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의 결혼』을 통해 보는Puisque와 Parce que의 용법담당 교수 :학생이름 :학과 :학번 :제출일 :Ⅰ. 서론각 언어에는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세분화되어 나타난다. 주식이 쌀인 한국은 그 하위 분류도 흑미, 현미, 백미, 찹쌀 등 비교적 다른 나라에 비해 분류가 다양하다. 분류 자체만 다양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식재료를 조금이라도 다뤄본 한국인이라면 그 구분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생활과 문화에 밀접한 것들은 언어에서도 아주 세분화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단순히 뭉뚱그려서 한 단어로 나타낸다면,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고 사용되고 있는 현실과는 맞지 않아 의사소통조차 힘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인·이유를 나타내는 말이 각 언어에 나타나는 양상이 서로 다름을 관찰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because ( 혹은 because of )’로, 한국에서는 ‘~이기 때문에’처럼 거의 단일화되어 쓰이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puisque, parce que, car 등으로 아주 다양한 양상을 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중에서도 puisque와 parce que를 비교·대조하여 분석해 보겠다.Ⅱ. Puisque와 Parce que의 일반적인 기능Puisque는 원인을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임이 전제된 용법이다. 따라서 새롭게 전달하는 정보는 없다. 이는 대화 상대방이 언급한 것을 재차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Je ne me sens pas bien, j'ai mal a la gorge.- Bon, qlors on ne sort pas puisque tu qs mal a la gorge.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puisque이후의 절 ‘tu as mal a la gorge’는 앞의 발화인 ‘j'ai mal a la gorge’의 반복이며 새로운 정보가 전혀 아니다. 네가 목이 아프다고 말했으니까 밖엔 나가지 말자는 의미로, 상대방의 말을 원인으로 들어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것은 puisque를 말한 화자가 함께 대화를 하고 있는 상대방이 puisque 이후에 나오는 절에 대해서 알고 있고 인정하는 것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의 대화처럼 항상 상대방이 말한 것을 다시 언급하는 것만은 아니다. 상대방의 말보다 먼저 puisque를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이 응답하는 것으로 사실여부를 확인해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재판·정치적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데, 그 예로 특정 시간에 피고인이 범죄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 변호사들이 피고인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을 들 수 있다.“Puisque vous etiez a 8 heures rue de la Roquette, avez-vous remarque quelque chose d'anormal?" 물론 피고인도 puisque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변호사들에게 반박할 수 있다.반대로, parce que의 경우는 원인을 상대방이 모르는 정보라는 전제를 내포한다. 즉, parce que이후에 오는 원인 설명은 새로운 정보가 된다. 따라서, 상대방의 "Pourquoi?"라는 질문에는 당연히 puisque가 아닌 parce que로 시작된 후 원인 설명이 뒤따라와야 한다. 대화 상대방이 "Pourquoi?"라고 질문을 해서 원인 설명을 요구함으로써, 자신이 그 원인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발화자가 puisque라고 답하게 되면, pourquoi와 puisque의 기능적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모든 parce que가 항상 새로운 정보만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 이에 해당하는 Parce que의 기능은 ‘피가로의 결혼’ 더 자세히 다루겠다. Puisque의 이러한 기능 때문에 falloir동사와 같이 필요성을 표시하는 동사들의 존재가 puisque를 사용하게 되는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상대방도 그것을 인정해야함을 puisque를 통해 제시하는 것이다.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두 접속사는 모두 원인 관계를 나타내지만, 다른 기능을 지닌다. puisque는 ‘presuppose’를 제시하고 분명한 결과의 원인을 가리키는 반면, parce que는 'pose'를 가리킨다.Ⅲ. Puisque와 Parce que의 형태적 분석사실, puisque와 parce que는 그 형태의 분석만으로도 위에서 언급한 기능적인 면을 대략적으로 유추해 낼 수 있다. puisque는 부사 puis를 포함함으로써 그 앞에 어떤 것인가가 선행됨을 전제한다. 따라서 puisque는 ‘이미’ 언급된 것, ‘이미’ 생각되어진 것을 ‘다시’ 취하고, ‘이미’ 안다고 여겨지는 원인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조응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다.반면, parce que는 par ce que라고 다시 써서 그 기능을 이해할 수 있는데, ce que 이하의 말을 통해(par) 앞의 말을 설명한다고 재해석 할 수 있다. 역행조응적 기능을 지니는 ce의 존재로 인해, que 이하의 말이 ce를 통해 우선 제시됨을 전제한다. 즉, ce의 구체적인 내용은 que 이하의 구절로 나타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parce que와 puisque는 모두 그 형태에서부터 각각의 기능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Ⅳ. 〈피가로의 결혼〉을 통한 Puisque와 Parce que의 분석Beaumarchais의 에서 Suzanne의 방에 백작이 숨어있는 채로 Suzanne과 Bazile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 acte1의 scene9를 보면 parce que와 puisque가 적절히 활용되어 제시되어 있다.SUZANNEQuelle imposture! Allez-vous-en, mechant homme!BAZILEOn est un mechant homme, parce qu'on y voit clair.위의 대화 부분에서 쓰인 parce que는 Suzanne이 'mechant homme'라고 한 것에 대해 Suzanne이 몰랐던 혹은 Suzanne이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를 parce que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BAZILEL'ai-je invente? Je le dis, parce que tout le monde en parle.LE COMTE se leveComment, tout le monde en parle!Suzanne - Ah ciel!위의 대화 부분에서 쓰인 parce que는 parce que의 일반적인 기능을 더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Bazile이 parce que를 통해서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백작과 Suzanne이 모르는 이유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백작과 Suzanne이 Bazile의 말을 듣고 반응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백작은 “뭐라고!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고!”라고 말하며 숨어 있다가 벌떡 일어난다. 백작은 Bazile의 말을 통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숨어 있다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툭 튀어나온 것이다. Suzanne도 마찬가지로 “Ah ciel!"이라고 하며 감탄을 표현하여 자신도 몰랐던 원인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다.FIGARO, seul, se promenant dqns l'obscurite, dit du ton le plus sombre :...(중략)... Parce que vous etes un grand seigneur,vous vous croyez un grand genie!...위의 예는 acte5의 scene3에서 Figaro가 독백을 하는 부분에서 parce que가 쓰이는 부분이다. 앞의 일반적인 parce que의 기능은 parce que가 항상 새로운 정보를 이끈다고 하였지만, 위의 예는 그것의 예외가 된다. Figaro의 독백에서 vous는 백작을 가리키는데, 백작이 ‘grand seigneur'라는 사실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parce que를 통해 제시한 이유는 parce que로 연결된 두 절의 인과?논리관계를 다른 식으로 연결하려는 의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parce que와 se croire동사를 사용하여 vous- 즉, 백작-의 생각을 은근하게 비판하기 위함이다. Parce que 대신에 puisque를 사용할 경우 se croire동사와 의미적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Figaro가 하려는 말의 의도가 왜곡될 수도 있는 것이다.BAZILEMoi je suis desole de m'etre egaye sur le page, puisque vous l'entendiez.Je n'en usais ainsi que pour penetrer ses sentiments; car au fond...
서론프랑스 문학계에서 앙드레 지드의 영향력은 꽤나 지대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앙드레 지드는 를 초기작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육체적 욕망과 사랑에 대한 갈등 그리고 심리적 묘사와 분석이 그의 문학에 깔려 있다. 이러한 특징 뿐만 아니라 그는 그의 문학에 종교적 요소를 많이 담아내었다. 과 함께 이 이에 해당된다. 그는 문학 안에 단순히 종교적 요소를 담아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계율의 위선과 그에 따른 인간의 비극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사실 그의 작품이 한가지 방향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앙드레 지드에 대한 평가도 완전히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가장 자유로우면서 인본주의적 흐름을 대표하는 거의 ‘메시아적 해방자’로 추악받는가 하면, 종교적이고 정치적이며 윤리적인 무정부주의를 살포하는 ‘악마의 화신’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앙드레 지드의 단편 작품 에서 인물과 인물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앙드레 지드가 소설 속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녹여냈는가를 살펴보겠다.앙드레 지드을 언급하기 전에 앙드레 지드가 을 쓰면서 작품 안에 녹여낸 특징이 나오게 된 이유를 그의 생애에서 찾아보겠다. 그가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는―비록 주제가 종교를 절대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아니더라도―작품을 다수 쓰게 된 것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종교적 계율을 엄격히 강요한 어머니의 손 아래서 자란 이유를 가장 첫째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소설을 쓸 무렵 신앙적 갈등을 가지고 있었던 지드의 심적 상태를 소설로 풀어놓은 것이 바로 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미남청년 마르크 알레그레와의 만남으로 인해 부부간의 위기를 맞았었고, 외적으로는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처해 있었다. 이런 모든 위기가 지드에게는 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에 고스란히 그 소재들이 녹아있다.인물 탐구와 인물 관계목사목사는 앙드레 지드의 삶, 심리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신앙적 갈등은 안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리시즘의 대립을 상징하는 머니마저 여읜 맹인 제르트뤼드를 가엽게 여겨 집으로 데려온다. 그 이유는 단지 신앙적 신념에서 나온 순수한 마음이었음을 다음에서 알 수 있다.그 불행한 소녀를 돌봐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처음부터 생긴 것은 아니었다. 기도가 끝났을 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침대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웃 여자와 심부름하는 소녀 가운데에 끼어 앉아 나 또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동안에 갑자기 하느님이 내 앞날에 일종의 의무를 갖다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비겁한 사람이 아니고는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그날 밤으로 그 소녀를 데리고 갈 결심이 서 있었다.하지만 제르트뤼드가 목사의 집에서 생활하고 커가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제르트뤼드는 너무나도 아름다워지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목사는 그의 직업으로써 제르트뤼드에 대해서 신앙적 사랑을 주려고 하지만 실제 소설 내에서는 그것이 신앙적 사랑인지 개인적 사랑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이다. 목사는 제르트뤼드에게서 마치 연인에게서 받을만한 온갖 감정을 느낀다. 에서 발췌한 예를 보자.「그러면 지금 곧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름다운가요?」이 뜻밖의 질문은, 부인할 수 없는 제르트뤼드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그때까지 애썻던 나를 몹시 당황하게 했다.제르트뤼드가 목사에게 자신의 아름다움 여부를 물으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목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목사는 제르트뤼드와 자신 사이에서 종교적인 것 혹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교육을 제외한 이외의 것, 즉 세속적인 것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미(美)라는 주제를 통해서 종교적 사랑보다는 개인적 사랑으로 치우칠만한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며 목사가 동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다음 예를 보자.그런데 나는 뜻밖에도 자크가 그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 엿본다는 것은 본래 내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제르트뤼드에 관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싶었다. (···)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 스스로 자백하기 싫을 만큼변경은 앞서 보았던 그 광경과 관계가 없지 않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했다.나도 모르게 격한 분노가 치밀었다.게다가 목사는 자신의 도움은 사양했던 제르트뤼드가 아들 자크에게서 오르간 연주 도움을 받자 놀라움과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다. 또 자크가 예정되어 있던 계획을 급히 변경하여 집에 머물겠다는 말에 오르간 연주를 도와주기 위함이라고 추측하며 분노에 차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목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치 목사라는 신분을 지워버린다면 오히려 연인에게 느끼는 질투심에 가깝다. 이처럼 목사의 제르트뤼드에 대한 사랑은 종교적 사랑과 실제 개인적 사랑 사이의 줄타기인 것이다.이외에도 아들에게 제르트뤼드를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 불구인 점과 순진한 점을 농락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며 제르트위드에게 다가가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단언을 놓는다. 그러면서 밤새 불만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러한 목사의 제르트뤼드에 대한 사랑이 이중적이면서도 모호하다는 특징을 가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목사라는 직업으로 인해서 제르트뤼드에 대한 그의 감정이 종교적 사랑인지 이성적 사랑인지 독자들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만든다.제르트뤼드목사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제르트뤼드는 맹인이다. 처음 목사를 만났을 당시 할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말도 할 줄 모르고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상태로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되어 있다. 즉, 그녀는 태초의 상태이다. 제르트뤼드는 목사의 눈과 그의 언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목사는 제르트뤼드가 장님이라는 이유로 순수한 상태의 아이로 여긴다. 하지만 제르트뤼드에게는 보지 못했음에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실제로 눈으로 본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자신만이 그리는 이미지가 있다. 이 또한 상당히 모순적이다.「(···)네, 전 목소리만 듣고도 목사님이 진실을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걸 곧 알아차렸어요. 저는 목사님 뺨을 만져 보지 않고도 울고 계시다는 걸 알았어요.」이 근처의 산에 있는 그 암소들은 각기 목에 방울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요소지만 이 또한 상당히 이중적이며 모순적임을 나타낸다. 제르트뤼드가 눈을 뜨게 되면서 그녀의 목사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했는지가 그것을 더욱 부각시킨다.「목사님,(···) 제가 자크를 봤을 때, 첫눈에 제가 사랑하던 건 목사님이 아니고 그이였다는 걸 알았어요, 그이는 목사님가 어쩌면 그렇게도 닮았을까요? 아니 제가 상상하던 목사님 얼굴과 같았어요······. 아아! (···)」눈을 뜬 후에 고백하건데 제르트뤼드는 자신이 사랑하던 것은 목사가 아니라 자크라고 한다. 그녀의 고백은 목사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다. 게다가 후에 제르트뤼드는 목사에게 말도 없이 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한다. 그리고 그녀는 최악의 죄악인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목사에 의해서 새로운 삶을 찾고 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제르트뤼드가 목사의 아들을 사랑하고 개종을 하고 죽음으로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은 신교에 대한 앙드레 지드의 회의감의 우회적 표현이다.자크「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그릇됨을 본보기로 저는 제 갈 길을 찾은 것입니다.」하고 그는 내게 차분히 말했다.신교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내게 하는 제르트뤼드와 마찬가지로 자크도 아버지의 ‘그릇됨’을 본보기로 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했음을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직설적으로 언급한다. 자크라는 인물 역시 신교도에 대한 회의감을 두드러지게 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단순한 제르트뤼와의 사랑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자크 또한 그의 상황에 있어서 이중성을 지닌다. 자크는 어릴 적에 제르트뤼드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가 성장한 후 만났을 때 그녀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어한다. 바로 여기서 모순성이 드러난다. 자크가 결혼을 할 수 있는 종교인 신교도일 때 제르트뤼드와의 결혼을 원했지만 아버지에 의해 그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제르트뤼드가 눈을 뜨게 되고 그녀 또한 자크를 원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자크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결혼에 대한 의지를 접는다.작청년을 묘사하는 것이 마치 사랑스러운 제르트뤼드를 표현하는 듯 하다. 제르트뤼드를 사랑하는 목사의 모습과 이에 절망하고 목사와 갈등하는 아내의 모습이 마치 마르크 알레그레를 사랑하던 앙드레 지드의 모습, 그리고 문제가 있던 앙드레 지드 부부관계를 나타내는 듯하다. 제르트뤼드만을 아낀다며 타박하는 목사의 아내 아멜다의 모습은 마르크 알레그레를 사랑하는 앙드레 지드를 보며 그를 원망했을 마드렌의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다.종교적 회의감앙드레 지드가 을 집필하는 동안 그는 종교상의 위기를 맞는다. 앙드레 지드는 종교의 구속과 타율성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개종을 고민했던 앙드레 지드의 심리적 갈등이 내에서는 목사와 목사의 아들 자크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자크의 ‘아버지의 그릇됨을 본보기로 저는 제 갈 길을 찾은 것’이라는 말은 앙드레 지드의 종교에 대한 회의감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자크의 개종과 제르트뤼드의 자살은 목사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 목사를 이로 좌절하고 슬퍼한다. 하지만 목사의 좌절이 종교에 대한 반발이나 완전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자유로운 사랑의 종교를 역설하는 것 뿐이다.결론앙드레 지드는 안에 목사, 제르트뤼드, 아들 자크 그리고 아내를 통해서 앙드레 지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담아냈다. 또한 을 전개하는 데에 있어서 목사임에도 불륜의 사랑을 저지르는 등 다양한 양상의 이중성과 모호성을 곳곳에 배치했다. 앙드레 지드는 이를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그들 나름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결말의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남겨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앙드레 지드는 양극의 평가를 받는 드문 작가이기도 하다. 그와 함께 그의 소설 속의 이중성과 모호성을 통해 현대적 문학의 특징까지 찾아낼 수 있으며, 익명성―M양, R마을―또한 소설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성’을 부여한다. 이렇듯 은 단순한 목사의 불륜적 사랑이라기 보다는 지드의 삶의 모습, 그의 종교적 회의감 등을 잘 녹여낸 소설이며 현대적 서적출판
프랑스 문학과의 만남 – 빅토르 위고의 에 대한 감상빅토르 위고의 은 중세 시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인물은 꽤나 다수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꼽추 카지모도, 아름다운 집시 라 에스메랄다,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 장군 페뷔스, 방랑 시인 그랭구아르로 뽑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부주교의 철없는 동생 장, 왕 루이 11세, 거지무리, 자루 수녀 귀뒬 등이 있다. 이들은 주요 인물은 아니지만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처럼 은 한 두명의 인물을 꼽아 이야기의 대표 인물이라고 들기에는 어려우며, 이 많은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큰 흐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기도 하고 영화나 만화로도 다수 재구성되어 제작되었던 은 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와 함께, 재구성된 이야기마저 카지모도와 라 에스메랄다의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500페이지에 달하는 작품을 모두 정독하다 보면 라는 제목은 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과하게 주변으로 밀어놓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금세 느끼게 된다. 그만큼 의 이야기는 등장인물간의 방대하고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은 빅토르 위고의 대표적 역사소설 중 하나인 만큼 그 당시의 파리의 모습도 세세하고 묘사하고 있다. 단순한 사람들이나 길거리의 모습과 분위기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는 노트르담 성당에 대한 묘사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노트르담 자체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 시대의 고딕 도시와 고딕 예술로 이루어진 고술 건축물을 묘사하며, 고딕 예술이 차지하고 있던 위상과 그 독창적인 형태의 문화를 설명한다. 그 후에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술이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지 까지 설명을 덧붙인다. 빅토르 위고는 실제 역사적, 예술적 지식과 그에 대한 의견을 문학 작품 중간중간에 삽입함으로써 자신만의 소설의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영화에서는 제한된 시간이 있고, 영화의 화면이 이야기 위주로 흘러가야 하기 때문에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빅토리 위고의 소설적 특징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영화상에서는 노트르담 성당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빅토르 위고가 노트르담 성당에 가지고 있는 생각 등이 생략되어 있다.인물에 대해 좀 더 보자면, 라 에스메랄다를 주변으로 해서 그녀가 사랑하는 장군 페뷔스와 그녀를 남몰래 흠모하는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의 광계를 볼 수 있다. 페뷔스는 라 에스메랄다의 흠모 대상이다. 하지만 정작 페뷔스는 라 에스메랄다를 아름답다고는 생각하나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밤에 라 에스메랄다를 은밀히 불러내면서도 낮에는 그의 약혼녀에게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기며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입에 발린 말을 한다. 반면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는 라 에스메랄다를 좋아하지만 그녀는 부주교를 끔찍하고 공포스러우며 악마 같은 존재로 여긴다. 부주교의 음탕한 정념을 느끼기 때문이다. 페뷔스와 클로드 프롤로의 공통점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서 지위가 높으면 으레 그들의 심성 혹은 행동거지 또한 올바르리라고 여긴다. 하지만 페뷔스와 클로드 프롤로는 에서 일반적인 선입견에 반대되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이러한 부분은 관객들이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도록 묘사해 놓았다. 페뷔스는 잘생기고 멋진 존재로 묘사하고, 클로드 프롤로는 항상 음침하고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는 인물로 그 특징을 잘 그려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페뷔스와 클로드 프롤로의 악함이 다소 적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페뷔스는 라 에스메랄다를 성적 노리개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클로드 프롤로가 라 에스메랄다를 과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 싶어하는 정념을 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표현해내지 못했다. 영화의 시간적인 제약과 이야기 위주로 할 수 밖에 없는 특성으로 인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작을 충실히 읽었다면 영화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표현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가장 중요한 관계 중 하나는 카지모도와 클로드 프롤로의 관계이다. 카지모도는 애꾸눈에 꼽추이고 귀머거리여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추남 중 추남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순진하며 따뜻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클로드 프롤로는 그의 높은 사회적 지위 혹은 직업과 상반되는 음탕한 정욕, 정념을 지니고 있다. 카지모도의 추함은 따뜻한 마음을 두드러지게 하며, 클로드 프롤로의 신성한 직업은 그의 음탕한 정욕을 더욱 악하고 추악하게 만든다. 클로드 프롤로의 음탕한 정욕은 카지모도의 외모적 추함과 같은 것이며, 카지모도의 따뜻한 심성은 클로드 프롤로의 직업의 신성함에 대응되기도 한다. 두 인물은 각자 추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클로드 프롤로와 카지모도, 이 둘을 부자 관계로 엮어놓은 것 또한 두 인물들간의 이중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모습과 상징성 또한 영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클로드 프롤로는 카지모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얼굴이 너의 마음과 같다.” 이것은 클로드 프롤로가 자신의 마음이 카지모도의 외모처럼 추악하다는 것을 말하는데, 관객들이 기괴함과 숭고함이 한 인물에게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분이다.영화 은 비교적 방대한 양의 소설 의 내용을 많이 담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시간적 제약으로 모든 내용을 담지 못하고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특징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 한 점도 적지 않다. 인물들의 외모적인 부분은 잘 구현해냈으나, 인물의 심리 표현에 있어서는 미흡했다. 페뷔스와 클로드 프롤로의 악한 마음의 표현이 미약했고, 카지모도가 마지막에 신부를 왜 성당에서 내던져 죽여버렸는지의 심리적인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도 부족했다. 원작에서는 신부가 라 에스메랄다를 숨기고 죽음에 이르게 만든 악한 심성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으며, 카지모도가 이를 눈치채고 분노와 슬픔에 쌓여 마치 그를 심판하는 것처럼 동기부여가 되어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다 보니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가진 요소들이 하나씩 빠지면서 사건에 대한 설명과 동기에 대한 표현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와 소설 이 모두를 감상해 본 결과, 다양한 인물들의 심리와 중세 시대의 파리의 모습에 대한 표현을 느껴보고 싶다면 소설을, 전반적인 내용 이해를 위해 가볍게 감상하고 싶다면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아멜리에(Le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의 줄거리라파엘 뿔랑과 아망딘 푸에 사이에 아멜리 뿔랑(이하 아멜리)이 태어난다. 아멜리는 한달에 한번 아버지가 해주는 건강검진 때 다정한 손길에 심장이 쿵쾅거려 아버지는 아멜리가 심장병을 가지고 있다고 오진한다. 이로 인해, 아멜리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엄마에게 교육을 받는다. 어느 날, 아멜리와 엄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간다. 기도를 하고 나오는 길에 아멜리의 엄마는 투신한 관광객에 의해 즉사한다. 아멜리의 엄마가 죽은 후 아멜리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 실의에 빠진 아멜리의 아빠는 세상을 등지고 아내의 넋을 기리기 위해 미니 납골당을 만들어 그것을 꾸미기에만 전념한다. 아멜리는 독립할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공상하길 좋아한다. 그 후 어느 날 아멜리는 다이애나 비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뉴스를 듣다가 우연히 집안 벽 뒤에 숨겨진 낡은 상자를 발견한다. 그 안에는 빛 바랜 사진, 플라스틱 군인, 호루라기 등 어린아이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 담겨있다. 아멜리는 한 아이의 보물이었을 그 상자를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상자의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아멜리는 자신의 이웃들을 알게 되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도움도 받으며 결국 상자의 주인인 브레또도를 찾는 데에 성공하고 그의 어린 시절 때의 상자를 돌려준다. 그가 감동받은 것을 보고 그녀는 기쁨을 느낀다. 그 후 아멜리는 주변인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그녀의 주변사람들의 삶 속에 섞여 들어가려 한다. 집 앞 야채가게를 하는 꼴리뇽이 항상 뤼시앙을 구박하는 것을 보고 우연히 손에 넣게 된 꼴리뇽의 집열쇠를 복사해서 수시로 몰래 들어가 집안의 물건 배치를 바꾸는 사소한 장난을 하여 복수해준다. 아멜리가 일하는 레듀물랭 카페에서 수잔과 조제프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아멜리가 사는 집의 관리인 마들렌 왈라스에게는 몽블랑 산악인에 의해 발견된 오랜 편지가 있다는 기사에 착안하여 그녀에게 죽은 남편이 오래 전, 묘약(potion magique), 젊음의 원천(eau de jouvence), 약한 마약(drogue douce)로 표현하였다. 그만큼 「아멜리에」는 엽서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장면이 많으며 중독적이고 발랄한 영화라는 점을 말한다. Le Journal du Dimanche에서는 「아멜리에」는 작은 보석과 같이 머리와 마음을 기쁘게 하는 영화라고 표현했고, LeParisien에서는 「아멜리에」가 걸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하며, 우울증의 치료약이며 유머가 가득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행복의 문을 살짝 열어주는 영화라고도 했다. 실제로 영화 「아멜리에」 안에는 사소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들이 가득 차 있다. Première는 눈의 즐거움과 삶이 바뀔거리는 꿈을 꾸기 위해서 영화 「아멜리에」를 다시 찾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영화「아멜리에」는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영화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Le Figaroscope는 「아멜리에」는 마치 하나의 리토르넬로와 같이 매력적인 영화라고 평했다. Positif에서는 ( 경멸적인 의미 없이 ) 사소한 계획을 미화시키고 장식의 섬세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② 부정적 비평「아멜리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아멜리에」에 대한 부정적의 비판들 중 대부분은 이 영화에 대한 극도의 비난이라기 보다는 장르의 특성상 생길 수 있는 특징이 다소 과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들고 있다. Chronic’art.com은 「아멜리에」는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로 관객을 감동시키려 하며 부자연스럽게 꾸며진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것들이 세상이 실제와 다르게 과하게 유토피아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 비평에 일치하게 어떤 관객들은 과한 미화가 영화를 보는 데에 거북함을 준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 「아멜리에」가 Le Monde지에서는 영화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재능과 수단의 남용으로 인해서 영화를 소화하는 데에 비 추모 비가 세워져 있다. 이러한 과거의 사실의 삽입을 통해서 관객은 실제 현실과 영화간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영화 「아멜리에」 안에는 사실적 요소와는 상반되는 만화적 요소도 공존하고 있는데, 아기자기 소품 사용이나 원색적인 색채와 함께 그래픽 효과를 이용한 부분이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집, 가게 등 모든 곳에 있는 소품들이 동화 속의 물건들처럼 보인다. 특히, 아멜리의 아빠가 죽은 아내를 위해 만드는 미니 납골당 주변의 장식품들은 주변의 푸른 식물들과 어우러져 동화의 작은 숲속을 정원에 가져다 놓은 듯도 싶다. 이와 함께, 그래픽을 이용한 효과가 아멜리의 두드러지는 연출 효과이다. 그 예는 여럿 있다. 어릴 적 아멜리가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 노는 것을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 그녀와 함께 놀이를 하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만화적 요소가 처음으로 나오는 장면이다. 아멜리가 니노를 마주했을 때 두근거리는 것을 표정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심장이 위치해 있는 왼쪽 가슴 부분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래픽을 따로 삽입하여 아멜리의 심정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또 아멜리가 세상에 섞여 들어가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서 동네에 자주 돌아다니는 장님에게 길 풍경을 재미있게 묘사해주며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자 장님은 기쁨에 찬 얼굴이 되고 장님의 주변엔 밝은 빛이 맴도는 장면도 있다. 니노가 아멜리가 일하고 있는 레듀물랭에 잠시 와 있다가 떠났을 때, 실제 아멜리가 물처럼 녹아내리는 그래픽을 이용해 그녀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진 속 인물이 움직인다거나 아멜리의 방에 있는 동물모양 소품들이 말을 하고 움직이는 것, 아멜리가 관리인 아주머니 마들렌 왈라스에게 보낼 편지를 만들 때 화면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 등 모두 영화 「아멜리에」가 만화적 요소를 지니는 것을 드러내는 것들이다.①-2 세세한 묘사「아멜리에」는 한 장면에서 어느 하나 소홀해 하는 것 없이 세심함을 기울여 놓은 작품이다. 소품과 인물표현 등 모든 것에서 그 특징을. 실제로, 프랑스 파리에만 해도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이 박물관, 오랑쥬리 박물관 등 많은 미술 박물관들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유명 작품을 모사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레이몽 뒤파엘의 모습은 이러한 문화의 일부가 투영되었다고 무방하다. 그의 모습이 아주 괴기스럽게 표현되지도 않는 것에서도 그의 모습이 사회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을 역으로 느낄 수 있다. 레이몽 뒤파엘이 그리는 그림은 단순히 한 프랑스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멜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영화 속 르누아르의 그림은 프랑스 문화뿐만 아니라 이 영화 자체 내에서도 꽤나 비중 있는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가능하다.②-2 개인적인 작은 즐거움의 추구영화 「아멜리에」 전반에서는 작은 즐거움(petit plaisir)을 추구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아멜리는 자신의 공상세계를 즐기며, 일상생활에서 누구에게나 있을 만한 일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다. 그녀의 삶은 이리저리 뒤짚어 보아도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일 뿐이지만, 종종 영화관에 가서 관객들의 표정을 구경한다든가 딱딱한 파이껍질을 작은 숟가락으로 깨는 것, 곡식 푸대 안에 손 집어넣는 것, 쌩 마르땡 수로에서 물수제비 뜨는 것을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그녀뿐만 아니라 레이몽 뒤파엘은 르누아르의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마들렌 왈라스는 바람나 그녀를 떠났던 남편의 편지를 읽으며 과거를 추억하는 일 이외에는 삶의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의욕이 없다. 녹슨 상자의 주인공 도미니끄 브레또도는 통닭구이의 맛있는 속살을 먼저 뜯어 먹는 것이 낙이다. 특히, 영화 첫 부분에 제시되는 아멜리의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또한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가방이나 공구상자를 모두 비운 후 청소해서 다시 깔끔해 정리하여 놓는 것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적인 것을 찾자면 벽지를 북북 소리내어 뜯어 내는 일을 좋아하는 것으로 들겠다. 이렇듯 「아멜리에」의 등장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함이 깃든 작품이다. 이러한 부분이 이 영화가 어떤 이에게는 불편함으로, 어떤 이에게는 다시 찾게 되는 매력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또한, 「아멜리에」는 프랑스 외의 다른 장소를 배제함으로써 오롯이 프랑스―특히 파리―의 모습만을 담은 영화이며 그런만큼 프랑스만의 소품, 프랑스인들이 추구하는 생활 속의 ‘작은 즐거움(petit plaisir) 혹은 ‘작은 행복(petit bonheur)’와 같은 프랑스만의 문화를 영화에 적절히 담아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아멜리에」는 프랑스만의 프랑스적인 영화를 성공적으로 완성해낸 것에서 이 영화의 의미를 찾겠다.참고문헌 / 인터넷 참고사이트• 송옥진, [현지취재] 파리 오르세 박물관, Hyperlink "http://www.traveltimes.co.kr/news/news_view.asp?idx=31864&page=7&pageblock=10&cnt=144&page_size=15&category=c&code=08&find=&f_opt=&menu=&seq=7" http://www.traveltimes.co.kr/news/news_view.asp?idx=31864&page=7&pageblock=10&cnt=144&page_size=15&category=c&code=08&find=&f_opt=&menu=&seq=7• Allociné, Les critiques sur ‘Le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 Hyperlink "http://www.allocine.fr/film/fichefilm-27063/critiques/" http://www.allocine.fr/film/fichefilm-27063/critiques/• David Rich, Codes couleurs au cinéma, Hyperlink "http://www.fluctuat.net/7330-Codes-couleurs-au-cinema" http://www.fluctuat.net/7330-Codes-cou.htm
「이기적 유전자」 요약목차 TOC o "1-1" n p " " h z u Hyperlink l "_Toc328665840"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Hyperlink l "_Toc328665841" 자기 복제자 Hyperlink l "_Toc328665842" 불멸의 코일 Hyperlink l "_Toc328665843" 유전자 기계 Hyperlink l "_Toc328665844" 공격 - 안전성과 이기적 기계 Hyperlink l "_Toc328665845" 유전자의 행동 방식 Hyperlink l "_Toc328665846" 가족계획 Hyperlink l "_Toc328665847" 세대 간의 전쟁 Hyperlink l "_Toc328665848" 암수의 전쟁 Hyperlink l "_Toc328665849" 내 등을 긁어 줘, 나는 네 등 위에 올라탈 테니 Hyperlink l "_Toc328665850" 밈 ― 새로운 복제자 Hyperlink l "_Toc328665851"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Hyperlink l "_Toc328665852" 유전자의 긴 팔사람은 왜 존재하는가?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일관성 있고 조리 있게 설명을 종합한 사람이다. 성공한 유전자의 성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의 이기주의는 보통 개체 행동에서도 이기성이 나타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개체 수준에 한정된 이타주의를 통해서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가장 잘 당선하는 특별한 유전자들도 있다. 이기적인 행동의 예로는 동족을 잡아먹는 것, 자원 공유 거부 행위가 있고, 이타적인 행동의 예로는 동족을 위해서 경계음, 혼란 과시 등의 행위를 하는 것 등이 있다.생존 경쟁에서 개체는 집단의 하위 단위가 되는데, 개체는 종 전체의 더 큰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희생될 수도 있다. 이타적 행동을 하는 개체가 섞여 있는 집단은 이기적 행동만을 하는 집단보다 절멸의 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DNA 분자는 뉴클레오티드라는 작은 단위 분자로 구성된 긴 사슬이며, '불멸의 코일'인 '이중 나선'으로 되어 있다. 뉴클레오티드는 A, T, G, C의 네 종류의 단위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생명체에게 해당한다. 단지 배열에 따라서 그 차이가 생길 뿐이다. DNA 분자는 복제와 단백질 제조를 통제한다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인간의 46개의 염색체는 염색체 23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2개의 유전자가 염색체의 같은 위치에서 경쟁할 경우 이들은 서로의 '대립 유전자'라고 부른다. 여기서 하나의 유전자만을 택해서 구현할 수밖에 없는데 무시되는 유전자를 '열성 유전자', 열성 유전자의 반대를 '우성 유전자'라고 부른다. 염색체를 갖는 보통의 세포가 감수분열을 하고 교차의 과정도 거친다. 뉴클레오티드의 문자의 서열의 단위를 정의한 것이 '시스트론'이다. 이와 함께, '유전 단위'라는 개념은 유전자와 관련된 모든 서열 혹은 배열을 의미한다. 유전자와 관련하여 새 유전 단위가 만들어지는 방법에는 돌연변이의 방법이 있는데, '점 돌연변이'와 '역위'가 있다. 점 돌연변이는 어떤 책에 오자가 단 하나 있는 것과 같은 오류이며, 역위는 염색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가 거꾸로 된 방향으로 다시 붙는 것이다.'치사 유전자'란 자신을 지니고 있는 개체를 죽이는 유전자다. 메더워에 의하면 자연 선택은 다른 치사 유전자의 작용을 늦춰 주는 유전자를 선호하고, 좋은 유전자의 작용을 빠르게 하는 유전자도 선호한다. 메더워의 이론에서부터 재미있는 추측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특정 연령 이전에는 번식을 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수명을 조금씩 연장시키는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유전자를 속여서 자신이 들어 있는 몸을 실제 연령보다 젊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유전자 기계생존 기계는 유전자의 수동적 피난처로 처음 생겨났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햇빛 에너지의 영향으로 유기물 먹이가 사라하나의 전쟁 게임은 '소모전'이다. 소모전에서는 시간이 통화가 된다는 것이다.단순한 전쟁 게임에서 벗어나면 비대칭적 싸움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전략 이외의 조건에서도 경쟁자들간의 차이가 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몸의 크기라든가 전투 능력이 개체에 따라 다른 경우, 승리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개체에 따라 다른 경우, 그리고 이러한 비대칭으로 인해 ESS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유전자의 행동 방식유전자란 DNA 조각의 모든 복사본들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는 남의 몸 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복사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개체의 이타주의로 나타나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이것은 유전자의 이기주의에서 생겨난 것이다. 자신의 복사본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혈연자와 근연도를 통해 아는 방법이 있다. 혈연 이타주의는 이타적 자살 유전자, 쌍둥이 이타주의 유전자 등을 통해 발현된다. 또한, 부모를 잃은 형제자매의 경우 누나 또는 형이 동생을 돌보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에 비해 유전적으로 더 특별할 것 없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이러한 것을 혈연 선택이라고 칭하며 가족 내 이타주의를 설명한다. 원숭이와 고래의 무리 생활 내에서 다른 개체를 위해 이타적 행동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런 혈연 선택의 규칙에도 오류가 있다. 무리를 지어 사는 종에서 고아가 된 새끼가 다른 암컷에게 입양되는 경우가 이 오류의 예가 된다.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근연도 혹은 식별의 문제에 따라 이타주의의 정도를 알 수 있다. 많은 종에서 어미는 아비보다 자기 자식을 더 확실할 수 있기 때문에 육아에 더욱 열중한다. 또한, 외할머니는 친할머니에 비해 다기 손자에 대한 확신이 강하므로 친할머니보다 더 강한 이타주의를 보인다.가족계획인구 조절은 사람들이 아이를 몇 명이나 낳느냐는 것뿐만 아니라 언제 낳느냐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인구는 각 세대마다 일정한 비율로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내므로,로 태어날 자식을 위해 젖떼기를 하려고 할 것이지만 이와 반대로 젖을 먹고 있는 아이는 어미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새끼들은 더 많은 먹이를 얻어내기 위해서 다른 새끼들보다 더 크게 울어댈 것이다. 이것이 과하게 되면, 새끼들은 포식자들이 찾아올 정도로 크게 울며 먹이를 얻어내기 위해 어미에 대해서 울음으로 협박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새끼들은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언제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형제 살인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새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뻐꾸기에게서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으며, 다른 새들도 이를 언제든지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암수의 전쟁이상적으로, 유전적으로 개체가 바라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이성과 교미하고 자식 양육은 상대에게 전적으로 떠맡기는 것이다. 보통 이와 같은 습성은 주로 수컷이 나타낸다. 근본적으로 수컷을 수컷, 암컷을 암컷이라고 명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한 가지 기본적인 것은 수컷의 생식 세포는 암컷에 비해 매우 작고 그 수가 많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수컷이 암컷을 버리고 다른 암컷을 탐하는 경우가 있는데, 암컷과 새끼를 버리는 것이 수컷에게 유리한 경우는 암컷이 단독으로 자식 양육에 성공할 가능성이 상당히 있을 때다. 짝에게 버려진 암컷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를 고찰하였다. 어미로서 최선책은 다른 수컷을 속여서 그에게 자기 자식을 친자라고 여기도록 하여 입양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암컷이 새로운 수컷을 속여 의붓자식을 입양케 할 수 없다면 어미의 선택은 자식의 나이에 따라 좌우되거나 끝까지 참고 혼자서 자식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역설적일지도 모르나 버려질 위기에 처한 암컷이 수컷에게 거절당하기 전에 먼저 수컷을 버릴 수도 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는 암수 어느 쪽이든 먼저 상대를 버리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암컷은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 혹은 남성다운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암수의 차이에 있어서는 우선 성적으― 새로운 복제자밈(meme)이란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밈의 예로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예로,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 내는 환경 속에서, 신은 높은 생존 가치 또는 감염력을 가진 밈의 형태로만 실재한다. 또한, 밈이 과학적인 아이디어일 경우 확산은 그 아이디어가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인간을 대상으로 한 초기 버전의 죄수의 딜레마는 다음과 같은 게임에서 나타난다. ‘물주’가 한 사람 있고 게임을 하는 두 상대에게 판정을 내려 이득을 지불하는데, 각자의 손에는 ‘협력’과 ‘배신’이라고 표시된 두 장의 카드밖에 없고 한 장을 골라 결과를 보고 그에 따른 포상을 받거나 벌금을 치르는 것이다. 가능한 결과는 네 가지가 된다. 결과로부터 나오는 이득을 계산하고 최선의 수를 생각해보면 항상 배신 카드를 내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게임이 반복되게 된다면 서로의 행동을 단속할 수 있는 조건이 생김으로써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따라 나오는 전략은 여럿 있는데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략, ‘순진한 시험꾼’ 전략, ‘후회하는 시험꾼’ 전략, ‘관대’한 전략 등이 있다. ‘나’가 어떤 전략을 택하느냐, 어떤 전략을 택하는 상대와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게임 이론가는 게임을 '영합 게임'과 '비영합 게임'으로 나눈다. 영합 게임에서는 한쪽 선수의 승리가 다른 쪽 선수의 패배가 된다. 예로, 체스는 영합 게임이고 죄수의 딜레마는 비영합 게임이다. 실생활에서 민사 분쟁이나 축구 경기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영합 게임으로 보일 수 있으니 상황에 따라서 비영합 게임이 될 수 있다. 축구처럼 관중을 동원하는 스포츠가 영합 게임인 것에는 선수들이 짜고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서로가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 관중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포츠와 같은 게임을 제외한 실제 생활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