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Ⅰ. 서론Ⅱ. 본론⑴ 실크로드의 개념⑵ 실크로드의 개척자 한무제, 장건, 반초1) 한무제2) 장건3) 반초⑶ 실크로드1) 초원길2) 오아시스로3) 해로⑷ 실크로드로의 동서 문화 교류1) 한·당 시대의 동서 문화 교류2) 송·원 시대의 동서 문화 교류3) 명 시대 이후의 동서 문화 교류⑸ 실크로드의 개통과 발전, 쇠퇴⑹ 실크로드의 의의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중국의 방대한 역사를 다 알려고 한다면 아마 끝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전반적인 중국의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실크로드일 것이다.실크로드(비단길)는 크게 육로와 해로로 나눌 수 있다. 육로는 초원로와 오아시스로, 그리고 대륙을 남북으로 가른 5대 지선을 망라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실크로드’를 좁은 의미의‘오아시스로’로 떠올리게 된다. 이는 상고에‘초원로’를 주로 이용하다가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중세에 이르러서야‘오아시스로’에 의한 동서교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대 이전까지 동? 서양간의 교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것은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동양과 서양을 연결할 수 있는 경로가 거의 존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초원로가 존재하긴 하였으나 고비사막이라는 큰 장애물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대 한 무제 때 이루어진 장건의 서역로 개척 이후로 두 문명은 서로 본격적으로 교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 다른 문명교류의 동맥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실크로드이다.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교류는 점차 활발해져 갔으며 그 절정을 이룬 것이 바로 당대이다.그러므로 지금부터 실크로드의 3대 지선인 초원로, 오아시스로, 해로를 중심으로 실크로드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다만 실크로드 내용의 전체를 담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론⑴ 실크로드의 개념실크로드는 고대에 비단무역을 계기로 하여 중국과 서역 각국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준 육해 교통로의 총칭으로서, 실크로드 혹은 헤르만(Albert Hermann)은 1910년에 이 길을 중국으로부터 시리아까지 연장하였다. 보통 실크로드라 하면, 이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를 경유하는 길(소위 오아시스로)을 가리킨다. 총길이 6,400㎞에 달하는 실크로드는 중국 중원 지방에서 시작하여 허시후이랑을 가로질러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 북변을 따라 파미르 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지나 지중해 동안과 북안에 이른다.이것을 지형적 특성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그중 동쪽 부분은 중원에서 둔황까지 이르는 구간으로, 역대에 장안(長安 : 지금의 시안 또는 뤄양)을 기점으로 했고, 허시후이랑이 중요한 길목이었다. 중앙 부분은 둔황 서쪽에서 파미르 고원 동쪽까지이며, 이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에 가로막혀 사막 남쪽(쿤룬 산맥 북쪽)과 사막 북쪽(톈산 산맥 남쪽)으로 가는 두 길로 나뉜다. 서쪽 부분도 중앙 부분과 마찬가지로 남· 북의 두 갈래가 있어서 남로는 파미르 고원의 쿠시쿠르간에서 서쪽으로 쿠샨 왕국에 이르고, 여기서부터는 뱃길로 천축)에 들어갈 수 있다. 인더스 강을 따라 내려가 아라비아 해와 홍해로 들어가서 지중해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 이른다. 북로는 강거)에서 서쪽으로 이란을 지나 곧장 지중해와 로마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길은 거의 수 천리로 이어져 지금의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 10여 개 국가를 거쳐 간다.⑵ 실크로드의 개척자 한무제, 장건, 반초1) 한무제기원전 156~기원전 87년. 한나라의 7대 황제로서 성은 유이고 이름은 철이다.부친인 경제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유교를 국교로 정하고 흉노를 정벌하였다. 또한 중국 대륙의 남쪽 지역을 정복하고 조선을 침공했으며 전한 시대의 전성기를 이뤘다. 무제는 황제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대규모 건축사업을 벌였으며 서쪽지역의 대월지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장건을 파견했다.당초 의도했던 대월지국과의 동맹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장건의 파견을 통해 서쪽 지역 국가들과의 통행이 원활해졌다. 이 서쪽 지역 국가들과서역의 지리·민족·산물 등에 관한 지식이 중국으로 유입되어 동서간의 교역과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처음에 계획한 장건의 서역 여행은 서역 제국과 동맹을 매정 흉노를 철저히 무찌르기 위한 것으로 2회에 걸쳐 파견되었다. 장건이 1백여 명을 거느리고 장안을 출발해 황화 서쪽 변경 지방에 이르렀을 무렵 그는 뜻밖에도 흉노에게 사로잡혔다. 장건은 10년 동안이나 흉노에서 억류생활 후에 탈출했다. 장건 일행은 서쪽으로 수십 일 동안 여행을 계속해서 대완(페르가나)에 도착, 그리고 대완에서 강거국을 지나 월지에 도착하였으나 월지왕의 동맹 거부로 장건의 동맹 체결은 무산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귀국길에 오른 장건 일행은 곤륜산 남쪽 기슭을 따라 이른바 서역 남로로 귀국길에 올랐다. 월지와의 동맹은 수포로 돌아갔으나 그의 보고에 의해 한나라는 서역의 정세를 잘 알 수 있게 되었다.장건의 서역 여행으로 인해 처음으로 오손, 야랑, 대완 등 중앙아시아 각국의 사정과 문물이 전해졌다. 차츰 중국과 중앙아시아 각국간의 교류가 시작되었으며, 이들을 통해 서아시아, 심지어 로마(대진국)의 문물도 교류하게 되었다. 그 후 한나라와 서역과의 교류는 더욱 빈번해져 이른바 비단길(실크로드)이 개통되기에 이르렀다.3) 반초학자 반표의 아들로 73년 두고를 따라 흉노토벌의 별장으로 재능을 발휘해 큰 공을 세우고, 이후 31년간 서역에 머물며 등지의 오아시스 제국가를 정복하고 부하 감영을 페르시아만 방면으로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등 많은 공적을 세웠다. 서역을 토벌하고 반세기 이상 흉노의 지배 하에 있던 50여 나라를 한나라의 위령 밑에 복종시켰다.또한 전한의 장건의 활약 이후 끊겼던 실크로드를 다시 연결하여 서역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⑶ 실크로드1) 초원길초원길은 동?서양을 잇는 이 세 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다.초원로란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동서 교류의 통로를 지칭한다. 그 역사를 살펴보자면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 페이지를 5호 16국 시대라는 이름으로 장식하고 있는 다섯 오랑캐(흉노, 선비, 저, 갈, 강)이다. 이어서 돌궐족과 위구르 족이 초원길을 통하여 보금자리를 옮겨서 위구르는 중동지방에 '서하'라는 나라를 세우게 되고, 돌궐족은 후에 유럽까지 이동하여 서양에서 '투르크'라 불리면서 공포의 존재로 남게 된다. 몽고는 서하와 서요, 금을 굴복시키고 초원길을 이용하여 바투의 유럽원정을 하게 된다. 몽고의 대원정이 마쳐진 이후에는 이 초원길로 선교사들이 왕래를 하게 되었다.2) 오아시스로오아시스로란 주로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건조지대(사막)에 점재하는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이루어진 동서 교류의 통로를 지칭한다.사막길 혹은 비단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이탈리아로부터 시작되어 소아시아지방, 서아시아, 이란고원과 중앙아시아를 지나 파미르고원, 타림분지를 거쳐 중국의 장안까지 연결되는 길이다. 오아시스로는 다른 어떤 길들 보다도 동서양의 문화교류에 있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길은 본래 아랍 사람들이 교통로로 사용하던 구간에 중국 전한시대에 반초가 개척한 장안까지의 길이 더해지고 서쪽으로 유럽까지 확장되어 완성되었다.특히 오아시스로는 오가는 상인들의 안전을 보호 하기위해 길을 따라 절도사를 배치해 치안을 유지하였다. 이렇게 비단길이 차차 안정되어 자리를 잡게 되자 이에 따라 당대부터 더욱더 많은 교류가 이루어 졌다. 송나라 시대에는 오랑캐의 공격 때문에 오아시스로 보다는 해로를 이용하기 시작하여 원대 서역원정을 할 때까지 중국 본토의 잦은 정권교체로 인한 혼란으로 오아시스로는 잠시 침체가 되었다.3) 해로해로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해상에서 동서교류와 교역이 진행된 지중해에서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지나 인도양과 태평양 및 대서양에 이르는 환지구적 바닷길을 지칭한다.이 바닷길은 유럽 이탈리아에서 시작해서 지중해를 거쳐 홍해로 접어들어 잠시 육로로 서아시아를 통과, 페르시아만으로 접어들게 되어 인도 남아시아 중국까지 연결되는 교역로 이다. 당대 이전에는 신구·악기 등이 중국에 운반되었다. 또, 이 길을 통하여 불교와 간다라 미술이 중국에 전해였고, 구법승도 인도를 왕래하였다. 당대에는 사신, 승려, 상인이 왔으며 보석, 약재, 향료, 호두와 금·은 세공법 까지도 전해졌다. 한편, 동남아시아에는 바닷길을 통하여 인도인이 불교와 힌두 문화를 전파함으로써, 인도 문화권을 형성하였으나, 8세기 후반부터 이슬람 상인의 활동이 증가하였다.2) 송·원 시대의 동서 문화 교류송대에는 육상 교통은 내륙 아시아로 제한된 데 비해 해상 교류는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다. 이는 나침반을 이용한 중국인의 해상 발전과 이슬람 상인의 적극적인 활동이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 중국의 화약과 나침반이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어 유럽의 근대 과학 성립에 기초가 되었다. 원대에는 육·해로를 이용하여 수많은 유럽 인이나 가톨릭 선교사, 이슬람 상인 등이 연이어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 중 코르비노는 대도에 와서(1273) 중국 최초로 교회를 세우고 포교 활동을 하였다. '동방견문록'을 남긴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폴로와 모로코 인 이븐 바투타 등 여행가는 중국을 방문한 후 여행기를 남겨 서양인의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또, 이슬람으로부터 지리학, 수학, 천문학, 의학 등의 새로운 자연 과학이 전해졌고, 이 영향으로 곽수경은 대도에 천문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하고 수시력을 만들었다(1280).반면에 중국의 직물, 도자기, 회화 등 미술 공예품과 인쇄술 등 과학 기술이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다. 한편, 일찍부터 인도 문화권에 편입된 동남아시아와 남해의 도서 지역에는 13세기 이후 서서히 이슬람 문화가 전파되었다. 그 결과, 인도와 이슬람 문화가 이 지역에서 서로 융합되어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3) 명 시대 이후의 동서 문화 교류송? 원대에 활발히 전개된 해상교역은 명조의 성립과 함께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명태조 주원장은 연해주민의 출해(出海)를 엄금하는 해금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는 동남 연안지역의 기.
프랑스문화의 이해 Report〔목 차〕Ⅰ. 서론Ⅱ. 본론1. 프랑스 음식의 배경⑴ 프랑스 요리의 지리적 배경⑵ 프랑스 요리의 역사적 배경2. 프랑스의 음식 문화⑴ 프랑스 음식 문화의 특징⑵ 프랑스의 식사 예절⑶ 현대 프랑스인의 음식 문화3.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식4. 프랑스의 와인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바로 영양분을 섭취하는 '먹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점점 생활이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지면서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기보다는 좀 더 맛있게 먹으려는 욕구가 오늘날의 음식을 예술에 가까운 요리로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마다 지리적인 환경과 역사적인 배경 등을 통해 독특한 식문화를 형성해 왔다.'세계 3대 요리국' 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과, 터키, 그리고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음식문화로 인정받는 프랑스는 식문화를 국가의 중요한 문화로써의 자부심과 긍지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시켰기에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세계 요리국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프랑스 요리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Ⅱ. 본론1. 프랑스 음식의 배경⑴ 프랑스 요리의 지리적 배경프랑스는 영국,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접하고 있으며 해양성, 대륙성, 지중해성 기후를 다양하게 갖고 있다. 기후는 온화한 편이고 연평균 강수량이 600~2,000mm로 피레네 서부에 비가 많이 오며 피레네산맥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완만한 국토로 국토의 2/3가 평야와 구릉지대에 속한다. 프랑스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 기후가 온화하여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이 풍부하며 세계 5위 수준의 밀과 그 외 보리, 귀리, 옥수수, 쌀 , 담배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포도는 북부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생산되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세계 제일의 포도를 자랑한다. 프랑스는 격조 높은 테이블 문화가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금은 세공, 도자기, 섬유 예술을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며 높은 사람에게만 나이프가 놓여졌고, 특히 포크의 사용은 익숙하지 않아 칼로 육류를 자라서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음식의 계층별 차이 : 귀족들은 서민들이 먹을 엄두도 못 낼 비싼 향료가 포함된 음식들(육식)을 먹음으로써 일반 서민들(야채)과 자신들을 차별화하여 그들의 사회적 권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삼음- 전쟁의 역병과 기근이 연속되는 동안 수도원이나 승원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요리들이 암흑시대가 사라지자 밖으로 퍼져 그 지방 특유의 요리로 발전하게 됨? 15세기: 프랑스 요리의 독립적인 특성이 나타나는 시기유럽 요리의 고향은 이탈리아 요리이나, 이 모체가 15세기경에 각국에서 별도로 발전해 갔다. 그리하여 유럽의 중심이 파리(Paris)가 될 즈음에는 모든 길이 파리로 통하게 되었고, 그 중간에 있는 마을의 지방 요리에 관한 책이 출판 되었다.? 16세기: 프랑스 요리의 근대적 발달의 근본이 나타나는 시기1553년 오를레앙 공작이 메디치가의 카트린과 결혼하면서부터 그녀는 피렌체 출신의 요리사들과 함께 프랑스로 왔는데 메디치가는 향신료의 풍미로 유명했다. 프랑스 요리는 이탈리아로부터 수입된 것이다. 16세기 말기 1582년에 레스토랑, 뜨르, 다쟝이 개점되었다.2. 프랑스의 음식 문화⑴ 프랑스 음식 문화의 특징1) 프랑스 요리의 특징① 재료와 요리의 종류가 매우 다채로움? 온갖 재료를 구하기 쉽고, 여러 다른 민족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므로 온갖 입맛에 맞을 음식이 필요했을 것.? 프랑스는 유렵 제 2의 공업 국가이면서, 또한 유럽 제일의 농업 국가로, 전 유럽 가 운데 프랑스처럼 온 국민이 먹고 남아 식량을 수출해서 큰돈을 버는 나라는 그리 흔치 않다.② 재료를 충분히 살리고 합리적이며 고도의 기술을 구사하여 섬세한 맛을 내고 포도 주, 향신료, 소스로 맛을 내는 것※ 프랑스 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포도주-마시는 목적 외에 요리의 맛을 돋구고 부드럽게 하기 위한 조미료의 성격으로도 이용되며 소스를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함.-먹다 남아서 신 포도주는 샐러드를 질에 따라 요리가 얼마만큼 고급이냐, 저질이냐 판가름 나게 된다.3) 프랑스 요리는 조화의 미고급요리는 조리에 있어 특별한 기술이나 재료의 종류도 문제이지만 격조 높은 요리의 내용만큼 그릇의 선택이나 식탁의 조화를 찾는 테이블 문화가 크게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이는 금은 세공, 도자기, 섬유 예술을 크게 발전시킨 요체이기도 하다. 프랑스 요리가 유명하다는 데에는 좋은 요리의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순서를 갖춘 격식 있는 식사 예절 매너도 한 목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⑵ 프랑스의 식사 예절1) 프랑스 식사 순서오르되브르 → 수프 → 생선요리 → 소르베 → 주요리 → 샐러드 → 디저트 → 과일, 음료? 오르되브르: 프랑스 요리의 전채. ‘본 식사의 밖’ 이라는 뜻으로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소화액분비를 촉진시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이다. 그래서 모양은 예쁘게, 분량은 적게 준비한다. 프와그라 테린, 캐비어, 에스카르고, 생굴이 고전적인 메뉴이다.프와그라 테린은 고기나 생선살을 부드럽게 다져 양념한 뒤 테린이라는 틀에 채워 오븐에서 익혔다가 차갑게 식힌 요리이다.에스카르고는 부르고뉴 지방의 미식으로 알려진 민물달팽이 요리이다. 껍질 째 제공되거나 에스카르고 전용 그릇에 살만 꺼내어 내기도 한다.오르되브르를 먹기 전에 아페리티프라고 하는 식전주가 곁들여진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가벼운 술이 제공되는데, 샴페인이 대표적이다.? 수프: 요리의 첫 번째 코스로 콘소메(consomme)는 맑게 끓인 수프를 포타주(potage)는 되직한 수프를 만든다.? 생선요리: 수프 다음에 나오는 요리로서 생선, 갑각류, 패류 등의 재료를 사용한 요리가 포함된다. 식용 개구리를 생선 코스에서 제공하기도 한다. 생선요리에는 가볍고 부드러우며 약간 신맛이 감도는 모르네 소스, 보들레즈 소스, 타타르 소스 등을 곁들인다.? 소르베(sorbet): 생선요리를 먹고 나서 주 요리 전에 나온다. 과일 퓨레에 설탕, 와인, 향기 좋은 술 등을 넣고 부드럽게 얼린 것으로 입안을 상큼하게 정돈찻숟가락을 놓는다.? 잔의 크기는 물 잔이 가장 크고, 백포도주잔, 적포도주잔의 순서이다. 하지만 포도주의 종류에 따라 포도주잔이 물 잔보다 큰 경우도 있다.? 세 종류 이상의 프로마쥬를 쟁반 위에 대접하는 것이 예의다.② 초대 받은 측의 예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거절할 필요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 번 수락을 했으면 절대로 취소불가.? 초대되지 않은 동반자를 데리고 가는 일은 큰 실례이다.? 초대자가 명시하지 않는 한 아이들은 초대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유아의 경우는 데리고 갈 수 있으나 미리 우유를 충분히 먹여 식사시간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대 장소에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가지 않는 것은 주인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데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초대받은 모임의 성격에 맞는 복장을 한다.? 초대자에게 감사의 표시로 꽃이나 포도주, 화초 등의 가벼운 선물을 하고 선물은 안주인에게 건넨다. 미리 이야기 된 것이 아니면 음식물은 피하는 것이 좋고 과자나 케잌도 중복되지 않도록 한다.3) 식사할 때의 예절① 식사 전 예절? 손님들이 모이면 주인은 아페리티프(apperitif)를 권한다. 준비된 술의 종류를 주인이 말해 주므로 원하는 술을 골라 받아 마신다. 두 번 째 잔은 다른 것으로 마셔도되지만 더 이상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안주도 주인이 권하면 들도록 한다.? 프랑스인들의 식사는 매우 길다. 포도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며 먹기 때문에 초대되었을 때는 이야기에 동참하여 분위기를 맞추어 주어야한다. 그러나 입에 음식을 넣고 이야기하지는 않도록 한다.② 식사 중 예절? 안주인이 식사를 시작하면 손님이 시작하고 모든 사람이 끝날 때까지 식사를 한다.? 좌석배치:- 남자 주인의 오른편에는 제일 중요한 손님이나 최고연장자가 앉게 되고 집주인의 반대편에 안주인이 앉는다. 마찬가지고 안주인의 왼쪽 좌석에는 남자 주빈이 앉는다.- 남녀가 섞어 앉는 것이 원칙이다.- 한 가족이 연이어 나란히 앉지 않고 부부끼리 정면으로 다.? 식탁에서는 바른 자세를 취하여야 하며, 특히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놓거나 머리를 긁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 된다.? 음식 씹는 소리나 식기 부딪치는 소리도 매우 싫어한다.? 트림을 하거나 침을 뱉는 것은 매우 싫어 하지만 코를 푸는 것은 비교적 관대하다.? 안주인이 착석하여 수저를 들기 전에 먼저 식사를 시작하는 것을 절대로 삼간다. 또한 안주인이 만든 요리를 무조건 거절하는 행위는 일종의 모독으로 간주, 맛이 없어도 칭찬을 하면 먹어야 한다.? 일단 덜어 온 음식을 남겨서도 안 된다.⑶ 현대 프랑스인의 음식문화프랑스는 아침, 점심, 저녁 중 점심을 중요하게 여겨왔으나, 요즘 도시에서는 점심은 카페에서 샌드위치나 샐러드, 혹은 스테이크 등으로 하며, 저녁식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많다. 보통 점심식사는 12에서 오후 2시 사이에 하며, 저녁식사는 오후 8시부터 10시 사이에 한다. 식당에서의 마지막 식사 주문 폐점시간은 30분전까지 가능하다.일부 가족 경영 식당들은 주말에는 쉬기 때문에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일요일에 호텔 근처에서 식사하기가 쉽지 않다. 관광지를 벗어나거나 리조트 단지 내에 있을 경우, 레스토랑과 호텔들은 비수기에는 문을 닫는 경우도 있으므로 미리 전화하여 확인을 해야한다.지난 몇십 년간 프랑스인들의 식사습관이 매우 많이 변화했는데, 아프리카와 베트남 식당이 증가하였고 중국 레스토랑이 시내 여기저기에서 발견되고 있다. 햄버거 등의 버거류 등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프랑스의 도시 거주자들이나 교외통근자들은 다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건강에 관심을 갖게되어 전보다 식사를 훨씬 더 가볍게 한다. 냉동요리와 즉석요리들이 등장하면서 신선한 요리가 줄어들게 되었다.3.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식1) 프랑스 빵프랑스의 식탁에서 빵은 빼 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프랑스 인들은 매끼니 모든 음식을 빵과 함께 먹는다. 아침 식사가 아니면 바게뜨와 시골빵과 같은 담백한 빵을 곁들이고 아침 식사에서는 이들 빵에 버터나 잼을 발라먹거나 크로와쌍을 까페올레(ca다.