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기념관 방문기2007000000 000사립 연세대학교의 시작이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학교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선교사의 이름이 언더우드이고, 그가 학교를 세우기까지 어떠한 많은 각고의 노력을 펼쳤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에 무언가 설명을 들었던 듯도 하지만 그 때에 나는 ‘저런 이야기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어.’라는 정도의 생각으로 흘려들었던 것 같다. 내가 고생해 가며 공부해서, 나름 명문대라고 알아주는 학교에 입학해 앞으로도 열심히 해보겠다 정도면 그뿐이지, 학교를 세운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마음보였다.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가 하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번 기독교와 현대사회 시간에 현장학습으로 언더우드 기념관을 방문하면서였다. 당시 세계에 그닥 알려지지도 않은 나라 조선에 와서 조국으로부터의 외면도 감수한 채 학교를 세우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언더우드 가의 한국사랑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문화 또한 통하지 않았을 이국에서, 크게 보상받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온전히 이국을 위한 활동에 제 몸을 아끼지 않았던 그 분들의 삶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큰 반성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본디 대학에서의 배움이나 학습이라는 것은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 사회에 이바지할 분야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배움에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은 책 속에 활자로 되어 있는 수많은 지식들이 아니라 그 지식들을 올바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바른 자세를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식의 축적에 힘쓰고 기술의 개발에 애쓴다 해도 그 지식과 기술을 사용함에 있어 이타적 마인드가 바탕이 되지 않고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등의 이기적인 모습만이 존재한다면 그 배움은 결코 올바른 배움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배움의 시작은 배움의 자세를 익히는 것이 되어야지 오로지 지식의 탐구와 습득만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언더우드가의 한국 사랑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깃든 언더우드 기념관의 존재는 우리에게 실로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연세대학교의 정체성을 기록한 일종의 자기소개서 같은 것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잊지 말아야 할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짚어주는 지표 같은 것이기도 하다.
Working Mother When I was small, my mother went to work like my father, which had a lot of advantages compared to other families where only the father worked. Nowadays, the support for feminism and number of working women are increasing. However, some people still say that married women should look after children at home, instead of working, which I totally disagree.
종교, 그 존재의 이유2007000000 000교회 집사이신 어머니와 절에 다니시는 시어머니를 두신 저희 어머니께서는 현재 무교이십니다. 처녀시절에는 당신 나름대로 착실한 신앙생활을 하셨다는 어머니께서는 집안 제사를 모셔야 하는 맏며느리가 되시면서 신앙생활을 접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바쁜 삶에 부딪히며 살다보니 그 때의 믿음이라는 것 들은 저 뒷전으로 물러나 있더라는 것이 어머니의 말씀이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2년간 교회에 다녔던 저 역시도 비슷한 이유로 현재 무교 인이 되었습니다. 입시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과열된 이곳에서 과외다 학원이다 하는 것들에게 내어준 주말에 더 이상 신앙생활을 지속해 나갈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저의 이유였습니다.그러나 바쁜 생활 속에서도 제가 종교인이었다는 것을 완전히 잊지 않았던 것은, 곳곳의 교회나 예배당, 언론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종교 활동 소식,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 성탄절과 석가 탄신일 등, 종교와 우리의 생활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아주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역사 속의 굵직굵직한 사건들 중 일부는 그 발생 원인이나 동기가 종교적 배경과 취지로 이루어진 것일 정도로 종교는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해 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일 종교가 우리에게 전혀 필요치 않은 것이라면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존속되어 오며 인류의 발전과 함께 해 왔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종교는 그 종교의 정신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가르침으로써 보다 풍성한 세상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고,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는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 그들을 쉬게 하기도 하는 순기능들을 많은 이들로부터 인정받아 자연스럽게 오늘날까지 수용되어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요즈음 종교 정신에 어긋나는 만행을 일삼는 일부 잘못된 종교인들의 행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인터넷 등을 통해 질타당하면서, 종교 전체가 함께 비난을 받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제대로 된 종교정신의 이해와 실천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차차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것에서도 사랑을 실천하고자 애쓰시고, 언제든지 만나 뵐 때마다 헤어지기 전에는 제 두 손을 꼬옥 붙잡고 나긋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손녀딸의 안위와 행복을 당신의 주님께 바라시는 외할머니의 기도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아는 저로서는 잘못된 몇몇 사람들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함께 비난을 받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과학을 공부하고 이를 실제에 적용하여 보다 풍성한 삶을 만들고자 하는 공학도가 되어 다시 접하게 된 기독교는 저에게 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언뜻 보기에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과학과 종교가 서로 많은 대립을 거듭하면서도 이때까지 함께 해왔다는 것은, 둘 사이에 존재하는 어떠한 관계가 둘을 떨어지지 못 하게 묶어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연결고리는 과학과 종교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것이 함께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일 수도 있고, 어쩌면 또 다른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종교로부터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았던 과학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종교를 비롯한 그 연결고리에 대한 탐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영화가 선택받는가2000000000 000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새롭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영화 관람이다.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친구와 함께, 애인과 함께, 부모님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도 영화관을 찾고, 그 연령대 또한 전보다 더 다양해졌다. 덕분에 금요일 밤부터 황금 같은 주말까지 영화관은 북새통을 이룬다. 실미도, 왕의 남자, 괴물 등의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각종 매체에 그 이름이 오른 것도 많은 관객들이 부지런히 자리를 메웠기 때문이지 않은가. 이제는 어떤 프로가 조금 인기 있다고 하면, 그 영화는 주말이 다가오기 최소 2,3일 전에는 미리 예매를 해 두어야만 원하는 시간대에 볼 수 있을 정도니, 이 정도면 여가 생활을 즐기는 장소 중에서도 영화관의 인기는 절정에 오른 셈이다.그렇지만 이처럼 영화 관람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여가 생활로 인정받고 있고 국내 영화시장이 전에 없이 호황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스크린을 통해 공개되는 모든 영화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화는 소위 대박을 터뜨리는가 하면 어떤 영화는 상영극장수가 점점 감소하더니 이내 금세 종영되고 말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요즈음, 과연 어떤 영화가 선택받는 것일까. 선택하는 이들의 기준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자.“야, 그 영화 볼 만 하겠더라.” 선택받는 영화의 시작은 여기에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영화의 개봉이 다가오면, 빨리는 한두 달 전부터, 늦어도 이삼 주 전부터는 티져 광고와 포스터 등을 통한 화려한 홍보전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몇 분 남짓한 티져 광고와 단 한 장에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영화 포스터는 그 영화의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영화의 매력을 최대한 표현해서, 관람객을 끌어당기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니까. 이 들은 웃음과 슬픔, 감동 포인트와 명대사 등의 영화 속 주옥같은 장면들을 담아내면서, 정작 가장 극적인 순간 앞에서는 슬쩍 카메라를 돌려버린다. ‘장화, 홍련’(2003, 김지운 감독)의 티져 광고에서 수미(임수정 扮)가 해리성 정체 장애라는 반전을 그려내었다면, ‘숨바꼭질’(2005, 존 폴슨 감독)의 티져 광고에서 데이빗(로버트 드니로 扮)이 범인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면, 이 두 영화는 그렇게 큰 흥행을 거두지 못 했을 것이다. 극적이고 공포스러운 순간들은 담아내고 그 뒤에 감추어진 진실은 쏙 숨겨 버림으로써 두 영화의 티져 광고는 사람들의 궁금증과 흥미를 한껏 자극하였다. 이 두 영화의 홍보에 티져 광고는 한 몫을 단단히 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티져 광고가 이처럼 관객의 선택을 구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로 ‘원탁의 천사’(2006, 권성국 감독)을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티져 광고와 포스터 등에서 그저 ‘미남 가수’와 ‘코미디 배우’가 출연하는 재밌는 영화로 그려져 홍보되었는데, 후에 비디오로 이 영화를 보던 내가 펑펑 울어버렸던 가슴 찡한 후반부의 감동이라든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코미디언 하하’의 재발견 등에 대해서 조금만 더 이야기 해 줬더라면, 훨씬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돌 스타를 내세워 소녀 팬들을 끌 생각만 하지 않고, 영화 속의 감동을 엿 보이는 데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신화의 이민우’가 출연하고도 관객이 그 정도 밖에 안 됐던 영화라는 굴욕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영화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이유로 주연 배우를 들 수 있다. 많은 영화들이 홍보 매체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이름을 커다랗게 내보내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헐리우드의 소위 잘 나가는 미남 미녀 스타는 다 모아 놓아서 단순히 눈요기를 위해서라도 볼 만 한 영화로 꼽히는 (물론 스토리 구성도 좋았지만) ‘오션스 일레븐’(국내개봉2002,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단적인 예다. 또한 한국 영화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50위 안에 미디어 사장, 유명 감독들과 함께 이름을 올린 송강호, 최민식, 안성기 등의 배우들만 보더라도 출연하는 배우가 영화의 흥행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살인의 추억’(2003, 봉준호 감독)의 송강호가 출연한 ‘우아한 세계’(2007, 한재림 감독)나 ‘올드보이’(2003, 박찬욱 감독)의 최민식이 이영애와 함께 열연한 ‘친절한 금자씨’(2005, 박찬욱 감독)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관객을 동원한 것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무려 열 팀이 넘는 아이돌 가수들이 카메오로 출연해 화제였던 ‘긴급조치 19호’(2002, 김태규 감독)처럼 아이돌 가수가 출연해 꽃 같은 미소만 보여주고서 소녀 팬들의 용돈 지갑을 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전작에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에 다시금 그의 열연을 기대해보는 것은 괜찮은 일이 아닌가 싶다.천만 관객 돌파로 화제가 되었던 ‘실미도’(2003, 강우석 감독)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 ‘말아톤’(2005, 정윤철 감독), 보는 이들마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그놈 목소리’(2007, 박진표 감독) 등의 영화도 안성기, 설경우, 조승우 라는 배우들과 함께 흥행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흥행에서 조금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영화들이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1971년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실미도 사건, 꿈을 싣고 달리는 장애우 초원의 이야기, 전 국민을 분노케 했던 이형호군 납치 사건. 모두가 감동과 슬픔, 혹은 분노로 온 국민의 화제였던 이야기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극의 전개와 결말 등을 이미 알고 있게 되지만, 많은 관객들은 다시금 그 이야기를 보고 듣고자 영화관을 찾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그 이야기가 실제라는 점에서 허구의 영화보다 관람객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겨주게 마련이다. 여담으로, 영화는 아니지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여가수 ‘SAT’의 ‘이게 나예요’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는 1990년에 발생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던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속의 이야기를 실제로 겪은 이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들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게 되면서 관람객들은 더욱 영화에 몰입하게 되고 더 긴 여운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매력에 끌린 많은 관객들이 실화 영화를 찾곤 하는 것이다.화제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을 거둔다면, 여기에 뒤지지 않는 것이 유명한 소설을 소재로 제작되는 영화다. 대표적인 예로 ‘해리포터’(2001-2007,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외)와 ‘반지의 제왕’(2002-2003, 피터 잭슨 감독) 시리즈를 들 수 있다. 유명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둔 이 영화들은 원작의 인기에 버금가는 흥행을 거두었다. 이 외에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원작으로 한 영화 ‘향수’(2006, 톰 튀크베어 감독), 당시 10대와 20대 초반을 열광케 했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김경형 감독)등의 흥행 역시 원작의 흥행으로부터 이끌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역시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고 보게 되지만, 활자로만 접하며 상상해왔던 작품 속 장면들을 영상을 통해 보는 재미를 잡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는다. 영화 제작자들은 이러한 관객들로부터 선택받고 이들은 만족시키기 위해, 원작의 감동을 충분히 살려내면서도 원작과는 또 다른 느낌과 재미를 담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원작의 유명세를 타고 흥행에 오르고, 영화의 상영과 더불어 원작은 다시금 주목을 받곤 한다.이외에도 조금 독특한 이유로는 영화의 OST를 들 수 있다. ‘장화, 홍련’ 관람 이후 음악을 맡았던 이병우씨의 팬이 된 필자의 한 친구는 단지 ‘그의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괴물’과 ‘그놈 목소리’를 관람했다. 그는 ‘장화, 홍련’, ‘왕의 남자’, ‘괴물’, ‘그놈 목소리’ 등의 사운드 트랙을 담당한 유명 음악 감독으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스 짐머’, ‘존 배리’, ‘크리스토퍼 영’, ‘조성우’, ‘히사이시 조’ 등의 유명 음악 감독들이 그들의 음악을 좇는 다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다. 영화는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님에,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음악 감독의 사운드 트랙을 즐기는 것은 이들에게 충분한 선택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아파트, 누가 그 곳을 꿈꾸었나2007000000 000고소영, 최지우, 이영애, 김남주, 배용준, 장동건……. 이 연예인들은 모두 각기 다른 건설회사의 아파트 광고에서 현대적 삶을 살아가는 멋쟁이들로 우리를 마주하곤 했던 이들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아파트 광고를 접하는 나라. 아파트 없는 시가지의 모습은 연상하기 힘들어진 나라. 우리는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다.불과 3,40년 전만 해도 고층 건물이라고는 얼마 찾아 볼 수 없었던 우리나라를, 대체 무엇이 이처럼 아파트로 가득 찬 대한민국으로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 이가 바로 프랑스의 지리학자이자「아파트 공화국」(발레리 줄레조, 2007, 후마니타스)의 저자인 발레리 줄레조이다. 그녀는 1993년 한국을 방문해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충격을 받고, 이에 대한 10년간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그 내용으로「아파트 공화국」을 펴내었다. 부동산, 재개발, 아파트 버블 등의 단어들에 민감한 국민들에게나, 나와 같이 건축 및 도시 계획에 장래를 두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매우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총 8장의 내용과 결론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저자는 아파트를 단순히 고층의 공동주택이라는 일종의 건물로 바라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경제, 사회, 정치, 문화의 축으로 이루어진 환경 안에서 이것이 어떻게 성장한 것인지를 분석하며 아파트를 재조명하고 있다.서울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제 3차 경제개발 5개년 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급격한 경제 성장과 도시화, 인구 증가를 이루기 시작했던 대한민국에 등장한 이 대규모 주택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나가는 발전된 현대식 건물의 상징으로 인식되며 점점 더 빠르고 굳건히 그 입지를 굳혀 나갔다. 이러한 아파트 단지의 조성은 초창기에 ‘대한주택공사’와 ‘토지개발공사’ 등의 국영기업 지휘 아래 국가사업처럼 이루어졌다. 독재 정권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던 당시의 개발 정책으로부터 시작되어 대기업들에 그 배턴이 넘어간 아파트 건설은 도시 중산층의 아파트 입주가 증가하고, 아파트가 삶의 터전으로 쓰이는 주택의 의미에서 잘 꾸며진 하나의 상품 또는 개인의 재산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매우 빠르게 가속화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저자는 책의 2,3,4장에서 이같은 아파트의 역사와 양산 배경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그 뒤의 5,6,7,8장에서 현재의 아파트가 갖고 있는 문화적, 사회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그녀가 만나서 인터뷰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곧바로 우리의 이야기이자,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아파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국 사회 속에서 아파트는 어떻게 조명되고 있는 가에 대한 이야기는, 프랑스를 비롯한 부근의 서구에서는 실패한 주택의 형태로 알려져 있는 아파트가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저자는 한국의 아파트가 가깝거나 혹은 먼 미래에도 성공적인 주택 모델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아파트에 대한 긴 여정을 끝맺는다. 주거 공간의 개념을 뛰어 넘어 개인의 부의 상징으로 변질된 이 배타적 공간이 불러 온 거주 형태의 획일화와 도시의 파편화가 언제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민주화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독재적 개발 정책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이 대단지의 건설이 ‘좁은 땅덩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고층 건물의 필수적 선택’으로 고민 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허울 좋은 이 민주화가 경제 성장만큼이나 급격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솟구치는 중에, 이러한 아파트 건설이 여기까지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좀 더 수월하게 찾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