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책 소개조선 선조 때의 실존인물인 정부인 장씨의 입을 통해 당시 여인들이 규범화했던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출산 기피와 이혼, 성문란 등 요즘의 세태비판과 함께 들려주고 있다.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한 의도는 우리의 삶에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역사 속에서 발굴해 내는 데 있었다. 그런데 연재 첫 회부터 반(反)페미니즘 작품으로 낙인찍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페미니즘 문학의 선봉처럼 오해받고 있으니 작가의 입장에서는 난처할 것이다. 이 작품의 모델이 되는 실존 인물 정부인(貞夫人) 장씨(張氏)는 작가의 직계 조상이라고 한다. 작가가 자신의 조상을 걸고 작품을 내기까지는 현대 여성인의 바람직한 모습을 제시하고자 하는 교육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시간에는 이 작품과 가정과교육관을 관련지어 인간의 성품과 도리를 어떻게 교육하여 교수(敎授)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논해보고자 한다. 교육론에 관한 내용은 2009 개정 교육과정 반영 가정과교육론(교문사)을 참고하였다.함께 생각해 볼 책 속의 구절세상의 슬픈 딸들에게나는 조선 왕조 선조 연간에 태어나 숙종 연간에 이 세상을 떠난 한 이름 없는 여인의 넋이다. 오랜 세월 너희는 틀림없이 억압받았고 착취당했고 능욕당해 왔다. 원시 상태에서 물리적인 힘의 우월을 배경으로 자라온 그 같은 남성 우위의 사회 구조와 의식에 대해 너희가 성낼 만도 하다. 또 예속과 굴종이 오랜 습성이 된 너희에게는 그 명백한 불합리에 저항하는 데도 예사 아닌 각성과 용기가 필요하다. 생산에서든 자기 방어에서든 물리적인 힘의 우월이 예전처럼 중요하지 않게 된 시대에 이르러서도 의연히 옛 질서를 고집하는 남성들에게 효과적인 저항을 하기 위해 너희는 반드시 서로 고무하고 격려 받아야 한다.그렇지만 그 항의가 뒤틀린 이로(理路)에서 비롯되거나 개인적인 원한을 바탕으로 하여 표독스런 저주와 악담처럼 들릴 때는 걱정스럽다. 너희 간의 고무와 격려도 남성을 상대로 한 무한 투쟁의 선동 또는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자유와 성취를 화려하게 분식한 무책임한 유혹처럼 들릴 때는 역시 그렇다.너희가 가장 못 견뎌하는 것으로 보이는 도덕적인 불성실과 이기, 그리고 정신적인 나태는 남성만의 약점이 아니다. 거기서 연유된 단정치 못한 성적 행실, 참기 힘든 이기적이고 무리한 요구들, 그리고 상대에 대한 무성의도 그렇다. 곰곰이 따져보면 기회와 여건의 차이일 뿐 너희들도 그 약점을 나누어가졌고 그래서 너희들 불화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가 된다.이혼은 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고 외친다. …(생략)… 이제 너희에 이르러서는 많은 게 달라졌지만 그 시절의 여자들에게 혼인은 삶의 확정이란 의미를 가졌다. 삶의 성패와 행(幸) 불행(不幸)은 다만 결혼 뒤의 세월에 따라 결정되며 결혼 전의 삶은 미정(未定)이요 유예(猶豫)일 따름이었다. …(생략)… 결혼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기 아닌 다른 무엇에 바쳐져야 하는 것인가는 생각보다 답하기가 쉽지 않다. 오직 이기만을 추구한다면 언젠가 제도로서의 결혼은 소멸할 것이고, 초자아적 이념에 지나치게 기울어지면 결혼이 가진 원래의 의미는 제도나 제도가 설정한 집단 속에 매몰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바람의 방향은 바뀌었다. 전 시대의 억압과 질곡은 끝나고 여성들은 제도 속에 매몰되었던 자아를 찾아 나섰다.정부인의 교육과 현대의 가정과교육정부인은 ‘열두 검제’라는 고을에서 태어났다. 이라 불린 이곳은 많은 명현과 석학들을 배출한 애국애족이 충만한 마을로 유명하다. 여자 선비로 불렸던 이 분이 결혼을 결심하고 한 가정의 어머니라는 역할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시대의 여성상이 그렇게 원하니까, 유교적으로 합당하니까, 아버지께서 바라시니까 등의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의 가정과 교육관과도 일치되는 점이 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삶을 자율적, 주도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현재 가정과교육의 핵심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 가정과교육은 학교교육으로 가르치기 이전에는 주로 집안일, 출산, 육아, 직조, 길쌈, 밭매기 등 가정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는 일로 가정 내에서 비형식적으로 전수되었다. 양반층 여성의 경우는 실생활교육과 수신(修身), 예절, 육아, 자녀양육, 가정을 다스리고 가정의 화목을 위한 내용 등의 현모양처를 강요받는 교육을 가정 내에서 교육받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정과교육을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 때 설립된 이화학당에서 1896년부터 재봉과 자수를 가르친 데서 시작되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 가정생활에 필요한 실기 위주의 기예교과로서의 의미가 컸으며,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10번의 교육과정의 변화를 거쳐 현재의 2009개정 교육과정에까지 이르렀다. 본래 여학생만 받았던 가정교육은 1972년에 성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서 남학생도 수강하게 되었다.21세기 초 이후부터 현재까지 가정교육자들은 본격적으로 가족과 지역사회에 관한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이슈에 관심을 두었기에 가정교육학은 비판과학으로 변화되는 추세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같이 복잡한 사회에서 생활의 문제는 실제 삶의 맥락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가정과 교육의 비전은 개인과 가족이 생애 전 과정에서 다양하고 세계화된 사회에서 일상생활과 일의 도전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가정과교육의 대상도 가정에만 국한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고 그 목적도 가정과교육 초기에는 현모양처에 중심을 두다가 점진적으로 현명한 어머니, 책임감이 높은 가족 구성원과 시민, 건강하고 도덕적인 가정, 생산적이고 자신 있는 가족으로 교육하여 사회적 기여를 꾀하였다.가정과교육은 명제적 지식뿐만 아니라 학생의 전체적인 삶의 맥락과 관련지어 보다 의미 있게 재구성하여 가르쳐야 하기에 교과에 대한 이차원적 이해 그 이상의 이해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나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참된 이치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지식인 '실천이성'을 깨닫게 되며 가치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가정과교육은 학생의 삶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개인과 가족 간의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또한 개인적 차원에서는 창의성과 문제해결력을 강화시키고 지식의 습득보다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사회적 차원에서 정직과 도덕성을 겸비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전인(全人)교육을 강화하여야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가정생활이 얼마나 정치, 경제, 사회, 행정 시스템과 연계가 되는지 그 맥락을 파악하고 비판하여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단순 암기식의 교육에서 탈피하여 지식을 정의하고 모으며 분류하고 비판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실천적 문제해결능력을 강화하고 학생들의 동기를 불러일으키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남의 생각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토론교육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가정과교육을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feminism)은 남녀동등권을 목표로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법률적 권리를 확장하고자 하는 주의이다. 페미니즘적 영화 연구와 제작은 1970년대 초반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히 이루어졌다. 영화, 특히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이 실제 여성에 비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크게 왜곡되었다는 비판에서 출발한 페미니즘영화는 여성의 주체적 자아를 강조하며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뉜다. <중 략>반대로 가부장적인 가정에서는 남자들은 큰 소리를 치고, 여자들은 숨을 죽인다. 딸이 아버지와 남편에게 험한 꼴을 당해도 어머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살아가던 곳에서 안토니아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개척자와도 같다. 그런데 이런 기존 사회의 억압을 거부하는 안토니아 공동체를 ‘부계사회’에 대한 대립 혹은 페미니즘적인 사고로만 보게 된다면 우월성을 따지는 논쟁으로 번져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삼대와 완득이한국은 사회적으로 ‘가족붕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탈가족화 추세에 대한 국가의 입장은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국정과제의 수준으로 삼을 만큼 심각하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치관의 변화와 이혼율, 가정폭력, 노인학대, 범죄, 청소년 비행, 약물남용, 성차별, 사이버 성폭력 그리고 인터넷 중독이 증가하고 환경문제와 과학기술과 인간문제가 서로 얽혀 점점 복잡한 사회문제가 늘어나고 있다.현대의 가족문제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족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혼부부 사이의 자녀문제, 가정폭력, 돈에 관련된 문제 등이 있다. 둘째,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다. OECD 국가 중 최저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청년층 실업률을 증가시키고, 여성의 경제 활동이 증가되면서 가사부담이 과중되어 받게 되는 스트레스, 결혼에 대한 소극적 인식, 자녀관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며 국가의 재정까지 악화될 우려가 있다. 셋째, 다문화 가족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국제결혼의 증가와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로 인해서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이러한 사회문제들을 문학을 통해 사람들은 쉽게 접근하여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해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특히 가족을 주제로 한 문학은 그 시대의 특징에 따라 변화하는 가정의 모습을 가족 구성원의 심리나 사회문제를 연결하여 간접적으로 가정문제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염상섭의 는 삼대에 걸친 가족사가 아닌 삼대 간의 갈등 구조를 그리고 있다. 조부 조의관에 의해서 사당(祠堂)과 금고(金庫)의 승계권자로 지명된 손자 덕기를 중심으로 해서 조의관의 죽음을 전후한 약 1년간의 시간이 묘사된다. 에는 두 갈래 삶의 흐름이 나타난다. 하나는 조의관 부자가 아무런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소비적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삶이고, 또 하나는 필순네 가족과 김병화, 홍경애의 반체제적인 이념적 삶의 양상이다. 이것은 1920년대의 억압적인 식민지 현실에 대처할 전형적인 삶의 양식이기도 하였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조의관 쪽은 가정 속의 일상 인간이요, 병화네 쪽은 이념 인간이다. 사실상 주인공격인 덕기는 가정 속의 일상인(日常人)과 이념인(理念人)이 적절히 조정되어 있는 중간형이라 하겠다. 이러한 덕기를 중심으로 반대되는 가족의 양상이 여실히 드러나며, 돈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 주를 이루고 여자문제는 부수적으로 드러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인간의 이기주의적인 모습, 그것이 가족 속의 일상인의 싸움을 통해 제시되어 있는 염상섭의 인간관이다.독자는 덕기를 통해 삼대에 걸친 가족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을 읽을 수 있다. 조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부친에게 미움과 불쾌한 감정, 아버지로서의 역할부재에 대한 시비가 있었다. 그러나 돌아가신 후에는 유산상속 문제로 덕기 스스로 경찰서와 집안의 일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부친을 오히려 시대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현대인으로서 인정하고 자신도 가족들을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기독교라는 종교적 문제로 제사를 받들지 않고, 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교리에 맞지 않게 딸과 같은 아이를 임신시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위선적인 이중생활이라고 생각하나 덕기 또한 필순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아버지와 홍경애의 관계와 같음을 깨닫고 자신 또한 위선적이 아닌가하며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조부에게 금고지기의 생을 이어 받음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지만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순과 병화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시 고쳐먹는다. 따라서 덕기는 한 집안에서 충돌 없이 조용히 지내는 편을 택하게 된다. 필순의 집에서 좌우익을 따지며 살기보다는 기회주의자로서의 삶을 택하는 것과 덕기의 입장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덕기가 조부와 부친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충돌을 만들어내고, 자기주장을 관철시키기 보다는 자기비판과 반성을 통해 객관적인 시점에서 판단을 내린다는 점이다. 식민지하에 민족운동가, 사회운동가, 중간자적 입장인 사람, 그저 살아가기에도 힘든 사람이 섞여 있던 시대에서 지성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조덕기’라는 인물을 제시함으로써 가정 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감정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려서 시대를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이 소설에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두 번째 예로, 소설 에서는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이주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열일곱 살 청춘의 현실을 예리하게 묘사하여 어두운 현실과는 달리 유머러스한 필체로 독자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해마다 바뀌는 정부의 교육정책, 학원가의 치열한 경쟁과 학부모의 지나친 자녀교육에 대한 욕심이 합쳐져 사교육 시장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의사는 관계없이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미리 학원에서 교과서 공부를 다 끝낸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건성으로 듣거나 교과 선생님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성적에만 지나치게 과잉 집중한 결과는 참혹하다. 왕따, 성폭행, 자살, 학교 폭력 등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학원에서는 해줄 수 없는 더 많은 것들이 학교가 제공할 수 있음을 사회는 잊어버린 것이다. 선생님이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여도 학생이 선생님의 말을 안 듣고, 성생님도 학생과의 거리감을 느끼면서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는 성립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의사소통의 두절로 생겨난 문제는 다시 서로 간의 이해와 노력으로 이루어 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점을 소설 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완득이는 베트남인 어머니가 있는지 모르고 17년을 살아왔는데 담임선생님(똥주)이 잃어버린 가정의 의미를 되찾아주었고, 자신 안에만 갇혀서 세상을 원망하고 감추고 살아가던 완득이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다. 가족, 친구나 이웃과의 소통을 아예 차단하고 혼자 살아가고 있던 완득이에게 담임선생님은 교육지식이 아닌 인성적으로 다가간 것이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완득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싸움으로, 오로지 자신을 괴롭히려 태어난 듯한 담임 '똥주'를 죽여 달라는 기도를 하며 다녔던 교회에서 동남아인 '핫산'의 소개로 킥복싱에 빠지게 된다. 완득이의 킥복싱은 사각 교실에 갇혀 공부에만 매달리는 한국의 아이들, 동남아에서 건너와 언어도, 문화도 통하지 않는 외국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소외된 계층의 고충을 대변하고 있다.
가정과 교육과 창의성창의성(Creativity)이란 가치가 있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창의성을 발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바로 '다면적 사고'이다. 다면적 사고는 하나의 질문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하여 가능한 여러 가지 해답을 찾아내는 것으로, 천편일률적인 사고가 아닌 다각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창의에 다가갈 수 있는 첫 걸음이다.이러한 창의성을 교육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기존의 교육 패러다임과는 차이가 있다. 19세기에 서양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무렵 공급을 뒷받침해 줄 인력공급과 생산력 증진이라는 목표를 위해 기존의 교육이 만들어졌다면 현재의 교육은 창의?인성교육에 점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 이상 일을 잘 할 수 있는 '똑똑한 생산자', 혹은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는 아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여러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배우는 창의적 교육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즉, 학생들의 내면에 있는 열정을 불러일으켜 '내 안에 잠든 나를 일깨워주는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이다.교사로서의 전문성보다 교과서 내용을 빠짐없이 전달하는 기능인으로서의 교사를 요구하는 학교문화, 수업 전문성 보다는 학생통제력과 업무능력 등을 기준으로 우수한 교사를 평가하는 학교문화, 우수수업을 중심으로 하는 형식적인 수업공개와 수업연구회, 교육의 전문가로서 서로의 가르침을 평가하고 함께 연구하고 자극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교사들의 생각 등이 창의?인성교육의 걸림돌이 되어왔다. 그러나 현재는 입학사정관 제도나 소질과 적성을 찾아주는 교육방침을 통하여 창의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정책 방향이 바뀌고 있는 추세이다.창의?인성교육을 정의해 보자면 창의성교육과 인성교육의 독자적인 기능과 역할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두 교육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서 올바른 인성과 도덕적 판단력을 구비한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철학 및 교육전략이다.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문제중심, 활동중심, 탐구중심의 자기주도적 교육을 실현할 수 있으며, 창의성 발휘와 표현을 돕는 문화와 사회풍토를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혹자는 창의성과 인성은 양자택일의 문제이지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한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기존사회나 문화의 규범을 타파하고 변혁하는 성향이 강한 반면, 인성이 좋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니만큼 이 둘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범모 교수는 창의성과 인성 간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창의성을 좀 더 역동적인 인성개념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즉, 창의성을 문제, 고민, 갈등을 적극적으로 푸는 능력 또는 특성이라고 한다면 이 맥락 하에서는 창의?인성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특히 가정과교육이 창의?인성교육에 적합한 이유는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이성에 근거한 폭넓은 지식의 이해와 가치발달, 거시적인 관점과 통찰을 통해 개인과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학생들이 교육받은 자의 특성을 지니도록 교육시켜 장기적으로 개인 및 가정의 안녕과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교육학의 목적에 는 가정과 가족에 대한 문제 상황에서 행동을 이끌어 주는 사고와 인성을 변화시키는 것이 함축되어 있다.가정교과의 창의?인성교육방법으로는 프로젝트 수업, PBL, 협동학습, 창의적 사고기법, 역할놀이, 토의 및 토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창의?인성요소로 지정한 것 중 '배려'의 항목을 수업에서 가르치려고 한다. 기술가정 교과서의 가장 첫 단원인 청소년의 이해 단원에서 '배려'를 접목시키자면 타인을 위한 제작수업을 진행해 보는 것이다. 나와 다른 성별의 입장에서 방을 상상하여 꾸며봄으로써 서로 다른 성(性)을 이해하게 된다. 만약에 청소년의 영양과 식사 단원에서 '흥미'나 '책임', '개방성'의 요소를 접목시키자면 올바른 먹거리 홍보 캠페인을 진행하고 영상을 찍어 제출하기와 같은 수행평가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조별과제를 진행하면서 협동하는 방법을 익히고, 캠페인을 진행하기 위한 사고력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
Ⅰ.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은 무엇인가?어느 민족이든 전쟁과 관련된 신조가 있게 마련이다. 서양의 여러 나라는 약간의 특수한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전시(戰時)관행이 있다. 예를 들면 병사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전력투구하도록 이끄는 방법, 전세가 불리해졌을 때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필승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방법, 전사자 수와 투항자 수의 적정한 비율의 한도, 전쟁포로를 처리하는 방침 등이 그것이다. 서유럽 국가 간의 전쟁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서로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동일한 문화체계에 속하고, 전쟁도 그 문화체계 내에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인의 전시 관행과 역행하는 일본인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인생관과 가치관, 신념을 엿볼 수 있다.예를 들어 미국인은 전쟁의 발발 원인을 동맹국의 영토 확장과 침략행위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미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일본, 이탈리아, 독일의 침략전쟁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국제평화를 파괴한 행위이다. 그들의 점령지가 어디이든 그 침략행위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약소민족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죄악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들은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게임의 룰을 짓밟았고, 자유무역을 위한 '문호개방'이라는 국제적 협약을 위반했다.반면에 일본인은 전쟁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다. 그들은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지키기만 하면 세계는 무정부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일본은 새로운 세계의 계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따라서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이끌 지도자는 당연히 일본인이라고 여겼다. 일본은 상하의 계층구도가 제도화된 나라이기에 국민 모두 어떠한 상황에서든 '각자의 자리'에서 분수를 지키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만세일계의 견해에 따라 자신들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는 일본 천황가의 자손인 일본인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에 물들어갔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무라이와도 같은 우직한 충성을 보이는 국민들은 권력층의 사상에 그대로 일계의 근거, 고사기8세기에 편찬된 역사서 고사기 와 일본서기 는 고대 일본인의 다양한 사상과 감성을 자 ㄹ보여 주는 자료로서 일본사상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일본사상사를 파악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천황'인데, 이 천황의 근본적 의의를 결정한 것이 바로 이 두 권의 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두 권의 책을 만든 저자들의 최대 목적은 '천황의 의의'를 설명하는 데에 있었다.) 특히 고사기 에 그려진 신들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는 일본에 있어서의 원시의 자연상(自然像)과 사회상(社會像)을 우리들에게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또 동시에 거기에는 원시의 모계사회로부터 부계제=가부장제 사회에 이르는 긴 과정의 사상적 변화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그것이 5?6세기경에 성립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일본의 아시아적 사회, 천황가(天皇家)가 지배하는 국가의 이데올로기 속에 흘러들어가 카미요(神代)의 사건들뿐만 아니라, 진무(神武)에서부터 스이코(推古)에 이르는 연대기를 포함한 고사기 는 이런 아시아적 사회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상=이데올로기를 전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여러 신들의 혈연적인 정점에 선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자손이 신들의 세계로부터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인간세계의 정점에서는 군주로서 군림하게 된다. 아마테라스의 손자(孫子)인 호노니니기는 훗날 천황가에 신하로서 따르는 여러 가문의 조상신들을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이 니니기의 손자우가야후키아에즈의 아들 카무야마토이와레비코가 인간천황(人天) 제 1대인 진무(神武)가 되는 것은 말할 것까지도 없다. 전체 혈연사회의 정점에 서게 되는 것은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들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전체 사회의 정점에 서게 되는 것은 혈연적 후계자가 아니면 안 된다. 고사기 의 신들의 이야기는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경계로 일본에 있어서 아시아적 지배의 이데올로기로서 성립?완성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다.)Ⅲ. 일본인과 천황의 관계ⅰ. 천황의 집과 주소"우리는 천황제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메이지 22년) 2월 11일 ?대일본제국헌법? 이 발포된 이후 천황의 권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 평가이다.천황의 고향은 어디일까? 다카마가하라(高天原)는 또한 어디일까? 그 대답은 기기신화(記紀神話) 속에만 있다. 천황의 고향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서는 그의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조상으로 하는 천황은 신일까, 인간일까? 그 대답도 역시 기기신화 속에만 있다. 그러나 현인신(現人神)이라는 천황의 실체는 그가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고향도 없고 실체도 알 수 없는 존재, 그러면 그는 누구인가?천황의 고향은 알 수 없지만 그의 현주소는 일본인의 의식속이다. 그리고 이것을 관리하는 곳이 일본사라면 오오노야스마로(太安万侶) 이래 역사가는 그의 관리인이다. 일본의 역사속에서 끊임없는 권력의 부침과 더불어 권위와 신상(神像)을 달리해온 천황은 역사가들에 의해 한가지의 천황상으로만 기록되고 관리되어 오지 않았다. 권력구조, 즉 제도속의 천황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는 유전(流轉)법칙에 서 천황과 그의 신격(神格)이나 권위, 그리고 그를 담고 있는 제도도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루야마 테루오(丸山照雄)가 천황의 신격과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메이지시대의 천황제마저도 정부가 꾸민 천황제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것이 시대가 만들어내는 역사의 산물임을 의미한다.‘천황제’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천황은 누구인가보다도 더 애매한 질문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언제의 천황인지를 규정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제도라는 단어까지 결합한 무규정적 개념이다. 일본역사에서 천황이라는 존재의 형태는 권력구조에 따라 제각기였고, 그로 인해 그의 권한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성에 대한 제도적 규정도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 이래의 절대주의 천황제가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만들어진 창작물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그러면 왜 메이지시대의 천황제를 절대다 쇼인(吉田松陰)에서 그의 제자 이토 히로부미까지 마츠시타무라 학사(松下村塾)에서 대물림된 국체관의 완성이 그것이다. ‘일군만민’(一君萬民)의 존왕사상에 기초한 요시다 쇼인의 새로운 국체관이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완성된 천황제국가를 가리켜 고토 소이치로(後藤總一?)도 근대일본의 , 또는 이라고까지 미화한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제작 발포된 메이지헌법이 이토 히로부미의 국체론을 구체적으로 사상화하고 정당화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제도, 극 근대천황제로서 완성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그림1에서 메이지 시대에 특히 일본인으로서의 자각이 '천황의 국민'으로써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사상의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일본인으로서의자각(아이덴티티)천황과 국민의 관계천황의 국민천황 없는 국민국민의 천황쇼와 시대(1926~1989)메이지 시대(1868~1912)다이쇼 시대(1912~1926)1936년2.26사건1970년1995년옴진리교사건1912년메이지 천황 사망약 60년의 시간간격쇼와?메이지 평행설세계시민헤이세이시대(1990~현재)그림 시대 구분에 따른 일본인의 아이덴티티의 주기 그래프(전후 일본의 사상공간(오사와 마사치 지음. 서동주?권희주?홍윤표 옮김. 어문학사. 2010)을 읽고 표로 정리한 것)ⅱ. 시대별 일본인의 아이덴티티와 천황 사이의 관계앞의 그림1은 일본인이 일본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자각을 시대 별로 얼마만큼 하고 있느냐를 나타낸 것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주기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메이지 시대는 일본인이라는 자각이 매우 의미가 있었던 시대로, 천황의 국민으로써 국민이 통치자들에 의해 지배당하던 시대였다. 이때의 일본은 하나의 '국가'라는 체재 하에 있었으나 그 후에 일본인이라는 의미가 현저하게 약화되는 다이쇼 시대가 왔다. 데모크라시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이 시대에는 천황의 신민(臣民)이 아닌 인민 또는 시민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천황이 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따립 근거를 긍정하기 위해 천황이라는 존재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 쯤부터 이상사회에 대한 갈망이 시작되는데 1945년에서 1970년대에 특히 전후 최초의 25년간은 '이상의 시대'라 하여, 전후의 진보파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을 매우 긍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서양풍의 시민사회라는 형태라고 역자는 주장했다. 패전이 일본인에게 가져다 준 최대의 충격은 정치적으로는 천황제의 문제였다. 따라서 천황제를 받쳐 주어왔던 일본인의 심리를 역사적, 사회적으로 다시 고쳐 생각하는 일본인론이 패전 이듬해부터 여러 분야에서 나타났다. 거기에서는 천황론을 비롯하여 패전의 사회심리학적인 원인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 등 일본인의 장래에 중요한 지침이 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패전을 기회로 일찌감치 과거의 일본에 대해서 엄격한 반성을 표명한 사람은 작가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다. 그는 ?타락론?가운데서 이렇게 말한다. 원래 일본인은 증오심이 오래 계속되지 않는 국민으로서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라는 낙천성이 있고, 원수이기 때문에 한층 사이좋게 되기도 하고, 어제의 적 밑에서 일하기도 한다. 천황제는 극히 일본적인 독창적 작품으로, 사회적으로는 잊혀버린 때에도 정치적으로 튀어나온다. 정치가는 일본인의 성벽(性壁) 가운데에서 천황제를 발견하고, 자기들의 영원한 번영을 약속하는 수단으로서 절대 군주의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천황을 숭배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위엄을 나타내고 스스로 위엄을 느끼는 수단이기도 했다. 권모술수를 일삼는 일본 국민에게는 대의명분으로도 천황이 필요했다고 한다.) 현재라는 것은 항상 이상의 상태가 결여된 것으로, 미국과 일본 사이의 대등한 파트너십을 확립하고, 완전한 주권국가가 되는 것이 이상의 상태지만 미국과의 관계에서 일본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일본인이 느끼는 '결여'였으며, 이 시기의 문학, 사상, 표현활동 그리고 하루하루의 활동이란 모두 결여를 메우는 행위였다. 따라서 60년대 미국의 점령에 대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