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窟庵 佛像群의 名稱과 樣式에 관하여1. 本尊佛의 手印과 名稱본존불상의 수인과 명칭에 대한 연구 - 항마촉지인의 아미타불 - 수인은 成道時 부처의 형상 유지 - 화엄경을 설법하는 부처의 모습2. 항마촉지인 불좌상의 유행과 그 의미인도 간다라 조각 굽타 시대에 항마촉지인 유행 - 인도 대각사의 항마촉지 불좌상 돈황, 용문 석굴의 항마촉지 불상 = 보리수 옆 적멸도량의 깨달으신 부처로서 설법의 장소가 바뀌어도 다른 곳에 촉지인 자세의 분신으로 나타나는 세존, 즉 석가3. 名像의 名稱과 樣式的 特徵본존상 중국 천룡석굴 제18굴 북벽의 본존 - 석굴암 불상의 윤곽이 더 직선적이고 신체 표현에 긴장감이 있음 중국 화탑사 대리석불좌상 - 석굴암 상과 비교되는 가장 가까운 예2) 보살상 (1) 원형 주실의 보살상문수보살보현보살11면관음보살상11면관음보살상일본 법륭사 목조구면관음상(2) 주실 상벽감실의 보살중국 돈황 제220굴, 103굴의 유마경변상도 신라 석굴암 상벽 감실의 문수, 유마힐 대담상 일본 법륭사 오중탑 북벽의 문수, 유마힐 대담상 - 당시 당을 중심으로 문수, 유마힐 도상 유행 감실의 보살 중 지장보살상 포함 - 8세기 중엽 신라에 이미 지장 신앙의 수용과 그 도상이 알려졌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예석굴암 유마상법륭사 유마상3) 천부상 (1) 범, 석 이천상제석천범천법륭사 범, 석 이천상(2) 사천왕상 * 8세기 중엽 유행한 도상과 양식을 알려줌 * 갑옷의 세부 표현 자세, 섬세한 조각수법 * 사실적인 조각 묘사의 단적인 예석굴암 지국천왕용문석굴 지국천왕동대사계단원 지국천왕(3) 인왕당시의 사실적인 조각 수법의 경향 - 상체의 근육 묘사, 휘날리는 옷주름, 한 손을 들고 서 있는 동세 불교조각 중 가장 인체에 가깝게 표현 - 당시 조각가들의 인체의 구조 및 근육 묘사에 대한 관찰력과 사실적 표현에 대한 조각 기술을 잘 보여줌 - 현존하는 상보다 더 섬세하고 부드러움(4) 팔부중 불교 성립 이전부터 있었던 인도의 여러 신들이 불교에 수용되어 불법과 불국토 수호의 역할 담당 천, 용, 아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현재 석굴암의 팔부중상은 제작 기법이나 표현양식이 일정하지 않음(4) 나한상 석가의 10대 제자 부처의 권속이지만 8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 조각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수보리, 부루나, 마하가전연, 아나율, 우바리, 라후라, 아난타 중국 용문석굴의 나한상 일본 흥복사 건칠 나한상4. 맺음말당시 유행하는 불교사상과 다양한 도상을 따름 사실적이면서도 조화의 균형감을 갖춘 조각 양식과 섬세한 조각 수법 신라적인 독특성을 보여주면서도 8세기 국제적인 조각 양식의 흐름을 따르는 보편성 동아시아 불교조각의 양식을 대표하는 수작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도상의 문제 팔부중상에 보이는 조각 수법의 차이 입구의 목조 건축과 원래의 구조에 대한 논의{nameOfApplication=Show}
근정전과 인본주의-경복궁 근정전에 구현된 인본주의 사상1. 들어가는 말흔히 중국의 경우와 대비해서 우리 나라의 것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조선조의 선비들은 중국에 대해 사대의 예를 다했다 하여 우리가 무조건 중국의 것만을 선호하고 그것을 쫓은 줄만 안다. 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목조 건축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외형상으로는 둘 다 나무로 짓고 기와를 얹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건물을 세우는데 작용한 조형의식은 두 나라간에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기술들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나라의 기술이고 예술인 것이다. 그래서 사이사이에 중국의 경우와 비교를 하며 우리의 개성을 부각시켜보려 한다.2. 근정전과 인본주의- 근정전(勤政殿)은 어떤 건물인가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이다. 대례를 거행하고 조회를 열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정도전이 각 전각의 이름을 지으면서 근정전으로 명명한 이유를 설명했다.천하의 모든 일은 근면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는 것이 이치이므로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하고, 나태하거나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정사와 같은 큰 일을 게을리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에서 근정(勤政)이라 하였다.정도전의 이러한 진언은 매우 심각하며 왕의 처신을 훈계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금인들 대통령에게 저토록 대담하게 명분을 따르라고 강조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요즘 정국의 혼란상황에서 문득 든다.임진왜란 때 불이 나서 소진된 이후, 중건해서 옛 모습을 되찾자는 공론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경복궁은 창건하자마자 왕자의 난이 일어나 핏발이 섰던 곳이란 인식에서 얼른 찬동하지 않아 방치된 상태로 폐기되어 있었다.흥선대원군은 왕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그의 아들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하였다. 그가 섭정하면서 한 야심만만한 첫 사업이 270여년간 아무도 손대지 못했던 방대한 경복궁의 중건이었다. 근정전은 그런 경복궁에서 제일 가는 대표적 건물인 정전이며 법전이라고도 불리고른 화마가 와 있는 줄 알고 다른 곳으로 간다는 설화가 어려있다. 향로, 드무, 일월오악병 이 세 가지에도 벌써 인본주의가 표현되어 있다.- 근정전 박석의 슬기바닥에 깐 돌을 박석이라 부른다. 1960년대 이전엔 박석 사이에 푸른 잔디가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행사를 한다면서 위로부터 병영에서 미화 작업하듯이 돌과 돌 사이의 이음을 꽉꽉 맞추라는 지시가 떨어지면서 박석 사이의 잔디는 사라지게 되었다.두꺼운 창이 달린 군화는 여름 뙤약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박석을 디뎌도 발바닥에 전혀 감각이 없지만 적어도 옛날엔 상황이 이와 달랐다. 관원들이 조회 때 조복에 맞추어 신는 신발은 목화(木靴)였다. 창이 돼지가죽으로 만든 얇은 것이어서 버선 신은 발로 뜨거워진 박석 위에 버티고 서면 못 견딜 정도였다. 따라서 박석 사이에 잔디가 자라고 있으면 그 위에 딛고 서서 발바닥의 뜨거움을 모면했던 것이다. 또한 잔디를 잘 다듬으면 박석의 재료인 화강암의 흰빛과 어울려 삭막함을 줄여 주었고 박석에서 반사되는 볕을 쪼이면 당장 얼굴이 검게 탔으므로 관복 입고 홀을 든 채 국궁하고 있는 나이 든 신료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도 있었다. 자기가 그 어려움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잔디가 자라는 까닭을 몰라 쉽게 고쳐버렸던 것이다. 여기서도 현재 우리의 문화 정책을 엿볼 수 있어 아쉬움만 남을 뿐이다.- 향로향로는 향을 피우며 임금이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정사를 다스린다는 뜻을 상징하는 의기이기도 하지만, 경복궁의 뒤편에 솟아 있는 백악산을 통하여 천지신명을 공양하며 어린 백성들을 보우하겠다는 의미를 지닌 인본주의의 심상이다. 이는 뒤에서 말할 근정전 안 임금이 앉는 자리인 어좌 뒷벽의 일월오악병이 함축하는 의미와 서로 통한다.왕실의 여러 행사에서는 가마에 태우고 다니는 향로인 향정이 포함되는 수가 많다. 이것은 향정 주변이 신성하다는 의미를 존중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향로가 서 있는 받침대도 그 구조가 예사로이 볼 수 없다. 근정전의 월대가 상징하는 네모난 바탕바라는 소망이 담긴 것이다.자금성에도 큰 항아리를 소맷돌 아래에 설치하였는데 우리의 드무와는 그 모양이 사뭇 다르다. 근정전의 드무가 일월성신과 구름, 바람을 새겨 넣어 위민(爲民)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도록 하는데 반해 자금성 태화전의 항아리에는 아무 무늬도 없이 덩그라니 한쪽 난간 옆에 세워져 있다. 근정전과 태화전의 구조나 의도에서 같은 것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근정전 처마의 그물근정전의 처마에는 철로 된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흔히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그물망의 기능은 간단하다. 처마 밑에는 공포를 구성했기 때문에 삐죽삐죽 돌출한 부분이 많다. 마치 나무의 무수한 가지 같아서 날짐승들이 둥지를 틀기에 아주 적합한 것이다.제비집에 구렁이가 덤벼 제비알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포가 있는 부분에 새들이 둥지를 틀면 뱀이나 그 밖의 천적들이 출몰할 가능성이 많다. 뜻하지 않은 살육이 자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진 정사를 목표로 하고 만백성이 평화로워야 하며 인본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성한 공간인 정전에서 처음부터 그러한 사단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그물을 쳐서 새들의 접근을 엄금하였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근정전 월대한옥에선 보통 건물에 댓돌이라 하는 받침대가 있다. 건물이 이 댓돌 위에 올라가게 되므로 한옥은 기단이 높은 것이다. 기후가 열대지방처럼 고온다습하지 않더라도 땅에 가깝게 자지를 잡아 집을 짓게 되면 자연히 습기가 올라오기 마련이다. 특히 여름철이면 더 심해서 눅눅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한옥은 움집을 땅 위로 노출시킨 이후 차츰 바닥을 높이면서 땅에서 떨어지는 방도를 취하였다. 기단이라 부르는 댓돌을 여러 겹 쌓아 높게 만들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아서 집을 짓는 방법이 보편화되었고 이로 인해 땅의 습기를 줄여 쾌적하게 살 수 있게 했다.그런데 예전엔 신분에 따라서 이런 댓돌의 크기도 격을 달리했기 때문에 왕궁같은 경우에는 최상위하월대는 15.5척이며 사면의 상하월대에는 돌난간이 있다. 난간기둥과 문로주 머리에 12방위에 따라 동물을 조각하였다.근정전의 정면 중앙 층게에는 상하월대에 다 문로주(사방에 설치된 층계 좌우에 난간이 이어지면서 세운 돌기둥)가 섰다. 문로주는 상하 각 층계에 두 개씩 상하에 있으므로 각층에 4개씩 도합 8개가 있다. 여덟 개 돌기둥 머리 위에 동물은 각각 다르나 좌우는 같은 종류의 짐승이 암?수 한 쌍으로 조각되어 있다.하월대 아래 문로주엔 해태가 새겨졌다. 정의를 구현하는 대표적 표상이다. 그 위의 기둥엔 기린이 있다. 이것은 인재를 의미한다. 또렷하게 성장한 유능한 인재라야 나라의 인물이 된다는 것이다. 상월대 아래의 것은 주작이다. 사신 중에서 남방을 수호하는 신의 모습이다. 위의 것은 12지 짐승 중에 남방을 맡은 말의 형상이 조각되었다. 이에 비해 뒤쪽 문로주에는 거북이가 나타내는 북방의 신 현무와 12지 중에서 북쪽 방위를 가리키는 쥐가 형상되었다. 동편 역시 돌난간에 조각이 있는데, 토끼와 용이 위치하였고 동쪽 두 틀 층계 중의 남쪽 것엔 알 수 없는 짐승과 이 있다. 용과 뱀은 모습이 비슷하여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궁금한데 조선 조각가의 재치는 비늘이 있는 용과 비늘이 없는 뱀으로 구분하였다.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서쪽의 돌난간엔 양과 잔나비(원숭이), 닭,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다 그 중 잔나비의 한 쌍은 그 형상이 뭐라 할까 생각이 많은 현인의 모습인 듯이 느껴진다. 아래에서 올라가다 눈이 마주치면 ‘어..이제 오냐!’라고 말할 것 같이 아래를 내려다 보며 지그시 앉아있다. 어떤 사람은 ‘옛날 지조 높은 선비가 깊은 생각 속에서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듯한 인격화된 잔나비 모습 이라고도 했다.흔히 조선왕조는 사대주의를 표방하였으니 경복궁의 구조나 특히 정전인 근정전은 명나라의 왕궁이었던 자금성의 정전을 본받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자금성과 비교를 해보면 자금성의 월대에도 난간을 두른 것은 사실이나 근정전처럼 동물이 새겨진 난간은 아니다화해야 한다는 의도가 이 조각에 담겨 있는 것이다. 바로 인본주의의 표상이다. 혹여 해태 가족이 엉덩이를 근정전 쪽으로 하고 있는 것을 떠나려는 의사표시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떠날 생각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엉덩이를 들고 걷는 시늉을 해야 할 것이다. 엎드려 뒤돌아보는 자세는 산신각 산신탱화에서 호랑이 산군이 산신의 무릎에서 떠나지 않는 자세를 취하면서 엎드려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복종이며 기쁨의 대기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각을 하면서 이들 가족이 엉덩이를 들고 앞을 보는 상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임금을 배반하고 떠나는 모양이 되었을 것이며 앉은 모습과 선 모습은 조금의 자세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하는 바는 천양지차가 된다. 왕화로 해서 백성들의 삶을 올곧게 하는 일은 인본주의의 기본 이념이다. 단군이 내세운 홍익인간의 이상을 구현하는 일이기도 하다.임금 쪽에서 해태 가족을 보면 ‘저 어린 백성을 위하여 정성을 다해 근면하게 정치를 하여 다 잘살게 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인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경복궁의 정전은 ‘근면하게 정치를 하라‘는 뜻을 가진 근정전으로 명명되었다. 또한 이러한 해태 가족의 형상은 세종이 훈민정음에서 말하려 하였듯이 ’어린 백성‘을 위한 성심이었으며 조선왕조가 건국 초부터 표방하고 있었던 국시에 해당하는 것이다.그런데 중국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의 경우에는 월대 모퉁이에 큰 입을 벌리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 독하게 생긴 이무기의 모습을 새겼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다가 서투르면 당장이라도 뛰어내려 요절을 낼 듯한 자세로 긴장이 들어가 있다. 분명 부드러운 모습은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근정전에 있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른 듯 보인다.- 임금의 목표는 ‘홍익인간’ → 일월오악도해태 가족의 지극히 인간적인 분위기는 어진 백성을 상징한다. 인본주의의 표상인 것이다. 인본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단군이 제창한 홍익인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단군은 고려나 다.
『표해록』최부의 표해록을 통해 본 조선 전기 선비의 유교의식1. 여는 말2. 표해록은 어떤 책인가1) 표해록 저술의 역사적 배경2) 표해록의 내용과 그 가치3. 표해록에 드러난 유교 의식에 대한 감상4. 맺는 말1. 여는 말500여년 전 집으로 돌아가려다 풍랑으로 인해 중국까지 떠밀려 간 젊은 선비가 있다. 그는 조선으로 되돌아오기까지 다섯달 동안 왜구로 몰리기도 하는 등의 고초를 겪게 되지만 그럴수록 선비로서의 기품은 더욱 빛나게 된다. 이는 바로 조선 전기의 선비 최부이다. 조선의 마르코 폴로라고도 표현되는 최부가 남긴 『표해록』을 통해 당시 조선 시대의 사대부가 어떠한 의식과 가치관을 가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2. 표해록은 어떤 책인가1) 표해록 저술의 역사적 배경표해록의 저자 최부는 1487년 제주에 추쇄경차관으로 파견되었는데 이는 당시에 죄를 지은 자들이 제주도로 도망가거나 피신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색출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488년 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선 제주 목사가 마련해 준 42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날씨에 관한 의견이 분분한 끝에 결국 한양으로 가기 위한 배에 오른다. 그러나 배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게 되고 일행을 태운 배는 표류하기 시작한다. 성난 파도가 배를 덮쳐 물이 차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암초까지 걸리게 되고 물이 없어 빗물과 오줌을 먹는 등 풍랑을 겪으며 중국의 영파부 하산이란 섬에 도착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도적에게 당하게 되고 계속해서 고초를 겪으며 대륙의 절강성 해안에 내리게 된다. 하지만 곧 최부 일행은 왜구로 몰려 계속해서 관의 조사를 받으며 호송되게 된다. 그러나 최부는 절망하지 않고 중국인들과 글로써 이야기를 나누며 끊임없이 자신의 신분과 고국 조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중국인들보다도 더 해박한 지식으로 중국인들은 감복시키며 자신의 처지를 이해시킨다. 그 과정에서 그의 충과 효 의식은 점점 뚜렷이 드러나며 유교소양을 갖춘 선비로서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기록되어 있어 당시 조선과 중국의 풍속을 상세하게 볼 수 있으며 표류하는 동안 바다의 묘사 또한 섬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조선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서해 바다의 정황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어 현재에도 표해록은 의의, 가치가 있는데 몇 가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첫 번째는 제주의 풍속과 서해 바다에 대한 내용이다. 최부가 귀향하기 위해서 탄 배는 관에서 마련한 선박이 아니라 제주 수정사 승려의 개인 배다. 또한 최부를 따르는 수행원들은 대부분 제주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 제주의 풍속을 알 수 있다. 보통 제주에서는 여자가 많고 여자의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표해록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나와 있다. 즉 제주에서는 계집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에게 효도할 자식이라 생각하고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내 아들이 아니라 고래나 상어의 먹이감이 될 것이라 하여, 아들보다 딸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또한 제주사람들은 겉보기에 어리석은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독하고 성질이 사납다는 등 제주사람들의 기질까지도 나와 있어 민속학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표류 중에 목격한 고래를 묘사하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서해에 흔치 않았다고 생각하는 고래의 존재에 대해 살펴볼 자료가 된다.두 번째는 한반도의 서남단에서 남중국으로 가는 항로를 구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부는 표류기간 내내 일기상태와 바람의 방향, 바다의 빛깔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 중에서 특히 바다의 빛깔은 중국 송나라 때 서긍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온 “백수양(白水洋)?흑수양(黑水洋)”과 같은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어 그 정확성이 돋보인다. 대체로 고대 한중간의 항로 중 서해남부사단항로는 고려도경에 기록된 대로 중국의 명주에서 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동북쪽으로 항진하면 흑산도에 이른다. 최부가 기록한 당시의 풍향과 일기를 분석하면, 난파된 배의 진행방향이 고려도경의 항로와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 조건만으로도 좋지만, 인신과 마패는 나라의 신표다. 가져가도 그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니 돌려 달라”라고 하며 관리의 도를 지켜냈다. 또한 곤장으로 어깨를 내리치며 금은을 요구하는 해적들에게 “내 몸이 비록 끊어지고 뼈가 부서진다 해도 없는 금은을 어떻게 내놓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는 등, 바로 죽음을 자초할 수 있는 말 한마디를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었다.이와 같이 최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도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조선의 관리임을 내세우며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여, 결코 예가 아닌 것에는 굴하지 않는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해적을 만나기 전 수행원들이 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어 위엄을 보이라는 권유에도 예가 아니라 하여 따르지 않고, 나중에 명의 황제에게 사은(謝恩)을 할 때에도 상복을 벗지 않으려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또한 중국 대륙에 도착해서는 왜구로 오인되어 고초를 겪을 때 그리고 중국의 관리 앞에 나아가 본인이 조선의 관리임을 밝힐 때 역시 항상 상복을 입고 있어 가례(家禮)에 어긋남이 없이 행동한 것은 그가 성리학을 깊숙이 이해하고 실천적으로 따르려는 조선의 문사임을 적극 드러낸 것이다.네 번째는 중국의 풍속, 풍토를 상세하게 묘사한 점이다. 최부는 중국에 도착하여 항주로 옮겨가고 다시 운하를 따라 배를 타고 가거나 말로 갈아타고 지나간 길의 주변 정황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운하를 타고 올라갈 때에는 고사를 예로 들며 과거 강의 흐름을 지적한다든지 운하에서의 운행 방법을 묘사한다든지 운하에 놓인 다리의 묘사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전하고 있다. 또한 호송 도중에 수차(水車)의 모습을 보고 그 방법을 배워 조선의 농업 발전에도 이바지하려 한 점을 볼 수 있다.3. 표해록에 드러난 유교 의식에 대한 감상표해록을 읽으면서 시종 눈에 뜨인 것은 최부의 언행을 통해 드러나는 유교적 소양을 갖춘 선비로서의 의연한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글 전체에는 유교적 효사상과 충사상이 곳곳에서 드교적인 충효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저는 오직 충효와 우애만을 근본으로 삼고 마음으로는 남을 속인 일이 없고 몸으로는 남의 원망을 산 일이 없으며…임금의 명을 받들어 수행하던 중 부친상을 당하여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라도 저의 허물로 벌이 제 몸에 미치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하겠습니다만 같이 배에 타고 있는 40여명은 아무 죄가 없는데도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이들을 불쌍히 여기신다면 바람과 파도를 잠자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저로 하여금 돌아가신 부친을 선산에 모실 수 있도록 해 주시며, 노모를 봉양케 하여 주소서. 궁궐 아래 몸을 굽힐 수 있게 하여 주소서.”(윤 1월 5일)여기서는 직접적으로 자신이 유교적 가치관을 숭상함을 드러내고 있고 일행을 지도하는 자로써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만이 구원받기만을 바라지 않으면서 서로간의 의리를 지키려 함을 보이고 있다. 또한 효심을 가득 담아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걱정과 연로한 노모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으며 신하된 자의 충으로써 국가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음이 보인다.수행원들이 상복을 벗고 관복을 입어 위엄을 보일 것을 권유하자, “ 바다에서 표류당한 것도 하늘의 뜻이고…이 섬에 닿은 것이나 저 배를 만난 것도 다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이치는 본디 곧은 것이니, 어찌 하늘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는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하였다.(윤 1월 12일)하산에서 관리의 위엄을 보이지 않아 도적들로부터 유린당한 것을 상기하며 관복을 갖출 것을 권유하자, “자네들은 어째서 예의를 훼손하는 일을 종용하여 나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가?”(윤 1월 16일)이 두 대목에서는 부모에게 행하는 효에 대한 그의 실천적인 행동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도적들을 만나게 되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결코 상복을 벗지 않으려고 한다. 이 때 최부가 거절한 이유는 상제가 상복을 벗음은 바로 효가 아니며,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것은 죽음에 진실이 아니고 죽음에 이를지언정 효가 아니고 진실이 아닌 처신은 못한다는 것이었위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수행원들에게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과 군주의 성과 휘를 밝히지 않는 장면 등에서 최부가 가진 국가관을 살필 수 있다. 조선이 중국과 다를 바 없이 주자의 예를 따르고 있음을 강조하는 대목은 그 뒤에도 자주 나온다. 그래서 조선이 불교를 숭상하지 않고 오로지 유학만 숭상함을 여러 번 대화를 통해 나타내고 상례에 있어서 주자의 『가례』를 따르고 있음을 거듭 밝히며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만을 학문으로 삼고 시가를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중국 관리들을 감복시키고 조선을 업신여기지 않도록 한다. 한편 2월 4일에 이루어지는 중국 관리와의 대화에서는 조선의 연혁을 말하면서 기자가 세운 조선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윗대부터의 역사를 시작으로 삼고 있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사대주의의 관념으로 기자를 역사의 시작으로 삼았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라 다소 의문스럽게 여긴 부분이다. 하지만 조선의 연혁을 요임금 시대와 견주어 중국과 대등한 위치로 설정함으로써 조선의 위상을 보인 점은 다소간 신선했다.“수차(水車)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소.…적은 인력으로 많은 물을 댈 수 있어 가물었을 때 농사짓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소”(3월 23일)유교 사상에서는 농자를 천하지대본이라 하며 농사를 국가의 막중한 업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유교로 무장된 선비에게도 이러한 의식이 반영되어 민에 대한 걱정을 하며 권농정책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여기에서도 조선에는 없는 새로운 농경술인 수차의 제도를 보며 조선의 농업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유교적 선비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다.중국의 관리가 예복으로 갈아입고 황제에게 사은할 것을 전하자, “친상(親喪)은 몸을 다 바쳐서 극진히 치르는 법이오. 화려한 옷을 입으면 효도가 아니오. 나는 사람된 자로서 경솔하게 상복을 벗는 처신은 못하오. 어찌 이런 불효를 범하라고 하시는 게요.”(4월 19일)상복을 벗지 않음으로써 효를 지키려 하는 점은 배에서 내려 북경으로 다.
한국 과학기술예산에 담긴 미래 성장동력의 메시지1. 여는 말2. 과학기술예산의 의의(1) 역대 정부 과학기술행정체제와 예산의 변화(2) 과학기술예산이 가지는 의미3. 2007~2008년 과학기술예산 분석(1) 과학기술예산의 이론적 접근1) 자원배분과 과학기술정책2) 과학기술예산의 특성3) 과학기술예산 재원배분 구조의 필요성4) 예산제도 개혁과 성과주의 예산제도5)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예산의 현황과 특징(2) 과학기술예산의 실제적 접근1) 국가 전체 예산 내에서의 과학기술분야 재원배분 비교2) 과학기술분야 내에서의 재원배분 비교4. R&D예산의 비교(1) 정부 R&D 예산추이(2) 2007년 R&D예산 조정·배분의 주요 내용1) 기초연구·원천기술 투자 확충 및 창조적 과학기술인재 양성2) 지방 및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역량 강화3) 공공·복지 기술 분야 R&D투자 확충4)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전문성 강화(3) 주요국의 정부 R&D투자 비교5. 과학기술예산의 총체적 분석 및 앞으로의 방향 모색(1) 과학기술예산의 총체적 분석(2) 과학기술예산의 정책 제언6.맺는 말1. 여는 말지난 11월 5일 과학기술부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제 2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08~2012)’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여기에서 논의된 내용은 바로 2012년까지 기초과학 연구비를 현재 1조 6000억원에서 3조 2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기술집약형 중소벤처기업 500개를 육성할 방침이다. 아울러 과기부는 이 계획에서 과학기술 5대 강국 실현을 위해 GDP(국내총생산) 대비 총 R&D(연구개발)투자 비중을 지난해 3.23%에서 2012년 3.5%,5년 주기 과학기술 논문 피인용도를 지난해 3.22회에서 4.5회로 높이고 과학 및 기술 경쟁력도 세계 5위 내 진입을 달성하기로 정했다고 한다.이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은 어떤 한 국가의 사회문화의 발전에 있어서나 경제의 발전에 있어서 그 원동력이 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있어서 어떤 한 연계성이 더욱 강조되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예산의 기능도 단순히 통제에서 벗어나 전략성과 비전이 강조되었으며, 국가목표와 예산에 의한 자원배분기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예산은 국가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정책의 우선순위 결정을 통하여 자원을 배분한다. 즉 예산은 국가정책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자원을 재배분하는 수단이며 목표달성과 변화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정책의 초점이 변화하거나 특정 분야의 상대적 중요성이 달라지면 예산 배분에 있어서도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이 라는 인식 때문에 과학기술정책의 중요성은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구체적인 과학기술정책의 지향이나 기조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책 지향의 변화에 따라 과학기술정책 대상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예산 배분의 규모나 순위에도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2) 과학기술예산의 특성과학기술정책도 필연적으로 ‘가치의 선택’이자 ‘우선순위 결정’이라는 정치과정을 거친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결정되면 이에 따라 적절한 규모의 자원이 배분되는 것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예산은 예산 기능의 분류상 특정 기능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 기능 분야에 분포되어 있다. 국가 R&D 예산규모의 급격한 증가와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수요와 기대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예산편성과의 연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실정이다.특히 과학기술부문은 연구개발사업간의 규모, 추진방식 등 종적 분화가 세분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부처별 이해관계로 인해 횡적 통합이 어렵고, 정부와 민간부문간?산학연간 역할분담과 예산배분에 대한 조정과 합의가 상당히 힘든 분야이기도 하다.과학기술 예산의 규모나 배정 분야는 국가별로 상이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국가별 과학기술 관련 예산의 규모나 증감률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 대체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 있다. 예산 결정은 종합적인 것이 아니라 점증적이며 전년도 예산을 기초로 한 편성기준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현실적 상황을 감안하여 실제 적용 가능한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성과주의 예산제도와는 구별된다.한편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예산과 기금을 포괄하는 통합재정기준으로 5년 단위의 계획으로, 중장기적 시계에서 정책에 기초하여 국가재원을 전략적으로 배분하고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투명성을 제고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종래의 중기재정계획과는 달리 단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의 기본 틀로 활용하고 확정된 내용을 발표하며 매년 연동계획을 수립한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은 그동안 예산편성이 단년도 위주로 이루어져 예산과 정책의 연계가 어려웠으며, 중장기적 시각에서 국가비전과 발전전략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재정건전성을 견지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회계 이외에 특별회계와 기금이 증설되어 재원배분의 효율이 떨어지고 재정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워 투명성이 저하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5)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예산의 현황과 특징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와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과학기술혁신 노력에 힘입어 R&D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총 R&D 투자는 지난 10년간 2.4배가 증가되었으며, GDP 대비 R&D 투자비율은 2004년 기준 2.85%로 세계 8위 수준을 차지한다.참여정부는 국가경쟁력 제고와 R&D 예산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3+1 재정개혁과 맞물려 R&D예산배분방식에 변화를 주었으며, 과학기술부총리체제 출범, 과학기술혁신본부 신설 등 제도적 정비를 통해 이를 지원하고 있다.참여정부의 과학기술예산배분과정은 과학기술행정체계 개편과 3+1 재정개혁 중 총액자율편성제도 도입과 성과주의 예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 및 관련 산업?인력?지역혁신 정책의 실질적인 종합조정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 R&D 사업 예산의 조정?배분권을 기획예산처에서 과학기술부로 이관하도록 한 것이다.참여정부는 국가 R&D 예산 편성 개편을 통해 과학기술관련 정책간의 연계원을 배정하였으며 과학기술기반조성 및 기초연구진흥은 지출액 규모가 3천 억 원 이상으로 상대적으로 대형 프로그램이다.2008년도 과학기술부 재정지출 예산안)(단위:억원,%)구 분2007예산(A)2008예산안(B)증감액(B-A)증감률세 입22,65726,2413,58415.8Ⅰ. 일 반 회 계4,7655,0653006.3Ⅱ. 책임운영기관특별회계17,89221,1763,28418.4세 출2,284,2362,502,613218,3779.6Ⅰ. 일 반 회 계2,029,2392,227,151197,9129.8Ⅱ. 에너지 및 자원관리특별회계171,299181,37010,0715.9Ⅲ.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67,72074,8207,10010.5Ⅳ. 책임운영기관특별회계15,97819,2723,29420.62008년도의 과학기술부 소관 예산은 일반회계, 3개의 특별회계, 2개의 기금으로 구성되며,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예산안의 규모를 살펴보면, 먼저, 2008년도 세입예산안 규모는 일반회계 50억 6,500만원, 책임운영기관특별회계 211억 7,600만원(자체수입금 25억 2,500만원+일반회계전입금 186억 5,100만원)을 합하여 총 262억 4,100만원으로, 2007년도에 비하여 35억 8,400만원(15.8%)이 증액 계상되었다.2008년도 세출예산안 총계 규모는 일반회계 세출 2조 2,271억 5,100만원, 에너지 및 자원관리특별회계 1,813억 7,000만원,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748억 2,000만원 및 책임운영기관특별회계 192억 7,200만원을 합하여 총 2조 5,026억 1,300만원으로, 2007년도에 비하여 2,183억 7,700만원(9.6%)이 증액 계상되었다.)(단위:억원,%)구 분2007예산(A)2008예산안(B)증감액(B-A)증감률Ⅰ. 기술개발부문820,757846,36125,6043.1(1) 미래원천기술개발213,878218,1004,2222.0(2) 기초연구진흥363,325348,805△14,520△4.0(3) 우주기술개발197,510214,5), 방재(40.5%) 분야의 R&D예산을 크게 확대하며, 특히 에너지 분야는 교통세 개편에 따라 조성된 에너지특별회계 재원을 미래 에너지자원 확보차원에서 관련 R&D사업에 증액 계상하였다.4)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전문성 강화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기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전문성·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2006년부터 추진해온 전문연구사업을 본격화하고, 출연기관 고유의 중장기 발전전략에 따른『Top Brand Project』(50억원)를 지원한다. 또한 출연기관의 안정적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출연기관 고유기능에 부합되는 중대형 이온빔가속기 등 과기부 7개 사업(2007년 172억원)을 출연기관에 이관하였으며, 출연기관간의 공동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3개 출연기관 협력 신약개발사업(15억원)을 지원했다.2007년도 R&D예산·기금의 조정·배분은 한정된 재원의 성과 극대화를 위한 조정체계 강화에 주력하는 양상을 보이며 효율성 제고 및 주요 정책과제 등 필수소요 반영을 위해 기존사업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3) 주요국의 정부 R&D투자 비교주요국의 정부 R&D 투자 현황)(구매력 평가기준 억달러)구 분한 국(’05)미국(’05)일본(’05)독일(’05)프랑스(’05)영국(’05)○ GDP10,562.8123,979.039,019.224,539.618,964.319,528.5○ 정부R&D투자88.21,321.6277.8188.6176.9141.2- 비율(배)115.03.12.12.01.6- GDP대비(%)0.841.070.710.770.930.722005년 기준으로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의 주요 선진국과 정부R&D예산을 비교해 본다면, 절대적인 규모면에서는 1/2에서 1/15정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절대적인 수준의 차이는 한편으로는 대규모의 R&D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한계를 시사하면서도 선진국 수준의 과학 기술력을 키우기 위해서 좀 더 효율적이고도 선택적인 집중 전략이 필요함을 동시에 말해준다.또한 우리나라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정부의이다.
독서, 허구적 텍스트와 독자의 실제 삶 사이에서- 「10장 독서와 ‘민중’독자」『읽는다는 것의 역사』-(로제 샤르티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그간 이루어진 연구에서 책이라는 문화적 요소가 경제적 불평등처럼 사회적으로 어떻게 불평등하게 분포되었는지, 그 일련의 문화적 불균형을 인식하는 지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누가 책을 읽었는지, 누가 무엇을 읽었는지를 파악하며 의외로 장인과 상인 계층이 예상 외로 많은 책을 소유했음을 밝혔다. 이것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재산 명세서, 장서목록 등을 토대로 하여 얻어낸 결과다. 그러나 저자는 재산목록, 유산목록, 판매 명세서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기록에 나타난 책 소유에 관한 정보가 현재의 우리에게 오해를 살만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하여 저자는 그 동안 자신의 연구 주제였던 서적사회학의 틀 속에서 동일한 텍스트를 다양한 독자들이 각각 다르게 읽고 있었음을 포착하여 그것을 명확히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선행의 연구에서처럼 장인과 상인들의 재산목록에서 발견되는 책의 제목과 유형만이 꼭 민중의 독서가 될 수 없음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먼저 이러한 민중독서가 활성화된 이유를 공유된 독서와 민중적인 인쇄물 시장에서 찾고 있다. 흔히 기사도 소설은 귀족적인 취향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저자는 기사도 소설의 독자층을 재고해 볼 것을 요구하며, 이단 심판의 진술을 통해 민중도 그 독자층의 범위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민중이 그런 책을 소유하지 않았을 지라도 누가 읽어주는 것을 들을 수는 있었기 때문에 독서가 한 계층에게만 독점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점은 거꾸로 생각하여 귀족층에게도 해당한다. 이로써 독서가 사회적 신분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 공유되어 민중도 그 시혜를 입었음을 납득할 수 있었다.또한 인쇄물 시장 역시 민중의 관심을 꿰뚫어 보아 모험을 시도함으로써 당시로는 블루오션에 해당하는 민중고객 형성에 성공했다. 즉 사회의 지배계층이나 교양인에 한정되던 텍스트를 원가절감 및 민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의 선정으로 출판 형태를 바꾸어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행상을 통해 광범위하게 민중 속으로 확산해갔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민중의 호응 역시 만만치 않았음을 반증하여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이러한 양상은 사실 비슷한 시기의 조선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어 전란 중에 소실된 서책들을 시급히 복구해야 할 사정상 영리적으로 값싸게 출판할 수 있는 방각본들이 잠시 생겨남으로써 민중적인 인쇄물 시장이 형성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서책들이 일반 민중들에게까지 수요가 늘어나자 방각본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시장 거래도 종전과는 달리 보편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값싼 방각본들의 매매가 차차 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 후기에 경제적 성장 및 의식의 신장을 바탕으로 활성화된 민중계층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럽의 민중독자와 시기는 조금 차이 나지만 맥락이 닿아있다고 생각한다.동일한 텍스트를 다양한 독자들이 각각 다르게 읽고 있었다는 것, 이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거나 표현을 음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독서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내면적인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서를 할 때 독자는 어디에 있을까. 작가의 언어가 우리의 뇌구조를 장악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저 작가의 주문대로 움직이는 것일까.이러한 의문에 대해 저자는 마침 리쾨르의 해석학적 접근을 통해, 독서를 어떤 텍스트가 의미를 갖게 되고 효과를 얻는 행위로 간주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독자가 없다면 텍스트는 그저 허상일 뿐이며 진정한 존재가치를 잃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의문의 답으로 독자는 작가의 언어가 주문하는 대로 이끌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작가의 언어에 관여하게 되어 텍스트를 자신의 개인적인 세계관에 기초하여 읽고, 이해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저자가 언급했던 민중, ‘메노키오’처럼 말이다.이처럼 독서란 작가와 독자가 서로 만나게 되는, 그리고 허구적 텍스트 세계와 독자의 실제 삶의 세계 사이를 매개하는 해석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독서의 구체적 대상이 되는 책은, 동일한 장르 동일한 텍스트라 하더라도 실제 이용한 주체에 따라 다르게 읽혀졌음을 알 수 있고 저자는 이러한 모습을 전유(appropriation)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민중적인 독서가 민중적인 출판물 인쇄를 실행하게 했음을 강조한다.여기에서 잠깐 현대로 넘어와 현재 급속도로 인기와 주목을 얻고 있는 UCC(이용자 창작 콘텐츠 User Created Contents)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유로운 지식 생산과 공유 문화를 인터넷 미디어 문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면 UCC문화는 이런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르네상스 시대에 텍스트와 책이 전 유럽 구석구석까지 유통되었으며, 사회적 여건과 문화가 서로 매우 다른 독자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현대에 와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즉 UCC 역시 매체와 매체를 옮겨 다니며 콘텐츠가 재생산되고 많은 이용자들이 그 생산물들을 퍼 나르고 있다. 지식이 공간은 자유분방하고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지니지 않아 동일한 콘텐츠라 하더라도 개별 이용자에 의해 다르게 수용되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래서 뉴질랜드에 있는 한국유학생의 기타 연주곡이 미국 뉴요커들을 감동시키고 다른 콘텐츠를 낳으며, 미국의 드라마는 실시간으로 한국에서 재생되며 미국과는 또 다른 관점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또한 민중적인 독서가 민중적인 출판물 인쇄를 실행하게 했다는 것은 곧 민중독자의 텍스트 이해방식이 그들에게 맞는 인쇄문화를 불러왔다는 것인 바, 이것은 민중독자가 텍스트의 소비자인 동시에 때로는 생산자가 되기도 하는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UCC 역시 생산자이자 소비자라는 프로슈머의 개념을 가장 잘 반영한다. 이들은 콘텐츠의 생산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과 같은 UCC 또는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상업적 콘텐츠의 소비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생산자로서 이들의 창작활동은 물론 새로운 창작도 있지만 기존의 콘텐츠를 변형, 패러디하거나, 부분 인용하거나, 서로 다른 두 콘텐츠를 뒤섞는 활동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즉, 동일한 텍스트를 독자에 따라 다르게 읽어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래서 스스로 연구하고 답을 찾아 인터넷에 올려 백과사전을 만들고, 스스로 찍은 영상과 텍스트로 인터넷 콘텐츠를 구성하는 것은 물론 개개인들이 미니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만들어 자신들의 생각과 모습을 서로 공유하는 창의와 소통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민중독자라고 생각한다. 매체의 융합과 편이성 때문에 매체를 통한 재매개로써 보다 다채롭고 풍부한 지식생산과 유통을 가능하게 하며 그 주체가 바로 민중이 되는 것이다.텍스트를 전유한다는 것, 그것은 일단 독자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텍스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그러한 해석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자기를 이해하고 현실을 구축하는 매개로 자리 잡게 한다고 저자는 풀이하고 있다. 책의 다양한 전유라는 말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작가의 의도라고 말해왔던 텍스트의 이면, 즉 텍스트의 이면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실제로 펼치는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로써 독자 개인의 사유체계에 따라 텍스트를 전유하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이쯤에서 텍스트가 독자에 따라 개별적인 사유체계와 신념으로 수용되어 해석되고, 그래서 독자가 없다면 텍스트는 그저 허상일 뿐이며 진정한 존재가치를 잃는다고 보는 것이 과연 무조건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텍스트 없이 독자 또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독자가 텍스트가 말하고 있는 세계를 뛰어넘어 의미부여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 더 이상 텍스트는 없고 오로지 독자에 의해 의미부여된 것만이 존재하고 만다. 따라서 독자의 해석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텍스트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