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날개이 책은, 조금 어렸을 때에도 한번 읽어봤던 책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너무 복잡해서 무슨 내용인지도 알지 못했다. 이번에 읽을 때에도 물론 다 이해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좀 찜찜한 기분이었따. 괜히 내 기분까지도 다운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인 남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소설이었는데, 굉장히 불행하고 아내가 매춘을 하는데 그저 바라만 보는 그런 양육되는 남자? 에 대한 것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또 정말 여러번 곱씹어 보게될 만큼, 의미를 찾고 싶게, 궁금하게 만드는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소설인것 같다.‘나’는 아내와 한께 33번지 어떤 방에 세를 들어 살면서, 하루하루 의욕없이 방안에서 뒹굴며 살아가고 있따. ‘나’ 가 보기엔 아내는 상당히 미인이고, ‘나’역시 그런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을 내심 사랑했다. ‘나’는 아내가 외출하고 없을땐, 아내의 방에 들어가 화장품 냄새를 맡곤 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손님이 와서 아내가 방에 들일때면, 아내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윗방에서 이불을 쓰고 잠을 잔다. 손님이 가면 아내는 나한테 돈을 주는데도, 나는 그 돈을 쓸줄 몰라 돈을 모아놓기만 한다. 그러다가 그 돈을 아내에게 주고 처음으로 아내와 잠을 자게 된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의외로 호의적으로 대한다. 어느 날 나는 밖에 나갔다가 비를 맞아 앓아눕게 된다. 그 후로 아내는 나에게 아스피린이라며 흰 약을 먹이는데, 나중에 나는 그 약이 수면제 인것을 알게되고 괴로워한다. 밖에서 떠돌다 잠들게 되어 하루를 밖에서 자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신없이 들어오다 아내의 매음행위를 보게되고, 아내는 그런 나를 폭행한다. 그 자리를 뛰쳐나와서 아내가 자기를 하루종일 재운채 무엇을 했는지 고민하다가 백화점 옥상에 다달아 과거를 회상한다. ‘나’는 거리의 풍경등을 내려다 보면서 ‘날개야 닷 ㅣ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 더 날아 보자꾸나.“ 하고 외치며 소설은 끝이난다.아직까지도 정확히 무슨 내용 인지는 모르겠다. 다 읽고 나니 그냥 마음이 좀 어두운 기분이었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은, 아내는 왜 ‘나’와 헤어지지 않은 채 데리고 살아갈까 라는 것이다. 어쩌면 아내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한다면, 매음행위를 봤을 때 했던 폭행이, 보여주기 싫은 모습을 보여준 것과 밤새 밖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온 ‘나’ 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해석하니 오히려 더 슬퍼지는 느낌이다. 이 책속에서 ‘나’는 계속 무기력한, 마치 박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마지막엔 날개이야기를 하며 자기를 되찾으려는 마음을 갖는다. 매춘하는 아내를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고, 마치 키워지듯이 제한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날개’를 달고 날아보자 라는 말은 자유를 찾아보자는 마음이다.
주요섭 - 인력거꾼안국선 작가의 인력거꾼을 읽다가 주요섭 작가의 인력거꾼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안국선 작가 책과 달리 중국이 배경이었고, 가정이 없는 인력거꾼이 주인공 이라는 점이 달랐다. 하지만, 인력거꾼 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역시 힘들고 굶고 고생하는 도시 하층민들의 삶을 표현한다는 점은 같았다. 안국선 작가 작품에서는 긍정적인 밝은 결말로 끝났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이 죽음으로써 끝나는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오히려 분위기는 안국선 작가의 인력거꾼보다도 운수 좋은 날 에 더 가까웠다고 느꼈다.이 책의 주인공인 인력거꾼 ‘아찡’은 중국 상해 사람이다. 새벽부터 함께 살고 있는 뚱뚱이와 함께 인력거 일을 나간다. 그런데 그날 남경에서 오는 기차 덕분에 손님이 많아 오늘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운수 좋은 날의 모티브를 베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했다. 하루 종일 돈을 꽤나 벌어들이던 중, 아찡은 갑자기 쓰러진다. 동료 인력거꾼의 권유로 무료로 치료해준다는 청년회의 의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의사는 오지 않고, 전도사로부터 죽으면 천국갈수 있다는 설교만 듣게 된다. 이 장면에서는 아찡이 나름의 논리적으로 종교에 대해 풀이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 장면을 통해서, 아찡의 무지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종교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할 줄 모르는 그 당시 하층민의 모습을 나타낸 것은 아닐까? 오래 동안 의사를 기다리다 아찡은 그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가는 도중에 점쟁이에게 점을 한번 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돈도 많이 모으고 잘 살게 될 거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아찡은 결국 집에 도착 하자마자 쓰러져 죽게 된다. 점을 봤을 때 돈 많이 벌고 잘 사게 될 거라는 말이, 아찡의 상황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반어적인 느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비극적이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아찡의 시체를 발견한 친구 뚱뚱이는 무덤덤한 듯 순사에게 신고를 하고, 순사가 와서 시체를 치우며 의사와 이런 대화를 한다. “8년 동안 인력거를 끌었다니까요. 남보다 한 1년 일찍 죽은 셈이지만, 지난번 공보국 조사에 보면 인력거 끌기 시작한 지 9년 만에는 모두 죽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 장면에서 뚱뚱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고, 동료를 잃은 슬픔도 없이 인력거 일을 하러 나간다. 도시 하층민으로써 자신도 언젠간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모른채, 무지하게 살아간다는 점과, 삶에 찌들어 동료에게 무심해진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김유정 - 금따는 콩밭‘금 따는 콩밭’ 이라는 제목부터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또 읽기에 부담 없는 짧은 단편소설 이어서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답답하다는 점이었다. 1935년에 발표된 소설이라 그런지, 그 당시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듯 했다. 농민이 대다수인 모습과, 아직 개발되지 않는 금등의 금속 개발에 힘쓰는, 한편으로는 금광에 대한 농민들의 허황된 꿈이 많은 시기였던 것이다.가난한 농민인 영식은 금을 찾아다니던 수재를 만나게 된다. 이 때 부터 영식의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 처음 수재가 와서 콩밭에 금이 묻혔으니 파+보자고 제안을 하는데, 만약 콩밭을 들어내고 금광을 파면 그 해의 밭농사는 망치게 되는 것이었다. 처음엔 영식도 그것이 두려워 매번 거절했지만, 수재는 끈질기게 설득했고, 영식의 아내도 바람을 불어 결국 금광을 캐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가도 금이 나오지 않자 영식은 불안해하고 난폭해지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 모두다 영식에게 그 정도에서 그만두고 되돌릴 수 없기 전에 어서 다시 콩을 심으라 제안한다. 하지만 영식은 불안하면서도 어딘가 기대되는 것이 있어 계속해서 땅을 판다. 하지만 아무리 땅을 파고 금이 나올 것 같지 않자 자기를 추궁하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까지 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이 난폭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 수재는 금이 나올 가망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영재 부부에게 황토를 쥐어다 주며 금이 담긴 흙을 찾았다며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밤에 몰래 도주하며 이야기는 끝난다.소설을 보는 내내 느낀 점은 아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영식에게 자기계발서적을 추천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거짓정보를 듣고선 자신의 콩밭에 금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바보들이나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이 많으면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남이 조금 부추긴다고 농사까지 망쳐가며 금줄을 찾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짓이다. 수재라는 인물은 어찌 보면 인생한방을 외치는 시원한 캐릭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의 인생 망치는데 앞장서는 캐릭터다. 영식의 처도 수재와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우선 저질러 보자는 식의 마인드가 보인다. 이 글의 주제는 절망적 현실에서 허황된 꿈과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콩밭을 어느 정도 파보면 딱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금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땅을 파보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심이란 끝없는 것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허황된 욕망에 이끌리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잘 담아낸 것 같다. 현대 사회에 대입해보면, 도박을 들 수 있는데, 한순간에 큰 돈을 쥘 수 있다는 생각에 잠겨 도박에 빠진다면, 그동안 소소하게 이뤄왔던 성취 까지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김유정 - 봄봄이 책의 제목부터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봄봄’ 봄에 관련된 이야기일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서 찾아보았더니,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라는 젊은 남녀의 그리움을 상징한고 나와 있었다. 딱 바로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젊은 남녀 간 사랑? 을 보여주는 내용도 아닌 것 같았고... 제목에 대한 이해는 아직까지 하지 못했다.이 책의 주인공은 ‘나’ 라고만 나와 있다. ‘나’가 주인공이 되어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다. ‘나’는 점순이와 결혼하기 위해 데릴사위로 점순이네 집에 와서 4년 동안 잡일만 하고 있다. 장인어른인 일명 욕필이 영감은 점순이의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인을 시켜 주지 않고 있었다. 꾀병도 부리고, 투정도 부려보지만 욕필이 영감은 단호했고, 고집불통 이었다. 결국 구장에게 판단을 맡기러 가서 혼인 시켜주라는 말을 들었지만, 여전히 점순이가 덜 컸다는 이유로 결혼을 시켜주지 않는다. 일하는 도중 참을 주러온 점순이는 나를 쏘아붙이며 왜 더 잡아떼지 못했냐며 바보라 합니다. 처음으로 점순이에게 핀잔을 들은 ‘나’는 문득 장인어른에게 맞설 용기가 생기게 되고, 결판을 내기로 결심한다. 반항의 의미로 일터로 나가기 전에 마당 멍석에 드러누워 버린다. 장인어른은 화가 나서 ‘나’를 때리기 시작한다. 그때 점순이가 몰래 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챈 ‘나’는 점순이를 의식해서 장인어른에게 맞선다. 장인어른이 그만두라고 소리치자 점순이와 부인이 뛰쳐나오는데, ‘나’는 점순이가 자신의 편을 들줄 알았는데 장인어른의 편에 드는 것을 보고 넋을 잃고 만다.이 책에선 크게 느낄 점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각각의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재밌는 책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욕필이 영감은 나쁜 사람 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나쁜 점을 오히려 웃긴 내용으로 승화시킨다. 또 바보 같은 모습의 ‘나’도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웃긴 모습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또 점순이는 많이 나와서 알 수 없었지만, 점순이도 어쩌면 ‘나’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장인어른과 싸움을 만들게 해서 새로운 데릴사위를 데려오도록 하는 생각은 아니었을까 한다. 만약 점순이가 ‘나’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면 욕필이 영감에게 혼인을 하게 해 달라고 졸랐을 것 같다. 인물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희화시켜서 재밌게 표현한 것이 좋았던 작품이다.
현진건-운수좋은날운수 좋은 날, 이 책의 제목이다. 과연 어떤 날이 운수가 좋은 날일까. 이번에 처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보기 위해 책을 폈을 때에는 제목만 보고 굉장히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 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글을 모두 읽고 난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 글의 내용을 살짝 말하자면 1920년대 하층민들의 어려운 삶을 관찰하여 ‘김첨지’의 운수 좋은 하루를 통해 나타낸 글이었다.김 첨지는 동소문 안에 사는 인력거 꾼이다. 그에게는 아픈 아내와 젖먹이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거의 열흘간 돈을 벌지 못했다. 그런데 비가오는 날 아침부터 손님들이 많았다. 김첨지는 간만에 ‘운수 좋은 날’이 닥쳤다며 좋아했다. 김 첨지는 돈을 많이 벌면서 오늘은 아내에게 설렁탕을 사줄수 있다면서 기뻐한다. 하루종일 행운이 계속되어 비가 오는데도 손님을 열심히 실어 나른다. 문득 행운이 지속되자, 아내가 죽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선술집에서 한잔 하는데, 술에 취한채로 그는 아내에 대한 걱정을 주정으로 하게 된다. 결국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 한그릇을 사서 집으로 들어가지만, 아내는 이미 죽어있었다. 싸늘한 시체인 채로 있었던 것이다. 이미 김첨지는 치삼이와 술을 마실 때부터 아내가 죽었을 것이라는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첨지는 왜 얼른 설렁탕을 가지고 아내를 찾으러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정말 아내가 죽어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어떠한 불안감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또는 모든 걸 포기하는 느낌으로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계속 마신 것은 아니었을까? 또 아내는 이미 자기가 그날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돈은 어쩌다 많이 번 김첨지의 하루를 보여주었지만 결국 아픈 아내는 죽게되고, 이로부터 이 시대의 하층민들은 무슨 일을 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