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에관하여목 차1. 일본경제발전과정2. 경제 발전의 요인3. 최근경제동향4. 주요 이슈 및 리스크5. 한국과의 무역관계6. 일본경제전망1. 일본경제발전과정1) 1945~1960년대: 고도경제성장기일본은 패망 후, 1947년 미국에 의해 일본국헌법을 시행하면서 전쟁이 아닌 경제성장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인구는 7,800만명으로 현재는 5,000만명이 늘어난 1억2,800만명으로 인구 1억명 이상이 되면서 내수시장으로서는 어려움 없는 규모까지 와 있다. 그 후 1949년, 이미 그룹해체와 교육개혁을 시작하였고 1964년의 동경올림픽을 계기로 전철과 지하철, 동경-오사카간의 신칸센개통 등과 같은 인프라기반을 확충하게 된다. 이와 비교해 보면 한국은 24년 후인 1988년에 서울올림픽, 중국은 다시 20년 후인 2008년에 북경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고도경제성장과 소비자들의 대중사회 및 소비사회에 접어들게 된다. 중국이 소비시장으로 전환되는 것은 2010년의 상해박람회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1965년은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선언하여 본격적으로 한일간에 교류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2) 1970~1980년대: 안정 성장 및 버블경제기일본의 경제가 대중사회, 소비사회, 자동차 사회가 실현된 시기다. 미국은 이마 1960년대 자동차사회가 시작되었고, 일본은 1980년대, 이에 비해 한국은 2000년대 들어와 자동차사회가 시작되어 작년에 1,700만대 이상의 차량이 전국에서 움직이고 있다. 일본에서 처음에 개최된 오사카 만국박람회가 1970년에 개최되었고, 한국은 1990년대의 대전엑스포가 이에 해당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 후에 1973년 2월에는 엔 변동환율제로 이전까지의 1달러 360엔의 고정환율제가 이를 계기로 일본의 엔고현상은 지속되고, 결국에는 1980년대 말에는 일시적으로 1달러가 78엔대로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일본 국내에서도 도요타자동차를 선두로 글로벌기업들은 고전을3만 9천엔을 기록했다. 거품이 시작될 무렵 닛케이지수가 1만이었고, 현재 약 1만 6천엔대에서 오고가는 것을 본다면 이 지수가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정부의 금융정책 완화로 일반은행의 돈세례를 받게 된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행은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개인에게도 마구잡이로 돈을 풀었다. 50년짜리 '초장기 론', 2세대에 걸쳐 대출금을 갚아도 되는 '2세대 론'들이 이 때 나왔고, 은행의 돈으로 이들은 토지와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다.이 시기 일본 전체의 토지가격 상승은 50%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별로 상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수치에 지금도 그 때도 부동산 가격에 변함이 없는, 일본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골촌락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 부동산의 혜택(?)을 입은 도쿄·오사카·삿포로·나고야 등의 대도시와 그 인근지역의 지가 상승률은 200%~900%에 이르렀다.부동산거품 피라미드의 정점(91년)에 올랐을 때 도쿄 23개구의 땅값이 미국 본토 전체를 사고도 남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실제로 1989년 미쓰비시 부동산은 록펠러 센터를 2천억엔에 매수하기도 했다. 엔고현상을 이용해 아예 다른 나라의 부동산 매입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지옥은 순식간에 찾아왔다일본의 경제전문가들은 "거품은 그렇게 순식간에 터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어차피 경제의 총규모라는 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피라미드 꼭대기의 근처까지 올라가면 서서히 눈치를 챈다는 것이다.그러면 사업확장이나 부동산 매입을 그만 둔다던가 하는 내부적 정리를 할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온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거품을 그야말로 '펑' 터트렸다는 것이다. 그 정책이 바로 1990년 3월, 대장성 은행국이 발표한 '토지 관련 융자의 억제에 대해'라는 보고서였다. 은행을 대상으로 내려진 이 지침은 쉽게 말해서 부동산 관련 융자 '금지'였다. 초저금리로 융자를 해오던 은행이 철퇴를 맞으면서 더이상 돈이 돌지 않게 되고, 들은 국가적차원의 대응책강구에 주력했다. 감량경영은 인력,자금 등의 비용을 압축하여 경영체질의 강화를 지향하는 것이었으며 석유파동 이후 일본기업은 자동화투자,컴퓨터를 도입한 재고관리, 증자 및 전환사채 발해을 통한 은행 차입금 삭감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재화, 자금의 감량에 비해서 인원감량에는 각사가 어려움에 부딪혀 중』노년층으 ltlfwlf적인 축출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고육지책으로서 등장한 것이 선택정년제이다. 76년에 아지노코토,77년에 테이진,이세탄, 78년에는 도레이, 미쓰비시레이온 등이 잇따라 이 제도를 도입했다. 선택정년제란 일정 연령에 이른 사람이 정년전에 퇴직하면 퇴직금을 할증해서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제도로 회사를 그만 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도입 의도와 달리 우수한 간부나 기술자가 퇴직금을 챙기고 경쟁사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 일정한 연령에 이른 사람을 현직에서 빼버리거나 사내에 중?노년층으 lwjswlrtkdekath를 개설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일본적 경영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어온 종신고용제를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력감축에 영향을 받아 1973년에 1,526만명이었던 제조업 취업자수는 1975년에는 1,422만명이 되는등 2년동안에 무려 104만명의 인원이 삭감되었다. 여기에는 산업용 로봇 도입등 노동력 절약을 통한 생산성 향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일본경제가 수출확대를 통한 안정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주력산업은 자동차?전기?전자 등의 가공조립산업으로 바뀌게 되었다. 1,2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철강,화학,요업 등은 重厚長大산업(소재산업을 중심으로 한 중화학공업분야)이라 불리느 등 멸시를 받기도 했다.일본제조업체에 불어닥친 감량경영의 결과 철강, 화학등의 내수산업이 위축되어 제조업체 종사자도 감소하였으며 제조업이 산업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떨어졌다. 그러나, 감량경영, 생산성 향상노력기은 성장률, 물가상승률 등의 지표보다도 산업계획 및 산회간접자본 확충이 실질적 목표 였고, 정부계획에 앞서서 관련업계는 설비투자를 단행하여 정부계획이 사후적으로 책정되는 경우도 많았다.이러한 기업과 정부의 공동전선 구축에 있어 각종 심의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각 심의회의 구성은 거대 기업 경영자 등 산업계의 대표, 관료, 금융계 대표를 망라하고 있는데 산업정책의 비젼을 결정하는 산업구조심의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산업구조심의회는 산업계 및 금융계 대표들이 모여 특정산업에서 어떤 종류의 플랜트 설비에 얼마만큼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투자조정 기구이며 업계의 실질적 카르텔(Cartel)기구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산업구조심의회 산업자금부회 철강소위원회에서는 5년마다 합리화 투자계획이 세워지고 설비투자의 목표액이 관료와 업계 대표간의 조정을 통해서 경쟁기업간에 원만하게 배분되었다. 이러한 경쟁제한적이고 카르텔?트러스트를 조장하는 행정지도는 위법적인 요소가 짙은 것으로 지적되기도 하나 일본의 산업정책이 얼마나 강력히 추진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고 있다.정통 경제학자들은 시장기구야말로 자원의 최적배분을 가져오는 것이며 정부의 시장개입은 이 최적배분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정통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의해 산업정책이 매우 위축되어 군수산업 보호에만 그쳐왔다. 더욱이 최근에는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로 시장경제기능의 절대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더욱 지지를 얻고 있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본산업정책이 실패하지 않고 일본 기업들이 미국 제조업을 제압한 사실은 경제이론 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물론 통산성의 산업정책에 실패도 있었다. 초창기 소니(Sony)의 경영능력을 믿지 않고 기술도입을 연기시킨 것도 통산성의 중대한 실패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산업정책이 성공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첫째는, 통산성은 산업보호?육성책의 기준을 어느 기업이 궁극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각하는 무리들이다. 또한 이들은 기성세대들이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이란 이름 아래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당해 온 사실에 대해 저항적이기까지 하다. 이들에게 있어 회사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도 아니며, 직장에서의 어떤 제약 때문에 개인의 행복이나 꿈이 희생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생활이다. 오늘 회사가 어떻게 되고, 회사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보다는 오늘 몇시에 집에 들어갈 것인가, 혹은 퇴근 후에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회사에서도 이들은 자기 근무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대부분의 전통적인 일본기업들은 이들 신인류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일본에서는 대개 4월 1일을 전후하여 신입사원들의 입사식이 일제히 거행된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입사식 자체가 연중 최대의 빅 이벤트로 치러지며, 부모들도 참석한다. 입사식이 끝나면 회사에서는 약 3개월 동안 신입사원 연수를 실시한다. 이 연수는 일본의 젊은이들을 회사인으로 개조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무척 엄격하고 비인간적이다. 얼어붙은 영하의 날씨에 벌겨 벗겨 강물 속에 들어가게 하여 인내심을 실험하는 것부터, 거리에 나가 모르는 사람에게 수 없이 절을 하며「죄송합니다」를 연발하게 하는 것까지 여러 방식이 있다.일본의 회사에서는 옛날부터 전근이 많았다. 전국을 돌면서, 회사 전체의 사정을 넓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와 사원들간의 평등이라는 이유를 들어 전근을 시키고 있다. 그러나 2~3년의 전근 생활에 한국처럼 가족이 함께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택 사정이나 자녀 교육문제 때문에 일본의 아버지들은 혼자서 짐을 싸들고 임지로 떠나간다. 이것을 단신부임이라 하고, 이 또한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일본 기업의 장점으로 손꼽혔던 것은 단기적인 업적 위주의 구미 경영자들에 비해, 비교적 장기적인 시각을 가진 경영자들의 자질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적인 목표가 달성되고 난 다음부터, 일본 경영자들 역시 단기적인 업적위주로 빠.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를 읽고난 이 책을 읽고 나서 “광고주”와 “광고대행사”가 광고를 통해서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마치, “광고론” 교과서를 하루 만에 다 정복한 것 같았다. 정말 이 책은 “광고”에 대해서 정확하고, 자세히 다루었으며, 실제의 예시를 제시함으로써 이해력을 높여주었으며,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던 것 같다. 특히, 각 Chapter 별로 깔끔하게 분류해 놓았기 때문에, 현재의 초보 카피라이터들이 이 책을 보고 실제로 응용하기 쉬울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직접 카피라이터가 되거나 광고대행사의 사장이 되어서 광고주들로부터 광고를 수주 받거나, 광고를 직접 제작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이 책을 보면서 미국 영화 “What Women Want(왓 위민 원트)"가 생각났다. ”왓 위민 원트“ 영화는 멜 깁슨과 헬렌 헌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인데,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광고기획사(=광고대행사)”이다. 여기서 멜 깁슨이 우연치 않게 욕실에서 전기 감전으로 바닥에 넘어지고 난 이후로 자신에게 이상한 환청이 들리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주위의 여자들의 속마음과 생각이 들리게 되는 현상을 겪게 되고, 이러한 능력을 이용해서 새로 들어온 헬렌 헌트의 생각을 훔쳐서 이를 이용해 NIKE의 여성 상품 광고를 맡게 되고, 이를 훌륭하게 광고를 만들게 되는데, 이 영화를 보면 이런 종류의 일을 하는 것이 “광고대행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여성관련 상품 광고 카피는 여성 카피라이터에게 맡겨야 한다는 “데이비드 오길비의 마지막 유언”을 거슬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영화의 주 배경은 광고대행사 업무 중 여성 운동복 상품 광고 카피만 해당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하지만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 이 책을 보게 되면, “광고대행사”가 하는 모든 일들을 알 수 있고, 효과적으로 광고대행사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비법, 피해야 할 광고주들 유형, 광고주들과의 관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방법 등, 그 무대에서 실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 수 있다.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자칫하면 오만해질 수도 있다고 느꼈다. 나는 광고에 관련된 이 책 한권만을 읽었을 뿐인데, 마치 내가 나를 광고대행사를 수십 년간 운영한 관록이 깊은 사장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던 것 같다.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이 46년 전이므로, 실제로 현재의 광고대행사의 환경이 이 책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한 권 읽었다고 해서 현재의 광고대행사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오만하게 행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합헌 결정 '옥소리 간통죄' 헌법재판소 '모든 죄 사면된 것은 아니다'2008/11/26 16:27옥소리의 간통죄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판결을 내렸다.서울 헌법재판소는 30일 탤런트 옥소리 등이 제기한 간통죄 위헌 소송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합헌이란 법률상 헌법의 취지에 적합한 일로 판단한다는 의미로 이번 옥소리등이 신청한 간통죄 위헌 소송은 9명의 재판관중 5명이 간통죄에 대해 위헌을 그리고 4명이 합헌 결정을 내렸다.하지만 총 6명 이상이 동의를 해야 위헌 결정이 난다는 점을 들어 최종적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재판부는 "간통죄는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지 않는다. 이에 징역형만 규정한 법정형이 책임과 형벌 간 비례원칙에 비춰 과중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간통이 사회적 질서를 해치는 데 대한 사회적 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시했다.한편 이번 합헌 결정에 의해 앞으로 다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진행되는 박철 옥소리의 '간통죄' 재판이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사견◆현재 옥소리씨는 ‘간통한 부정한 여자’라는 사회적 낙인 외에 형사적 처벌까지 피할 수 없는 처지가 돼 버렸다. 지난 9월말에 있었던 이혼소송 1심 판결에서는 딸의 양육권도 인정받지 못했다. 죄에 대한 정당한 대가, 자승자박이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리면 되는가? 그러면서 ‘정의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끼면 되는 것인가?옥소리씨 이혼소송 1심 재판부는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옥소리, 박철 양측에 ‘대등하게’ 있다고 판결했다. 늦은 귀가, 수입의 상당 부분 유흥비 지출 등 박씨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으며, “경제문제와 대화 부족으로 인한 갈등, 박철의 옥소리에 대한 무관심, 박철 옥소리 양측의 부정행위 등”이 재판상 이혼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판결문이 명시하듯 부정행위는 박철에 의해서도 저질러졌다.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참석하기도 했던 박씨의 전 매니저 윤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박철은 일주일에 2~3번 방송 관계자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여자들과 성관계 대표적인 예로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에 족쇄로 기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똑같이 간통을 저질렀고 거기에 (윤모씨의 증언에 의하면) 성매매라는 범죄까지 덧붙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박철씨는 ‘아내의 간통의 일방적인 희생자’가 되고(그의 간통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 삼고 있지 않다) 옥소리씨는 가해자, 가정파괴범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여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다.간통죄가 합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재판관들은 ‘부부사이의 성적 성실 의무’ ‘혼인제도’ ‘가족생활’ 등을 몰(沒)젠더적이고 추상적인 관념만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것들이 작동하고 있는 현실의 구체적인 맥락을 고려했어야 한다. 권성 재판관이 앞서 훌륭한 모범을 보여줬던 것처럼. 다양한 권력관계들이 작동하는 현실의 구체적 맥락을 알아야 그들이 그토록 수호하고자 하는 사회질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본권의 최후보루로서 잘못된 사회질서를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번 합헌 판결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남성에 비해 훨씬 억압받고 있는 우리 사회질서는 앞으로도 계속 ‘국가로부터 보호’받으며 유지될 수 있게 됐다. 남편이 아무리 가정을 소홀히 해도, 부부간의 성적 성실 의무를 내팽개쳐도, 여자들은 닥치고 참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숭고한 헌법정신’을 수호하는 길이니까...10년간 장애소녀 성폭행한 패륜가족2008/09/09 오 전 7:11 | 정치외 잡탕한 조용한 시골마을이 파문에 휩싸였다. 지적장애를 가진 10대 소녀가 수년간 성폭행을 당해온 인면수심의 사건이 발생한 탓이다. 더욱이 이 소녀를 유린한 사람은 다름아닌 할아버지, 백부, 사촌오빠 등 피붙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이들은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하다는 점을 악용해 보호해야 마땅할 어린 소녀에게 집안, 차안, 밭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몹쓸 행각을 벌여왔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콘돔 등 피임기구까지 사용해 가며 성폭행을 일삼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별다른 죄의식 없이 계획적으로 한 어린 소에게도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할아버지는 2005년 여름 당시 13세였던 A양을 협박한 뒤 욕정을 해소했다.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수차례에 걸쳐 친손녀에게 해서는 안 될 인면수심의 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이들 가족의 범행은 할아버지와 백부에서 그치지 않는다. 숙부 2명과 10대의 사촌오빠도 패륜행각에 동참했다. 이들은 자신의 방에서 자고 있는 A양을 성폭행하는 등 상습적으로 범행을 벌여온 것으로 밝혀졌다.특히 이들 가운데 일부는 A양이 임신되지 않도록 콘돔 등의 피임기구까지 사용해 계획적으로 성폭행을 일삼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순간적인 욕정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범행을 철저히 계획한 뒤 저질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게다가 A양을 유린한 백부와 숙부 등 3명은 한 동네에서 정상적으로 가정생활을 하면서 틈만 나면 성폭행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장소도 다양했다. A양의 집, 자신들의 집, 차안, 밭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패륜범죄를 저지른 것.할아버지는 또 A양에게 폭력까지 행사해가며 성폭행과 성추행을 저질러 충격을 주기도 했다. 백부와 숙부 등은 조카를 성폭행한 사실을 서로 알고 있으면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경찰은 지적장애 3급으로 그리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A양이 수년간에 걸쳐 성폭행을 당해 온 것은 자신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른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어 성폭행 사실이 집밖으로 흘러나가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이처럼 수년 간 집안에서 조용히 일어났던 패륜행각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충북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A양을 상담하면서부터였다. 불우아동과 청소년들을 상담해 주는 충북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은 상담을 통해 A양으로부터 친척들에게 당해 온 믿을 수 없는 범행행각을 들었고 경찰에 사건수사를 의뢰한 것.그러나 수사과정도 쉽지 않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A양이 그간 당해온 일들의 구체적인 시기와 횟수 등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 이 때문에 A양이 기억하는 일부 혐의아버지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 자신의 7살 된 친 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 해온 인면수심 30대 아버지가 경찰에 붙잡혔다.서울 종로경찰서는 무려 5년 동안 자신의 친 딸을 성폭행 해온 혐의로 J모(39)씨에 대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J씨는 지난 2002년 9월, 당시 7살이던 첫째 딸 J모(13)양에게 성교육을 시켜주겠다며 성폭행하는 등 최근까지 일주일에도 수차례씩 J양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J씨는 맨 처음 범행 이후에도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을 틈타 첫째 딸이 자고 있는 방으로 찾아가 J양을 성폭행해 왔으며 목욕을 시켜준다는 명분으로 화장실에서도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J씨는 첫째 딸과 함께 방을 쓰고 있는 막내 딸(6살) 바로 옆에서도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아버지의 요구를 참아내기 어려웠던 J양은 결국 지난달 가출을 했고 가출 이유를 묻는 어머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경찰조사에서 J씨는 “성인방송을 보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법원의 판결청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오준근 부장판사)는 20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피해자의 백부(57)와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친할아버지(87), 숙부(42) 등 3명에 대해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재판부는 이와 함께 피해자의 또 다른 숙부(39)에 대해서는 범행 가담 정도가 다른 피고인들에 비해 비교적 가볍다는 점을 들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친족 관계에 있는 나이 어린 피해자를 성적 욕구 해소의 수단으로 삼아 번갈아가며 성추행 혹은 성폭행한 피고인들의 범행은 그 자체로 인륜에 반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이들의 성폭력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점을 고려하면 자에게 준다고 가정한다고 치자. 피해자가 이미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피해자가 정상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사회보장 조치 명령을 내리지는 못할망정 피해자가 계속 충격을 받을 것이 자명한, 재범의 우려가 농후한 금수의 집안에 유기 방치하는 판결이 과연 정상적인 판결인가? 도대체 피해자의 인권은 어디 갔는가?성폭행과 관련해 더 이상 국민들의 법감정과 괴리된 비상식적인 판결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주부탈선 부추기는 노래방 도우미“남편 들어오기 전에 빨리 2차가자. 엉?”‘하루 30명’. 일반 가정주부가 하루 평균 가출하는 숫자다. 매년 1만 2천건이 넘어섰다는 주부가출은 심각한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주부들이 가출하는 이유는 각기 다르나 카드빚이나 채팅 및 외도, 시댁과의 갈등이나 남편의 폭력 등이주를 이룬다. 가정해체는 올해 들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남성문제 상담전화인 ‘남성의 전화’에 따르면 최근들어 총 상담건수의 30%에 달하는 1,000건 정도가 아내의 가출로 인한 상담이었다고 한다. 남성의 전화 이옥 소장은 “남편들이 아내의 외도로 겪고있는 정신적인 고통은 훨씬 심각했다”며 “과거에는 가부장적이고 권위 있는 남편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남편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내의 외도를 용서해주는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여성의 전화 이문자 소장은 “최근들어 주부들이 쉽게 가정을 버리고 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근본적인 것은 가장의 폭력이나 무능한 남편 때문에 가족의 생계와 자녀 양육을 책임져야하는 현실이 주부들을 집밖으로 내몰고 있는것”이라고 말했다.남편 무능이 가출 원인?그렇다면 가출한 가정주부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걸까? 물론 음식점에서 일을 하거나 파출부 등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들도 있겠지만 일부는 그렇지가 않다.집을 나온지 3년이 다 돼간다는 이명자(35세·가명)씨는 “맨처음에는 막막했어요. 이제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된 딸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나온다”며 말을 잇지 못한다.
간통죄 합헌 꼬집는 '일처다부제' 영화 자유냐 결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23일 개봉하여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는 2006년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던 동명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지요.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살고 싶다’는 자유주의자 인아(손예진)에게 끈질기게 구애하여 덕훈(김주혁)은 결혼을 하지요.결혼 뒤에도 꼭두새벽에 술에 취해 들어오고 자주 전화기가 꺼지는 인아에게 덕훈은 분통을 삼키면서 태연한 척 하지요.아내의 연애까지는 봐주려는 덕훈에게 인아는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속을 뒤집어 놓지요. ‘남편을 하나 더 갖겠다’는 발칙함에 덕훈은 이혼서류까지 준비하지만 결국 두 집 살림을 받아주지요.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나고 사람들에게 이혼했다는 오해를 빚게 되면서 돌잔치 때 덕훈은 더 이상 참지 못하지요.결혼을 또 할 수밖에 없는 예쁜 여자?원작 소설은 축구와 결혼을 비비면서 환상의 투톱체제로 이야기를 진행하지요. 박식한 축구이야기들을 끌어다가 적재적소 알맞게 소개하는 재주는 무릎을 치게 만들지요. 아내가 남편을 두고 결혼을 또 하겠다는 심각한 상황에 축구이야기로 호흡을 고르게 하며 여유를 줬지요.영화는 축구이야기를 양념으로 쓰는 대신 통통 튀는 캐릭터 설정으로 주제의 무게를 덜어내려 하지요. 영화의 인아는 모든 남자가 선망하는 미모를 지닌 아름다운 인물이지요. 외모가 두드러지게 뛰어난 인아는 알아갈수록 매력이 깊은 소설 속 인아와 다르지요. 일장연설을 하면서 일부일처제를 꼬집었던 소설 속 인아와 다르게 예쁜 인아는 보다 가볍게 대중들에게 다가가지요.▲ "난 예쁘니까" 똑소리를 내면서 결혼제도의 속내를 들춰내는 소설 속 인아와는 달리 영화 속 인아는 많은 말을 하기보다 눈빛과 애교로 넘어가려 하지요. 이러한 가벼움으로는 두 집 살림에 동감을 하지 못하고 이상한 여자로 취급하게 되지요.하지만 그 가벼움은 설득력 부족으로 나타났지요. 이지적이며 꼼꼼한 논리를 갖춘 소설 속 인아는 영화에서 연애자유주의자로만 비치게 되지요. 두 남자와 결혼할 수밖에 없는 신념과 이유들이 잘 그려지지 않으면서 인아는 ‘이상하지만 예쁜 여자’가 되어버렸네요. ‘미모의 여성만 가능한’ 일처럼 되면서 관객 공감도 떨어지고 불쾌감까지 낳네요. 인아가 ‘지구별 사람들과는 공감이 안 되는 다른 별 사람’이 되었듯이 영화는 ‘일부일처제가 전복된 특별한 경우’가 되어버리네요.일부일처제의 허울을 뒤집는 두 집 살림그럼에도 영화는 일부일처제를 뒤집으며 충분한 즐거움과 생각거리를 안겨주지요. 일부일처제에서도 남성들은 수많은 방종 성생활을 하지만 여성들은 그 허울 아래 갇히기 일쑤였지요. 남자가 두 집 살림을 하면 ‘남편에게 꼬리를 흔든 여자’에게 본처가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장면은 통속연속극에서 여전히 나오지요.본처들은 ‘그년 머리끄덩이’를 붙잡으며 일부일처제 언저리를 놓지 못하듯 ‘누구 좋으라고’라고 이혼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어머니처럼 덕훈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머무르지요. 차이가 있다면 ‘불륜현장’을 찾아가 ‘남편을 꾄 여시’만을 공략하던 여자들과 달리 덕훈은 남자이기에 재경에게 코피를 나게 하고 인아의 목을 조르며 두 사람 모두를 공격한다는 것이죠.문제를 일으킨 남편에 대한 비판은 감춘 채 큰집, 작은집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남성에게 적용되어 재경(주상욱 분)은 덕훈에게 꼬박꼬박 ‘형님, 형님’하면서 십년 전 주말드라마의 남성판을 보여주지요. 지금까지 벌어졌던 결혼제도에 매여 마음고생을 하였던 대상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뒤바뀌었네요.두 집 살림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두 집 살림하는 남성의 여성들은 자식교육에 몰입을 하여 문제를 잊으려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침묵하였지요. 남성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큰소리치면서 당당하게 두 집 살림을 하였지요. 남자는 두 집 가운데 어느 곳을 선택해도 되게 되면서 더욱 여유가 생기지만 여자들은 버려지는 두려움으로 더 남자에게 매달리게 되지요.이와 반대로 영화에서는 두 집 살림하는 인아는 무척 고생하지요. 애정표현을 더욱 열심히 하면서 사랑을 유지하고 두 집 살림하는 인아에 대한 항의로 덕훈이 집안일에 손을 놓자 도맡아 하지요. 시댁 두 곳을 다 챙기고 돌잔치도 두 번해야 하는 그녀는 사랑과 행복을 지키려는 슈퍼우먼이 되지요. 물론 그걸 이해해주는 남자가 어디냐가 사람들 대부분 반응이지만.▲ "나, 상처받았어." 인아가 아무리 자유로워도 결혼을 하면 변할 것이라고 자기 편한대로 생각한 덕훈. 서로 너무나 다르다고 인아가 아무리 고사하여도 결혼만 하면 된다고 믿었던 그는 인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지요.두 집 살림하는 여성판은 그래도 21세기 흐름을 반영하듯 20세기보다 한 발짝 더 나가지요. 재경의 존재에 대해서 마주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덕훈은 재경과 어울리며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되지요. 인아를 찾아가는 비행기에서 어깨를 빌려주고 이층집에서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할 정도로 인식이 변화하며 새로운 대안가족을 모색하네요.제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영화를 만든 정윤수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삶의 찬미다. 행복을 위해 자유롭게 선택하고 용기를 갖자는 것이다. 사회의 근간을 뒤집는 전복적 이야기라기보다 우리가 제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또 다른 대안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영화이다"라고 말을 했지요.선진국들은 이미 폐지한 간통죄를 신수단지 모시며 살고 있는 한국은 결혼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국가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처벌하고 있지요. 수많은 모텔과 '2차 문화'에서 간통죄가 일어나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요. 조금 더 솔직하게 우리네 사는 풍경을 돌아봐야 하겠네요.결혼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 평생 일부일처제를 하면서 류시화의 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되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요. 죽이 잘 맞아서 행복하지 않고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면 더 이상 참지 않고 이혼하지요. 이혼이라는 딱지를 감수하고라도 개인의 행복을 선택하는 흐름에 주목이 가네요.
목 차Ⅰ. 서 론Ⅱ. 르네상스 중심 요약1. 제 12장 현실성의 정복-15세기 초2. 제 13장 전통과 혁신 Ⅰ-15세기 후반 : 이탈리아3. 제 14장 전통과 혁신 Ⅱ-15세기 : 북유럽4. 제 15장 조화와 달성-16세기 초 : 토스카나와 로마5. 제 16장 빛과 색체-16세기 초 :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6. 제 17장 새로운 지식의 확산-16세기 초 : 독일과 네덜란드7. 제 18장 미술의 위기-16세기 후반 : 유럽Ⅲ. 결 론Ⅰ. 서 론미술을 전공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는 것이 미술사이다.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의 배경을 안다는 것은 그 역사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역사라 하면 나에게는 “어렵고 딱딱한 것”으로 인식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교수님이 정해주신 과제로 인해 전부터 내가 소장하고 있던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요약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하였다.‘곰브리치’ 그의 유명한 책인「서양미술사」는 한손으로 들기 버거울 정도의 두께로 누가 봐도 그것은 백과사전 같다. 작고 빽빽한 글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구체적인 주제를 달고 거기에 해당하는 그림을 제시하여 그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그 미술 사조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필요한 경우 참고로 다른 그림을 등장시켜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휘둘리기 보다는 창의적인 내 생각과 그림에 내한 순수한 내 감성을 깨닫게 해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서양 미술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도 서양미술사의 대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작품을 보는 안목을 나름대로 가질 수 있도록 집필되어 있다. 곰브리치는 자신의 시각을 드러내며 방대한 량의 미술사를 저술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시각이 굉장히 설들력이 있으면서도 재밌게 느껴져 처음의 책에 대한 거부감을 많이 잊고 책을 볼 수 있었다.하나의 시대 개념이나 미술 양식 개념으로서 생각해 볼 때 르네상스만큼 널리 알 제작한 지 십 년 후, 1427년 시엔나시의 세례반을 위해 조각한 청동부조이다. 마사치오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도나텔로의 인물들도 거칠고 모가 진 움직임을 하고 있다. 제스처는 격렬하고, 이야기의 끔찍스러움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전혀 없다.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이 장면이 거의 기분 나쁠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새로운 원근법의 기술은 보다 박진하게 현실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다.그리스와 로마 미술에 대한 연구가 미술의 재생 즉 ‘르네상스’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상상한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이다.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브루넬레스키 주변의 미술가들이 미술의 부흥을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희구했다. 때문에 그들은 이 새로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연과 과학 및, 고대의 유물들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피렌체에서 도나텔로의 세대가 국제적인 고딕 양식의 섬세함과 세련에 싫증을 내고 보다 힘차고 엄숙한 인물상들을 창조하려고 희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알프스 이북의 한 조각가 역시 이전의 조각가들의 섬세한 작품들보다 더 실감이 나고 보다 더 솔직한 미술을 찾아 노력했다. 이 조각가는 클라우스 슬루테르였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한 유명한 순례지의 샘을 표시하는 커다란 십자가 밑 부분을 이루었던 일군의 예언자들의 상이다. 이들은 이미 고딕 성당 현관 옆에 서 있는 엄숙하고 딱딱한 인물상들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북유럽에서 현실에 대한 탐구를 궁극적으로 밀고 나간 것은 조각가가 아니다. 처음부터 새로운 어떤 것을 나타낸다고 느껴지던 혁명적인 발견을 한 미술가는 바로 화가 얀 반 아이크였다. 그의 작품 중 제일 유명한 것은 겐트시에 있는 여러 장면이 그려진 거대한 제단화이다. 얀 반 아이크는 고딕 국제 양식의 전통에서 공공연하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렝부르 형제의 방법(세밀화)을 그대로 따랐으며 그것을 보다 완벽한 것으로 만듦으로서 중세 미술의 이념에서 한걸음 앞으로 진전했던 것이다. 렝부르 형제는 그 시 웃첼로는 원근법의 발견에 너무나도 크게 감명을 받은 나머지 밤낮으로 사물들을 단축법으로 그려 보고 또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북유럽의 반 아이크는 자연의 관찰에서 얻은 디테일들을 점차 많이 보태어 가고, 가장 사소한 음영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세세한 면을 그대로 베끼고자 노력함으로써 고딕 국제 양식의 형식들을 변화시켰다. 한편 웃첼로는 이와 정반대의 접근 방법을 택했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원근법으로써 그는 인물들이 입체감 있게 사실적으로 나타나 보일 수 있는 실감나는 무대를 구성하려 했던 것이다. 그 인물들은 분명히 입체감이 살아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어딘가 이중 렌즈를 통해서 보는 입체경을 생각나게 한다. 웃첼로는 아직 엄격한 원근법적 묘사의 거친 윤곽선을 부드럽게 해 주는 명암과 대기의 효과를 구사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피렌체 이북과 이남의 도시들의 화가들도 도나텔로와 마사치오의 새로운 예술의 의미를 받아들였다. 그 중에는 처음 유명한 대학 마을인 파도바에서 작업을 하다가 그 다음 만토바의 귀족 궁정에서 작업을 했던 만테냐가 있다. 지옷토와 도나텔로와 마찬가지로 만테냐는 현실에 있어서 그 광경의 모습을 명확하게 상상하려고 노력했다. 지옷토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 이야기의 내적인 의미였다. 즉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만테냐는 도한 외부적인 형태에도 관심을 가졌었다. 그는 성 야고보가 로마 황제들의 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 광경이 실로 벌어졌을 모습을 그대로 재구성하고자 부심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는 고전적인 기념비에 대해 특별한 연구를 했다. 는 전체 광경이 엄격한 단순성과 엄숙한 장대함을 지닌 로마 미술의 정신에 가득차있다. 그의 인물들은 마사치오의 인물들처럼 조각적이고 인상적이다. 마사치오처럼 그는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열심히 이용했다. 그러나 웃첼로처럼 이 마술, 즉 원근법의 수단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새로운 효과를 과시하기공간 속에 서 있는 방식은 이탈리아의 작품들을 보고 푸께가 크게 감명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의 그림 방식은 이탈리아 화가들의 방식과는 다르다. 모피라든가 돌, 옷감 및 대리석과 같은 물건의 질감과 표면에 대한 관심은 그의 미술이 반 아이크의 북유럽 전통에 영향 아래 있음을 보여 준다.로마로 여행했던 또 한 사람의 위대한 북유럽 미술가는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이다. 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내리는 장면을 묘사한 거대한 제단화이다. 반 아이크와 마찬가지로 로지에도 머리카락 하나하나와 옷주름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부를 충실하게 재현해 놓고 있다. 윤관은 명확하고 화면 전체의 짜임새도 만족스럽게 멀리서 보이는 제단화를 그렸다. 신비극이나 ‘활인화’에 출연한 배우들처럼 보이는 인물 구성으로 로지에는 고딕 회화의 주요한 이념을 새롭고 박진감 있는 양식으로 번안함으로써 북유럽 미술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북유럽 미술가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미술의 요구와 옛 종교적 목적과를 조화시키려고 했다. 조각가와 목판 화가들에게 있어서는 고딕 전통을 새로운 형식 속에 부활시킨 로지에의 업적이 특히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었다.15세기 중엽 독일에서는 매우 결정적인 미술 기법이 발명되었다. 그것은 미래의 미술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미술뿐만이 아니라 인쇄술의 발명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림을 인쇄하는 것은 책을 인쇄하는 것보다 몇 십 년 더 앞섰다. 그림을 찍어내는 방법을 목판술이라 부른다. 그것은 돈이 안 드는 매우 값싼 방법이었으므로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목판을 여러 장 함께 사용하여 일련의 그림들도 인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전부 목판으로 찍어 낸 책들은 목판책이라 불리었다. 목판화와 목판책은 곧 일반 시장에서 판매되었다.구텐베르크가 목판 대신 틀 속에 활자를 함께 모아 인쇄하는 방법을 발명해 내자 그러한 목판책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쇄된 본문과 목판 삽화를 결합시키는 방법이 곧 발견를란다요는 다른 어떤 예술적인 장점보다도 그 당시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생활을 흥미있게 반영해 주는 작품들을 남긴 화가였다. 기를란다요의 제작소에서 젊은 미켈란젤로 또한 틀림없이 그 직업에 필요한 모든 기법적인 트릭과, 프레스코 벽화의 확고한 테크닉 및 소묘의 철저한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기를란다요의 안이한 방식을 배우는 대신 그는 거기를 나와 과거의 위대한 거장들, 지옷토, 마사치오, 도나텔로 등의 작품과 메디치 가의 소장품 속에서 볼 수 있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을 연구했다. 그는 근육과 힘줄로서 움직이고 있는 아름다운 인체를 묘사하는 법을 알고 있었던 고대 조각가들의 비법을 꿰뚫어 보려 했다. 인체의 갖가지 비밀을 낱낱이 알 때까지 몸소 인체 해부학을 탐구하고 사체를 해부하며 모델을 보고 소묘도 했다. 단 하나의 문제를 정복하려고, 그것도 완벽하게 정복하려고 애썼다. 그의 집중력과 기억력은 아주 뛰어났다.는 그가 이루어낸 대단한 업적 중 하나이다. 미켈란젤로 혼자서 그 그림을 다 그렸다는 것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한결같이 새로운 창안, 모든 세부에 이르기까지 빈틈없는 제작 솜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켈란젤로가 그 이후의 미술가들에게 보여 준 장대한 시각세계는 천재의 능력이 과연 어떤 것이라는 데 대해 새로운 관념을 인류에게 심어준 작품이다. 천정화는 단순하고 조화있으며, 그 색체는 부드럽고 풍부하며 절제되어 있다. 또한 전체의 짜임새는 명확하다. 미켈란젤로는 인체를 어떤 방향이나 어떤 각도에서든지 자유자재로 탁월하게 묘사했다.미켈란젤로가 그린 창세기의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하고 인상적인 것은 커다란 화면의 하나에 그려진 장면이다. 미켈란젤로는 땅 위에 누워있는 아담에게 신이 단지 손끝을 댐으로써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광경을 간결하고 힘차게 위대한 창조의 신비를 표현했다. 미켈란젤로가 신의 손길을 그림의 초점으로 만들고 이 위대한 창조의 힘찬 동작과 신의 전지전능함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고안해 낸 방법은 미술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기적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