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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설교 모음집1 (5편)
    역대하 6:12-42 찬369 죄짐맡은우리구주오늘 본문의 말씀은 솔로몬이 7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초반부와 후반부에는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구하는 솔로몬의 마음이 잘 나타나는 기도장면입니다. 그리고 22절부터 39절까지는 솔로몬의 7가지 기도제목입니다.첫째, 선악의 유무 판결을 위해 주의 제단에 나와 기도할 경우(22,23절)둘째, 이스라엘의 범죄로 전쟁에서 패하고 성전에 나아와 회개하며 기도할 경우(24,25절)셋째, 이스라엘이 범죄로 가뭄의 형벌을 당하고 성전을 향하여 회개하며 기도할 경우(26,27절)넷째, 이스라엘에 임한 재앙으로 성전을 향해 회개하며 기도할 경우(28-31절)다섯째, 이방인들 일지라도 성전을 향해 기도할 경우(32, 33절)여섯째, 전쟁을 떠나는 주의 백성이 주의 전을 향하여 기 도할 경우(34,35절)일곱째, 범죄하여 적국의 포로로 끌려 갔을지라도 성전을향해 회개하며 기도할 경우(36-39절)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솔로몬의 기도하는 태도입니다.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대하 6:13) 솔로몬은 이미 청동으로 단을 만들었는데 길이가 5규빗, 너비가 5규빗, 높이가 3규빗이었고 바깥뜰 가운데 두었습니다. 그가 그 단에 서서 온 이스라엘 회중 앞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폈습니다.무릎을 꿇었다. 하늘을 향해 손을 폈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포기하는 자세입니다. 다윗 역시 시편 28편 2절에(시 28:2) 주의 지성소를 향해 손을 들어 주께 부르짖을 때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솔로몬 역시 아버지의 신앙의 모습을 물려 받은 것 같습니다.이런 차원에서 우리 교회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직분을 받을수록 고개가 숙여지고 겸손하게 섬기고 또 최선을 다해 예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기도의 태도는 곧 기도의 내용을 보면 알 수 가 있습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대하 6:14) 그가로 보는데 십계명을 주시고 구체적인 내용들을 말씀하십니다. 동물을 잡아 백성들에게 피를 뿌리며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께서 언약을 하십니다. 그때 구름이 시내산을 덮었다고 나오고 또한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십계명, 번제물, 여호와의 영광즉, 하나님의 임재, 기도, 말씀, 헌금은 분리하려고 해도 분리할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이 모든 부분들이 함께 이루어지는 시간이 바로 예배시간입니다.우리는 무엇보다 온전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예배에 성공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오늘 본문 22절에서 39절까지에 나오는 7가지 기도를 보았을 때 한가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주님께서는 많은 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지만 우리가 죄에 빠져 있을 때 그 무엇도 들어 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우리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회개하면 내가 용서해 주겠다.요한일서 1장 9절(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우리는 악한 길에서 떠나 주님께 회개해야 합니다.(사 59:1) 보라. 여호와의 손이 너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귀가 너무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사 59:2) 다만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이다. 너희의 잘못이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의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첫 번째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고 하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희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회개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회개의 역사가 우리 교회와 이렇게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흠향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백성들은 하늘에서 내린 불과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목격했습니다. 제사장들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제대로 설 수 없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경배드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역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4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을 읽겠습니다.(대하 7:4) 그러자 왕과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 희생제물을 드렸습니다.(대하 7:5) 솔로몬 왕은 소 2만 2,000마리와 양 12만 마리를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이렇게 왕과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드리는 예식을 했습니다.(대하 7:6) 제사장들은 맡은 일에 따라 섬기고 여호와를 위해 악기를 연주할 레위 사람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 악기들은 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찬양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다”라고 찬양하며 악기를 사용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레위 사람들 맞은편에서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 있었습니다.(대하 7:7) 솔로몬은 여호와의 성전 앞쪽 뜰의 가운데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거기에서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을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만든 청동제단에 모든 번제물과 곡식제물과 기름을 다 놓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왕과 백성들은 성전 낙성식을 위해 2만2천 마리의 소와 12만 마리의 양을 잡았습니다. 이들은 마음껏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참된 제사는 자원하며 아까워하지 않는 헌신이 담긴 제사입니다.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기 위해 돕는 자들입니다. 직분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경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입니다. 각자가 어떤 직분을 받았든지 그것으로 공동체가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도와야 합니다.제물이 너무 많아 놋 제단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여호와의 전 앞뜰을 먼저 성결싶어서 자기 개발서를 읽거나 굳은 의지로 자신을 바꾸려 합니다. 그러나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비결은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17절과 18절을 읽겠습니다.(대하 8:17) 그 후 솔로몬이 에돔의 바닷가 에시온게벨과 엘롯에 갔는데(대하 8:18) 후람이 자기 부하를 시켜 배들과 바다를 잘 아는 사람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습니다. 이들은 솔로몬의 사람들과 함께 오빌에 가서 금 450달란트를 가져다 솔로몬 왕에게 가져왔습니다.솔로몬이 에돔 땅의 항구 도시들에 갔을 때, 그의 친구 두로왕 후람이 상선과 전문 인력을 보냅니다. 솔로몬의 종들은 그들과 함께 오빌에서 많은 금을 얻어 솔로몬에게 가져옵니다. 후람은 다윗 때부터 가까운 동맹으로,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도왔던 사람입니다.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은 돕는 손길을 붙여 주십니다. 그 손길을 통해 우리도 유익을 누리게 하십니다.9장 1절과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대하 9:1)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에 대해 듣고 어려운 질문으로 그를 시험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스바 여왕은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료와 많은 양의 금과 보석들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솔로몬에게 와서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솔로몬과 더불어 이야기했습니다.(대하 9:2) 솔로몬은 그녀의 모든 질문에 다 대답했으며 설명하지 못한 것이 없었습니다.솔로몬의 명성을 들은 스바 여왕이 그를 시험하러 예루살렘으로 찾아옵니다. 수많은 선물을 가져온 그녀는 솔로몬에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온갖 것들을 묻습니다. 솔로몬은 모든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을 때, 매우 기뻐하시면서 구하지 않은 다른 것들도 주셨습니다.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그의 지혜는 여전했고, 이방의 여왕까지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백성을 위해 구했던 지혜가 이방을 향해 선포된 것입니다.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내용은 솔로몬은 자기 자신을 위해 지혜를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잡이와 같습니다.여행 자체도 중요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을 다녀보셔서 알겠지만, 여행을 돕는 가이드가 어떤 사람인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누구와 함께 가는지가 여행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9절부터 12절까지 읽겠습니다.(대하 9:9) 그러고 나서 여왕은 왕에게 금 120달란트와 많은 양의 향료와 보석들을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준 향료 같은 것을 가져온 적이 없었습니다.(대하 9:10) (후람의 신하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은 오빌에서 금을 가져왔고 또 거기서 백단목과 보석을 많이 가져왔습니다.(대하 9:11) 왕은 그 백단목을 사용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었고 음악가들을 위해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백단목을 유다 땅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대하 9:12) 솔로몬 왕은 스바 여왕에게 그가 바라고 구하는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그는 여왕이 가져온 것보다 더 많이 주었습니다. 여왕은 그곳을 떠나 수행원들과 함께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솔로몬은 여왕으로부터 전무후무한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후람과 솔로몬의 일꾼들도 오빌에서 금, 백단목, 보석을 가져옵니다. 솔로몬은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릴 것을 만들고, 스바 여왕에게는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답례합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은 그에게 베풀 것을 주시고, 쓸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인생이 가장 매력적이고 행복한 인생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그런 삶을 소망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역대하 9장 13절 ? 31절 찬송가 95장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기뻐하고 감사하는 한편,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솔로몬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 가져야 할 겸손과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13절과 14절을 읽겠습니다.(대하 9:13) 솔로몬이 해마다 거둬들이는 금의 양은 666달란트였습니다.(대하 9:14) 그 밖에 상인들과 무역업자들이 금을 가져왔습니다. 니다.
    독후감/창작| 2021.03.17| 10페이지| 5,000원| 조회(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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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설교 모음집2 (5편)
    역대하 10장 12절 ? 19절 찬1장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기 원하는 사람은 그 인생이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전부 자기 말을 들어야 하고 모든 것이 자기 손에 들어와야 안심이 되고, 남보다 더 앞서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혼자서는 왕이 될 수 없습니다. 독불장군은 결국 점점 고립될 뿐입니다.12절을 읽겠습니다.(대하 10:12) 3일 후 여로보암과 그 모든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나왔습니다. 왕이 “3일 있다가 다시 나를 찾아오라” 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백성들과 여로보암이 왕에게 나왔습니다. 그때까지는 르호보암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여전히 르호보암의 말을 듣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강제로 그에게서 열지파를 빼앗아 여로보암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으나, 완악해진 르호보암이 스스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기를 포기한 사건입니다.13, 14절을 읽겠습니다.(대하 10:13) 왕이 원로들에게서 받은 도움의 말을 뿌리치고 그 백성들에게 무자비하게 대답했습니다.(대하 10:14) 그는 젊은 사람들의 말을 따라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너희 짐을 무겁게 하셨다고 했느냐? 나는 더 무겁게 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너희를 가죽 채찍으로 치셨다면 나는 쇠 채찍으로 너희를 치겠다.”르호보암에게 주어진 결정적이고 중요한 기회의 순간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 모두에게 주신 인생의 기회에 빗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단 한번뿐이고 그것을 올바로 활용하고 소중하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텐데 서두를 까닭이 무엇이냐’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의 기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중에 내일 일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한 것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행한 것을 다시 돌아킬 수도 없으며, 흘려 라.” 그러고 나서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대하 10:17) 그러나 유다 성들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르호보암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격분하며 르호보암을 떠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르호보암이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는 이기주의자 였기 때문입니다.우리 주변에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이 꼭 한명씩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은 동의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말은 늘 수용되기를 바라고, 주변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시비를 걸고, 자신이 봉사한 것만 늘 인정받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의 봉사는 무시하는 사람.스스로 소외와 버림이라는 불행의 길을 택하는 사람입니다.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고전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이와 같은 사도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대하 10:19)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윗의 집에 반역해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여기에서 반역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파사으’ 라는 단어인데 ‘범죄하다’라는 의미이며 그것도 ‘고의적으로 범죄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스라엘은 르호보암으로 인해 돌아섰기 때문에 그들이 범죄했다고 말한다면 좀 억울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자는 이스라엘이 반역했다~ 범죄했다고 말합니다.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영적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형편이나 상황이 죄악과 잘못을 합리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성경은 예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받은 것처럼 보이는 가롯유다와 빌라도에게 공로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구주를 돈 몇 푼에 팔아 넘긴 배신자요,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의인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비겁하고 불의한 자라고 단죄하고 있습니다.이 시대에는 상황윤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계속해서 변해가는 상황에 우리의 가치를 두지 않고 것처럼 우리 모습을 본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녀들이 그렇습니다. 자녀들은 듣고 배우지 않고 보고 배우기 때문에 우리의 중심을 잘 잡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가 하는 모습은 자녀들에게 안정적인 정서과 신앙을 물려주기가 어렵습니다.5, 6절을 읽겠습니다.(대하 12:5) 그때 시삭 때문에 유다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예언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유다 지도자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버렸으니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에게 주겠다.’”(대하 12:6)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왕은 자기들을 낮추어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십니다.”불순종으로 심판을 받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왕과 신하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회개로 반응했습니다.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뿐만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를 주시는 목적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신 기회를 잘 잡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를 맛보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7,8절을 읽겠습니다.(대하 12:7) 여호와께서 그들이 겸손해진 것을 보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내려왔습니다. “저들이 겸손해졌으니 내가 저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곧 구해 줄 것이다. 내 진노를 시삭을 통해 예루살렘에 쏟지 않을 것이다.(대하 12:8) 그러나 저희가 시삭에게 복종하게 될 것이니 나를 섬기는 것과 다른 나라 왕들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될 것이다.”백성들은 회개를 했지만 그들이 처해있는 고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회개했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상황이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회개라기보다는 어린아이들의 흥정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개의 목적은 원하는 바를 이루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한 회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응답하신다는 것 자체가운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고통일 수도, 영적인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 무엇이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덕이 되는지 분별하고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역대하 15장 1절 ? 7절 찬273장아사는 솔로몬이 죽은 후에 나타난 왕들 중 선과 정의를 행한 첫째 왕으로서 그 땅에 평안을 가져다 준 왕이었습니다. 역대기에서는 아사가 어떻게 대적으로부터 승리하고 그 땅에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습니다.1, 2절을 읽겠습니다.(대하 15:1)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했습니다.(대하 15:2) 그는 아사를 만나러 나가 말했습니다. “아사 왕과 온 유다와 베냐민 지파야, 내 말을 잘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는 한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너희가 그분을 찾으면 그분을 찾게 될 것이지만 너희가 그분을 버리면 그분이 너희를 버리실 것이다.여호와와 함께하고 그를 찾으라. 우리는 이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 전해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아사는 에티오피아의 100만 대군과 싸워 이기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보통 전쟁에서 승리한 왕을 맞는 사람들은 그의 노고를 칭송하고, 그 승리를 기뻐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작은 전투가 아닌 100만의 군사와 300대의 병거를 온 적군을 이기고 돌아오는 왕에게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성과 상식 이상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승리에 취하여 말고 하나님을 찾는 일에 승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세상의 승리는 바람에 흩어질 먼지와 같은 것이다. 먼지를 쥐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너의 손에 쥐어야 할 것은 나와의 관계다. 라고 이시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하지 못하고 어긋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3-6 하고, 교회를 섬기는 다양한 사명이 있습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벗어나지 못한 옛자아에서 벗어나야 하고, 하나님보다 높아져 있는 많은 영역들을 파쇄해야 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주인되심을 날마다 인정하며 나아가야 합니다.이러한 일들이 쉽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힘이 듭니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는 이 새벽에 너희는 강해지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선한 일을 하다가 포기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않고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물로 씨앗을 열심히 심으십시오.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구약의 모세에 대해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우리에게 상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를 칭찬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얼굴을 맞대어 볼 그 감격의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하나님을 찾고 또 찾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역대하 15장 8절 ? 19절 찬273장고대 국가의 왕이나 권세자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많은 사람을 거느릴 수 있으므로 나라가 부유해지고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통치자들은 특히 전쟁의 승리를 통해 부강해지기를 원했습니다.그러나 역대기는 한나라가 부강해지고 평안해지기 위해서는 전쟁의 승리보다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8절을 읽겠습니다.(대하 15:8) 아사는 이 말, 곧 오뎃의 아들인 예언자 아사랴의 예언을 듣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사 왕은 유다와 베냐민 온 땅 그리고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들에서 그 역겨운 우상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는 또 여호와의 성전 현관 앞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을 고쳤습니다.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 찬물을 끼언듯 축하는 하지 않고 바른신앙을 가지라는 선지.
    독후감/창작| 2021.03.17| 10페이지| 5,000원| 조회(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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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설교 모음집3 (5편)
    역대하 17장 10절 ? 19절 찬351장유다 왕에게 최고의 찬사는 바로 ‘다윗과 같았다’라는 평가입니다. 여호사밧은 ‘다윗의 길로 행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호사팟은 아버지 아사의 좋은 점은 닮고 실수는 닮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에게서는 아사의 모습보다 조상 다윗과 닮은 부분이 많이 나타납니다.10, 11 절을 읽겠습니다.(대하 17:10)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대하 17:11)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짐승 떼 곧 숫양 칠천칠백 마리와 숫염소 칠천칠백 마리를 드렸더라역대기 저자는 앞 역대상에서 “다윗의 명성이 온세상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모든 이방 민족으로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등으로 다윗과 주변 나라들의 관계를 기록했습니다.그런데 여호사밧에 대한 기록 역시 다윗에 대한 기록과 매우 유사합니다. 하나님이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게 두려움을 주셨고(10절), 블레셋 사람들이 은으로, 아리비아 사람들이 숫양과 숙염소 각각7,700마리로 조공을(11절) 바쳤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여호사밧이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한 결과 다윗이 누렸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아사는 성역 없는 종교개혁을 실천했지만 말년에 세상의 지혜를 따르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기에 이런 영광을 누리지 못했고, 유다 땅에서 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의뢰하고 다윗의 길을 선택했기에 이런 영광을 누렸습니다.하나님의 백성이 형통할 수 있는 길은 이처럼 자명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방식을 따르려는 유혹을 버리고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에 집중하면 이런 참된 번영을 누릴 수 있습니다.12절에서 19절을 살펴 보면여호사밧은 점점 강대해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여러 성에 공사를 많이 했습니다. 이는 앞에서 솔로몬이 여러식이 아닌 예수님의 방식을 선택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아멘.역대하 18장 28절 ? 34절 찬390장어리석은 인간들은 신이 부여한 운명에 맞서는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고대 그리스 비극에는 신이 내린 운명에 저항하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주인공을 영웅으로, 그의 죽음을 장렬하게 묘사함으로써 청중의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자는 어리석은 악일일 뿐이며 그 결말은 비참한 죽음일 뿐이라고 가르칩니다.28, 28절을 읽겠습니다.(대하 18:28)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은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갔습니다.(대하 18:29)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변장을 하고 전쟁터로 들어갈 테니 왕은 왕의 옷을 입고 있으시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은 변장을 하고 전쟁터로 갔습니다.아합은 호기롭게 전쟁터로 나갔지만, 미가야의 예언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변장을 하고 전쟁에 나갑니다.변장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모습입니다. 알고 있지만 행하지 않는 모습. 신앙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한 포도원 농부가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을 불러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라.” “싫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후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습니다.농부가 이제는 둘째 아들을 불러 이야기합니다.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라” “예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만 하고 포도원에 가지 않았습니다.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말씀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그들은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안에 있는 신앙의 이중성을 조심해야 합니다. 첫째아들처럼 지금 당장을 싫어도 우리는 순종의 자리로 가야 하겠습니다. 더 좋은 것은 둘째아들처럼 대답도 잘하고 첫째아들처럼 순종도 잘하면장면인 것입니다.이 장면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무심코 지나간 누군가의 말이 그냥 지나쳐가는 말인지,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루어진 말인지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마 10:29) 참새 두 마리가 앗사리온 동전 한 개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31절을 읽겠습니다.(대하 18:31) 전차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저 자가 이스라엘 왕임이 틀림없다’라고 생각하고 달려들어 그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자 여호와께서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군사들을 여호사밧에게서 물러나게 하셨습니다.여호사밧이 소리를 질렀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없는 소리가 아니었다고 확신합니다.우리 믿는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이나 즐거운 순간이든 언제든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것이 늘 기도하는 모습이지요.여호사밧의 부르짖음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기도 한 것입니다. 다윗의 길을 따랐던 여호사밧은 평소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어리석은 전쟁의 자리에 와 있을 지라도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이처럼 우리도 어느 순간이든, 어느 자리이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승리를 경험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아멘.역대하 19장 1절 ? 11절 찬송가 380장북이스라엘 왕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다가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유다 왕 여호사밧도 아합과 동맹을 맺고 전쟁을 함께 치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사밧과 아합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1-3절 읽기(대하 19:1) 유다 왕 여호사밧이 무사히 예루살렘의 자기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대하 19:2) 하나니의 아들인 선견자 예후가 그를 만해 재판하는 것이다. 너희가 판결을 내릴 때마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신다.(대하 19:7) 이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해서 재판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공평과 치우침도 없으시며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이제 여호사밧과 아합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아합이 사마리아를 떠난 목적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반면에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을 떠난 목적은 유다 땅을 두루 다니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또한 견고한 성읍마다 재판관을 세우고, 그들에게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재판을 하라고 명령합니다.아합이 왕으로서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는 데에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면, 여호사밧은 왕으로서 유다 땅에 하나님의 법도가 바르게 세워지도록 하는데 관심을 쏟았습니다.이는 우리의 내면을 다스리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외부에서 무엇인가를 얻음으로써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심령이 하나님의 법도 아래 순종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계속해서 8-11절을 보면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을 하나님을 섬기는 성읍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의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재판의 권한을 주었습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중심으로 모든 질서가 잡혀 있어야만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서 종교적 권한과 정치적 권한을 나누어 신앙 문제는 대제사장 아마랴가, 정치문제는 유다 지파의 어른 스바댜가 다스리게 했습니다.아합의 경우는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구로 선지자들을 이용했지만,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예루살렘에서는 신앙적, 정치적 질서가 세워져서 왕이 함부로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여호사밧은 “여호와께서 재판하신다”는 그의 이름의 뜻처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재판에 무엇보다 신경을 쓰고 집중하고 있습니다.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습니.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무기는 바로 찬양입니다. 오늘 본문은 전체적으로 찬양이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진행이 됩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찬양의 능력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14절 읽기(대하 20:14) 그때 여호와의 영이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있는 아삽 자손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했습니다. 그는 맛다냐의 현손자며 여이엘의 증손자며 브나야의 손자며 스가랴의 아들이었습니다.야하시엘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고 나오는데 야하시엘은 예언자가 아니었다는 것이 특이한 점입니다. 그리고 그의 족보가 5대까지 소개가 되고 있는데 야하시엘의 가문이 어떠한 가문인지를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그의 맛다냐는 다윗이 제정한 24반의 찬양대에 이름이 포함되어 있고 그의 선조는 아삽이었습니다. 아삽 역시 다윗의 3대 악사 중 한사람으로 찬송의 책임을 맞고 있었던 사람입니다.즉 야하시엘을 소개하면서 그는 찬양을 담당하는 가문이었고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18, 19절 읽기(대하 20:18) 여호사밧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했고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백성들은 엎드려 여호와를 경배했습니다.(대하 20:19) 레위 사람들 가운데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 몇 사람이 일어나 매우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모든 백성들이 엎드려 경배하며 찬양을 섬기는 자들이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은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습니다.21, 22, 23절 읽기(대하 20:21) 여호사밧은 백성들과 의논해 찬양하는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그들이 군대보다 앞서 나아가면서 찬양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를 드리자.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다.”(대하 20:22) 그들이 노래하며 찬송을 시작하자 여호와께서 유다에 침입한 암몬과 모압과 세일의 군사들을 칠 복병을 숨기시고 그들을 치게 하셔서 그들이 패했습니입니다.
    독후감/창작| 2021.03.17| 10페이지| 5,000원| 조회(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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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디펜시오 크리스티아누스(정승태) - 정리
    디펜시오 크리스티아누스(정승태) - 정리
    디펜시오 크리스티아누스저자 : 정승태내용정리제1장 왜 기독교 변증인가?○ 문제제기- 기독교에 대해 변호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변론하기 전 알아야 할 내용1) 공격적인 말이나 열성적인 신앙으로 하는 변론되지 않는다.2) 맹목적인 신앙에의해 설득되지 않는다.3) 진리의 기독교는 변증되어야 한다.4) 진리의 기독교는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한다.○ 논증의 방식1) 근거제시의 원칙을 기억하라.2) 입증의 원칙을 기억하라.3) 논점에서 일탈하지 마라.4)○ 기독교의 변증의 궁극적 이유1) 이단들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보호2) 교회 안에서의 지성적 차원을 회복3) 기독교 밖의 지성인들의 회의적이고도 무신론적 물음에 답제2장 기독교 변증학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문제의식- 교회의 내부적인 문제와 외부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박해와 순교의 초기 기독교- 배경: 신학의 정립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노력하던 시기- 박해: 1)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선택이 박해의 원인(예:벧전4:16)2) 기독교에 대한 혐의는 무신론과 무정부주의였다.(예:폴리캅,행17:5-7)3) 기독교가 받은 혐의는 사교적 모임이었다.(예:예배의식과 성만찬의식)교부신학자들의 변론- 저스틴: 변증론, 롬13:1-7,- 오리겐: 그리스 교회의 플라톤 내지 슐라이어마허- 터툴리안: 로마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 기독교 신앙과 헬라철학의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일은 터툴리안에 의해서 저지당하게 된다.교부 신학자들의 변증적 성격1) 문필적 변증- 저서와 글을 통해서 기독교가 진리라고 반박함.H.R.드롭너: “교양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철학적이고 수사학적 학식을 교회의 입장에서 활용하여 신자들의 믿음에 확신을 주고, 기존 종교들과 벌인 논쟁에서 신 앙의 합리성을 논증하고 변론하기 시작했다.”2) 적극적 변증- 초대교부들은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논증을 통해서 유대교나 이전의 교리들을 논박할 뿐 만 아니라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설득적이고도 적극적인 논쟁을 선택했다.3) 윤리적 변증- 아무리 휼륭한 글이나 말이라 해도 그인생관, 사고방식, 철학, 관점, 가치관을 포함 하여 한 인간의 해동으로 귀결되는 것 -> 선택한 것이 그를 결정한다는 점이 중요.○ 세계관이 제공하는 것1) 삶의 의미- 아더 홈즈: 보다 선한 삶에의 추구요, 공허가 아닌 충만한 삶의 목적에의 추구이고 실망 보다는 희망을 가져다주는 약속에의 추구인 것이다.2) 세계에 대한 신념- 로날드 내쉬: 모든 사람은 지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지적구조: 인격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의 총체)정확한 세계관이라면 그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 잘못된 세계관을 통해 세계를 보는 사람에게는 세계가 무의미하거나 중요한 측면에서 볼 때, 사실 그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올바른 개념 틀을 입는 것은 세계를 정확한 세계관을 통해서 보는 것이다.3) 행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신에 관한 관점의 세계관1) 신을 믿지 않는 세계관: 무신론, 자연주의(버트란트 러셀, 데이비드 흄), 회의주의(마이클 셔머)2) 신을 긍정하는 세계관: 범신론,(베네딕트 스피노자), 이신론, 범재신론(알프레드 화이트 헤 드), 유신론(창조주, 인격적 사랑, 거룩한 하나님)○ 기독교 세계관1) 성서적이어야 한다.2) 유신론적이다.3) 실천적이다.○ 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1) 문화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의 입장: 극단적 태도(터툴리안)2) 문화의 그리스도의 입장:: 문화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동등하게 보는 관계3)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입장: 그리스도와 문화를 종합하려는 입장(저스틴, 클레멘트)4) 역설적인 관계로서의 그리스도와 문화의 입장: 이원론의 입장(마틴 루터)5)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의 입장: 변혁(존 칼빈, 존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칼 바르트)○ 결론적 사고-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예수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세상은 우리가 책임을 지고 돌보고 관심을 가져야 할 장소이다.제4장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될 수 있는가?○ 문제의식- 신이 존재하는가?○ 논증1. 우주의 존재에 관한 논증1) 토마스 아퀴나스(운동, 원인, 가재의 문제를 논증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 =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 하나님의 도덕성제6장 하나님은 왜 악과 고통을허용하시는가?○ 문제의식- 하나님이 정말 공평하신가?○ 논증1) 악이란?- 인간이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총체적인 불행(자연적인 악, 도덕적인 악)2) 무신론자들의 비판- 논리적인 이유(신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전능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다)- 현실적인 이유(악의 현실에 침묵하시는 하나님)3) 정의의 보응을 간과하지 말라- 악과 고통은 신의 징벌(창6:5, 신4:24, 사48:10, 시92:4-11)4) 인간 책임에서 기인되는 결과들- 어거스틴(선의 결핍-자유이성의 결과)- 이레니우스(자유로운 의지로 악이 발생, 완전히 창조되지 않은 세상, 신의 형상과 유사성)- 존 힉(신의 유사성: 인간의 창조 과정 = 영혼의 형성)5) 자연법칙에 순응하라- 존 폴킹혼(기적을 자연법칙에 대항하는 신성한 행위로 해석해서는 안되며,,,)- 바울(갈6:7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죄렌 키에르케고르(목회자가 성도를 감격하게 해도 월요일에는 설교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영국속담(자연은 속이지 않는다)- 필연성 속에 포함된 우발의 법칙6) 변증을 위한 우리의 역할- 고통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고통을 이길 힘의 원천인 기도를 해야 한다.※ 악은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는다는 생각(악은 중립적)※ 악과 고통은 옳지 않다는 생각(옳고 그름이 아닌 싫음과 좋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제7장 과학은 기독교 신앙에 화해인가,갈등인가?○ 문제의식- 과학의 발달이 신앙에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 논증1.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1) 진화론의 특징: 첫째, 진화란 용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유기체들이 변화한다는 의미둘째, 변형을 동반한 유래셋째, 점진주의넷째, 종분화의 종식다섯째, 자연선택(2) 창조론자들의 적극적인 태도: 미국과학협회, 1980년 아칸소 주에서 진화론을 가르칠 때는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는 법 통과(2년 뒤 취소), 2005년 미국 도버 재판(고등학교 수 없다. 섯째, 우리는 무신론자들과 교회 밖의 지성인들이 기독교 신앙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 과학을 빈번히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 과학시대에도 종교는 사멸하지 않는다.(4) 다른 영역을 포용하는 마음: 우리가 주의해야 할 한 가지는 종교인이 과학에 대해 곡해하고 왜곡하는 문제와 과학자가 종교에 대해 곡해하고 왜곡하는 문제다.(5) 결론: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사람을 무신론자로 동일시하지 않아야 한다. 다윈은 “왜 이 책에서 말한 견해가 모든 사람의 종교심을 뒤흔들었는가에 대해서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고 하였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생명의 최초에 창조자에 의하여 소수의 형태로, 또는 하나의 형태로, 모든 능력과 더불어 불어넣어졌고, 또 이 혹성이 확고한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회전하고 있는 동안에 이러한 단순한 발단으로 해서 이와 같이 가장 아름답고, 경탄할만한 무한한 형태가 생겨났고, 또한 진화되고 있는 견해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는 그저 인간의 생명이 아름다웠던 것이었다.제8장 부활의 기적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문제의식- 죽은 자가 살아났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믿는가? 예수가 다시 살아난 것인가?○ 논증거짓말 메커니즘- 블레즈 파스칼: 나는 자기 목을 내놓는 증인들의 말은 기꺼이 믿는다.- 유세비우스: 우리가 결코 보지 못했던 그리스도의 기적적인 부활과 부활 후에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에 관한 이야기를 꾸며냅시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무덤까지 가지고 갑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위해 죽는 게 어떻까요? 아무 이유 없이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맺는 걸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요? 만방에 가서 그들의 제도를 전복하고 그들의 신을 부인합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우리의 거짓 속임수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될 테니 그러면 우리는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칠레광부사건: 우리는 모든 것을 정돈해 놓았다. 이곳에서 카드를 치며 즐긴다. 우리는 매일 만나 이곳에서 기도하난다. 어쩌면 자연은 외부의 어떤 것이 들어오면 그것에 맞추어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은 자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작인이나 동인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3. 자료의 인명과 지명- 구체적인 인명이나 지명을 꾸며내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문헌인 경우에는 꾸며낸 이야기를 배제한다. 이는 그것이 신빙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인명과 지명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4. 예수는 없다- 기독교 신앙은 상식 이상의 것을 가르치는 신앙이다. 상식이란 뭔가. 합리적이고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적을 남용하고 맹신하는 신앙은 위태롭다. 그것이 예수를 신앙에서 사라지는 궁극적 원인이다.5. 결론- 부활은 그 역사성을 넘어 의미로 전환되어야 한다.제9장 예수는 실제인물인가,신화의 인물인가?○ 문제의식- 예수는 기독교에서 만들어난 가상인물인가?○ 논증1. 다 빈치 코드(1)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2)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 프랑스의 왕족과 결혼했다.(3)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교회는 힘을 잃을 것이고, 따라서 이 사실을 두려워한 교회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무엇인가 조작하거나 사실을 억눌러야 했다.-> 근거가 없다. 기독교를 공격하려는 의도뿐이다.2. 예수는 신화다(1) 기독교는 이교도의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았다.(2) 기독교는 영지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3) 기독교 신앙의 기원은 은폐되었다.3.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기독교 변론(1) 책에서 언급되어 있는 역사적인 사실 같은 내용들이 실제 역사와 일치하는가(2) 책의 인물이 다른 사람의 역사서나 문헌 등에 나오는가-> 플리니의 보고: 그리스도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예수는 디베랴 영토에 살았고, 로마의 행 정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공생애를 살았 다.(눅3:1),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할 당시의 로마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였다.(마27:2, 행 3:13다.
    독후감/창작| 2020.12.16| 19페이지| 2,000원| 조회(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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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사회학적 관점으로 해석한 바벨탑 사건(우택주) - 논문정리 및 비평
    사회학적 관점으로 해석한 바벨탑 사건(우택주) - 논문정리 및 비평
    사회학적 관점으로 해석한 바벨탑 사건저자 : 우택주이 논문에서는 바벨탑 사건을 사회학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전에 있었던 해석을 간단히 나열 하자면 자료비평 학자들은 자료비평 학자들은 이 기사를 야위스트 자료(J)로 분류하는데 일치하며, 양식비평 학자들은 본문의 양식을 고대 근동의 평행하는 문헌적 증거들에 비추어 인류의 언어가 서로 달라진 원인을 설명하는 기원론(etiological)으로, 전승사 비평학자들은 언어의 혼란, 탑 건축과 인류분산 등의 세 가지 전승이 결합된 이야기로, 편집비평 학자들은 이 기사를 창세기 10장에서 이미 언급되고 있는 “방언, 종족, 나라” 사이의 구별 이유를 보충 설명하려는 의도로 편집된 이야기로 해석한다. 한편 최종본문을 분석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공시적 접근(synchronic approach)을 시도하는 학자들은 본문의 히브리어 표현에 나타난 고도의 문학적 기교분석을 바탕으로 그 심미성이 전달해주는 수사적 효과를 분석하는데 집착한다.여기에서 저자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이 모든 분석들은 바벨탑 사건이 구약성서 내에서 지향하고 추구하는 신학사상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유지되어야 할 창조질서를 파괴한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있다고 말하는데 있어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그 교만이란 범죄가 혹은 인간이 넘어서서는 안 되는 신과 인간의 영역 사이의 경계선이란 도대체 신앙인의 삶 속에서 어느 양태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도 않으며 묻지도 않는다. 교만이란 단어의 의미가 자명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서의 의미를 이처럼 추상적 개념(conception)으로 축약하는 것이 전통적인 서구적 해석의 실상이다. 그리고 이 추상적 개념은 기독교 신학의 흐름 속에서 흔히 말하는 영혼의 문제와 상관이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만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성서의 의미를 단정짓게 되면 성서가 전달하려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추상적 개념의 형틀 탑을 짓기는 불가능하다. 그런 첨탑 쌓기에 하나님의 통치가 위협을 받아 하늘을 방어할 목적으로 이 행위를 심판을 했다는 해석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이 첨탑을 지닌 성전 건축에 또 다른 어떤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전통적인 해석들은 이를 소홀히 다룬다. 두 번째는 자기들의 이름을 내자는 결정을 어떤 근거로 교만의 증거라고 해석해야 하는가. 해석자들이 본문의 정황을 분석할 때는 무엇인가 구체적인 실례를근거로 진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본문이 묘사하려는 사상이 ‘교만을 심판하는 하나님’이라면, 저자(들)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교만함을 보여주는 그 행위의 실체부터 정확하게 묘사 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본문 어디에도 그런 해석의 근거나 정황을 발견할 수가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제까지의 작업들은 그 해명이 부실하고 모호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흩어짐을 면하려는 시도가 어떤 의미에서 신의 심판을 받을 행동인가? 또, 하나님이 의사소통의 수단인 언어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벌을 내렸다는 진술은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황을 전제로 펼쳐진 것이며 어떤 신학적 의도를 표명하는가? 또, 첨탑 건축은 고사하더라고, 인류 문명사의 흐름에서 볼 때, 성읍을 건설하는 도시문명의 수립은 자연스런 결과인데, 바벨탑 건축의 와해 사건은 하나님의 우주 통치권의 시각에서 볼 때 도시문명의 수립을 부정하고 있는가? 네 번째는 문제는 천상회의의 존재유무보다, 두 사회의 결정이 서로 충돌하는 정황에 대한 신학적 해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제까지의 주석들은 이 점에 주목하지 않았다. 폰 라드(von Rad)도 7절에서 천상회의의 실재를 언급하지만 그저 지나치면서 다룰 뿐, 그 신학적 의의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다.신화적 본문으로부터 너무 많고 상세한 정보를 유추하여 질문하는 것이 타당치 못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위에서 제기한 네 가지 질문들은 기존의 주석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았던 사제안이 나오는데 첫 번째는 “벽돌을 만들어 굽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건축에 벽돌과 보편적으로 구할 수 있는 진흙 대신 특수한 건축 소재인 역청(bitumen)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 제안은 “높은 탑을 가진 성읍”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앞서의 3가지 제안들은 이 사회가 동의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보게 만든다.이 시점에서 다시 농경사회의 역학 구조 이해가 필요하다. 농경사회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농사일 외의 건축사업에 대한 발상이란 전혀 피지배 농민들에게서 나온 것일 수 없으며, 그런 일은 농사일 이외의 그 무엇인가 보다 더 형이 상학적인 일에 골몰하는 계층의 사람들에게서 나왔을 것이 자명하다. 왜냐하면 상류계층의 엘리트와 하층민의 세계관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벽돌 만들기와 역청 사용하기 그리고 첨탑이 있는 성읍 건설이란 오직 도시문화에 전형적으로 부합되는 제안이며, 그 제안은 새로 신축할 도시에 거주할 지도자 계층의 명령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통제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하층민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시점에 이른다.이 시점에서 “첨탑”의 의미를 재고해 보려고 한다. 4절의 제안은 그 사회의 지배계층이 제안한 것이며, 그들의 제안은 지도계층 자신들이 거주할 도시의 건설과 공동체 전체가 신앙하는 신(신들?)을 위한 건설로 볼 수 있다. 이 제안의 목적은 분명하다. 본문이 바벨론이란 역사적 정치체제를 언어놀이를 통해 다루고 있다는데 학자들이 만장일치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신화를 구성하는 언어가 훗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의 고난 당했던 경험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런 구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현실에 대한 강한 반감을 모든 역사의 시초에 이루어진 사건 속에 투사하고 그것을 신화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현실에 대한 반감’(antipathy)이란 다름 아니라 도시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주민들(농민들) 다수가 강제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반감과 저항을 말한다. 이것이층이 추구하는 바는 “이름”을 내자는 것이지만, 그런 허울좋은 장밋빛 목표는 엘리트에게나 필요한 것이다(아래, 사 3:12를 보라). 피지배층은 피부로 체감되는 삶, 즉 기본 생계(subsistence)가 유지되는 삶을 원한다. 착취와 억압이 없는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 생산과 분배가 공평한 사회를 희망한다.이제껏 시도한 사회적 정황에 대한 보충과 재구성을 바탕으로 다시 읽으면, 그것은 단순히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라 하나의 경고음처럼 들린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연상하면 할수록 이 이야기의 상관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강한 반향을 일으킨다. 한 집단의 이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이후 광야를 방랑하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시날에 정착함은 가나안 정착을, 성을 쌓는 일은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저질러지는바, 백성 다수의 진정한 유익을 무시한 채 지도자 자신들의 이름 내기에 급급한 무리한 공공 건축사업들을 연상시킨다. 본래 성 쌓기에 내포된 권력의 중앙화(centralization)와 성전건축에 내포된 종교의 독점화(monopoly)를 도모하기 위해 시도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문 속에서 야웨가 이런 시도 를 심판하기 위해 하늘에서 강림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도시 지도자들이 추구하는 사업이란 것이 고작해야 전체 인구의 2%밖에 안 되는 자신들의 권력과 부귀와 영화만을 위한 것이기에 나머지 인구 90% 이상을 차지하는 다수 농민들의 복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야웨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에 간섭하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름이다. 권력과 부귀와 명예를 지키는데 집착하여 성읍과 성전 건축에 집착하던 지도자들은 결국 온 땅에 흩어지게 되는데, 이 사건 역시 훗날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조의 몰락을 예고하기도 하며 그런 일을 일찍부터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 다윗 시절의 J가 이 사건을 기록하던 시절에는 이집트의 바로가 추진하던 국고성 건축과 강제노동에 대한 기억(출 1장) 을 상기시키려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가 연상예언을 남겼던 저 8세기 예언자들의 구원신탁에서도 농촌의 목가적 정경을 희망이 이루어진 아름다운 사회상으로 다시 제시하고 있음을 보면(암 9:13-15; 호 2:18-22; 미 4:3-4), 이같이 반-도시적이요, 친-농촌적 신학과 영성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조금 비약하여 말하자면, 구약성서는 모두가 함께 땀흘려 수고하고, 그 대가로 얻은 수확을 함께 나누어 먹는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상적 사회로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 동료 인간에 대한 억압과 착취란 발붙일 자리가 없다.구약성서의 태고사는 태고시대, 즉 문자기록 이전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한 양상을 선택하여 기록해두고 있다. 그것은 본문을 읽는 독자들의 상황에 의미 있게 전달되어야 한다. 과거의 기록은 돌이킬 수 없이 지나버린 옛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비추어 보게 하며,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올바로 인식하게 하고, 그래서 정직히 현실에 대처하도록안내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의 궁정사가이며 신학자인 J가 기록해둔 바벨탑 이야기의 신학사상을 교만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만 말한다면 그것은 불충분하다. 우리의 해석에 따르면 인간이 동료 인간을 이용하여 권력과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 자세가 교만이다. 그런 욕망을 위해 동료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묵살하는 것이 교만이다. 그런 교만은 특히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농촌의 가치와 기능을 무시하면서 도시 중심의 정치 권력을 형성할 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또 바벨탑 사건의 신학사상을 인간과 하늘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행위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불충분하다. 인간 사회 속에서 지도계층은 언제나 자신들의 존재와 지위를 신의 비호 아래 있다고 여기거나, 자신들의 권한을 신의 권한까지 확장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사회학적 관점으로 해석한 바벨탑 사건(창 11:1-9) 신학은 동료 인간들 위에 신처럼 군림하는 집단이나 개인은 성서의 하나님 야웨가 결단코 다.
    독후감/창작| 2020.12.16| 6페이지| 2,000원| 조회(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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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8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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