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the use of poetry?A lot of young people─and a lot of grown-ups, too, who ought to know better─ask this question. They are suspicious of poetry. When some one is suspicious of poetry, or painting or music, it is generally because he does not understand them, does not see the point of them. We are always suspicious and a little afraid of things we do not understand. But, instead of admitting this, we are apt to invent reasons for our dislikes which are more complimentary to ourselves. If you ask people who ‘have no use of poetry’ why they don’t like it, they’ll probably answer, ‘poetry is daft,’ or ‘poetry won’t help you to get on in life, to get a job, to make money.’ Let’s take these ideas one by one, and see what they amount to.‘Poetry is daft’People who say poetry is daft are usually frightened of life, frightened of their own feelings and the mysteriousness of the world. Poetry is a special way of using words in order to create a special effect upon the reader and to light ury: our word ‘enthusiasm’ comes from a Greek word meaning this very thing─the state of having a god inside you. And people still talk about the poet’s ‘inspiration’ which means a spirit breathed into him from somewhere outside.시의 유용성이란 무엇인가?200712041 한가희많은 젊은이들과,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만큼 분별이 있어야 할 성인들 또한 시의 유용성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들은 시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가 시, 미술 혹은 음악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대체로 그들은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품의 핵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항상 의심스러워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싫어하는 핑계들을 꾸며내는 경향이 있다. 만약에, 시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왜 시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시는 바보같다.’ 또는 ‘시는 인생에서 성공하거나 취직하거나 돈을 버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대답 할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나 하나씩 살펴보고 결국 이런 생각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시는 바보 같다.’시가 바보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삶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감정들과 세계의 불가사의함을 두려워한다. 시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주기 위한, 독자들의 세계에 불을 밝히기 위한 언어 사용의 특별한 한 가지 방법이다. 만약 시가 당신의 감정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혼란스러운 감정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 다면, 당신의 코 앞을 내다 보는 것 조차 두려워한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미치광이를 피하듯이 시를 기피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와 시인이 미쳤다고 증명하지는 않는다. 과거에, 사람들은 예말이다. 그들은, 시는 지식인들과 시간을 낭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적절하고 일반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용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새롭게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시가 유행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시로 쓰인 희곡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Elizabeth 1 세 시대의 일반 사람들도 그 시대 Shakespeare와 다른 극작가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마을이나 성에서 그들이 시를 읊는 것을 듣고 싶어한 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중세의 음유시인들과 발라드 가수들을 생각해보아라. 러시아, 아일랜드, 스페인 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의 농부들을 생각해보아라.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시를 만들고 있다.평범한 사람들에게 시는 아무 쓸 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확실히 영국인들은 시를 아주 좋아한다. 물론 역사책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없겠지만, 시는 영국의 가장 큰 자랑이다. 지리학 책에는 철, 석탄, 모직의류 등의 수출품에 대해 써있지만 가장 유명한 수출품 중의 하나가 시라는 것은 쓰여있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영국의 시인은 영국의 선원들, 산업 장인들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모든 문명국은 시는 영국의 뛰어난 예술이다라고 인식해왔다. 그러므로 시가 인생에서 성공하거나 돈을 버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위의 사실들을 숙지하지 않거나 얕보고서는 논쟁 할 수 없다.‘무지개의 유용성은 무엇인가?’우리는 시에 대한 잘못된 몇 가지 생각들을 지웠다. 하지만 여전히 시의 유용성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시의 유용성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무지개, 바다, 태피 사탕, 축구, 예쁜 드레스의 유용성은 무엇인지를 묻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 무지개는 비가 내릴 때 태양 빛의 굴절과 반사로 인하여 발생하는 자연현상이다. 인류에 관한 한, 무지개는 확실히 무용지물이다. 다시 말해서, 무지개가 돈을 벌게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무지개를 보면 느끼는 경이로움과 흥다.끊임없는 언어의 재창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기 위해서, 말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말은 인류가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친해지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가 모두 벙어리이고 언어를 창조해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동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수단들처럼 말은 문명사회를 위한 자신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깨끗하고 능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부주의하고 너절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문명화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시라는 것은 말을 주의와 존중과 정확성으로 다루어야 하는 하나의 예술이다.이것은 시의 언어가 평범한 대화와 조금 다른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속어는 종종 극단적으로 시적이다. 단어를 새롭게, 강하게 그리고 그림을 보듯이 표현해내기 때문이다.(1) 나 너무 피곤하고 맥 빠져.(2) 씹던 실 조각이 된 느낌이야.(3) 나 정말 우울해.(4) 너무 우울해서 뱀 밑으로도 기어 갈 수 있을 것 같아.(5) 그 차는 너무 진해서 스푼도 띄울 수 있겠어.(6) 그 차는 진해서 쥐가 그 안에서 걸어 다닐 수도 있겠어.위의 문장들을 보면, (2)와 (4)는 각각 (1)과 (3)의 속어 표현이다. 두 문장은 (1)과 (3)의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이 문장들은 ─씹던 실 조각의, 뱀 밑으로 기어가다─ 그림으로 상황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이다. 즉, (4)는 (2)보다 덜 진부하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다. 다시 말해서 (2)는 처음 쓰였을 때는 강력한 언어 표현 이었지만, 너무 자주 쓰여서 진부해졌다. (5)의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한때는 진한 차 한잔을 묘사하는 속어로서 아주 좋은 표현이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썼고 진부해졌다. 그리고 (6)은 아일랜드의 한 늙은 시골여자가 이야기한 것을 들은 것인데 더욱 강하고 생생한 표현이다. (2), (4), (5), (6) 모두 속어지만 이것들 또한 평범한 의미를 표현하는 시적 방법이다.시가 단순히 속어의 미화된 형태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속어가 시방법은 아니며, 가장 좋은 방법도 아니다. 아주 일반적인 물체인 야생 수선화를 예로 들어보자. 수선화를 표현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1) 나르시수스 프세우도 나르시수스: 꽃줄기는 속이 비어있고 그 끝이 두 개이고 꼭대기 부근에 막질의 꽃 밑동과 단 하나의 꽃을 가지고 있음, 꽃샘은 그 가장자리가 깔죽깔죽하고 곱슬거리며 꽃받침조각과 꽃잎만큼이나 김.(2) 골짜기와 언덕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외로이 헤매다,문득, 나는 보았네수많은 무리의 금빛 수선화가호숫가에서, 나무 밑에서,산들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것을.그렇다면 식물학 교과서에서 발췌한 과학적 설명과 Wordsworth의 시 한 편에서 발췌한 시적인 것 중, 어떤 것이 더 만족할만한 수선화의 묘사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대부분이 즉시 ‘시적인 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 시가 쇠퇴하게 만들어왔다는 논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일격이다. 물론, 이렇게 상을 두고 경쟁하는 것처럼 과학적 묘사와 시적 묘사를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과학은 사실을 찾아내고 밝히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시의 임무는 당신에게 이러한 사실의 모양, 향기, 맛 그리고 느낌을 주는 것이다. 각자 스스로의 목적과 보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묘사를 대조함으로써, 방식 면에서 시와 과학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묘사 (1)은 분석적이다. 즉, 말하자면 수선화를 우리에게 감정이 떠오르게 하고, 어떻게 시가 지어졌는지 말해주고, 그것을 구분하는, 모든 다른 것들과 완전히 분리된 단 하나의 대상으로 설명한다. 묘사 (2)는 나무, 호수, 산들바람 그리고 시인의 외로운 감정(그가 한 무리의 금빛 수선화를 만나기 전까지 구름처럼 외로웠던) 같은 수많은 다른 것들과 수선화를 관련시킨다.세상을 당신의 친구로 만드는 것이것은 시와 과학 사이의 차이점을 만드는 감정의 포함이다. 과학은 무언가를 분석하는 것과는 순전히 관계 없다. 또한 과학은 과학과 시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그들 뒤에서 활동하고 있는다.
George Orwell의 ‘1984’를 읽고200712041 한가희오웰의 ‘1984’는 1946년에 쓰여진 작품이다. 그는 전체주의가 팽배해진 미래의 사회를 상상하며 이 작품을 썼다. 24시간 텔레스크린이 사람들을 감시하고, 그들은 증오 외의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과거는 모두 지워지고 현재도 끊임없이 조작된다. 사고와 판단력마저 빼앗겨 그들은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것과도 같다.모든 소리와 영상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텔레스크린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 당하는 기분이란 정말 끔찍하고 역겨울 것이다. 화장실에 있을 때나 연인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누군가가 끊임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과연 그 누가 견딜 수 있을까? 소설 속의 끔찍한 모습은 한 작가의 상상 속의 미래였지만, 그리 낯설지 않다. 그 이유는 전체주의가 팽배했던 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현재까지도 전체주의는 남아있으며, 사람들은 사생활을 침해 받기도 하고 자유를 구속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트루먼쇼’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짐캐리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부터 친구들과 이웃들까지 모두가 배우였다. 심지어 바다와 산까지도 모두가 셋트장이었다. 자신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모든 곳에 카메라가 있었고 그의 24시간을 찍어 방송으로 내보냈다. 결국 주인공은 그곳에서 빠져 나와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그 곳을 떠난 짐캐리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그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떠난다 해도 그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파파라치들에게 쫓기며 일상을 침해 당하는 것처럼, 그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또다시 몰래 카메라가 설치될 가능성도 있다.유명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사생활의 침해를 받는다. 인터넷이 삶에 있어 중요한 수단이 되면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인터넷을 통해 처리하기 시작했다. 편지도 이메일로 보내고, 각 회사간의 업무나 개인의 은행 업무도 인터넷으로 처리한다. 개인 홈피나 블로그를 사용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일상의 모든 것을 인터넷에 게재한다. 인터넷으로 10여 년간 소식을 접할 수 없었던 사람도 찾을 수 있고, 뉴스나 사건 사고도 인터넷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 모든 정보가 악용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몇 가지 있다. 요즘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개인홈페이지 싸이월드를 사용한다. 그런데 사고로 인해 2000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해킹 및 도용을 당하는 사례도 빈번하다.사생활 침해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유도 구속당하고 있다. 특히 요즘 사회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언론 조작이다.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 규정을 완화하자, 언론에서는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미국산 소고기에 광우병을 유발할 위험이 높다며 그 문제성을 제기하는 기사가 하나 둘 올라왔다. 그러나 이런 기사가 올라오자마자 사라지고, 시위를 조장하는 것은 좌파의 뒷공작이라는 둥,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는 글만 올라오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집회가 여기저기서 열렸다, 그런데 정부와 경찰은 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올 해 상반기에만 시민단체의 집회 1800여 개가 불법집회로 몰렸고 집회 장소를 지나가던 일반 시민들조차도 모두 강제연행 되었다.오웰은 자유의 억압과 상층부의 조작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버리는지, 사람들의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를 빅브라더가 만든 공산주의, 전체주의 사회를 극단적으로 그리면서 보여주고 있다. 소설 ‘1984’ 속의 사회 모습과 현재 우리 사회 모습이 너무나도 비슷하게 보였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빅브라더와 같은 존재가, 텔레스크린과 같은 존재가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표방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억압하고 감시하는, 모순된 사회 속에서, 마치 오세아니아와 같은 사회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