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수님께서 10권의 책을 정해주셨을 때부터 이 “대지” 라는 책의 제목에만 관심이 갔다. 다른 책들은 왠지 좀 어려워 보이고, 소설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예전부터 이 “대지”라는 책의 제목을 들어왔기 때문인 것도 같다. 사실 우리집에 "The good earth"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제목에서 보다시피 영문판이라서, 나의 부족한 영어실력으로는 도저히 손 댈 수 없는 책이었다. 그래서 “ 나중에 하나 사서 읽자 ” 라고 결심해 온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번에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겼고, 나는 과제를 받은 그날로 동네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빌렸다. 내가 읽기도 전에 너덜너덜 해진 책표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왔는지 확 느껴졌다. 더 주저할 수 없었고 나는 이 책을 얼른 읽기 시작했다.이 책의 주인공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산 왕 룽 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평범한 여자와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고 평범하게 잘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심한 가뭄을 피해 남쪽지방을 다녀온 후로는 왕 룽의 삶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평생 평범한 농부로 살아갈 것 같았던 그는 돈을 버는대로 땅을 사들였고, 어느샌가 많은 돈과 큰 집을 가진 지주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커버린 아들들과 아들들의 며느리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기 일쑤였고, 숙부의 가족들은 화적떼와 군인의 신분을 내세워 끊임없이 왕 룽을 괴롭혔다. 그는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가 일구고 가꾼 땅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가 죽을 때가 되었을 때 그의 아들들은 그 땅을 팔 계획을 세우며 미소를 짓는다.이 짧지만은 않은 내용을 보며, 그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보며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또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인상깊었던 인물들을 돌아보며 해보도록 하겠다.먼저 이 책의 주춧돌인 왕 룽 그리고 그의 부인 오란.그는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정말 평범하기 그지 아이를 낳고 뒷수습도 하고, 다시 밭일을 나간다는게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더욱더 이해가지 않았던 것은 그런 것을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왕 룽의 태도였다. 오히려 그녀가 애를 베어서 일을 하지 못하면 짜증이나 내는 사람이었다. 물론 밭을 좀더 일구어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왕 룽의 심정도 이해하지만, 그런 태도는 그때까지 왕 룽의 곁에서 묵묵히 집안일과 밭일을 해 온 아내에게 할 짓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그는 좀 더 큰집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에는 첩까지 사서 오란을 버리고 살았다. 하지만 오란은 그 어떤 반발도 하지 않고 또 다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갔다. 아 ! 너무나 답답했다. 내가 그동안 당신을 위해서 일한건 뭐냐고, 이렇게 해도 되냐고 따졌어도 될 만큼 그녀의 공은 컸는데, 저렇게 아무말 없이 시아버지를 돌보고, 자식들을 돌보는 부인의 모습에서 나는 너무나 답답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돈 만 있다면 첩을 얼마든지 둘 수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자랑이 되는 시대였나 보다. 남성우월주의가 낳은 제일 나쁜 문화가 바로 이 첩 문화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소설 중간 중간 등장하는 계집종이나 첩들의 얘기는 화를 불러 일으키는 문화로써만 다가왔다.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났던 장면은 왕 룽이 자신의 첩 렌화를 주기위해 아내 오란에게서 진주 두개를 뺏는 장면이었다. 화도 났지만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웠던 장면. 그 진주 두 개도 사실, 다 내놓으라던 남편에게서 겨우 건져내어, 언젠간 자신을 위해 쓸 것 이라고 품속에 계속 품고 다니던 것인데, 딴 여자에게 정신 팔린 남편이 호통을 치며 내놓으라니……. 얼마나 오란의 마음이 아팠을까. 하지만 오란은 나 중에 눈물을 흘릴 지언정, 결국 그 진주 두개를 꺼내놓았다. 세상에 이렇게 바보같고, 미련한 여자가 또 있을까. 나도 같이 눈물을 글썽할 정도로 안타깝고 슬픈 장면이었다. 나중에 왕 룽은 자신이 한때 여자에 미쳐, 오란의 진주까지 빼앗았던 이 장면을 후회하지만 그때는 이미 오란이 죽을 날고, 정작 자신의 정부인은 멀리 하던 역사가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중국도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할머니세대들에선 흔히 일어났던 일인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남편과, 온갖 희생은 도맡아 하는 아내. 그들이 뒤에서 충분한 뒷받침을 해주었기에 집안이 점점 잘 돌아가고 재산도 불어 날 수 있었던 것인데, 남편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공으로 돌렸다. 요즘은 양성평등, 양성평등을 주장하여 이런 일들이 거의 드물다고 하지만, 아직도 TV를 돌리다 보면 공연히 이런 사연이 방송되어 화가 나기도 한다. 지금이 왕 룽이 살던 시대와는 모든게 많이 다르지만, 다시금 아내의 의미가 재정의 되어 가정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라는 것을 현대 남편들이 잘 알았으면 좋겠다. 왕 룽처럼 후회하는 일은 없게 말이다.아무튼 왕룽은 비록 자신의 부인에게 매우 좋은 남편만은 아니었지만 그의“농부”로서의 자질은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남쪽에서 논일이 아니 다른 일도 해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혁명” 이란 말을 권유받기도 하고, 그가 땅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할 때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한결 같았고, 결국에는 다시 자신의 땅으로 돌아왔다. 나는 남쪽에서 서서히 자리잡아가는 왕 룽과 그의 가족들 부분을 읽으면서, ‘ 아, 아무래도 왕 룽은 여기서 자리를 잡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상인정도가 되어 살아가겠구나 ! ’했었는데, 왕 룽이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땅을 찾아 돌아가는 장면은 정말 의외였다. 솔직히 내가 왕 룽이였다면 남쪽에서 보는 수 많은 서구문화와 풍부한 양식을 보고 혁명이라는 말까지 들었다면 지긋지긋한 논생활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을 것 같다. 이미 고향의 땅에서 가뭄이라는 끔찍한 천재지변도 겪고 가족들로 그로 인해 모두 지쳐있다는 것을 아는 데 굳이 다시 돌아갈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다. 더구나 남쪽지방의 마지막 부분에선 부잣집에서 빼앗은 은전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남쪽에서 새로이 자리를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왕 룽이 죽을 때 까지도 여느 다른 부잣집처럼 약탈당하지 않고 잘 살아온게 아닐까 싶다. 아들들은 이런 왕 룽의 생각을 비난하고 결국 마지막엔 팔 계획까지 세우지만, 아직 아들들은 자신들을 키워 낸것이 돈이 아니라 땅이라는 것을 깨 닫지 못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왕 룽은 이 시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참농부 이자 신지주 였다. 이 책의 제목인 “대지(The good earth)” 도 이런 왕룽의 고집스러운 생각과, 의지를 잘 나타낸 제목인 것이다.다음은 아들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다.오란과 왕 룽이 아이를 너무 정신 없이 낳아서 대체 아들이 몇 명이고 딸이 몇 명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왕 룽의 노년기에 가서는 그들의 수와 특징이 아주 명확해졌다. 학자가 된 첫째아들, 상인이 된 둘째아들, 그리고 마지막에 군인의 길로 떠나는 셋째아들. (딸은 백치가 되버린 첫째 딸과 시집을 가버려서 더 이상 책에 등장하지 않는 딸이 한명 더 있었다.)첫째아들과 둘째 아들은 가뭄을 피해 남쪽으로 갔을 때 엄마와 함께 동냥을 하던 아이들 같았는데, 어느새 학자가 되고 상인이 되어 있었다. 특히 첫째아들은 동냥조차 제대로 못하던 소극적인 아이였는데, 어느새 부인도 얻고 아버지 왕 룽에게 이것 저것 자신의 의견을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런 데에는 그가 너무나 질풍노도한 사춘기를 겪었기 때문 일수도 있다. 그는 10대 후반쯤 열심히 다니던 서당도 가지 않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숙부의 아들과 함께 술집을 드나들었다. 여자에 눈을 뜬 것이다. 결국 왕 룽은 그를 가둬둘 수 밖에 없었고,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첫째아들은 학자가 되기 위해 남쪽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아들들이 자신을 따라서 농부가 되고 지주가 되길 바랬던 왕 룽에게는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은 첫째아들은 아버지의 첩인 렌화를 찾아가기에 이른다. 왕 룽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고, 아들의 생각대로 학자의 길로 떠나보내며,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컸길래, 저 첫째아들과 그 아내가 저토록 체면을 지키고 싶어했던 것일까. 사실 따져보면 첫째아들 역시도 성 밖 사람이었고,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를 그렇게 키워낸 것은 땅이였고, 성 밖의 공간이었는데,‘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왕 룽은 그런줄을 알면서도 이미 늙고 지쳐버린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돈을 달라면 주고, 이렇게 해달라는 것은 이렇게 해주었다. 왠만한 집안 일은 이제 어릴 적엔 그렇게 소심하던 그 첫째아들과 영악한 첫째 며느리의 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둘째아들은 어릴적엔 남쪽지방에서 적응을 잘 해나갔던 대목을 빼고는 그렇게 눈에 띄는 스타일이 아니였다. 형과 함께 서당을 다니면서 평범하게 크고, 아버지의 뜻대도 상인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도 결혼을 하고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가 커지자, 아버지에게 이것 저것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는 형이 돈을 많이 쓰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결국 아버지는 그에게 집안 재정관리를 모두 맡기기에 이른다. 자꾸 돈, 돈 하는 둘째아들이 짜증스럽기도 했겠지만, 그는 이제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한 노후를 지내길 바랬으니깐 말이다.이렇듯 이 두 아들들은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야 서로 많이 싸웠다. 그리고 그 아들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부인들까지도 지나 갈 때마다 서로를 욕하고 헐 뜯었으며 그들의 자식들끼리도 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처음으로 의견을 일치시킨 일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장면. 왕 룽이 평생의 힘을 쏟은 그 땅을 팔고 나누는 일 말이다. 자신들의 아버지는 땅 만은 안된다며 울부짓는 뒤에서 둘이 웃음을 짓는 모습이란, 정말 이 책의 그 어떤 장면보다도 화가 났다. 그들을 그만큼 성장하게 만들 수 있던 것은 다 그 땅에서 나온 것인데, 땅을 팔지 않고 계속 지주로서 농사를 지어낸다면 얼마든지 돈은 벌 수 있는데 말이다. 자꾸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 챙기려는 그들에게 너무 화가 났다. 이 책에선 그 웃는 장면에서 끝다.
처음에 교수님께서 세 가지 책을 정해주셨을 때, 난 이 책의 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바로 전날 지하철에서 어떤 여자가 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제목도 왠지 낯익으면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라……. 무엇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는 것일까, 존재가 참을 수 없다는 것일까, 아님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일까. 내 나름대로 지하철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중간고사가 끝나면 이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고 결심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교수님께서 이 책을 정해주신 것이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지하철에서 그 여자가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은 표지의 책 이였다.집에 돌아와서 우선 이 책의 표지부터 살펴 보았다. 요즘 시중에 나온 책들에 비하면 디자인은 촌스러웠다. 그런데 내 눈을 멈추게 한 것은 책 표지에 있는 조금은 괴상한 아크릴화 였다. 여자로 보이는 한 사람과 남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껴안고 있는데, 눈이 여러개이거나 입이 여러개인 모습을 하고 있어 무서웠다. 대체 이 그림은 왜 이 책의 표지에 있는걸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나의 궁금증은 더해져 갔고, 나는 바로 책을 펴들었다.이 책은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는 ‘나’ 라는 인물을 통해 네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물론 예상했듯이, 시점은 뒤죽 박죽이여서, 연관성을 찾을려면 앞으로 돌아가서 읽고는 해야했고,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상당부분 있었다.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조금은 진부해보이는 이 이름들이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4명의 주인공이다. 토마스는 실력있는 의사이며 이미 한번의 이혼을 경험한 남자이다. 그는 여자친구가 많았고, 한 사람에게서 머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테레사’라는 여자가 나타났고, 이 여자가 나타남으로써 그의 삶은 완전히 변한다. 테레사는 그런 그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까지 질투하는 여자이다.그에 반해 사비나는 어떤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화가이며, 실은 토마스의 정부이다. 나중에 가서는 프란츠라는 남자친구를 만들게 되지만 결국 그에 곁도 떠나버린다. 프란츠는 교수이며 부인과 딸을 두고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며, 사비나의 남자친구이다. 그는 사비나를 신, 그 이상으로 숭배하며 맹목적이고 깨끗한 사랑을 전한다. 하지만 자유로운 사비나에겐 그런 그가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그가 부인을 버리고 사비나에게 갔을때 사비나는 떠나고 이미 없다.이런 네 인물의 사연을 다 읽는 것 까지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까지 배운 성과 문학 수업을 토대로 내 나름대로의 정리를 해보니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나왔다. 우선 이 네 인물들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겠다.이 책에선 토마스를 통해서 수많은 여자가 나오지만, 실질적 주인공은 사비나와 테레사 둘뿐이다. 이 둘은 한 남자를 두고 양쪽에 있는 사이지만, 책에선 이 둘이 서로 싸우거나 질투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테레사는 토마스가 각별한 사이인 사비나를 끊임 없이 질투하고, 그런 그녀를 잘 알기 위해 일부러 접근을 하지고 하지만. 그들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이 둘의 사랑방식이 그야말로 천지차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사비나는 토마스와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지만 그와 결혼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림을 그리고 팔며, 가끔 찾아오는 토마스를 맞아주며 그저 그녀의 삶의 아주 사소한 부분인 듯이 묘사된다. 그리고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토마스가 테레사와 결혼을 한 이후에도 찾아오는 그를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로 토마스는 그녀의 삶의 아주 사소한 부분일 뿐이었던 것일까. 이런 그녀의 사랑의 방식은 나중에 프란츠를 만날때에도 보여진다. 프란츠 역시도 가정이 있는 남자였지만, 그녀는 그를 막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프란츠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에게 오자절대 어느 한 남자에게 ‘아내’ 라는 호칭으로 얽매이지는 않는다.방랑시인 같은 이미지 랄까.이에 반해 테레사는 토마스라는 한 남자에게 평생을 바친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나체로 거실을 거닐때 자신이 부끄러워 하며 문을 재빨리 닫아 버렸듯이, 그녀는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만난 한 남자, 토마스에게 ‘6’ 이라는 숫자로 자신들이 인연임을 조금은 억지 논리로 확인 시키고, 그때부터 그녀는 토마스만을 바라본다. 토마스가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혼자 속앓이를 할뿐 직접적으로 토마스에게 쏘아대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의 불안함이 담긴 꿈을 꾸면서 토마스를 더 고통스럽게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그녀의 맹목적인 사랑은 나중에 토마스가 구해온 강아지 ‘카레닌’ 에게도 간절히 전해진다. 그녀는 끊임 없이 밖을 나도는 토마스 대신 카레닌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토마스에게 쏟을 수 있었던 애정을 카레닌에게 쏟는다. 토마스도 자신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끝까지 고통스러워 했던 것은 맞지만, 난 테레사가 그녀가 쏟은 애정만큼은 다 돌려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테레사에게 있어서 토마스의 투영체였던 카레닌이 죽음을 맞이했을때는 내가 더 불안할 정도였다.테레사는 이 책에서 가장 진부하지만, 슬픈, 그렇지만 가장 긴 사랑을 했던 사람이라고 볼수 있다.사비나의 사랑은 가볍지만, 테레사의 사랑은 무겁다.나는 이 둘의 사랑방식 중 어떤 것이 옳다고 결론을 내릴 순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모두 제각기 자신들의 사랑방식이 있는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라는 상은 테레사의 사랑일 것이다. 게속적으로 자기만 봐주고, 자신을 위해서만 정조를 바치는 그런 사랑. 요즘 세대의 한쪽에선 이런 사랑방식이 너무 구식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정도로 여자들의 생각도 변화하고 있다. 좋은것만은 아니다. 여자가 정조를 지키는 것은 구식적이라 할지라도 꼭 지켜야 할 법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런 나의 생각도 정리해 보겠다.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나에게 토마스의 이미지는 쭉 ‘나쁜남자’였다. 나는 드라마에도 바람피는 남자가 나오면 정말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는데, 여기 나오는 토마스는 그것이 자신의 고칠 수 없는 버릇이라고 단정까지 짓고 있다. 그는 사비나를 정부로 두면서 테레사를 사랑했고, 테레사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나중에 취리히 가서도 테레사 몰래 사비나를 만났다. 프라하로 돌아와서 그가 마지막 택한 직업, 유리창 청소부가 되어서도 자신에게 접대하는 부인들을 거부하지 않으며 사랑을 나눈다. 나는 그의 행동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자신의 바람기를 고치지 못할거면서 왜 테레사를 아내로 맞았냐는 것이다. 테레사를 끊임 없이 우울하게 하고, 질투하게 만들면서 까지 곁에 두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강물에 떠내려 온 아기를 테레사에 비교하며 그녀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며 메타포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말로 테레사를 사랑했다면 결혼 전 자신의 수많은 여자들을 확실히 정리하고 테레사를 맞아들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그렇게 버릇을 고치지도 못하면서 테레사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내가 토마스 였다면 매번 고통스러워 하는 대신 자신의 버릇을 고쳤을텐데……. 과연 그가 테레사를 사랑했다는 것이 정말일까.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토마스도 테레사를 사랑했다고, ‘그래야만 한다’는 말을 내세워 테레사를 사랑하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토마스의 사랑방식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이런 방식의 사랑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보기론, 요즘 남편들이 애인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변했다지만, 이런 현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꼬집고 싶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결혼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게 말이 되는가. 나는 토마스를 보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수많은 . 여자들에겐 테레사와 같은 정조를 요구하면서 바람을 피는 남자들.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 프란츠.내가 느끼기엔 프란츠는 토마스와 테레사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한다.프란츠 역시도 딸 까지 있는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 였다. 하지만 그는 사비나를 사랑했다. 물론 이 역시도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토마스처럼 수많은 여자들이 아닌, 사비나 하나만을 사랑했다. 그의 사랑은 테레사의 맹목적인 사랑을 넘어선 종교적인 사랑이었다. 사비나는 사랑했다는 표현 보다 숭배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부인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집까지 나와버린다. 그리곤 사비나에게 함께 살자는 제안을 하려하지만 사비나는 어떤한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는 결국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혼자 살게 된다. 이때 그는 그를 사랑해주는 안경잡이 학생을 만나게 되는데, 그 학생을 만나면서도 사비나의 잔상을 지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비록 바람을 피웠지만 지독히도 맹목적인 사랑을 한 것이다.그의 사랑은 토마스와 비교되게 맹목적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테레사와 토마스의 중간. 그 모습이 바로 프란츠였다. 어쪄면 이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테레사가 아니라 프란츠 일지도 모른다.이 책 겉표지 뒤편에는 한 문학 평론가의 짧은 평이 써있다. 다른 것보다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니체’ 라는 인물에 대한 언급이었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그 어느 쪽이 옳은가.니체의 영원한 재귀는 무거움 이지만 실제요, 진실이다.반면 우리의 삶은 단 한 번이기에 비교도 반복도 되지 않아 깃털처럼 가볍다 (중략)‘네 남녀의 사랑을 다룬 이 이야기가 도대체 생철학의 대표 인물 ‘니체’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분명 이 책의 제목과도 관련이 있을텐데…….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니체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니체에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