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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운몽
    은 불교에 귀의한 성진의 스승 육관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성진은 용궁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데 불교에서 금기시 하는 술과 고기를 못이기는 척 먹는다. 그리고 육관대사에게 돌아가는 길에 8선녀를 만나 희롱한다. 그리고 절에 돌아와서도 속세에 대한 미련이 남아 맴돈다. 그리하여 육관대사는 성진에게 벌을 주게 되는데, 꿈속에서 속세를 체험하고 얼마나 그것이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는다. 은 인간의 속세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우쳐 주는 이야기이다. 육관대사가 성진을 꿈으로 보내는 것은 불교의 교리중 하나인 윤회에 따른 것으로, 꿈에서의 깨달음은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진이 꿈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를 보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어느 독자층이던지 충분히 부귀영화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이 생각이 났다.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부귀영화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구운몽은 현실과 꿈의 주제가 다른데, 꿈에서는 인생무상을 주제로 하고 있고, 현실에서는 불교에 교리에 대한 깨달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 성진이 꿈속으로 가기 전에 받는 유혹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늘 존재한다. 우리가 받는 유혹은 끊임없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더라도 크게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 에서의 유혹을 예로 들자면 8선녀들 중 한명인 심요연을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심요연은 본래 성진을 죽이러 온 암살자이다. 성진하고는 정 반대편인 셈이다. 그러나 성진의 말 언변에 넘어가 죽이지 못하고 결국 훗날을 기약하고 결혼까지 한다. 심요연은 결국 성진의 언변에 유혹 당한 것이다. 유혹에 넘어가고 넘어가지 않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에 달린 문제인데, 에서는 불교에 귀의한 제자라는 설정을 두어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굉장히 큰 잘못이며 자기반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보다 이해하기 쉽게 유도하였다. 즉 결론은 ‘모든 일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현 시대의 독자로서 다른 주제인 인생무상이나 종교적 의미의 자아성찰이라는 주제보다는 ‘모든 일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라는 주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마음을 잘 다스려서 얻는 것이 부귀영화만이 목적이 아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점을 느꼈다.
    인문/어학| 2012.11.12| 1페이지| 1,000원| 조회(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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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의 순 문예지 - 창조
    『 창조 』1. 서론경술국치) 이후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 정신은 1919년 3.1 운동으로 불타올랐습니다. 3.1운동은 민중이 일치단결하여 일제에 대한 조직적인 반항을 드러낸 운동이었습니다. 3.1운동의 좌절은 민족에게 큰 절망과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좌절감과 경제적 착취와 궁핍으로 민족성과 생존이 위협 받았습니다. 그러나 3.1운동을 계기로 러시아나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들어서고, 중국에서 무장 독립투쟁도 활발해 졌고, 국내의 독립운동도 더욱 고취되었습니다. 일제는 이 흐름을 무마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달래고 마음을 누그러뜨려 문화의 각 부분에 대한 강제성을 조금씩 풀어줌으로써 국내의 무장투쟁을 애초에 차단하려고 하였습니다. 외적으로 다소 완화 된 조건과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으로 1920년대에는 문예지, 종합지, 신문의 창간이 많아졌습니다.3.1운동 이듬해에 『조선일보』,『동아일보』가 창간되는가 하면 순수 문예지『창조』,『폐허』, 종합지『개벽』그 뒤를 이어서『백조』가 등장하면서 현대 문학으로 출발하면서 예술의 한 갈래로서의 문학이라는 관점을 정립시켰습니다. 이 글에서는 최초의 순문예지 『창조』에 대하여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2. 본론『창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지입니다. 『창조』는 3.1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앞서 일본 도쿄에서 창간이 준비되었다가 3.1운동 이후 통권 제9호로 종간되었습니다. 이 동인지를 통하여 시 70여 편, 소설 19편, 희곡 4편, 평론 16편, 번역시 49편이 발표되었습니다.『창조』의 처음 동인은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김환 네 사람이었으나, 호를 거듭함에 따라 수가 증가하여 9호에 발표된 동인 명단은 김달호, 김동인, 오천석, 주요한, 최승만, 임장화 등 이었다. 이중에서 이광수는 문인적인 명성 때문에 동인 명단에 오른 것이고, 김환, 김찬영, 박선윤, 임장화, 최승만 등은 작품 활동을 한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실질적인 동인은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등이며, 『창조』의 문학적 성격을 대표한 작가는 김동인입니다.『창조』의 문학적 성격은 첫 번째로는 완전한 구어체) 문장의 확립입니다. 『창조』의 동인들은 이전에 쓰였던 ‘이더라’, ‘이더라’, ‘이로다’ 등의 글투를 버리고, ‘이다’, ‘이었다’, ‘한다’ 등으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배척해 온 사투리를 필요에 따라 사용함으로, 작품의 실감을 더한 것은 그 당시에 있어서 매우 혁명적인 사건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창조』의 동인들의 구어체 문장 운동은 그 후 각종 문학 집단에 그대로 답습, 추진되어 근대 문장의 양식을 확립하는 길로 발전했습니다.둘째는 계몽주의문학)을 거부하는 사실주의문학)의 건설입니다. 계몽주의적인 것이 문학상의 평가에 있어서 거부되어야 한다고 최초로 주장 한 것은『창조』였습니다. 『창조』는 그 주장에 있어서 계몽주의를 거부하는 최초의 문학적인 집단이었습니다. 이광수의 작품이 대부분 ‘민족의 교화’나 ‘민족의 지도’라는 일정한 목적의식을 드러낸 것인데 반하여 『창조』동인들의 작품은 계몽적인 목적의식을 거부하고 일정한 목적의식을 드러낸 것인데 반하여 『창조』의 동인들의 작품은 계몽적인 목적의식을 거부하고 현실 그 자체를 중시하려는 사실적 경향에 거의 일치 했던 것입니다.『창조』의 동인들은 창간호에서부터 이전 시대에 선행했던 이광수의 계몽소설에 대해 반대의 기치를 내걸고 그것의 극복을 시도하였습니다. 김동인의 회고에서 알 수 있듯 『동아일보』가 창간되었을 때 『창조』는 형이 아우의 탄생을 반기듯 축하를 보낼 정도로 매체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다만 참으로 우리 뜨슬 알아주시는 적은 부분의 손을 잡고 나아가려 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곳을 동안은 우리는 아모런 암초도 두려워하지 안씀니다”라는 창조 동인들의 ‘남은말’에서 우리는 미적 답보 상태를 개척하려는 선구자들의 자의식과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훗날 김동인이 이 시기를 회고하는 『근대소설고』에서 “소설의 취재를 구구한 조선사회 풍속 개량에 두지 않고, 인생이라는 문제와 살아가는 고통을 그려보려 하였다. 권선징악에서 조선사회 문제 제시로, 다시 일전하여 조선사회 개량에도, 이러한 도정)을 밟은 조선 소설은 마침내 인생문제 제시라는 소설의 본 무대에 올랐다.” 라고 쓴 것은 바로 『창조』의 계몽주의에 대한 거부를 설명 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 한 것은 ‘마침내 소설의 본 무대에 올랐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앞서 신문학운동)의 주성분인 계몽주의를 거부, 청산했다는 그 의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라는 것은 ‘인생문제 제시’라는 막연한 용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처음으로 심리 묘사나 성격 창조에 까지 진전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광수의 계몽문학에서는 심리적, 성격적인 추구가 거의 무시되어 있던 것이 가장 큰 결함이자 불만이었습니다. 이러한 결함과 불만까지도 해결했다는 것이 김동인의 ‘소설이 본 무대에 올랐다’라는 말의 구체적 내용인 것입입니다. 김동인의 소설 「마음이 옅은 자여」같은 것은 일반적으로 자연주의니 사실주의니 하는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으나, 오히려 심리주의적인 경향이 농후한 작품으로 셩격, 창조적인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시 작품들에도 계몽주의적 사상이 사라진 작품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주에 발표된 주요한의「불놀이」와 같은 작품입니다.「불놀이」는 순 우리말 사용이 돋보이고, 시적 화자의 감정이 자유롭게 표출되었고, 계몽의식이 사라졌다는 데에서 자유시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세 번째로는 『창조』의 개척적인 공적으로는 근대적인 문예비평의 시발점을 보인 점입니다. 즉 작품평과 견해에 대한 논전이 시작 된 점입니다. 『창조』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전 월호의 작품평을 기재했고, 또 『창조』보다 늦게나온 『폐허』의 동인인 염상섭은 김동인과 비평에 대한 논전을 전개 한 일이 있었습니다. 김동인은 『창조』에, 염상섭은 『폐허』에 각각 그들의 주장을 발표했는데, 문제의 발단은 ‘비평가는 활동사진 변사)와 같다’란 말로 김동인의 비평이 시작되어 염상섭의 이에 대한 반박으로 논쟁이 전개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문학적 논쟁이었습니다.
    인문/어학| 2012.11.12| 5페이지| 1,000원| 조회(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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