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러브. 사실 정신적 사랑이라고 어렴풋이 밖에 알지 못하는 단어였다.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처음인 나로서는 그 속뜻은커녕 원래 단어의 뜻조자 잘 몰랐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플라토닉 러브는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정신적인 사랑이라고 한다. 정표를 주고받는 사랑도 플라토닉 러브라고 하고, 사람들마다 열이면 열 모두 견해가 달랐다. 결국 모두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상주의적이고 관념론적이고 순수하고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육체 외의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정의하는 것 같았다. 알고보니 플라토닉이라는 말은 철학자 플라톤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었다. 플라톤이 플라토닉러브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런데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이를 우리가 현재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풀이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철학을 정신적이라고 풀이하여 사람들이 플라토닉러브를 지금과 같은 뜻으로 알고 있게 된 것 같다. ’향연‘은 플라톤의 책 중 가장 잘 알려진 책이라고 한다.이야기속의 화자는 소크라테스의 숭배자인 아폴로도로스인데, 아가톤의 향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차례로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미하는 내용으로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아폴로도로스가 아리스토데모스의 말을 토대로 그의 친구 글라우콘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책에 나온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을 철학적으로 풀이한다. 이사람 말을 들으면 이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저사람 말을 들으면 또 저사람의 말이 맞는 것 같고... 토론을 벌이는 사람들은 아가톤이라는 시인의 축하파티에 참석한 이들과 소크라테스인데, 모두들 철학가적 기질이 있는 것 같다. 논제는 에로스에 대한 찬양이었다. 첫 번째 사람은 에로스가 신들중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은 애인 앞에서 불명예를 당하는 일을 싫어하므로 아름다움을 사모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용감하므로,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군대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로스가 인류가 덕과 행복을 추구하는 데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고 말했다. 두 번째 사람은 두 아프로디테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프로디테는 둘이므로 그 아들인 에로스도 둘이다. 땅의 아프로디테는 세속적이고, 땅의 아프로디테는 세속적이고, 젊은이와 여성을 사랑하며 육체적이어서 정신적인 면을 소홀하게 한다. 땅의 아프로디테는 남녀의 교접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성의 성질을 가지며 그 자신이 젊다고 한다. 반면에 하늘의 아프로디테는 우라노스의 몸에서 태어나서 남성의 혈통만을 가지며, 나이가 많아 방종하지 않고, 정신적인 면을 좋아해서 남성을 좋아하는데, 미소년을 사랑할 때는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자제력도 있다. (이 대목에서는 남자를 정신적으로, 여자를 타락한 육체의 이미지로 보는 것 같아서 당시 사회가 남성을 더 우월시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애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 권력자를 암살한 예를 들면서 사랑은 권력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하며, 아무리 어리석은 행위도 구애를 위한 것이라면 칭찬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랑에서 지켜야 할 것 두 가지를 말하면서 연설을 끝냈다. 첫째, 애인에게 너무 빨리 사랑을 허락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둘째, 애인의 권력이나 부를 믿고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세 번째 사람은 사랑은 만물에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의학이란 충만과 배설의 신진대사를 다루는 것이며, 이것들의 조화, 즉 사랑이 건강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음악의 리듬과 하모니, 뜨거운 것과 찬 것, 마른 것과 젖은 것의 조화가 인간을 건강하게 하고 식물을 번창케 하며, 분열과 불일치는 질병과 재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선을 목적으로 하고 절제와 덕을 실현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연설이 끝나자 다음 사람이 말을 이어받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다리가 넷, 팔이 넷, 머리가 둘이었는데, 신의 노여움을 사서 반으로 쪼개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원래의 조각을 찾아 헤매는데, 남성끼리 붙어있던 것은 남성을, 여성끼리 붙어있던 사람은 여성을, 남녀가 붙어있던 사람은 이성을 찾는다는 것이다. 에로스는 이 쪼개진 조각을 이어 붙이는 힘을 가지며, 만약 인간이 또 신의 노여움을 사면 이번에는 한 발로 돌아다니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에로스에 대한 경건으로 원래의 조각을 찾아서 합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아가톤의 차례였다. 아가톤은 이제까지의 찬양이 에로스가 인류에게 가져다 주는 이로움만을 논한 데 반해, 자기는 에로스의 어떤 성질이 인류를 이롭게 하는지를 밝히겠다고 말하고 나서, 에로스는 아름다우며, 용기와 자제력을 갖추고 올바르며, 예술적 창조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아가톤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소크라테스가 나섰다. 그는 먼저 아가톤과의 대화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가톤에게 묻는다.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인지, 아니면 대상이 없는 사랑인지. 아가톤은 대답한다.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이다. 즉 사랑에는 대상이 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대상은 그에게 결핍된 것인가 아닌가? 그가 가진 것이라면 사랑할 까닭이 없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무엇을 사랑한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가 아닌가? 아가톤은 모순에 빠졌다. 에로스는 아릅답다고 했는데, 에로스는 또한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신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소크라테스는 이쯤에서 아가톤과의 문답을 그치고, 디오티마라는 부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준다. 소크라테스도 처음에는 아가톤과 같은 생각을 가졌으나, 디오티마에게서 방금 한 문답과 같은 대화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로, 에로스는 선을 사랑하며 아름다움을 사랑하므로 그 자신이 선하거나 아름답지 않으며, 그렇다고 추하거나 악하지도 않다. 에로스는 선악, 미추의 중간 지점에 있으면서 선을 갈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에로스는 아름답지도 선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 자신이 신은 아니고, 위대한 정령이다. 디오티마가 들려주는 에로스의 탄생 경위는 이렇다. 아프로디테가 태어나던 날 신들이 잔치를 했는데, 궁핍의 신 페니아가 술에 취해 잠든 풍요의 신 포로스와 동침해서 에로스를 잉태했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생일날 잉태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되었고, 어머니를 닮아 항상 가난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아 선하고 아름다운 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에로스는 애지자이며, 사랑받는 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이다. 사랑은 창조의 힘이며, 창조는 유한한 존재가 불멸을 성취하는 수단이다. 불멸의 욕구는 육체에도 있고 정신에도 있는데, 육체의 욕구는 생식이며, 정신의 욕구는 창조이다. 정신의 욕구가 위대한 업적과 저작을 남기는데, 이것은 생식에 의한 것보다 더 잘 불멸을 성취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에 비추어 올바른 사람의 길을 제시한다. 사람은 어릴 때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해 명상해야 한다.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해 명상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이 아름다움이 사소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영혼의 아름다움 즉 지혜를 좋아하게 된다. 지혜에 대한 명상을 지속하면 어느 순간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는 아름답고 누구에게는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며, 어떤 순간에는 아름답고 어떤 순간에는 덜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한 번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한 사람은 육욕과 색정 따위의 더럽혀진 아름다움은 멀리하게 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일체가 된 삶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