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8
검색어 입력폼
  • 기부문화에따른 동서양의 시각차이
    기부문화에대한 동서양의 시각차이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어두운 곳에서 소외되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지금 우리에게 보여지는 현실에는 냉혹하리만치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신문이나 TV뉴스를 통해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내가 보기에도민망하고 부끄럽다. 반면에 생활고와 빛더미에 자식들과 어쩔 수 없이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가정들을 보면서충격적이고 슬픈사건들이 연일 가슴을 아프게한다.과연 우리사회의 어떤모습들이 지금의 어둡고 냉혹한 현실을 만들어냈을까??그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위해 지금의 주제를 선택했다.물론 우리나라에 기부문화가 없다고 하는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사회는 일시적인 연민과 동정으로 무슨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기부금을 내고있다.하지만 그것은 지속적이지 못하고 영원할수없다.이제는 체계적이고 그 나눔의 혜택을 함께 모든사람들이 누려야 할때라고 본다. 이에“아름다운 재단”은 가장 큰 본보기라고 생각된다. 기부자의 기부금을 성공적이고 보람되게 공익사업으로 좋은모범을 보이고있다.아직도 우리에게는 기부금이라는 말이 참으로 어색하다.또 남을 돕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특히 재벌들이 기부금을 내놓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현실이다.그들은 회사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오히려 많은 기부금의 액수는 정치자금이나 비자금세탁등의 색안경으로 보는 이들이 더많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오히려 일반인들이 더 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는실정이다.그 중에서 예전 일을 돌아보면 태평양 서성환 회장 유가족의 50억원기부는 매우 신선한 충격일수밖에없었다모처럼 갈라진 땅에 단비를 내리는 느낌을 받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0억이라는 돈은 매우 큰돈이기에 내가 부자였더라도 쉽게 내지를 못했을 것 같아서 그 분이 많이 존경스러웠다.이 기부금은 저소득 모자가정에 대한 지원금으로써 달라는 것과 재벌의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에 큰 의미가 되었다.통계청 ( http://www.nso.go.kr/ )- 한국의 사회지표 : 2006년 한국의 사회지표 / 13. 정부와 사회참여 / 13-7. 후원(기부) 인구기부: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동양에서의 기부의 유례를 살펴보면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 사상과 왕도주의를 들수있다. 여민동락사상이란 진정한 즐거움이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라고 하여 예전부터 기부를 해왔음을 알수있다. 더불어서 인정시행(仁政施行) 이라는 민생적책을 통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기본사상으로했다.이에 반면에 서양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기본 이념아래서 로마같은 경우 계급에 한정되지 않는 기부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으면 서양이라고 대표되는 미국에서는 만인평등에 기반한 모든시민의 책무로 기부를 여길만큼 그 필요성을 어렸을때 학교나 사회를통해서 가르켰다. 더불어 프랑스는 전통속에녹아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정신을 가지고 있다.우리나라와 서양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부에대한인식을 살펴보면 아래에 보는 표와같다.지금 이와같은 수치는 김대중대통령(국민의정부)시절부터 기부금에 남다른정책과 사회의 인식변화를 위한정책더불어서 기부금을 낸 기업들에 대해서 세금감면의혜택등의 정치적바탕아래서 위와같은수치가나왔다.그러나 서두에 말한것처럼 예전에는 기부금에대한 잘못된인식 즉.자선단체를 통한 비자금세탁이나 정치자금으로 이용되었던 과거에서 지금은 법인화되어 투명해진 자선단체와 기업내부에서도 기업이미지제고를 위해서기부활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되었다.하지만 이런 기부금의구조는 이익을 내야되는 기업입장에서는 주식을 산 주주들의눈치와 투자자들의 압박을받게되고 어느정도 정치적인입김이 작용할 수 없어 눈에보이는 이슈화된 분야에서만 기부가 일어나느것이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실상우리가 지속적인관심이 필요한분야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손길이필요하다.이 글을 쓰면서 기부에 대해서 얼마나 했는지, 알고있는지 살펴봤더니 내가 기부했던것이라고는 방송프로그램임“사랑의 리케스트”를 통해서 ARS전화를 통해서 기부하거나 1년에 한번 성탄절 명동거리를 걸으면서 구세군 냄비에 조금의 기부를 한 것 뿐이 없어서 창피하고 부끄러웠다.사실 기부는 어렵지 않는것이라고들 말하지만 수많은 경쟁과 자본주의의 시장논리 때문에 선듯 기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쉽지않은것이 지금의 우리나라의 사회분위기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부문화를 선진사회인 미국의 기부문화처럼 발전시킬수 위한 방법을 몇가지 정리해봤다.1.부적절한 목적의 기부활동 지양 : 부정적 인식을 제거하는것이 가장 필요할것같다.-솔직히 저도 개인적인 수입이 없는 학생의 신분에서는 기부는 조금어려운것이 사실이다.그렇다면 실제기부하는 연령층은 우리들의 부모님이 될듯한데 부모님들의 인식에서는 기부라는것은 군사정권아래서는 부정적사회뉴스로만 기억되서 개인의기부가 서양에 해서 적은것이 아닌가 쉽다.미국에서는 단체가 법인격의 유무에 관계없이 세무당국의 승인만 받으면 세제 면에서 우대를 받는다. 또한 체신관청에 승인되면 우편요금도 감면된다. 따라서 법인격 취득과 면세혜택은 별개의 것으로 면세목적으로의 법인화는 필요하지 않다. 공공봉사단체는 조세가 면세될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과세상 기부공제의 대상이 되는 기부'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금전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자원봉사활동에 참가하여 봉사를 제공한 경우에는 자택에서 활동지까지 왕복교통비, 참가용 피복비 등 실비 변상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당해 비용을 기부금의 지출로 간주하여 그 참가자에게 소득공제를 인정한다. 미국의 경우 모금의 출처가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비영리조직이 상근 모금전문가를 고용하고 있으며, 대학이나 박물관 등에는 10인 이상의 전문가가 민간으로부터 모금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다. 그에 따른 민간 모금 기부금에 대한 감독은 철저하다. 감독은 각 민간단체가 제출한 연차보고서를 기초로 주무관청의 장관, 법원 혹은 주의 법무장관이 경찰권(Police Power)의 일환으로 실시한다. 또한 전국적 규모의 일관성 있는 행정규제를 위해 연방국세청은 비과세승인 후 25,000달러 이상의 세입이 있는 단체에 대해 자금보고서의 제출과 공개를 의무하고 방문조사를 실시한다. 위 사항중에 적법한 경우 처벌을 통해서 관리하고 있다.2.이벤트 성격의 기부활동에서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기부활동으로 변화.-예전에 IMF때 초등학생의 점심식사가 사회이슈가 된 적이있다. 돈이없어 급식을 못멋던가 아님 밥을 준비하지못해서 점심때 나가있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본적있는데.. 이때 김대중대통령의 정책아래급식시설과 기업들의 도시락제공등의 기부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고한다. 하지만 학기가끝나고 방학때는학교에서도 기업들에서 제공되는 점심식사가 끊겨 방학때 고생하는 어린초등학생의 이야기를 뉴스를통해서 본적이있다.이때 나선것은 기업도 아닌 자선단체의손길이였다.익명의 기부자를 통해서 시작된“모락모락 사랑의 도시락”이라는 캠폐인을 통해서 일회성이아닌 전국의자선단체와 연계되서 지속적인기부활동으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좋은 본보기가 될수있다.3.개인기부가 부족한 이유에 대한 분석과 대안마련-우리나라하면 전통적으로 정에 의해서 일을 처리하고“정때문에라는”말을하는 입에달고 사는 우리나라에서 왜이렇게 기본적인 작은기부에 있어서도 개인기부자의 참여율이 작은지 알아보게되었다.그 이유를 인터넷과 국립도서관의 서적을 통해서 살펴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지만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참여할 방법을 몰라서,☆기부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서”.라는 의견이 상당수가 있었다.위와 같은 이유로 기부에 어려웠던 이들에게는 요즘 온라인기부의 확산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온라인기부를 통해서는 직접적인행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기쁨이나 보람을 100%다 얻을수 없겠지만 기부에 익숙해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되면 온라인기부를 하는 회사를 통해 사회의 큰 도움이 필요할 때 참여할수 있는 기회로 연결되어 좀더 발전된 기부문화를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된다.온라인기부를 하는 대표적인 사이트를 소개하면 네이버의‘해피빈’싸이월드의‘사이좋은세상’.야후‘나누里’등이있다< 싸이월드의 사이좋은세상 >저역시 위사이트를 처음접한건 아니지만 이번 보고서를 쓰면서 그 절차에 있어서 간편하고 핸드폰소액결제를
    인문/어학| 2009.11.30| 7페이지| 2,500원| 조회(376)
    미리보기
  • 서양문화사(신항로개척PPT)
    신항로 개척과 유럽세계의 확대단계할 당 시 간1주차2주차3주차문제 분석조별토의자료조사보고서작성보고성오류 수정 및신항로 개척으로 인한 결과제국주의(절대주의)의 개념과 국가-신항로 개척과 그영향 주제 참여자A384097 최현중신항로 개척의 결과A995059 김준식A695005 강종완A492023 신미숙A998110 정희정신항로 개척과 유럽세계의 확대2.신항로 개척의 배경과 과정 (1) 신항로 개척의 배경 -역사적 배경 : 오스만 제국이 육로를 통한 동방과의 교역 로 장악, 십자군 운동을 통한 이슬람 세계와의 접촉으로 세계관 확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 험 욕구 증가 (마르코폴로의 동방 견문록 포함) -경제적 욕구 : 향신료(후추), 비단 귀금속 등의 동양 산물 에 대한 유럽인의 수요 증가 -자연 과학적 지식 증가 : 지구 구형설 (토스카넬리), 조선술/ 항해술 발달 -종교적 열정 : 동쪽에 있는 크리스트교 국가를 찾아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자 하였음 (2) 신항로 개척 과정 -바르톨로뮤 디아스 :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도달 (1488) -콜럼버스 : 대서양을 횡단하여 서인도제도 도달(1492) - 아메리카 대륙 발견 -마젤란 : 향료의 주산지인 아시아의 몰루카에 가기 위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 세계 일주 성공 (1519-1522) - 지구 구형설 입증, 인도로 가는 서쪽 항로 개척 -바스코 다 가마 : 희망봉을 돌아 인도 서해안 도착 (1488)-인도로 가는 통상로 개척1. 신항로 개척의 배경관한 관점 -종래의 견해 : 오스만투르크족이 레반트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1453년) 하였기 때문에 동방무역로가 폐쇄되고, 동방의 산물에 대한 중세가 부과되어 신항로를 개척한 것이다. -오늘날 견해 : 콘스탄티노플은 동방무역에 있어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동방무역로의 종점인 시리아나 알렉산드리아는 16세기에 들어서서야 투르크족에게 점령되었다. 게다가 콘스탄티노플 점령 이후에도 동방 산물은 계속 유럽에 수입되었고, 향신료가격의 급등대(船隊)를 인솔하고 리스본을 출범하였다. 도중까지 동행한 디아스의 조언대로, 시에라레온 앞바다에서 대서양을 서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혁명적 항법(航法)을 써서(약 6,400 km), 11월 희망봉을 돌아 대륙 동해안을 북상(北上)하여 모잠비크 ·몸바사를 통과, 1498년 4월 마린디에 도착하였다. 도중에 이슬람교도들의 적대적 방해로 시달림을 받았으나, 우호적인 마린디에서는 이슬람의 수로(水路) 안내인 이븐 마지드의 도움으로 인도양을 횡단하였다. 5월 22일 캘리컷에 도착, 70년에 걸친 인도항로 발견의 대사업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독점무역에 위협을 느낀 이슬람 상인들의 방해와, 무력(武力)에 대한 지방 영주(領主)들의 경계심 때문에 정식 통상교섭은 난항을 거듭, 3개월 만에 겨우 약간의 향료를 입수하였다. 10월 다시 인도양을 횡단하여 올 때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항해하나, 괴혈병(壞血病) ·열병 등으로 선원의 반 이상을 잃었다. 1499년 9월 가까스로 리스본에 귀환하여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귀족이 되어 연금(年金)을 받았다.신항로 개척과 유럽세계의 확대3.콜럼버스탐험가, 아메리카대륙의 발견자.(당시 에스퍄나의 관점에서)이탈리아명은 Cristoforo Colombo이며,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이다. 1477년에 리스본에 나타날 때까지의 행적은 명백하지 않지만 상당한 학식을 지녔으며, 일찍부터 항해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1479년 결혼하였는데, 그의 장인이 선장이었기 때문에 해도제작(海圖製作)에 종사하였다. 이 무렵에 그는 수학자 P.토스카넬리에게서 지도(地圖)를 구해 연구한 결과 서쪽으로 항해하여도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1484년 포르투갈왕 주앙 2세에게 대서양 항해탐험을 헌책(獻策)하였으나 희망봉 루트를 준비 중이던 왕이 허락하지 않자, 에스파냐로 갔다. 당시 에스파냐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구분되어 있어,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를 공동 통치하고 페르난도가 아라곤을 단독 통치하는 보잘것없자, 항해자들은 인디언을 학대 ·살육하고, 노예화하였다. 이 항해에서 에스파냐로 보낸 산물은 주로 노예였으며, 이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오자(1496) 문책당하였다. 제3회 항해(1498∼1500)에서는 트리니다드와 오리노코 하구(河口)를 발견하였으나, 히스파니올라에서 내부 반란으로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화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제4회 항해(1502∼1504)의 허가는 바스코 다 가마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때문인 것으로 보이나, 그 사정은 명백하지 않다. 이 항해에서 그는 온두라스와 파나마 지협(地峽)을 발견하고 가장 고생스러운 항해를 마치고 귀국하였다. 1504년에 이사벨이 죽은 뒤 그의 지위는 더욱 하락하였으며, 그의 직책의 세습까지도 인정되지 않았다.신항로 개척과 유럽세계의 확대4.마젤란포르투갈 태생의 에스파냐 항해가. 인류 최초의 지구일주항해의 지휘자남하를 계속하여 1520년 11월 28일 해협을 빠져나가 새로운 해면에 나갔다. 이것들을 '파타고니아(마젤란)해협','태평양'이라고 명명(命名)하였다. 이때에 침몰 ·도망한 함대는 각각 1척, 남은 것은 3척뿐이었다. 마젤란은 태평양을 작은 것으로 예상하고 서진(西進)하였으나, 결과는 3개월 이상이 걸리는 대항해였다. 불안에 떠는 선원들을 통솔하여 계속 서쪽으로 가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아무 섬도 접하지 못했으나, 1521년 3월 6일 괌섬에 도착하여 원주민과 교전하였다. 3월 16일 현 필리핀군도 레이테만(灣)의 즈르안섬에 도착하여 세비야에서 연행하여 온 수마트라인 노예의 통역으로 원주민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4월 세부섬의 왕 및 부하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에스파냐왕에게 충성할 것을 서약하게 하였으며, 27일에는 준비가 덜 된 채 막탄섬의 토벌을 시작하였다가 마젤란은 부하 12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가 죽은 지점이 몰루카제도의 경선(經線)을 넘었기 때문에 '세계일주'를 완수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휘자를 잃은 선단원(船團員)들은 인원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배 1척을 불태우고 나머지 2路)로 몰루카제도에 갈 계획하에 선박 5척과 승무원 270명으로 세비야를 출발하였다. 그는 행선지를 감춘 채 항해하여 12월 중순에 리우데자네이루에 닿고, 이듬해 1월 라플라타강에 도착하여 이것이 해협이 아니라 강인 것을 확인하였다.신항로 개척으로 인한 영향1.포르투갈의 동방경영 (동방항로) : 거점지배방식 ․ 단순교역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의 발견을 계기로 포르투갈은 적극적으로 식민지경영에 나섰다. 1.2차 대규모 항해를 통해 잘 무장된 포르투갈함대의 우세를 증명하였고, 이제 남은 문제는 향료무역에서 아랍이나 이슬람상인을 배제하면서 그 이윤을 독점할 영구적인 무역거점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을 수행한 것이 제2대 총독으로 임명된 알부케르케였다. 그는 페르시아만을 제압하는 동방물산의 집산지인 호르무즈를 점령한 뒤에 고아 ․ 말라카를 점령하였다. 중국상인의 서쪽 종점인 말라카를 차지한 포르투갈에게 이제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문화가 활짝 열린 셈이었다. 그 후 마카오에 무역거점을 설치하여 중국과 말라카 사이의 무역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향료제도로 알려진 몰루카제도와도 협약을 체결하였다. 포르투갈의 동방경영이 이렇게 짧은 시일에 이루어진 것은 우수한 군사력의 결과이지만, 이를 지휘한 알부케르케의 탁월한 솜씨도 중요하였다. 그는 무역을 위한 거점과 무역로를 지키기 위한 군사기지를 설치하는 데 그치고, 그 이상 영토를 요구하거나 점령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광대한 지역에서의 토착세력과 불필요한 마찰과 분쟁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오직 무역과 상업 및 이의 보호에만 전념하였던 것이다.2.에스파냐의 아메리카 경영 (서방항로) : 직접 식민지 경영체제아메리카에 있어 16세기초의 20년간이 직접적인 탐험가의 시대였다면, 다음 30년간 (1520~1550)은 에스파냐의 직업적인 정복자, 즉 콘퀴스타도르의 시대였다. 특히 에스파냐의 하급귀족출신인 코르테스와 역시 미천한 출신인 피사로는 극히 젉은 병력으로 아즈텍, 잉카의 토착문명을 완전히 파)이 규정되기는 하였으나, 이 제도는 원주민에 대한 착취의 원천이 되었다.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은 그들의 기질에 잘 맞는 목축업과 함께 목축에 부적당한 열대해안지대에서는 사탕과 담배를 재배하는 대농장을 경영하였다. 이러한 플랜테이션농업의 노동력은 포르투갈상인으로부터 구입한 아프리카 흑인노예가 이용되었다. 그러나 목축이나 사탕재배가 매우 유리한 사업이었음은 틀림없지만, 식민초기 금 ․ 은의 채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당시 은본위제인 유럽에 있어서 이것은 바로 현금을 캐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막대한 양의 귀금속이 아메리카로부터 에스파냐에 운반되어 왕실을 풍요롭게 만들었을 뿐아니라, 유럽경제에 큰 자극과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신항로 개척으로 인한 결과신항로개척의 결과 그림화3.신항로개척의 결과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식민지 건설과 무역 독점 경쟁이 시작 -포르투갈 : 브라질을 식민지, 아시아의 향료 무역 독점 -에스파냐 : 중부와 남부 아메리카에 식민지 건설, 아스테크 문명과 잉카 문명을 파괴함 (1)무역의 중심지가 지중해 - 대서양 (2)유럽과 다른 대륙 간의 경제, 문화 교류 확대 -아시아 - 유럽 : 향료, 차, 종이, 도자기, 비단, 면직물 등 -아메리카 - 유럽 : 금, 은, 담배, 옥수수, 감자, 토마토 등 -아프리카 - 아메리카 : 노예 등 -유럽 - 다른 대륙 : 크리스트 교, 무기, 공산품 등 (3)유럽인의 생활 변화 : 동양 산물인 차, 면직물, 향료 등이 대량 유입, 신대륙에서 담배,코코아, 감자 등을 수입 (4)가격 혁명 : 아메리카의 금/은 유입 1.화폐 가치 폭락과 물가 폭등 2.농노의 지대 수입에의존하던 지주에게 불리함 3.장원제 붕괴 촉진, 상인의 자본 축적에 유리 (5)상업 혁명:아시아, 아프리카로 시작 확대,유럽의 상공업 발전 1.길드 체제 붕괴 2.공장제 수공업 확립, 시민 계급(상공업자)의 성장 3.근대적 자본주의 발달 -새로 생긴 넓은 시장을 토대로 유럽의 상공업과 금융업이 급속히 발전) (6)지식 혁명:대륙 간 과학과 }
    인문/어학| 2009.11.01| 9페이지| 1,500원| 조회(610)
    미리보기
  • 현대윤리의 대표적사상가
    @키르케고르 [1813.5.5~1855.11.11]덴마크의 철학자. 그는 대중의 비자주성과 위선적 신앙을 엄하게 비판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단독자(單獨者)로서의 신(神)을 탐구하는 종교적 실존의 존재방식을 《죽음에 이르는 병》등의 저작을 통해 추구하였다.그의 활동은 활발하여 1843~1846년의 짧은 기간에 《이것이냐 저것이냐 Enten-Eller》(1843), 《반복 Gjentagelsen》(1843), 《공포와 전율 Frygt og Baeven》(1843), 《불안의 개념 Begrebet Angest》(1844),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 Stadier paa Livets vei》(1845) 등과 같은 이른바 미적 저작과 《철학적 단편 Philosophiske Smuler》(1844), 《철학적 단편을 위한 결말의 비학문적 후서(非學問的後書) Afsulttende uvidenskabelig Efterskrift til de Philosophiske Smuler》(1846) 등의 철학적 저작을 모두 익명으로 출판하였고, 이 밖에도 그리스도교에 관한 많은 교화적인 강화(講話)를 발표하였다.그 후 저술에 싫증이 난 그는 시골의 목사가 되어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이 때에 풍자신문 《코르사르》에 그의 작품과 인물에 대하여 오해에 찬 비평이 실려, 그것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논쟁하는 사이에, 또 다시 그리스도교도로서의 새로운 정신활동과 저술을 향한 의욕이 용솟음쳤다. 그는 신문의 무책임한 비평과 세간의 비웃음에도 굴복하지 않고, 한편에서는 대중의 비자주성과 위선적 신앙을 엄하게 비판하였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단독자(單獨者)로서의 신(神)을 탐구하는 종교적 실존의 존재방식을 《죽음에 이르는 병 Sygdommen ti1 Dø den》(1849), 《그리스도교의 수련 Indoevelse i Christendom》(1850) 가운데에서 추구하였다.그는 기성 그리스도교와 교회까지도 비판하였으며 《순간》 등의 팸플릿을 통한 사관(史觀)이라 할 수 있는 존재사관이 탄생한다.존재자를 인간의 객체로서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인간중심적인 '폐존(閉存:In-sistenz)'의 입장은 이 형이상학에, 즉 존재의 망각(忘却)에 유래한다. 현대에 필요한 한 가지 일은, 형이상학의 역사적 유래를 앎으로써 그것을 극복하고 역사를 지배하는 존재 그 자체에 청종(聽從)하면서 그것을 지키고 간직하는 일이다.하이데거의 이와 같은 존재의 사색이 《존재와 시간》의 목표였던 존재 그 자체의 해명과 연속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인간 본연의 자세에 대한 견해가 변화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며, 그런 의미에서는 후기(後期)의 하이데거를 이를테면 J.P.사르트르 등과 동렬의 실존주의자로 간주할 수는 없다.그 밖에 주요 저작으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1929),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1929), 《휴머니즘에 관하여 U ber die Humanismus》(1947), 《숲 속의 길 Holzwege》(1950), 《휠데를린의 시(詩)의 해명》(1950), 《니체》(1961) 등이 있다.인물탐구 출처: 지식백과사전@장 폴 샤르트르2차 대전의 비참함을 경험한 유럽 사람들에게 인간 존재에 대하여 새로운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세계의 어둠에 압도당하고 부단히 위협당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자문하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행동의 세계로 뛰어들었다기보다는 우선 행동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레지스탕스 운동에서 말로나 카뮈처럼 눈부신 역할을 하지 못한 대신, 만인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마련해 주고자 한 것이다.실존주의란 원래 철학적 용어로서 키에르케고르, 후설,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철학자들이 발전시켰고, 문학적으로는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특정한 문학적 주의라든가 철학적 사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태도를 나타낸다. 사르트르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나 천부의 인간성은 믿지 않는다. 진리나 인간성은 인간이 각자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정확하게 인식한다는 가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신의 정신 속에서의 인간의 개념은 기술자의 정신 속에서의 종이 자르는 칼의 개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개인은 신의 오성 속에 있는 그 어떤 개념을 구별하는 것이다. 18세기의 계몽철학자들이나 칸트 같은 사람들도 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실존을 앞선다는 생각이 부정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은 본성을 소유한다는 주장만을 되풀이 했다. 칸트에게 있어서도 사람은 인간성의 소유자이다. 이 사실은 사람마다 누구나 인간이란 보편개념의 특정한 표본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는 이러한 보편성을 통해서 원시인이나 미개인이나 부르조아나, 사람이면 모두 다 마찬가지로 같은 정의에 얽매여 있으며 동일한 기본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인간의 본질이 우리가 자연 속에서 만나는 역사적 실존에 앞선다.그러나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이러한 주장들을 모두 역전시키고 있다. 그에 의하면, '만일 신이 없다면, 본질보다도 앞서는 하나의 존재 또는 어떠한 개념으로도 정의되기 전에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가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 다면 인간본성에 대한 개념을 먼저 지니고 있는 존재도 없을 것이므로 인간본성에 대한 주어진 개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미리 정의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미리 완전하게 전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지 실존하고 그 후에야 그의 본질적 자아로 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이 먼저 세계 속에 나타나 존재하고 떠오르며, 그 다음에야 정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실존한 뒤에야 비로소 무엇이 되고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 될 것이다. 이처럼 인간본성이란 본래 없는 것이거나 그것을 착상해낼 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존재 이후에 스스로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의 제 1 원칙이다. 역사를 묘사함으로써 전달될 수밖에 없다. 즉 실존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 명제나 논리적 체계의 확립이 아니라 영혼 스스로의 결단이며 선택이다. 따라서 실존주의의 방법은 논증이나 증명이 아니라 영혼으로 하여금 본래의 자기를 깨닫게 하여 거기까지 비약케 하는 호소의 방법이다. 이를 통해 실존철학은 우리 앞에 논리와 객관성의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인간의 어두운 면을 가차 없이 폭로한다. 이 경향이 실존주의를 폭로주의로 오해하게 한 큰 원이이나, 이 폭로는 고향상실, 자기망각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에게 본래의 자기를 깨닫게 하는 수단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실존적 자유는 우리를 일부러 패리(悖理)와 역설과 부조리 앞으로 이끌어가고 거기서 좌절(挫折)을 통하여 실존적 진리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유도하는 것이다.-결론실존주의 철학은 실존주의자들만큼이나 그 이론이 다양하고, 실존주의 철학자들 역시 일관된 철학적 주장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존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다양한 실존철학의 이론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실존주의자들의 공통적인 명제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는 것이다. 사물과는 달리 인간 본성의 개념은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우선 실존하고 그리고 나서 자신의 본질을 선택한다. 인간은 존재 이후에 스스로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결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유인 것이다. 우리는 핑계도 없고 고독하다. 인간은 자유의 형에 처해지고 있다. 인간은 아무런 근거할 만한 것도 없고, 아무런 도움도 없이 시시각각으로 인간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 형벌에 처해지고 있다. 인간은 인간의 미래이다.에 대해서는 실존주의가 정의.배경.사상등을 소개한후 대표사상가가 했던 역할을 중심으로 고찰해보겠다< 실용주의 >미국의 실용주의는 현대세계의 여러 철학사상 가운데 하나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 동안 실존철학, 마르크시즘, 현상학, 분석철학 등이 근·현대철학을 주도하 제 1세대 실용주의자로서 로이스와 미이드, 루이스를 들 수 있다. 앤더슨(Anderson)에 따르면, 로이스(Joshiah Royce, 1855-1916)는 자신의 실용주의적 입장을 '절대적 실용주의(absolute pragmatism)'라고 언급하였다. 그가 말하는 '절대적 실용주의'란 경험의 전체적 맥락(whole context of experience)이라는 퍼어스의 말투(talk)에 상응하는 것이다.로이스는 퍼어스, 제임스와 더불어 신념의 이론적 근거와 실천적 윤리를 결합하는 시도를 하였다. 로이스는 그의 부모가 신앙했던 복음적 기독교를 거부하긴 했지만 결국에 가서는 종교적 문제들이 그의 철학을 형성하였다. 로이스에게는 종교적 탐구가 진리나 가치만큼이나 큰 관심거리였다. 그에 따르면, 종교철학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사실과 가치, 감정과 신념, 신앙과 공동체를 매개하는 방법으로서의 형이상학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로이스는 종교를 인간들이 실제로 실재(reality)의 총체(whole)를 이해하는 것으로 보았다. 로이스에 따르면, 종교란 항상 초인적 세계의 감각을 익히는 것에 관여한 것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인간과 초인을 확연히 구분하지 않았는데, 그러한 구분은 종교와 도덕성의 조화를 해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로이스에 의하면, 모든 종교는 신학을 갖지만 어떠한 신학도 무한한 진리에 대해서 절대적 계시를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로이스는 만약 실용주의 철학의 종교적 측면이 독단적, 변증적, 조직적 신학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실용주의적 신학을 요청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실용주의적 신학은 인간의 의식, 열망, 이상적 목적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용주의적 신학은 철저하게 인간주의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그들의 궁극적 충성을 지향해 가는 원인(cause)에 집중된다. 그런데 그 원인이란 모든 생명 그 자체의 연합(union)인 것이다.미이드(George Herbert Mead, 1863-1931)는 전통된다.
    인문/어학| 2009.11.02| 25페이지| 1,000원| 조회(218)
    미리보기
  • 공자 맹자 순자의 유교에 대한 영향
    주 제: 공자.맹자.순자의 유교사상과한국유교에 미치는영향-공 자 춘추시대(B.C 722~481)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유교의 창시자이다. 노(魯)나라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빈곤 속에서 학문에 정진, 노나라에 주공(周公)의 이상적 정치를 실현하고자 대신(大臣)이 되었으나 반대파로 인하여 망명, 각국을 돌아다녔다. 18년 만에 노나라에 돌아와 주공의 이상을 전하는 《서경(書經)》 《시경(詩經)》을 편집하였다. 그는 ‘인(仁)’을 중심으로 인륜(人倫)을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장례(葬禮)· 효(孝) 등의 실행을 커다란 덕목으로 삼았으며, 인간사회에서 가족생활의 윤리가 국가· 천하를 평정하는 원리임을 역설하였다. 유교는 한대(漢代)에 국교가 된 이래 역대 왕조의 지배원리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일본 등의 정치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후에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論語)7권이 있다.< 논 어 >:유교(儒敎)의 경전(經典)으로 《사서(四書)》의 하나. 공자(孔子)의 언행(言行)과 공자를 중심으로 제자나 제후(諸侯) 사이에 있었던 문답을, 그의 사후 제자들이 논선(論選)하여 취합한 것으로 1190년에 중국 성리학자 주희(朱熹)가 집대성하였다. 500장(章)의 짧은 문장이 학이편(學而篇)에서 요왈편(堯日篇)까지 모두 20편으로 수록되어 있다. 귀족정치가 타락하고 패도(覇道) 정치가 성행하는 상황에서 인정(仁政)을 담론(談論)하고 제자를 인인(仁人)으로 육성하려 하였던 공자의 노력이 여실히 나타나는 책이다.♧.공자의 철학사상공자 철학에서 충서는 인을 실천하는 방향이다. 공자는 인을 두 방면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 문에 나갈 때는 귀중한 손님을 영접하듯이 한다와 백성을 부릴 때는 제사를 모시는 것 같이 한다에서 자신의 도덕 인격 수양에 관한 행동 강령이다. 이는 모든 일에 신중하고 공경한 태도를 지녀야 함을 표시한 충이다.둘째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이것은 자신과 타인에 관한 행동 치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공자의 생각은 후세 유학자들의 정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그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 놓인 것이 인(仁)이다. 인(仁)에 대한 공자의 정의는 에서만 해도 사람다움(人),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정의는 ‘극기복례(克己復禮)’ 곧,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곧 인(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를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보는 이유는 공자가 '인(仁)'을 단지 도덕적 규범으로서가 아닌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정치사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공자 사상의 인(仁)은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나 불교의 자비와는 다른, 부모형제에 대한 골육의 애정 곧 효제(孝悌)를 중심으로 하여 타인에게도 미친다는 사상이다. 모든 사람이 인덕(仁德)을 지향하고, 인덕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아 인애(仁愛)의 정치를 한다면, 세계의 질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수양을 위해 부모와 연장자를 공손하게 모시는 효제의 실천을 가르치고, 이를 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또 충(忠), 즉 성심을 중히 여겨 그 옳고 곧은 발로인 신(信)과 서(恕)의 덕을 존중했는데, 이러한 내면성(內面性)을 중시하고 전승(傳承)한 것이 증자(曾子) 일파의 문인이다.그러나 공자는 또한 인의 실천을 위해서는 예(禮)라는 형식을 밟을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예란 전통적 ·관습적 형식이며, 사회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유교에서 전통주의를 존중하고 형식을 존중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 입각한 것이며, 예라는 형식에 따름으로써 인의 사회성과 객관성이 확실해진 것이다.이처럼 공자의 사상은 사회적 ·정치적 인간을 위한 도덕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보편성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하늘의 존재도 생각하고 있었다. 공자로서는 하늘이 뜨거운 종교적 심정으로 받들어지는 불가지(不可知)의 존재였지만, 이는 인간적인 요함은 인정하지만, 갯버들 자체에 나무 바리로 될 수 있는 성질이 있음을 강조한다. 갯버들이 나무 바리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어떻게 가공하여도 갯버들은 갯버들이고 나무 바리는 역시 나무 바리일 것이다. 인성과 인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본성 자체에 인의의 도덕 가치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단수의 비유이다. 고자가 말하기를 ’인성은 빙빙 도는 물과 같다. 동쪽을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른다. 인성이 선천적으로 선악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은 물의 흐름이 선천적으로 동서로 나누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라고 하면서 인성의 무방향성을 설명하고 있다. 고자의 비유에 의하면 인성은 재료로서 그 자체에는 본래 선악의 분별이 없고, 자신의 방향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가 없다. 그 방향은 완전히 외적인 조건에 의하여 결정된다. 인간 행위의 선악도 이와 마찬가지로 외적이고 후천적인 조건에 의하여 결정되고 인성 역이 자신의 활동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가 없다. 이에 반하여 맹자가 말하기를 ” 물의 흐름이 동서로 나누어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설마 물 흐름에 상하의 분별이 없겠는가? 인성의 선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을 손으로 쳐서 뛰어오르게 하면 사람의 이마를 넘어가게 할 수 있고, 물결을 막아서 부딪쳐 흘러가게 하면 산에 닿게 할 수 있지만, 외력의 세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사람도 선하지 못한바를 할 수가 있는데 이는 본성의 오력을 가하여 그렇게 한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하면서 인성이 반드시 선으로 향하는 것을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이 필연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물이 가끔 위로 흐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외적인 영향에 의하여 된 것으로 본다. 맹자와 고자 두 사람은 똑같이 단수를 예로 들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였지만, 서로 다른 관찰 방향으로 수립한 이론 체계이다. 고자는 편명적인 측면에서 물의 흐름을 관찰한 것이고, 맹자는 상하, 좌우- 입체적으로 보람들 모두는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이 고통 당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으로 정사를 행하였다. 차마 해치지 못하는 것이 인심이며, 측은해 하는 마음이다. 맹자는 국가가 백성을 전반적으로 부유하게 만들고 복지를 증진시키고, 백성에게 의례와 사회 질서, 국가에 대한 충성의 중요성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했다. 맹자의 정치사상은 백성을 중심으로 한다. 그래서 군주는 덕을 귀하게 여기고 백성을 사랑해야 하는데 이것이 군주의 도리이다. 군주는 힘이 아니라 덕으로 인을 행해야 한다. 백성들에게 은해를 베풀면 백성들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복종하게 된다. 그리고 덕을 숭상하고 선비를 존경해야 한다. 세상을 돕고 백성을 양육하는데는 덕 만한 것이 없고, 인자,현자를 존경해야 나라를 이끌어 갈수 있다고 하였다. 복지면에서는 백성과 더불어 좋아하고 싫어해야 한다. 백성이 주체가 되고, 민의를 따라야지, 군주가 주체가 되어 군주의 뜻으로 전횡되어서는 안된다. 군주와 의무관계가 성립하는 신하에게도 신하의 도리가 있었는데, 신하는 군주의 애민정책을 보좌해야한다. 군주가 인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군주의 나쁜 마음을 바로 잡아야 하고 군주를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신하는 군주를 시해할 수 없으며 군주의 자리를 바꿀 수 없다. 만약 군주가 군주의 도를 다하지 못하고 폭정을 일삼아 국가가 위태로우면 이는 더 이상 군주가 아니라고 했다. 정권을 이양해야 하는데, 선양이 최고이고 그다음이 세습, 다음이 혁명, 다음이 찬탈이다. 앞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고, 군주는 가벼운 것이라고 했다. 유가정치사상에서 백성은 정치의 중심이며, 군주와 사직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 정치를 하는 방법은 백성을 사랑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정치의 핵심은 민생에 있다.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에는 생업을 설정해주고,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며, 부역을 가볍게 한다. 이렇게 적 합리론(合理論)이 형성된다. 전통적인 종교 관념 '하늘[天]'에 대하여서도 비판적이고 현실적이며, 유명론적(唯名論的)인 명가사상(名家思想)에 대하여서 역시 비판적이다. 그리하여 실념론적(實念論的) 입장에서 개념 종속관계와 범주론(範疇論)을 거론하는 진보된 논리적 사고를 나타내며, 오직 명사(名辭)의 타당성은 합목적 사회관습(合目的社會慣習) '왕제(王制)'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 특징적이다.노장(老莊)의 변증적(辨證的) 사변(思辨)의 영향을 받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사상과는 가장 대조적이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욕(欲)과 지(知)가 있는 자주적 목적체(自主的目的體)로 보는 유가(儒家) 부동(不動)의 바탕에 선다. 동시에 원존재(原存在)와 의의활동(意義活動)을 구별하고, 특히 후자의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합리적 인위(人爲)인 '위(僞)' 주의를 주장하였다. 종래 한동안 순자는 '성(性)은 악(惡)이고, 선(善)한 것은 위(僞)'라는 성악론자(性惡論者)로 이해되어 왔다.그러나 이것은 맹자처럼 인간성의 직접 확충(擴充)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생득적(生得的)인 의욕을 악한 것이라 부정함으로써 선한 의의활동이 있다(이 점은 제나라의 유심론적 영향이라 하겠다)는, 즉 인간의 정신은 주관적으로는 다면(多面)으로 작용하나 그것을 부정하여 객관적 규범에 귀일(歸一)함으로써 후자의 목적으로 전환하고, 더구나 자주적인 자율과 타율, 개인과 공동체와의 일치된 합리적 실천이 완수된다고 하는 주장이다.그리하여 예의의 '학(學)'적 수련과 정신의 심화(深化)에 의하여 규범목적의 터득과 인륜의의(人倫意義)의 충족 정도에 따라 사(士)와 군자(君子)의 인격의 진보가 있고, 실천 목적과 질서 이념의 완전 일치는 마침내 성인(聖人), 왕자로서 인륜의 완전체(完全體)를 영위한다고 한다.그의 정치사상은 강력한 예치주의(禮治主義)를 취한다. 순자의 사상은 하나의 유가사상(儒家思想)의 완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후대에 끼친 영향이 크다. 송대(宋代) 학자들의 비난은 순자의 맹자상이다.
    인문/어학| 2009.11.02| 14페이지| 1,000원| 조회(342)
    미리보기
  • 전기전자공학생의 실험설계과목 NXT
    1. 서 론 생활 수준의 질적향상을 추구하게 됨에 따라 웰빙, 친환경적인 요소를 부가시키고 있는 요즘, 완공된 아파트의 경우는 집과 생활쓰레기 수거장을 연결시켜 생활쓰레기 및 음식물쓰레기를 보다 편리하게 처리하고 있다. 또한 아파트, 주택등 주거지 안에서의 환경뿐만 아니라 생활쓰레기및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편리하고 깔끔하게 하는 등, 외관의 조경에 있어서도 각별한 관리를 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편리함의 추구는 결국 로봇산업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산업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로봇의 필요성이 점차 대두되고 실제로도 쓰레기 처리등 민간 업무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이에 NXT 로봇(마인드스톰)을 조립, 조립된 수거차량이 주거지역의 쓰레기를 자동감지,운반하여 매립지에 투하하는 시스템의 시뮬레이션을 구현해보자 한다. 2. NXT의 장점 단순 컴퓨터만을 활용하여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이 아닌 조립 로봇을 가지고 제어를 하기 때문에 가상으로 성공, 실패의 확인을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하다. 또한 차량, 동물, 기계머신등 한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의 로봇을 조립, 분해할 수 있다. 3. NXT의 원리(서보모터)서보모터는 큰 가속도에 의해서 기동하거나 정지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터가 큰 가속도를 얻으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회전력(Torque, 토크)이 클 것. 둘째, 회전자(Rotor)의 관성모멘트가 작을 것. 위의 2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것이 DC모터이다. 이 때문에 DC모터가 많이 사용되어 왔으나, 많은 보수와 유지가 필요하기 때문에(브러시와 정류자) AC모터의 구조를 이용해서 DC모터의 성질을 실현 시키는 것이 최근의 동향이다.
    자연과학| 2009.11.02| 21페이지| 2,500원| 조회(1,017)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5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05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