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사회과학 서평작년 여름 개봉된 영화 ‘화려한 휴가’는 대구 출신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것이 정말 사실에 근거한 실화일까 아니면 설정을 위한 허구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이 잔인한 군대의 폭력 앞에 짓밟히고 희생당하는 장면은 그 사건과 너무나 먼 시대에 살았던 나에게도 끔찍하리만큼 가슴 먹먹한 잔상을 남겼었다. ‘오월의 사회과학’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그 사건과 관련되지 않은 제 3자의 눈으로, 또 정치학자의 눈으로 5.18과 관련된 핵심 담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5.18 사건 당시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에 불과하였으며 이 사건에 대해서 표면적으로 알고 있었을 뿐, 광주사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였다. 17여년이 지난 후, 저자는 사회과학자로서 군부세력에 의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5.18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이 당연한 임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서두에서 밝혔다.5.18 사건은 정치학자들에게 제일 무서운 사건이었다. 또한 아직도 그날을 경험한 사람들이 40세 전후로 살아있는 바로 어제의 사건이었다. 5.18 민주항쟁은 일어나기 전과 후가 같아질 수 없는 분명히 달라진 되돌이킬 수 없는 신호탄이었다. 이 책은 5.18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5.18과 관련된 여러 가지 담론 분석은 이 책이 5.18을 바라보는 사회과학자의 눈에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다른 책과는 차별화되는 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5.18은 여러 사람들이 겪은 경험적인 사건이므로 언어화되어 기록되어있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이러한 문제는 5.18과 같이 시민들이 극단적인 죽음의 공포, 분노, 환희 등을 겪은 경우에는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다수의 시민들의 증언과 여러 가지 사료등을 통해 이러한 내적 경험을 통해서 5.18에 접근하였다. 5.18과 관련된 책을 처음적하였다. 5.18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입 밖에 꺼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군사정권에 의해서 철저히 보도가 통제되고 공식적 발표 외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5.18 이야기는 운동권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또 타 지역 사람들도 5.18 민주화에 동의하고 광주시민들에게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5.18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로 호남 사람들을 불편한 마음으로 보아왔다. 결국 이는 5.18을 바라보는 타 지역 사람들도 침묵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5.18 당사자나 목격자의 입마저 침묵을 지키게 되었는데 그들에게 5.18은 생생한 공포이자 가슴의 응어리였기 때문에 말로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고, 그들의 한 맺힌 응어리가 말로 표현하는 순간 초라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또 저자는 5.18이 폭력의 전쟁뿐만 아니라 언어의 전쟁이었다는 점을 여러 가지 근거를 통해 정리하고 있다. 우선 계엄군은 5.18을 ‘깡패와 현실 불만세력’에 의한 것으로 규정, 공수부대의 만행을 부정하고 그 책임을 다른 집단에 전가하였다. 또한 5.18이 확산되어가는 과정에서 퍼져나간 유언비어는 정치적 음모와 지역감정을 연결시켜 폭력 못지않은 힘을 일으켰다. 군부는 5.18을 일으킨 ‘불순인물 및 간첩’들이 의도적으로 광주시민을 유언비어로 자극하였다고 주장했다. 군중들의 언어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져 갔다. 그들의 언어는 ‘전두환 물러가라!’에서 ‘전두환 찢어 죽여라!’라는 식으로 폭력화되었다. 또 20일부터는 ‘내 아들 살려내라!’라는 식의 절규로 변하였다. 광주 운동권 청년들이 만든 유인물은 적개심을 전달하기 위해 욕이 적나라하게 쓰이기도 하였다.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씨가 소요되고 난 후인 22일부터 27일까지도 유착과 명분의 언어 싸움이 계속되었다. 광주 지역유지들로 구성된 수습위원회는 계엄군과 공수부대의 만행을 놓고 ‘과잉진압’을 ‘지나친 진압’이라는 말로 현실감을 중화시키고자 노력했으며 수시로 헬기나 전단에 쓰이는 ‘폭도’라는 말에 대 언론들은 선량한 시민들의 수습 복구 노력을 촉구하는 한 편,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유언비어’를 경계할 것을 보도하였다.이후 계엄군은 ‘광주사태’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5.17 계엄령 이후 유독 광주에서만 문제를 일으켰음을 강조하면서 ‘유언비어’의 책임을 광주시민들에게 돌렸다. 또 그러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시민들을 선동한 것이 간첩과 불순분자의 계획적 소행이라고 규정하면서 은근슬쩍 공수부대의 만행을 정당화 시켰다. 계엄군은 이후 이 발표를 수정 보완하여 5.18을 불순분자, 간첩들에 의한 사건에서 ‘김대중 추종세력’에 의한 것이라고 추가하였다. 이는 김대중을 정치적으로 매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후 시간이 흘러 1987년도 대통령 선거 즈음에는 정치가들은 앞 다투어 5.18과 민주화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후 5.18은 운동권의 지하의 언어에서 대학의 강단으로 올라왔으며,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5.18을 민주화를 추구한 운동으로 복권시켰다. 5.18은 오랜 고독과 침묵 속에서 드러나 그 모습을 보였으나 그 모습은 5.18 사건 당시의 모습이 아닌 오랜 세월 부드럽고 보기 좋은 모습으로 포장된 피상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또 저자는 그 이후 5.18과 관련된 여러 가지 담론들 -폭도론, 불순정치집단론, 유언비어론, 과잉진압론, 민주화론, 민중론, 혁명론- 을 주제별로 카테고리화 하여 그 내용과 잘잘못에 대해서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중 5.18 사건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담론 -폭도론, 불순정치집단론, 유언비어론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들 모두 군부세력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담론임을 알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군부세력이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 ‘폭도’라는 용어는 실제로 5.18 사건 당시 존재하지 않았으며 평상시 ‘폭도’라고 불리던 이들이 앞장서서 투쟁해주었으면 하는 게 시민들의 바람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꽤나 충격적이고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만큼 공수부대의 만행이 잔인했다는 것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공작에 관하여는 연구의 여지를 남겨놓아야 할지 모른다. 비록 공작의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시도했을 것이다. 많은 증언들에 따르면 당시 북한 방송은 5.18을 중계방송 하듯이 보도하고 있었고 많은 광주시민들은 북한 방송을 듣고 소식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북한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었음에는 틀림없을 것이다.‘유언비어론’은 예를 들어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말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선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언비어가 시민들의 참가를 직접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바로 흥분하여 시위에 참여할 만큼 미련한 광주시민은 거의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사실인지 확인하려 하였고 대부분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 말이 거의 사실임을 확신하였다는 것이다.제 2장에서는 ‘폭력과 사랑의 변증법’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5.18을 다루고 있다. 5.18의 시작은 몇 년 동안 우리나라 여러 대도시에서 심심치 않게 보아온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러는 것으로 여겨지는 평범한 대학생 데모였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공수부대가 출동한 직후부터 벌어진 일은 전혀 그런 종류의 사건이 아니었다. 그때 광주에서 벌어진 일은 ‘인간사냥’이었다. 5.18이 오랫동안 경험자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러한 극도의 공포, 분노, 적대감과 같은 개인적인 체험을 겪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하였다.이러한 극도의 잔인함과 이성이 있다면 일어나기 힘든 공수부대의 진압을 놓고 신군부의 세력 장악을 위해 광주가 선택된 것이 아니냐는 음모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이 음모설은 공수부대의 일관되지 않은 진압 행위를 볼 때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마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였겠지만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 방식에는 논리적 설명이나 해석이 불가능하였고 또 이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행동 양식에도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했다.저자는 5.1에서도 공수부대가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보면 군대 내 호남 출신 차별은 공공연히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에서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군인 사이에서 일반적이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측이다. 이것은 5.18 공수부대의 작전명인 ‘화려한 휴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부차적인 요인들이 이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것은 아닐 것이다. 5.18의 직접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공수부대의 잔인한 만행이었다. 공수부대의 만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사람을 개 패듯 패고, 개처럼 질질 끌고 와 트럭에 실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분노에도 불구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존엄성을 말살하는 행위에 대한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로 가득 찼을 것이다.이러한 이성적 분노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광주에 ‘절대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절대공동체는 폭력에 대한 공포를 이성과 용기로 극복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이 만나 결합한 절대공동체였다. 이 책에서는 광주 시민들에 의해 절대공동체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시민들은 공동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해 모금을 벌이고 음식, 치약, 물수건, 무기, 심지어는 자동차 등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목숨은 공동체와 일치되어 사유재산도 없고, 생명도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다. 이 공동체는 스스로의 싸움을 ’거룩하다‘고 느낌으로써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이었다. 광주시민들이 무려 3개 여단의 공수부대를 나흘간의 투쟁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절대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절대공동체가 총을 탈취하여 무장한 순간 작은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일반 시민이 아닌 대부분이 노동자들로 구성된 하층계급이었다. 일반시민들은 ’누구 총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여기서 저자는 사회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해석을 발견하는데 사회의 하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