(0) || 프랑스 | 0 | 0 | 0 | 1 | 1 | 2(0) || 벧기에 | 0 | 0 | 0 | 0 | 1 | 1(0) || 노르웨이 | 0 | 0 | 0 | 1 | 0 | 1(0) || 스페인 | 0 | 7 | 0 | 8 | 0 | 15(0) || 폴투갈 | 0 | 1 | 0 | 1 | 0 | 2(0) || 합 계 | 17(5) | 20(5) | 2 | 2 | 48 | 122(9) || 국명, 교파명 | 합동 | 통합 | 고신 | 순복음 | 기타 | 합계 || 미국 | 5(2) | 9(3) | 3(1) | 215 | 0 | 232(6) || 카나다 | 0 | 0 | 3(1) | 6 | 0 | 9(1) || 멕시코 | 0 | 1(1) | 0 | 0 | 0 | 1(1) || 코스타리카 | 0 | 1(1) | 0 | 0 | 0 | 1(1) || 파나마 | 0 | 1 | 0 | 0 | 0 | 1(0) || 에콰도르 | 0 | 0 | 0 | 1 | 0 | 1(0) || 브라질 | 계 | 28(4) | 26(7) | 11(4) | 238 | 15 | 318(15) || 국명, 교파명 | 합동 | 통합 | 고신 | 순복음 | 기타 | 합계 || 이스라엘 | 1 | 0 | 0 | 0 | 0 | 1(0) || 터어키 | 2(1) | 0 | 0 | 0 | 0 | 2(1) || 아랍토후국 | 0 | 1 | 0 | 0 | 0 | 1(0) ||사우디아라비아| 0 | 1(1) | 0 | 0 | 0 | 1(1) || 요르단 | 0 | 1 | 0 | 0 | 0 | 1(0) || 이란 | 0 | 3(1) | 0 | 0 | 0 | 3(1) || 합 계 | 3(1) | 6(2) | 0 | 0 | 0 | 9(3) || 국명, 교파명 | 합동 | 통합 | 고신 | 순복음 | 기타 | 합계 || 일본 | 15(3) | 13(4) | 8(1) | 11 | 16 | 63(3) || 대만 | 6(1) | 11 | 3 | 2 | 4 | 26(8) || 중공 | 1 | 0 | 0 | 0 | 0 | 1(0) || 홍콩 | 4(2) | 4(1) | 2 | 1 | 3 | 13(3) || 필리핀 | 12(3) | 2 | 3 | 1 | 19 | 37(3) || 싱가폴 | 1 | 1 | 1 | 1 | 5 | 9(0) || 태국 | 3(1) | 3(3) | 0 | 0 | 12 | 18(4) || 인도네시아 | 2 | 6(2) | 2 | 0 | 10 | 20(2) || 인도 | 3 | 2 | 0 | 0 | 2 | 7(0) || 방글라데시 | 0 | 5(3) | 0 | 0 | 2 | 7(3) || 파키스탄 | 0 | 3(1) | 0 | 0 | 1 | 4(1) || 네팔 | 0 | 2 | 0 | 0 | 4 | 6(0) || 월남 | 0 | 1(1) | 0 | 0 | 0 | 1(1) || 말레이지아 | 0 | 0 | 0 | 0 | 3 | 3(0) || 브루나이 | 0 | 0 | 0 | 0 | 1 | 1(0) || 합 계 | 47(5) | 53(16) | 19(1) | 16 | 82 | 216 |
    인문/어학| 2019.04.11| 7페이지| 1,000원| 조회(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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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교 사상사
    Paul Tillich의 "그리스도교 사상사"1. 신학의 기본자세교재 182-부터의 폴틸리히가 나눈 중세의 구분을 참조하자. 중세의 암흑시대는 9-10세기라고 하고, 1000년에서 1200(중세초기)년에는 스콜라 철학이 주를 이룬다. 이것은 13세기에 가서 끝이 난다. 이유는 말기에는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중세기 신학의 중요한 태도는 스콜라주의, 신비주의, 성서주의인데 이 중에서 중요한 것은 스콜라 주의와 신비주의이다. 이 시간에는 스콜라 주의와 신비주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1) 스콜라 주의스콜라 신학의 실재적인 관심은 보편이 실재하는냐? 개체가 실재하느냐?하는 것이다. 여기와 연결해서 신앙과 이성의 관계가 어떤 것이냐?하는 것이 핵심이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가? 보편이 참으로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 이것은 교리에 가서는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전통이 권위다라는 말이 된다. 사상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을 이성으로 판단하겠다고 하면, 이것은 개체가 실재하는 것이다. 전체가(보편이) 실재한다는 입장과 개체가 실재하는 것이라다는 입장의 사상이 생기게 된다. 이 두 극단의 싸움과 논쟁이 있는데, 이 두 극단의 중간에 끼어 있는 것이 Moderate Realism이다. 중세의 스콜라 철학은 신앙과 이성의 관계, 실재와 보편의 관계에 대한 철학으로서 세 가지의 중요한 흐름이 있다.●Anselm(안젤름)이 사람의 저서는 Proslogion과 Monologion, 그리고 Cwz deus Homo?("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나?")이다. 이러한 질문은 속죄론과 관련이 되어 있다. 이 입장은 "보편이 실재한다"고 보는 것이다.이러한 입장에서 신앙과 전통의 관계는 신앙이란,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전통을 믿는 것이다. 신학이란 전통위에 세워진, 전통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안젤름의 신 존재증명은 어떻게 하는가? 이에 대해 안젤름은 두가지로 나누어서 하는데 첫 번째는 우주론적 신 존재증명이다. 이것은 그의 책 {Monologion}에서 하고 있의 모든 신학적인 내용들을 모두 모아서, 주제별로 묶어서 서술하였다. 이 책이 바로 {Four Books of Sentences}이다. 이 책의 제 1권은 신론, 삼위일체론을 말하고, 제 2 권에서는 창조론, 인간론을 말하고, 제 3 권에서는 기독론, 속죄론, 성령론을 말하고, 제 4 권에서는 성례전론, 종말론을 말한다. 이것은 카톨릭의 텍스트북으로서 17세기까지 사용되었다. 17세기부터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Summa Theologiae가 사용된다.우리의 교재에 "어거스틴 전통"(교회 권위의 입장)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이것의 줄기 또는 주흐름은 실재론(Realism)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후에는 Franciscan Order(프란시스 수도회)로 이어진다. 이것은 의지(Will)를 중요시한다. 이것은 Voluntanism(主意主義)으로 이어진다. 안젤름 이와는 달리 어거스틴 전통의 반대의 입장에 선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이다. 이것은 유명론(Nominalism)에 속하게 되고, 도미니칸 교단에 속하며, 여기서는 Intellect를 강조한다. 이것은 Intellectualism(主知主義)으로 이어진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미니칸 교단에 속하지만 그는 온건한 실재론자이다.●플로라의 요아킴(Joachim von Floris, 1145-1202)우리는 요아킴의 역사관을 "삼위일체적 역사관"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가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첫째 시기는 아담에서 세례요한,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선구시대, 둘 째 시기는 구약의 웃시야왕부터 주후 1260년까지이고, 셋째 시기는 6세기의 베네딕트 서방수도원의 창시부터 그 이후를 성령의 시대라고 한다. 요아킴은 제 3 시대인 성령의 시대를 강조하였다. 이 시대의 특징은 성령이 은총을 내리는 시대이다. 이때는 묵상과 사랑이 지배하는 자율적인 자유의 시대이다. 성직자의 지배시대 (중세시대)가 끝난다. 이 시대가 요아킴에 의하면 바로 완성의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는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는 것이강조되는 것이 Illumination(조명)이다. 이것은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내적인 빛(Inner Light)을 통해서 어떤 진리를 알게 되고, 어떤 절대자를 만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인간의 모든 인식은 신의 말씀에 조명을 받을 때만 가능하다고 본다. 신앙이라는 것은 의지의 활동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조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학의 과제는 믿음에 관한 것이고, 따라서 신학은 단순히 과학이 아니고 신학은 지혜라는 것이다. 신에 인식이 모든 다른 인식에 앞서며, 신의 인식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마음속에 최상의 빛을 따르는 사람(illumination)에게는 누구에게나 신의 존재는 자명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의 존재가 자명하지 않기 때문에, 조명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신의 존재 증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것에 대해서 아주 반발을 하는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이다.●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아퀴나스는 도미니칸 수도회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상은 첫 번째로 은총과 자연의 관계이다.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총은 자연의 부정이 아니고 자연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은총과 자연은 모순되는 두 개념이 아니며, 자연은 초자연에서 완성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초자연이 은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자연은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모습 그대로를 의미한다. 인간의 본성, 본질이 자연인데, 이 자연은 초자연에서 완성이 되는데, 이 자연과 초자연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거스틴의 은총론에서 소위 구원론, 인간론, 죄론을 발전시킬 때는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통해서 발전을 시키는데, 어거스틴은 은총론에서 불가항력적 은혜를 말하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려고 하면 인간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고, 그리고 부가적 은혜를 말한다. 초자연과 자연은 모순되지 않으므로 이것은 하나라는 것이다. 모순된다면 은총이라는 것은 강력한 흐름이 있는 개념이다. 중세기의 신비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개념은 굉장히 Active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가능태와 현실태가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도 외형적으로는 움직임이 없다 하더라도 내면속에서 계속 움직이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은 영원한 현재로써 현존한다"라고 말한다. 또 그가 생각하는 피조물은 신으로부터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존재)이다. 인간이 피조물이다라는 것은 인간의 존재가 신으로부터 온 것이며, 인간이 신으로부터 분리되면 인간은 없는 것이다.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실재성은 신과의 관계성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는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신과 연합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Devine Spark(신의 불꽃)을 강조한다. 내속에 신의 불꽃이 일어날 때 우리는 神을 경험한다. 이것은 정숙주의가 아니고, 중세의 독일 신비주의는 이러한 정숙주의와 행동주의(활동주의 ; Activism)의 조화인 것이다. 이외에도 중세의 독일 신비주의에 속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첫 번째는 John Tauler(존 타울러)이다. 그는 에크하르트의 제자로써, 그 당시 굉장히 유명한 복음주의적 설교가이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주의라는 말은 우리 나라에서 쓰는 개념인 보수라는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서, 기독교의 본래 성서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가 활동할 당시에는 유럽에는 흑사병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 때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설교를 통해서 희망을 준 사람이었다. 두 번째는 Thomas a Kempis(토마스 아 켐피스)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세 번째는 {German Theology}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알지 못한다. 이 책은 마틴 루터가 서문을 쓰고 출판을 하였다.(1516년) 루터가 이 책을 출판했다는 것은 이 책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뜻인데, 이것 때문에 루터의 종교개혁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신비주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한다. 그는 마지막에 화형에 처해서 죽게 된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 직전에 개혁 회의주의가 있었는데, 이것은 15세기에 볼로냐 대학, 파리대학의 신학과 교수들이 교회를 통폐합하려고 연구하다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회의주의가 나오게 되었다. 후스는 로마 카톨릭의 안에서 개혁을 하고자 한 사람이었는데, 1415년에 콘스탄스라는 곳에서 콘스탄스 회의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 존 후스가 소환을 당하게 되었다. 소환을 당하기 전에 이 회의에 가면 죽을 것 같아서, 회의를 주도한 황제에게 다시 돌려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갔는데, 결국은 죽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개혁회의 운동이 개혁자를 죽인 것이다. 개혁회의 운동은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콘스탄스 회의에서 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공의로우신 예수그리스도에게 항소하겠다. 나는 그의 손에 처벌을 맡긴다. 왜냐하면 그는 진리와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죽을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John Huss는 "여러분은 지금은 조그만 새를 죽이지만, 100년이 지난 다음에 나타나는 큰 새는 죽일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사람이 죽은지 105년이 지난 후에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전야의 이야기이다.중세기 사상의 큰 흐름은 스콜라주의와 신비주의 등을 들 수 있다.제5장. 트리엔트 회의로부터 현재까지의 로마 가톨리시즘의 발전1. 트리엔트 회의(1545-1563)●트리엔트 회의(1545-1563)는 오늘날의 가톨릭의 사상을 교황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정하고 인정한 회의이다. 이것은 Counter-Reformation(反종교개혁)의 사상의 가지고 있다. 이것은 종교개혁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어닥치자 거기에 대해서 자신을 방어하면서 로마 가톨릭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가톨릭의 회의는 지금의 회의처럼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다.
    인문/어학| 2019.04.11| 21페이지| 1,000원| 조회(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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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 부흥운동과 교육적 방향 평가A+최고예요
    한국교회 부흥운동과 교육적 방향1. 서 론교회부흥을 갈구하는 교회들이 대체로 신비체험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은 흔히 우리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비체험에 대한 관심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 인 것 같다. 특히, 한국교회의 부흥이 방언이나, 입신같은 문제와 관련되어 왔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살펴 보면서 오늘의 현실을 파악하고 성경적인 바른 교회 부흥의 길을 모색 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부흥사들이 옛날 부흥사들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함으로 신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로 압박감을 주는 부흥회들은 교인들의 신앙성장을 위한 교육 이라는 면에서 크게 역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검토해 보고서 평가 진단하여 부흥운동의 교육적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2. 한국교회의 부흥운동1)1907년의 부흥운동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을 다룸에 있어서 1907년의 부흥운동을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이 운동은 한국교회의 부흥의 전기를 마련하는 중요한 사건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1907년의 부흥운동의 시대적인 배경은 당시 우리나라가 일제의 탄압과 학정에 의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 졌고 어떻게 손쓰 볼 수도 없는 난관에 빠져 있었을 때였다. 이 난관을 돌파하고 나설만한 힘이 없었다. 1903년 감리교 선교부 선교사의 일단이 원산에서 일주일 동안 기도와 성경공부를 위해서 모였던 모임이 발단이 되었다. 이 운동의 진상을 정확히 기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운동의 성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런던 타임지에 개제된바 있고, 영국의 William Cecil 경이 당시 직접 본데로 적은 기록을 인용 할 수 있다. 어느날 저녁 집회 때에 교회 직임을 가진 한 사람이 일어나서 자기는 선교사에 대하여 악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그 선교사가 일어나서 기도를 시작하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상한 흥분이 감돌힘으로부터 싸우고 있는 경황을 볼 수 있었다. 저녁 여덟시부터 이튿날 다섯시 까지 이러한 상태는 계속 되었다. 이때 선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의 엄청난 죄의 고백을 듣고 어찌 할 바를 모르리 많큼 놀라기도하고, 또 이러한 기사를 생기게 한 능력이 강림하심을 보고 떨면서 그들이 평소에 사랑하던 한국인 제자들의 참회의 고통에 동정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집회는 끝이 났으나, 많은 한국 신자들은 온 밤을 세웠는데, 어떤이는 기도하며 새웠고, 또 어떤이는 심각한 심령의 싸움으로 세웠다. 다음날 선교사들은 이 사태가 지나가고 거룩한 위로의 교훈으로 지난밤의 상처를 싸매게 되기를 희망 하였으나 또다시 이와 동일한 통회와, 이와 동일한 죄의 자백이 되풀이 되었으며, 이러한 사태는 여러날 더 계속되었다."또 하나의 특별한 부흥상은 그들의 통성기도의 기록에서 볼수 있다. "온 회중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정황은 실로 글로 적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런 혼란도 없었고, 도리어 심령과 심령이 호응하는 화음이 서리었고 기도를 울리고 싶은 충격을 저항할수 없던 마음과 마음이 사귀는 심교였다. 기도소리는 마치 폭포소리 샅아서 기도의 대해조가 하나님의 보좌로 밀어 올라가는 듯 하였다."원산에서 감리교 선교사들이 고요하게 시작한 운동이 새로운 기동력이 되어 마침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 부흥운동과 신비주의의 관련성 문제에 관하여는 약간의 이론이 있는 것 같다. 민경배 교수는 "1907년대의 대 부흥이 공동체적 교회 신앙에로의 전향점을 이루었다는 것은 나의 변함없는 확신이다. 그러나 이 부흥의 모퉁이에 신비주의적인 경건의 요소가 몇몇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고 말한다. 혹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교회의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목사로 일어난 부흥회(사경회)는 실로 사도시대의 오순절의 그것과 흡사하다. 모두가 회개하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고 헌신 봉사 했다. 그러니 이 운동이 왜곡되기 시작했고, 본의 아닌 신비주의로 흘러의 상호 이해와 화해의 기운 조성, 공동체적인 교회의식 발로, 새벽기도회와 성경공부, 전도사업 등이다. 특히, 그는 이 운동을 순수한 영적, 도덕적 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부흥운동을 지도하는 선교사들도 그리고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미국 선교본부 담당자들도 이 운동이 정상적이 아닌 이상심리의 발작을 동반히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염려는 해소 되었다. 1908년 미국 북 감리교회의 4년 총회가 발티모어 에서 열렸을 때, 한국과 일본주재 감리교 감독 M.C.Harris는 다음과 같이 언명 하였다. "이 부흥운동의 효과는 전적으로 훌륭하였다. 즉 교회의 신앙수준은 더 높아 졌고, 이미 자상(자상)한 성경교육이 있었으므로 광신은 거의 없었고, 수 천명의 신도가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세웠고, 다수인에게 성직의 소명을 받게 했고, 그보다 더많은 교회들이 성경말씀을 공부 하려고 무려 2천명의 대집회가 한 장소에서 거행 되었으며, 수천명이 글읽기를 배우고, 기독교를 알아 보려고 문의하며, 술주정꾼, 도박꾼, 도적놈, 오입쟁이, 살린강도, 독선적인 유학자들, 구태의연한 불교도들, 여러 천명의 잡신을 섬기던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으니, 옛것은 다 지나가고 말았다.이 보고서는 초기와 오늘의 부흥운동을 비교 할수 있게 한다.첫째, 초기 부흥운동은 기도로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성경연구로 부터 시작되었다. 사경회의 성격이 분명하다. 오늘날은 철야기도는 수없이 많아도 철야 성경공부는 많이 없다. 둘째로, 초기부흥운동은 은혜에 취하여, 혹은 신비적 경험이 깊어져서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실신 상태에 빠져서 이성을 잃는 법이 없었는데, 오늘날의 부흥운동은 신비적 체험과 동일시 되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열광적 이어서 기독교의 비 본질적인 요소가 많이 있는 경향이 있다. 셋째로, 초기 부흥운동은 여러 종류의 죄인을 회개시켜서 예수안에서 새로운 인격을 형성하는 선교정신에 철저 하였는데, 요즈음은 새신자 얻기보다 다른 교회신도 얻기 운동이란 나지 않은 것은 기독교가 시일이 짧아서 한국사람의 종교성 심층까지 접촉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일제의 탄압으로 인한 민족의 삶이 더욱 비참해 지게 될 때에 기독교가 가르치는 내세관과 천당의 개념은 한국 사람들이 현실을 도피 하고자 함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고 부흥회와 같은 특별집회에서 신비 경험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고난에 시달리고 있는 자기자신을 위로하고 참 의미를 찾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신비체험 강조와 그 동경심이 발달하게되었다. 이런 신비경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일반적으로 말해 이때부터 한국 교회의 부흥운동은 신비적 종말론 성격이 강하게 노출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부흥운동도 또한 그 성격이 이질화 되어가는 경향을 노출하여 그것은 오늘날 비기독교적 변질화로 이어져 간다. 이 시기를 가장 대표하는 뛰어난 부흥사가 이용도 목사이다. 이용도 목사의 그리스도 신비주의는 십자가를지닌 고난의 주님을 내가 몸소 체험하고 나도 그리스도처럼 아픔을 당하므로 그리스도와 혈관적 연결을 이루는데 그 목표가 있었다. 이용도는 그리스도 신비주의의 합일의 경지를 말한다. "나는 주의 사랑에 삼키운바 되고, 주는 나의 신앙에 삼키운바 되는 이 합일의 원리여, 오! 나의 눈아 주를 보라,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라, 잠시라도 딴눈 팔지 말고 오직주만 바라보세, 나의 시선에 잡힌바 주님은 나의속에 안주 하시리라" 이용도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함께 아파하고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그리스도 고난의 신비주의자 였다. 또한 이용도는 고난의 신비주의를 발전시키면서 이성적 명상보다 사랑의 윤리를 중시하여 방언보다 예언의 우월성과 사랑의 지식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 하였다. 특히, 이용도는 그의 기도와 명상의 생활과 사랑과 행동의 생활을 분리 시키지 않았다. 이용도의 기도는 신비주의적 이었다. 그의 기도는 일단 시작하면 3,4시간을 끌었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기도는 나의 기쁨이요, 나의 의미요, 나 부흥사들의 부흥운동이 힘차게 일어났다. 이것은 교회분열과 기성교회의 무기력, 민족적 비극 등에 의해 기인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전란 직후에 일어난 부흥운동들이 한결같이 성령의 역사와 초 자연적인 현상을 갈망한 까닭은 일제 말년의 신사참배와 실패, 해방직후의 교계 안밖의 분열, 그리고 해방된 조국에 물밀듯 밀려온 미국의 물질문화와 자유주의의 파동은 인간 생활의 지평을 넓혔으며, 우리는 자연의 영역에 속하는 물질과 지식과 지혜의 힘으로 출세와 영달과 건설을 꿈꾸었던 것이다." 특히, 1960년대 중엽부터 우리 교계에는 부흥운동과 부흥집회가 굉장히 성하였고 부흥사들도 많이 나타나 일부 '전국적'이라는 부흥사들이 경건한 목회자로서의 부흥사가 못되고, 흥행가다운 부흥사로 전락해 버렸거나 아니면 돈 벌이 하는 자본주의적인기질을 발휘하는 부흥사가 되어 비판과 비난을 자자하게 되었다.전후 온갖 어려움을 딛고 잘 살아보고자 하나 제대로 쉽게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불안해하며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갈증해소를 위한 중요한 의미를 부흥회가 가진다고 볼수 있지마는 이같은 배경으로 부흥회가 점점 열기를 띠며 성황을 이루게 되자 신비주의적 주술신앙으로 영합하는 탈선적인 부흥사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종교에 신비체험도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 일수는 없다. 오히려 신비주의가 빗나가면 광신주의가 된다.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특히 대형 옥외 집회들이 열리게 되었는데, 1973년에 빌리그래함 전도집회, 1974년에 엑스폴로74, 1977년에 민족 복음화운동 등이 그것이다. 또한 1980년의 세계복음화 운동 등을 1908년대로 까지 부흥의 열기는 계속 되어갔다. 특히, 1984년에는 선교 100주년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전도와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이같은 대형집회는 부흥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 이러한 와중 속에서 적지않은 부작용도 있었다.이종윤 목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부흥운동의 일역을 감당하였다고 볼수 있는 부흥사들에 대한 잘못에 대해 첫째, 신학공부를 하지
    인문/어학| 2019.04.11| 8페이지| 1,000원| 조회(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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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장 구캐톨릭의 조직화
    제 5 장 구 캐톨릭의 조직화구캐톨릭(Old Catholicism)의 조직화와 직급화가 이 시기의 특징이다.Ⅰ. 직급화의 3요소 C.C.C속사도 중에서 Clement of Rome이 사도 계승론을 주장Ignatius of Antioh->3직분이 두 속사도의 주장은 교회의 직급화를 촉진했다.소아시아 교회에서 먼저 촉진->로마에 확대1. 교회의 기본조직(Constitution)1) 집사: 집사는 행6장의 일곱집사에서 기인했으며 가난한 자를 원조하고 곤궁한 자를 돕는 것을 기본 업무로 하였다. 감독과 일반 신도를 연결하는 매개 수단으로 발전했고 교회의 제정관리도 하였다. 지역적으로 한 도시의 집사수를 7명으로 국한시켰으므로 보조집사Sub-deacon를 두었다. 이 집사는 후에 장로나 감독으로 올라가는 하나의 단계로 간주되었다. 아울러 여자들도 집사로 봉사하였다.2) 장로: 장로는 감독의 모든 권한을 보유하되 안수와 견진-기름바르고 기도하면 성령을 받는 의식- 두가지는 제외되었다. 장로는 감독의 지배 아래서 일을 했다. 장로와 감독의 분리가 교회의 직급제를 탄생시켰다.3) 감독: 감독은 구 캐톨릭의 갖아 중요한 직분으로서 교회의 통일성과 징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한 도시와 시골을 합쳐서 교구라고 했는데 한 교구에는 한 감독이 있었다. 따라서 군주형 감독Monarchial Bishop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도시의 크기에 따라서 큰도시의 감독이 더 큰 권위를 주장함으로써 교황제도로 발전하였다.4) 직급화의 결과① 교역자와 평신도가 계급적으로 구분되었다.② 로마 감독의 우주성 개념이 시작되었다.③ 구 캐톨릭 교회의 배타적 통일성이 형성되었다.④ 세가지 직급이 점진적으로 세분화되었다.3C 직분Sub-deaconReaders(성경봉독)Acolyths(복사:조수)Exorcists(축사)Precentors(선창자)Janitors(수위)Catechist(교리교사)Interpreter(통역사)2. 정경(Canon:척도)1) 정경확립의 필요성① 구약의 정경이 있었다.② Marcion의oad Acceptance: 광범위한 인정Contents: 내용3. 신조(Creed)①신조와 신앙고백에는 차이점이 있다.신 조: 획일성/강요성/불변성/국가교회의 무기/배타성/모든 시대, 모든 교인에 강요신앙고백: 다양성/자발성/가변성/자유교회의 고백/내포성/한 시대, 특정 집단의 고백이 구별은 16-18C까지는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20C에는 별로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신앙을 강요하는 국 가 교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② 1C 첫신조: “베드로 고백”, “예수가 주시다”③ 2C에 신조출현 이유: 거짓 교리와 참된 교리를 구별하기 위해서, 초신자 교육의 기본 내용으로 삼기 위해서 만들게 되었다.이것은 각교회마다 초신자들 침례주기 전에 교육하던 내용으로 오늘날 사도 신조와 비슷하다. 그러나 언어는 획일화되지 않았고 각 교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로마 교회에서 사용하던 신앙의 규율을 Old Roman Creed라고 했는데 이레니아스는 이것을 교회의 우주적 신앙이라고 극찬했다. 이것이 390년에 루피너스R라는 사람이 주석을 붙였는데 그러면서 사도들이 한 줄씩 썼다는 전설을 첨가했다. 옛로마 신조에 조금씩 단어를 부가시켜 8C에 이르러 현재의 사도신조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8C Pirminius “음부에 내려가사”, “공교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라는 표현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로마 캐톨릭과 개신교의 공통의 신조가 되었다. 그러나 그 해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Ⅱ. 고대 교부들4대 학파소아시아 학파: 사도 요한 -> 폴리갑(서머나 교부) -> Irenaeus -> Hippolytus카르타고 학파: 터툴리안 -> Cyprian알렉산드리아 학파: Pantaenus -> Clement -> Origen안디옥 학파: :Lucian->Diodorus->Theodore1. Irenaeus of Lyon1)생애이레니우스는 140년 경에 소아시아에서 출생했고 서머나의 감독인 폴리갑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리요의 장로로 활 신구약의 통일성을 강조했고 특별히 사복음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신학은 구 캐톨릭의 첫 번째 조직신학자로 간주되며 후대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② 인간론: 3분설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성품(자유의지가 포함)->영하나님의 모양: 육신이 영에 복종하도록 조절하는 능력-> 혼육신(원래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가적인 의 혹은 원시적인 의라고 말했다.)원죄란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있지만 하나님의 모양을 상실한 것이다. 그래서 육신이 영에 반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원시적 의의 상실 곧 혼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혹은 영과 육의 조화가 깨진 것이다. 인간의 영혼이 죽은 것이 아니라 병든 정도라고 보는 것이다. 결국 3분설은 자유의지론을 옹호하기 위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형상에 속하는 기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개신교 신학은 형상과 모양을 나누지 않았다. 곧 영과 혼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③ 기독론: 총괄갱신론 Recapitulation Theory(요점반복 이론)첫아담이 불순종하여 인간이 영과 혼의 조화가 깨어졌다. 그런데 둘째 아담인 예수께서 순종함으로써 총괄적으로 갱신(회복)하여 천년왕국을 세운다고 주장하였다.i) 예수님은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를 반복하면서 모든 계층의 인간을 구원하신다. 따라서 유아세례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다.ii) 마리아는 둘째 이브로써 마리아 숭배사상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iii) 에덴 동산의 회복으로 지상 천년을 말함으로써 역사적 전천년설의 기초가 되었다.그러나 교부들은 역사적 전천년설을 실현되지 않을 유대인의 꿈이라고 보았다.④ 교회론: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사도의 교리는 감독을 통해 계승된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공로는 교회의 성례전을 통해서 인간이 원시적 의를 회복하는 은혜를 얻게 된다. 성례전을 생명의 약이라고 강조했고 성례전의 Real Presence를 강조했다.⑤ 신론: 성부는 그 안에 말씀과 지혜를 포함하는 한 분인교인이 되었다. 따라서 그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기독교인이 된 후 로마를 떠나 카르타고로 와서 죽을 때까지 거주하였는데 그는 금욕주의 사상을 가지고 207년에 몬타니스트가 되었다. 후기에는 몬타니즘을 떠나 독립된 터툴리안파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감독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고 장로로 활약했으며 라틴어로 31개의 현존하는 신학작품을 저술함으로 라틴어의 위치를 급부상시켰다. 따라서 그는 라틴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그는 라틴어로 많은 신학용어를 조립했는데 그 예로는 Trinity(삼위일체), Substance(본질), Person(품격), Merit(업적) 등이 있다.2) 사상① 터툴리안은 철학에 정통했으면서도 철학은 모든 이단의 근원이라고 해서 반철학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이단 처방전」이라는 책에서 이단자들의 성경사용권을 부인하였다. “아덴과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는 Against Marcion이라는 책에서 신구약의 통일성을 강조했다.② 그는 금욕주의적인 서적을 16권이나 남겼으며 순교를 강조하였고 그리스도인의 오락을 반대했고 재혼과 여성의 사치를 정죄하였다.③ 그는 인간의 원죄는 부모의 생식으로부터 유전된다고 하는 Traducianism 생래적 유전설을 주장하였다.④ 그는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처음 설명한 사람으로서 양태론자인 Praxaeus에 대항하여 하나님은 한 분이면서 삼위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독립된 이성이었으나 생성된 이후에 독립된 품격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품격개념을 강조하였으나 성부는 본질의 전체이지만 성자는 본질의 일부라고 하여 종속설을 벗어나지 못했다.⑤ 그는 침례를 강조하였고 침례가 중생을 준다고 믿었으며 침례 후의 죄는 순교로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유아세례를 거부하였는데 그것은 무지로 인해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3. Cyprian1) 생애: 200년에 태어나서 258년에 사망한 터툴리안의 제자로서 비슷회 재영입: On the Treatment of the Lapsed두가지 입장Cyprian과 로마감독Cornelius -> Case by Case(사안별로...뇌물을 주고 로마신 숭배증서를 구입한사람들도 있었다.)로마장로 Novatian->배교는 중죄이므로 배교자의 교회 영입은 불가하다.=>Cyprian의 입장이 수용되고 Novatian은 분파가 되었다.② 이단 혹은 분파에 의해 받은 Baptism의 효과Cyprian은 이단에 의한 침례는 무효라고 주장 -> 수용되지 않음새 로마감독 Stephen은 침례는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 -> 우세③ 교회분열 문제: On the Unity of the Church그는 교회의 통일성을 강조하였고 교회는 정통신학을 가진 가시적 기독교인 공동체라고 말하였다. 교회를 어머니로 갖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갖을 수 없다고 하였고 감독은 교회 안에 있고 교회는 감독 안에 있다고 하였다. 또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여 성례전 구원주의의 기초를 놓았다. 로마 감독은 전형적인 감독이고 로마교회는 가장 중요한 교회로서 교회 통일성의 원천이라고 하였다. 그의 교회관은 사도 계승의 감독으로 감독 중심의 교회관이라 할 수 있다.(가시적, 조직적, 계급적 단일 공동체)4. Pantaenus1) 배경: 알렉산드리아는 50만 인구를 가진 무역의 중심지로서 로마 제국의 두 번째 도시였다. 이 도시는 Philo 때부터 알레고리가 발전하였고 영지주의가 발원하였으며 자유의지론 신학이 지배하였고 철학적으로는 플라톤 사상을 따랐다. 따라서 이 도시의 기독교인들은 영지주의적 요소가 혼합된 사람들이었다.2) 생애: 180년에 알렉산드리아에 신학교를 건립하였고 첫 교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그는 몇가지 주석을 남겼지만 소실되었고 약간의 단편만 잔존하고 있다. 그가 선교사로서 인도를 방문했을 가능성이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5. Clement1) 생애: Clement는 155년에 아테네에서 출생하여 장년기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스승을 찾아 많은 여행을
    인문/어학| 2019.03.25| 8페이지| 1,000원| 조회(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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