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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란수도- 부산의 메타볼리즘(김동리의 밀다원 시대를 중심으로)
    피란수도: 부산의 메타볼리즘-김동리의 『밀다원 시대』를 중심으로-목 차Ⅰ. 서론1. 연구의 배경 및 목적2. 연구의 대상 및 방법Ⅱ. 본론1. 토포스(topos), 아토포스(atopos), 이행(marge)2. 『밀다원 시대』에 대한 절대론적 & 반영론적 해석1) 뱃고동 소리2) 박운삼의 죽음3. 토포스와 아토포스/ 부산과 밀다원 그리고 이행(marge)으로서의 공간적 관계Ⅲ. 결론국문 초록이 논문의 목적은, ‘피란수도’의 실질적인 의미가 한국사회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그 과정을 살피고, 이를 통해 이 개념의 보편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피란’이라는 것은 돌발적이고 특수한 사건인 반면, 도시란, 보편성을 그것의 질적 특성으로서 전제하는 공간인 만큼, ‘피란수도’라는 개념은 역설적인 것이다. 한편, 이 역사적 기간은 과거의 일이기에 본 연구의 시작은 우선 질적 연구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서 삼은 것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밀다원 시대』이다. 이 작품을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같은 시대적 배경을 다룬 다른 소설들에 비해 두드러진 핍진성과 부산과 밀다원이라는 두 이질적인 공간의 양가적인 관계가 매우 실제적이면서도 실존적으로 잘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형상화된 공간적 질(質)의 관계를 분석하고 그 외연을 넓히다보면, 피란민에 의해 만들어진 제2, 제3의 수많은 밀다원들이 오늘날의 부산을 형성해왔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피란수도’의 보편성의 가능성이 현상화된다.하지만 본 연구가 애초에 의도한 바는, 이 관계성이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부산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에 있다. 이 시도가 유의미한 이유는 이를 통해 ‘피란수도’의 의미를 창조적으로 반성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밀다원 시대』에 대한 질적 연구에서부터 시작된 연구는 점차 보다 보편적인 방향으로 수렴될 것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메타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 메타성이 죽어가는 것과 같다. 즉, 지금의 살아있는 나는 이제는 죽어버린 어제의 내가 실존했음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 즉 실존이다. 그렇다면 이 외연의 범주를 넓혀 하나의 총체적인 공간을 통해 돌이켜보자. 그것은 바로 도시이며, 특히 피란기의 수도일 때 이러한 실존과 실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묘한 일대일 대응을 한다. 매우 극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극적’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사실, 핍진성과는 거리가 좀 있는 성질의 것이지만, 이 시기 부산에서만큼은 이 표현이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설명하는 관형어가 된다. 바로 아미동 비석 마을이 그 예이다. 이‘극적인 사실’로서의 공간은 죽은 자들의 무덤이 곧 산 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집이 되었던 곳이다. 이는 무덤(죽음)이 곧 집(삶)이 되는 모순이, 단지 그 논리적 한계를 넘어서 사실을 가장 진실하게 설명해주는 양가성이 되는‘역설’의 한 사례이다. 그리고 이를 실제의 공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곳이 과거 피란수도였던 부산이다.그렇다면 이런 모순이 생명력을 본질로 하는 양가적인 역설로 나아가는 방식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만일 이것이 여러 변주의 모습일지라도 당시 부산이라는 공간에 모여든 사람들의 태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이 된다면, 이 논문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효한 일보(一步)가 될 것이다.2. 연구의 대상 및 방법위에서 제시한 본 논문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선택한 작품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밀다원 시대』이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김동리라는 한국현대문학사에 확고부동한 입지를 점유한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논문의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 주된 분석의 대상으로 선택된 자료는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시간을 통해 그 권위가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작가의 작품으로 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왜냐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자료를 익히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두 번째 맥락을 구성하는 필요조건에는 시간(혹은 시대, 역사, 세대)과 공간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서사학에서 토포스는 핍진성(逼眞性,verisimilitude)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위에서 제시된 것과 같이 토포스란 보편화된 관습, 즉 인식체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허구적인 플롯을 본질로 하는 서사에 진실성을 채워주는 기저적 내용이 된다. 즉, 예를 들어, 소설의 진실성, 혹은 개연성은 누구나 공유하고 공감하는 인식과 가치의 체계를 수반하고 있을 때 획득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물론 이는 그 소설이 향유되는 시대와 문화권의 인습적 편견일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담화적 상황에서만큼은 그것이 진실로서 승인되는 것이고, 이 승인의 보편적인 기반이 곧 토포스인 것이다.이 세 가지의 측면을 종합해서 보면, 시간적인 간극으로 인한 불가피함에 의해 피란수도 당시 부산이라는 공간에 대한 질적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그 텍스트적 대상으로 김동리 『밀다원 시대』를 선택한 것에 대한 타당성이 설명된다. 보편화된 관습이나 인습체계로서의 토포스는 서사문학에서는 ‘반복되어 나타나는 고정된 형태의 모티프 사용’을 의미한다.『밀다원 시대』속 인물들이나 그들의 내적?외적 갈등의 양상 등도 이러한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에는 어떤 과장도 없고, 거의 기록, 혹은 일기와도 같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반영하고 있기에 온전한 핍진성을 확보하고, 이는 단지 “기억되는 장소”로서의 토포스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런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지 소설 내적 장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의 플롯은 절정의 단계에 가서 다소 깨지는 불완전성을 보이지만, 이 점이 오히려 이 소설을 완전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지점이 된다. 왜냐하면 “어떤 것들을 생각해내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놓여 있는 장소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라는 박성창의 지적처럼, 소설의 진실 반영과 그 반성의 가능성은 그것의 내용을 이루는 모티프들의 근원이 되는 실제의 장소, 즉 당산행 기차 안이다. 이곳 역시 낯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왜냐하면 이 공간 속 모든 이들은 하나같이 공통의 목적, 즉 살기 위해 피란도시를 향해 간다는 인지상정적인 이유를 가진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동정(compassion)의 감정을 동지애라고 여기고 싶어 하는 것은 비루한 자기기만일수도 있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가능한 정당한 자기합리화이기도 하며, 그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안 되는 시간동안 그들이 속한 공간을 시간의 파편적 기억 이상의 것으로 의미 있게 해주는 정서의 자기 구성적 경험이기도 하다.하지만 그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고 있던 이 동지애도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일순간 신기루와 같이 지리멸렬하게 흩어지게 된다. 이 “해산”을 두고 이중구는 “새로운 자유”라고 명명하지만, 이에는 그의 두려움과 냉소가 서려있다. 이때 그가 하는 탄식,“어찌하여 그들은 한순간에‘동지’에서 벗어나 그렇게 용감하게 자유로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이는 분명 설의적이다. 즉, 그는 이 순간 지독한 소외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의심하고 질투한다. 자신은 이곳 부산에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는데, 저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에서 오는 고립감이 그가 부산에 첫 발자국을 딛었을 때 느꼈던 이 항도에 대한 최초의 경험이었다. 즉, 그가 치러야 할 통과의례는 부산역에 닿음과 동시에 온전히 현상화되었고, 이 최초의 경험은 곧 그가 겪은 분리 의례(rite de seperation)의 내용이었다.부산에서의 첫날 밤, 그는 같은 기차를 타고 내려와 부산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K통신사의 윤(尹)에게 염치불구하고 빌어 붙어서 하룻밤 몸을 뉘일 곳을 마련한다. 그곳은 바로 k통신사의 부산 지국이었다. 그는 이 공간을‘시커먼 얼음벽으로 둘러싸인’공간으로 인식한다. 비록 겨울이기는 하지만 서울보다 기후가 온화해서 눈과 얼음을 좀처럼 보기 힘든 부산에 와 있음에도 말이다. 이때 그는 악몽에 설치면서도 어떤 소리를 듣는다. 이를 그는 “문한다.“밀다원에서 한 걸음만 더 멀어져도”두렵고 불안해서 견디기가 힘들다고 말이다. 즉, 그와 비슷한 처지의 무력한 피난 예술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잉여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모인 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너무도 절실했던 것이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밀다원에 있는 시간만큼은 뱃고동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슬프고 우스꽝스러운 자기기만이지만, 이를 냉소의 대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2) 박운삼의 죽음이 논문의 목적에 맞추어 『밀다원 시대』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특징은 전쟁이라는 극한적 상황 속에서 피난 지식인이 겪는 내?외적인 갈등이 공간에 대한 그리고 공간에 따른 정서적인 반응 양상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시작은 파편적이고 개인적이지만, 플롯이 전개되어 갈수록 그 속에 잠재되어 있었던 보편적인 특질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작위적이지 않고, 심지어 소설임에도 소설적, 즉 허구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매우 핍진하다.중요한 것은 이 작품 자체의 이러한 핍진성 속에서 피란수도 당시 부산의 보편성을‘논리적으로 발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 역시 김동리가 던져 놓듯이 채워놓은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앞에서 밝혔듯이, 이 소설의 플롯상의 클라이맥스는 전과 후로 구성되어 있다. 발단부터 절정의 전반부까지는 이중구 중심으로 진행되던 것이 절정의 후반부와 결말에 이르러서는 그 중심축이 이동을 한다. 어찌 보면, 이는 완전히 깨진 플롯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러한 허술함으로 인해 매우 성공한 플롯으로 변모하는데, 왜냐하면 이를 통해 밀다원의 주변적인 임시성이 보다 보편적인 차원으로 지양(止揚)되기 때문이다.지양이라는 말은 본래 변증법적 개념이다. 변증법의 핵심은 어떤 테제가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던 성질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부정은 그 성질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닌, 그것 속에 잠재되어 있던 긍정적 가능성을 현상화시키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또하다.
    인문/어학| 2022.10.29| 21페이지| 100,000원| 조회(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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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욱 평전> 독후감
    정신의 주치의나는 한적한 어촌에서 자랐다. 그곳은 하루에 버스도 몇 채 들어오지 않는 오지였다. 30호쯤 되는 작은 마을이 다섯 개 모여 있었는데, 그 일대의 한가운데에 작은 초등학교와 아담한 보건소가 하나 있었다.우리가 ‘보건소장님’이라 불렀던 분은 보건지소의 소장이자 유일한 직원이셨다. 나이가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부터 작은 꼬마에 이르기까지 어디가 아프기만 하면 일단 보건소부터 찾았다. 소장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병자를 보살펴주셨는데, 더러 파스 한 장, 박카스 한 병 마시고 잠시 쉬었다 나오는 게 고작이라 할지라도 보건소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가 던진 돌에 맞아 머리가 찢어진 채로 울면서 보건소로 뛰어갔던 적이 있다. 피가 철철 흘러 눈으로 스며들었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자니 팔뚝으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려 겁을 잔뜩 먹었다.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닌지, 뇌가 파괴된 건 아닌지, 나는 바보가 되고 마는 게 아닌지, 엉엉 우는 그 작은 마음에도 걱정이 한꺼번에 일었다. 하지만 보건소장님을 보자마자 걱정이 뚝 그쳤다. 아픈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이제 죽진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다. 소장님이 나를 침상에 눕히시고 따뜻한 손으로 우선 응급처치를 해주실 때는 잠까지 스르르 들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우리 시골에서 보건소의 존재는 그런 것이었다. 비록 소장님은 큰 병을 치료해주실 능력도, 권한도 없었지만, 주변에 의료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나의 고통을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일인가.이종욱 총장의 평전을 읽는 내내 그 시절 보건소장님이 떠올랐다. 이종욱 총장은 시골 보건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국제기구의 수장이셨고, 인류 전체의 보건을 책임지셨지만, 병자를 대하는 따뜻함에 있어서는 시골 마을 보건소장님처럼 푸근하고 진실 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이종욱 총장을 직접 만나봤던 세계의 병든 이웃들은 어린 시절의 내가 느낀 그 위안을 그분에게서 느꼈을 것이다.나는 평전을 읽는 내내 ‘이종욱’이라는 한 인간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는 애초에 미국에 의사로 정착하는 게 꿈이었는데, 난데없이 성 라자로 마을로 가 한센병 환자를 돌봤다. 갖은 고초 끝에 이제 하와이에서 공중보건학 강사로서의 안정을 누릴 수 있겠다 싶을 때는 상어가 득실거린다는 사모아 섬으로 훌쩍 떠나버린다. 총장의 인생은 늘 그런 식이었다. 항상 불안정했고, 늘 불안이 뒤따랐으며, 오늘 여기에 정착하면 내일 저곳으로 떠나야 했다. 평전 저자의 말처럼 이종욱 총장이 일기를 쓰지 않았으므로 구체적인 결심을 할 때마다 그 진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니 그가 남긴 말과 행동을 보고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이종욱 총장은 “옳은 일을 적절한 곳에서 옳은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한 적이 있다. 그는 의사로서의 옳은 일을 항상 고민했고, 그 일을 실천한 적절한 곳을 끊임없이 찾았으며, 옳은 일을 행할 정당한 수단을 매번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그는 결혼문제에 대해 카우프만 부부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이 결혼시장에서 중매인이나 부유한 여성들에게 세속적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게 싫거니와 그런 태도에 대해 경멸한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그는 어떤 일이 가져다줄 이익과 그 일의 도덕적 가치를 저울질하지 않았으며, 단호하게 도덕적 가치를 택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분이었기에 양팔저울의 양쪽 접시에 경제적 안정과 인류에의 헌신을 올려놓는다면, 그 결과는 자명한 것이 되었다.이종욱 총장이 WHO의 사무총장에 올랐을 때, 우리 언론은 한국인이 세계의 주도적 인사가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내 주변의 어떤 이들은 그의 ‘출세’를 높이 사며 극찬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관점에서 그를 평가하는 것은 그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결과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지만, 출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은 아닌, 가치지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렇기에 그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쉴 새 없이 일했다. 마치 자신의 휴식이 병들고 가난한 인류에게 죄를 짓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급함을 느끼며 자신을 학대하다시피 했다. 식사 중에 쓰러진 날조차도 두 건의 약속이 더 있었고, 그 다음날에는 무려 아홉 건의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었으며, 월요일에는 세계보건총회를 처리해야 했다. 아내 레이코 여사와의 여행에서 이미 이상징후를 발견했지만. 그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마지막 숨을 짜내 세계보건을 위해 일했던 것이다. 어쩌면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에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였지만, 그가 강조한 ‘동양적 인내심’으로 견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이미 전쟁의 혹독함을 겪은 그였지만, 그의 전쟁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이어졌던 것이다.주어진 부담이 막중하다고 해서 그가 초조해하거나, 평정심을 잃거나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언제나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특히 제약회사로부터 50달러어치의 약을 받기 위해 50달러어치의 비용을 몇 번씩이나 써야 했음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을 때는 딱딱한 평전을 읽는 나조차 웃음을 터트렸으니 그가 왜 동료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답답한 관료제에 대해 투정을 하기보다는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아는 그 여유와 웃음이야말로 특별한 재능이기 때문이다. 이 재능과 성품은 실제로 그의 인생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그는 유머감각 외에도 명민함과 확고한 목표의식 그리고 초인적 끈기로써 바라는 점을 하나씩 이루어갔다. 그런데 이 성공가도를 살펴보면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게 보인다. 바로, 한 인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변의 조력을 이끌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이종욱 총장은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상대가 자기보다 낮은 위치라 해도 언제나 겸손하게 친구처럼 대했으며, 처음 만나는 사람들조차 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자칫 경쟁관계가 될 수 있는 사람조차도 친구로 만들었으니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적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탈무드의 격언을 실천한 셈이다. 나는 이종욱 총장보다 훨씬 작은 인간관계와, 비할 바 없이 작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 대하는 일에 서툴고, 곧잘 짜증을 내며, 버럭 화를 낼 때도 있다. 자꾸 일이 꼬인다고 투정을 부릴 줄만 알았지 내 자신을 살펴보는 데는 미숙했다. 이종욱 총장의 인생에서 인간친화적인 면모와 이타적 행동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어 다행이었다.
    독후감/창작| 2014.03.05| 4페이지| 2,500원| 조회(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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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나라 통치술의 역사적 의의 및 현대적 가치
    청 제국 통치술의 역사적 의의 및 현대적 가치- 청나라 초기 황제들을 중심으로1. 서론중국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은?주의 상고시대 때부터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까지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중국 문화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적 유산 외에 드넓은 영토와 복합 민족으로 구성된 공간적 특성 또한 상존한다. 이렇듯 종적으로는 시간적 깊이, 횡적으로는 공간적 광대함 앞에서 우리는 중국 이해의 난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오늘날 많은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따라서 특정 국가 정책 및 외교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관찰하면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중국도 기본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다른 국가와 달리 중국은 그 특유의 역사를 존중하고, 반복하여 체현하고자 함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가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국인은 끊임없이 역사적 정통성을 복구하고 싶어 하고, 그 영광을 되살리고 싶어 하기에, 중국의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이에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 역사의 행간을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중국 역사는 한족만의 무대는 아니었다. 이민족과의 숱한 대결, 급기야 이민족 왕조의 건립으로 인한 한족의 피지배층화는 한인(漢人)들에게 치욕스런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민족 왕조가 반드시 한족과 갈등만을 빚어낸 것은 아니다. 특히 청(淸)나라가 그렇다. 만주족에 뿌리를 둔 청은 한족과의 화해?협력에 성공함으로써 효과적인 통치를 유지했던 것이다.청이 이처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 왕조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청 왕조가 중국사에서 갖는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청 왕조의 성공사례를 통해, 중국이 고질적으로 가졌던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반면교사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중국이 수 백 년 전에 골머리를 앓시 마찬가지이다. 그 나라들은 우선 내치에 실패함으로써 내우(內憂)를 불러왔고, 내우는 곧 외환(外患)으로 이어진 것이다. 만주족이 한족을 누르고 청 제국을 건업할 수 있었던 것은 명(明)의 실정 때문이었다. 따라서 청나라의 초기 황제들은 명나라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았던 것이다.그렇다면 명나라 말기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우선, 황권과 신권이 대립하는 와중에 환권이 득세함을 지적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황제의 권력누수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중국 황실의 고질병은 곧 환관의 득세인데, 거의 모든 왕조가 멸망의 길을 걸을 때마다 환관은 황제의 위에서 권세를 좌지우지했었다. 명 역시 이 환관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고, 황제의 권위와 통치권은 점점 상실되어 갔던 것이다. 황권이 약화되자, 상대적으로 신권(臣權)이 강화되었다. 따라서 중앙 조정의 관리들은 각기 패권을 차지하고자 정치적 숙청과 정쟁을 일삼았다. 지방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중앙 정부의 권력이 지방을 아우르지 못 하자, 지방관들은 백성에 대한 수탈을 심화해 갔던 것이다. 이렇듯 정부가 제 노릇을 못 하고 백성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자, 백성들은 이제 옳고 그름의 윤리적 가치 대신 제 살 길만 찾기에 급급하게 되었다. 방종한 개인주의가 팽배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 개인적 향락과 부귀만 추구하게 되었다. 명 제국이 이처럼 내우(內憂)에 시달리게 되자, 변방의 군사적 침략은 더욱 잦아지게 되었고, 결국 패망의 길을 걷고 만 것이다.명나라의 실정(失政) 덕분에 만주족은 중원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전 왕조의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명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했다. 즉, 청 황조 초기 황제들은 명과 완전히 반대되는 정책들을 시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레 국가 경영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다음에서는 청나라 초기 황제, 특히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어떻게 제국을 통치하였으며, 이것은 중국 역사상 어떠한 의의를 갖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자.3만, 한족에게도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불만을 잠재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만한일가(滿漢一家), 만한불기시(滿漢不岐視)이다. 즉, 만주족과 한족은 하나의 가족이며(滿漢一家), 그 둘을 달리 보지 않겠다.(滿漢不岐視)는 말로서 평등 대우를 약속한 것이다. 이 약속은 한족의 관직 등용, 사회?경제적 존중, 한족 군대의 보존으로 이어졌다. 또, 한족이 숭상하는 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정신적인 통일까지 이루려고 했다. 이렇듯 황제가 직접 유학을 숭상하고, 공맹을 배움으로써 한족 문인들은 황실에 협조하게 되었고, 지식인의 포섭은 제국 통치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이러한 유화책이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실질적인 삶을 향상시켜주어야 했다. 굶주린 백성에게 유학을 숭상하자는 구호만으로 환심을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역경감, 조세감면, 지주의 착취로부터 농민 보호, 토지 강매 금지라는 복지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형식적인 유화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흉년 시 토지세와 소작료 감면, 황무지 개간 시 토지세 유예 및 소유권 인정이라는 파격적인 권리까지 인정해 줌으로써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하지만 청 제국은 이러한 경제적 혜택만 부여한 것이 아니었다. 양제원(養濟院)을 통해 늙고 병든 빈민을 구호하였으며, 육영당(育堂)에서는 영유아는 물론 고아까지 도맡아줌으로써 농민들은 생업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또한 서류소(棲流所)에서 유랑민의 난민의 숙소를 제공하고, 빈민의 식사를 제공함으로써 반정부 정서를 원천적으로 차단코자 한 것이다.반란은 단순히 정권에 대한 반감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먹고 살 길이 너무나 곤궁하여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으면 굶어죽고 말 것이라는 절망감이 백성에게 용기를 부여한다. 명의 패망으로부터 이러한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청제국의 초기 황제들은 위에 언급한 복지 정책 외에도 죽창(粥倉), 완창(煖倉), 구휼소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치국의 기초를 다져나갔던 것이다. 러움과 강함이 병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포 통치만으로 제국을 유지할 수 없음은 진(秦)나라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적절한 공포는 질서유지와 지배계급 보호에 있어 불가피하다.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강압책 역시 매우 강력하게 시행되었다. 가령 모반과 대역죄를 모든 범죄의 으뜸으로 하여, 반란군의 수령과 주동자 법정 최고형인 능지처참에 처했으며, 이 죄는 10세의 어린 아이에까지 적용토록 하였다. 정권에 대한 비판을 엄금하기 위해 정치적 모임을 애초에 금지했으며, 개인의 무기 소지를 허가하지 않음으로써 반란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초기 황제들 역시 이러한 표면적인 강압책이 한계가 있으리라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황제들이 생각해낸 가장 효과적인 강압책은 만주족과 한족의 합체이다. 한족은 고유의 역사적 전통으로 인해 그들 나름의 습속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그리고 이런 습속은 의복, 두발 등의 관습으로 표상된다. 만약 이러한 의복이나 두발 등을 만주족과 일치 시켜버린다면, 한족은 그들의 전통과 단절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 점을 간파했던 황제들은 만주의 고유문화를 전파하는 한편, 치발령을 선포하여 한족의 전통을 말살해 버린 것이다. 물론 자존심 강한 한족이 순순히 이를 받아들였을 리 없다. 결국 치발령을 두고서 벌어진 만주족과 한족의 갈등은 양주에서만 100만 명, 강음에서는 17만 명, 가정현에서 2만 명이라는 대학살을 겪고서야 끝을 보게 됐다. 굴복하는 백성에겐 당근을, 그렇지 않은 백성에겐 채찍을 선사하는 이병(二柄)정책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창칼이 아니다. 식량이며 경제권이다. 창칼의 위협은 피하면 되지만, 경제권이 박탈되면 치자에 순응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리고 치자가 선사하는 식량을 은혜라 생각하며 충성을 맹세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식량문제는 한편으로는 백성을 휘어잡을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백성의 충성을 받아낼 수 있는 좋은 계책이다. 그래서 초기 황제들은 수도 인근 지역의 토지를 몰수하여 정부 소제국, 특히 청나라 초기의 성공한 황제들을 조명해볼 수는 없다. 유화와 강압의 이병(二柄)은 중국 어느 왕조에서도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청나라 초기 황제들의 어떤 정책이 기존 왕조들과 차별화 되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천착해보고자 한다.중국은 전통적으로 유가와 법가를 치세책으로 삼았다. 즉 도덕 국가 건설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유가적 사상은 거시적인 목표였으며, 넓은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를 위해 객관적 기준으로서 법가를 병행한 것이다. 하지만 유가와 법가 중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면 나라는 흥성할 수가 없다. 지나치게 유가만 강조하다가 패망한 송, 명의 경우가 그렇고, 법가만 내세우다가 멸망해버린 진나라가 그렇다. 이에 청나라는 한편으로는 유가를 숭상하면서도, 법치를 확립함으로써 통치의 원활함을 꾀했던 것이다. 1647년에 있었던 대청률 반포, 1740년의 대청률례 제정은 이러한 법치 사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법치를 통해 청 제국 초기 황제들은 통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었다. 즉, 4억 명에 이르는 백성들에게 행위지도규범을 반포함으로써 혼란을 방지했던 것이다. 이러한 유?법 병용의 성공적 사례는 일찍이 중국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청나라가 예전의 다른 왕조와 차별화 되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청나라 초기 황제들은 피지배계급을 단지 정복과 수탈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것은 아니다. 강희제는 “제도의 완벽성이 성공적인 통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함으로써 황제의 덕성 함양을 강조하였다. 옹정제는 “황제의 모범과 도덕적 권위가 국가 운영의 힘”이라고 말하면서 강희제의 통치방식을 이어나간다. 건륭제 역시 “하늘과 민(民)은 하나이며, 황제는 하늘의 위임을 받는 것이므로 민(民)의 위임을 받는 것과 같다.”고 했다. 건륭제에 이르러서는, 모든 권력의 원천이 백성에게 있고, 백성이 국가의 근본임을 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초기 황제들의 면모는, 정치적 것이다.
    인문/어학| 2009.06.22| 6페이지| 1,500원| 조회(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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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에나가 타미오의 『색채심리』를 읽고 평가A+최고예요
    스에나가 타미오의 『색채 심리』를 읽고Ⅰ. 내용 요약이 책은 일본의 저명한 색채 심리 연구가로서 를 운영하고 있는 스에나가 타미오(末永倉生)가 마음을 치유하는 심리 테라피로서의 색채 심리 전반을 소개한 저서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에서는 색과 마음 사이의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관계에 대해 개괄적인 조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2장에서는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분홍, 무채색과 관련된 인간의 심리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3장에서는 색채와 인간과의 관계를 색채 효과라는 이름으로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색채 치료의 방법과 양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도입부에 해당하는 제1장에서는 색이 인간의 심리에 끼치는 미묘한 영향들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작가가 이전에 어느 공립 중학교에서 개최하는 교육 강연회의 강사로서 초청받았을 당시 겪었던 경험으로서 색이 인간의 심리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잘 증명해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워크숍에서 그가 아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자신이 느끼는 기분을 구체적인 색깔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격렬하고 발랄한 음악을 들을 때에는 오렌지 색으로 그 음악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기분이 축 쳐지거나 피곤할 때에는 검정색으로 표현하는 등 아이들은 분명 자신의 심리를 색을 통해 분명히 표현할 줄 알았고, 그러한 표현 속에서 일관적인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이러한 색채를 통한 그리기 치료는 아이들로 하여금 그 동안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의 감정과 심리를 보여줌으로써 기분이 차분해지고 스트레스와 긴장이 풀리는 등의 분명한 심리 치료 효과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이는 당사자조차 정확히 의식하거나 알고 있지 못한 채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여러 심리적 스트레스가 다양한 색채를 통해 모호하게나마 표현될 수 있고, 또한 이를 통해 환자의 심리 상태를 보다 정확히 예측하여 그에 알맞은 대처 방법을 강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제2장에서는 색에 따라 구체적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데, 이는 크게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분홍, 무채색의 7가지 경우로 나뉘어 분석되고 있다. 먼저 빨강 색의 경우 작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빨강 색은 인류가 최초로 ‘의식’한 색이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불과 피를 상징하는 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빨강과 관련된 보편적인 사실을 통해, 어떠한 생명력을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한편, 노랑의 심리는 감추어진 내면에 빛을 비추는 적극적인 표현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와 관련해 고흐와 고갱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는 매우 설득적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고흐가 고갱과의 공동생활을 꿈꾸며 그린 ‘노란 방’은 분명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이 외에도 초록은 감정의 안식과 안정을 상징하기에 심리 치료에 매우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파랑은 상실이라는 우울함과 재생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보라색의 경우에는 고통을 치유로 변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색이라고 말하는데, 작가는 이에 대한 근거로 보라색을 만드는 기본색으로서 빨강과 파랑의 심리적 관계에 대한 분석을 들고 있다. 보라색이 되기 전에 빨강과 파랑으로 상징되는 정반대의 감정의 갈등은 바로 균형을 회복하려고 하는 인간 심리의 본성에 따라 어떠한 합의나 절충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이러한 심리는 빨강과 파랑을 모두 포함한 보라색으로 상징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어쩌면 보라색은 갈등은 해소하려는 심리에 효과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고 작가는 말한다.마지막으로 이 장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것은 무채색에 관한 이야기인데, 작가는 와 같은 인간성을 주제로 한, 흑백의 대비 구도의 영화나 피카소의 를 예로 들면서, 색의 부재는 인간성의 상실과 그에 따른 불안을 나타낼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면서 피카소가 했던 “색채는 어떤 인간적인 구원을 의미한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제3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색채와 인간의 심리와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위해 우선 역사적인 검토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색과 문명과의 관계’, 즉 각 민족 문화 속에 나타난 색채의 상징성에 대한 연구와 괴테의 색채에 대한 개인 연구를 중심으로 한 ‘색채 이론’에 대한 사례적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검토를 바탕으로 이 장의 마지막 편에서는 빛과 색이 가진 심리적 치유의 효과를 여러 경험적 사례를 근거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마지막 장인 제4장은 이러한 색채 연구가 일상적으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는 색채를 이용한 심리 치료의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제시한 색채 치료의 방법에는 총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각각 색채 치료와 미술 치료, 어린이의 그림 그리고 그림 그리기이다. 작가는 색채 치료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충분히 실천 가능한 것으로서 옷이라든지 집안 인테리어 등의 색깔을 치료에 도움이 되는 종류로 사용함으로써 일상 속에서도 심리 치료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술 치료와 같은 것은 색채 치료 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치료 방법으로서 환자의 무의식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좀 더 명확히 해주기 때문에 치유를 촉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예로서 어린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 아이가 현재 어떠한 심리 상태에 빠져 있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정도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그림 그리기는 인간이 자신의 억압된 심리를 색채라는 도구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하여, 온갖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노화를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이고 있다.Ⅱ. 감상색채가 인간의 심리를 반영하고 또 그것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확실히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뭔가 생활의 변화를 원할 때는 빨강 색과 같은 원색 계열의 옷이나 소품을 구입하거나 착용하게 되고, 기분이 처져 있고 피곤할 때에는 왠지 어두운 색깔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떠오르곤 한다. 또한 뭔가 생활의 재생이나 환기를 원할 때 또는 혼란한 정신과 마음이 좀 진정되기를 원할 때 항상 떠오르는 것은 수목의 냄새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울창한 산이나 수목원에 가고 싶다는 욕구이다.이러한 일상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색채라는 것이 얼마나 깊이 우리의 심리와 기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일시적인 심리의 변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왜냐하면 심리 변화나 환기를 위한 계기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그것은 앞으로의 일상적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고통스러워 할 때 지나가는 행인의 사소한 도움만으로도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고 느끼게 되는 경험이 주는 변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색채의 심리적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서술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며, 임상 심리학의 한 분과로서도 유용한 영역이라고 여겨진다.이 책은 색채 심리를 업으로 삼아 직접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색채 심리의 효용과 가치에 대해 일깨워주기 위한 입문서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해 하는데 전혀 어렵지 않았고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작가 자신이 경험한 여러 경험적 사례들과 문학, 영화 등에서 이용되는 색채의 효과, 우리가 직· 간접적으로 이미 경험했거나 혹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각 민족의 문화 속에서 내재된 색채의 상징성 등에 대한 다양하고 자세한 예시는 이 책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나의 흥미를 끈 것은 바로 제3장의 색채 이론 편에서 들고 있는 괴테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장 먼저 놀라웠던 점은 그 동안 그저 독일의 문호로만 알고 있었던 괴테가『색채론』이라는 다소 자연과학적인 주제의 저서를 20여년에 걸쳐 작성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상당한 정도의 객관적 실험을 통해서 나름의 결론을 도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놀라운 점이었다. 이는 아마도 근대 이후 분야를 막론하고 유럽의 사상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뉴턴의 고전 역학에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보인다. 또한 이는 비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낭만주의적 경향성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고전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괴테의 보수성을 반증하는 흥미로운 사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11.01.24| 5페이지| 2,500원| 조회(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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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학과 예술 비평과의 관계
    미학과 예술 비평과의 관계-무용 예술을 중심으로-Ⅰ. 서론예술비평은 예술작품을 판별하고 평가하여 창작활동의 건전한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평’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술비평은 기본적으로 그 비평의 대상이 되는 예술의 분야를 막론하고 그것을 ‘판단’하고 ‘식별’하여 평가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루어지는 판단과 식별의 성격은 기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순수과학 등에서 요구되는 것과 같은 귀납과 연역에 기반을 둔 분석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규명하고 그 의미를 밝혀내는 작업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과연 예술이란 무엇일까? 17세기 바움가르텐 이전에는 예술이나 美는 오성에 의한 인식적 판단의 대상에 속하기보다는 감성에 속하는 것으로서 결코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분야로 여겨졌다. 하지만 칸트의 『판단력 비판』이후로 예술을 가능케 하는 인간의 미적 판단 역시 오성의 역할이 개입되는 인식의 영역이라는 반성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후로 예술 혹은 美에 대한 學으로서의 미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후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미학이 다루어야 할 그리고 끊임없이 재논의 될 수밖에 없는 영원한 테마가 되었다. 학자나 예술가에 따라 그리고 각 시대에 따른 주도적 사조의 변화에 따라 예술의 성격에 대한 정의는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지금도 역시 이와 관련한 의견이 매우 분분하다.그러나 많은 미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한 가지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술이란 소통을 전제로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J. Martin은 예술이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은 유희(play)와 같은 단순 참여적인 행위와는 달리 외부로부터의 반응에 동반하는 인간의 외면 지향적 활동”)이라고 하였고 톨스토이 역시 “예술은 자신이 느낀 감정을 외부적인 방법의 의도적인 사용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해 그 감정을 고유하는 것으로서 예술가가 느끼는 감정을 관객들이 함께 느껴야만 비로소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현대에는 예술이나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이 매우 다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대개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이라는 전통적인 이론의 조합으로 예술에 대한 보다 실천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무용 예술의 미학적 정의에서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개의 무용의 동작들은 인간의 여러 내적, 외적 행위를 창조적으로 재현하거나 자연의 형태를 모방하여 내면적 상태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고, 무용이란 이러한 신체를 이용한 모방과 재현을 통해 인간의 사상과 깊은 내면의 감정을 창조적으로 표출해내는 미학적 행위이기 때문이다.그럼 이제부터 무용 예술을 중심으로 미학과 예술 비평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무용 예술 비평의 정의무용비평이란 창작자의 예술 활동의 결과인 무용 작품과 그 주체가 되는 무용가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적인 가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비평은 작품과 무용가의 움직임의 장, 단점에 대한 가치 판단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서 항상 ‘좋다’, ‘나쁘다’ 등의 가치 판단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이 비평으로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지 그러한 판단에 대한 서술에만 그치지 않고 왜 그러한 판단이 가능한지에 관한 정당한 이유를 밝혀야만 한다.이렇듯 비평은 예술 현상에 대해 가치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과 구별된다. 비록 비평은 오직 예술 작품의 존재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지만, 비평이 결여된 창조 행위는 예술적 독단에 빠질 수밖에 없고 이는 흔히 자아도취적인 다소 우스꽝스러운 양상으로 드러난다.무용비평은 말 그대로 무용과 관련된 제반의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가치 판단 행위인데, 이 중에서도 특히 이론이나 역사가 연관된 비평은 특정한 예술 작품에 대해 기술하고 해석하는 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품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론이나 역사는 어떤 한 작품을 비평적으로 논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지식으로서 작용하며, 이를 바탕으로 비평가는 작품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Ⅲ. 무용 예술 비평의 목적무용 비평의 목적은 다른 비평들과 마찬가지로 비평을 하는 이유와 비평의 주안점, 그리고 그 비평이 어떠한 설명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무용 비평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세분화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무용 비평의 첫 번째 목적은 무용 예술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영속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이후 세대의 비평가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서 이용될 수 있다.두 번째 목적은 바로 예술에 대한 당대의 시각과 취미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무용 비평의 기능 중 가장 즉각적인 것은 무용의 현재 흐름에 대해 보고하고 평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에는 당시의 지배적인 전통이라든지 유행하는 예술 사조와 같은 해당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당대의 시각과 미적 취향이 반영되어 있어야만 한다.세 번째 목적은 해당 무용 작품의 장르와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무용 작품이 어떠한 장르에 속하는가는 우리가 어떤 무용 작품에 대해 주목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는 무용비평은 작품에 내재한 특징을 매우 면밀하게 다루고 있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현대의 무용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일반 대중에게 제대로 설명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네 번째는 대중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에게 무용을 하나의 예술 형태로 인식시키고, 무용의 역사와 새로운 무용 양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감상을 통해 무용 어휘를 창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용비평에 내재한 가장 근본적인 교육 목적은 무엇보다도 무용이 하나의 중요한 예술 영역이라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용과 관련한 여러 정보나, 예술 분야 내에서 무용이 차지하는 위치, 무용 예술의 역사와 각 시대 별 무용양식, 가장 기본적인 무용 형태 등에 대한 지식을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Ⅳ. 무용 예술 비평의 종류무용 비평의 방법론은 일반적으로 예술 비평의 방법론과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규칙에 의한 비평, 맥락 비평, 인상주의 비평, 의도주의 비평, 내재적 비평이 있다.먼저 규칙에 의한 비평이란 예술 작품을 평가하기 위해 미리 설정된 몇 가지 가치 판단에 대한 기준들에 따라 수행되는 비평을 뜻한다. 스툴니쯔에 따르면, 만약 비평가가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대상 작품에 대한 진정한 가치 평가를 하기 위해선 보다 객관적이고 표준적인 가치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다. 이러한 판단의 기준에는 ‘도덕적 기품’이라든지 ‘감정에의 호소력’과 같은 가치 판단에 영역에 속하면서도 사람들의 공통적 합의에 따라 가장 표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들이 속한다.
    인문/어학| 2011.01.24| 6페이지| 30,000원| 조회(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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