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철학 사상맹자와 순자맹자는 공자가 죽은 뒤 100년쯤 지나서 태어났고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에서 배웠다. 후세 사람들은 맹자를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 이라고 불렀다. 맹자가 살던 시기의 사람들은 양주의 사상과 묵자의 사상을 따랐는데, 맹자는 이를 배격대상으로 삼았다. 양주의 사상은 “내 몸의 털 한 가닥을 뽑으면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해도 나는 하지 않겠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극단적인 개인주의(이기주의)로 맹자는 양주의 사상을 따르면 개인의 주체성과 개성을 존중하게 되어 이는 자기의 임금을 부정하게 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묵자의 사상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닳아 없어진다 해도 천하를 이롭게 한다면 나는 하겠다.”는 차별없는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맹자는 묵자의 사상을 따르면 남의 부모도 자기 부모와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므로 자기 부모에 대한 부정이 된다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맹자는 극단적인 것들을 지양하면서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부모, 형제)으로부터 사랑해서 조금씩 이웃과 인류에게로 넓혀 나가는 중용(中庸) 의 길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도 인간의 본성에 대해 관심이 있었지만 본성론은 맹자에 이르러 중심주제로 자리잡았다. 본성에서의 성(性)은 마음(心)과 생(生)을 합쳐놓은 것으로 간단히 말해 ‘마음속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도덕성을 인간의 본질로 보고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해 이는 공자의 태어날 때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비판하였따. 맹자의 이런 주장은 공자가 사람의 본질로 내세운 사람다움, 즉 인(仁)을 체계화한 것이다. ‘선’의 근거에 관해서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비유할 수 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고 누구나 깜짝 놀라며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어나는데 이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이런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仁)에서 나오며 이 밖에 의(義)에서 나오는 순오지심, 예(禮)에서 나오는 사양지심, 지(智)에서 나오는 시비지심이 있는데 이 네 가지는 착해질 수 있는 네가지 실마리로 ‘사단(四端)’이라고 한다. 맹자는 사단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은 몸에 네 개의 팔 다리가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반대로 ‘악’의 원인에 관해서는 ‘우산의 나무’를 비유할 수 있다. 나무가 빽빽했던 산이 나무꾼들에 의해 베어지고 소들이 풀을 뜯어 먹으면서 헐벗게 되었을 때, 이 산이 처음부터 나무가 없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본성도 착한 마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나쁜 환경 때문에 본래 모습은 이러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의예지는 ‘선의 씨앗이고 사단은 여기서 나오는 싹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맹자는 인과 의에 대하여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가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 모르니 슬프도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닭과 개는 찾을 줄 알면서 자기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 모른다 하였다. 여기서 맹자는 “자포자기”란 말을 썼는데, 단순히 어떤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자기를 함주로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는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 뿐이다.”라고 강조하였다.순자는 지금으로부터 2,300여 년 전 중국 전국 시대 후기 사람이다. 정치적으로 전국칠웅의 각축이 첨예한 시절에 태어나서 서쪽 진나라에 의해 중원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어 갈 무렵 생을 마감했다. 사상적으로는 제자백가의 다양한 경쟁이 절정에 이를 무렵 공부를 시작했으며, 정치적 이유로는 종횡가와 법가가 우세한 시대였지만 최고의 학자로서 유가의 정통한 계승자로 자임했다. 당시는 공자를 추종하는 무리의 내분이 치열하고, 특히 맹자에 의해 공자 사상의 정치적 의미가 더욱 풍부해진 시기였다. 그는 격동의 와중에서 공자의 제자인 자하, 중궁 등의 학통을 계승했으며, 제자백가의 모든 학설을 섭렵하는 치열한 학문적 노력으로 초기 유가 사상의 학문적 체계를 집대성했다. 그의 직제자인 한비와 이사는 법가로 흘러 스승과 다른 길을 걸었지만, 후대 유가의 경학은 대부분 순자를 이었으니 성리학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유학(신유학)이 있기 전까지 한·당 의 유학은 순자 학설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순자가 언제 태어나 언제 사망했는지는 어떤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후대 연구자들이 근거하고 있는 앞의 문헌들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그의 행적을 더듬어볼 수는 있다.순자는 서기전 336년경 지금의 중국 산서성 의씨현 변경에 있던 순나라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전국 시대 당시 조趙나라에 속해 있었으며, 시기는 조숙후趙肅候 17년에 해당한다. 그래서 순자는 조나라 사람으로 불린다. 유가의 경전으로 공부을 하여 열셋에 수재라는 소리를 듣고 열다섯 무렵 당시 천하의 학자들이 학문 경쟁을 벌이던 제나라의 직하학궁稷下學宮에서 유학한다. 스물두 살 무렵에는 북의 연燕나라를 유림하여 연왕 쾌 를 만난다.순자의 학문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서기전 286년(제민왕薺 王 38년)경 정식으로 제나라 직하학궁에 들어가 학문 경쟁을 하기 시작한 때로 여겨진다. 제나라 재상과의 불화로 잠시 초나라에 갔다 오기도 했지만, 쉰셋 무렵부터 일흔하나 무렵까지 제양왕薺襄王 밑에서 학궁을 책임진다. 전병田騈 등 당시 저명한 원로들이 모두 죽자 순자가 가장 연로한 어른으로 대접받았으며, 제나라에서 실무 부서 없이 작위를 주는 열대부列大夫를 보충할 때 순자는 직하학궁의 우두머리인 제주祭主를 세 번이나 역임했다.제나라 사람의 모함으로 순자는 이웃 초나라로 가게 되는데, 당시 저명한 재상인 초나라 춘신군春信君은 그를 사방 백리의 난릉蘭綾 지방 영令으로 삼으려 한다. 이때 어떤 사람이 춘신군에게 "은나라 탕왕은 사방 70리로, 주나라 문왕은 사방 백 리로 천하를 얻었습니다. 순자는 그들에 버금가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지금 그에게 백 리의 땅을 준다면 장차 초나라가 위태로워지지 않겠습니까?"라고 간했다. 이에 춘신군은 순자를 물러나게 했고, 순자는 초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맹자와 순자의 비교- 天 에 대한 입장 차이일단, 맹자와 순자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은 하늘(天)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하였다. 맹자는 하늘(天)은 스스로 의지를 지녔다고 생각하여 천명사상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하늘이 인간의 선함을 미리 결정하였다고 생각하여 천명사상에서부터 惻隱之心(측은지심), 羞惡之心(수오지심), 辭讓之心(사양지심), 是非之心(시비지심)의 ‘성선설’이 나타나는 배경이 된 것이다.
대학생과 사회봉사의 관계대학생 사회봉사활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연구하여 국가와 인류사회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대학에서 봉사기능을 중요하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봉사기능은 학생 들이 교실에서 배운 학습과 재능을 몸으로 체험함으로써 실제화 할 수 있고, 스스로 참여하여 실천하는 노력을 배양함과 동시에 협동심의 함양과 희생적 봉사정신을 갖게 하고 바람직한 인간으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대학에서 사회봉사의 실천은 곧 대학의 교육 목표를 충실히 이행 하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 오늘날 대학은 장래에 사회지도자가 될 대학생들에게 공동체 의식과 윤리적 책임의식을 고양할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의 사회봉사는 대학생들에게 공공 및 지역사회 사회봉사활동을 하게 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윤리적 시민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훌륭한 교육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학 자원봉사활동이 본격화된 시기는 1990년대 초이다. 1990년 중반부터 일반대학이 사회봉사 학점제를 도입해 시행한 이후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대학들이 교과과정 속에 사회봉사 과목을 개설하였다. 교과과정과의 연계 외에도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권장하고 지원하는 추세이며 1995년 이후로 중고교 생활기록부에 사회봉사 기록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학에서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또한 대학별 사회봉사단의 출범과 사회봉사센터의 설립은 대학 사회봉사의 발전을 가져 오는 일익을 담당하였다. 특히 1996년에는 대학총장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대학 사회봉사협의회를 구성해 대학의 기능 가운데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봉사기능의 활성화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는 연구 및 교과목 개발, 대학생 해외봉사단 파견, 대학 과 초중등학교의 연계 봉사활동, 봉사활동 프로그램 공모 및 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대학 자원봉사활동에 공헌 하고 있다.사회봉사라는 교양과목으로 1995년부터 대학생들의 자원봉사활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2001년 사회봉사 관련 교과목 개설 현황은 많은 질적양적 발전을 보여 왔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집단이지만 단순히 교육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교육 봉사 소감문봉사 학교 : 연세WISE봉사 과목 : 물리같은 과 친구의 추천으로 교육현장학습지원 봉사라는 수업을 함께 듣게 되었다. 집이 멀어서 자주 가지 않아서 주말인 토요일에 하는 봉사를 신청 했는데 마침 학교 내에 있는 연세WISE센터에서 하는 교육 중 물리 반을 맞게 되었다.첫날은 생물 반을 맞게 되었다. 혈압 측정하기 라는 수업을 하였다. 첫날이라서 미리 가서 수업준비를 하지 못하였는데 다행히 전공이 물리치료라 수업시간에 혈압 측정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선생님을 도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원래는 도우미 교사로서 수업 전에 미리 가서 수업을 준비하고 수업 시간 에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점을 옆에서 도와 주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첫날의 수 업은 학생들에게는 혈관을 직접 찾는 것은 아니지만 잘 잴 수 있는 부위를 찾아서 하 는 실험이라 조금 어려운 실험이어서 그랬 는지 담당 선생님과 따로 각 조를 돌면서 직접 실험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정말 선 생님이 된 느낌이었다. 초등학생들이라서 그런지 정말 시끄럽고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가장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번째 수업부터는 계속 물리 반을 맡게 되었다. 어렸을 때나도 여기 연세WISE센터 같은 과학 교실을 다녔었는데, 그것이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실험을 하기 전에 선생님께서 책을 보면서 실험 방법과 실험 원리에 대해 설명을 하고, 만들어보는 순서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물리 반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는데 첫 번째로는 나침반 만들기가 있었다. 철사를 자석으로 문질러 자화시키는 간단한 실험 이었다. 학생들이 철사가 자화될 만큼 오래 문지르는 것을 잘 하지 못해서 열심히 도와주었다. 팔이 아프도록 열심히 문질렀다.세 번째 실험으로는 뉴턴의 제 3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이용한 증기보트 만들기를 하였는데 이 실험이 가장 어려운 실험이었던 것 같다. 스티로폼으로 배의 형태를 만드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 때 칼을 사용하여 배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어서 조금은 위험한 과정이었다. 보트 바닥 아래로 내려온 알루미늄 관 을 보트 뒤쪽으로 구부려 증기가 배출되도록 하는 과정도 어려워서 도와주었다. 마지막에는 주사기로 관안에 물을 넣고, 또 주사기로 병뚜껑에 올려놓은 화장 솜에 알코올을 적셔준 다음에 준비 해 놓은 수조에다가 띄워서 증기보트가 관에서 가열되어 나오는 수증기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관찰 하였다. 학생들이 만드는 것을 도와주면서 도우미들도 함께 만들어 보았다.거울 만들기 실험은 하드보드지에 거울 같은 스티커를 붙이는 실험이었고, 만든 거울로 책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비춰 대칭시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찾아보는 간단한 실험이었다. 수업 전에 미리 와서 하드보드지와 거울 스티커를 알맞은 모양으로 잘라놓는 준비를 하였다.용수철저울 만들기 실험에서는 용수철과 저울 부분을 묶을 실과 끈을 잘라 놓았다. 플라스틱 관을 통해 끈을 넣어 묶고 거기에 용수철을 묶고 그 밑에 실을 묶어 저울을 만드는 것이었다. 바깥 투명한 플라스틱 부분에 용수철 아래로 눈금 스티커를 붙였다.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원주 따뚜 공연장에서 어린이날 과학행사가 있었는데 그 곳에 봉사활동을 갔다. 여러 학교와 단체에서 행사를 하기 위해 왔다. 우리는 토네이도 만들기라는 실험을 했다. 페트병을 이용하여 토네이도를 재현해 보는 실험이었다. 페트병 두 개가 필요한데 하나의 페트병에 물을 2/3 정도 넣고 물을 넣지 않은 페트병의 입구와 물을 넣은 페트병의 입구를 연결한다. 그 사이에는 그냥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있는 특수한 연결 장치가 있었다. 연결한 후 물이 있는 부분을 뒤집어 원을 그리며 흔들면 토네이도 같은 모양이 생겼다. 어린 아이들과 부모님이 많이 찾아와서 실험을 하고 자꾸 원리를 물으셨는데,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셨지만 막상 실제로 가르치려 하는 상황이 오니 너무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알기 쉽게 열심히 설명 하였다. 나도 어렸을 때 엄마와 같이 과학 축제 같은 곳에 가서 실험하고 선생님들께 질문을 많이 했었는데, 그때 그 선생님도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무려 7시간이나 하였는데 더운 날씨에 너무 힘들었지만 쉬는 시간에, 다른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 실험 하는 곳에 가서 구경도 하고 어린이날이라 어린이들의 장기자랑도 있었는데 그것도 구경하고 하여 재미있고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