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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폴레옹은 영웅인가 독재자인가
    나폴레옹은 영웅인가? 독재자인가?나폴레옹은 대체로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고 간 독재자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 또한 수업중의 영상을 보기 전에는 나폴레옹을 독재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디오를 본 후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세계사의 흐름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라고 생각되어 나폴레옹이 단순히 전쟁광에 독재자로 평가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혁명이후 프랑스는 이념대립과 외세의 침입으로 혼란한 상태였다. 이 와중에 1796년 나폴레옹은 이탈리아로 파병된다. 그는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알프스산맥을 건너 이탈리아를 제압하고,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수도인 빈을 점령했다. 프랑스에 항복한 오스트리아는 캄포포르지오 조약을 체결하고 롬바르디아를 프랑스에 넘겨준다. 이 승리로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의 인기는 높아지게 되었다. 국내 상황이 매우 혼란할 때, 외세의 침입을 막지 못한다면 국가 존립에 커다란 위험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무찌름으로써 외세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시켜 혁명이후의 국내정세도 점차 안정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그는 혁명이후 혼란한 정국을 안정시켰다. 혁명정부의 탄압을 받던 로마 카톨릭 교회와 정치 및 종교 조약을 맺어 국내의 종교 간 대립을 완화 시켰다. 또한 왕당파나 자코뱅파를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선별해 정치적인 대립을 없애는데도 주력했고 세금과 행정제도를 정비하고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힘썼다. 1800년에는 프랑스 은행을 설립하여 재정적인 안정을 도모했다. 특히 1804년에 제정한 나폴레옹 법전은 세계 최초의 민법전으로 ‘만민의 법 앞에서의 평등’, ‘종교의 자유’, ‘경제활동의 자유’등 근대적인 가치관을 도입했다. 이는 훗날 전 세계의 법률체제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그는 파리를 세계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에 대한 근대화를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파리 시내에 분수를 설치하고 묘지를 정리했으며, 공공시설과 건축물들을 정비하였다. 특히, 그가 건설을 명령했던 개선문과 에펠탑은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상징물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외에도 위인들의 동상을 세우고, 교량을 정비하기도 했다. 혁명이후의 파리는 아마도 많이 황폐해지지 않았나 싶다. 나폴레옹은 도시의 미관을 다시 정비하고 공공시설들을 정비하여 시민들의 편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인문/어학| 2012.02.27| 2페이지| 1,000원| 조회(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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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대혁명 원인, 경과, 결과 평가A+최고예요
    17세기 후반, 프랑스는 유럽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태양왕 루이 14세 아래서 절대주의가 확립되어 귀족들의 권력투쟁이나 암투 등은 숨을 죽이던 시대였다. 그리고 진시황의 아방궁처럼 사치와 향락으로 가득 찬 베르사유 궁전은 바로 그 상징이었으며 부르봉 왕조의 위대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궁전의 ‘거울의 방’이라고 불리는 화려한 연회장에 모여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던 귀족들은 근 2세대도 못 가 자신들이 누리는 이런 체제가 붕괴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1.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부터 1799년 11월 9일까지 약 10년간에 걸쳐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으로써, 절대왕정의 구제도를 타파하고 자유평등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한 전형적인 시민혁명으로 발생 원인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첫째, 앙시앵 레짐 즉 혁명 전의 프랑스 사회 구제도의 모순에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3개의 신분이 존재하였다. 특권신분인 제1신분과 제2신분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 대다수는 제3신분에 속하였다. 농민은 그 수입의 절반은 빼앗겼으며, 이들에게 도로 부역 같은 노동력 징발도 큰 고통이었다. 또한 제3신분 중 가장 중요한 계층인 시민계급은 경제면에서 봉건적 잔재 때문에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시민층은 소상인과 수공업자를 포함하는데 이들은 자본주의 발달로 인해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할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신분의 불만이 높아져 구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둘째, 계몽사상의 영향이다. 1789년 프랑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고통 상태에 있었으나 다른 유럽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절실하게 불행하다고 느꼈고 사회 비판 의식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계몽사상의 영향이었다. 계몽사상의 내용은 ‘인간 이성의 힘과 그것에 의한 인류 진보로의 믿음’에서 논리가 전개된다. 계몽 사상가들은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는 계몽을 통하여 무지와 미신을 타파하고, 이성에 어긋나는 구습과 낡고 모순된 제도를 과감히 시정하여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존하는 질서를 타파하려하였다.셋째, 재정의 위기이다. 이 때 프랑스는 국가 전반의 경제 사정도 계속 악화되었다. 1786년 영국과 맺은 자유통상조약으로 영국의 값싼 상품이 유입되면서 프랑스 산업은 위기에 빠졌다. 프랑스는 영국에 원료와 식량을 수출했는데 오히려 생필품 값만 올라 사회 불안이 점점 심해지면서 당시 파리 노동자 인구 가운데 실업자가 50%나 되었다. 이러한 사회 전반의 경제적 위기와 함께 왕실 재정의 위기는 혁명 발발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다.2. 프랑스 대혁명의 경과① 귀족이 국왕을 강요하여 소집을 요구하고 특권층의 과세 정당성을 확인시키려 의도하였으나 제 3신분 대표의 압력으로 국민적 통합차원의 3부회소집에 국왕은 굴복하였다. 개혁파는 농민들의 편에 서서 농민들을 도왔던 재무총감 네케르의 복귀를 촉구하였다. ② 미라보, 시이예스의 주도하에 실내운동장인 테니스코트에 모여 “헌법제정을 요구하고 해산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였다. 제헌의회는 미라보등이 주도하면서 프랑스 국민만이 진정한 대표”란 인식이 강화되었다. 1789년 6월 20일, 국왕은 결국 시민대표에 굴복하고 국민대표기관인 제헌의회를 인정하고 네케르를 복귀시켰다. 이는 주권재민의 출발을 의미하는 전환점이었고, 평민들은 이후 “절대왕정의 폐지를 요구” 함으로써 사태는 급진적으로 발전되었다. ③ 루이 16세는 왕당파의 지원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시위를 하였고, 네케르를 다시 해임시켰다. 격분한 파리 시민들은 민병대를 조직 하고 폭동사태가 발생하였다. 혁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가자 국왕은 군대를 강화하고 베르사이유를 호위케 하였다. 이러한 국왕의 군대동원방침은 파리 시민들이 구체제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귀결되었다. ④ 루이 16세는 시민들의 혁명의 심각성을 알게 되어 베르사유궁전에서 나와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⑤ 프랑스의 혁명군을 중심으로 한 입법의회가 결성이 되고 라파이예트가 기초한 인권선언문이 국민의회로 부터 공포되었다. 이 인권선언문은 주 프랑스 미국 대사인 토마스 제퍼슨의 자문을 수차례 받고, 영국의 권리장전과 미국 독립선언서에 큰 영향을 받았다. ⑥신헌법은 민주주의 원칙을 수용하였다지만 여전히 1791년 헌법에는 1년에 3일분임금에 해당하는 액수의 세금 납부자에게만 참정권을 주는 제한적인 요인은 민중세력인 급진파의 불만으로 남겨졌다. 시민들은 파리봉기를 주도하고 의회는 파리로 옮겨갔다. 루이 16세는 굴복하여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의 입헌군주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⑦ 1792년 제헌의회를 통한 혁명적 과업은 1792년 여름 절대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귀족층의 반혁명 위협은 계속되었다. 베스피에르를 중심으로 한 자코벵주의자는 민중과의 연계성의 강조하여 혁명과정에서 파리 민중이 부르주아적 사상에 도취되는 정치의식을 강화시켰다. 1793년 파리봉기는 * 루소의 급진적 평등주의를 수용하여 인민주권론을 옹호하였다. 이는 몽테스큐, 볼테르의 온건한 자유주의가 쇠퇴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로베스피에르는 공안위원회를 설치하고 혁명정부 조직법을 통과시켜 혁명재판을 통한 공포정치를 합법화시켰다. 그는 과격한 급진적 민주 공화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로써 불과 몇 개월 사이 1500여명이나 교수형에 처하고, 귀족의 재산 몰수와 영주제폐지 등 급진적 개혁정책을 단행하였다.
    인문/어학| 2012.02.27| 2페이지| 1,000원| 조회(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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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경제 이전의 한국무역
    < 목 차 >Ⅰ. 서론 1Ⅱ. 통일신라까지의 무역 11. 부족사회시대의 무역2. 삼국시대의 무역3. 통일신라의 무역Ⅲ. 고려의 무역 2Ⅳ. 조선의 무역 31. 쇄국시대2. 개항기Ⅴ. 일제식민경제의 무역 51. 연대별 무역정책2. 무역의 상품별 구성Ⅵ. 결론 6[참고문헌]Ⅰ. 서론전제군주시대에 나라 사이의 경제거래는 국가가 사절단을 파견하여 예물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민간상인에 의한 무역도 대체로 정부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관리되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민간인에 의한 자유무역이 움트고 있었고, 19세기말 개항부터 무역은 크게 들어났다. 한편 일제 식민지배에서의 한국무역은 식민지 경제구조의 빼앗김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 리포트는 한국무역의 지난날을 설명한다.Ⅱ. 통일신라까지의 무역1. 부족사회시대의 무역원시사회에서도 교환은 비록 규모가 작고 우연적이지만 공동체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중국 기록에 의하면 B.C 7세기에 고조선은 이미 중국의 제나라와 무역을 하고 있었다. 고조선 시대에는 교환경제가 상당히 발달하였던 것 같다. 부족국가의 발전기인 부여 삼한시대에는 대외무역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농업과 수공업이 발달하고 호농 또는 지배층에 부가 집적됨에 따라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정치적 집단이 무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부여는 서력기원을 전후하여 후한과 빈번히 무역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민족과 사무역)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밖의 다른 부족들도 중국과 무역하고 있었다. 또한 왜인과 주호상인도 왕래하여 통상하였다.)2. 삼국시대의 무역)삼국시대의 대외무역은 국가 간 예물교환의 형식 즉, 조공형식의 무역이 일반적이었다. 정치적으로 강대한 국가에 대하여 조공 또는 세공이란 명목으로 예물을 진상하고 그 답례로서 상대국의 생산물을 받는 것이었다. 고대 삼국의 대중국무역은 이러한 조공형식의 무역이었으며 우리나라는 항상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고구려는 제 6대 태조왕 때부터 주면의 부족들을 정복하고 부족연맹의 영도적 지위를 강화하여 집권적 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한의 침공세력을 물리치고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고구려의 판도가 커지고 부강해짐에 따라 귀족의 사치품 수요가 증가하여 능동적으로 중국과의 통상을 추진하게 되었다. 무역은 국경지방에서 사사로이 행하여지기도 하였으나, 귀족의 사치품은 두 나라의 사신이 왕래하는 기회에 수입되었다. 고구려는 일본과도 공무역을 하여 철순, 철적, 황금 등을 수출하고 일본의 토산물을 수입하였으며, 문화도 전파하였다.백제는 고구려, 신라뿐만 아니라 중국의 남북조, 일본과도 공무역을 하였다. 중국에 대한 수출품은 금포, 해산물, 과하마 등이고 수입품은 불전, 금포, 채백등이 포함되어있다. 일본으로의 수출품은 채견, 검장모, 각궁, 불상, 불전 등이었고, 수입품은 양마, 궁, 견사, 포 등이었다. 한편 박사, 불사, 직공, 봉녀 등의 인력도 보냈다.신라의 대외무역은 6세기부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신라는 백제, 고구려와도 교역하고 있었지만 대륙과는 지리적 조건이 좋지 않아 비교적 늦게 추진되었으며 일본과도 공무역을 하였다.3. 통일신라의 무역통일신라는 대외적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 데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신라의 대당무역은 가급적 평화적인 방법으로 조공이란 형식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편 신라는 일본과도 교역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이들 대외무역은 모두 국가의 통제 하에서 행하여진 공무역이었으며, 당시의 왕실이나 봉건지배층의 사치생활을 위한 것이었다.그러나 9세기 이후에는 중앙집권적인 봉건지배체제가 약화되어감에 따라 일반상인들의 사무역이 빠르게 활기를 띄게 되었다. 상인들은 수십 척의 상선을 이끌고 남해와 황해를 왕래하면서 당과 무역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의 해안 일대에는 여러 곳에 신라방이라고 하는 신라인의 거주지가 형성되었다.발해는 8세기 초에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고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였다.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발해를 공격하려다 실패한 후, 발해의 대신라국교는 거의 단절되었지만 당이나 거란, 일본과는 사절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사신의 예물교환형식을 취하는 공무역 이외에 상인들의 사적인 거래도 성행하였다.Ⅲ. 고려의 무역고려시대의 대외무역은 앞 시대와 비교하여 몇 가지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대외무역의 범위가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역품의 종류에 있어서도 매우 다채로웠다. 그러나 대외무역의 형식에서는 앞 시대와 마찬가지로 조공 또는 내공무역을 답습하였다. 중국과의 교역은 주로 조공형식을 취하였으며 그 밖의 대외교역은 모두 수동적인 내공형식을 취하였다.대륙과의 무역은 고려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상품의 유통이 많아지고, 계절풍을 이용한 항해술이 발달하여 보급되었으며, 또한 송의 중상정책 등으로 말미암아 여송 정부 간의 관무역과 상인간의 사적인 민간교역이 크게 발달하였다.대송 관영무역은 조공의 형식을 취한 사절무역이었다. 송은 북방의 거란과의 관계 때문에 고려와 친선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소려와의 무역을 적극 권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송의 상인들이 도래하게 되었다.태조 9년(926년) 거란이 발해를 멸하게 되자 고려와 거란의 국교와 조공무역이 끊어졌다. 그러나 현종10년 양국 간에 화평이 성립된 이후 사절이 왕래할 때마다 국신물교환이 이루어졌고, 국경지방에서는 호시(互市)가 열렸다. 호시를 통한 밀무역은 상당히 활기를 띄었다.여진과의 무역은 그 형식에 있어서 전형적인 내공무역이었다. 그러나 내공무역도 여진족이 금을 세운 이후 성격이 변화하였고, 공마도 중단되고 말았다.고려의 몽고에 대한 패전과 항복은 정치적으로 주체성을 잃게 되었으며, 조공형태의 관영무역을 하게 되었다. 여·원간의 무역은 몽고측의 약탈적인 몇 차례의 관무역이 있었으나 미미하고, 상인에 의한 일반무역과 밀무역도 미미하였다.당시의 대일 교역은 특이할 만한 것이 없었다. 고려와 일본을 서로 수호사를 파견하였으나 서로 경계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일본의 해적선이 발호하였기 때문에 경계가 심하였다. 고려사에서 일본의 진공에 대한 기록은 문종 이후에 나타난다. 대일 공무역은 특산물이 교환되고 있었다.고려시대의 대외무역에서 이채를 보인 것은 대식국상인과의 무역이었다. 그들은 먼 지역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품은 대체로 진귀한 남양산물이여서 고려의 지배층은 그들을 매우 후대하였다.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와 마찬가지로 밀 무역이 성행하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밀무역은 1세기 중엽 무인정권이 수립됨에 따라 더욱 성행하였다. 국가는 밀무역을 엄하게 단속하였으나 그 효과는 거두지 못하였다.Ⅳ. 조선의 무역1. 쇄국시대조선시대의 대외무역은 주로 중국 명·청 양조를 비롯하여 일본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다른 나라들과는 개항부터 비로소 본격적인 관례를 맺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서는 쇄국주의적 정책이 더욱 엄중하게 실행되었고 또한 상공업 멸시의 기풍도 한층 강화되었기 때문에 표면상으로는 고려시대와 비교하여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조선시대의 대외무역을 유형별로 보면 명·청 등 강대국에 대한 조공무역과 이를 기회로 하는 사절 일행의 사무역, 일본에 대한 수호사행 무역과 삼포, 염포, 제포에서의 왜관무역, 조선 중기 이후 육접국경지대에서의 대시적호시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또 이에 대한 국가의 태도는 상대국의 의분을 사지 않는 한도에서 가급적 통제 또는 억압하는 것이었다.그 결과 강대국에 대한 조공무역은 앞 시대와 같이 강압적으로 속행되었지만, 객관무역은 오히려 쇠퇴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호시에서는 일반상인을 물론 일반국민의 대외교역도 허용되고 있었는데, 이는 조선의 무역에서 가장 발전적인 것이었다.일본과의 무역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고려 말기부터 왜구의 약탈로 일본과의 수교는 끊어졌으며 두 나라의 사행무역도 중지되었다. 조선의 태조는 왜구회유책으로 사신의 내왕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대마도와 교역선의 내왕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의 대일무역은 일본이 적극적이어서 대마도와의 교역에 있어서도 일본은 세견선의 증가를 요청하였고, 조선은 그 수를 항상 줄이려 하였다. 또 일본의 잠상은 많이 들어왔으나 조선 상인이 일본으로 건너간 무역은 없었다.조선은 중국과 일본과의 무역이 주가 되었는데, 중국과의 무역은 활발하였고 일본과는 부진하였다. 그 밖에는 유구(오키나와)를 비롯하여 남만제국 즉 지금의 타이, 인도네시아 등과 교역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들과의 교역은 주로 내헌무역으로 산발적이었으며 무역량도 크지 않았다. 유구 상인들은 비교적 빈번히 내왕하였다.2. 개항기1876년 일본과의 강화조약을 계기로 조선의 쇄국주의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또한 조선은 1882년 5월 미국과 수호통상관계를 맺고 그해 8월에는 청국과의 무역과의 무역관계를 새로이 상민수륙무역장정하고, 이어 영국, 독일, 러시아, 이태리, 프랑스와 근대적 통상관계를 맺게 되어 전국의 중요항을 모두 개방하게 되었다.개항부터의 대외무역은 그때까지 주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정치적 예의 또는 인적 국가와의 상호교류관계 등으로 수행된 전근대적 대외교역관계와 성격을 달리한다. 곧, 근대무역은 이제 국민경제의 이해에 따라 전개되었고, 개항에 따라 근대적 공장제품이 들어오게 됨으로써 이는 조선의 전통적인 국민생활과 국내 산업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개항 뒤의 근대무역은 조선의 국민경제를 점차 상품경제로 변화시키면서 종래의 전통적인 가내수공업 자급자족의 경제체제를 분해시키며, 한국의 사회경제를 크게 바꾸었다.)Ⅴ. 일제식민경제의 무역1. 연대별 무역정책
    경영/경제| 2012.01.03| 8페이지| 2,000원| 조회(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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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이전협상과 기술가치평가
    목차Ⅰ.서론 ------------------------------------- 2Ⅱ. 국제기술이전협상전략 ----------------------- 21. 협상 단계별 전략2. 협상의 성공전략 및 전술3. 협상당사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4. 협상시의 유의사항5. 기술이전협상의 사례Ⅲ. 기술가치평가 ----------------------------- 91. 기술가치평가의 의의와 필요성2. 기술가치 평가의 방법3. 가치평가 실시 방안Ⅳ. 결론 ----------------------------------- 11참고문헌, 참고사이트Ⅰ.서론협상이란 의견 차이를 좁혀가면서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기술이전에 있어서 기술공급자와 기술도입자간에는 엄연한 의견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그 차이는 매우 미미하여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큰 의견차이로 인해 협상 착수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의견차이가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견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례에서 목적 달성을 위한 다양한 협상의 기법이 동원되는 것이다.Ⅱ. 국제기술이전협상전략1. 협상 단계별 전략(1) 기술거래의 목적과 협상대상의 명확한 정립기술거래를 통해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 지, 기술거래의 목적 및 동기를 명확히 하고, 협상대상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기술거래에 있어서의 협상대상은 총체적 및 개별적 측면에서의 분배가능 이익과 분담가능 리스크가 된다. 주요협상대상은 협상대상에서 배제되는 것, 경우에 따라 협상 대상이 되는 것, 원칙적으로 협상에 의해 조정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2) 기술거래 관련 협상환경과 상대방 정보의 조사와 인식구체적인 협상목표의 설정을 위해서 기술거래와 관련된 협상환경과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충분히 조사하여 인식하도록 한다. 구체적으로 정보의 입수가 필요하다. 유리한 협상을 위해서는 사전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조사해 두는 것이 중요하므로 협상정보의 수집을 위해 필요하다면 질문서 등복수의 인원으로 하되 총인원은 홀수가 되게 한다. 협상과정에서의 내부의견 조정을 위해서는 홀수가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② 기능별 역할분담을 기초로 선발하되 팀워크를 중시하여 선발한다.③ 상대방의 문화와 협상스타일에 친숙한 자를 우선으로 한다.④ 당해 거래 또는 프로젝트를 장래에 계속적으로 수행할 사람을 포함시킨다.⑤ 국제계약의 경우 국제 감각과 이 문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구비한 자를 우선적으로 선발한다.⑥ 선발된 협상 팀에게는 명확한 협상의 범위와 권한을 부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임장을 작성하여 휴대시킬 필요가 있다.(6) 설득을 위한 논리와 증거 준비객관적이고 공정한 자료를 기초로 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을 준비하고, 법률 및 제도에 위반 또는 저촉됨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Unfairness의 주장이 가능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7) 양보항목, 양보범위 및 양보순서의 사전 각본화협상이란 적정수준의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타협과 양보의 연속적 과정이므로 협상 항목별 가치나 중요도를 재평가한 후 ,재평가한 항목들의 양보범위와 양보순서를 미리 결정한다.(8) 종합 시나리오에 따른 예행연습기능과 역할의 분담(전체와 부분, 기술과 영업, 사업측면과 법적 측면, 조직의 각 기능부분별 등)을 인식하고, 전체적 통합성과 궁극적 목표에의 기여도를 고려하여 사전 각본에 따른 예행연습을 실시한다. 일관성과 통합성의 유지를 위해 발언창구를 일원화한다.(9) 초안의 준비초안을 자기 측에서 먼저작성, 제시하는 편이 유리하다. 그 이유는 자기 측에 유리하게 초안을 구성할 수 있고, 일이 성사되는 방향과 강도를 조정할 수 있으며, 사유나 근거의 제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통상은 먼저 제시한 자기 측의 초안을 기초로 협상이 진행된다.2. 협상의 성공전략 및 전술)(1) 부풀리기 전략원하는 것 이상으로 부풀려 요구함으로써 협상의 여지가 생긴다. 협상 초반에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요구할 수 있는 최계약이 체결되어 후일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 협상당사자는 항상 의사결정권자의 결정단계라는 여지를 두고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면 보다 탄력적으로 협상에 임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5) 책임전가 전략대리인의 사용 전략과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협상담당자가 어느 정도까지는 협상을 마무리하되, 상급자나 대학교의 입장에서 도저히 수용이 되지 않는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을 통해 상대방의 기대를 낮추거나 상대방 조직에서 있을 수 있는 분쟁을 막을 수도 있다. 또한 자연스럽게 당초 의도한 금액 등 제시조건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킬 수도 있다.(6) 최후통첩 전략최종적으로 불리한 쪽에서 협상을 끝내고자 할 때 주로 사용된다. 반대로 협상에서 유리한 쪽이 불리한 쪽에 압력을 넣어 기대 이하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할 때에도 사용된다. 최후통첩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조목조목 캐물어 보든지 못 들은 체 하고 협상을 진행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일 기술 도입자가 최후통첩을 전략으로 삼는다면 대학교에서는 분명한 태도로 응하지 않을 것임을 표시한 후에 일정시간이 경과한 뒤에 협상결렬시의 협상방법을 기초로 하여 재협상 들어가도록 한다.3. 협상당사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협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개인적인 자질이나 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협상과정을 쉽게 또는 어렵게 풀어나가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진 협상 결과를 어느 한 순간에 망쳐버리는 것도 자질의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 협상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이든, 조직 집단이든 아니면 개인이던 간에 여러 가지의 자질과 변수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협상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를 아래에 나타내었다.변수주요내용임무수행변수-체력, 준비성과 계획성, 구매, 판매에 대한 지식-믿음성과 근면성, 목적달성을 위한 열의-전반적인 문제해결 능력, 개인적 창의력적극성변수-인내력과 결단력, 경쟁심, 용기-거래와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협상의 내용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대학교 입장에서는 가급적 책임을 질 수 있고,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을 협상의 상대방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자와 협상테이블에서 상호 논의를 거쳐 합의에 이른 경우에는 그것을 뒤집을 만한 용기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 경우에는 중요한 조건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의사결정권자를 핑계로 삼아 합의를 뒤집는 경우가 발생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술이전전담조직 실무자로서는 가급적 운영자 또는 최고책임자를 대상으로 협상에 착수하도록 하며, 책임권한이 없는 자와는 중요한 조건에 대한 협의를 지양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2) 협상 상대방의 파악㈎ 협상상대방의 자격, 권한협상을 진행할 때에는 협상상대방이 실제로 협상을 진행하고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하여 먼저 확인하여야 한다. 이로부터 협상상대방이 의사 결정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거나 실제로 최종 의사결정권자라는 판단이 선다면 협상 상대방으로서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협상의 진행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협상상대방이 의사결정권이 없는 사람이라면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의사결정권자의 명령이나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협상이 지지부진해 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어느 수준 이상의 의사결정권이 있는 자와 협상에 착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협상상대방의 성격협상의 상대방이 어떠한 성격의 소유자이냐에 따라서 협상의 절차나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성격이 급하고 협상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손쉽게 협상의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협상이 결렬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그러나 의외로 협상 전과정에 걸쳐서 절대로 침착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므로 기술이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협상의 마지막 단계까지 갈 것이라고 판단하는 신중하게 접근하되, 다소 성격이 급한 사람들인 경우에는 그에 걸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를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할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하여야 한다.㈒ 협상상대방의 현 상황기술이전의 경우에도 상대방의 상황파악 및 분석이 큰 도움이 된다. 현재 협상 상대방이 이전대상기술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 것인지, 이 기술의 가치를 얼마로 생각하는지 ,기술이전을 함으로써, 생산, 판매과정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면 협상진행에 유용한 정보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2) 비밀보호의 필요성)기술의 개발이 시작되거나 완성되고, 이 기술을 제 3자에게 이전하는 것을 고려하거나 결정한 이후 실제 기술이전계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기술보유자가 반드시 하여야 할 점은 해당 기술에 대한 산업재산권을 확보하고 이를 유지하는 작업이다. 만일 해당기술에 대하여 적용되는 산업재산권이 없고 이런 기술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의 보호막이 없다면 제 3자가 기술보유자와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하고 대가를 지불하여야 할 이유가 하등 없기 때문이다. 기술도입자 입장에서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선의의 의도로서 계약을 추진하고자 할 것이나, 진행과정에서 계약이 여의치 않을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처음부터 계약체결의 의사 없이 단순히 기술만을 염탐할 목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특별한 비밀보호의 장치를 마련해 놓지 않는다면 향후 협상 결려 이후에 해당 기술을 기술도입자가 임의롭게 활용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보안유지나 비밀보호의 필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5. 기술이전협상의 사례(1) 계약제품 개수에 일정 금액을 곱한 경우A사는 특수 금속부문의 연구결과물을 활용하기 위하여 그 용도를 찾던 중 골프채의 헤드 부분에서 용도를 발견하고서, 골프채 제조 및 유통에 종사하는 B사에게 연구결과물인 특허의 실시 및 사용권을 허락하기로 하고 경상기술료로서 특허가 사용될 헤드의 개수 당 1.50달러의 기술료를 받기로 잠정적으로 합의하였다.(2) 계약제품의 특정 용량에 일정 금액을 곱한 경우한국의 G사다.
    경영/경제| 2010.12.15| 13페이지| 2,0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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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율인상효과에 대한 이론과 모형 평가A+최고예요
    Ⅰ. 서론수출주도형국가인 우리나라는 무역이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로써 환율의 변동에 대해 아주 민감하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인상되면 수출이 잘되고, 수입상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오르게 된다. 수입이 줄어들어 경상수지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특히 원자재 및 부품에 있어 해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입원자재의 가격 상승은 국내물가와 외국에 있어 원금상환부담이 크게 가중되게 하는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환율의 변동효과에 대한 이론은 오랜 시간동안 유능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으며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표되어진 환율인상효과에 대한 이론과 모형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으로 ‘케인즈안 접근’, ‘탄력성 접근’, ‘총지출 접근’, ‘고급 케인즈안 접근’, ‘IS-LM-BOP 접근 방법’ 등이 있다. 본 리포트에서는 환율인상에 대한 이론과 모형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1. 케인즈안 접근방법(1) 기본가정케인즈안 접근방법)은 기본적으로 환율제도가 고정환율제도하에 있고, 가격과 두 나라의 물가수준이 고정되어 있으며, 수입재와 수출재의 상대가격비율이 항상 1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2) 환율인상효과에 따른 효과자국의 환율이 인상함에 있어 자국의 수입탄력성과 수출탄력성의 합계가 1보다 크다면 소득이 증가하게 되고, 이는 수입-수출탄력성의 합계가 실질적으로도 1보다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국민소득 및 국제수지의 개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2. 탄력성 접근방법탄력성 접근방법)은 1937년 로빈슨에 의하여 변동환율제도하의 국제수지 조정이론의 필요에 따라 개발되어진 것으로, 환율변동이 수출입상품의 상대가격변동과 이에 따른 수출입물량의 변화를 통하여 경상수지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때 환율변동의 경상수지에 대한 효과는 수출입물량의 가격탄력성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이다.(1) 평가절하가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자국통화의 평가절하는 외화표시수입상품가격이 일정하다고 가정하는 경우 자국통화 하락에 의한 수출감소를 상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자국통화의 평가절하시에 자국의 수입수요가 지극히 비탄력적인 경우에는 평가절하에 의한 자국통화표시 수입상품의 가격상승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수입물량 감소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국제수지개선이 어렵게 된다.(2) 마샬-러너 조건환율조정에 의한 국제수지개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외국상품에 대한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외국의 자국상품에 대한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의 절대치의 합이 1을 넘어야 하는데, 이러한 관계를 마샬-러너조건이라 한다.1) 자국의 수입수요탄력성이 0 이고, 외국의 자국상품에 대한 수입수요 탄력성이 1을 넘을때는 자국통화의 평가절하시에 자국의 수입수요탄력성이 0 임으로 평가절하에 의한 자국의 수입물량 감소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나, 외국의 자국상품에 대한 수입수요탄력성이 1을 상회함으로써 수출가격이 평가절하전보다 증가되어 무역수지는 개선된다.2) 외국의 수입수요탄력성이 0 이고 자국의 수입수요탄력성이 1보다 큰 경우에는 자국통화의 평가절하에 의한 자국의 수출물량증가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나 자국의 수입수요탄력성이 1보다 크므로 평가절하에 의한 자국의 수입물량이 평가절하폭 이상으로 감소함으로써 전체적인 무역수지는 개선된다고 할 수 있다.3) 자국과 외국의 수입수요탄력성이 예를 들어 각각 0.7과 0.4인 경우에는 자국의 외국상품 수입수요탄력성이 0.7이므로 자국통화의 10% 평가절하시 자국의 수입물량이 7% 감소하는데, 이때 외화표시수입상품가격이 일정하면 수입가액이 7% 감축된다. 한편, 외국의 자국상품에 대한 수입수요탄력성은 0.4 임으로 자국통화의 10% 평가절하시에 자국의 수출물량이 4%증대되나 자국상품의 수출단가는 평가절하폭인 10%가 하락함으로써 자국의 수출가액은 오히려 6%정도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자국통화 10% 평가절하시에 수입가액의 감소율 7%가 수출가액의 감소율 6%를 상회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무역수지는 개선될 수 있다.(3) J 커브효과1) J 커브 효과국제수지의 탄력성접근에 의설에 의하면 소비는 단기적으로는 최근의 과거소비수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현시기의 소득이 증대하더라도 소비는 증가하지 않고 또 소득이 감소하더라도 소비는 감소하지 않는다. 즉, 단기적으로 보면 소비의 소득탄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의 소득탄력성은 1에 가까워저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증가하고 소득이 감소하면 소비는 감소한다.② 평가절하에 대한 R. Rhomberg 와 H. Junz의 이론이들은 평가절하가 장기적으로 유효하게 되는 이유를 다음 다섯가지 요인으로 주장하고 있다. 평가절하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 평가절하에 대한 대응정책을 위한 의사결정, 수출품에 대한 주문과 인도에 소요되는 시간, 평가절하전의 재고물량에 대한 가격결정 및 기타 결정과 관련되어 소요되는 시간, 새로운 가격조건하에서의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 등으로 보고 있다.③ keith Pilbeam의 이론키츠 필빔은 J커브효과 발생이유를 소비자의 반응에 소요되는 시간 과 생산업자의 반응에 소요되는 시간, 불완전경쟁(평가절하 후에 평가절하국에 수출하고 있는 동종제품의 수출업자는 불리한 가격조건 때문에 평가절하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을 상실할 것을 우려하여 수출 가격을 인하함으로써 평가절하국의 평가절하를 상쇄시키려고 시도 할 수 있다)을 이유로 보고 있다.(4) 탄력성 접근이론의 한계이는 개별상품의 수급분석에 사용한 부분균형분석을 외환시장의 분석에 적용한 것이다. 즉, 환율변화로 인한 수입상품의 가격변화가 수출입액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을 주로 분석하고 그 밖의 변수를 통한 파급효과와 가격이외의 변수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균형분석 방법이라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3. 총지출접근방법(1) 총지출접근방법의 일반모델총지출접근방법)에서는 재화 및 용역의 공급인 총생산과 국내에서 수요되는 재화 및 용역의 총체인 총지출과 의 격차를 경상수지로 인식하고 평가절하에 의한 경상수지의 개선경로를 거시적 분석체계인 국민소득계정에 입각하여 설명하고 있다.균형국민소득식은) 환율의 평가절하를 통하여득계층에게로 소득재분배를 일으켜 총지출을 감소시켜 경상수지를 개선시킨다.3) 실질잔고효과환율이 상승하면 종합물가지수의 상승을 유발시키고 경제주체는 실질잔고유지를 위해서 지출감소 또는 채권매도를 통해서 화폐실질잔고 증대를 시도하게 되고 이에 채권가격이 하락하고 이자율이 상승함에 따라 투자와 소비가 감소하게 됨으로 결론적으로 지출감소 현상이 나타난다.4) 소득재분배 효과평가절하는 고한계소비성향을 갖는 소득계층으로부터 저한계소비성향을 갖는 소득계층으로 소득을 재분배하여 저소득계층의 지출을 증대시킨다. 결국은 물가상승에 따른 저소비계층의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3) 총지출접근방법의 장단점국제수지조정에 있어 총지출접근방식의 공헌도는 국제수지조정에 대한 정책의 선행조건에 확실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완전고용하에서 평가절하는 만약평가절하가 성공적일 경우 지출-감소정책에 의해서 수행된다. 반면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보다 많은 수출입대체적 공급의 가용자원이 없다. 탄력적 접근방법은 제2차 대전 이전 실업의 조건하에서 개발되어 성행하였다면 총탄력적 접근방법은 전쟁후 완전고용조건하에서 개발되었다. 또한 총지출접근방식은 탄력적 접근방식을 포함하고 있다.이에 반해 총지출접근방법은 국제수지 가운데 경상수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총생산액과 총지출액은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정책수단에 의해서 조작 가능한 변수가 아니므로 국제수지의 인과관계를 밝히는데 충분하지 못하다.4. 고급 케인즈안 접근방법(가격-소득접근방법)이는 기존의 평가절하에 의한 상대가격변동효과가 완전히 배제된 케인즈안의 소득승수이론과 평가절하에 따른 소득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탄력성 접근방법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이론으로 탄력성 접근방법에 의한 가격변동효과와 케인즈의 소득승수이론의 소득변동효과 총지출 접근방법을 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1) 지출에 대한 교역조건효과평가절하가 무역수지를 개선시키기 위한 조건Ex + Em > 1+m(한계수입성향)위식은 마샬-러너 조건식의 우측항에 한계수입성향 고려하지 않은데 대한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났다.(1) 케인즈안 모델1) 가정국내 및 외국물가는 단기적으로 고정되어있으며, 자본이 불안정하게 이동하며, 완전불태화 정책을 실시한다. 자본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는 국내금리와 국제금리간에 차이가 존재하고 자본수요에 대한 이자율탄력성이 비탄력적이어서 이자율의 변동이 크더라도 자본의 유출입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BOP곡선은 LM곡선의 기울기보다 가파르게 된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완전불태화 정책(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국내 시중통화량의 변화를 조정하여 중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한다는 의미는 LM곡선이 전혀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2) 평가절하의 효과단기적으로는 국민소득 증대, 이자율의 상승, 국제수지개선 효과를 일으킨다.3) 조정메카니즘환율의 상승 → 자국과 외국물가고정 → EP*/P가 상승하면 IS곡선이 우상방으로 이동(국민소득증대, 이자율상승) → BOP곡선 우하방으로 이동(자본유입에 따른 자본수지 개선)(2) Mundell-Fleming 모델1) 가정국내 및 외국물가는 단기적으로는 고정되어있으며, 자본이 완전하게 국가간에 이동한다. 이는 FE곡선이 수평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앙은행은 태화정책을 실시한다. 따라서 LM곡선이 이동하게 된다.2) 평가절하의 효과자본의 완전이동성이 보장되는 경우 평가절하는 국민소득만을 증대시키고 국제수지나 이자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것은 국내이자율이 국제이자율에 고정되기 때문이다.3) 조정메카니즘환율인상 → IS곡선 우상방으로 이동(국민소득증대, 이자율무변화) → LM곡선 우하방이동(국제수지흑자로 통화공급증대)(3) 통화론적 접근방법통화론적접근방법의 근본은 국제수지는 화폐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화폐시장의 불균형이 해소되면 국제수지도 언제나 균형으로 회복된다는 것이 핵심이다.1) 기본가정구매력평가설이 성립되고 자본이동이 완전하게 이동하며, 중앙은행은 태화정책을 실시한다.2) 평가절하의 효과단기적으로 상품가격이 경직되고 장기적으로 구매력환원
    경영/경제| 2010.12.06| 12페이지| 2,000원| 조회(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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