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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감상문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란 우리가 생각지 못한 조화(調和)에 대한 탐구이며, 어떤 대상들 가운데 내재하고 있는 관계의 체계를 발견해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의 구조주의는 인간의 행위가 하나의 화학적 요소처럼 과학적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는 자연이나 사회현상에는 임의적인 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우리들 자신의 사회보다는 비교적 정적(靜的)인 원주민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선택하여 이 사회 내에서 신화, 친족, 결혼 따위의 법칙과 체계를 규명해내는 것이다. 미개사회를 연구함에 있어서 인류학자의 목적은 하나의 인간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개사회에는 우리들의 사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신념이나 생활양식이 존재하므로, 인간성의 한계에 존재하는 인간 활동들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발생되는 것이다. 인류학자는 수많은 사회와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사실들에 직면하여 양자택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이 모든 현상의 다양성에 관한 목록을 작성하거나 또는 이 다양성의 배후에 무언가 보다 심층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구조주의는 바로 이 다양한 표현들을 이처럼 하나의 언어, 관계나 법칙의 체계로 환원 시키는 작업이다. 다양한 현실의 배후에서 보다 심층적이고 진실한 어떤 실체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그 무엇이라고 불리든 간에 레비스트로스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현상은 역사적이나 구조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타당성을 갖으며 어느 것에 우위를 둘 수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오직 구조주의에 관심을 갖을 뿐이다.인류학의 본질 - 인간이란 무엇이냐를 연구. 인된의 고유한 속성인 인간성이 어떻게 자연과 대립을 이루거나 혹은 조화하면서 하나의 문화 속에서 인간성의 특질을 표현하고 있는지를 탐구. 레비스트로스도 그의 모든 인류학적 연구가 인간정신을 보편적으로 입증하는 사실들을 추출해내려는 것이다.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관념과 행위는 인간정신의 근본적 범주로부터 파생된다고 가정하였다. 이 보편적인 인간정신은 경험적 실체를 구성의 단위로 분화시키고, 이 단위들은 상호관계의 체계로 조직되며, 또 이 체계들은 그것들의 가능한 조합을 지배하는 어떤 법칙을 이루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인간정신과 언어의 성격은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모든 사람들은 상징을 만들어 사용하는 지적능력이 있으며, 또 모든 언어는 대상에 관한 보편적 특징을 표현한다. 이러한 보편성은 언어에도 나타난다.며○만일, ‘손’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그것이 처음 어떤 상태에서 어떻게 변해 왔는 지를 알아 보면 된다는 식이였다. 이러한 비교문법의 배경에는 당시 19세기를 풍미하던 역사주의 사상이 스며있었다. 헤겔의 변증법 등의 영향으로 역사는 일정한 단계를 밟아 발전한다든가, 역사의 주체는 사람이라든가, 어떤 대상의 상태를 규정하는 것은 그것의 과거, 즉 역사라든가 하는 사고가 널리 자리잡고 있었다.그런데, 쏘쉬르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대상을 조건 지우는 결정적 요인은 그것의 개별적 과거사 보다도 주어진 시점에서 그것을 둘러싼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라는 것이였다. 예를 들어, ‘손’이라는 낱말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것의 옛모습이 어떠했고 어떤 나라말과 비슷했다는 식의 역사적 방법이 아니라 지금 ‘손’이라는 낱말과 관계를 맺고 있는 ‘발’, ‘눈’, ‘손가락’, ‘손마디’ 따위의 다른 낱말들과 어떻게 비슷하고 틀리며 어떤 역할을 나누어 맡고 있느냐 따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각 요소는 전체 속에서 어떤 주체성도 지니지 못하고 단지 전체의 한 부분으로써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또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도 그것의 존재와 운명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언어주체로서 각 사람은 사회의 한 구성요소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행동한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언어 자체의 변수와 요인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만일, 어떤 시점에서 한 언어가 일정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면 그 나름대로 언어로써 요건을 갖춘 정상적 언어이며 다른 시점에서 다른 필요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면 또 그때는 그 나름대로 언어의 자족적 요건을 갖춘 정상적 언어이다. 두 시점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것은 그냥 하나의 변화일 뿐이다. 반드시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런 식으로 언어체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하나 하나의 언어요소에 뿌리를 두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도 아니며, 언어의 변화는 꼭 발전이니 퇴보니 하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는 인식이 소쉬르의 이론에 스며있다.
    독후감/창작| 2008.05.03| 2페이지| 1,000원| 조회(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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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사시대에 관한 리포트
    11월 8일 목요일. 오전 교양수업을 마치고 매일 학교 주변에서만 생활 할 것이 아니라 청주 외곽에 나가 바람도 쐬고 유익한 경험도 할 겸 우리의 선사문화 레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여러 번 견학한 경험이 있는 국립 청주 박물관을 다녀왔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단순 눈요기로 관람만 하던 청주박물관이 이번 레포트를 계기로 인류의 기원과 진화부터 역사 이전의 시기인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인간의 생존 기본요소인 의·식·주를 어떻게 충족시키며 살았으며 역사로 남아있지도 않은 아주 오래전의 과거를 어떻게 재생시켰는지 지금 어떠한 유물이 남아있는지 의문을 품고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어르신 몇 분과 어린 아이가 있는 한 가족이 견학을 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보다도 적은 수의 사람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외국에 가셨을 때 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몇 시간씩 문화유적에 대해 가르쳐주고 역사의식을 심어주며 그것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게 하는 인상 깊은 모습을 보았다고 하셨는데, 내가 본 어머니는 '이건 돌이고 이건 뼈야 그리고 이건 돌도끼' 이렇게 아이에게 간단한 설명을 하시고 다음 전시실로 가셨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나마 그 꼬마에게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 참았다.국립 청주 박물관은 네 개의 전시실을 갖고 있었는데 그 중 제 1 전시실이 선사문화의 유물이 전시돼 있었다. 선사시대가 네 개의 전시실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부지방에 선사문화의 좋은 자료가 많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Ⅰ.구석기 시대충북은 바다가 없는 유일한 내륙지역이며 남한강과 금강이 흐르는 분지상 지형으로, 이러한 환경은 충북의 선사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구석기인들은 먹거리로 짐승사냥과 채집을 하며 이동생활을 하였고, 강가의 막집이나 동굴 등에서 살았다.충북에는 큰 강과 석회암지대의 영향으로 구석기 유적이 많다. 청원 두루봉동굴·단양금굴·수양개유적은 대표적인 구석기유적으로 사람뼈·석기뼈연모·동물화석 등 당시의 문화상과 발견된 짐승화석은 당시의 자연환경연구에 매우 중요하다.●청원 두루봉 유적청원 문의면 노현리의 석회암지대에 있는 동굴유적이다. 이 유적은 2굴, 9굴, 새굴, 처녀굴, 흥수굴, 용굴 등 여러 개의 가지굴로 형성되어 있으며, 사람뼈화석, 석기, 뼈연모, 자연환경 복원자료 등이 출토 되었다. 특히 꽃사슴, 큰 원숭이, 코끼리 상아, 쌍코뿔이, 동굴곰, 하이에나 등의 짐승화석은 구석기인들이 큰 짐승을 사냥하였음과 자연환경 및 유적의 연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흥수굴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어린아이 뼈 2개체분과 주먹도끼, 사냥돌, 찍개 등이 발견되었다. 이처럼 두루봉동굴은 사람뼈, 석기, 뼈연모, 짐승화석 등이 발견된 이상적인 구석기유적으로 동아시아 구석기문화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제천 창내 유적제천 창내 유적은 남한강과 제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지점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한데유적이다. 이 유적에서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둥근 밀개, 긁개를 비롯하여 주먹도끼, 찍개 등 많은 석기류가 발견되었다.한편, 약 10㎡ 정도 넓이의 후기 구석기시대의 둥근 집터도 확인되었는데, 살림집터라기보다는 사냥이나 물고기 잡이를 위해 지은 사냥용 집(hunting camp), 또는 계절에 따라 살던 집(seasonal camp)으로 여겨진다.●단양 수양개유적단양 애곡리 남한강 상류의 강언덕에 위치해 있는 한데유적(open site)으로 후기구석기 문화층과 중기구석기 문화층이 함께 발견되었다.이 유적에서는 50여 곳의 석기제작장소가 확인되었으며 모루, 망치, 몸돌, 격지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일부 몸돌과 격지는 짝이 맞아 석기제작과정의 복원이 가능하다. 석기는 주먹도끼, 찍개, 자르개, 긁개, 밀개, 슴베찌르개, 좀돌날몸돌, 주먹칼, 수정새기개 등으로 매우 정교하고 다양하다.한편, 석기의 돌감은 90% 이상이 규질셰일이며, 규질셰일의 암맥이 1.5km 떨어진 산제골에서 확인되어 이곳에서 돌감을 가져다 쓴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각종 꽃가루와 숯이 검출되어 당시의 자연화경을 밝히는데 좋은 빗살무늬토기와 돌도끼, 땅을 일구는데 쓰는 돌보습, 곡식을 갈아 가루를 내는데 쓰인 갈판과 갈돌, 숫돌, 곡식의 이삭을 따는데 쓰인 반달돌칼 등 다양한 농기구들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도구들로 볼 때, 충북지역의 신석기인들이 초보적인 농경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둥글납작한 토기의 윗부분에 같은 모양의 무늬를 가득 채워 넣은 새로운 모양의 빗살무늬토기는 '금강식토기'로 이름이 붙여졌다.이 유적에서 나온 숯으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B.C.2500~2180년으로 나타났다.●충주 조동리유적남한강가의 충적대지에 형성된 청동기시대의 마을유적으로 집터·불땐자리·움·돌무지 등 다양한 생활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민무늬토기와 돌칼·돌낫 등의 농경도구를 비롯한 돌도끼·가락바퀴·발화석·그물추·돌살촉 등의 생활 석기류와 옥장신구가 발견되어 당시의 다양한 생활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집터와 움, 불땐자리에서 발견된 쌀·보리·밀·귀리·수수의 낟알 등은 농경석기와 함께 청동기시대의 농경생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유적의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2,700±165B.P.(1호집터)와 2,995±135B.P.(1호 불땐자리)에 해당하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가 나와 기원전 7~6세기에 형성된 유적으로 판단된다.ⅲ. 주요유물- 빗살무늬토기 · 돌도끼 · 돌보습 ·갈돌과 갈판 : 청원 쌍청리- 빗살무늬토기 · 방추차 · 돌보습 : 청주 산성동- 빗살무늬토기 · 돌도끼 · 돌보습 : 충주 조동리Ⅲ. 청동기 시대청동기시대에는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생활을 하였으며 경제적 기반은 농경이었다. 주로 민무늬토기와 간석기를 사용하였으며, 청동기는 우월자의 권위의 상징물이었다. 주거 형태는 주로 움집을 이용하였으며 무덤은 고인돌·돌널무덤·널무덤·독무덤 등이 있다.충북의 주요 청동기유적은 금강유역의 구릉지대와 남한강유역의 충적지대에 분포하고 있는데, 청주 용암동·충주 조동리·청주 봉명동집터와 제천 황석리 등이 있다. 한편, 청주 비하동 유적은 기원전 4세기 무렵 한국식 동검에 짧은 빗금이 새겨진 민무늬토기와 반달돌칼, 돌살촉 등이 있다. 집터의 조성 시기는 유물로 보아 청동기시대 전기인 기원전 8~7세기 무렵이며, 한강유역의 청동기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청주 비하동유적기원전 4세기 무렵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한국식동검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한국식동검은 검날이 곧고 허리(결입부)가 있는 것이 특징적이며, 거친무늬거울(조문경), 방패·나팔·대쪽(검파)모양의 청동의기, 곱은옥·대롱옥, 검은간토기(黑陶長頸壺)·덧띠토기(粘土帶土器) 등과 함께 출토된다. 청주 비하동유적은 청주시 부모산의 남쪽 능선에서 검은간토기·덧띠토기·한국식동검·가락바퀴 등의 유물이 발견되면서 알려진 유적으로 돌널무덤(석관묘)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예산 동서리·아산 남성리·대전 괴정동 등 금강유역의 한국식동검유적과 같은 문화권역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이며, 금강유역권에 형성되었던 초기 한국식동검문화권의 최동단에 위치한다.●청주 봉명동유적청주 무심천 서쪽의 해발 60~70m 정도의 구릉에 형성된 청동기시대의 마을유적으로 집터 46기와 독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A구역의 집터는 평면네모꼴이며, B구역의 집터는 평면네모꼴도 있으나 대부분 둥근 모양의 이른바 '송국리형집터'이다. 집터 주변에서는 저장용 움구덩이 다수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 반달돌칼, 돌살촉, 갈판 등이 있는데. 이들 유물은 농경생활과 관련된 것이다.●청주 내곡동집터청주시 내곡동에 있는 구릉의 맨 꼭대기에서 발견된 이 움집터는 동서 6.3m 남북 4.6m이면 면적은 24.98㎡(약 7.5평)로 평면 사다리꼴이다. 움바닥의 일부는 흑갈색 점토를 깔아 다졌다. 집터에서는 기둥과 서까래로 사용된 소나무, 굴참나무 숯이 많이 나왔고, 네모 또는둥근 모양의 구덩이와 홈통모양의 좁고 긴 구덩이, 도랑, 기둥구멍 등이 확인되었다.유물은 주로 화덕자리 부근에서 발견되었는데, 갈판과 갈돌, 돌도끼·돌살촉·가락바퀴·반달놀칼·둥근석기·뗀석기와 팽이모양토기 등이다. 이 집터는살촉, 홈자귀, 대패날 등은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갖추었으며, 청동기·철기 등 금속문화의 유입으로 점차 금속제이기(金屬制利器)로 바뀌어 간다.●청동기시대의 토기청동기시대의 토기는 민무늬토기로 대표된다. 민무늬토기는 모래, 활석, 운모 등을 섞은 진흙으로 빚어 한데가마에서 구운 토기로 그릇의 겉면에 무늬가 없으며 대부분 적갈색통의 색깔을 띤다.이 시대의 토기는 모양새와 쓰임새에 따라 바리, 대접, 항아리, 독, 시루, 두(豆) 등 다양하며, 출토지역과 시기, 모양, 무늬, 특징 등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충북지역에서 발견된 민무늬토기는 초기에는 동북지역에서 유행한 구멍무늬토기와 골아가리토기, 붉은간토기 및 서북지역에서 유향하던 팽이모양토기에서 변화한 변형팽이형토기가 있으며, 중기 이후에는 송국리형토기가 널리 사용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제천 황석리고인돌제천 황석리 남한강의 충적지대에 있는 고인돌유적으로 40여기가 발굴조사 되었는데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물에 잠겼다.고인돌은 강의 흐름과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었으며, 모두 굄돌이 없는 남방식으로서 덮개돌 아래에는 판돌이나 깬돌로 돌널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5기의 고인돌에서는 사람뼈가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신체적인 특징과 매장풍습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황석리고인돌에서는 붉은간토기, 민무늬토기를 비롯하여 간돌검, 돌살촉, 돌자귀, 반달돌칼, 바퀴날도끼, 대롱옥, 곱은옥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Ⅳ. 견학을 마치고...세상 만물 무엇이든지 그것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정말 신비하고, 누구나 흥미를 갖을 만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자신인 인간이 어디서 생겨났는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인류의 기원은 350만 년 전의 남쪽 원숭이사람종으로 부터라고 한다. 이들은 화석으로 볼 때 두발걷기를 하였으며, 뇌의 크기는 현재의 유인원보다 약간 컷다고 한다. 뇌용량으로 보면 벌써 그 오래 전부터 현재 가장 영리한 동물들로 알려진 유인원보다도 똑똑한 두뇌를 가졌던 것이다. 350만년이재이다.
    인문/어학| 2008.05.03| 8페이지| 1,000원| 조회(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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