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주제로 조사하는 이유-연극의 이해 시간에 정말 많은 장르의 공연예술을 다룬 것 같습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더욱 깊이 배우지 못하고, 접해보지 못해 아쉽지만 새로운 경험이고 유익한 시간 이였습니다. 제가 연극을 중점으로 조사하는 이유로는 수업시간에 연극에 대해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연극의 종류와 기원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조사를 통해 다음에 연극을 관람할 때 그냥 보이는 현상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동안 체계적이고 조금은 분석적으로 관람하고 싶은 이유에서 입니다.. 그리고 다보고 나서 연극을 회상함으로써 나의 삶의 방향에 뼈가 되고 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1. 연극의 정의* 연극 : 배우가 연희(演戱) 장소에서 희곡 속의 인물로 분장하여 관객 앞에서 몸짓과 대사로써 만들어내는 예술이다.2. 연극의 기원연극은 인간의 삶의 근원적 경험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흔히 원시연극이라고 하여 우리는 연극의 원초적 형태를 이렇게 생각해본다. 즉, 문명 이전의 상태에서 인간이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자연을 초자연화하는 지혜를 터득하고, 그 결과 인간 사이에는 거대한 감응의 체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원시심성이란 모든 생물 및 무생물에 대하여 정령을 부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공감과 조응의 세계를 확대해나갈 수 있었고, 상징으로서의 물체가 생명과 활력을 얻게 됨에 따라 굿과 주술의 영검이 현실화되기를 바랐다.여기에는 물론 인간 고유의 원시연극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나, 인간은 자연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갖가지 모방의식을 만들어냈다. 여기에서 제의 ·굿 ·놀이 등 여러 형태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와 같은 원시적 경험의 축적 ·발전이 문화를 형성했고 거기에서부터 종교 ·과학 ·예능 등 여러 문화형태가 분화되어 나갔으며 연극 또한 음악 ·무용과 함께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원시사회에서 널리 찾아볼 수 있는 수렵 또는 농경의식에서 입사식 ·토테미즘 ·샤머니관객 사이의 관행 또는 약속 , 극을 지배하는 전체적 분위기 또는 관객의 정서적 방향의 설정 등 전달의 기본 틀이 정해지는 것이다.이 밖에도 연극하는 장소에 따라 옥내극 ·야외극 ·마당극 ·원형연극 ·거리연극 등의 분류가 가능하고, 대사가 없는 팬터마임, 노래와 춤이 주가 되는 뮤지컬, 무용극, 인형에 의한 인형극, 탈을 쓰고 나오는 가면극 등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다.(1) 고전극입센 이후의 유럽 희곡을 근대극이라 하고, 그 이전의 것을 고전극이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분 및 호칭은 학문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일관된 흐름을 이루는 유럽 희곡을 몇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면, 입센 이후의 극은 그 중 한 시기에 불과하다.유럽에서 고전극이라는 말은 그리스 ·로마의 고대극을 가리키고, 나아가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희곡, 즉 16∼18세기의 고전주의 희곡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셰익스피어는 영국문학의 고전일는지는 모르지만 고전극을 모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전극은 아니다. 이에 반하여 아디슨의 《카토》(1713)는 평범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고전주의 희곡의 이론과 규칙에 합치한 것이기 때문에 고전극의 범주에 든다.모든 문화 중에서 연극은 고대의 유산을 가장 늦게 받아들여 16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겨우 고대극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영국과 에스파냐의 연극은 이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오히려 중세 연극의 기초 위에서 르네상스 연극을 발전시켰다.고대극의 본을 뜬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16세기에는 거의 볼 만한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그것이 17세기에 이르러 하나의 체계를 이루게 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론에 바탕을 둔다.① 비극과 희극은 명확하게 구별되고, 그 중간적인 장르는 허용되지 않는다. 비극은 고대의 영웅이나 왕후를 주인공으로 삼고, 희극은 현대의 폐습 ·악풍을 그린다.② 시간 ·장소 ·행위(줄거리)가 일치되어야 한다(3일치의 법칙).③ 극은 현실의 모방이므로 ‘진실다워야’ 한다.④ 같이 고대세계를 무대로 한 작품이 나타났으나 이것들은 고전극보다 낭만주의극 범주에 들어간다. 다시 근대에 이르러 와일드의 《살로메》(93), 호프만스탈의 《엘렉트라》(1903)와 《오이디프스와 스핑크스》(1906), 하이젠클레버의 《안티고네》(1917)와 같이 고대세계에서 취재한 희곡이 없지는 않으나, 이것들은 현대의 분열적 ·도착적 심리에 고대적 의상을 입힌 것에 지나지 않아 고대극이라고 할 수 없다.그보다 1930년 이후 프랑스에 나타난 지로두의 《앙피트리옹 38》(1929) 《트로이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1935) 《엘렉트르》(1937)와 사르트르의 《파리》(1943), 아누이의 《유리디스》(1942) 《앙티고느》(1944) 등과 같은 것들이 고전극에 가깝다. 이 흐름의 선두에 나선 사람은 클로델이다.그는 자연주의에 대한 반격의 근거지를 그리스의 비극시인인 아이스킬로스에서 찾고 간결한 줄거리와 시적 대사로 《마리아에의 고백》(1912) 《비단 구두》(1926), 기타 가톨릭적인 영혼의 비극을 써냈다. 지로두나, 《죽은 여왕》(1942) 《산티아고의 성(聖) 기사단장》(1947)의 작가 몽테를랑이나 사르트르, 아누이도 그로부터 흘러나온 것으로, 고대사회를 무대로 하건 안 하건 극한적인 한계상황에 놓인 인간을 그린 그들의 비극은 그리스 비극에 가까운 것을 지녔다.(2) 희비극전통적 극 형식인 비극과 희극의 형식과 주제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연극을 희비극이라고도 한다. 엘리자베스 시대(1558∼1603)와 제임스 1세 시대(1603∼1625)에 있었던 극의 한 유형으로 전통적인 비극과 희극이 지닌 형식과 주제가 혼합된 연극이다. 이 용어는 때로 하나는 진지하고, 또 하나는 희극적인 이중구성을 지닌 희곡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이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첫째, 주요 등장인물들이 고귀한 신분과 저속한 신분의 인물들로 혼합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당시의 전통적 비평이론에 따르면 오직 상류사회의 인물만이 비극에 적격이고, 저속한 신분의 인물은 희극에 시작되었다. 양식은 대학가에서 운동 형태를 띠면서 시작되었는데 민중의 연극으로 이행해가면서 폭넓은 계층에 수용되었다.이것은 표현형식의 한계 등을 극복하고 본래의 민중연극으로서의 이념, 즉 연극을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에 가깝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공동체적 일체감을 확보하려고 한다. 공연의 대부분이 행사적 공연의 성격을 지니며 관중은 그곳에 함께 모여서 동질성을 느끼고 참여의식을 갖는다.축제나 행사에서 하는 마당극은 행사의 다른 프로그램과 어우러져야 하며, 관중을 연극 공연으로 이끌어오고, 연극이 끝난 후에는 생활로 되돌아가게 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다. 관중이 흩어져 있으면 풍물패를 앞세운 길놀이를 하거나, 모인 관중에게는 그들이 극 진행과정에서도 집단성과 자발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박수치고 소리 지르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내용은 주로 관중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많은 마당극들이 사회현실에 대해 적극적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의 발전과정이 진보적 연극운동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고전을 소재로 한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마당놀이라고 부르는 마당극은 예외이다.인물의 움직임이 중요한 연극이므로 하층민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흔히 치명적이지 않은 결함을 지니고 있고, 생활 속에서 지혜를 얻는 인물로 이러한 인물들은 대개 낙관적이고 해학적이다. 미나 숭고함보다는 추와 비속이 두드러지고, 서민적 비애, 풍자와 해학이 두드러진다.주로 땅바닥이나 마룻바닥 같은 곳에 관중이 둘러앉는 열려진 원형판에서 공연된다. 원으로 객석에 열려진 마당판은 관중의 적극성과 자발성을 유도하고 관중은 배우를 보고 웃기도 하지만 맞은편 관객이 웃는 모습을 보고 따라 웃기도 한다.배우들은 극 전체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적절히 즉흥적 응답을 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배우와 관중이 서로 집단적인 대화를 하듯 호흡하고 그것은 신명을 유발한다.의상과 분장이 사실적이기보다는 특징적이며, 탈을 쓰기도 한다. 무대는 세트를 극서양의 중세기는 암흑기로서 고전과 고대문화의 전통이 말살되었고, 주도적 위치에 있었던 그리스도교회는 모든 연희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따라서 10세기까지 연극은 거의 흔적조차 없었으나 그 뒤 교회의 미사행사에서 싹텄다고 보이는 종교극이 발전해 중세연극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처음 교회 내부에서 시작된 종교극은 점차 세속화되면서 신 ·구약성서의 내용을 소재로 한 신비극,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수난극,성자의 행적을 다룬 비적극 등이 행해졌다. 그리고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는 우의적 교훈극인 도덕극 등으로 대중 속에 파고들게 되었다. 공연방식도 발달하여 이동 연극형의 패전트 방식, 복수 동시상연형의 맨션 방식 등 고전 그리스 극과는 전혀 다른 형식을 취했고 극작가의 독립성은 배제되었으며 성스러운 종교극에서 ‘악마’ 또는 ‘악덕’이라는 이름의 익살꾼 어릿광대역이 발생한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종교극 이외에도 미모스 계통의 민간연희는 지속되었으며 프랑스의 파르스(소극) 또는 소티, 독일의 사육제극 같은 것이 세속적이며 서민적인 성격이 강한 대표적인 경우이다.(3) 근세연극근세연극은 중세의 종말과 더불어 새로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가 의미하는 내용인 그리스 ·로마의 학문 ·예술의 부흥은 로마시대의 극작가 세네카와 플라우투스 및 테렌티우스의 재발견을 위시해서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의 도입과 새로운 원근법의 발견에 의거한 르네상스식 극장건축의 촉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바탕을 둔 희곡법칙의 규정 등 근세연극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특히 로마희극은 근세 이후의 서양희극의 모태가 되었고, 르네상스식 극장 건물은 16세기 후반 이후 약간씩 수정되면서 근세 이후 서양 극장의 주종을 이루는 프로시니엄 스테이지로 굳혀졌다.이탈리아가 중심이 된 이와 같은 연극의 새로운 풍조는 유럽 전역에 영향을 끼쳤으나 중세가 종결되는 것과 더불어 유럽 일원의 통합문명이 국가별 분화를 일으키는 추세에 힘입어 연극에서도 고전문물과 토착전통의 융합에 의한 새로운 국민연었다.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를 읽고 나서 - 내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눈을 뜨다공연예술을 좋아하는 저는 옛날부터 꼭 보고 싶었던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팀이 퀴담이라는 줄거리를 가지고 올 해초 내한공연을 온다고 해서 부랴부랴 예매를 하고 관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 때 느낀 인간의 신체에 대한 경이로움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연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를 읽고 저는 또 한번 자연이 주는 경이감에 충격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제도서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빌리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한 나는 교수님이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도서관에서 가서 이 책을 빌렸습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얇고 작아서 에이, 이녀석이였군 ! 하고 생각했는데.. 이 작은고추(?)녀석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읽는 내내 매운맛을 뽐내주었습니다.이 책을 처음에 몇 페이지 읽지 않았을 때에는 ‘카슨이라는 사람, 정말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문장에는 시적인 표현이 많았고 자연의 세세한 부분을 묘사할 때 제가 평소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가령 카슨은 이끼를 마법의 양탄자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늘 품고 있었던 이끼의 이미지는 자연의 일부라기보다는 어둡고 축축한 곳에 끼는 조금은 불쾌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슨의 글에 빠지면 빠질수록 왠지 모를 이끼에 대한 신비감 같은 것이 솟구쳤습니다. 나도 로저처럼 이끼가 쫙 갈린 곳에서 방방 뛰면 폭신한 느낌을 갖을 수 있을까..? 자연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까? 하고 어느새 머릿속에 그 장면들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책에서 카슨은 로저와 함께 자연을 맘껏 만끽할 수 있는 곳에 살면서 제가 그리고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들이 그랬듯 생물이라는 교과목에 나오는 식물, 곤충 등의 자연의 세세한 부분을 외우기에 신경 쓰며 급급해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느끼며 감상하고 하나가 되고 있었습니다.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굳이 카슨과 로저처럼 자연에서 휴식과 안식을 얻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그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파, 호텔, 다양한 취미생활 향유, 문화센터 등 과학과 산업의 발달에 힘입어 자연을 대체할 수 있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부터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풍요로움과 경이로움은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치고 힘들 때 바람을 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말은 밖에 나가서 오락문화를 즐기자는 뜻이 아니라 자연을 느끼고 싶다는 말입니다. 자연이 위로의 말을 해주거나 감싸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방학이나 휴가 때에는 도시에서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부터 활력소와 희망을 얻어 다시 도시에서의 생활을 해 나아가고 있습니다.그렇게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삶을 영위하기위한 모든 것들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기에만 급급한 것 같습니다.예를 들자면 더 편리하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명분으로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고 농토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산에 서식하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보금자리를 잃게 되고 있고 먹이사슬이 끊기면서 먹이감을 읽은 상위동물들은 개간한 농지로 내려와 밭을 망쳐 가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희귀동물을 보호하자’라고 말들은 하지만 정작 그 동물을 희귀하게 만든 건 우리 인간들 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갯벌을 매우고 있습니다. 갯벌은 해일이나 침식으로부터의 육지를 보호하고 바닷새와 기타 야생동물의 서식지이고 자연학습장, 연구지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갯벌을 사라져가는 농토와 수자원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파괴시키고 있습니다.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는 조금 더 편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는 이처럼 자연의 희생이 항상 뒤따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이용하는 것 까지도 모자라 훼손시키는 행위까지도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못한 채 행하고 있습니다.폐수 물을 강에 그냥 흘려보내 오염을 시킨다든지 산에서 불을 피우거나 담배를 피워 그냥 버린 행동으로 겉잡을 수 없는 산불을 내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든지 몸에 좋다는 동물의 부위를 구하기 위해 밀엽을 한다든지 등으로 자연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행동들에 자연은 서서히 답을 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한 이상화탄소의 증가로 인해 온실가스가 생겨 이것은 지구온난화로 이어져 지구 전역에 걸쳐 강수량의 변화가 일어나며 기압과 토양 수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때문에 기상재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기후변화에 따라 재배 작물의 종류와 생산량도 크게 변화합니다. 식물은 종에 따라 생육에 알맞은 온도를 갖고 있어 온도가 맞지 않을 경우 생육이 불가능해집니다. 게다가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해 육지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또한 30년 동안 한번도 관측되지 않았던 이상기후가 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건강, 자연 생태계 그리고 사회경제계 모두는 기후변화율과 기후변화크기 모두에 민감합니다. 또한 많은 물리계와 생태계는 동시에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습니다.이러한 기후변화는 기상이변, 강수량변화, 해수면 상승 등을 초래하여 식량공급, 수자원공급, 인간의 건강 등 생태계와 사회경제적 분야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인간들의 자연에 대한 수수방관한 태도로 인해 이와 같은 일이 빚어지고 있고 지금은 조금씩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점점 더 그 속도가 가속화됨에 따라 우리들, 아니면 우리의 후손들이 그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아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더 이상의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힘쓰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예를 들면 분리수거 잘하기, 일회용품 쓰지 않기, 종이낭비 줄이기, 스프레이 사용 줄이기 등을 먼저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그마한 실천부터 조금씩 해 나아간다면 원상태로의 자연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더 이상의 자연파괴는 줄여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