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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론과 근대화론 이해 평가A좋아요
    목차Ⅰ. 서론Ⅱ. 식민지 수탈론과 근대화론1. 식민지 수탈론2. 식민지 근대화론3. 식민지 수탈론과 근대화론의 대립Ⅲ.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측면1. 농업부문2. 공업부문3. 수산업 · 광업부문4. 인적부문5. 개발의 유산부문Ⅳ. 식민지 수탈론 비판 측면1. 민족주의의 폐해2. 수탈론 비판3. 식민지 근대화론의 올바른 이해4. 일제의 유산Ⅴ. 결론참고문헌Ⅰ. 서 론한·일 양국은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역사를 공유하면서 최근의 독도문제 등 양국간 많은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한반도는 1910년 8월 일제에 의한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 하에 식민통치를 당하게 된다. 일본은 1860년대에 메이지유신을 전후하여 근대화되었고 이후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당시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을 물리치고 한반도를 점령하게 되었다. 그 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에 승리하고 한일의정서,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 을사조약 등 한일협약을 체결하고 마지막으로 1910년 8월 22일 합병조약의 체결을 강제함으로써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가 완성되었다.일제강점기 하에서 한반도의 정세는 극변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한반도의 근대화이다. 근대화란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하는데 한반도의 근대화가 과연 일제강점기로 인해 이루어진 것인지에 관에 논란이 있다. 바로 식민지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의 대립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이란 피식민 국가가 식민국가에 의해 식민통치를 당하면서 근대화된다는 이론이고 반대로 식민지 수탈론은 식민국가가 일방적으로 피식민 국가를 수탈한다는 이론을 말한다. 특히 광복이후 조선이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북쪽은 사회주의, 남쪽은 자본주의라는 다른 길을 걸어감으로써 북한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실패를 하였지만 남한은 엄청남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즉 남한의 경제성장의 원인으로 일제강점기의 경제 정책으로 까지 확대해석 되고 있으며 그러한 대표적인 이론이 식민지 근대대화론은 식민지수탈론과 근대화론의 물리적?절충적 결합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인식을 토대로 한 역사적 관점으로서 근대화론에 가깝다. 가령, 식민지근대화론은 철도건설이 역사적 사실이고 수탈을 위한 것이기도 했으나 근대 교통수단으로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처럼 식민지근대화론에서는 일본의 조선지배는 부당하지만 근대적인 토지, 산업, 우편, 학교, 건축, 문화예술, 병원, 행정과 정치의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것을 단지 제국주의의 수탈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식민지수탈론자들 또한 일제식민지 시대에 부분적이고 기형적이지만 발전을 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일본학계에서는 1980년대 중반 경부터 해방 이후 한국의 공업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사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식민지시기에 이르러 어느 정도 공업화가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가 라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쉽게 말해 한국의 공업화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때문인가, 아니면 한국의 내재적 발전에 기한 것인가가 논점이다. 이 논점은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은 자본주의의 자연사적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산물로서 파악하는가, 아니면 사회주의권과의 대립 속에서 미국이 취한 특수한 정책의 결과로서 파악하는가 하는 문제였다.이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경도대학의 교수인 나까무라(中村哲)는 ‘근대세계사의 재검토’ 라는 논문에서 중진자본주의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제시하고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을 중진자본주의국가로 파악하였다. 그는 신흥공업국은 미국중심의 세계체제하에서 나타난 특수 역사적인 존재가 아니고, 각각의 세계사적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편성을 가진 존재로서 파악했던 것이다.)'식민통치 미화론' 혹은 '식민지 시혜론'에 입각한 일본인의 '망언'이 거듭되는 동안에, 한국의 대응이 민족적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서 이성적인 치밀성과 보편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수준을 유지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할수록 그 경제성장의 원인이 일제 식대화론 비판 측면1. 농업부문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의 경지면적농업개발을 알수 있는 대표적인 자료인 토지의 면적의 증가부터 살펴보겠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10~42년까지의 경지면적 자료를 알아볼 수 있는데 에서 볼 수 있듯이 1918년까지의 급격한 경지면적 증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의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부터 농업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1910년대의 증가폭은 1918년 이후보다 낮아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지면적의 변화는 개간과 간척으로 알수있다. 당시 개간은 주로 일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일본인의 토지소유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기간지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미간지를 전부 개간한다 하더라도 그 양은 17년간의 경지 면적의 증가를 설명할 수가 없다. 또한 1910년대에는 본격적인 토지개량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개간과 간천에 의한 경제 면적의 증대 가능성은 한층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결국 1910년과 1942년의 경지면적의 변화는 그래프에 보이는 것과는 다리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개간이나 간척이 아닌 구한말 이래로 내려오던 경지를 조사를 통해 수치화한 것뿐이라고 할 수 있겠다.)이 밖에도 관개시설의 확대 및 우량품종의 생산과 비료투입의 확대 등 여러 요인의 작용으로 개발과정에서 조선의 농민들도 영향을 받아 농업개발이 되었다는 측면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러나 이러한 개발은 일제시대의 식민지적 농업개발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즉 농업개발의 중심축은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농업개발과정 속에서 비옥한토지의 축적 과 생산량의 집중으로 외형적인 개발에도 불구 민족간의 농업생산액의 차이는 확대되고 조선인 농민의 경제적 처지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민족간의 농업생산액의 차이만 확대되고 인구증가에 따른 1인당 소득은 크게 줄어 들었다. 이는 대표적으로 논의 면적으로 알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토지생산성에 따른 일본인 소유의 논면적으로 알아 볼수 있다. 다음 일본인 대지주 소유 논에 대한 분석를 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낮았다. 에서 볼수 있듯이 조선인 광산의 생산액이 전체 광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16.2%(1933년)이었고, 1926, 1933~35년을 제외하면 거의 10% 이하의 수준에 불과했다. 1927년까지만 하여도 조선의 광산액은 일본인을 제외한 여타 외국인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1917년과 1918년에 일본인의 비중이 급속히 증대되어 그 이후에는 일본인의 비중이 70~80%대를 오르내리게 된다. 물론 이사이에 조선의 광산액은 크게 증대되었다. 1911년 6백만 엔이던 광산액은 제1차 세계대전의 호경기에 힘입어1918년 3천만 엔대로 급증했다. 1931년까지는 그 수준 이하에서 오르내렸지만, 1932년부터 다시 급증하기 시작하여 1936년에는 1억엔을 돌파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의 광산액도 급증하여 1910년 33만엔 수준에서 1936년 987만엔으로 거의 30배 증가하게 된다. 특히 광업개발이 본격화되는 1930년대 이후에는 조선인과 외국인의 비중이 더울 줄어들고, 일본인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 조선의 광업개발이라는 것도 농업이나 공업 혹은 수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수단의 소유 및 생산액의 배분이 대부분 일본인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4. 인적부문조선의 근대적 교육은 갑오개혁 이후 관공립학교의 설립으로 시작하여 1905년 이후 애국계몽운동에 의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에 병탄되기 직전에는 조선인들의 근대교육에 대한 견해도 상당히 달라졌다. 근대교육을 하는 학교 수와 학생수가 급증함에 따라 병탄 직전인 1910년 3월에는 2146개소의 보통학교에 10만명을 상회하는 조선인 학생들이 재적하게 된다. 이 숫자는 해방당시의 학생수에 비해하면 아주 적은 숫자이지만, 5년 남짓한 사이에 근대교육기관의 수가 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것은 조선인이 주체적으로 근대교육을 확대해 나갈 태세가 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사농공상의 직업관도 이시기가 되면 상당히 이완되었고중화학공업으로 나누어 보아도 경공업부문에서는 남한이 중화학공업부문에서는 북한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것을 알수 있다. 결국 조선의 경제를 변모시켰던 기술과 규모에 있어서 경공업 보다 훨씬 큰 광공업부문의 여러 변화가 조선지역 전체에 걸쳐 골고루 이루어 진것이 아니라 북한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즉 해방이후 한국경제가 다시 농업국으로 돌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남한지역에 약 22.8억 달러의 일본인 자산이 남겨졌고 그중 기업자산은 13억달러(200억 엔)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물적유산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첫째, 조선공업의 발전이 조선 자체의 경제적 성장과정에서 초래된것이 아니라 일제의 필요에 의해서 건설된것이기 때문에 일제의 패퇴 후 각 공업간 상호유기성 소실이다. 둘째, 남한에는 군수산업보다는 평화산업이 많았고, 전시체제 중 이러한 평화산업들이 통폐합·축소 됨에 따라 전체적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군수산업에서 평화산업으로의 전환도 그에 필요한 기술이나 부품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었다. 셋째, 이러한 물적유산 중에는 일제말기 부품확보가 어려워 조악한 상태로 유지되거나 이미 노후화되어 해방이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해방 직후 남한에 남겨져 있던 물적 유산은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그 50.5%가 파괴되었고 특히 인쇄공업과 방직공업은 원상의 5할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그 밖의 업종도 대체로 20~30%대의 피해를 입었고 공업의 피해액은 1억 1천 5백만 달러나 되었다. 이러한 격변을 거치면서 1950년대 남한지역에 남겨진 일본의 공업자산의 의미는 1930년대 말까의 급속한 공업발전과정에서의 일본인 자본이 수행했던 역할과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 할수 있겠다.)Ⅳ. 식민지 수탈론 비판 측면1. 민족주의의 폐해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민족주의의 폐해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민족이라는 역사의 기초 단위가 있다.
    학위논문| 2011.09.08| 26페이지| 3,000원| 조회(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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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음인, 감기, 폐, 기관지에 좋은 음식들
    Ⅰ. 서 론요즘은 ‘웰빙’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건강과 행복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져가고 있다. 단순히 부유한 삶 보다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는 뜻이다. 꼭 이러한 열풍 때문만이 아니라 평소부터 나는 건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수업도 평소에 건강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 수강신청을 했었다. 나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차에 이번 수업과 보고서는 그러한 내용들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평소에 운동과 먹는 것 등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건강에 대한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요즘 신종플루가 대유행하고 있고, 또한 나의 사상체질인 태음인은 기관지나 폐가 약하다고 하기 때문에 폐나 기관지 계통에 대한 관심이 더 늘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가지고 있어, 코감기에 자주 걸리는 편이고, 군대에서 감기가 심하게 걸린 이후로 편도선도 자주 붓게 되었다. 그리고 감기에 잘 걸리지는 않지만 한번 걸리면 심하게 앓는 편이라 더욱더 관심이 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할아버지 때문이다. 이번에 할아버지께서 폐가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었는데 안그래도 할아버지 때문에 폐에 좋은 음식들을 알아보고 있는 차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 보고서에서는 나의 사상체질인 태음인과 기관지나 폐에 좋은 음식과 요리들을 조사하고자 한다.Ⅱ. 나의 사상체질 - 태음인사상체질이란 이제마(李濟馬, 1836∼1900)가 《동의수세보원》에 기록한 내용으로, 인간의 체질을 태양인과 태음인·소양인·소음인의 네 가지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체질은 본래 가지고 태어난 신체적인 특징과 정신적인 특징,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특성을 지닌 개념인데, 확률적으로 확실히 구분되는 네 가지로 나눈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한쪽 체질에만 완벽하게 속하는 것은또한 태음인은 사회생활에 가장 안성맞춤 형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대응을 잘하고, 일단 시작한 일은 끝까지 마치는 성취력이 있다. 또 무슨 일이든 꾸준하게 하고 매사를 신중하게 처리하며, 이해력 또한 풍부하다. 하지만 게으른 점이나 보수적이고 욕심이 많은 점 등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나 또한 일을 할때는 꾸준하게 하는편이고, 신중한편이다. 또한 보수적이면서 약간 게으른점과 욕심이 만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러한 성격들은 나의 성격과 매우 비슷하다. 또한 운동으로는 체력을 요구하는 장거리 육상?수영?사이클?등산?씨름?육체미?레슬링?태권도?유도?역도 등 격투기 종목이 알맞고, 구기종목은 체력을 요구하는 역할과 계속 뛰는 위치가 좋으며, 야구에서는 외야수 및 강속구 투수 자리가 좋다. 나는 개인적으로 격투기를 좋아해서 합기도, 태권도, 주짓수 등의 무술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체질과도 약간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것들로 볼 때 나는 태음인일 확률이 매우 높다.태음인에게 알맞은 음식을 알아보자면, 식욕이 왕성한 태음인은 성인병 예방을 위해 적당히 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체질에 맞는 음식으로는 우선 쇠고기를 들 수 있다. 쇠고기는 기운을 북돋워 주는데, 만일 몸이 약하거나 피곤할 때는 기름기를 제거한 후 먹는 것이 좋다. 또한 우유, 버터, 치즈, 명란, 우렁이, 뱀장어, 대구 등도 보양식으로 좋으나, 성인병 환자라면 우유, 버터, 치즈는 피해야 한다. 단방으로는 녹용, 녹각, 쥐콩, 잣, 호도 등이 태음인에게 좋은 음식이다. 녹용은 인체의 호르몬을 보호해 주며 녹각, 쥐콩은 뼈를 튼튼히 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또 폐와 기관지에는 잣과 호두 등이 좋다. 그밖에 차로는 칡차와 칡즙을 꼽을 수 있는데, 목의 뻣뻣한 기운을 풀어주고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매실차와 오미자차는 폐와 기관지를 보해 주고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또 녹차와 영지버섯은 혈액순환에, 율무차는 비만을 억제하는데 효과적이다. 한약재로는 공진흑원단과 녹용대보탕 등을 복용할 만하다 납작하게 썬 것을 10~15g씩 물을 부어 은근히 끓인 것을 1일 2,3회로 나우어 마시되 설탕이나 벌꿀을 넣 어 마시거나, 대추를 넣어 달여마셔도 좋다2) 해설- 생강은 조미료로 많이 쓰이며 특히 생선조림에는 비린내를 없애고 식욕을 돋워준다. 생 강은 원래 아시아 열대지방이 원산인 듯하나 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중국을 통하여 들어 와 재배되어 토착된 듯하다. 생강의 한방, 민간 또는 현대의학적으로 밝혀진 효능은 다음 과 같다. 첫째, 식용을 돋워준다. 생강에는 소화액 분비를 자극하고 위장의 운동을 촉진하 는 성분이 있어 식욕을 좋게 하고 소화흡수를 돕는다. 둘째, 생강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균에 대해 살균?항균하는 작용이 있다. 셋째, 메스껍거나 속이 거북할 때, 딸꾹질이 날 때 멈추는 작용이 있다. 넷째, 으스스 춥고 코가 막히고 두통이 나며 열이 있을 때 생강 을 달여마시면 땀이 나고 가래가 삭는 작용이 있다. 다섯째,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는 체내의 수분조절이 잘 되지 않아 얼굴이 부석하게 붓는데 생강은 땀을 내고 소변이 잘 나오게 하여 부기를 빼준다. 마지막으로 몸을 훈훈하게 하여 냉감증, 불감증, 생리불순등 을 고쳐준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먹거나 치질이 있거나 피부병이 생겼을때는 좋지 않다.생강의 성분 중 징게론?쇼가올 등이 살균작용을 나타내며 정유 성분으로는 징기베롤이 함유되어 있다.3.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감기에도 좋은 쑥갓1) 요리법① 감기증세가 보일 때 된장국에 쑥갓, 파의 흰 밑동, 두부를 넣고 끓여서 더운 김을 불 면서 마시면 땀이 나면서 거뜬하게 된다.② 좀더 약효가 나게 하려면 쑥갓 한 줌에 행인(살구씨) 깨뜨린 것 18g, 길경(도라지 말 린 것을 약으로 쓸 때 이렇게 부른다) 15g을 잘게 썰어서 섞은 후 물을 3컵 넣고 절반으 로 줄을 때까지 달인 다음 하루 세 번 복용하면 웬만한 기침 감기 또는 목이 아픈 데 효 과가 있다.2) 해설- 쑥갓은 원래 지중해 근처 유럽이 원산지이며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중푼, 참기름 2스푼, 파와 마늘 다진 것, 깨소금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③ ②의 양념장을 도라지에 바른다.④ 달군 후라이팬에 재워진 도라지를 굽는다.3) 해설- 도라지는 폐, 심장, 위장, 신장계통에 많이 쓰이는 약재이다. 주로 기침을 멈추게 하고 가래를 삭히며 해열, 소염작용을 하고 머리, 눈을 맑게 해준다. 이 도라지는 장복해도 부 작용이 없으며, 목감기, 기침, 기관지가 약한 사람들의 성대보호에도 좋은 식이요법이 된 다.6. 환절기 기침에 한방돼지갈비1) 재료- 돼지갈비, 감초30g, 정향10g, 목향10g, 생강30g, 물엿, 마늘, 후추, 참깨, 참기름, 간장2) 요리법① 감초, 정향, 목향, 생각에 물 3대접 정도를 넣고 1시간 가량 달인다.② 식혀서 고운 체에 걸러 육수를 만든다.③ 육수에 마늘 1스푼, 참깨, 참기름, 후추와 간장 3스푼, 물엿을 충분히 넣은 후 혼합한 다.④ 양념한 육수에 갈비를 재운다.⑤ 갈비는 24시간 이상 재운 뒤 굽는다.3) 해설- 환절기에는 체내 기초대사가 저하되기 쉬워서 상기도에 관여하는 바이러스균 때문에 기침환자가 많이 발생한다. 이때 정향, 목향, 생강 등은 행기보운하여 몸을 덥게하고 기운 을 고루 행하게 하므로 기침을 멎게 해준다. 이 요리는 특히 몸 전체의 기능이 저하됐을 때 몸살기가 있으면서 기침할 때에도 좋은 효과를 가진다.7. 천식에 호박식혜1) 재료- 늙은 호박 1개, 엿기름 우려낸 물, 생강 3쪽2) 요리법① 엿기름의 앙금을 우려내서 밥과 3~4시간 삭힌 국물을 충분히 준비한다.② 호박의 꼭지부분을 뚜껑처럼 도려낸 후 속을 파낸다.③ 호박 속에 엿기름 삭힌 국물과 생강을 넣고 찜통에 넣어 물을 삼발이의 1/3정도 되게 붓고 약한 불에 3시간 정도 푹 찐다.④ 호박이 1/3정도 익었을 때 꺼낸다.3) 해설- 호박속의 단맛과 온화한 성질이 천식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 호박식혜는 기 관지천식뿐만 아니라 찬바람을 맞은 천식과 천식으로 부종이 올 때에도 복용하며 부종이 가라앉고 기침도 멎는다.8. 넣오 복어의 핏물을 우려낸다.② 건지황은 깨끗하게 씻어 놓는다.③ 파, 미나리, 콩나물을 4~5cm 정도의 크기로 썰고 무는 반달썰기 한다.④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을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⑤ 무를 넣고 끓여 익으면 복어와 건지황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⑥ 콩나물과 파를 넣고 한참 끓이다가 거의 익었을 때에 미나리를 넣고 식초도 넣어 맛을 살린다.3) 해설- 복은 천식과 기관지 발작에 좋으며, 지황은 한방에서 음기를 보충하고 열을 내려주는 약재로서 말리지 않고 바로 쓰는 생지황과 말려서 쓰는 건지황, 아홉 번 쪄서 만든 숙지 황으로 나뉜다. 이중 복매운탕에 어울리는 약재는 음기와 혈기를 보해주고 열기를 서늘하 게 식혀주는 작용을 가진 건지황이다. 특히 복어는 간과, 알, 피 등에 독이 있어서 복용 시 전문가의 손질에 의해 독을 제거해야 안전하다.11. 감기?천식 등 호흡기 질환에 좋은 은행오리찜1) 요리법① 은행은 껍질을 벗겨 알맹이를 끓는 물에 데쳐낸 다음, 심을 뺀 후 끓는 물에 다시 데 쳐 쓴맛을 제거하고 식용유로 튀겨낸다.② 오리는 목과 발을 잘라낸 다음 소금, 후춧가루, 맛술을 로리의 안과 밖에 골고루 뿌린 후 그릇에 담는다.③ 그릇에 담은 오리 위에 파, 생강을 얹고 센불로 1시간 정도 쪄낸다.④ 다 익으면 파와 생강을 걷어내고 오리의 살만 발라내 적당한 크기의 토막으로 썰어 은 행과 표고버섯으로 버무려 그릇에 담는다.⑤ 처음 오리를 찌고 남은 국물을 여기에 붓고 솥에서 30분간 더 찐 뒤 그릇에 가지런히 담는다.⑥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남은 맛술, 소금, 조미료, 후춧가루를 넣은 후 오리찜 그 릇에서 국물을 따라내 붓고 끓으면 전분으로 걸쭉하게 만들어 오리 위에 끼얹어 식탁에 올린다.2) 해설- 은행은 환절기 호흡기 건강에 특히 유익한 약용식품이다. 은행은 호흡기병으로 인한 기 침과 가래를 멎게 한다. 특히 천식으로 인해 가래가 끓는 증상, 열이나고 기침이 심한 증 상에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건강식 오리찜을 만들어 먹을
    생활/환경| 2009.12.08| 9페이지| 1,000원| 조회(19,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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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업사례조사
    -기업가 정신적 측면기업가정신적인 측면이나 기업의 구체적인 성장스토리 등을 알기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조사를 해본 뒤 자료를 찾을 수 없어 ETI의 IR팀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자료가 존재 하지 않는다고 하여 대신 연혁으로 올렸습니다.우리이티아이는 설립 당시 신규진입이 어려운 블루마켓인 CCFL분야에 도전적으로 진출을 하여 LED PKG사업화 등 수직계열화에도 힘을 싣는 등 조명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일궈낼 수 있는 기업으로 자리 잡고 2008년부터는 CCFL업계 내에서 최강자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산업환경적 측면LCD TV의 판매가 확대 되어 짐에 따라 자연스레 우리이티아이의 주력상품인 CCFL의 판매도 증가하게 되고, 납품회사가 증가하면서 주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의 영향도 적게 받게 됨에 따라, 견조 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가장 최근에 등장한 LED또한 친환경적 소재라는 인식과 함께 오랜 수명으로 각광받게 되면서 각국에서는 이러한 LED를 신 성장 발전 전략으로 선택하면서 대단위 투자와 제도로 뒷받침을 하고 있으며, 양산화 초기단계 이기 때문에 향후 성장가능성이 무한하며 우리이티아이도 이러한 움직임에 양산 체제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인적, 물적 자원의 측면자료의 통계에서 나타나는 2005년경부터 2008년까지 자본의 규모가 서서히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회사가 견조 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또한 인적자원은 윤철주, 권경환 2인의 대표이사 체제로 1010명의 종업원과 함께 주주총회를 최고 지위의 가치로 두고 여러 부서로 구성되어 기업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경영 전략적 측면현재 CCFL분야 1위 기업을 유지하면서 조명과 diplay분야 강점을 가진 회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시너지효과를 위한 계열사 간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고 자사주 매입 등 주주가치 제고 등 led- package분야 개발 및 양산 체제를 갖춤으로서 기업의 성장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결론우리이티아이의 경우 ccfl분야의 강점을 내세워 다양하게 살길을 모색해 나가며 지금의 강소 기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으로 향후 2년간 미국 발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09년 이후의 실적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므로 이러한 경제위기의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설비의 투자와 개발이 이루어 져야 할 것입니다.이번 글로벌위기와 지난번의 글로벌 위기의 성향이 다르긴 하지만 경제의 사이클은 순환되기 마련이므로 회복이 시작되는 그 시점을 대비하여 강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수탁업체의 형태에서 벗어나 위탁기업의 형태로 진화되어야만 할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최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 을 포함한 우호 지분의 비율이 50%에 달하는 점을 볼 때, 경기 순환시점을 잘 파악하여 경영권 방어가 가능한 한도에서 추가적인 펀딩의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는 상황입니다.우호적, 또는 전략적 투자기관 및 벤처캐피털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IR에 나서서 투자자금을 유치하여 재료의 구매부터 생산, 판매 까지 원스톱 체계를 구축하여 모든 부가가치를 흡수하고, 물류조직을 확대 및 개편하고 적극적으로 국제화를 추진하여 해외의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여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활용하는 등 자원 조달비용을 경감시키며, 환경 친화적 생산 활동을 통하여 앞으로 다가올 규제에 대비하여 설계 및 관리를 하고 재무와 마케팅을 강화하여 조직관리 에 총력을 기울여 나간다면 다가올 미래에 대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미용실과 이발소의 차이점 35가지1.인테리어미용실은 매년 고객의 취향에 맞추기 위하여 최신, 고급의 인테리어 소재들을 사용하여 눈길을 끄는 반면 이발소는 초창기의 음습한 인테리어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가운의 디자인미용실의 경우 발랄한 핑크색이나 해당점포의 로고가 그려져 있는 형형색색의 가운을 선보이나 이발소는 오로지 하얀색 가운만을 고집한다.3.세미나의 개최이발소는 개업전후로 배웠던 기술을 가지고 수년간 크게 변화하지 않는 고정적인 헤어스타일링 을 고집하지만 미용실의 경우 세미나를 수시로 개최하여 최신 헤어스타일을 연구 하고 공유한다.4.고객 맞춤 전략이발소에 가게 되면 주로 장년층의 어른들이 보는 주간지나 신문 만화책등이 구비되어 있는 편의시설이 대부분인 반면 미용실의 경우 젊은이들이 자주 구독하는 잡지 및 헤어스타일링 잡지 등을 구비해 놓고 있으며 인터넷 검색 pc도 구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음료와 손마사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5. 다양한 사업영역미용실에서는 네일/풋아트, 메이크업, 피부 및 웨딩 등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사업을 전개하여 그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각각 개개인에 맞는 스타일과 신체적인 특징 요소 들을 파악하여 맞춤형 패키지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함으로서 부가가치도 얻고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6.조직적이며 체계적인 운용대규모 프랜차이즈 미용실의 경우 운용을 하기위해서는 조직적이고 탄탄한 구조가 필요한데, 이에 따라 본점에서 부서별로 조직을 구성한후 운영하며 가맹점별 원장-부원장-매니저-스탭 식의 시스템을 두고 체계적인 관리를 해나간다.7.제휴 및 다양한 할인 서비스이발소의 경우 현금결제나 카드결제에서 그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미용실의 경우 다양한 통신사, 신용카드사와의 제휴를 통해 고객들에게 다양한 제휴할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8. 전문적 교육시스템미용실의 경우 모든 고객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직원 을 대상, 기술력 향상프로그램 및 인성 및 서비스 교육, 비전 제시 등을 통하여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도록 디자이너를 양성하고 있다.9.계절이 주는 영향미용실의 경우 주요고객층이 아직까지는 여성층이다. 여성 고객들은 여름에 시원함을 추구하기 위해 머리를 묶고 다닌다. 이에 미용실을 잘 가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어 미용실의 매출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반해 이발소의 경우 주 고객 층이 남성이기 때문에 계절과 상관없이 시기가 되면 머리를 깎는 경향이 있다.10.경연대회 개최미용실의 경우 점포 자체적으로나 전국이나 세계단위의 대회를 개최함 으로서 수상자에게 명예 및 해외연수 나 상금을 지급함으로서 디자이너의 역량강화를 도모한다.11.헤어 쇼핑몰 운영인터넷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에는 고객이 미용실을 찾아야만 헤어스타일을 둘러볼 수 있던 반면 요즘은 사이트만 방문하게 되면 가격과 스타일을 둘러볼 수 있고 예약 및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12.전문적인 헤어제품의 판매이발소에서는 형식적으로 해당점포에서 판매하는 몇 가지 상품만을 진열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미용실의 경우 고객의 다양한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 두피 타입별로 구성된 전문적인 헤어제품과 손상된 헤어를 관리할수 있는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판매한다.13.전문적인 클리닉 서비스미용실에서는 전문적인 두피타입별 주요증상과 진단법을 개발하여 두피클리닉을 운영하고 탈모 관리 등을 통하여 기존 미용실의 역할이었던 헤어스타일 변화에서 확장된 서비스를 제공한다.14.남성 전용 미용실기존의 이발소를 이용하기에는 스타일링에 만족하기 힘들고 미용실에 가기 부담스러웠던 이용자들을 위하여 남성 전용 미용실도 탄생하여 수요자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였다.15.공식 협회 운영대한미용사회를 필두 로 하여 미용을 업으로 하는 미용이이 미용업 발전 및 기술향상과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여 공중위생과 국민보건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결성 되어있으며 회원 공동 목적 실현을 위해 대외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결과를 얻기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이발사의 경우 공식적인 협회가 없으며 비공식적인 협회로써 친목도모를 주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6.사업 목적의 차이이발소의 경우 소규모 자영업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미용실의 경우 대규모 사업적 성향이 짙어 체계적이고 세세한 부분에 있어 차이가 나게 될 수밖에 없다.17.삼색원통의 존재유무이발소의 상징인 3색 원통은 청색은 정맥 홍색은 동맥 백색은 붕대를 상징하는 의미인데, 과거 미용실에서도 이 삼색원통이 존재했으나 사업영역을 확장해나가며 토탈케어의 측면이 강화되자 자연스레 삼색원통이 사라지게 되었다.18.가격의 차이미용실에서는 이발소와 같이 커트와 염색 등 한정적인 시술뿐 아니라 펌, 클리닉, 메이크업 등 다양한 케어를 하기 때문에 가격의 폭이 클뿐 아니라 다양하다.19.의미의 차이이발소는 단지 말 그대로 몸에 난 털을 제거한다는 뜻이며 미용실의 경우 아름답게 가꾼다는 뜻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20.고객 감동추구미용실은 기다리는 고객을 위하여 다과서비스, 네일 케어, 핸드마사지, 전신마사지등을 통하여 고객이 원하기도 전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만족감을 극대화 시킨다.21.입지조건의 차이이발소의 경우 대부분 동네 근처나 상가에 위치한 반면, 미용실은 도심이나 시내 유동인구가 많고 발달한 입지에 위치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고객의 수와 함께 수요를 잘 수용하여 수익이 크게 발생한다.22.직원의수이발소의 경우 대개 주인 한명이 고객의 머리를 시술하는데 모두 할당을 하지만 미용실의 경우 헤어디자이너가 최소 2명에서 10명이상까지 보유하고 있거나 타 시술 담당직원을 아예 따로 보유하여 고객들은 빠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23.의사소통의 원활성이발소의 경우 주로 남성의 커트를 담당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커트가 이루어지는 반면 미용실의 경우 헤어시술 시간이 이발소에 비해 길어 고객과의 의사소통을 통한 상호작용 시간적 여유가 생겨 소통이 원활해 진다.
    경영/경제| 2009.10.17| 14페이지| 1,000원| 조회(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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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디세이아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
    Ⅰ. 오디세이아와 관련된 소설과 영화1.율리시스 [Ulysses]아일랜드의 시인, 소설가인 J.조이스의 장편소설. 1918∼1920년에 뉴욕의 문예잡지 《리틀 리뷰 Little Review》에 연재중 게재금지를 당하여 1922년 파리의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출판하였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의식의 흐름과 내면의 독백을 종횡으로 활용하였다. 신문의 제목, 음악적 요소, 영화·극 중의 대화, 고전작품의 패러디 등을 종합적으로 채택한 작품이다. 종래의 소설 형식을 근본적으로 뒤엎은 획기적인 작품으로서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다.작자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무대로 1904년 6월 16일 아침 8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일어난 일을 734면에 서술하였다. 중요한 등장인물은 3명으로 유대계의 광고업자 레오폴드 블룸, 그의 부인 마리온, 학생이며 시인 기질이 있는 스티븐 디달러스이다. 1904년 6월 16일은 그후 조이스의 팬들이 블룸의 날(Bloomsday)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작품의 전체적 구성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모방하였고 블룸은 오디세우스, 마리온은 페넬로페, 디달러스는 텔레마코스에 해당한다. 또한 《오디세이아》와 마찬가지로 모두 18삽화의 결합으로 구성하였고 각 삽화도 《오디세이아》의 그것과 대조되게 하였다.그의 솔직한 묘사를 외설·부도덕이라 하여 영국과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발행금지 조치를 취하였다. 프랑스어·독일어 등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유럽과 미국에 끼친 영향이 컸고 연구서적도 많다. 1967년 영국에서 영화화되었다. 한국에서는 1968년 김종건(金鍾健) 번역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 되었는데 영화로는 1954년 마리오 카메리니 감독의 율리시스가 있으며 애니메이션은 1998년 오윤호 감독의 율리시즈가 있다.2. 트로이오디세이아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서 워너브러더스 픽쳐스 제공으로 2004년, 볼프강 페터젠 감독에 브래드 피트, 에릭바나, 올렌도 볼룸등이 출현 했다.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으로 인한 두나라사이의 전쟁과 아가멤논의 야심과 헥토르와 아킬레스의 대결, 영웅 아킬레스의 활약과 사랑등이 흥미 있게 묘사된 영화이다.3.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들로서 나우시카라는 이름부터 오디세이아의 여성인물중 하나이다. 나우시카는는 신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사는 곳인 파이아키아 섬의 왕 알키노스의 딸이다. 그년는 바닷가에 빨래를 하러 나갔다가 벌거벗은 채 표류해온 오디세우스를 정성껏 보살펴 회복시키고 고향 아타카로 돌려 보낸다. 문헌에 따라서는 오디세우스에 대한 연모의 정이 있어다거나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와 결혼한다거나 하는 그록도 보이나 기본적으로는 가장 순수한 의미의 여성성, 즉 지치고 상처입은 남성을 감싸고 힘을 북돋워주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는 점이 작품속에서의 나우시카와 유사하다.또한 또한 센과 치히로 에서는 인간이 돼지가 되었다 풀려나는 과정이 오디세우스 일행이 돼지로 변했다 풀려나오는 내용들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Ⅱ. 오디세이아에서 유래된 말들1. 트로이목마 바이러스자료삭제·정보탈취 등 사이버테러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악성 프로그램이다. 해킹 기능을 가지고 있어 인터넷을 통해 감염된 컴퓨터의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바이러스처럼 다른 파일을 전염시키지 않으므로 해당 파일만 삭제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이것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파일을 통해 전파되는데, 사용자가 누른 자판정보를 외부에 알려주기 때문에 신용카드번호나 비밀번호 등이 유출될 수 있다.프로그램의 이름은 목마 속에서 나온 그리스 병사들이 트로이를 멸망시킨 것을 비유하여 이 프로그램이 상대편이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숨어든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이것은 유용한 프로그램으로 가장하여 사용자가 그 프로그램을 실행하도록 속인다. 사용자가 의심하지 않고 그 프로그램을 실행하게 되면 실제 기대했던 기능을 수행한다. 실제 목적은 사용자의 합법적인 권한을 사용해 시스템의 방어체제에 침해하여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다.이 프로그램은 운영체계 또는 실행환경에 따라 도스 트로이목마와 윈도 트로이목마로 분류한다. MS-DOS에서 수행하는 트로이목마는 유틸리티로 위장하여 특정일자나 특정 조건에 사용자의 컴퓨터 속도를 저하시키거나 파일을 삭제한다. 윈도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은 인터넷에 올려진 상대편의 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하는 등의 악의적 해킹을 주목적으로 한다.2. 멘토멘토란 정신적 스승, 정신적 지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에 나오는 한 등장인물 에서 나왔다.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왕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며, 자신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를 보살펴 달라고 한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르였다. 그는 오딧세이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텔레마코스의 친구, 선생님,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 텔주었다. 그 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멘토르는 오디세우스의 절친한 친구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왕국 이타케 섬을 떠나 트로이의 전장으로 갈 때 오디세우스의 가족과 집안을 부탁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타케 섬의 고귀한 가문 출신인 알키모스의 아들이었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어머니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구혼자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멘테르(멘토르와는 다른 인물)로 변신한 아테네 여신의 충고로 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배 한 척과 선원 스무명을 요구한다. 그러자 멘토르가 일어나 텔레마코스지지 발언을 한다. “이타케의 백성들은 모두 오시세우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텔레마코스를 도와주지도 않고 구혼자들을 행패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멘토르의 비난에 구혼자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텔레마코스는 아무 도움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아테네 여신은 이번에는 멘토르로 변신하여 나타나 그에게 아버지의 용감한 피를 이어받은 몸이니 절대 용기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와 구혼자의 협박에 흔들리지 말라, 그들은 단 하루만에 모두 죽을 운명인 것도 모르고 날뛰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그에게 배를 구해주고 같이 동승하겠다고 약속했다. 텔레마코스가 돌아가 구혼자들을 안심시키고자 잔치를 벌이는 동안 아테네 여신은 텔레마코스의 모습이 되어 선원들을 구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멘토르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텔레마코스를 불러 출항에게 된다. 텔레마코스는 처음에 필로스에 도착한다. 앞일을 걱정하는 그에게 멘토르(변신한 아테네)는 위축도지 말라고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텔레마코스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자 멘토르는 신들이 함께 하니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하라고 충고해주었다. 펠레스에서 만난 네스토르는 아테네 여신이 오디세우스를 아끼고 사랑하므로 염려치 말라고 말해주지만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무례한 구혼자들을 신이 응징해주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푸념한다. 멘토르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텔레마코스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네스토르는 텔레마코스에게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를 만나러 가라고 말하고 두 사람에게 궁에서 자고 가라고 말하지만 멘토르는 선원들에게 당부할 것이 있으니 자신은 떠나겠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아테네 여신이 함께 했음을 안 텔레마코스, 네스토르는 신의 가호가 있음을 명심하고 말해준다.
    인문/어학| 2009.10.17| 5페이지| 1,000원| 조회(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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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해혁명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설립을 가능하게 한 “신해혁명”Ⅰ. 서론신해혁명은 중국의 전통적 황제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아시아 최초로 공화국을 세운 의미 있는 혁명이다. 이러한 신해혁명은 좁은 의미에서 1911년 10월 호북성 무창에서의 신군의봉기에서 시작되어 1912년 4월 원세개정권의 성립에 이르는 시기의 변혁과정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1895년 무렵에서 시작되어 1913년 이른바 ‘제2혁명’이 실패로 끝나는 시기에 걸친 중국사회의 전반적이면서도 상당히 급속한 변화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이러한 변혁과정 속에서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라는 근대 중국사회의 구조 자체의 변화를 수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였다거나 혹은 불철저한 혁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만청왕조의 이민족 지배와 2천여 년에 걸친 전통적 황제 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의 성립 시켰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에 신해혁명 자체로 20세기 중국사회의 변동이라는 거대한 혁명의 기원 내지는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여 지기도 한다.Ⅱ. 신해혁명의 배경1. 시대상황1880년 유럽 열강은 제국주의 세계정책을 채택하여 복잡한 이해대립 아래 동맹과 협상을 맺고 세계분할 자본수출에 나섰다. 열강의 주요 관심은 동남아시아에 집중하여 갔다. 이런 가운데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조선 지배를 둘러싸고 청?일 양국이 대립하여 싸웠고, 청국이 패해한 이 전쟁에는 열강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3국 간섭’이 이루어졌다. 정조는 대만을 일본에게 할양하고, 군사?경제상의 요지를 열강에게 조차지로 제공하였으며, 세력범위의 형성을 인정하고 철도부설?광산개발 권리를 넘겨주어 청조는 그 본체라 할 영역까지도 잠식되기에 이르렀다.이와같은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침략에 대하여 중국의 지식층의 청의 존망문제가 아니라 중화의 멸망이라는 민족적 위기를 느끼게 되면서 중국의 장래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의 대응은 새로운 개혁을 통한 부강의 꾀하려는 변법자강운동과 배외기층민중을 동원하여 비록 사전발각으로 실패하기는 했지만 광주성을 무장점령하려는 최초의 반청봉기를 계획하는 등 사실상 지금까지의 혁명전략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광주봉기의 실패 후 망명의 길에 오른 손문은 일본, 미국을 거쳐 영국의 런던으로 향해 대영박물관에 출입하면서 서구의 새로의 사회사조를 접하여 그의 삼민주의 사상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하지만 이후에는 다시 일본으로 가서 무술개혁은동의 실패 후 망명한 강유위, 양계초 등의 개혁파와 연합을 모색하기도 하고 1900년의 의화단사건을 전후 해서는 홍콩총독 블레이크와 양광총독 이홍장의 막료인 유학순을 통해 강유위 등과의 연합을 모색하면서 이홍장의 황제로의 추대에 의한 양광독립의 음모를 꾀하기도 하는 등 혁명활동을 계속 하였다. 특히 이 모의는 그 정치 계획으로써 제시된 ‘치평장전’에 에 의하면 남경 또는 한구에의 건도, 입헌군주제정구권의 창립, 통상, 항행. 철도, 광산의 개방, 선교사의 보호, 과거개혁, 중국주재 각국공사의 정부고문으로의 임용 등 서구적 모델에 의한 중국의 개혁을 꾀하는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의가 실패한 후 이들은 다시 홍콩흥중회의 조직을 통해 유명한 혜주봉기를 조직하게 된다. 하지만 정사량이 회당, 녹림세력을 동원하여 한때 2만여명에 이르는 참가자까지 모을 수 있었던 이 봉기는 외부적 지원의 두절로 인해 스스로 대오를 해산함으로써 역시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후의 수년간 손문은 다시 일본, 구미 각지를 여행하면서 조직과 자금모집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가 다시 무장봉기를 계획 할 수 있게 된 것은 1905년 중국동맹회가 성립된 이후에야 비로서 가능할 정도였고, 이 기간동안 손문은 그로서는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거쳐 나가야만 했다.2) 중국동맹회(中國同盟會)1905년이 흔히 신해혁명사에서 획기적인 중대한 전환점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중국동맹회의 성립으로 표현되는 혁명운동에서의 비약적인 발전 때문일 것이다. 중국동맹점적인 공작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지역도 광동으로 옯겨가는 것이다. 1909년 황흥이 홍콩에 동맹회남방지부를 조직한 것은 이러한 전환의 표시였다. 남방지부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것은 1910년 2월의 광주신군의 봉기, 1911년 4월의 광주황화강봉기였다. 그러나 이 봉기는 결국 자금과 무기반입의 지연, 계획의 누설에 따른 불충분한 준비 하에서의 발동과 청조측의 대비 등에 의해 황흥이 직접 결사대를 지휘하여 양광총독아문을 공략했음에도 불구하고 86인에 달하는 희생자를 발생하는 등 참담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봉기는 청조의 통치에 큰 타격을 주었고 전국적인 동정을 받아 이후 무창봉기의 성공에도 얼마간 기여했다고 일컬어지지만 동맹회 측으로서는 상당한 회원의 손실 이외에도 자신감과 사기 면에서 큰 타격을 받아 황흥, 호한민, 왕정위 등 핵심 회원도 개인행동으로 빠지거나 암살활동에 나서는 등 와해의 경향이 나타났고, 특히 이 봉기를 전후해서는 이전부터 존재해오던 내부적인 분열의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원래 동맹회는 통일적인 혁명정당으로서는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사상적인 면을 보더라도 손문이 제시한 삼민주의의 수용에 회원간에 많은 편차가 있었음은 주지하는 바이지만 그 외에도 회원간에는 국수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사상적 경향이 존재하면서 그 통일성을 가로막고 있었다. 또한 조직면에서 보더라도 회원은 본부에 의해 거의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본부와의 연락은 대개 성분회장(省分會長)을 매개로 하는데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 수준에서 독립성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직 자체가 통일성과 강제력의 면에서는 매우 느슨했던 것이다. 또한 본부 자체에도 손문의 이일(離日)과 대부분의 회원인 유학생들의 귀국에 의해 1907년 이후에는 겨우 명목상의 존재만 남겼을 뿐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으며 기관지였던 민보 역시 1908년 10월 일본정부에 의해 발금 당했다. 사실상 동맹회본부는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이것은 동맹회의 운영자체가 조직보다는 사천보로운동이 그 단적인 예였다. 이 운동은 결국 입헌파의 ‘문명쟁로(文明爭路)’ 틀을 넘어서 보로동지회의 주도하에 항연항세(抗捐抗稅), 철시(撤市), 동맹휴학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동맹회 회원이나 가로회등 회당의 참여로 무장봉기로 까지 발전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은 대규모의 농민투쟁의 격화는 물론 열강의 경제침략에 따른 농촌경제의 붕괴와 농민의 빈궁화, 신정의 추진에 따른 가엽잡세등 수탈의 급증, 동원의 남발에 의한 물가양등. 1908년 이후의 경제공황의 발생과 계속되는 자연재해등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에 따라 농민투쟁의 양상도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광범위한 농민투쟁의 격화가 청조의 지배체제를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어 혁명정세의 도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농민투쟁에 내재된 한계를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대부분의 투쟁은 고립?분산적이고 단기적이며 공통의 목표가 없는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다. 여기에는 뚜렷한 목표하에 사회의 변혁을 추진하는 방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며 농민들의 투쟁이 회당이나 혁명파의 지도를 받은 경우에도 이 점은 매우 불충분 했을 뿐 아니라 사실 이등도 무창봉기 이후 각 성(省) 혁명정권의 농민투쟁에 대한 탄압에서 잘 나타나듯이 농민층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 실현시킬 수 있는 전망이나 그것을 위한 준비, 역량은 거의 갖추고 있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시기의 농민투쟁이 신해혁명의 혁명적 정세를 직접 빚어내는 큰 역할을 하고 나아가 중국현대사의 혁명적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신해혁명의 직접적인 원동력이라 할수 없다는 지적은 바로 이러한 측면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Ⅲ. 신해혁명의 전개와 중화민국의 성립1. 무창봉기의 발발1911년 청조의 새로운 내각의 발족과 함께 철도 국유령의 공포로 인해 철도 국유화 반대 운동이 호남, 호북, 사천, 광동을 휩쓸었고, 중국 사회를 뒤덥은 각 방면의 모순은 일제히 폭발하게 되었다. 그 발단이 된 것은 1911년 10월 10럼 중대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윕소가 독립되면서 형세는 급변 봉기이어서것은 장건이 각 성의 자의국 접한전보로 격문 지주내서 그때까지의 형세를 관의 기만 했던 사회의 지도층 접한이제 공화제에 찬건이자고 호소 독립한 성이다. 11월 5일한이후 수일동안 독립에 호응한 성이 10개성은 훨씬 넘어섰다는 것을 보아도 장건의 영향력은 충분히 알수 있다. 즉 5일에 절강, 7일이 광서, 경우에 안휘, 9일에 광동, 복건, 11일에 봉천 13일에 산동이 독립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광동의 독립은 약간 타성과 다르다. 광동의 경우는 민중의 압력에 의하여 독립선포가 이루어 졌던 것이다. 따라서 동맹회 간부가 곧바로 도독에 추대되었다. 가장 복잡한 양상을 이룬 곳은 사천성이다. 이곳에서는 혁명파와 입헌파 구세력의 2개의 세력이 동시에 독립을 선언하여 군정부를 이루어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이처럼 혁명이 급속히 발전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정에 연유한다. 첫째, 중국 동맹회는 입헌 개혁에 대하여 강력한 반대 투쟁을 추진할 혁명사상을 선전 확대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회당과 신군으로 하여금 무장봉기를 계속하도록 지도하였다. 둘째, 그 배경에는 청말의 사회 경제적 격동이 있었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셋째, 부정부패로 치닫고 있던 청조는 이 단계가 되어서도 더욱 독선적인 황족 내각을 발족시키고 이른바 철도 국유화 정책을 내세웠다. 이러한 청조의 매국적 행각은 민중에게 만청의 지배자 모순을 극도로 첨예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넷째. 이 기간 동안 호북 혁명당인을 신중하게 배치한 문학사와 공진회의 조직은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따라서 장기간의 끈질긴 시련에도 잘 버티고 있었다. 이것은 무창봉기가 성공한 요점이다. 다섯째,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호북 군정부의 무기나 군자금이 비교적 우수하고 풍부했다는 점이다. 군자금과 경제적 안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한이 그 후에도 잠시동안 전국 혁명의 유력한 요새지로서 혁명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각 성의 독립양상을 살펴보면, 대부분 회있다.
    인문/어학| 2009.10.17| 12페이지| 1,000원| 조회(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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