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김구의 업적과 원 소스 멀티 유스원 소스 멀티 유스 란 문화산업재의 온라인화와 디지털 콘텐츠화가 급진전되면서 각 문화상품의 장르 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매체 간 이동이 용이해짐에 따라 하나의 소재(one source)로 다양한 상품(multi-use)을 개발, 배급할 경우에 시장에서의 시너지효과가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특히 하나의 소재만 있으면 추가적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다른 상품으로 전환해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또한 관련 상품과 매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저렴한 마케팅 및 홍보비용으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국내에서도 특히 문화산업 부문에서는 이미 이러한 경향이 보편화된 추세이며, 최근 대형 방송사와 신문사가 유선방송·위성방송·인터넷방송·전자신문·맞춤신문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것도 이와 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내가 알아볼 인물은 바로 백범 김구이다. 백범김구는 15세에 한학자 정문재 에게 한학을 배웠고, 1893년(고종 30년)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가 되고 1894년 팔봉도 소 접주가 되어 동학혁명군에 가담하여 싸웠으나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으로 패배하였다.동학혁명군이 패배한 그 다음해부터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날 즈음, 백범은 비록 소년 장군의 몸이었으나 동학에서 불 붙어온 왜놈에 대한 적개심으로 왜놈 장교를 맨손으로 때려 눕혔다. 그리고 그의 칼을 빼앗아 왜놈의 가슴에 꽂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피를 빨아먹은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백범의 의로운 행위는 비단 개인의 그것이 아니라 우리 민중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결국 백범은 을미년 명성황후 살해 사건 때 일인에게 시해 당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 자 일본 육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 종의 특사령 으로 감형되었다. 복역 중 1898년에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의 중이 되었다가 1899년 환속, 1903년 크리스트교에 입교하였다.1909년 안악 양산학교 교사로 있다가 1910년 신민회에 참가하고, 1911년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감형으로 1914년 출옥하여 농촌 계몽 활 동을 하였다.3·1운동 후에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하여 경무국장·내무총장을 역임 하고 1926년 6월 임시 정부의 국무령으로 취임하였다. 이때부터 백범은 즉각적으로 임시정부를 항일무장 유격전의 본거지로 근본적인 개편을 해나갔다.1928년 이 시영, 이 동녕 등과 한국 독립당을 조직, 당수가 되었다. 이로부터 항일 무력 활동을 시작하여 결사단체인 "한국 애국단"을 조직하고, 1932년 사쿠라다몽 일본 국왕 저 격 사건, 상해 홍구 공원 일본 국왕생일 축하식장의 폭탄 투척 사건 등 이봉창, 윤봉길 등 의 의거를 지휘하였다.1941년 일제가 드디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되자 세계정세는 일변하게 되었다. 이에 임시 정부는 그해 12월 9일 바로 일제가 전란을 일으킨 다음 날, 즉각적으로 대(對)일본 선전포고를 하였다. 1945년에는 대한민국이란 국명으로 대일 선전포고를 하는 한편, 광복 군 산하 낙하산 부대를 편성하여 본국 상륙 작전을 실시하다 해방을 맞았다. 결국 광복군 훈련에다 열중하다 해방을 맞았을 뿐, 백범의 유격 전술은 국내에서 불을 당기지 못 하였다. 해외에 있던 백범도 "올 것이 너무 일찍 왔구나!"하고 땅을 치며 울 정도였다.1945년 8월15일, 일제가 패망하였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있었고 또 한 우리민족으로 구성된 무장군대가 있었음에도 해방조국에는 우리군대가 아닌 미군과 소 련 군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명분으로 진주하였다. 이것이 결국 민족 분단의 계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백범이 해방 후 최초로 맞은 시련은 미군에 의한 임시정부의 해체와 신탁통치 문제 그리 고 단독정부수립주의자와 싸우는 자주통일의 노력으로 직결되어 갔다.백범은 단독정부 수립반대와 통일조국의 의지를 강력히 보여 주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한다는 UN의 결의에 반대하여 통일정부의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창 하 고, 38선을 넘어 정치회담을 벌였으나 그 결실을 맺지는 못하였다.1946년 6월 26일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 에게 피살당한 백범은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고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중장이 추서 되었다. 저서로는 백범일지가 있다.
라쇼몽의 재구성※ 각주: 사건의 흐름에 있어 크게 연관은 없지만 인물간의 증언이 유사하거나 인물의 성격 및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따로 적어놓았습니다.* 사무라이 살인사건의 재구성- 산속에서 사무라이의 시체발견야마시나 대로 근처 산속에서 스이칸 차림을 한 사무라이가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재판 4일전 산으로 나무를 하러가던 나무꾼은 가슴에 상처구멍이 말라있는 사무라이 시체를 발견하고 관과에 신고했다.목격자 나무꾼은 “칼이나 무엇은 보지 못했으며 시신근처에 잘려진 밧줄, 여인의 모자, 사무라이의 모자 그리고 빨간 테가 둘러진 부적상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라고 증언했다.사건발생 이틀 뒤 나졸에게 붙잡힌 타지오마루는 죽은 사무라이의 말과 화살 등을 가지고 있었다. 재판장에서 증언하길, 야마시나 대로를 지나가던 부부를 만났고 여인에게 반해 사무라이를 떨어트려놓은 후 겁탈을 목적으로 부부에게 접근했다고 했다고 한다.-증언의 재구성타지오마루(이하 도적)는 산속에 무기와 거울 등의 물품을 헐값에 판매하겠다는 말로 사무라이를 산속으로 유인했다. 그 후에 사무라이를 무력으로 제압한 뒤 밧줄로 묶고 밧줄을 묶은 곳 근처로 여인을 데리고 온다. 근처에서 여인은 도적에게 겁탈 당한다.여인을 겁탈 후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나무꾼이 목격한 도적은 여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며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이고 사무라이의 증언에서도 타지오마루가 여인에게 “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하며 그녀를 사랑해서 범했다.” 라는 증언을 했다.사건의 당사자인 본인들은 뚜렷한 언급을 하지 않으며 도적의 경우엔 도리어 여인이 자신에게 매달렸다는 정 반대의 증언을 한다.-증언의 재구성과 추측종합해보면, 여인을 겁탈한 뒤 도적은 여인의 앞에서 자신의 아내가 되어 달라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목격자 나무꾼과 여인의 증언처럼 여인은 단도로 사무라이의 밧줄을 자른 듯하다.만약 도적이 잘라주었다면 도적의 증언대로 결투를 제안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도적의 승리로, 사무라이의 증언 마지막 부분인 사무라이가 죽어가는 시점에서 “시간이 흐른 뒤, 그 사람이 내게 살며시 오더니 가슴에서 단도를 꺼내갔다” 와 나무꾼이 단도를 훔쳐갔다는 부분의 증언이 거짓이 된다.도적이 밧줄을 풀어줬을 경우 사무라이의 자살이 있을 수 있지만 정황상 증언이 일치하는 나무꾼과 여인의 증언을 토대로 여인이 밧줄을 자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여인을 제외한 모든 증언에서 결투가 제시되었다. “당신이 죽던지 내 남편이 죽던지 두남자 중 하나는 죽어야 해요” 도적의 증언이지만 사무라이와 나무꾼의 증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무라이의 증언, “저 남자를 죽이세요.” 와 말없이 사무라이의 밧줄을 자르는 모습이 나무꾼에 의해 목격했다. 여인이 결투를 제시한 이유는 자신의 치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두 사람이면 자신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이다.그렇지만 사무라이가 볼 때 여인은 더 이상 자신에게 가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정절을 지키지 못한 것과 자신을 도적과의 결투로 몰아붙이는 모습은 사무라이가 여인을 지킬 이유가 사라진 것과 같다. 나무꾼의 증언처럼 “당신은 남편 아닌 남자와 관계를 가졌어. 어째서 자결하지 않는 거지?” 라는 말을 한 사무라이는 이미 여인에게 마음이 떠나간 상태이다.후에 여인은 두 남자 모두에게 버림을 받아 서로 결투를 하도록 자극하였지만 남편은 마음이 떠나간 상태이며 도적은 도망갔을 것이라고 추측 한다.이유는 결투가 진행 되었을 시에 살아남은 도적이 사무라이를 죽였다면 단도가 남자의 가슴에 박혀있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을 꺼낸 나무꾼의 증언이 거짓이 된다.도적이 도망을 갔기 때문에 도적의 검이 아닌 단도가 남자의 가슴에 박혀 있을 수 있던 것이고 도망을 간 사실이 창피한 도적은 자신의 결투를 “그 누구도 나와 20번 이상 칼을 걸어 본적이 없다. 그는 명예롭게 싸웠다.” 라는 증언으로 차라리 자신이 누명을 쓰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 듯하다. 때문에 사무라이의 검은 마을에서 술로 교환하였지만 도적은 단도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한다.-범인은 누구인가. 살해 원인은?
일제강점기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1910~1945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이 망한 이후부터 35년 동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던 시대에 일본의 억압과 통제를 받던 우리 지식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문학을 대했고 어떤 식으로 발전 시켜 나갔을 지에 대한 생각을 사실 구체적으로 해본적은 없는 것 같다.먼저 이광수의「무정」을 보며 당시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작가의 근대문명을 대하는 태도를 접했고, 요즘의 책과 비교 했을 때 ~이다, ~더라, ~했음이다. 라는 문장이 많기는 하지만 문장이 지금 읽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세련되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주인공인 이형식의 자유연예사상 이나 개인의 참 자아, 욕망을 통해 개인의식이 고취되기를 바라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광수 자신의 욕망을 반영한 주인공을 통해 삼각관계라는 요소로 구시대적인 영채, 신여성인 선형을 두고 저울질 하다 결국 선형을 택하는 모습이 신분상승의 욕구와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표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광수 나름의 문명개화를 위한 비유로서 영채는 구시대를, 선형은 근대문명을 대표한다고 생각했다.지식인으로써 식민 지배를 받는 현실과 민중들의 계몽을 위한 절충안은「치숙」속 조카의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광수가 친일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수업을 위해 책을 읽는다는 생각뿐 이었지만 소설을 읽어가면서 이광수 본인의 고뇌를 선명한 삼각관계를 통해 드러낸 것을 보며 당시 지식인으로써 느꼈을 대한민국의 방향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 이광수 자신이 병욱의 역할을 맡고 싶어 했지만 현실에서 병욱의 역할을 그리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김동인은 순수문학과 예술에 대한 태도도 놀라웠다. 광염소나타에서 볼 수 있는 김동인의 예술지향성은 억압된 현실과 반대로 순수 그 자체로 느껴졌다. 1세기가 지났지만 지금의 예술인들은 김동인의 태도에서 본받아야 할 점이 있다고 본다. 문체의 변화도 일제 소설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데 김동인은 이광수의 ‘이다’ 체에 머물던 시제를 훌쩍 뛰어넘어 과거시제인 ‘였다’ 체의 도입으로 혁신을 꾀하기도 했고 작중 인물의 호칭에 있어서 ‘그’로 통칭하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액자식 소설로 유미주의를 증진시켜 예술적 표현의 범위를 넓혔다.채만식의 작품은 당시 현실반영과 비판에 집중되어있는데 소설을 읽으며 내가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에 대해 무정하게 지내지 않았나 싶었다. 식민지 상황 아래 지식인들이 억압받고 핍박받으며 세운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소설이다. 물론 채만식 본인도 친일파로 행동한 면모도 보이지만 이광수의 계몽의지와 비슷하게 본 의도는 달랐다. 후에는 「민족의 죄인」이란 소설로 친일에 대한 해명까지 했다.「치숙」,「레디메이드 인생」,「만무방」에 나오는 농민과 지식인의 모습에서 풍자와 해학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속에는 고통이 있다.「치숙」은 식민지이기 때문에 검열을 받는 상황에서 당시 지식인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물의 입으로 긍정적인 인물을 부정하게 하는 수법을 하고 있는데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구성이었다. 이광수부터 김유정에 이르기 까지 문체와 주제는 점점 풍부해졌으며 선명해 졌고「무정」에서 비추어진 기생의 모습과「레디메이드 인생」의 작부의 모습은 경제적 상황의 변화가 비교되었다.「봄봄」에서 보이는 희망과「만무방」에서 보이는 피폐화된 농촌은 김유정의 농촌에 대한 애정과 동시에 현실을 반영했다. 주인공의 모습은 갈팡질팡 하는 이형식의 모습에서 천재작곡가 백성수, 인텔리 실업자 P, 악인형인 응칠 까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일제시대를 살고 있던 지식인들의 생각과 고뇌, 현실에 대한 태도를 보여 줬다.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입장을 무엇보다 잘 알 수 있는 매체는 소설인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모든 매체는 소설만큼 선명하게 현실을 비추어주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고 우리의 시대를 보여주는 소설을 더 많이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문제작가탐구- 1950,60년대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 -우리나라는 1950년 6월 25일 이후로 현재까지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 억울한 일을 겪은 국가이지만 6월 6일 현충일이 오더라도 우리 세대는 TV의 다큐멘터리조차도 꺼리고 남 일처럼 대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전쟁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TV와 인터넷 매체에서 접한 것을 제외하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손창섭의「잉여인간」은 전후소설로 6.25 전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잉여인간이란 쓸모없는 인간, 남아도는 인간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전쟁을 겪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를 겉도는 인물들 이라고 할 수 있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P와 어쩐지 닮아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손창섭의 소설은 결말이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인물들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전의 소설들과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동인의 초기 예술지향성처럼 자신만의 특징을 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 문장 대부분이 ‘~것이(었)다.’ 로 끝난다. 전후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은 개입되지 않고 방관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는 전후 소설과 작가에게서 보이는 특징이다. 선우휘의「불꽃」에서도 고현은 인민재판 등에서 행동을 취하기 전 까진 허무적인 태도를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았고 최인훈의「광장」에서 명준도 적극적이기 보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전후에 총체적혼란을 자신들이 바꿀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나타난 것 같다. 선우휘는「불꽃」속 인민재판 과정에서 고현의 분노,「테러리스트」의 걸 일행들이 공산당 본부를 습격하는 것처럼 공산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며 행동을 통해 어지러운 현실을 해결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50년대 소설과 달리 남성적이고 정의와 의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현과 걸 일당은 행동 이전, 이후에 수많은 방황을 한다.「테러리스트」에선「광장」과 마찬가지로 부패한 남한의 현실 때문에, 「불꽃」에선 현이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현실도피를 하며 살 것인지, 아버지처럼 현실참여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황을 하는데 이러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자유롭지 못한 전후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장용학의 「요한시집」은 그로테스크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 한다. 누혜의 어머니가 쥐를 먹는 장면과 누혜가 자살하는 장면을 읽으며 전후의 비참한 현실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 가슴이 아팠다.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나라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잉여인간」의 서만기처럼 선함을 지키며 살 수 있을지, 「광장」속 명준과「요한시집」의 누혜처럼 현실을 도피할지 모르겠다. 최인훈의 「광장」은 「요한시집」이 보여주는 현실보다는 나아보이지만 이명준이 원하는 이상은 어디에도 없다. 이명준이 원하는 이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 존재할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우리의 광장도 어쩌면 아직 밀실과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인상 깊은 점은 이명준 본인의 주체의식이 명확하고 원하는 바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이형식의 갈팡질팡하던 모습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사랑 또한 「무정」과 많이 달라져 있는 모습을 보인다. 영채의 열녀관과 명준의 사랑은 잘못된 요인으로써 보여주고 있지만 그 색은 다르다. 이광수가 영채의 일방적인 사랑을 비판했다면 최인훈은 명준이 사랑을 좌절과 보상으로 보는 것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소설을 통해 접하는 전후 현실에서 행동적이기도 하고 허무적이기도 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인물들을 만나보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무정」의 결말 같은 희망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 들은 대부분 허망함을 느끼고 좌절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런 특징에 대해 무작정 비판적인태도를 갖는 것 보다 작가들이 표현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좋은 태도인 것 같다.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고 채만식이 친일파가 되었던 것에 대해, 작품 속 주인공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부터 심도 있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정보란 무엇인가정통사회에서 정보란?-oxford사전-정보란 어떤 주제나 사실에 관하여 전달되는 지식-위키백과사전-언어.화폐,법률,자연환경 속의 빛과 소리,신경,호르몬 등의 생체신호로부터 비롯한 것행동과학적 측면에서 정보란?-심리학이나 정치학,경영학 등의 분야에서 나온 정의-류-신페이-정보란 아는것 또는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보내거나 받는 자극-요비쯔-의사결정에 가치있는 데이터를 정보라 정의하고 정보는 의사결정을 행하기 위해 사용되는것정보이론 측면에서의 정보란?-샤논-인간과 인간사이에서 전달되는 일체의 기호계열-정보가 가지는 의미에는 아무런 의미를부여하지않고 정보의 흐름을 중요시하여 통계적으로 표현하는 수학적이론을 말한다-경제적상품,공통적 형태, 문헌 지식 인식 등으로 해석.데이터 -정보-지식의 관계데이터-정보를 구성하는 최소단위-가공되지 않은, 아직 체계화 되지 않은 형태-기호,숫자,문자 등으로 이루어진 집합체-데이터가 정보가 되기전에는 상징, 신호일 뿐이다.정보-상징,또는 신호로 된 데이터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자료가 가공되었을때 데이터는 정보로의 변환이 이루어진다.-우리의 눈과 귀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정보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것이며 언어나 부호로표현은 할 수 있으나 물리적인 실체를 갖고 있지는 않고 반드시 어떤 물리적인 현상을 통해서만 표현된다.지식-프리츠매칠럽:다양한 정보들이 체계적으로 상호연관성을 맺으며 기본적인 인과구조를 갖춘 형태가 지식이다.-일반적인 진리를 발견할 목적으로 데이터를 공식화,평가하여 축적하여 둔것-평가과정을 거쳐 일반성이 입증되고 권위를 갖는 안정된 형태로 관련분야의 경험체계 속에 그 위치가 고정된 정보의 집합체정보는 지식이다?-정보는 객관화되기 이전의 인식요소, 단편적인지시그사실에 지나지않음-지식은 이미 객관화된 인식-관련된 정보들이 입수되고 입수된 정보들이 조직화됨으로써 객관화된 인식에 의해 지식이 형성-따라서 정보와지식은 동일한 개념이 아닌 정보가 지식을 형성하여 가는 하나의 요소라 할 수 있다.정보란 무엇인가정보란 사람이 단편적인 데이터를 보고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자기의 인지, 판단을 부과하여 자기화한 지식이 되는 것이다.-정보가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선택과 지속적인 훈련과정이 필요하다.따라서 개별적인 정보의 의미와 그에대한 평가는정보를 이용하는 개인과 사회주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정보는 개인 또는 사회와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그것을 제작한 사람 혼자만의 데이터일 뿐 이다 이러한 일련의 데이터들이 언어와문자를 매개로 외부환경과 소통을 하면 비로소 정보가 된다.-정보는 대상의 실체를 파악하게 하며 일상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유용한밑거름이 되는 것이다.정보의 가치-정보가 인간의 행동에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효과적인 정책결정을 하는데 있어 어떻게 기여하는가에 의해 정보의 가치가 결정된다.-정보의 가치는 정보를 이용하는 개인과 사회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정보는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사적가치와 한 사회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공적가치로 구분되며 이둘은 서로 독립적이며 동시에 갈등의 관계에 있다.-공유해야 하는 정보는 최대한 보급하고, 지켜야할 정보는 최대한 보호해주어야 한다.정보의 특성1.시한성재화로써 정보는 시한성을 지닌다. 시효가 지나면 정보의 가치는 떨어지므로 대부분의 정보는 전달 및 획득속도와획득시점이 중요하다2비이전성정보는 타인에게 전달해도 본인에게 그대로 남아있다.3축적효과성정보는 생산되고 그것이 축적되면 될수록 가치가 커진다.4신용가치성정보의 구득시 정보원의 신용이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같은 뉴스라 하더라도 신뢰도가 높은 정보원으로부터 획득된정보는 높은가치를 지닌다.5무한가치성-물질이나 에너지는 단위상품에 단위가치밖에 없지만 정보는 한가지 정보라도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가치가 있다.6무형성정보는 그 자체가 형태를 지니고있지않다. 정보자체는 물리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고 다만 표현된 내용으로서만 존재한다.7정보다재성정보는 모든 분야에 걸쳐 고루 발생된다.8매체의존성정보는 그 자체가 형태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 존재한다.9표현다양성정보는 무형적이고 매체의존적이므로 그 표현양식에 있어 인간 감각기관의 인지조건에 따라 매우 다양한 특성을 지닌다.정보사회란 무엇인가?-정보가 사회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요소가 되는 사회로써 정보가 최대의 가치로 인식되고 인정되는 사회.-정보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환경으로 부각되는 사회.-정보가 가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정보사회의 등장에 기여한 요인-정보수요의 증가-과학기술의 발달-커뮤니케이션의 발달-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경제성장과 생활습관의 변화정보사회가 등장하게 된 배경-70년대 이후 1,2차 석유파동이후 석유 석탄 목재 등의 자원의 고갈에 대비하여 새로운 대체에너지 개발-에너지소비형 산업구조->에너지 절약형 산업구조로 변화-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는 생산성 향상에 대한 압력이 가중->과학기술의급속한발전->지식,정보의 중요성이 부각됨-물직 및 에너지와 함께 정보를 또 하나의 자원으로 인식하게됨.사회적배경-정보욕구의 다양화-개인욕구의 변화=>대중사회의 특징이였던 획일화 대량화 집권화 그리고 물질추구의 욕구등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쏟아지는 정보속에 다양화 개성화 분건화그리고 정신력만족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임기술적배경-컴퓨터와 전기통신 등의 정보기술의 발전-방대한 양의 자료 보존이나 계산처리를 짧은 시간에 가능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적 노동을 대체 보강-컴퓨터기술의 발전은 정보활용을 더욱 가속화시켰다.정보사회의 정의ㅡ(엘빈 토플러의 견해)1새로운 부의 창출체제는 데이터 정보 지식의 교환에 더욱 의종한다2다품종 소량생산의 다양한 제품 주문화된 제품을 생산한다3이전의 생산요소(토지,노동,원료,자본)은 지식이 대체한다.4금속화폐나 지폐대신 지적정보가 참다운 교환수단이다.5정보를 장악하기 위해 끊임없는 경쟁이 일어난다.6조직의 위계질서가 평면화되거나 폐지된다.7조직단위의 수와 다양성이 늘어난다.(권력의 분산화)8산업혁명에 의해 분리되었던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정보및 지식을 공유한다.->뉴미디어의 등장은 탈 대중화라는 변화를 이뤄냈고 누구에게나 정보가 공개되어 권력의 분산이 이뤄진다.정보사회의 정의(nagroponte의 견해)-미래에는 디지털 기술을 기초로 한 네트워크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탈집중화,세계화,조화,권력부여정보사회의 정의정보란 특정목적을 위해 조직된 자료의 집합.정보화란 이러한 정보를 생성 관리 전달 활용하는 인간활동의 일체정보사회는 정보화가 전체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를 뜻함->결국 정보사회는 정보를 생산도구로 사용하여 서비스나 새로운 정보 및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시킴으로써 사회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사회를 뜻한다.정보사회의 성격기술적 접근-사회변동의 요인을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기인한다.경제적 설명-정보산업이 국민 총생산에서 차지하느 비중으로 기준을 삼는다.직업적 관점-직업의 분포에서 정보노동자의 증가를 근거로 한다.공간적 시각-전 세계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정보의 유통이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한다.문화적 규정-증가된 정보교루에 의해 지역간 국가간의 문화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극복해간다.->모두 독립적이면서 상호연계성을 가진다.정보사회의 구조적 특성-정보와 기술이 지배하는 지식사회-공적위주의 개방사회-사회조직이 복잡하고 다양한 다원사회-절대적 빈곤이 줄어드는 사회-주권의식이 강해지는 민주주의 사회정보사회의 문제점-사생활침해,개인간 국가간 정보격차 비인간화 과잉정보 문화지체 국제간 정보유통 분쟁정보사회에서는...지적 능력이 크게 신장되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인간의 존과 창조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한다.-개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정적인 인간관계가 중시되어야 한다.-개방적 의식이 고취되어야한다.3차컴퓨터 산업의 역사1833 영국의 천문학자며 수학자인 찰스 베비지가 복잡한 연산처리를 자동으로 해결해주는 분석기를 개발1964 - 국 펜실베니아 대학 연구소에서 발명 무게는 30톤 높이는 9피트 18000여 개의 진공관을 설치하여 크기가 작은 체육관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